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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번 망했다-74화 (74/88)

74화

마왕이 된 도지완을 아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회귀한 나와 내 천사 동료들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을 연호진이 마왕이었던 도지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을까?

나는 떨리는 눈으로 연호진을 바라보았다. 그런 내 눈과는 달리 연호진의 얼굴과 눈동자는 떨림 하나 없이 결연했다.

“저기…….”

“네.”

“제가…… 착각하는 걸 수도 있는데…….”

“네.”

“혹시…… 혹시 말이에요.”

당신은 없어진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나요? 내가 그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으악! 뭐, 뭐야?”

“헉! 저건 뭐지?”

쉬고 있던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소란에 우리 둘도 자연스럽게 그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저건?”

새끼 코끼리 정도 크기의 몬스터였다. 생긴 것도 어느 정도 닮았고. 그런데 그 몬스터가 문제인 게 아니었다.

‘마기잖아?’

그 몬스터의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은 틀림없는 마기였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그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마기가 일렁이고 있다는 거였다.

‘몬스터가 전혀 마기를 컨트롤 하질 못해.’

그러니까 저건 어찌 보면 시한폭탄을 온몸에 두르고 찾아온 자살 특공대나 다름이 없었다. 목숨을 바쳐 안정되지 않은 마기를 뻥 터트리려는 테러리스트였다.

“이, 이게 뭔진 모르지만 일단 죽이고 보죠!”

근처에 있던 공대원이 벌떡 일어나 무기를 내질렀다. 섣불리 움직이는 바람에 건드리면 안 된다고 소리치지도 못했다.

“안 돼!”

그런데 나보다 먼저 연호진이 외쳤다. 공대원은 연호진의 외침에 깜짝 놀라며 무기를 거뒀지만 안타깝게도 무기가 몬스터의 몸을 살짝 치고 말았다.

손뼉 친 것만큼 약한 공격이었는데, 천천히 걸어오던 몬스터가 걸음을 멈추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어? 이거 왜…….”

“피해!”

어느새 쇄도한 연호진이 공격한 공대원을 밀쳤다. 밀쳐져 나동그라진 공대원은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다가 제가 공격한 몬스터의 몸이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부풀자 숨을 삼켰다. 연호진은 기운을 뿜어서 그 몬스터를 가두려고 했지만 그게 쉽지 않은 듯했다.

“모두 물러서세요!”

연호진의 외침에 모두가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연호진은 계속해서 물러서라고 했고, 그의 주변으로부터 모두가 20m 정도 떨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더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연호진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힘겨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

연호진이 몬스터를 제 기운으로 가둬 놨지만, 그 안에서 뛰쳐나가고 싶은지 몬스터가 퍽!퍽!퍽! 두드리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연호진은 푸들푸들 떨었지만 그 누구도 쉽게 도움을 주러 갈 수가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도움이 혹시라도 그의 집중을 방해할까 봐 마음을 졸이며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신성력뿐이었고, 신성력이 없는 연호진은 결국 나가떨어졌다.

“으아악!”

펑! 하면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연호진의 몸이 차에 치인 것처럼 저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연호진 말고도 여러 사람이 폭발에 휘말려 넘어지고 다쳤다. 그러나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던 덕분에 연호진 만큼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의 기운 안에 갇혀 있던 마기들은 그의 기운이 거둬지자 터져 나감과 동시에 위로 솟구쳤고, 우리는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쨍그랑! 하며 유리창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 말이다.

“이건…….”

“침식 경고?”

모든 던전은 침식이 가까워질 때면 지금처럼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나곤 했다. 그것을 던전을 유지하는 막일 거라고 사람들은 추측했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었다.

모두가 얼떨떨해할 때 나는 날아가 처박힌 연호진에게 달려갔다.

차에 치였다는 표현에 걸맞게 그의 몸은 처참했다. 코와 입에서 피가 흘렀고 분명 어딘가 부러진 게 틀림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그의 몸에 신성력을 흘려 넣었다. 죽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으니까.

“……신성력.”

그 말은 숨소리같이 작게 들렸지만 나는 똑똑히 들었다. 내가 쓰는 힘이 신성력이라는 것을 연호진이 안다는 것은…….

“당신 미래를 알고 있군요.”

연호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호진이 미래를 알고 있는 게 아니고 마왕의 추종자가 되어 아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신께서 뽑은 용사였다. 그런 쓰레기 같은 타락을 할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보다는 그냥 미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훨씬 가능성 있었다.

‘뭐, 그것도 그렇지만 마왕의 추종자였으면 내가 신성력을 쓴 순간 절명해 죽었겠지.’

이 정도로 다쳐 있으면 내가 쏟아붓는 신성력이 마왕의 추종자에겐 독으로 작용했을 테니까.

일단 그가 미래를 기억하고 있으니 말은 나눠 봐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할 때였다. 어느 정도 몸이 나아졌는지 연호진이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역시 당신이 맞았군요…….”

“네?”

뭐가 맞냐고 묻기도 전에 연호진의 입에서 답이 나왔다.

“새로운 용사가.”

“……네?”

그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람? 황당하게 쳐다봤지만 연호진은 여전히 헛소리를 했다.

“저는 실패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분께서 당신을 새로운 용사로 임명하신 것 아닙니까?”

“아니거든요…….”

설마, 이 사람은 모르는 건가? 신께서 스스로를 희생하고 시간을 돌린 것을 말이다. 굉장히 서글픈 일이었다.

