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다가 졸릴 수도 있는 다섯 개의 검 수용소 편
삐쩍 메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활 소리를 내며 매섭게 불어 젖혔다.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산기슭에는 광물을 캐던 흉물스러운 잔해들이 대개가 수거되지 못한 채로 듬성듬성 매몰되어 있었다. 좌측으로 올라서는 비탈길에는 잔뜩 녹이 슨 고물들과 함께 어딘가 사람의 뼈로 보이는 것들도 함께 매장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날씨에 사람들마저 접근을 꺼려하는 장소에서 저런 것을 보게 되자 음산한 기운이 더해졌다.
추측컨대 내가 방금 전 보았던 저 뼈는 아마도 수용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틀림없이 어느 누군가가 이곳까지 찾아와서 남 몰래 버리고 간 것이었다. 수용소 측에서는 구태여 사람 뼈를 바깥에 내다 버리지 않아도 내부에서 시체를 태우는 자체적인 소각 시설이 구비되어 있을 테니까.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서 어쩌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영혼을 위해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명복을 빌어주었다.
산중턱을 오르자 칼바람이 두 뺨을 날카롭게 베고 지나갔다. 날씨 한번 살인적이었다. 날 얼려 죽일 셈인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피코트의 앞자락을 다시 한 번 꽁꽁 여미었다. 재작년에 군용품으로 보급된 것을 얻어 입은 것이라 천이 두껍고 방한성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코트 깃을 목까지 세워 바람을 마저 차단하려던 와중에 그만 목 부위에 달려 있던 단추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아까 궁에서 나서기 전 숙소에 들러 코트를 걸칠 때 이미 실이 해지게 달려 있길래 어딘지 불안불안하더니만 결국엔 떨어져버린 것이다. 허리를 굽혀서 바닥으로 손을 뻗는데, 글쎄, 아까 오조 녀석이 내 손등에 그려놓은 조그마한 인간이 뭔가 비웃는 듯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도 이런 얼굴이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 좀 더 단순한 생김새였던 것 같은데.
왠지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냥 무시하고서 다시 단추를 주우려는데 순간 손이 멈칫하고 떨려왔다. 귓가를 짓이기듯 울려 퍼지는 섬뜩한 비명 소리에 나는 단추를 줍다 말고 고개를 찬찬히 들어서 소리가 난 쪽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멀리 떨어진 굴뚝 파이프에서 때마침 무언가를 태우는 시커먼 연기가 역한 냄새를 풍기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섯 개의 검 수용소.
포타라카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이 다섯 개의 검 수용소는 오행산이라고 불리는 대리석 광산을 깎아서 만들어낸 천연의 형옥이었다. 오행산은 오성인 목, 화, 토, 금, 수의 성정과 형세를 가진 다섯 개의 산봉우리들을 모두 지니고 있는 산을 의미했다.
특히나 이곳은 여타 오행산들 중에서도 산세와 형상의 어우러짐 자체가 오성취강격五星聚講格이라고 불릴 만큼, 풍수적으로도 아주 뛰어난 길격을 취하고 있는 명당 자리였다. 흔히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냐고 말하지만 정말로 그런 씨를 배출해내는 명당 자리가 바로 이곳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예로부터 이곳에는 산의 정기를 받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삿된 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고 전해졌다.
허나 지나치게 좋은 것은 사실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닌 법이었다. 게다가 유명세를 타게 되면 그중 대다수의 소문들은 원래의 크기에 비해서 뻥튀겨지거나 근거 없는 헛소문인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어떤 소경이 산에 올라 기도를 드리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였다거나, 처녀가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러 산을 오르던 중 애를 뱄다는 둥, 그런 터무니없는 풍문들까지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가장 압권인 것은 이 오행산의 정기를 맨 몸으로 직접 받으면 발기 부전이나 조루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유언비어였다.
어디서 그런 무근지설이 나왔는지 덤으로 성기가 커지는 효과를 봤다는 말까지 곁들여졌다.
그래서 한때는 저녁에 산을 오르면 웬 멀쩡하게 생긴 사내놈들이 엉덩이를 내민 채 바닥에 바짝 엎드려서는 자기 거시기를 땅속에 파묻고 있는 진풍경을 엿볼 수가 있었다나.
그러나 정력을 되찾기는 고사하고 저녁만 되면 기온이 한없이 떨어지는 산속에서 밤새 추위에 끙끙거리다가, 결국엔 감기몸살을 얻어서 코를 훌쩍거리며 산을 내려갔다고들 한다. 실은 야참 먹으러 밤에 마실 나온 뱀에게 물려 죽는 놈들이 부지기수였다고.
십여 년 환영제야단의 창시자이신 석가여래께서 집권하셨던 시절에도 이 산은 여전히 뜬소문의 온상지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불교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인 해탈, 즉 깨달음을 얻고 싶어했지만, 자신이 가진 것들 중 어느 하나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내려놓으려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오행산의 신성한 기운을 빌리고 싶어했고, 언제부터인가 지루한 참선이나 고된 수행을 겪지 않고도 손쉽게 깨달음을 접할 수 있다는 불법적인 주술 행위가 이 산 안에서 빈번하게 벌어졌다.
그렇게 남녀의 성교를 통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는 탄트라 수행법이나 금지된 비술 등에 점점 눈을 돌려가는 수행자들이 늘어나자 마침내 석가여래로부터 극단의 조치가 떨어졌다.
바로 오행산 다섯 개의 봉우리 위에 아주 특수하게 제작된 검들이 꽂힌 것이다.
상극의 이치에 따라 목산 위에는 금의 검을, 화산 위에는 수의 검을, 토산 위에는 목의 검을, 금산 위에는 화의 검을, 수산 위에는 토의 검을 관통시켜 각각 산의 정기와 맥을 완전히 끊어버리도록 만들었다.
검에 의해 힘이 봉인되어버린 산은 다시는 그 기운을 분출하지 못하게 됐고 결국 이제는 죄수들을 수감하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장소는 오행산이라는 이름보다 다섯 개의 검 수용소라고 불리는 일들이 더 잦았다.
산을 관통시켜 만들어낸 입구에 도착하자 수용소의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그 앞에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개의 검 수용소 직원치곤 왜소한 체구에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내였다. 그런데 얼굴이 왜…….
잠시 서로 합장을 하고서 별말도 없이 수용소 안쪽으로 나를 인도하는 남자를 뒤따랐다. 나를 제일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빛이 거의 들지 않는 긴 일직선의 통로였다.
비교적 구형 모델인 신분 인증 기계에 손목을 가져다댔더니 자수정이 박힌 보라색 인증석을 통해 내 개인 정보를 빨아들이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흠. 보통은 귀찮게 인증석 따위 확인받지 않아도 종단의 제복 내지는 가슴팍에 박혀 있는 배지 정도만 내세워도 그 어디든 무사 통과였는데 말이다. 과연 철통같은 보안이라더니 이딴 구닥다리 짓거리나 하고 앉아 있었다.
딱히 내가 거드름을 피우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제 막 법사 칭호를 달고서 권력의 단맛을 본 지가 만 일년째라서 그렇다. 아무러면 뭐 때문에 내가 그 개고생을 해가며 허구한 날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겠는가.
세상 사는 이치가 원래 다 그런 법이다.
어쨌거나 본격적인 지하 수용소로 내려가기까지의 여정은 꽤 멀고도 지루했다.
중간에 몇 차례나 사람이 직접 하는 신분 검사를 받아가며 아래서 위로 솟아오르는 수십 개의 날카로운 철창살을 통과해야 했으니 말이다. 기실 내 신분 검사를 이렇게나 철두철미하게 할 필요가 없음에도, 별별 까다로운 질문을 다 해대는 걸 보니 아마도 오늘 이 방문 자체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수용소 측의 작은 심술인 것 같았다.
무의미한 공방 끝에 낡은 승강기 앞에 도착하자, 옆에서 내내 침묵하던 남자가 나에게 귀마개와 안전장치를 건네주며 착용하라고 권했다. 번거로운 것은 딱 질색이었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묵직해 보이는 보호구들을 다시 돌려주려고 들자 남자가 단호하게 굴었다.
“몸에 걸치는 이 안전장치들은 저도 평상시엔 잘 착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법사님께서 오늘 방문하실 곳은 수용소의 최하층인 지하 5층인 걸 부디 명심해주십시오.”
남자의 왼쪽 입가는 귀 부근까지 흉하게 찢어져서 굵은 실로 꿰매놓은 흔적이 있었다. 그 부근으로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며 나는 대답했다.
“별로 상관없습니다.”
“크게 후회하실 텐데요.”
“후회를 해도 그건 제가 할 테니 신경 꺼주십시오.”
“그럼 귀마개라도 착용하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 얘긴 이제 됐으니까 제가 손우경이라는 죄수를 어떤 식으로 인계받아야 할지나 알려주십시오.”
남자는 느슨하던 팔짱을 고쳐 끼며 대뜸 기가 차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 보니 양쪽 손이 전부 의수였다.
“저는 관음존자께서 지금 무슨 생각이신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군요. 변덕이 심한 분인 건 알았지만 언제는 탈옥하지 못하게 각별히 신경 써서 잘 지키라더니 이게 무슨……. 어쨌든 지하 5층은 매일같이 별별 꼴을 다 보고 지내는 여기 직원들 사이에서도 어지간하면 접근하기를 꺼려하는 장소입니다. 수용소 내에서도 특수하게 통제되는 구역이구요. 우리가 위에서 전달받은 사항이라곤 오늘 삼장법사님 당신이 와서 죄수 1번을 알아서 데려갈 거라는 짧은 지령이 전부였습니다. 어떤 식으로 인계받아야 하냐구요? 반대로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자를 당신에게 아무 탈 없이 무사하게 인계할 수 있을까요?”
