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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오메가버스 ver.) 2 (18/41)

#IF 외전(오메가버스 ver.) 2

신인 입단을 축하하는 환영회가 조촐하게 열렸다. 시즌 개막이 바로 코앞이라 술은 못 마시고 탄산음료로 대신했다. 탄산마저 꺼리는 사람들은 물잔을 높이 들며 건배를 했다.

“우리 팀, 상하관계 그런 거 없으니까 편하게 먹어.”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런 말 자체가 압박인 걸 재영이 형은 모르시나. 조금의 불안과 긴장으로 점철된 신인들을 보니 자신의 신인 시절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슬쩍 미소 지으며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테이블 끝에 앉은 김희도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뭐지? 쳐다보고 있던 게 아니었나.

“성이, 노래 한 곡 해라.”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듯 주장 최희탁이 큰 소리로 말했다.

“선배님은 제가 시키면 다 하는 그런 사람인 줄 아세요?”

설마 최희탁에게 대들 줄 몰랐는지 신입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다면 잘 보신 겁니다. 시키면 다 하는 남자 임성. 노래 한 곡 뽑겠습니다.”

임성은 빈 병에 숟가락을 꽂아 임시 마이크를 만들고선 벌떡 일어났다.

“승리, 승리. 우리는 승리한다. 페어리즈. 이솔 페어리즈. 최강 페어리즈. 승리의 그 이름. 자, 다 같이 최강 페어리즈.”

마이크를 든 손을 신인들 쪽으로 뻗었다.

페어리즈! 처음엔 쭈뼛쭈뼛 눈치만 보던 신인들이 페어리즈를 외쳤다. 소속감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풀어졌다. 한 사람만 빼고. 김희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임성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아직 좀 춥네.”

왁자지껄 자리를 벗어나 바람도 쐴 겸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평일 저녁임에도 거리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잠시 보다가 편의점으로 향했다. 바나나 우유와 여동생들에게 줄 젤리, 그리고 막대 사탕을 사서 다시 돌아갔다.

“그래. 우리 이림이 세림이 좋아하는 복숭아 젤리 샀지. 공주님들 숙제는 다 했어?”

수화기 너머로 짹짹대는 여동생들의 목소리에 웃으며 걷던 임성이 우뚝 멈춰 섰다. 벽에 기대어 선 김희도가 보였다. 그 역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이제 끊어야겠다. 응, 내일 갈게. TV 너무 오래 보지 말고 일찍 자.”

전화를 마무리하고 폰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김희도를 불렀다.

“김희도? 너 거기서 뭐 하냐?”

“저 압니까?”

응? 임성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설마 자신이 신인들 이름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내가 그렇게 몰인정해 보였나.

“우리 같은 고등학교야. 아니, 그전에 나한테서 홈런 두 번이나 뽑아낸 놈을 어떻게 잊겠냐? 그때 우리 학교 너희 학교한테 져서 떨어졌잖아. 기억 안 나?”

그 시합 일등 공신이 너고. 임성이 눈썹을 내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기억 못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 있었네요. 머뭇거림이 섞인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시비 거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자신을 기억하는지 묻는단 걸 깨달았다.

이참에 자신도 궁금한 걸 묻기로 하고 김희도의 옆에 나란히 섰다.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서는 남자를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너 1학년 때 왜 야구부에 안 나왔어?”

“그것도 알아요?”

참나. 쟨 자신을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3학년 때 주장이 자신이었고, 감독에게 직접 김희도의 부재에 관해 물어보기까지 했다. ‘개인 사정’이라는 대답을 듣곤 그런가 보다 했지만.

“조절을 못 할까 봐요. 그래서 못 갔습니다.”

“무슨 조절?”

“그땐 나도 어렸으니까 지금처럼 참을 자신이 없었거든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겁먹고 도망가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뭘? 제 질문에 대한 대답 같긴 한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음.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를 뒤적여 꺼낸 막대 사탕을 내밀었다. 그의 고개가 제 쪽을 향하자 반쯤 어둠에 잠겨있던 얼굴이 드러났다. 재영이 형 말대로 잘생기긴 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당 떨어질 때 먹어. 특별히 내가 아끼는 딸기우유 맛 주는 거다?”

김희도는 고개를 슬쩍 숙이며 사탕을 받고선 둥근 포장지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임성은 레몬맛 막대 사탕을 입에 넣고 굴렸다.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상큼하네.

주머니 안의 휴대폰이 징징대며 울렸다. 권재영의 이름이 뜬 걸 보니, 슬슬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희도야. 아직은 선배들 좀 어렵지? 약속 있거나 피곤하면 먼저 돌아가도 돼. 선배들에겐 내가 말할게.”

“그쪽은요?”

“어? 나는 재영이 형이 불러서. 이제 들어가야지.”

“여전히 주변에 사람이 많네요.”

거슬리게. 김희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응?”

“저도 같이 들어간다고요.”

금방이라도 집에 갈 것 같던 태도가 무색하게 따라 들어왔다.

* * *

슈퍼 루키. 본업을 잘하는 기대치 높은 신인에게 꼬리처럼 따라붙는 별명이었다. 고교 시절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김희도는 올 시즌 최고 유망주로 꼽혔다.

시즌이 시작되고 약 1개월이 지난 지금, 슈퍼 루키라는 별명에 의문을 표하는 팬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신인이 1군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건 대단했지만,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 정도로 큰 활약은 없단 뜻이었다.

“고등학교 때보다 빠따가 퇴보했네요. 저 김희도가 고전하는 거 보니까 역시 프로의 세계는 냉혹한가 봐요.”

