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신성력을 쓸 수 있으니 아까처럼 무력하게 당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요. 다행이에요.”
“바로 저놈들을 유인할까요?”
“그러죠. ……참.”
나는 계획대로 하기 전 연호진을 불렀다. 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연호진에게 내가 말했다.
“혹시라도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
“도지완을 부탁할게요.”
연호진이 신성력을 쓸 수 있다니 다행이었다. 적어도 내가 잘못되더라도 그가 있으면 마기를 물리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말에 연호진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물론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게 투구로 가려져 있기에 시선이 마주치진 않았지만 말이다.
“저는 실패한 용사지만 이번 생에선 최선을 다해서 용사님이 신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살아서 돌아갈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연호진은 분지로 뛰어 갔다. 그가 들고 있는 창에서는 신성력이 넘쳐흘렀다. 성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다! 이놈들아!”
마기에 뒤덮인 채 가만히 서 있던 몬스터들은 연호진이 내뿜는 신성력에 이끌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호진은 놈들에게 둘러싸이지 않도록 하면서 최대한 구멍과 멀리 떨어지게 도망 다녔다. 나는 들키지 않게 조금 빙 둘러서 구멍으로 향했다. 꽤나 넓은 곳이라서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곧 구멍에 다다를 수 있었다.
“여기구나…….”
저 멀리 검은 마기 덩어리처럼 보이는 몬스터들이 연호진을 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구멍을 바라보다가 땅에 손을 얹고 천천히 신성력을 풀었다.
차원의 틈을 막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천사 시절 여러 번 해 봤으니 말이다. 얼기설기 풀어져 구멍이 난 틈을 신성력으로 엮어 조이듯 닫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나하나 신성력을 엮고 있는데 구멍의 안에서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어어어어어!
마친 원통하다는 듯 원망이 가득한 울음소리였다. 깜짝 놀랐지만 계속해서 신성력을 엮어 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안 돼!”
저 멀리서 연호진이 비명 소리와 같은 목소리를 내기에 고개를 들었다가 숨을 들이켰다. 연호진을 쫓아 멀리 가 있던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호진은 자신은 본체만체하며 뛰어가는 몬스터들에게 다급하게 창을 휘둘렀지만, 몬스터들은 창에 제 몸이 꿰뚫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 뛰어오기 급급했다.
“피하세요!”
그가 외쳤지만 나는 피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 목소리가 저것들을 불러온 듯했다. 내가 여기서 멈추면 더는 이 구멍을 막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급해져 좀 더 빠르게 신성력을 풀었다.
‘5분, 아니 3분이라도 더…… 조금만 더…….’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이 모자랐다. 나는 한 손을 들어 짓쳐들어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방어 막을 치면서 한쪽 손으로는 여전히 신성력을 엮어 갔다.
쾅! 콰앙! 쾅! 느릿하게 움직이던 놈들이 꼬리에 불 붙은 것처럼 뛰어와서는 내가 친 방어 막에 몸통을 부딪쳐 댔다.
“윽……!”
“용사님!”
저 멀리서 연호진이 나를 불렀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몬스터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몰려오는 몬스터들 때문에 나는 방어 막의 크기를 줄여 조그만 돔 형태로 만들었다. 수그린 내 몸이 꽉 찰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차원의 틈을 막아도 여기서 나가는 게 문제네.’
아니, 그전에 신성력 고갈로 죽을지 몰랐다.
‘어쩔 수 없지.’
마음이 가벼워지며 웃음이 나왔다. 짧은 기간 동안 인간으로 살면서 내가 만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적은 사람 속에서 좋은 사람만 만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래도 그 잠시간의 삶 속에서 즐겁고 행복했기에 그들을 위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다만 조금 아쉬울 뿐.’
그들이 나의 죽음에 크게 마음 두지 않길 바라며, 더욱 강하게 신성력을 뿜으려고 할 때였다.
“신지호!”
저 멀리서 보여선 안 될 사람이 보였다.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신지호! 무사해?”