그쪽도 모르겠는 관음존자의 생각을 난들 알겠냐. 확실한 건 얘네도 아돌프에게는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는 듯해 보였다. 여하튼 수용소 측에서도 손우경을 넘겨줄 수 있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라. 그럼 어쩌지.
물론 관음존자가 손우경을 ‘제어할 방식’에 대해 미리 일러주긴 했었으나 지금 그거 하나 믿고서 무작정 돌진하기에는 어쩐지 뒤딸려 올 위험 부담이 상당한 듯했다. 내가 가자고 한들 그쪽에서 순한 양처럼 얌전하게 따라올 것 같지도 않고. 마음 한구석이 돌덩어리가 얹힌 듯 묵직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당장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문제라면 일단은 생각부터 그만둬야겠다. 고민은 아무리 해봤자 쓸데없는 걱정거리만 늘어나는 법이고, 그럴 때에는 생각에 잠겨 있기보단 행동으로 먼저 부딪치는 게 제일이니까 말이다.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언제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이었다. 나는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서 당면 과제이자 목적의 달성만을 상기하려 했다.
그럼에도 혼탁해진 마음이 잘 비워지지 않을 때면, 나는 임시방편으로 관음존자의 그 무자비한 얼굴을 떠올리며 억지로 불굴의 의지력을 만들어내곤 했다실제로도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님을 마음속에 관상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는 본존 수행 명상법이 있다. 반나절 동안 명상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 즉각적인 효과가 있었다. 단 한 가지 부작용이 있다면 사람이 너무 물불을 안 가리게 되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럼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남자가 승강기의 버튼을 짓누르며 주의를 주듯 뇌까렸다.
“5층부터는 법사님 혼자서 들어가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전 4층에서 먼저 내릴 거니까요.”
“…….”
“1번 그 녀석이랑은 잠시라도 같은 공간 내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습니다. 양쪽 손목을 모두 가져간 걸로도 부족한지 제 얼굴 가죽까지 벗기려 했던 놈이니까요. 게다가 제가 안내해드릴 구조랄 것도 없습니다. 현재 지하 5층에는 딱 1번 혼자만이 수감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법사님의 행적은 관제실에서 감시 카메라들을 통해 계속 지켜볼 예정이니 일을 끝마치신 후엔 지금 들어오셨던 통로 그대로 다시 빠져나오시면 됩니다. 물론…… 무사히 나가실 수 있다면 말이지요.”
애먼 송장 하나 치우겠군, 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남자가 주머니에서 아까 내게 내민 것보다 좀 더 튼튼해 보이는 귀마개를 꺼내 자신의 양쪽 귀에 꽂아 넣었다. 뭔가 불길하다고 느낀 찰나에 알록달록한 불화가 새겨진 승강기 문이 눈앞에서 절반으로 쩍 쪼개졌다.
그와 동시에 지옥의 권좌에 앉아 죄인을 심판한다는 염라대왕 얼굴이 단독으로 그려진 현왕도의 그림이 좌우로 갈라져버렸다. 문득 출발하기 전에 파오와 농담 삼아 나눴던 지옥 얘기가 떠올랐다. 놈이 내게 사이좋게 저승열차나 타자는 식으로 웃었지만 그쪽이야말로 아직 이승 세계에 미련이 많은 것이 자명했다. 나는 겉으로 티 나지 않게 어금니를 지그시 악물며 결의를 다졌다.
나 역시 아직까지는 염라 당신과 직접 독대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승강기 안쪽으로 몸을 들이고 바로 등 뒤에서 문이 쾅 닫히자,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제 발로 염라대왕의 품속에 기어 들어온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승강기의 내부는 작은 방 하나를 통째로 옮겨다놨음직한 쾌적한 크기였으나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은 그리 산뜻하지가 못했다. 차마 내 입에 담기가 저어되는 역겨운 장면들이 속출하는 것은 물론, 실제로 염라대왕의 관할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주 훌륭한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특히 이 승강기는 아래로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옆을 향해서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특수 강화 유리로 제작된 듯한 이 투명한 내부는 지하 세계의 어둡고 음울한 단면들을 빠짐없이 전달해주고 있었다.
게다가 땅속을 깊숙하게 뚫은 장소라지만 지금 내 눈에 비치고 있는 이 비현실적인 공간은 이곳이 과연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추악한 생각인지를 여실하게 증명해주고 있었다.
아직 지하 1층임에도 그 크기 자체가 마치 하나의 세상을 옮겨다놓은 듯 광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원래의 공간 속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서 또 다른 공간을 감쪽같이 이어붙이는 기술이야말로 관음존자의 전매특허였다. 수정궁 내부에 존재하는 바벨의 도서관도 그랬지만, 티뷸라 궁 황금 사원 내에서도 간혹 가다 어느 외진 곳의 방문을 열거나 하면 웬 뚱딴지같은 장소가 에헴 시치미를 뗀 채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실수로 문을 잘못 열었다가 하얀 긴 의자에 앉아 한낮의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어느 여자가 존재하는 해변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 여자가 깜짝 놀라 마시고 있던 주스 잔을 내게 집어던지지만 않았다면, 한동안 그 낙원같이 아름다운 풍경의 바닷가에 눌러앉아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아돌프는 이곳에다가 지옥 그 자체를 고스란히 옮겨다놓았다.
양쪽 귀를 붉게 달군 쇠로 지졌다가 죄수가 고통과 저주에 찬 비명을 마구 질러대면 그제야 귀에 물을 부어주고, 심지어 그 짓을 수차례나 반복한다. 불로 할 수 있는 모든 고문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광경들이 너무나 끔찍해서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는 얼굴 근육에 저절로 경련이 일 정도였다.
그런데다 간수들은 법사 출신인 내가 조금도 알아듣지 못하겠는 이상한 음절의 만트라진언. 힌두교와 불교 쪽에서 쓰는 주문을 달리 부르는 명칭들을 반복적으로 되뇌고 있었는데, 사원의 승려들이 경견하게 외는 신성한 느낌의 진언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되풀이하여 외우는 그 섬뜩한 만트라가 고문받는 죄수들의 비명 소리와 뒤섞여 고막이 터져나갈 듯한 압박감을 주었다.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리더니 속에서 오심이 치밀어 올랐다.
몇 번이나 남자에게 귀마개를 달라고 애원할 뻔했지만 그러기엔 내 자존심이 용납하질 않았다. 이를 악물고 버텨내는 것 외엔 아무런 도리가 없었다.
남자는 그런 내 꼴을 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보이는 눈초리였다.
구불구불한 형태로 한 층 한 층 움직여가며 전체 층을 경유하는 이 승강기는 아직도 2층 통로에 머물러 있었다. 눈을 감자니 이미 시시각각 충격적인 장면들이 내 시야로 가득 쏟아져 들어와 가뜩이나 겁에 질린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개중 압권이던 것은 팔다리가 전부 잘려서 알몸으로 더러운 바닥을 힘들게 기어가고 있던 어느 남자였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사납고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사람 몸통 하나 간신히 통과할 만한 철창 속에 갇힌 채 쉴 새 없이 짖어대며 침을 흘려댔다.
중요한 것은 사지가 절단된 남자의 목에는 도망치지 못하게 억센 목줄이 매달려 있었고 그 줄은 다시 개의 목에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만약 잠시라도 기어가는 것을 멈추게 될 시엔…….
그 장면에서 도저히 눈을 떼지 못하는 나에게 승강기에 함께 탑승한 남자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참으로 애석하게 됐습지요. 저자는 한때나마 종단 내에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로 큰 권력을 가졌던 지체 높은 신분이었으나 지금은 저렇게 참담한 꼴로 전락한 죄수 신세라니 말입니다.”
남자가 덧붙여서 알려준 그의 이름에 몸에서 진저리가 쳐졌다. 일전에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나를 보며 그가 대수롭지 않게 위로를 건네었다.
“걱정 마십시오. 하루가 지나면 몸이 다시 재생되니까요.”
계속해서 정신이 와르르 붕괴해버릴 듯한 장면들이 이어졌고, 승강기가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3층으로 내려가자 나는 여태까지의 모든 것들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위층들이 피로 얼룩진 잔인하고 끔찍한 고문의 장이었다면, 지하 3층은 그야말로 정신병자들의 소굴이었다.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신이 아예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 그들이 내뱉는 세상에 대한 모든 악의와 저주들이 저 공간 안에 가득 차서 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즐기는 사악한 영들과 함께 사람의 정신 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념체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하긴 저런 꼴들을 당했는데 미치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를 다 뽑아버려서 혀를 깨물고 자결할 수조차 없었다. 다섯 개의 검 수용소에서 생체 실험을 자행하고 있다는 얘긴 들었었지만 그 실체를 내 눈으로 보게 되니 절로 이가 빠드득 갈렸다. 고통을 참다 못해서 아예 정신이 나가버린 웃음소리가 뒷목 털을 주뼛 곤두서게 만들었다.
새로운 숙주를 찾아 승강기 주변으로 몰려드는 저급한 악령들을 물리치기 위해 마구니의 항복을 받는 항마진언降魔眞言을 읊조렸다.
“옴 소마니 소마니 훔 하리한나 하리한나 훔 하리한나 바나야 훔 아나야혹 바아밤 바아라 훔 바탁, 옴 소마니 소마니…….”
가능하다면 이대로 정신을 잃고 싶었다.
* * *
밑바닥까지 함몰해버린 정신을 그나마도 지탱해주었던 것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 뒷일을 장담할 수 없다는 극한의 두려움이었다. 지하 4층을 일일이 경유하는 동안, 팔짱을 낀 채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나를 잠잠히 지켜보고 있던 저 남자의 음험한 눈빛이, 흡사 나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의 것으로 여겨졌다.
