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호진의 공대원들이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했다. 이상한 검은 기운이 서린 몬스터가 나타났으며, 공격했더니 기이한 반응을 보이기에 그걸 막다가 호진이 많이 다쳤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세 놈이 더 나타났고, 서포트 팀의 한 명이 놈들을 유인해서 끌고 갔습니다. 공대장인 연호진 씨는 그 사람 혼자서 할 수 없다면서 다친 몸을 이끌고 도우러 갔고요. 그렇게 저희가 먼저 베이스캠프로 돌아왔습니다.”
말을 하던 이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어깨를 누군가가 강하게 잡았다.
“그 서포트 팀 사람 이름이 뭐죠?”
“예?”
“몬스터 유인해서 끌고 간 서포트 팀 사람 이름이 뭐냐고!”
그 사람은 지완이었다. 지완도 침식 경고를 듣고 공략을 하다 말고 돌아온 참이었는데, 다 모인 베이스캠프에 아무리 찾아봐도 지호가 보이지 않아 초조한 참이었다.
그런데 서포트 팀 사람이 몬스터를 유인하러 가고 그 뒤를 연호진이 도우러 따라갔다?
‘아닐지도 몰라.’
그렇지만 가슴속에서 불길하게 피어오르는 예감은 그 사람이 지호라고 계속 알리고 있었다.
“신, 신지호 씨입니다.”
지완의 기세에 눌려 벌벌 떠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역시나 지호였다.
눈앞이 깜깜해진 지완이 잠시 비틀거렸다가 중심을 잡고 섰다. 곧 그가 제 무기를 쥐고선 이동 토템으로 향했다. 지호네 팀이 이용하는 이동 토템이었다. 협회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그를 붙잡았다.
“도문 길드장님!”
“…….”
“그냥 가시면 안 됩니다! 일단 대책을 세우고…….”
“그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떡할 겁니까?”
고요하게 분노하며 지완이 직원을 바라보자 직원은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런 직원을 잠시 내려다보던 지완은 다시 몸을 돌려 이동 토템으로 향했고 그의 모습은 곧 사라졌다.
베이스캠프는 그렇게 지완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고요했다.
* * *
마기에 뒤덮인 몬스터들을 유인하던 나는 어느 정도 사람들이 떨어져 안 보이게 되자 한 놈을 붙잡았다.
“잡았다!”
“꾸엉!”
나에게 붙잡힌 몬스터는 반항하며 마기를 터트리려 했지만 내가 좀 더 빨랐다. 몬스터의 머리를 붙잡고 신성력을 강하게 내뿜는 것만으로 충격에 죽어 버렸다.
일렁거리는 마기마저 정화하면서 다음엔 어떤 놈을 처치할까 고르고 있었는데, 동료의 죽음을 멀뚱히 보고 있던 몬스터가 갑자기 어딘가로 어슬렁거리면서 걸어갔다.
“어? 야! 어디 가!”
마기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정화하는 데 오래 걸렸기에, 놈들이 뒤뚱거리면서 가는 것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쟤네들이 신성력을 보고 그냥 가 버린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본능적으로 신성력을 배척하도록 만들어진 몬스터들이 신성력이 무서워 도망치는 일은 없었다. 물론 느긋한 걸음이 도망가는 모양새라고 보기에도 이상했고.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마기를 정화하고 놈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데 내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용사님.”
나를 용사라 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연호진이었다. 용사인 그에게 도리어 용사라는 말을 듣자 나는 황당해졌다.
“저 용사 아닌데요?”
“저에게는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참 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는 시간이 돌아간 건 알았지만, 신께서 소멸한 것은 모르는 게 확실한 듯했다.
그걸 알려 줘야 할까 하다가 몸도 안 좋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면 큰일이 날까 싶어 나는 다음에 말하기로 했다.
“……놈들이 저를 쫓다가 다른 곳으로 갔어요. 도망간 건 아닌 듯한데…… 뒤를 쫓아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제가 함께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연호진은 내가 말한 방향으로 자신이 앞서 걸었다. 놈들의 걸음이 느릿한 덕분에 얼마 안 가 뒤를 따라잡았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글쎄요.”
우리 둘은 조심스럽게 그들의 뒤를 쫓았다. 한 10분쯤 걸었을까. 아래로 푹 꺼진 분지 지형이 보였다. 언뜻 보면 그릇같아 보이는 그곳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 했던 것이 있었다.
“헉! 저게 다?”
“전부 마기를 품고 있군요. 대충 봐도 천 마리쯤 되어 보입니다.”
흙빛으로 변한 연호진의 얼굴처럼 내 얼굴도 흙빛일 터였다. 대체 왜 저런 것들이 나타난 걸까? 심각한 얼굴로 분지를 내려다보는데 연호진이 중얼거렸다.
“이 던전이 어떻게 C급이라고 착각한 걸까요.”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착각한 게 아니에요. 던전 자체에 문제는 없으니까요.”
몬스터들은 전부 C급이 맞았다. 다만 문제를 일으킨 건 몬스터가 몸에 두르고 있는 마기였다. 마기를 다룰 수 있는 몬스터라면 S급을 노려볼 만도 하지만, 마기의 주인은 몬스터들이 아니었다.
‘이 정도 마기라니……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야.’
마치 천계에 있었을 때나 볼 법한 마기의 수준에 놀라던 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동떨어진 곳에 나 있는 구멍을. 처음에는 검은 돌인가 했지만 눈에 이능을 두르고 유심히 본 결과 주먹만 한 구멍이었음을 깨달았다.