‘기억은 있는데 더 이상 그분의 답은 없지, 거기다 돌아온 시간 속에선 없어진 그분이니 용사로 임명할 수도 없고.’

그러니 자신은 용사 탈락인 건가, 하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용사를 뽑아 줄 사람이 사라진 것인데도 말이다.

그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했는데 또 저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으아악!”

“더 있잖아?”

그 말대로였다. 새끼 코끼리 같은 몬스터가 마기를 풀풀 풍기면서 어슬렁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닌 셋이었다.

“어, 어떡해!”

“도망, 도망가야 하나?”

“아까처럼 터지면? 그럼 침식 경고가 또 울리는 거 아니야?”

큰일이다. 패닉에 빠진 모두의 머릿속에 그 문장만이 떠올랐다. 이 던전이 완전히 침식되면 서울은 물론 인천, 경기 등이 필드로 변할 테니 말이다.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은 채 오래 놔두면, 던전 크기 만큼의 폭발이 일어나며 바깥의 땅이 던전 안과 같은 환경으로 변하는 것을 침식이라고 했다.

던전마다 ‘오래’의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이제 던전 시간으로 37일을 겨우 넘긴 터라 오래라 말하기에는 많이 일렀다.

하지만 잘못 들었다기에 그 강렬한 소리는 침식 경고가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었으니……. 잘은 모르지만 저 몬스터가 폭발하면 침식이 빨라진다. 라는 것을 모두가 눈치챘다.

“이걸 어떡해!”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몬스터를 피해 이리저리 피해 보지만 몬스터들은 놀리듯, 어서 자신을 때려 보라는 듯이 다가왔다. 일단 저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신성력만이 마기에 대항할 수 있으니까.

연호진의 몸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나는 그의 몸에서 손을 뗐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나의 팔을 연호진이 붙잡았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했다.

“안 됩니다.”

다짜고짜 안 된다고 하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잖아요.”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도록 저에게 맡겨 주세요.”

하지만 움질일 때마다 아픔을 느끼는지 고통 어린 얼굴을 하는 그였다. 그리고 신성력이 없는데 어떻게 마기에게 대항할 건지도 의문이었다.

“한 번만 더 아까 같은 일을 당하면 이번엔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아닙니다. 죽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우기는 연호진을 노려보다 나는 그의 정수리에 손바닥을 대고 신성력을 뿜었다. 그대로 두개골과 척추로 흘러 몸을 정결하게 만드는 신성력에 연호진이 몸을 바르르 떨며 헐떡이자 나는 나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떼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 우기지 마세요.”

나는 냉정하게 말하고선 그에게서 멀어졌다. 뒤에서 안 된다고 꿍얼거리는 연호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철저하게 무시한 채 나는 손바닥 위에 미세하게 신성력을 피워 올렸다. 신성력이 내뿜는 빛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했지만 효과는 있었다. 사람들을 가지고 놀듯 어슬렁거리던 몬스터들이 전부 나를 바라본 것이다.

“이쪽이다!”

내가 몬스터들을 유인하려 외치자 내 행동에 사람들이 우려 어린 얼굴을 했다.

“지호야!”

“어쩌려고 그래!”

사람들 없는 곳에 가서 저놈들을 다 소멸시킬 생각이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으니 그냥 둘러대었다.

“이놈들 느릿느릿하니까 제가 유인하고 있을게요! 다친 사람들 데리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서 도와줄 사람들을 불러와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마수들이 내 뒤를 쫓자 사람들은 나를 도와야 하나 갈등했지만, SS급인 연호진이 저렇게 다칠 정도인데 자기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며 한탄하고는 다친 사람들을 부축하는 것이 보였다.

‘좋아. 이대로 멀어지자.’

사람들이 오기 전에 놈들을 다 정화해서 소멸시켜 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 * *

지호가 사라지고 나서 사람들은 서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있는 호진에게도 사람들이 다가갔다.

“공대장님…….”

“저희가 부축하겠습니다.”

사람들이 호진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호진은 그 손을 다 거부했다. 난감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호진은 스스로 일어섰다.

호진의 몸에는 신성력이 없었지만 그는 신성력을 다룰 줄 알았다. 지호가 쏟아부었던 신성력을 받아 몸 안에 순환시키자 운신이 가능할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저는 신지호 씨를 쫓아가겠습니다.”

“네? 하지만…… 다치셨잖습니까?”

“신지호 씨 혼자만으로는 힘듭니다. 제가 도와야 합니다.”

그 말에 그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움을 느낀 탓이었다. 크게 다친 호진이 리더로써 책임을 지려고 하는데, 몸이 멀쩡한 자신들이 두려워하며 지호에게 모두 맡긴 게 수치스러웠다.

마음을 바꾼 그들이 호진과 함께 지호를 도우려 했지만 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혹시라도 놈들에게서 도망쳐야 할 때 신지호 씨 하나 정도는 제가 안고 도망칠 수 있습니다만, 사람이 많아지면 빠져나오기 힘들 겁니다.”

그런 이유로 거절을 하면서 모두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라고 말한 호진은 지호가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그래. 도움을 줄 수 없으면 발목은 잡지 말아야지.”

그들은 아쉬움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며 다친 사람들을 부축해 베이스캠프로 돌아갔다.

베이스캠프는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아까 들었어요? 침식 경고를 저희만 잘못 들은 건 아니죠?”

공략을 하던 사람들이 던전에 울려 퍼지는 침식 경고를 듣고 놀라서 모두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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