지하 4층에서 5층으로 꺾여 들어가는 마지막 통로에서 드디어 승강기가 뚝 멈추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남자가 무척이나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운을 떼었다.
“보기보단 퍽 대단하시군요. 중도에 기절하거나 적어도 배 속에 든 걸 전부 다 게워낼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맨 정신으로 그걸 끝까지 지켜볼 줄이야…….”
평소 같았으면 틀림없이 바짝 날이 선 한마디 정도는 되돌려줬을 텐데, 지금은 입을 벙긋하긴커녕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장이 되어버렸다.
“법사님 당신의 성격상 귀마개와 보호구를 거부할 거라는 건 미리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알량한 자존심 따위가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지 이제 잘 아셨겠지요?”
나 또한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처음부터 귀마개와 보호구를 거부했던 까닭은, 수용소에 방문하기 전에 관음존자가 내게 건넸던 말들 때문이었다.
‘수용소 관계자 놈들은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이따금씩 밖에서 찾아오는 외부인들을 우습게 보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 그러니 너도 함부로 얕보이는 행동을 해서 감히 내 얼굴에 먹칠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하, 그렇게 말해놓고 정작 이 관계자 놈한테 미리 언급까지 했었다고? 사실 인증석의 갱신 때문이 아니더라도 내가 파오와 오조를 사원 내에 두고 왔던 가장 큰 이유는 다 아돌프 자식의 시답잖은 농간 탓이었다. 수용소 놈들이 요즘 들어 자기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니 네가 혼자 가서 본인의 하수다운 실력을 보여주고 오라는 거였다.
남자는 방금 전 자신이 했던 말 때문에 내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고 생각했는지 여태 쳐다보고 있던 시선을 거두며 이야기했다.
“아까 언급한 대로 전 이곳에서 먼저 내릴 겁니다. 죄수 1번이 지하 5층을 혼자서 전세내고 있으니 어쩌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남자는 피식 웃으며 말을 집어 삼켰다. 어째서인지 뒷말이 끊긴 타이밍이 뭔가 거지같은 예감이 들었다.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마자 얼른 바깥으로 발을 내밀었던 남자가 갑자기 뒤를 쓱 돌아보더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후론 다시 볼일이 없을 것 같으니 마저 얘기해두죠.”
“…….”
“사실 이 승강기는 두 가지의 작동 방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방금 경험해보신 것처럼 4층 전체를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정찰용 버전이고…….”
대체 무슨 얘길 꺼내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두 번째는…… 일반적인 승강기들처럼 자기가 원하는 층으로 한 번에 바로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원래의 정상적인 버전입니다.”
지금 이 남자가 뭐라고 하는 거야?
“다만 첫 번째로 말씀드렸던 그 정찰용 버전은, 보시다시피 하도 기분 나쁜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속출되기 때문에 아무리 이 수용소에서 오래 일한 간수들이라도 여간해서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기능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남자가 서둘러 승강기를 빠져나갔다. 문이 닫힌 자리에는 오직 나 혼자만이 남겨져 있었다. 첫인상부터가 어딘지 보잘것없어 보이는 남자였기에 내심 방심하고 있던 차였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여태까지 저 남자의 손바닥 안에서 신나게 뛰놀았던 게 아닌가 싶었다.
보기 좋게 한 방 먹었군.
그렇게 잠시 동안 승강기 안에서 완전히 넋이 나간 채로 있다 보니 어느새 지하 5층에 도달해 있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전의를 상실해버린 것이 흠이었지만, 어쨌거나 드디어 최하층이었다.
지하 5층.
눈앞이 정말 캄캄하다. 비유적인 의미로 캄캄하단 말이 아니라 이곳은 진짜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새카만 공간이었다. 빛 한 줄기 새어들지 못하는 이 적막한 어둠 속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원초적인 공포심이 자라났다.
어쩌면 아까 눈으로 직접 본 그 끔찍한 광경들보다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불확실성이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낮도 아니고 그렇다고 밤도 아닌, 모호한 일몰 빛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처럼, 모른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의 크기를 제 모습보다 길게 늘어뜨린다.
시각에 전혀 의존할 수 없으니 유난히 청각이 예민해져갔다. 그러나 이 고요한 공간 속에서는 내가 간헐적으로 내쉬는 숨소리가 도리어 메아리처럼 되돌아와서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마음이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항시 두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을 후회하거나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들을 공연히 걱정하느라 평생을 허비하게 된다.
그렇기에 불교에서는 자신이 매 순간마다 지금 여기, 현재에 머물러 있음을 계속해서 알아차린다면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나 원치 않는 감정들도 떨쳐버릴 수 있으리라 가르치고 있다. 두려움은 나의 마음이 지금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늘 과거나 미래에 얽매여 있기에 나타나는 부가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균형이 흐트러진 정신을 한데로 끌어 모았다.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수행법이자 지금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 제일 간단한 방법은, 그저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하며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여러 잡념들을 떨쳐내는 일이었다. 이것을 가리켜 바로 ‘명상’이라고 한다.
잠시 후 용기를 내어서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나를 이곳까지 안내했던 그 기분 나쁜 남자 말에 의하면 지하 5층에는 오직 1번의 번호를 가진 그 손우경이라는 녀석밖엔 수감되어 있지 않다고 했으니까…… 뭐?
창졸간에 머리 한 대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감각이었다.
그 말인즉슨, 뒤집어 말하자면 이 지하 5층 전체가 손우경만을 위한 독방이나 마찬가지란 뜻이었다. 새삼 그 말이 지닌 무게로 인해 이제야 제대로 된 현실감이 들었다.
수용소의 전체 규모로 봤을 때, 한 층 전체에 죄수 단 한 명만이 수감되어 있다는 것은 공간적으로 엄청난 낭비이자 상식적으로도 완전히 글러먹은 이야기였다.
이쯤 되면 가두어놨다기보단 거의 모셔둔 것에 가깝지 않은가.
게다가 조용하긴 또 얼마나 조용한지 차라리 방금 전 위층에서 잔인하게 고문을 즐기던 그 악귀 같은 간수 놈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정도로 귓가에는 작은 기척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호흡을 통한 정신 집중이건 뭐건 지금은 언제 어디에서 뭐가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긴장감 때문에 염통이 바짝 죄어들고 있었다.
정말로 이 공간 안에는 그 손우경이라는 남자만이 수감되어 있는 걸까.
대체 관음존자는 이곳 관계자들조차 감당을 못해서 본분을 잊다시피 방치해둔 그 손우경을 내가 무슨 재주로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까.
정답, 그야 미친놈이라서.
그렇지만 아무리 남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더 하찮게 여기는 아돌프 녀석이지만 여태껏 이런 식의 무모한 명령을 내렸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긴 놈이 나에게 뭘 시킬 적마다 언제나 ‘뭐 그러다 네가 죽어버려도 할 수 없지, 하하핫!’ 하고 후벼 파고 싶은 눈동자로 날 쳐다보긴 한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 믿는 구석도 없이 덜커덕 여길 온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의 이 환경 속에서는 내게 불리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지라 나조차도 이 앞일을 온전하게 장담하기가 어려웠다.
한숨을 훅 내쉬며 다시 발을 내딛는데 그제야 지하 내부의 전원이 가동되었는지, 아주 희미하게나마 천장에 달라붙은 전등에서 차례대로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내가 움직였던 방향으로 무인용 전원 감지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고즈넉한 어둠에 익숙해졌던 침침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현재의 몇몇 정황들로 말미암아서 거의 확신에 가까운 강한 추측이 들었다.
바로 이 다섯 개의 검 수용소가 애초부터 ‘이 장소’를 만들기 위해 지어진 곳이라는 추측이었다.
앞서 본의 아니게 험한 구경들을 했는지라 무의식중에 심어진 선입관들 탓에 하마터면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지 못할 뻔했다. 이미 이 공간 자체를 마치 거대한 괴물의 내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렵게 인식했던 것이 내 가장 큰 실수였다. 하지만 그것은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서 코끼리의 전체를 다리로 상상하듯이, 그저 허황된 망상에 불과했다.
비록 흐릿한 불빛이지만, 전등불이 비추고 있는 이곳의 풍경은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수용소라는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어느 누구나 머릿속으로 쉽게 상상할 수 있을 법한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타 일반 수용소들과 한 가지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초록색 물이끼들이 범람해 있는 이 공간의 천장, 벽, 그리고 바닥을 통틀어 온통 정교하고 난해하게 짜인 결계들이 쳐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어지간한 실력을 가진 주술사가 아니고선 접근조차도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또한 내가 거쳐 온 지하 4층까지의 수용소는 제아무리 땅을 깊게 파도 기술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광활한 공간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아돌프가 공간과 공간을 이어놓는 술법을 부리지 않았다면, 애당초 지옥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런 터무니없는 곳은 실제로 존재할 수도 없고 결코 존재해서도 안 되었다.
손우경의 수감 번호가 1번이라고 했던가. 그 말에 이미 모든 해답이 나와 있었다.
다시 말해 이 다섯 개의 검 수용소는, 처음부터 죄수 1번인 손우경을 가둬놓기 위한 봉인 그 자체였고, 나머지는 그 녀석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겸 인력 낭비를 막기 위해서 아돌프가 적당히 끼워 맞춘 허울 좋은 공간일 뿐이었다.
사방으로 미로처럼 갈라진 복도를 거닐며 죄수 없는 텅 빈 감방들을 하나하나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의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정말로 단지 어느 한 명을 주박하고 또 감시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복잡한 결계들을 쳐놓았단 말인가.
