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마왕의 추종자들이 오랜 시간 잡히지 않은 것은 놈들의 거처가 미발견된 던전이었기에 아무도 그들이 그런 곳에 있을지 몰라 그랬다. 대대적으로 뉴스로 보도되었기에 그 장소는 호진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미래를 먼저 겪은 덕분에 이번 시간에서는 놈들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외근 다녀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세요.”
동료에게 짧게 인사한 호진은 혼자서 놈들을 잡으러 향했다.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은 등급이 대부분 고만고만했기에 신성력을 쓰는 자신을 이길 수가 없었다. 또한 신성력을 쓰려면 목격자가 적은 것이 좋았다.
그는 상념을 털어 내며 자동차에 올라탔다. 이렇게 일하는 동안은 지완에 대한 감정을 잊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 *
헌터 협회에 다녀오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TV를 보던 나는 익숙한 얼굴을 뉴스에서 보게 되었다.
“연호진 씨잖아?”
커다랗게 ‘변종 각성제 불법 유통자들 검거’라고 적혀 있는 자막과 함께 수갑을 찬 이들을 연호진이 끌고 가는 것이 화면에 보였다.
콩설이를 끌어안은 채 거실 소파에 앉자 마찬가지로 TV를 보던 도지완이 리모컨으로 소리를 키웠다.
[……일당이 만든 변종 각성제는 지난 5월 클럽 난동 사건을 일으켰던 최 모 씨가 복용하며 알음알음 이름이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진지한 얼굴의 앵커가 조그만 팩을 장갑 낀 손으로 들어 보였다.
[이만한 분량만 해도 50명은 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이들은 미등록된 던전을 아지트 삼아…….]
뉴스에서는 놈들이 어떻게 잡히지 않았는지 등을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바치고 있었다. 모방 범죄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 소식이었지만, 사실 앵커의 설명처럼 간단한 게 아니었다.
“저런 걸로 만들지 말고 그냥 마석을 파는 게 좋았을 거 같은데…….”
“하지만 마석은 추적이 들어가니까. 한두 개라면 몰라도 여러 개면 힘들지.”
도지완이 말한 대로 마석은 취급 주의 물품이었다. 염산이나 황산을 일반인에게 팔지 않듯이, 일반인 중에는 마석의 실물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커피든 뭐든 각성 물질이 있는 건 찾기 쉬웠지만 마석은 일반인이 구하기 힘들었으니,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따라 하기 어려웠다.
앵커가 열심히 설명을 한 뒤 연호진이 나와서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왔다. 어떻게 놈들이 미등록 던전을 아지트 삼고 있는지 알았냐고 묻는 앵커에게 연호진은 간단하게 말했다.
[제보가 있었습니다.]
흐음. 미래에서도 있던 일인 듯했다. 곧 다른 소식으로 뉴스가 진행이 되었고 우리는 관심을 잃었다.
“얼른 준비해. 나가자.”
“넹.”
오늘은 콩설이를 데리고 반려견 놀이터에 가는 날이었다. 매일 자길 두고 나가던 형들이 오늘은 자신을 데려갈 것 같자 콩설이는 엄청나게 흥분했다.
“왕!”
“우리 콩설이, 좋아? 아유 이뻐!”
목줄을 한 콩설이를 끌어안고 까만 코 위에 입을 맞추면서 도지완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가려는 놀이터는 집에서 그리 멀진 않았으나, 그래도 걸어가긴 좀 애매한 거리라 차를 탔다. 오랜만에 도지완이 운전하는 차였다.
“윤채우 씨는 안 온대요?”
나는 윤채우의 부재로 인한 기쁨을 숨기면서 도지완에게 물었다. 그가 나오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확인차 묻는 거였다.
“콩설이랑 나간다는데 나오겠어? 절대 안 간다고 하더군.”
“흐음…….”
나는 속으로 웃었다. 윤채우가 콩설이에게 학을 떼는 건 이유가 있었다.
그가 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졸지에 놀이터를 빼앗긴 콩설이가 윤채우를 적대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숭 떨며 잘 지내보려고 했던 그였지만, 콩설이의 거듭된 도둑놈 취급에 결국 윤채우도 손을 들었다. 덕분에 오늘은 그 없이 우리들만 외출할 수 있었다.
