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외전(오메가버스 ver.) 13
임성이 눈을 떴다. 눈두덩은 뻑뻑하고 무거운데 기분은 상쾌한, 완전히 상반된 두 개의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아침 훈련 하러 가야지. 평소처럼 몸을 일으키려다가 무언가 자신을 칭칭 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대로 시선을 들어 올렸던 임성이 당황하며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얘가 왜 여기 있지. 아니, 그것보다 날 왜 안고 있어.
“깼어요? 몸은 좀 어때요, 배고프진 않아요?”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안겨 있는 거야. 탄탄한 근육으로 덮인 늘씬한 팔이 어깨를 지나 등을 껴안고 있었다. 김희도의 품은 따뜻했고 좋은 냄새가 났다. 여동생을 재워 준적은 많아도 누군가에게 안긴 채 깨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김희도와?
임성은 나사가 빠진 로봇처럼 어, 어? 만 반복했다. 김희도는 눈매를 나른하게 풀어 배부른 사자처럼 웃으며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방금 뽀, 뽀뽀한 건가? 임성의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럽게 변했다.
“물 마실래요? 목 많이 따가울 거예요.”
원래도 자신을 잘 챙겨 주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뭐랄까 너무, 너무 살갑고 간질거린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왠지 애인을 대하는 듯한……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허공에 시선을 둔 채 멍하니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보던 김희도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자신과 눈을 맞췄다.
“기억 안 나요? 선배 히트 와서.”
“어? 내가 히트…… 아.”
아. 임성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여태 그 중요한 걸 어떻게 잊고 있었지. 사고 쳤구나. 그것도 아주 큰 걸로.
히트 사이클.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임성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떻게 수습하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젠 수치가 어떻든 오메가인 이상은 히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선배. 어디 안 좋아요? 병원 갈래요?”
김희도가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시트에 가려졌던 몸이 드러났다. 운동선수가 저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깨끗한 몸은 여기저기 깨문 흔적과 손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자신이 저렇게 만든 걸까? 달아오른 임성과 달리 그는 아무렇지 않게 침대를 벗어나 생수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니까 어제, 내가 널…… 막, 어떻게…….”
몇 번이나 숨을 들이켜고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말끝을 흐렸다. 혼란스러웠다.
김희도가 제 가방을 집 앞까지 가져다주고, 제가 억제제를 꺼냈으며, 김희도가 그것을 빼앗아 던진 일은 생각났다. 그 뒤론 페로몬이 온몸을 짓누르는 감각과 배 안쪽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욱신댔던 것만 떠올랐다. 숨결, 공기. 그 모든 게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햇볕에 늘어져 있던 뱀 비늘을 맨발로 밟는 기분이었다. 간지럽고 뜨거우면서 목 뒤가 절로 섬뜩해지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제어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누가요? 선배가 절요?”
김희도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살짝 미소 지었다. 풋풋하던 얼굴에 금세 묘한 나른함이 번졌다. 임성은 재채기가 나기 직전처럼 간질간질한 목을 쓰다듬으며 시선을 돌렸다.
“저기, 희도야. 미안한데 내가 지금은 정신이 좀 없어서. 나중에 얘기해.”
우선 김희도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내키지 않는 듯 아랫입술을 살짝 내밀었지만, 강경한 임성의 태도에 마지못해 돌아갔다.
현관을 나가는 순간까지 같이 있으면 안 되냐고 묻는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미안. 조금 이따 연락할게.”
지금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 동안 물밖에 못 마셨으니까 밥 꼭 챙겨 먹어요. 부드러운 걸로요.”
“잘 가. 차 조심하고.”
겨우 김희도를 보내고 방으로 돌아가던 임성이 신발장 근처에서 굴러다니는 억제제를 발견했다. 잘그락, 소리를 듣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사흘. 3일 동안 김희도와 뒹굴었다.
정신이 있을 때도, 잃었다가 깼을 때도 끊임없이 김희도에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제 안은 김희도의 성기 모양으로 길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감정과 감각이었지. 끝이 보이지 않는 물속에 흠뻑 빠진 것 같다가도 온몸이 바짝 말라 쪼그라들었다. 이런 쾌감이 가능할 수 있구나.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선배가 좋아요. 좋아해요. 좋아해요. 미칠 정도로.’
“하아……. 어떡하면 좋냐.”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한숨도 자지 못하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복잡한 머리만큼이나 심경도 착잡했다.
-페어리즈 김성열 단장님: 정신 차리면 사무실로 와라.
어젯밤 확인한 단장님의 문자였다.
“미치겠네. 이러다 방출되는 거 아니야?”