“쟤가 그렇게 잘 쳤어?”

“신이 싸가지 대신 실력을 줬다고 생각했을 정도요. 저 새끼가 역대 고교 기록 싹 다 갈아 치웠잖아요.”

재수는 더럽게 없지만요. 조예준이 입술을 삐쭉대며 불만스럽게 덧붙였다.

임성은 현재 2군 생활 중이었다. 스캠까지 별 탈 없이 잘 마치나 싶더니 시즌 직전 엄지손가락에 살짝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심각한 건 아니지만, 시즌 초니만큼 완전히 회복 후 복귀하라는 감독의 명령이 있었다. 덕분에 퓨처스 리그에서 조예준과 함께 뛰고 있었다. 중고교 시절 배터리로 뛴 짬이 있는지, 연승을 기록 중이었고.

“저 정도면 잘하는 편이지. 신인이잖아.”

“득점권 타율이 영 꽝이잖아요. 속 빈 강정이죠.”

조예준이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준아. 너는 쟤 알파인 거 알았어?”

웨이트실 벽 한쪽에 붙은 TV 화면에서 헬멧을 벗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김희도가 보였다.

“말도 마세요. 제가 그 얘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사실 저 새끼 존나, 존나 예민하거든요. 어쩌다가 맨살이 스치기라도 하면 사람 민망할 정도로 정색하는 건 기본이고요. 무슨 말을 해도 호응이 없고. 여태까진 그냥 재수 없는 놈인가 했는데 알파라서 그 지랄했나 싶더라니까요. 알파들은 원래 오만하잖아요.”

“저번에 환영회 했었잖아. 그때 보니까 그렇게 예의 없는 것 같진 않던데?”

“그럴 리가요. 주장이 잘못 본 게 틀림없어요. 아니면 다른 사람을 착각했거나.”

조예준은 바로 정색하며 제가 보고 겪은 김희도의 일화를 몇 개 얘기했다. 조예준의 이야기 속 김희도는 용케 팀 스포츠를 했구나 싶을 정도로 사회 부적응자 그 자체였다.

* * *

오늘은 유니콘즈 2군과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선발 투수로 출장한 임성은 3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바람이 제법 쌀쌀한 초봄인데, 꼭 한여름 땡볕에 선 것처럼 땀이 흥건했다.

앞에 앉은 조예준이 사인을 보냈다. 땅볼을 유도해 병살로 잡자는 작전이었다.

후우, 마른 흙냄새가 뒤섞인 숨을 들이켜며 피칭 자세를 하다가 문득 누군가를 발견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화려한 얼굴과 늘씬한 체격. 묘하게 시선을 빼앗는 존재. 김희도였다. 그는 사람이 몇 없는 썰렁한 관중석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 서울에서 경기 준비 중일 애가 이천까진 웬일이지? 말소된 건가? 그렇다기엔 부상이라는 말은 없었는데. 아니면 놀러 왔나?

그도 자신이 본인을 발견했다는 걸 알아챈 것 같았다. 고개를 까딱이거나 눈짓을 할 법도 한데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선배.”

덩달아 쳐다보다가 조예준 목소리를 듣고 공을 쥐었다. 아, 경기 중이었지.

지금은 김희도가 왜 여기 왔는지보다 눈앞의 타자를 돌려세우는 게 먼저였다. 임성. 인마. 정신 차리자.

퉁! 조금 낮게 날아가는 것 같던 공은 유니콘즈 타자의 배타에 맞고 빠르게 뻗어나갔다. 공을 잡은 유격수가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2루수에게, 2루수가 1루로 송구하며 순식간에 두 개의 카운트가 올라갔다. 깔끔한 마무리였다.

이닝을 끝내고 모자챙을 만지며 김희도를 찾았지만, 이미 보이지 않았다.

볼일이 있어서 잠시 들렀던 걸까. 환영회 이후 김희도와 연락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갑자기 안부 인사를 할 만큼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상하네.”

꼭 여우에게 홀리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이상하고도 갑작스러운 방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거리가 먼 원정 경기 제외, 선발로 설 때마다 김희도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중에는 제가 먼저 그를 찾을 정도였다. 이유를 묻고 싶어도 오지랖이란 소리를 들을까 봐 참았다.

날 보러 온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사이 컨디션도 완전히 회복하고, 기다리던 콜업을 받았다. 간단히 짐을 꾸린 후 숙소를 나오는데 매니저 형과 뜻밖의 한 사람이 입구에 기다리고 있었다.

“엥, 김희도?”

쟤가 왜 여기서 나와?

심지어 오늘은 경기가 없는 월요일이었다. 굳이 이천까지 올 이유가 없단 뜻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매니저 형에게 눈으로 물었지만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겠단 뜻이었다.

“서울 갈 거죠? 타세요.”

환영회 이후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경기에 이기는 날엔 구단 유튜브에 더그아웃 직캠이 올라오는데 거기서도 김희도의 육성은 들리지 않았다.

재경이 형 말로는 아싸도 저런 아싸가 없다나? 신인이 으레 그렇듯 선배를 어려워하거나 어색해하는 게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단다. 아무튼, 그런 평가를 받는 남자가 서울까지 데려다준다는 게 의아했다.

하지만 버스로 이동하는 것보다 승용차로 가는 게 훨씬 편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일한 생각은 김희도 뒤에 있는 차를 확인함과 동시에 사라졌지만.

“그거 네 차야? 지금 그걸…… 타고 가자는 건 아니지?”

“무슨 문제 있어요?”

문제가 있다고 할지, 없다고 할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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