아돌프는 관상법, 즉 시각화를 통해서 주로 상상만으로도 결계를 치는데, 그런 방식은 충분히 유효하긴 하나 지속되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 길어봐야 만 하루 정도일까. 그런데 이곳에 있는 이 결계들은 아주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지식하게 짜인, 그것도 봉인을 지키기 위한 결계 타입이었다.
말인즉슨, 누군가 이 결계를 해제하지 않는 한 천년이고 만년이고 현 상태가 계속해서 지속됨을 의미하며, 그만큼 결계 안의 봉인된 대상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외부에서도 섣불리 결계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장치들이 숨겨져 있었다. 자칫하다간 침입자에게도 큰 해가 가해지는 구조인지라, 이 안에서는 함부로 움직이기조차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서각과 방구석에 들어앉아 주야장천 경전과 주술서들을 독파한 지도 벌써 어언 십여 년의 세월이었다. 이 정도 번거로움쯤이야 하루하루 아돌프의 까다로운 비위를 맞춰가며 어렵사리 지내왔던 내 지난 세월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 수준이었다.
누가 나보고 십년 동안 하루 종일 결계나 해제할래, 아니면 관음존자와 함께할래? 하고 묻는다면 난 차라리 이십년 동안 결계를 해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결계들을 시간과 공을 들여 하나하나 신중하게 해제하고 난 뒤, 아까부터 왠지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는 복도 맨 끝 방을 향해 숨죽여 몸을 움직였다.
마침내 도달한 복도 맨 끝 방의 앞.
약 세 발자국 남짓 떨어진 곳에서 저절로 걸음이 멎었다. 별안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쳐왔다.
벽면 가득 빼곡하게 붙어있는 낡은 부적들. 그것들은 빛바랜 노란 종이위에 붉은색 경면주사로 쓰인 글귀들이 현재 지하 내부의 습기에 침식되어 마치 피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부적을 습한 곳에 오래 두면 안료의 성분 때문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었으나, 어림잡아서 약 몇 백 장 이상은 족히 되어 보이는 부적들 모두가 마치 애통하다는 듯 붉은 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벽면에 부적 하나만 걸려 있어도 신부神符가 주는 그 특유의 신묘한 기운이 뭇사람들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끄는 법인데, 벽면 가득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저 부적들의 기이한 향연은 나에게도 꽤나 충격적인 인상을 주었다.
부적에 새겨진 글귀를 자세히 살펴보니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 진언인, 바로 ‘옴 마니 반메 훔’이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의 진언인 옴 마니 반메 훔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자는 이 포타라카에서 단 한 사람뿐. 설마 대부분의 주술들을 거의 심상화와 언령에만 의존하는 관음존자가 어쩌면 이 골치 아픈 수작업에 직접적으로 개입을 했다는 것일까.
징그러울 만큼 덕지덕지 붙어 있는 부적들을 넌지시 훑어보며 그리 내키진 않지만 손을 뻗어서 철로 된 문고리를 잡았다. 녹슨 쇠붙이가 차갑게 식어 있는 감각이 손바닥 안에 꺼림칙하게 감돌았다.
문을 열기 직전, 그때 내 몸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 형언할 수 없이 쩌릿쩌릿한 전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때에는 잘 몰랐지만, 내가 나중에야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도 그 순간의 나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들었던 내 영혼의 다급한 비명 소리였던 것 같다.
네모반듯한 옥사 안. 그 육각 면을 빈틈없이 뒤덮은 것은 역시나 부적들이었다.
그러나 바깥에서 본 그 빛바랜 색상과는 다르게 저 빳빳하고 샛노란 부적들에선 세월의 흔적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당장 오늘 아침에 붙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럼에도 이 부적들은 최근에 새롭게 부착한 것으로 보기에는 큰 무리가 따랐다. 부적들은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붙인 것이 아니라 모두 일정한 배열과 구조를 취하고 있었으며, 척 보기에도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할애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방식을 아주 잘 알고 있는데 아까도 비슷한 말을 했지만, 환영제야단에서 이런 식의 봉인 부적을 사용하는 사람은 역시나 내가 알기론 딱 한 명뿐이었다. 그 지독하게 추위를 타는 엄살쟁이는 요 근래 들어 포타라카의 날씨가 최악의 영하권으로 내려가고 난 뒤로는 아예 수정궁 밖으로 나선 적이 없었다. 이 수용소 내부에 존재하는 다른 층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랐으나 그 원천은 같았다. 쉽게 말해 이 방은 세월의 흐름에서 완전히 빗겨나 있었다. 바로 시공간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관음존자가 만들어낸 시간이 멈춘 공간. 방 안에서는 아직도 처음 부적을 붙였을 때 발라두었던 아교풀의 냄새가 콧속을 깊숙하게 찔러왔다.
손우경이란 남자가 투옥된 기간이 올해로 만 오년이라고 했던가.
방 안 어디를 둘러봐도 세월에 마모된 흔적 따위는 조금도 엿볼 수가 없었다.
아마 하루가 지나고 또 일 년이 흘러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항상 이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있을 것이다. 아무런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 이 작디작은 공간에서, 정지한 시간 속에 끝없이 갇혀 있는 벌이야말로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형벌이 아닐까 문득 생각했다.
그는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이렇게 잔인한 벌이 주어졌던 것일까.
나는 이 방의 중앙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몸으로 양팔이 좌우로 벌어진 채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장신의 남자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잠이 든 건지 그저 조용하게 두 눈을 감고 있는 저 남자의 시간은 아마도 오년 전쯤에서 뚝 멈춰 있는 듯했다.
내가 방에 처음 들어온 순간, 이 공간 안의 시간이 아예 멈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유는, 부적들 탓이 아니라 바로 이 손우경이라는 사내의 몸 상태 때문이었다. 근육이 적당히 탄력적으로 붙어 있는 몸에는 크고 작은 흉터들이 제법 눈에 띄었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오년 동안이나 독방에 갇혀 있던 자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일찍이 위층에서 보았던 다른 죄수들처럼 모진 고문을 당해 어디 하나 망가졌다거나 심각한 신체 훼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땅히 제때 깎지 못한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 있다거나 아님 위생 상태가 좋지 못하여 벌어지는 불결한 모습과도 전혀 딴판이었다. 옅은 갈색으로 그을린 그의 나신에서는 희미한 광채마저 은은하게 우러나오고 있었다.
일전에 관음존자의 우주 도서관에서 손우경의 사진을 보았을 때에도 얼핏 죄수치곤 지나치게 눈에 띄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실물을 보니 과연 어떤 누구의 시선이라도 쉽게 잡아끌 만한 대단한 미남자였다. 결코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 이런 곳에 처박혀 있을 위인으론 안 보였지만, 뭐 따지고 보면 이 수용소에 갇혔던 이들은 악에 반하여 정의를 위해 몸 바쳤던 사람들이 태반이긴 했었다.
유독 짙게 자란 그의 두 눈썹으로 시선이 쏠렸다. 마치 일부러 다듬기라도 한 것처럼 좌우 대칭이 완벽했고 굉장히 보기 좋게 자라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얼굴의 전체적인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었다. 무심코 잘 다듬어진 얼굴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 예상보다 이자를 이곳에서 쉽게 데리고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자가 꾹 감고 있었던 두 눈을 뜨기 직전까지는.
머리색만 보고 순수 아시아계라고 생각했지만 눈을 뜨는 순간 그가 혼혈임을 알았다. 은빛이 섞인 회색에 가까운 밝은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눈을 갸름하게 뜬 남자는 얼굴선이 강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인지 눈을 감고 있을 때보다 사납고 고집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허공에 팔이 묶여 매달린 채로 그가 날 똑바로 내려다봤다.
순간적으로나마 이상한 분위기에 취해서 잠시 동안 기분이 멍해졌다.
내가 여길 대체 왜 왔었더라.
표정 없이 나를 내려다보던 남자의 긴 입술선이 조금 더 길게 찢겼다. 얼굴로 서슴없이 와 박히는 그 시선이 꼭 직접적으로 만져대는 듯한 얄궂은 느낌이었다. 그 간지러운 감각에 여태껏 아무렇지 않던 마음속에서 작은 동요가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치려던 순간,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 믿지 못할 광경에 그만 다물렸던 입술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자면.
알몸인 저 사내의 중심부,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남자라면 으레 사타구니 사이에 늘어져 있는 바로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길이가 늘어나더니 갑자기 내 코앞까지 불쑥 자라나버린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현상에 의해 발기했다고 치부하기엔 그 길이와 크기가 일단 너무나 비정상적이었다.
심지어 나 역시 이 옥사 안에 들어온 뒤로는 안전상의 이유로 적어도 다섯 걸음 이상은 멀찍이 떨어져서 손우경과의 적정 거리를 확보하고 있던 차였다.
부풀어 오른 귀두 끝이 나를 인식하듯이 내 눈앞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여댔다. 마치 내 반응을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관음존자 밑에서 웬만한 못 볼 꼴들은 다 겪으며 자랐는지라 어지간한 일에는 전혀 꿈쩍도 않는 나였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사실상 무리에 가까웠다.
이, 이놈은 대체 뭐지. 설마하니 내가 무슨 나쁜 꿈이라도 꾸는 건가 싶었다. 남자의 발기한 날것의 성기를 눈앞에서 직접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곤욕스러운데 그 사이즈 자체가 이미 정상인의 범주를 훌쩍 벗어나 있었다.
