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뭐야? 왜 저래?’
인터폰 화면 너머로 보이는 윤채우의 얼굴은 엄청나게 일그러져 있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저러나 하며 문을 열자 윤채우가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이봐욧!”
“아, 깜짝이야. 왜 그래요?”
“진짜 제정신이에요?”
“아니…… 뭐가요?”
이해할 수 없어서 되묻자 윤채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그의 기분을 나타냈다. 여전히 그가 화내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하자 윤채우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
“집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저런 집에서 어떻게 살아!”
하…… 참 나 어이가 없었다. 윤채우가 곱게 자란 도련님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멀쩡한 집에 아무것도 없다니.
나는 어이가 없어 그를 흘겨보고선 내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벌컥 연 나는 안을 쓱 둘러본 다음에 그에게 항의하듯 말했다.
“아무것도 없다니요! 여기 있을 거 다 있잖아요.”
나는 정말 억울했다. 처음 도지완을 따라다닐 때보다 내 집에는 더욱 물건이 채워져 있었다. 물론 조금 휑하긴 했지만 미니멀리즘이라고 보면 딱 알맞았다.
‘있을 것만 있고 필요 없는 건 없지.’
일단…… 삶에 필요한 전자 제품인 냉장고, 인덕션, 전자레인지와 세탁기가 있었다. 전에 내가 살 때는 냉장고랑 전자레인지만 있었는데, 이곳을 콩설이의 놀이터로 쓰게 되면서 시터 형의 끼니 해결을 위해 인덕션을 구비해 놓았다. 마찬가지로 세탁기는 혹시라도 콩설이가 옷에 실례를 해 급하게 세탁이 필요할 때를 위해서 구비해 놓았다.
내 자신만만한 설명을 들은 윤채우는 자신의 떼 쓰기가 안 먹힌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겨우겨우 내놓는다는 질문이 이거였다.
“……잠은. 침대는 어디 있는데요? 잠은 어디서 자라고요.”
나는 그의 대답에 자신만만하게 거실을 가로질러 걸어가 벽 한편에 하나 놓여 있는 장롱으로 향했다.
이 한 칸짜리 장롱도 내가 도지완을 따라다닐 때는 없었던 것으로, 나중에 구매한 것이었다.
자신만만하게 장롱 문을 열자 아래 칸에는 이불이 담겨 있는 수납공간이 있었고, 위에는 옷을 걸 수 있는 옷걸이가 있었다.
이불을 가리키며 말없이 윤채우를 바라보자, 그는 이불이 있는 것도 알아보지 않은 자신의 성급함에 후회하는지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소파는요? 쉴 때 바닥에 엎어져서 쉬라는 건 아니죠?”
“저기 빈백 있잖아요.”
저것도 혹시나 시터 형이 쉴 때 불편할까 싶어 놓은 물건이었다. 윤채우는 내가 마련해 놓은, 있을 것만 있는 미니멀리즘 거실에 압도되었는지 더 이상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편히 쉴 수 있겠지, 하고 만족하고 있을 때 그가 나에게 물었다.
“……필요한 물건은 제가 여기 구비해 놔도 되는 거죠?”
결국 투정은 그만두기로 했나 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윤채우는 뭔가 지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또라이 어쩌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가 떼 쓴 걸로 내가 자신을 또라이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내 내면에서 그의 이미지는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었기에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씩 웃어 줬다. 하지만 윤채우는 한숨을 쉬며 내 시선을 피했다.
* * *
“실패…… 이번에도 실패라…….”
1사도는 그들이 몰래 진행했던 일들이 실패했다 말하는 3사도의 소리에 눈을 감았다.
당연히 실패할 리가 없을 거라 생각한 일이었기에 1사도의 충격은 너무나도 컸다.
개인 사재를 쏟아붇고 교단의 사도도 두 명이나 보냈다. 차원 너머를 엿볼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지닌 주술사에게 교단의 보물이나 다름없는 신의 신체 일부까지 몰래 반출하여 빌려줬다.
“그럼에도 실패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그들 사이에 내려오는 예언대로라면 이미 지완은 마왕이 되고도 남았어야 했으니까.
충격에 말을 잊은 1사도의 머리에 13사도인 윤채우의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그녀의 계획이 잘못된 거 같다고 말하던 그 당돌한 목소리가 말이다.
‘정말 내가 세운 계획이 잘못된 걸까?’
거듭되는 실패가 그녀의 자신감을 앗아 갔다. 처음 두 번이야 운이 안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세 번째까지 실패했으니 자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들린 채우의 소식은 그녀를 더욱 압박했다. 실패하는 자신과 달리 지완의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리에 정말로 채우의 말이 맞는 건가 싶었다.
물론 채우도 완벽히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실을 1사도에게는 숨긴 탓에 그녀는 당연히 계획대로 다 잘되었을 거라고 여겼다.
이러다간 제 자리가 위협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든 1사도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되짚어 보았다.
‘……자꾸 걸린단 말이야. D급 헌터가.’
계획이 실패한 자리에 항상 지호가 있는 것이 거슬렸다. 하지만 D급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용했다.
가시지 않는 찝찝함에 1사도는 헌터 협회에 심어 둔 교인을 불러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아프리카에서 이뤄진 일의 실패가 현실 때문인지 던전 때문인지 아무래도 따져 봐야 할 것 같았다.