한 20분쯤 운전해 놀이터에 도착하자 나는 콩설이의 목줄을 풀었다. 그게 마치 출발 스위치라도 된 것인지 풀리는 동시에 번개처럼 앞으로 튀어나가는 콩설이였다.
“와, 눈으로 좇기도 힘드네.”
진짜 번개와도 같았다. 뭐지? 로켓인가? 쌩하고 왔다가 쌩하고 사라지는 걸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혹시 콩설이도 헌터 각성한 거 아닐까요? 어떻게 저렇게 빠르지?”
“그러게…….”
우리는 벤치에 앉아 멍하니 콩설이가 놀이터를 누비는 것을 보았다. 오늘은 방문한 사람이 적은지 강아지들도 뜨문뜨문 있었다.
놀이터를 누빌 대로 누빈 콩설이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둘이 뭐 해?’ 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면서 말이다.
간식과 물을 주자 또다시 신나서 달려나가는 콩설이였다. 저렇게 즐겁게 뛰어다니는 걸 보니 집이 많이 답답했나 싶어서 조금 마음이 그랬다.
“왕! 와앙!”
그때 콩설이의 주위로 리트리버가 다가갔다. 경계한 콩설이가 짖어 대자 리트리버가 자신은 무해하다는 듯 몸을 엎드리는 것이 보였다.
내가 콩설이에게 다급하게 다가가니 리트리버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 둘이 이쪽으로 가까이 왔다.
“아, 죄송해요. 우리 애가 쪼그만 애들을 보면 너무 좋아하고 놀고 싶어 해서요.”
미안해하는 리트리버 주인이었다. 리트리버가 콩설이 눈치를 보며 낑낑거리자 콩설이도 경계를 풀고 다가가 코를 킁킁거렸다. 콩설이 몸만 한 리트리버의 꼬리가 기쁨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마음을 놓은 내가 상대방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려고 하는 순간, 리트리버 주인 중 한 명이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헉! 당신은?”
“어……?”
“연호진 팬!”
“아닙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큰일이 날 소리를……. 나는 다급하게 도지완의 눈치를 보았다. 혹시나 또 연호진과 엮여 기분 나빠 할까 봐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도지완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둘만 있을 때 괴롭힐 거 같아서 두려워졌다.
“꺅! 지완 오빠!”
내가 고개를 돌리자 반사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본 연호진의 여동생은 도지완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급기야 눈으로 하트를 쏘더니 곧 사과를 했다.
“저번엔 정말 죄송했어요. 우리 집 바보 때문에…….”
“아닙니다.”
도지완이 그녀의 사과에 대답하자 여동생의 눈이 몽롱하게 변했다. 목소리도 좋단다…….
난 또 빈정이 상하기 시작했지만 꾹 참았다. 어쨌든 성질을 부리면 나중에 다 되돌려 받을 걸 알기 때문이었다.
여동생은 도지완에게 사진을 같이 찍어 달라고 하기도 하고 사인도 부탁했다. 도지완은 거절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다 해 주었다.
“이게…… 지완 오빠의 사인……!”
여동생은 감격에 빠져 가보로 삼을 거라고 말하며 방방 뛰었다. 몇몇 없던 놀이터의 사람이 그 소란에 주춤주춤 다가오더니 그들도 도지완을 알아보고는 사인과 사진을 요구했다.
사실 알아보기는 진작에 알아본 것 같은데 과연 말을 걸어도 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놀이터에서 본의 아니게 사인회를 열다가 조금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혹시 점심 같이 하지 않으실래요?”
“강아지 함께 출입 가능한 식당을 알고 있거든요.”
“거기 굉장히 맛있어요!”
여동생과 리트리버의 주인인 친구가 우리에게 물었다. 게다가 자신이 사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여동생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지만 자꾸 도지완과 엮이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건 내 감정일 뿐이고, 도지완은 좀 더 여러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을 테니 꾹 참고 있었다. 그런데 도지완이 내 손을 붙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합니다. 선약이 있어서요. 그 식당은 다음에 갈 수 있으면 가도록 하죠.”
그러면서 내 손을 붙잡아 왔다. 여동생과 그 친구는 거절을 당했음에도 좋은지 얼굴을 붉히더니 다음에 꼭 보자며 인사하고 사라졌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그가 내 기분을 우선했다는 걸 생각하자 입꼬리가 삐죽삐죽 올라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랬어요. 밥도 사 주겠다는데.”