이내 녀석은 그 촉수같이 쭉쭉 늘어나는 성기로 나를 사정없이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방 안 크기의 한계상 결국엔 퇴로가 금세 막혀버려 더 이상 뒷걸음질 칠 곳도 없어지자 결국 놈의 귀두 끝이 내 볼에 닿고 말았다. 아주 잠시나마 뜨겁고 딱딱한 물건이 뺨을 쿡 찌르자 아까부터 등줄기에 끼친 소름들이 목덜미를 타고서 얼굴까지 올라왔다. 내 당황한 기색에 작게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잔뜩 경직되어 있던 귓가를 무방비하게 간질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개구쟁이 같은 눈빛이었다.
“바깥에 쳐졌던 결계들은 네가 해제한 건가 보지.”
상상외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그때였다. 놈이 매달려 있던 천장에서 별안간 오른쪽 팔뚝을 힘껏 잡아끌자 연결되어 있던 쇠사슬이 뚝 끊겨버렸다. 하지만 천장과 분리된 자신의 오른쪽 팔목을 잠시 의외롭다는 듯 바라보는 것이 본인 스스로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성인 남자의 몸을 천장에 단단하게 붙잡아두던 쇠사슬이 저리도 쉽게 끊겨버리는 걸로 봐선, 아마 밖에서 내가 해제했던 결계들 가운데 그중 일부가 안쪽의 봉인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은 남은 한쪽도 같은 방식으로 가볍게 풀어버리고서 두 팔이 모두 자유로워지자, 이윽고 그다음 표적을 현 상황에서 완전히 몸이 굳어져버린 나로 정한 듯했다.
그나마 뱀처럼 늘어나 있던 놈의 그 끔찍한 것은 다행스럽게도 어느새 사타구니 사이로 다시 얌전하게 되돌아가 있었다. 내가 방금 헛것을 본 게 아니라면 저 자식은 정말이지 최악의 괴물이었다. 관음존자의 명령에 의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라면 이미 훨씬도 전에 이곳을 뛰쳐나가고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쇠사슬이 끊어진 옥사 안에는 어느 누군가의 살기 어린 기운이 팽배했다. 질식하기 직전인 분위기 속에서 그 괴물 같은 자식이 서서히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장난기가 완전히 가신 두 눈동자는 이제 다 잡은 먹이를 노리는 날짐승의 그것과도 같았다. 전신에서 압도적으로 내뿜어 나오는 강한 수컷의 기운. 야만적이고 짐승 같은 남자였다. 어떤 불쾌한 감정을 넘어서 마치 수컷간의 치열한 영역 싸움에 져서 무참하게 기가 눌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황이 크게 잘못되고 있음을 이제 와서 깨달아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바짝 메말라가는 목을 적시기 위해 입안으로 침을 삼켜봤지만 지금 상황에서 딱히 도움이 되거나 더 나아지는 것이라곤 없었다.
내 쪽이 그리 작은 키가 아님에도 우월할 만큼 차이가 나는 상대방의 신장에 속으로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놈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대략적으로 어떤 타입일지는 여실하게 전해졌다. 분명 이성보다는 순간적인 본능에 의해서 행동하는 유형일 것이다. 내 얼굴을 뚫어지게 살펴보던 눈동자가 묘하게 이지러져갔다.
왜냐하면 그 시선이 내 가슴팍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고선 놈 역시 나에 대해서 확실하게 파악했다는 것처럼 심장을 얼려버릴 듯한 눈으로 싸늘하게 웃어 보였다. 뼛속까지 강한 살의가 전해졌다. 녀석이 내 가슴팍에 새겨진 관음존자의 표식을 본 탓이었다.
머릿속에 긴급하게 적색경보가 켜졌지만 녀석이 내 턱과 관자놀이를 잡아챈 것이 더 먼저였다. 금방이라도 힘을 주어 부수어버릴 듯한 그 억센 손아귀에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놈 역시도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돌프 새끼가 던져주는 깜짝 선물치고는 너무…….”
놈에게서 다른 뒷말이 더 빠져나오기 전에 턱을 잡힌 손아귀를 잡아채어 팔목째 비틀어버리려고 했으나 말짱 허사였다. 나는 분명히 ‘왼손’을 썼는데도, 얼굴에서 놈의 손을 떨구기는커녕 오히려 내 쪽이 흡사 바위덩어리를 들어 올리려고 한 것처럼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이상하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데.
손우경이 방금 전 흐릿하게 삼켜버린 뒷말을 마저 꺼내들었다.
“너무 약해 보이네.”
가볍게 내던지는 투로 말했지만 기분상 뭔가 그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닌 듯한 눈치였다. 그와는 관계없이 내가 약해 보인다는 발언에 쓸데없는 자존심이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아직은 본격적인 행동에 착수할 때가 아니었다. 관음존자가 알려주었던 ‘그것’은 우선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이놈을 어떻게든 구슬려서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야 했다.
하지만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 재차 주변 환경을 둘러봐도 내 조건에서는 불리한 구석투성이였다. 별 걱정 말라는 아돌프의 말만 순진하게 믿고서 내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일까. 육체는 주술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혼자서 이놈을 상대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가 않았다.
게다가 상황이 전혀 원치 않는 방향까지 흘러갈 수도 있으니 일단은 체력 분배를 잘해서 적재적소마다 비축해둔 힘을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역시나 그 방법밖엔 없는 건가…….
하지만 그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해도 당장은 몇 가지 제약이 뒤따랐다. 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지금 상태에선 수인手印, 주문을 욀 때 두 손의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여러 가지 모양. 불보살의 깨달음의 내용이나 활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냄 없인 주문을 외워도 별 소용이 없었다. 또한 평소처럼 잠입 내지 뒤에서 조종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경험적으로 이런 일대일 상황에선 제대로 된 능력 발휘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것 외엔 별다른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우선 해보는 수밖에.
주문을 외우기 위해 여태 꽉 다물고 있던 입술을 뗀 순간, 숨이 컥 막혀왔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목을 졸라오는 손길에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강한 압력이 머리로 쏠려왔다. 손우경은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 근처로 자기 코끝을 가져다댔다. 그러곤 내 귓가에 대고 가소롭다는 듯이 속삭여왔다.
……되도록이면 내 앞에선 어쭙잖게 굴지 않는 편이 좋아.
놈은 내 호흡에 한계가 올 때쯤이 돼서야 나를 바닥으로 거칠게 내팽개쳤다. 꽉 막혔던 기도로 갑자기 숨이 터지면서 내가 혼자서 켁켁거리는 사이, 손우경이 빠른 속도로 감옥에서 빠져나갔다. 얼마나 목을 세게 졸랐는지 목젖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짐작하건대 내게 분명 위협을 가했지만 더 이상의 공격 의사는 없는 듯했다. 정말로 죽일 작정이었다면 방금 전 내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으니까.
놈의 뒤를 따라붙기 위해 몸을 일으켜 재빨리 문 바깥으로 뛰쳐나가자 손우경은 팔짱을 낀 채 아직도 문 앞에 서 있었다. 그것도 벌거벗은 뒷모습을 한 채 말이다.
보는 즉시 상황이 파악됐다. 이 위치에서 보니 이중 구조의 역결계였다. 설령 외부에서 침입이 가능했더라도 이 안에서 다시 바깥으로 나가려면 번거롭지만 한 번 더 결계 해제 작업에 손을 대야 했다. 손우경의 손끝에서 붉게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의 흔적을 보니 아마 내가 나오기 직전 무의미한 탈출 시도 정도는 해본 모양이었다. 놈이 더럭 짜증이 난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실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지.”
나는 칭찬을 받았기에 어깨를 으쓱이며 화답했다.
“기세 좋게 뛰쳐나가더니 꼬락서니하고는.”
놈은 나를 슬쩍 돌아보며 감정 없는 눈동자로 말했다.
“……닥치고 좋게 말할 때 뚫어.”
결계보다는 놈의 주둥이를 먼저 뚫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참았다. 다시 한 번 왼손을 써볼까도 생각했지만 방금 전에 전혀 통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라 그것도 그만두었다. 어쨌든 아직까진 관음존자의 당부도 있고 하니 내가 먼저 저 녀석에게 해를 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슬쩍 손우경을 곁눈질해 보니 놈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뻔뻔하게 내가 결계를 해제해주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더럽게 복잡한 구조로 얽혀 있는 결계 부적들을 손수 해제하면서 나는 친애하는 우리 아돌프 님께서 나를 어찌하여 이 외진 곳으로 처넣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밖은 포타라카의 가장 추운 혹한기였고, 이곳은 온도가 낮은 지하실임에도 불구하고 온종일 쭈그리고 앉아 부적만 뜯어내다가 비지땀이 줄줄 흐를 지경이었다. 이가 으득으득 갈렸지만 그보단 다리가 저려 죽을 맛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바깥 결계들은 누가 한 번 더 손을 댄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전에 있던 결계를 다시 강화시키는 작업을 한 모양인데, 그것은 세월이 흘러 색상이 확연하게 차이 나는 두 종류의 부적을 보기만 해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점이었다.
내가 마지막 결계 부적을 무력화시키고 나니 옆에서 타이밍을 재고 있던 손우경이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도 없이 지하 5층의 긴 복도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녀석은 자기 무릎 정도 위치에 떠올라 있던 승강기 위로 가뿐하게 올라서더니, 얼른 등을 돌려 내가 서둘러 승강기 쪽으로 따라붙는 것을 빤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내가 승강기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손우경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간신히 손을 밀어 넣어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고, 녀석은 별다른 표정 변화도 없이 그런 나를 힐끗 쳐다보기만 했다.