도지완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타나자 몬스터들의 공격이 멎었다. 기이하게도 놈들은 이제 나를 바라보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도지완을 바라보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다가온 도지완은 몬스터들을 헤치고 점점 나에게 가까워졌다. 그것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뭐야, 이 개 같은 것들은……! 신지호!”
“형님…….”
그의 움직임에 따라 몬스터들의 고개가 꺾였다. 도지완을 타깃으로 지정한 것처럼 시선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몬스터 떼를 한참 가로질러 걸어오던 그가 곧 나를 발견했다.
“신지호!”
엎드린 나에게 와락 달려든 도지완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막을 보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괜찮냐고 막을 두드리는 그에게 나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
“지호야. 괜찮아.?”
“전, 괜찮아요, 형님.”
“그래 다행…….”
“형님.”
안도하는 얼굴이 된 그를 보며 나는 얼굴을 굳혔다. 그에 어리둥절해하는 도지완에게 내가 말했다.
“형님은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내가? 왜?”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이 틈새에서 나오는 마기는 마왕의 잔재였다. 그리고 몬스터는 마왕의 잔재에서 태어난 부정한 생물이었다. 그러니 마기는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었고, 놈들을 조종하여 더욱더 강력한 마기를 인간계에 퍼트리려 했다.
그런데 이곳에 몬스터들보다 더 확실히 마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왕의 그릇, 도지완이 나타난다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리가 상을 차려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형님. 여길 떠나세요. 놈들에게서 최대한 멀어지시고요.”
“……그럼 너는?”
“저는 상관 마시고, 아예 던전을 나갈 수 있으면 나가세요.”
“…….”
“여긴 너무 위험해요.”
나는 호소했다. 이곳은 도지완에게 정말로 위험했으니까. 설명이 빈약하지만 내 간절함을 이해하고 도지완이 돌아가길 바랐으나, 그는 그저 내가 친 방어 막 위에 손을 얹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초조한 내가 다시 그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싫어.”
“위…… 네?”
“싫다고. 혼자는 안 나가.”
꽉 다문 입매에서 고집이 느껴졌다. 이렇게 고집 피우며 허비할 시간이 아까웠기에 나는 바로 외쳤다.
“연호진 씨!”
“뭐? ……넌!”
“제압하세요!”
그에 나타나는 아이언맨을 보며 도지완이 자세를 고쳤지만 이미 늦었다.
“너! 이잇, 네가 연호진이었어?”
“연호진 씨. 도지완 씨를 데리고 바로 바깥으로 나가세요.”
마기에 대해 잘 아는 연호진이었기에 이곳에 도지완이 있어선 안 되는 걸 잘 알았다. 그래서 군말 없이 따르자 도지완은 나를 원망 어린 얼굴로 쳐다봤다. 언제부터 이렇게 짝짜꿍이 잘 맞았냐는 표정이었다.
“신지호! 이거 놔!”
“어서요, 연호진 씨!”
연호진이 그렇게 도지완을 끌고 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뭔가가 또 잘못되었다.
고오오오오……!
몬스터들이 위협하듯 낮게 울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생각된 연호진이 도지완과 함께 몸을 빼려는 순간이었다.
낮게 울던 몬스터들이 하나하나 픽픽 쓰러졌다. 쓰러져 미동조차 없는 걸 보니 죽은 게 틀림없었다.
좋은 징조 같진 않아 얼굴이 굳어지는데, 쓰러진 몬스터들의 몸에서 마기들이 둥실 떠오르더니 하나로 뭉쳤다.
“연호진 씨!”
도지완의 반항에도 차츰 그를 끌고 나가던 연호진이 그걸 보고 빠르게 도망치려는 참이었다. 하나로 모인 마기가 빙글빙글 돌더니 마치 허리케인처럼 끝이 뾰족하고 가늘게 변했다. 그리고 뾰족해진 마기가 도지완을 향했다.
“안 돼!”