‘구멍? ……설마!’
나는 구멍에서 마기가 새어 나옴을 느꼈다. 어떻게 이 던전에 이런 순도 높은 마기가 있는가 의아했는데 한번에 의문이 풀렸다.
“저기 보이나요?”
“……저 구멍 말씀이십니까?”
“네. 저기에서 마기가 나오고 있어요. 아마 저곳에서 나온 마기가 몬스터들을 조종한 것 같아요.”
내 말을 듣고 연호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럼 이 던전 지하에 마기가 차 있다는 소립니까?”
“……아니요. 저건 땅을 파서 생긴 구멍이 아닐 거예요.”
내 예상이 맞다면 저 구멍은…… 차원에 틈이 생겨 만들어진 구멍일 터였다. 그리고 저 구멍과 이어진 곳은 나에게 많이 익숙한 곳일 테고.
‘천계의 경계…….’
그곳에 죽은 마왕의 잔재가 있었다. 모든 악과 죽음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마기를 정화하고 남은 찌꺼기들이 지상에 떨어져 던전이 되는 것이니까. 몬스터들도 전부 그곳에서 태어났다고 봐도 되었다.
‘말도 안 돼. 이건 클리어가 불가능한 던전이야.’
던전이 마기에 물들었다면, 신성력을 쓸 수 없는 인간들은 이 던전을 클리어할 수가 없었다.
이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 우리들의 눈에 모여 있던 몬스터들 중 하나가 비척비척 구멍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는 구멍 근처에서 픽 쓰러졌는데, 아까 공격대원이 건드렸을 때처럼 부들부들 떨다가, 갑자기 몸이 울룩불룩 커지더니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아까와 다른 점은 그렇게 터졌음에도 침식 경고가 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구멍이 미묘하게 조금 더 커졌을 뿐이었다.
‘저것 때문에 몬스터들을 끌고 온 거구나.’
몬스터를 터트린 힘으로 저 구멍을 넓힌 후 신성력으로 정제되지 않은 마왕의 잔재를 가져오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와중에 우리가 휘말려 아까 같은 사고가 일어난 것이고.
일단 저 구멍을 막아야 했다. 마기가 강제로 벌린 구멍이니 신성력을 이용한다면 막을수 있을 터였다.
속으로 나는 저 구멍을 막을 신성력 양을 가늠해 본 후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신지호가 여기서 죽어야 할지도 몰라.’
내가 쓰고 있는 신지호의 몸은 죽었지만, 신성력으로 되살아났다. 그러니 신성력이 고갈되면 신지호는 다시 죽는다.
죽음은 나에게 끝이 아니니 두렵지 않았다. 다만…….
‘도지완.’
그가 문제였다. 내가 없어도 그는 괜찮을까? 그의 곁에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마왕의 추종자들을 막아 낼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앞섰지만 저 구멍을 그냥 두고 볼 순 없었다.
마기가 있는 한 이 던전은 영원히 클리어가 불가능했다. 그럼 언젠간 현실로 침식이 될 테고, 저 구멍도 던전과 함께 현실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이 존재하는 장소가 세상에 나타난다는 소리다.
“연호진 씨.”
“네…….”
“미래에선 이 던전을 어떻게 클리어했나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혹시라도 마기가 넘치는 이 던전을 미래에서 우연히 막아내진 않았을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실망스러운 답변이었다.
“그때는 던전이 이렇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는 이 던전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말하며, 그때는 다른 헌터들이 무난하게 클리어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망스러웠지만 마음은 굳힐 수 있었다.
“저 구멍을 닫아야 해요.”
닫는 건 내가 하지만 그동안 몬스터들을 구멍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단 둘밖에 없었다.
나와 연호진.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이 그밖에 없었다.
“막을 수 있겠어요?”
막지 못해 아까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침식이 빠르게 진행될지도 몰랐다. 이 일은 나에게도 위험한 일이었지만 연호진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그가 포기한다면 아쉽겠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하겠습니다. 아니, 할 수 있습니다.”
“…….”
“용사님이 해야 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치겠습니다.”
나는 용사가 아닌데……. 결연하게 말하는 연호진의 말에 나는 웃음이 났다.
“용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만약 이 일을 끝내고도 나와 그 둘 다 살아 있다면 말이다. 연호진도 나와 같이 미소 짓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그리고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사과? 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바라보는데 연호진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은색의 구체가 놓여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몰라 바라보고 있으니 구체가 반으로 갈라지며 크게 팽창했다. 그리고 느껴지는 신성력에 나는 깜짝 놀랐다.
팽창한 구체는 촤라락 연호진의 몸에 감겨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타난 것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아, 아이언맨?”
“……제가 상상력이 부족해서 이런 것밖에 생각해 내지 못하더군요.”
그의 말로는 과거로 돌아왔을 때 제 곁에 구체가 있었다고 했다. 가장 안전한 갑옷과 강한 무기를 떠올리라는 말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이거라고 했다.
“아이언맨 슈트랑 날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창이요?”
“제가 상상력이 부족해서…… 무기는 제 손에 익은 게 창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머쓱하게 말하는 연호진이었다. 이 모습일 때는 신성력을 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이게 신께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긴 선물이 아닌가 싶었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과거로 돌아온 걸 확인하자마자 당연히 그 사람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곁에 있는 내가 신성력을 쓰는 것을 보고 아리송해졌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신이 자신 말고 다른 용사로 나를 뽑은 거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