승강기에 탑승하고 난 뒤, 나는 뭔가 유치한 성정을 가진 저놈이 어째서 이 다섯 개의 검 수용소의 지하 5층을 홀로 차지할 만큼 대단한 거물인지를 다시 한 번 곰곰이 곱씹어봐야 했다. 봉인되어 있던 저 방에서 나온 다음부터는 살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천도 프로젝트 관계자란 말에 난색을 표했던 파오나 아까 나를 이곳까지 인도했던 간수의 넌더리나는 반응만 봐도 이놈은 손쓸 수도 없이 미친 또라이였고, 그렇담 미친 또라이답게 당연히 생면부지인 나부터 공격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수순 아닌가.
그러나 손우경은 내겐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고 회로가 엉켜 있는 승강기 조작 기판에만 온통 정신을 쏟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간수 놈이 전체 층을 아우르지 않아도 분명 한 번에 출입구를 오고 가는 작동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쟤한테 언질을 해줘야 되나 망설이던 찰나에 승강기가 덜컹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허나 승강기는 이번에도 직선을 향해서 똑바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지하 4층을 시작으로 또다시 전체 층들을 하나둘씩 경유할 생각이 들자 지레 이맛살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내 기우완 달리 승강기의 흐름이 급작스레 뚝 멎었다. 옆을 돌아보니 손우경이 기어 형태로 된 승강기의 조종 막대기를 손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짓거리야.
곧이어 손우경은 버튼을 눌러 승강기 문을 열고는 별 망설임 없이 그 살벌한 공간 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마침 그 주변을 서성이고 있던 간수 하나가 깜짝 놀라서 뛰어오기가 무섭게, 그 휘둥그레진 눈동자가 금세 바닥을 나뒹굴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 나 역시 몸과 분리된 저 머리통과 상당히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눈에 포착된 광경이라곤 놈의 손날이 마치 칼날처럼 작용해서 정확히 간수의 목 부위를 겨냥했다는 것뿐. 그마저도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려 정말 손으로 목을 자른 것인지조차 불분명했다.
텅 빈 목 부위에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 나오는 간수의 몸통이 아예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지기 직전, 손우경이 먼저 몸을 낚아챘다. 놈은 빠른 손동작으로 그 몸만 남은 시체가 입고 있던 옷들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름한 바지와 군용품으로 지급된 듯한 진녹색의 낡은 재킷을 자신의 몸에 하나둘씩 걸치더니 홀연히 지하 4층의 깊숙한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잠시 후, 비상 경보음이 전 층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손우경이 사라진 틈을 타 먼저 이 공간에서 탈출해보려고 했지만, 방금 전의 소동으로 벌써 관제실에서 손을 써두었는지 승강기의 전원이 완전히 나가 있었다.
으아악!
먼 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단말마의 외침을 남겼다. 놈이 소실점이 되어 사라져버린 저 깊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보지 않아도 왠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상상하고 싶진 않았다. 연쇄적으로 일어나던 비명 소리가 잦아들어 침묵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익숙해진 인영이 걸어 나온다. 그의 입술과 양쪽 손에 붉은색 혈흔들이 생생한 빛깔로 덧칠되어 있었다.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얼굴로 보아 적어도 그가 흘린 피는 아니었다.
놈의 오른쪽 손에는 피복이 강제로 벗겨진 묵직한 전선이 들려 있었는데 손우경이 걸어 나왔던 저 어둠 속으로부터 그 꼬리가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파지직거리며 전기가 튀고 있는 전선 끝을 잠시 멍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손우경과 눈을 마주쳤더니 녀석이 피로 물든 사람 살점 같은 걸 바닥으로 뱉으며 말했다.
“예비 동력.”
놈이 입술 끝에 선명하게 묻어 있는 짙은 흔적들을 혀로 살짝 핥더니 붉어진 입술로 웃었다. 곧이어 손우경은 승강기로 들어와 내부 하단에 설치된 기판을 뜯어내고는 그 안으로 위험한 전류가 흐르고 있는 전선들을 마구잡이로 쑤셔 넣었다. 저런 무식한 방식이 과연 통할까도 싶었지만 놀랍게도 얼마 안 지나서 승강기 내부에 다시 전원 불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승강기의 전원이 나간 것은 분명 놈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였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예비 동력선을 가져온 거지. 내가 의문에 젖은 표정으로 녀석의 뒤통수를 뚫어지게 응시하자 본인도 그 시선이 느껴지는지 내 쪽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
“그야 탈출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니까.”
지하에서 역 결계를 해제하면서 들었던 의문과 두 손목을 잃고 얼굴 피부가 뜯겨나갈 뻔한 간수의 일화가 언제쯤 있었던 일인지 이제야 대강 짐작이 갔다. 저 녀석 말이 사실이라면 결계는 놈의 탈출 시도 이후 다시 보강된 것일 테고, 간수의 신체 훼손 역시 바로 그 당시에 일어났던 일일 터였다. 그리고 지하 5층에서 나를 살려두었던 까닭은 바로 그 결계들을 해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헌데 봉인되었던 주체가 스스로의 의지로 가지고 결계 안을 탈출하는 게 정말 상식적으로 가능한 얘긴가.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지만 지금으로선 도무지 그렇게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이상 결계 따윈 없음에도 정말 아직까지 날 그냥 내버려두는 이유가 뭐지.
만약을 대비해서?
다음 목적지인 지하 3층에 도달하자 이번에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승강기가 멈춰 섰다. 투명 유리로 된 문이 열리기도 전에, 벌써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서 그 앞을 장승처럼 지키고 서 있는 수많은 간수들을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4층에서 저지른 만행이 있으니 이대로 순순히는 못 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바깥에서 억지로 문이 열리자마자 사각지대에서 자객처럼 숨어 있던 한 녀석이 돌연 손우경을 향해 기습 공격을 가했지만, 아무 의미 없는 짓거리였다.
손우경은 머리가 싹둑 잘려나가 맥없이 쓰러지는 몸통을 아예 바깥 놈들에게 휙 걷어차버렸다. 머리가 날아간 몸통 때문에 문밖의 간수들이 잠시 움찔해 있는 사이, 녀석이 바닥에 떨어진 머리통을 한 손으로 쓱 줍더니 날 뒤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승강기에 충전된 동력이 얼마 안 남았어. 이 느릿한 속도로 봐선 입구까지 간신히 갈까 말까야.”
놈은 자기 손에 들린 머리통을 손가락 끝으로 빙그르르 돌리다가 갑자기 나한테로 던졌다. 나는 얼결에 그 머리통을 덥석 받아 들고 말았다. 내가 머리통을 들고 엉거주춤하는 사이, 손우경이 한 걸음 정도 다가와선 불쑥 내 얼굴로 손을 뻗었다. 저 손이 첨예한 칼이 되어 내 목을 벨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만 사지가 경직되어버렸다. 허나 녀석은 피가 뚝뚝 흐르는 그 손으로 그저 내 턱을 가만히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다물려 있는 내 입술에 자기 검지에 묻어 있는 핏방울을 꾹 문지르며 마치 경고하듯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러니 혼자 튀었다간 다음은 네 차례라고.”
손우경은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기고선 다시 승강기 밖으로 가볍게 몸을 내맡겼다. 일방적인 살육전이 벌어지는 것을 현실감 없는 눈으로 지켜보다가 내 손에 들린 머리통으로 스르륵 시선이 갔다.
그런데 내 입술에 피는 왜 묻힌 거지. 다음이 정말 내 차례라서?
하기야 저 광폭한 놈이 피 냄새에 도취되어 나중에 내 머리통도 예쁘게 잘 떼어주지 말라는 보장 같은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더구나 이 비좁은 공간에서 내가 섣불리 놈과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승률은 슬프게도 0%에 가까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이상 뭘 더 고민하겠는가.
내 손은 이미 승강기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승강기가 저를 두고서 움직이자 투명 유리를 사이에 두고서 날 바라보던 그 황당한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아마 꽤 열받은 표정이었지.
나는 내가 맨 처음에 들어왔던 승강기 입구에서 내린 다음 복잡해진 뇌리 속을 가다듬었다. 저렇게 폭주하는 놈을 내가 대체 무슨 재주로 설득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빠개질 듯 지끈거렸다.
게다가 조금 전에 이 수용소를 막 방문할 당시만 해도, 철통같은 보안과 감시 인원들로 즐비했던 저 긴 통로가 어느새 철창들은 다 열려 있고 사람들까지 어디론가 다 내빼버린 상황이었다. 마치 ‘부탁이니 저 골칫덩어리를 데리고 여기서 빨리 꺼져주세요’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통로 끝에서는 밖으로 완전히 통하는 밝은 빛이 보이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을 향해 쭉 걸어 나가고픈 달콤한 유혹에 잠시나마 시달려야 했다.
‘……너무 걱정하진 마. 내가 방금 전에 설명해준 몇 가지 사항들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야. 물론 나도 장담은 못하지만, 현재로선 그 천둥벌거숭이를 가까스로 감당할 수 있는 적임자는 오로지 네가 유일하니까.’
손우경을 만나보면 내가 왜 적임자인지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나.
내가 고민하던 사이, 꺼져 있던 승강기의 전원에 다시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승강기의 예비 동력은 내가 마지막으로 전부 사용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 안에 타고 있는 것이 당연히 손우경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승강기 문이 열리자 내 예상은 곧바로 빗나가버렸다.
그 안에서 얼굴 피부가 완전히 벗겨진 한 남자가 의수를 뻗어 문밖으로 다급한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고 있었다. 얼굴 껍질이 흉측하게 벗겨져 원래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의수만 봐도 그가 누구인지 쉽사리 짐작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짓을 행한 장본인도.
-1번 그 녀석이랑은 잠시라도 같은 공간 내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습니다. 양쪽 손목을 모두 가져간 걸로도 부족한지 제 얼굴 가죽까지 벗기려 했던 놈이니까요.
“제, 제발 사, 살려줘!”
