73화
나는 한번에 내 난처한 일을 해결해 준 연호진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별거 아니라고 말한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나에게 말했다.
“전에 던전 클로즈를 하면 시간을 내 달라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나는 고민했다. 연호진을 만나면 분명 도지완의 기분이 상할 텐데……. 개인적으로 연호진에게 호감이 있긴 했지만 도지완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고민하던 내가 힘들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그가 내 손을 붙잡았다.
“정말,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정말로 간절해 보였다. 마치 내가 손을 뻗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은 얼굴이라 나는 쉽게 거절을 뱉어 내지 못했다.
“그냥 여기서 말씀해 주시면 안 되나요?”
“안 됩니다. 너무 중요한 일이라…… 듣는 귀가 없는 곳에서 해야 합니다.”
그 말에 나는 결국 거절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바로 그러겠다 한 것도 아니었다.
“……일단 던전 공략을 마무리 지은 후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부디, 꼭…….”
내 대답에 연호진도 한 발짝 물러나는 것으로 대화는 마무리가 되었다.
‘대체 무슨 말이기에 여기서 못 한다는 거지?’
아무런 관계도 없었던 D급 헌터인 나에게, SS급인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건지 그것도 궁금했다.
그러다 머리에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지만 곧 나는 머리를 저었다.
‘에이, 설마…….’
내 머릿속에선 혹시 연호진이 이미 사라진 미래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만약 어떤 사람이 미래에 내 일생일대의 적이 되고, 두 사람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상태라면, 회귀했을 때 어떤 일부터 할까?
‘천사들만 해도 다 도지완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연호진이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았을 리도 없고.’
그렇게 생각을 이어 나가다 보니 한 사람이 떠올랐다. 두 번 내 앞에 나타나 한 번은 우리를 공격하고, 한 번은 나를 도와줬던 아이언맨이 말이다.
‘……그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그 이후로 어딘가에서 봤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에 조금 더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지금은 일할 때였으니 생각에 잠길 겨를 따윈 없었다. 나는 곧 상념을 털어 내고 서포트하는 데 집중했다.
* * *
던전 시간으로 30일 정도가 지났다. 이제 던전은 1/4만 남기고 클리어된 상태였다.
조금만 버티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가 들썩였다.
“난 나가면 한 달을 쉴 거야.”
“웃기시네 한 일주일 쉬면 좀이 쑤실걸?”
낄낄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팀장인 장원영이 천막 안으로 들어와서는 손뼉을 쳤다.
“자, 자! 모두 끝까지 긴장을 놓지 맙시다! 긴장을 풀 때 사고가 일어나는 법입니다!”
안전하고 온전하게 귀환하자며 사람들을 다독이는 장원영의 말에 모두가 순순히 “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뭐 별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했다. 나도 말이다.
식당으로 쓰고 있는 천막 안에서 도지완과 함께 저녁밥을 먹고 있다가 내가 말했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가게 되면…… 여행 갈까요?”
그 말에 도지완이 밥을 뜨다 말고 멈칫했다. 정말이냐는 듯이 나를 보다가 그가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여행 가자는데 웬 의심? 어이가 없어서 바라보자 그가 입을 뗐다.
“……전에는 나중에 가자며.”
그러면서 농담이라고 말했다가는 죽이겠다’라는 눈빛을 쏘아 댔다.
“음…… 열심히 일했으니까 열심히 쉬어도 될 것 같아서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자 내가 그냥 놀리려고 꺼낸 말이 아님을 알았는지 도지완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그럼 전에 이야기하던 곳으로 예약할까?”
“네, 좋아요.”
“알겠어. 말 바꾸면 혼난다?”
그렇게 말하며 도지완이 장난스럽게 주먹을 흔들었다. 그렇게 서로 낄낄 웃으며 대화하는데 저 멀리 그 남자가 보였다. 금조 길드의 그 사람 말이다.
그는 나와 도지완을 보고 다가오고 싶어 했지만, 이내 시무룩해져서 우리와는 먼 곳에 앉았다.
그가 왜 저러냐면, 운이 안 좋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게 왜 도지완이 있을 때 다가와.’
어느 날 퇴근해서 도지완이랑 저녁을 먹고 있는데,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남자가 다가와 나에게 친한 척을 했다.
그걸 보던 도지완은 남자가 별 주접을 다 떠는 것을 웃는 얼굴로 받아 내다가 그가 돌아간 후 나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랑 친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친하다고 하면 남자가 어떻게 될지 두려웠고, 안 친하다고 하면 더더욱 남자가 어떻게 될지 두려웠다.
말하지 않는 나를 보며 비뚜름하게 웃은 도지완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 도지완이 비뚜름하게 웃은 다음 날부터 남자는 내 곁에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묻기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어떤 방법을 써서 남자를 퇴치한 건지 궁금해졌다.
“대체 뭐라고 했길래 저래요?”
내 질문에 뒤를 돌아서 남자를 확인한 도지완은 나를 보고 음산하게 웃었다.
“왜? 궁금해?”
“궁금하긴 한데…….”
님이 너무 무서워요…….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도지완의 웃음이 짙어졌다.
“별거 아냐 나는 그냥 금조 길드장에게 신입 관리 똑바로 하라고 했을 뿐.”
“아…….”
그렇구나. 자기 길드장 몰래 도문 길드와 연결 고리를 만들어 놓으려고 했던 야망을 들켜 버려서 지금 있는 자리도 위태로워진 게 분명했다.