내 고함에 연호진도 마기의 변화를 알고 그걸 쳐 내려 했다. 하지만 뭉친 마기는 너무나도 강력해 오히려 연호진을 패대기쳐 버렸다.
“으윽!”
연호진은 저 멀리 굴러떨어졌고, 그와 붙어 있던 도지완도 땅을 굴렀다. 도망친 보람도 없이 내 근처로 떠밀려진 그의 위로 마기가 쏟아져 내렸다.
“안 돼! 형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마기에 내 목소리는 그에게 닿지도 않았다. 짧은 비처럼 쏟아져 내린 마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가운데 도지완만이 남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나는 기껏 하던 작업을 멈추고 그에게 뛰어갔다.
“형님!”
내가 불렀음에도 도지완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초조해진 내가 그의 몸을 흔들어 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던 그가 고개를 천천히 내렸을 때 나는 심장이 발밑에 떨어지는 기분을 맛봤다.
“형……님?”
“…….”
“……도지완 씨, 정신 차리세요!”
초점이 맞지 않아 흐리멍텅한 그의 눈에선 마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나는 도지완이 정신을 차리길 바랐지만 소용이 없었다.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던 그가 한 발짝 나섰을 때야 그가 틈새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 돼! 안 돼요!”
그의 허리를 붙잡고 최대한 막아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등급에 따른 스펙이 너무나도 차이가 나니 막아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를 막기 위해서 신성력을 끌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으윽……!”
마기가 깃든 몸에 신성력이 닿자 치익, 하며 무언가에 달궈지는 소리와 함께 도지완이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신성력을 거두었다.
“나, 난…….”
이 사람에게 고통을 줄 수 없었다. 아니, 고통스럽게 하기가 싫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망연자실해진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틈새 앞이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기에 몇 발짝만으로 다다른 것이었다.
틈새에 다다른 도지완은 내가 얼기설기 엮어 놓은 신성력을 북! 뜯어냈다. 신성력에 손이 타들어 가는 데도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를 끌어안아 막으면서 애원했다.
“안 돼요, 도지완 씨. 제발요! 형님!”
그런 우리에게 연호진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마기에게 밀쳐졌을 때 조금 다친 것 같았다. 투구는 깨진 건지 벗은 건지 그의 얼굴이 그대로 보였다.
나는 그에게 도와달라는 듯이 눈빛을 보냈지만, 연호진은 무감정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다가 들고 있는 창을 높이 들었다.
“무슨 짓이에요!”
그 행동에 내가 크게 화를 내면서 도지완을 지키기 위해 꽉 끌어안았다. 하지만 연호진은 여전히 창끝을 그에게 겨누고 있었다.
“늦었습니다.”
“아니에요.”
“그는 이미 마기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가 마왕이 되기 전에 죽여야 합니다.”
“아니라니까!”
이성은 연호진의 말에 동의했지만, 감정은 동의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정말 이대로 끝인 걸까?
도지완의 몸을 끌어안은 채 고민해 봤지만 별수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그가 죽기를 바라진 않았다.
눈물이 흐르는 걸 참기 힘들어 울고 있으니, 연호진은 다정하게도 내가 마음을 다잡을 때까지 기다려 주려는 것 같았다.
‘내가 해야 할 일.’
도지완이 마왕이 되는 걸 막는 것, 세상이 망하지 않게 막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
도지완이 행복해졌으면. 그리고 그가 죽지 않았으면.
‘……여행 가자고 약속했는데.’
아무래도 그 약속은 지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애써 웃어 보이면서 끌어안은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아직도 흐릿한 시선을 한 도지완의 얼굴을 보자 다시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겨우겨우 참아 내면서 그에게 속삭였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테니.”
“…….”
“죽지 마세요?”
말을 마친 내가 살포시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내 모든 신성력을 그에게 쏟아부었다. 신지호의 몸을 유지할 만한 신성력 한 톨도 남겨 놓지 않은 채 말이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