교인은 부르자마자 바로 튀어 왔다. 그에겐 하늘 같은 1사도가 자신을 불렀다는 것이 퍽 감격스러운지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고선 머리를 조아렸다.
“신림 던전에서 일어났던 일을 자세하게 알고 싶어요.”
“여기…… 복사본을 가져왔습니다.”
교인이 던전 공략의 일지가 담긴 USB를 공손하게 전했다.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은 이따가 하기로 하고 1사도는 교인에게 물었다.
“공략 마지막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는 던전 공략에 참여하지 못했던 직원이었기에 실제로 겪은 일은 전혀 없었다. 전부 보고서로 확인하거나 귀로 들은 것이 다였으나, 혹여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모든 일지를 달달 외워 온 상태였다. 그에 교인은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예정일을 며칠 앞둔 그날, 공략은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호진이 이끄는 공격대에서 문제가 생겼고, 결국 그 문제로 모두가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그중에서 단 두 명만이 베이스캠프로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보고서를 확인하면 아시겠지만 공대장인 연호진과, 그 팀의 서포트 중 하나였던 D급 헌터 하나입니다.”
1사도는 흠칫했다. 또 D급이 여기서 나온다고? 하지만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기에 자신이 괜히 민감하게 반응한 거라고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 후에 그 둘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분……께서 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교인이 말하는 그분은 지완일 터였다. 그리고 애초에 고등급 헌터인 그와 관련이 있을 만한 D급 헌터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또 그자인가…….’
1사도는 이번에도 지호가 이 일에 끼어 있다는걸 알게 되자 이에 이물질이 낀 것처럼 불쾌하고 신경이 쓰였다.
가까스로 얼굴 표정을 갈무리한 1사도가 태연한 척하며 교인에게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그곳에 있었던 사람은 세 명뿐이라 모든 이야기는 연호진의 보고만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래요.”
“그곳에 남은 셋은 이상한 힘에 둘러싸인 몬스터들에게 공격받았고, 끝내는 불길하고 이상한 존재까지 나타나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셋 다 이길 수 없어 죽음을 각오한 그때 그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말을 하던 교인이 머뭇거리자 의아해하며 기다린 1사도는 이어지는 말에 입을 벌렸다.
“천사라고요?”
“네. 연호진의 말로는 천사라고밖에 설명하기 힘든 외형을 지닌 존재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불길한 존재를 데리고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 후 갑자기 던전이 클리어되며 모두가 추방당했다 하였다. 교인의 보고를 들은 1사도는 그를 돌려보냈다.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천사라니…….’
그 저주스러운 생물이 등장했다고? 1사도는 초조해져 손톱을 물어뜯었다.
“설마…… 놈들이 이 땅에 강림하려는 건 아니겠지?”
초조함에 입 밖으로 내었다가 곧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거짓된 신을 모시는 천사들은 자신의 종족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놈들이 이 땅에 강림할 수 있는 것은 곧 신성을 잃는 일.’
신성을 잃으면 더 이상 천사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외형이야 저주스러운 그 모습 그대로겠지만 신성을 잃는다는 것은 더 이상 천계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또한 불멸의 상실을 뜻했다.
그렇기에 천사는 절대 이 땅 위로 내려오지 못했다. 내려오는 순간 자신이 자부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니 말이다.
‘아마 생각했던 것보다 차원의 틈새가 넓어져 따라오게 된 것이겠지.’
1사도는 그렇게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을 억눌렀다.
그리고 며칠 뒤 아프리카에서 3사도가 돌아오자 그에게 신의 신체를 돌려받으며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기에 실패한 것인지를 물었다.
3사도의 설명은 교인의 설명과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었다.
“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만, 갑자기 주술사가 절명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주술사가 죽기 전 천사를 언급했다는 말에 인상을 쓰는 1사도를 보며 3사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설마 놈들이 이 땅에 강림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놈들이 신성을 버릴 리가 없어요.”
그렇게 말했으나 자신은 없는 듯했다. 상심한 1사도를 보며 3사도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글쎄요.”
자신을 바라보는 3사도의 시선을 피하며 1사도는 생각했다. 당돌하게 굴어 재수 없긴 했지만, 채우의 일이라도 잘 풀려 틈을 노릴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 * *
오늘은 협회에 일이 있어서 도지완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윤채우가 따라오지 않을까 했는데, 가는 장소가 협회라는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준 덕분에 우리 둘만 가게 되었다.
‘윤채우는 아무래도 그냥 스토커가 맞는 거 같아.’
그가 마왕의 추종자였다면 이미 무슨 일을 벌이고도 충분한 시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윤채우는 내 집에 제 물건을 채우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매일매일 내 집에는 가구가 들어가거나 택배가 들락날락하는 게 다였다.
‘만약 내가 마왕의 추종자였으면 내 집을 이용해서 다른 추종자들을 끌어들였을 텐데…….’
윤채우가 끌어들이는 것은 택배 기사뿐이었다. 나는 윤채우의 정체를 위험할지도 모르는 사람에서 이상한 택배 광인으로 조정했다.
헌터 협회에 도착한 우리는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만날 사람은 협회장이었고 이미 약속은 잡아 두었으니, 안내 데스크에 들러 협회장에게 연락을 해 달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엘리베이터 앞에는 누군가가 먼저 서 있었다.
‘어라…….’
상대는 내 또래의 여성이었다. 그런데 조금 연약해 보인달까, 병약해 보인달까. 피부가 하얀 건지도 모르지만 딱 봤을 때 안색이 창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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