헤실헤실 웃음이 나오는 얼굴과 달리 입에서 나온 것은 타박이었다. 내 얼굴을 보며 픽 웃은 도지완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린애들한테 얻어먹어서야 쓰나.”
“후응.”
“콩설이 데리고 빨리 가자. 배고파.”
“네.”
큰 친구가 사라지자 아쉬워하는 콩설이를 다시 안고 우리는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열심히 뛰어다니느라 지쳤는지 나에게 몸을 기대 눈을 감고 있는 콩설이를 쓰다듬던 나는 이상하게 몽실몽실 부푼 가슴을 내리누르며 고개를 창으로 돌렸다.
그러나 눈은 창밖을 보는 것이 아닌 창에 흐릿하게 비친 도지완을 몰래 훔쳐봤다.
내가 훔쳐보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운전 중인 도지완이 오늘따라 멋져 보였다.
* * *
지완과 지호 두 사람과 헤어진 수희는 친구와 함께 식당으로 향하며 대화를 나눴다.
“아…… 너무 멋있어. 안 그래?”
“진짜 그렇더라. 연예인도 아닌데 네가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
친구의 말에 수희는 씩 웃었다. 그녀는 지금은 괜찮지만 예전에는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건강하고 싶다는 열망에 처음엔 스포츠 선수들을 좋아했고, 헌터가 나타나자 헌터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강하다는 도지완을 좋아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녀의 오빠인 호진이 가장 강하다지만 곁에서 오래 봐서 그런지 그녀의 입장에서 호진은 그저 호진이었다.
“너희 오빠도 엄청 잘생겼는데 저 사람도 되게 잘생겼어. 둘이 같이 있어도 안 꿀릴 거 같던데?”
“에엑? 연호진이 뭐가 잘생겨. 그냥 눈·코·입 달린 수준이구먼…….”
친구의 말에 기겁하는 모습이 딱 현실 남매였다. 수희의 반응을 보고 친구는 혀를 찼다.
“그 얼굴이 뭐가 잘생겼냐니, 하여간 눈은 높아서. 나는 네가 그렇게 눈이 높아 시집이나 가겠나 싶었는데, 그래도 세상은 넓고 미남은 많구나. 걱정 하나 덜었다.”
“에이…… 뭐야. 난 지완 오빠를 좋아하지만 연애 감정 같은 건 가진 적 없어.”
그냥 순수한 동경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런 쪽으로 호감이 도는 상대는 따로 있었다.
‘……신지호라고 했나.’
솔직히 말해 지호는 만날 때마다 자신에게 퉁명스럽고 친절하진 않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아파 오며 자신에게 항상 친절하고 그녀의 기분을 헤아리는 사람만 봐 왔던 수희는 지호같이 톡톡 튀는 성격이 좋았다.
아픈 그녀 앞에서 농담 하나 건네는 것도 상처받을까 전전긍긍하는 것보다는, 조금 짓궂게 심술부리면서 장난치는 게 더 좋았다.
‘으음, 하지만 역시 그쪽은 품절된 거 같단 말이지?’
지호가 지완을 바라볼 때와 지완이 지호를 바라볼 때 서로의 눈에서 애정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제 취향에 맞는 사람이 나타난 건 기꺼웠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에 낀 이물질이 되기는 싫었다.
‘다음에 만나면 친구 하자고 해야겠어.’
연인이 안 된다면 친구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느새 식당에 도착한 둘은 맛있게 밥을 먹고 후식으로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늘 찍었던 사진들을 구경했다.
“음. 역시 이런 건 인스타에 자랑해야지.”
지완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수희는 히죽 웃었다. 자신을 과보호하는 오빠가 이걸 보고 어떤 반응을 할지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그러게 빨리빨리 소개시켜 줄 것이지. 다 아는 사이 같던데 왜 소개를 안 해 준 거야.’
가끔 호진의 보호는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었다. 소중한 여동생에게 남자가 꼬이는 게 싫어서 소개를 안 해 준다기엔 다른 남자들이 접근할 때는 별 반응이 없었으니까.
‘그냥 내가 좋아하니 방해하고 싶었던 건가?’
그 생각이 들어 입을 삐죽 내민 수희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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