간절하게 울리는 쉰 목소리. 놈은 하반신의 일부마저 날아가버린 뒤였다. 처절한 행색을 보니 필사의 탈출이라도 감행한 듯 보였지만, 사람 목도 단번에 날려버리는 손우경의 실력을 상기해보면 어쩌면 저런 꼴로 만든 다음에 일부러 살려둔 것이 아닐까 하는 묘한 추측도 들었다. 사실 승강기의 상태도 그다지 정상적이진 않았다.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승강기 바닥이 절반가량이나 녹아서 없어진 상태였다.
남자가 바닥을 기며 한쪽 의수를 내밀더니 내게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울부짖었다.
-이후론 다시 볼일이 없을 것 같으니 마저 얘기해두죠.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던가.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며 그에게 짤막한 인사를 건넸다.
“다시 뵙는군요.”
그러나 남자는 아까 자신이 내뱉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마음속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자존심이고 뭐고 전부 내던져진 상태였다.
“살려주시오! 제발!”
-사실 이 승강기에는 두 가지의 작동 방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방금 경험해보신 것처럼 4층 전체를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정찰용 버전이고…….
“나, 날 살려주기만 한다면 뭐라도 하겠소!”
-두 번째는…… 일반적인 승강기들처럼 자기가 원하는 층으로 한 번에 바로바로 움직일 수 있는 원래의 정상적인 버전입니다.
나는 팔을 내밀어 남자의 의수에 내 왼손을 얹었다. 겁에 잔뜩 질려 있던 간수의 눈동자에서 작은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했다.
-다만 첫 번째로 말씀드렸던 그 정찰용 버전은, 보시다시피 하도 기분 나쁜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속출되기 때문에 아무리 이 수용소에서 오래 일한 간수들이라도 여간해서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기능입니다.
손에 가볍게 힘을 주자 간수의 팔목에 부착되어 있던 의수가 너무나 쉽게 분리되었다.
-법사님, 당신의 성격상 귀마개와 보호구를 거부할 거라는 건 미리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알량한 자존심 따위가 얼마나 쓸데없는 것인지 이제 잘 아셨겠지요?
나는 입을 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경멸하는 부류는 자존심도 없이 구차하게 구는 인간들입니다.”
그의 두 눈으로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뭐 그래도 역시 불자 된 도리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이대로 모른 척할 수야 없겠죠.”
입가에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의 다른 쪽 의수를 붙잡아주었다. 하반신이 다 떨어져 나간 남자의 몸통은 지나치게 가벼워서 도저히 사람의 몸무게라곤 여겨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승강기 바닥에 뚫려 있는 저 구멍 아래로는 과연 뭐가 있을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모든 관심을 그쪽으로 기울인 순간, 정말 본의 아니게 작은 실수가 벌어졌다. 이번엔 손에다가 그리 큰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또다시 의수가 손목과 분리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었다.
게다가 몸통이 너무 가벼워서 내 손에서 남자가 떨어지는 줄도 몰랐다. 사실 구멍과 승강기 바닥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남자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이미 내 손이 제멋대로 움직여버렸다. 나는 손안에 유일하게 남겨진 남자의 의수를 구멍 안으로 집어 던지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저런, 실수로 손이 미끄러졌네.”
이제 남은 일은 밖에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이 뒷일에 대해 마저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 * *
수용소 내부로부터 폭발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출입구 쪽에서 연기 같은 것이 새까맣게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안에서 불이라도 났는지 호흡기가 강하게 자극되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안쪽에서 연달아 펑펑거리며 터지는 커다란 폭발음에 마음이 잔뜩 불안해질 무렵이었다. 그때 출입구에서 거센 불길이 확 솟구쳐 오르며 그곳에서 엄청난 도약력을 선보이는 한 인영이 튀어 올랐다.
싸늘하게 이지러진 은회색 눈동자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며 손에서 새빨간 화염을 뿜어냈다. 너무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제대로 방어할 채비조차 못 갖추고 뒷걸음질 치자 다행히 그 불꽃이 그저 내 옆으로만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내 눈앞으로 바짝 다가선 놈의 눈빛에서 강렬한 격분이 전해져왔다. 녀석이 이를 꽉 악물고서 내게 입을 열었다.
“너 진짜…….”
그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내 좌측에서 공간이 쩍 갈라져 내렸다. 이윽고 손우경과 나 사이의 땅이 쩌억 쪼개지며 우리 둘 다 동시에 하늘 위로 시선을 옮겼다.
“오랜만이야, 손우경.”
붉은색 눈을 가진 남자가 허공에 뜬 채로 한쪽 손을 치켜들며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허나 반가운 것은 오직 관음존자뿐인지 손우경의 전신에서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듯한 맹렬한 분노가 타올랐다. 그런 그의 양손에서 방금 전과는 아예 비교도 안 될 만큼, 주변의 모든 것들을 모조리 활활 태워버릴 것 같은 아주 거대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잠시 후 관음존자가 떠 있는 하늘로 손우경이 튀어 올라 자기 손안에 모인 화염의 기를 방출했다. 화염의 크기 자체는 상당했으나 지금 손우경이 워낙 이성을 잃은 상태라 그 행동이 너무 빤하게 보인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아돌프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쓱 피해버리고는 상대방을 자극하려는 대사를 남겼다.
“오년 전이나 지금이나 넌 참 단순한 새끼야. 아, 맞다, 중간에 내가 딱 한 번 면회 간 적이 있었지? 네놈 머리통에 금고아칩을 박으려다가 그때 수용소의 사상자들을 비롯해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구.”
분노를 도무지 제어하지 못하고 무작위로 난사하는 수십 개의 불꽃들을 관음존자는 하늘 위에 투명 결계막까지 설정해놓고 이리저리 잘도 피해 다녔다. 그런 관음존자를 땅에서 멍하게 올려다보다가 그만 조준이 실패한 불꽃 하나가 내 옆으로 떨어지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알아챈 순간에는 이미 몸이 바닥에서 거세게 튕겼고, 하늘에 떠 있던 관음존자가 순간 이동으로 몸을 움직여서 내 허리를 잡아챘다. 갑작스럽게 땅에서 튕긴 충격파로 인해 눈앞이 빙빙 돌았다.
“……역시 살려둘 줄 알았어.”
어질어질해진 눈가로 나를 양손으로 떠받쳐 안고 있는 관음존자를 응시하는데 놈이 책망하듯 내게 말했다.
“내가 분명히 너에게 제어 방식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던가.”
어렴풋한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딱 한 번만 얘기해줄 테니까 잘 들어. 일단 그놈은 결코 네 주술 실력만으로도 상대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냐. 날 제외하면 우리 환영제야단 안에서도 무술과 신통력으로는 절대 손우경의 뒤꾸머리도 따라올 자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내가 몇 년 전쯤에 아직 개발 단계이긴 하지만 시험 삼아 놈의 전두엽 안에 금고아라고 불리는 생체 조종 장치를 심어놨는데, 그 칩이 몇몇 특수한 음절에만 반응하도록 설정해두었어.’
‘그게 무슨 음절입니까.’
‘바로 나의 진언인 옴 마니 반메 훔이다. 이걸 긴고주緊箍呪라는 주문의 음절에 덧붙여서 놈에게 이 진언을 읊조리게 하면, 뇌에 심어두었던 금고아칩이 강하게 반응하면서 주문을 한 번씩 욀 때마다 뇌를 고통스럽게 조여들게 만들어.’
‘설마 저보고 그거 하나만 믿고서 거길 가란 말씀입니까?’
‘정 불안하면 유서라도 한 장 적어놓고 가든가.’
처음부터 그가 친히 알려준 루트를 당연히 따랐어야 했는데, 생각해보면 왜 망설였던 건지 사실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됐다. 아니, 혹시라도 손우경이 나를 공격하게 될 어떤 빌미를 주게 될까 봐 무의식적으로 몸을 사렸던 것이 분명하다. 이미 본능적으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인식했었으니까.
게다가 왜 그런지 눈가가 자꾸 가물가물해져서 지금 나를 한심하단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관음존자에게 아무 말도 대꾸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아돌프는 나를 번쩍 안아 들고도 현재 손우경이 퍼부어대는 모든 공격들을 전부 설렁설렁 막아내고 있었다. 상대편 쪽에서 날렵하게 움직이는 속도도 만만치 않았지만 관음존자는 그보다도 훨씬 더 빨랐다.
“후, 오년이나 감방에서 썩더니 이젠 실력까지 녹슬었나 보군.”
그렇게 말한 관음존자가 자신이 안아 들고 있던 내 몸을 갑자기 놈에게로 휙 던져버렸다. 관음존자에게 손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세찬 공격을 퍼붓던 손우경이 졸지에 나까지 받아 들고는 아돌프를 죽일 듯이 무섭게 노려봤다.
“너한테 이걸 잠깐 빌려줄 테니 네가 나 대신에 서쪽에 좀 다녀와라.”
“개소리 집어치워!”
머리가 핑핑 도는 와중에도 저 손우경이 나를 당장이라도 바닥으로 집어던질 것 같아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손우경은 나를 한쪽 팔로 안아 들고는 남은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서 거대한 기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돌프의 차가운 비웃음 소리가 잠시 내 귓가를 스치는 듯했다.
이윽고 어딘가에서 옴 마니 반메 훔의 긴고주를 경건하게 외우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아주 짧은 찰나였다. 손에서 나를 놓쳐버린 손우경이 양손으로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을 향해 끝없이 낙하했다.