안됐긴 한데 원인을 본인이 만들었으니 크게 불쌍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여행 갈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도지완을 보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 * *
이제 정말 던전 클리어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예상일을 던전 시간 기준 40일로 잡았는데, 이제 예상일까지 3일 정도 남은 시점이 되었다.
한 달이 넘게 지내다 보니 팀원들끼리도 어느 정도 친해졌다. 같은 등급이라는 것이 더욱 우리를 돈독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호야. 나중에 마음 바뀌어서 공격대 참여하고 싶으면 연락해.”
“네, 형.”
그렇다고 도지완을 놓고 들어갈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날 생각해 주는데 괜히 뻗댈 생각은 없었기에 알겠다 하였다.
앞서간 공격대원들이 처치해 놓은 몬스터 사체를 수레에 얹는데 이상하게 찜찜했다.
‘뭘까…… 오늘 왜 이렇게 찜찜하지?’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공략은 무난하게 진행되니까 헷갈렸다.
‘웬만해선 예감을 따르는 게 좋은데…….’
고민하던 나는 그냥 상황을 좀 더 보기로 했다. 그간 지내면서 팀원들과 정이 들었기에 나 혼자만 몸을 빼기가 조금 저어된 탓이었다.
그렇게 주위를 살피면서 일을 하던 중이었다.
“으악!”
“무슨 일이야?”
비명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자, 사체 더미 속에서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몬스터에게 공격을 당한 모양이었다. 팀원이 나동그라지자 주위에 있던 팀원들이 무기를 들고 몬스터에게 덤벼들었다. 거의 빈사 직전이라 떼로 두드려 맞은 몬스터는 얼마 안 가 절명했다.
“이봐, 괜찮아?”
“으으, 아파…….”
“그래도 어디 신경이 다치거나 그런 거 같진 않네. 다행이야.”
그렇게 팀원의 부축을 받아 부상자가 베이스캠프로 돌아가고 나서 뒤늦게서야 비명을 듣고 공격대가 돌아왔다.
“무슨 일입니까? 비명 소리가 들렸는데.”
“아…… 그게 실은.”
팀장인 장원영이 허겁지겁 돌아온 연호진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설명하자 연호진의 안색이 나빠졌다. 그는 곧 우리들에게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이 일은 제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입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당황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사람이면 실수할 수도 있다고 괜찮다고 사람들이 말했으나 고지식한 연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아 다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자칫했으면 불구가 되거나 죽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책임자인 만큼 제 잘못이 큽니다.”
“음…….”
본인이 그렇다니 아니라고 하기도 뭐했다. 팀원들은 연호진의 책임감 있는 모습에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연호진은 다친 사람에게는 따로 사과를 하겠다고 하면서 오늘은 공략을 조금 여유롭게 하자 제안했다.
“아무래도 거듭되는 공략에 모두 지친 것 같습니다. 공략이 빠르게 끝나면 집에 돌아가는 것도 빨라지니 좋지만, 우리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합시다.”
“공대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좋습니다.”
모두가 쉬엄쉬엄하자는 쪽에 동의를 하며 쉬기 위해 앉았다. 그렇게 서로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 명씩 말을 꺼냈다.
“하긴…… 요새 빨리 나가고 싶어 가지고 몸이 달긴 했었죠.”
“이렇게 오래 던전 안에 있는 건 다들 처음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렇게 한 명씩 지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 갈 때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연호진이 저 멀리 사람들과 동떨어져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지완도 그렇지만 연호진도 문제가 많아 보였다.
‘그렇게 따르는 사람이 많은데 왜 저러고 있어.’
나는 혼자 고독을 씹고 있는 그의 곁에 가서 앉았다. 연호진은 멍하니 있다가 내가 다가가는 소리를 듣고 나를 보더니 내가 곁에 앉아도 별말 하지 않았다.
“으차. 앉아도 되죠?”
이미 앉았지만 늦게 허락받는 나를 보고 연호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그와 함께 침묵하다 나는 말했다.
“전에 나가면 만나기로 했던 거요.”
“네.”
“죄송한데, 힘들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도지완이 연호진을 싫어하니 그에게 진실 되게 말하고 나가거나 그냥 몰래 나가는 두 가지의 선택지뿐이었다.
하지만 일단 후자의 경우부터 말하자면 안 들키면 안 들키는 대로 마음이 불편할 테고, 들키면 그 후폭풍이 정말 두려웠다.
‘전자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도지완은 당연히 나가지 말라고 할 것이다.물론 내가 꼭 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그도 별수 없겠지만 말이다.
‘서운해하면서도 보내 주겠지…….’
그러나 도지완을 서운하게 하면서까지 연호진을 만나고 싶진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도지완이었으니까.
내 거절에 연호진은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더니 물었다.
“왭니까?”
“음…… 그게요.”
“혹시 그 사람…… 도지완 때문에 그렇습니까?”
바로 그의 이름이 나오는 걸로 보아 내가 티를 너무 많이 낸 건가 싶었다. 머쓱해져서 그렇다라고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네?”
뜬금없는 소리에 당황하자 연호진이 나를 붙잡고선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이 아는 그 사람이 정말 그라고 확신합니까?”
“잠깐, 무슨…….”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도지완이라는 사람이.”
어……? 무례한 그의 말에 화를 내려다가 나는 얼떨떨해졌다.
‘뭐지? 뭘…… 알고 말하는 건가?’
도지완은 이기적이고, 남을 잘 믿지 못하고,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다. 그건 좋은 사람의 기준과는 멀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정말 나쁜 사람은…… 이제는 없어진 미래의 도지완.’
마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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