내 텅 빈 허리 아래를 또다시 받쳐 든 것은 바로 관음존자였다. 놈이 생긋 웃으며 그런 손우경의 모습을 지켜보던 것이, 그날 내가 기절하기 직전 보았던 마지막 장면이었다
쉬어가는 페이지 1 <삼장>
★ 내 간 말고 벼룩의 간이나 빼 먹어라
서쪽으로 출발하기까지 이제 약 반나절가량 남은 시점이었다.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내 숙소에서 손 탄 물건들을 정리해가며 주섬주섬 짐을 싸다 보니 뭔가 도드라지는 물건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간 몸을 부대끼며 깊은 정을 나누었던 내 솜이불을 양손에 부여쥐고서 잠시나마 지나간 옛 추억을 회상했다.
솜이불아, 내가 널 처음 만났을 때는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어. 사실 정확한 시기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이곳 포타라카가 사시사철 시도 때도 없이 눈만 처내리는 겨울이니까 아마도 반드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어쨌든 그때의 넌 티 없이 맑고 깨끗했던 순백의 아이였었지. 아직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네 하얀 얼굴을 껴안고서 스르륵 잠이 들 때면 난 이 세상 그 어떤 추위도 전혀 두려울 것이 없었어. 정말이지 너의 널따란 품이 더럽게 아늑했었거든.
근데, 그랬던 너였는데…… 대체 무엇이 널 이렇게 세상 풍파에 찌든 듯한 누리끼리한 솜이불로 변모시킨 것일까. 사실 네가 이 방에 들어온 이후로 난 단 한 번도 다정한 손길로 네 몸을 어루만져준 적이 없었어. 어떤 상황에서조차 결코 날 거부한 적이 없는 한결같은 너였으니까. 그래, 난 항상 내가 아쉬울 때만 널 찾는 그런 나쁜 놈이었어.
나는 내 이불의 때깔을 온도가 내려간 눈으로 마뜩찮게 내려다보며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아, 빨래하고 가기 정말 귀찮은데.
언제 어디서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더불어 자신의 주변까지 정갈하게 돌아봐야 하는 고아한 승려의 몸으로서 차마 이런 허물을 남겨놓고 갈 순 없었다.
하지만 누구 씨께서 저놈의 수정궁을 건설하는 데 이 몇 년 동안 종단의 어마어마한 예산을 끌어다 쓴 터라 현재 이 황금 사원에는 여유 인력은 팽팽 남아도는 데 반해 그들을 부릴 만한 인건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니 예전 같았으면 응당히 누군가가 대신 해줬을 법한 이런 사소한 일들도 근래 들어선 본인 스스로가 전부 알아서 자급자족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지금 굉장히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엊그제, 밀수해둔 라면을 침대에서 몰래 먹다가 이불에다 국물만 안 흘렸어도 이렇게까지 큰 고민은 안 했을 거다.
허나 혹시라도 내가 떠난 직후, 어떤 이가 내 방에 들어와서 이 너저분한 이불 꼴을 보기라도 한다면, 그간 대외적으로 쌓아올린 내 정결한 이미지가 한순간에 시궁창으로 곤두박질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미 영하권으로 뚝 떨어진 바깥 온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누구 씨의 예산 삭감으로 인해 24시간 찬물만 펑펑 나오는 이 훌륭한 수도 시설을 상기해볼 때, 빨래는 확실히 미친 짓이었다. 찬물에 손 담그고 이불빨래 하다가 얼어 죽었다는 사람 얘긴 아직 들어본 적 없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왜냐면 동파 방지용으로 졸졸 틀어둔 물이 다음 날 수도꼭지에서 뿜어 나오던 상태로 얼어붙은 꼴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결국 지고지순한 조강지처였던 내 이불을 헌신짝인 양 바닥으로 팽개쳐버리고 짐이나 마저 꾸리기로 결정했다. 뭐 이불은 증거 인멸차 소각장에 내다 버리고 귀환하는 즉시 새로 하나 장만하든가 해야겠다. 단출하게 챙긴 짐 보따리를 축소 가방 안에 쏙 밀어 넣고 뚜껑을 닫자, 다시 손톱크기만큼 작아진 가방을 이번엔 내 코트 주머니에 잘 넣어두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전부 끝마쳤으나 내 마음만은 좀처럼 홀가분해질 기색이 없었다.
나는 방 안 곳곳을 둘러보며 부디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되지 않기를 넌지시 염원하던 중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리자 티뷸라 궁 사무국에 재직 중인 두 명의 비구니가 들어와서 나에게 예를 갖춰 합장을 했다. 서로 합장을 마친 뒤, 그중 한 비구니가 품 안에서 두 번에 걸쳐서 사등분으로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내게로 쓱 건네주었다.
“삼장법사님, 일전에 요청하셨던 목록입니다.”
며칠 전, 앞으로의 고행길에서 필히 사용하게 될 몇몇 가지 물건들을 사무국을 통해 공식적으로 요청했던 일이 있었다.
비구니에게서 받아 든 종이를 펼쳐 들고 안에 적힌 목록들을 눈대중으로 쭉 훑어 내렸다. 내가 내용을 미처 다 확인하기도 전에 뭔가 이상한 것들이 감지되고 말았다.
“저기, 제가 신청한 것들보다 목록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한 비구니가 대답했다.
“다른 분들께서 요청하신 품목들을 모두 취합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백장들이 괴황지 일곱 묶음
최고급 경면주사 한 덩어리
간이용 붓과 벼루 세트
액운막이용 천안석天眼石 합장주
침향 108 염주
휴대용 살구나무 수제 목탁
향 300개
쉽고 간편한 혼합 요리 3.0 <출가자용 에디션>
관음존자 자화상
관음존자 자화상? 아니, 이 쓰레기 같은 게 왜 내 목록에 섞여 있지?
나는 얼른 난색을 표하며 되물었다.
“실례지만 저는 이 관음존자 자화상을 주문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나한테 맨 처음에 목록을 건네주었던 한 비구니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관음존자님께서 자신의 작은 성의이니 아무런 부담 갖지 말고 그저 고맙게나 받으라고 전하셨습니다.”
“신경 써주지 않으셔도 괜찮은데 굳이 뭐 이딴 걸 다…….”
“그걸 보며 틈틈이 명상이라도 하시라던걸요.”
나는 인상을 팍 구기며 깨알 같은 글씨로 종이 아래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다른 목록들을 계속해서 읽어 내렸다.
관음존자 미니어처 청동 피규어
관음존자 황금 열쇠고리
관음존자 옴 스티커 70매 (스티커를 자주 쓰는 물건에 붙여두면 관음존자님의 자비로운 가피를 받으실 수 있어요^^)
관음존자 자서전 「잘난 내 인생」 상중하권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관음존자 시리즈가 점점 늘어갈 때마다 내 손목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거저 줘도 안 가질 물건들로 넘쳐났다. 특히나 관음존자의 자서전 「잘난 내 인생」은 한 권당 거의 칠백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양장본인데, 안에 담긴 내용들이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완벽하게 자기 자랑만 줄줄이 늘어놓는 글이었다. 총 이천페이지가 넘는 이런 나무 살해자의 책을 내가 왜 서쪽까지 무겁게 들고 가야 되는 거지?
내 혈압을 돋우는 것은 비단 관음존자의 하사 목록뿐만이 아니었다.
<선녀강림> 29금 초호화판 화보집
수제 나무 딜도 33cm
옥 자석 정력 팬티
게르마늄 호랑이 링
콘돔 열두 개들이 서른 박스(돌출형/은은한 딸기향)
더는 내 눈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아서 차마 아래 적힌 목록들은 더 이상 단 한 줄도 읽어 내릴 수가 없었다.
“콘돔 서른 박스를 포함해 그 밖에 다른 것들은 대체 어떤 미친놈이 주문을…….”
“아, 그건 파오 님께서 따로 요청해주신 품목입니다. 그중 몇 가지 물건들은 도저히 저희 측에서도 구할 수가 없어서 그나마 간신히 추리고 추린 목록들입니다.”
나는 종이를 구겨서 바닥에 볼품없이 널브러진 내 이불 위로 휙 던져버렸다. 콘돔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딜도는 왜 주문한 거지. 그것도 33cm……?
원래 없었던 두통이 갑자기 생기더니 머리가 마구 지끈거려왔다.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살살 달래가며 간신히 화를 삭이고 있는데 비구니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입을 열었다.
“결제는 삼장법사님이 소유하신 승원 카드로 저희 측에서 자동 이체를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 잔액은 다달이 통장에서 정기적으로 빠져나갈 예정이니…….”
내가 비구니의 말을 다급하게 끊으며 말했다.
“잠깐! 호, 혹시 이거, 출장 지원금 한 푼도 안 나옵니까?”
“……네에.”
“관음존자님 지금 어디 계…….”
문답무용,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었다. 재빨리 문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나를 별안간 비구니 두 명이 내 양쪽 팔까지 꽉 붙들고서 아예 못 나가게 저지했다.
아니, 무슨 여자들이 이렇게 힘이 세?
“과, 관음존자님은 현재 외출 중이십니다!”
“놔, 이거!”
“이러셔도 소용없습니다!”
“안 놔, 이거?”
“관음존자님 지금 외출 중이시라니까요!”
“외출 중인데 대체 날 왜 붙잡아! 그리고 이 이른 시간에 밖에 무슨 볼일이 있다고 아침부터 잘도 외출했겠다!”
“진정하시고 저희가 외출 중이라면 외출 중인 줄 아세요!”
“시끄러워! 너희도 다 한통속이지!”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에 화가 아무리 머리끝까지 났어도 나는 그 종이에 적혀 있는 목록들을 전부 다 확인했어야만 했다. 오조가 다른 놈들에 비해서 엄청 양심적으로 신청한 ‘말랑말랑한 구름베개’ 말고도 그다음 목록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주 엄청난 것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쉬어가는 페이지 1 <삼장> 편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