갑자기 뛰쳐나간 뒤 며칠 동안 연락 두절이었으니 당황하셨겠지. 이 일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직 자신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갑자기 왜? 그동안 아무 일 없이 멀쩡했잖아. 알파도 자신의 페로몬을 맡지 못했는데 왜 히트가 온 거지? 어째서.
한숨을 푹 내쉬며 현관문을 열었다. 고작 며칠 새 더욱 달아오른 공기가 뺨에 달라붙었다. 모자챙을 살짝 내리며 걷던 임성은 현관문 바로 옆에 뭔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쓰레기봉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큰…… 잠깐만.
“김희도? 희도 맞아?”
쪼그린 채 무릎을 껴안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이 와중에도 아침 햇볕을 받은 얼굴은 여전히 멋있었다.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설마, 너 여기서 밤샜냐? 집에 간 거 아니었어?”
김희도와 히트를 보내면서 두 사람이 입었던 옷은 걸레짝이 됐다. 땀과 정액으로 범벅된 건 물론, 그 튼튼한 단추가 다 뜯겨 성한 곳이 없었다. 차마 넝마가 된 유니폼을 입고 돌아가라고 할 순 없었기에 자신의 옷을 빌려줬다. 제겐 딱 맞았던 옷이 김희도에겐 조금 작은 듯해서 그 와중에도 자존심 상했지.
아무튼 지금 옷차림을 보니 김희도는 어젯밤에 돌아가지 않은 것 같았다. 대체 몇 시간을 이러고 있었던 거야. 왜?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김희도의 양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김희도를 집에 돌려보내는 것을 실패하고 결국 함께 구단으로 향했다. 도착해서는 김희도를 복도에 세워 두고 혼자 들어갔다. 팀은 이미 원정길에 올랐기에 사무실엔 단장밖에 없었다.
그는 임성을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앞쪽 의자를 가리켰다.
“대충 얘기는 들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임성의 고개가 아래로 수그러들었다. 과연 들었다던 ‘대충’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제가 연락한 적은 없으니 아마 김희도가 했겠지. 잘못한 것도 아닌…… 잘못한 게 맞지 않나? 이곳에선 오메가라는 자체가 잘못이었으니.
“너 여태 정상…… 수치 변화 없었잖아. 이제껏 아무 일 없어 놓고선.”
중간에 말을 고친 단장이 골치 아픈 듯 이마를 짚으며 다른 손으로 책상 위를 두드렸다. 톡톡톡. 일정하게 이어지는 소리가 그의 고민을 대변하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말고 뭐가 더 필요할까.
“팀에 피해를 끼친 건 부정하지 않지만, 엄연히 말하면 개인적인 일이야. 외부 징계는 없을 거고 내부 징계는 아직 논의 중이다. 속단하긴 이르지만, 아마 없을 가능성이 커. 문제는 이번 일에 대한 게 아니야.”
불안에 감응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어질 말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진짜 문제는 앞으로지. 계속 히트가 올 수 있단 뜻이잖아.”
“…….”
차마 아닐 거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임성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들었다가 어두운 표정을 한 단장과 눈이 마주쳤다.
“알파와 오메가가 한 팀에서 뛰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건 알지? 필연적으로 사달이 벌어진다는 것도. 뭐, 본능이니까 탓할 생각은 없다.”
“꼬박꼬박 검진받고 억제제도 잘 챙겨 먹겠습니다. 팀에 절대 피해 안 가게 하겠습니다. 저 이 팀에서 공 던지고 싶어요.”
“네가 얼마나 팀에 도움 되려고 노력하는지 모르겠냐? 훈련장에 제일 오래 남아 있는 것도 너잖아. 근데, 성아. 이건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내가 확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장은 담배를 찾듯 상의를 더듬다가 사무실이라는 걸 깨달았는지 손을 내리고 한숨을 내뱉었다. 꼭 그것이 자신을 향한 걱정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똑똑. 무거운 공기를 깨트리는 노크 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김희도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단장은 임성을 힐끔 보더니 “들어와.” 하고 말했다. 곧 김희도가 들어왔다. 그는 임성 옆에 앉더니 말아 쥔 주먹을 제 손바닥으로 덮었다.
“선배 잘못 아니에요. 고개 숙이지 마세요.”
김희도는 임성을 향해 조용히 미소 짓고선 단장을 쳐다봤다. 은은하게 걸려 있던 미소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원인 제공은 저니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만약 선배가 구단에서 나가면 함께 나가겠습니다.”
“뭐?”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죄인처럼 침묵하던 임성도 답답한 얼굴로 뒷머리를 헤집던 단장도 입을 떡 벌렸다.
“계약금과 선수의 잘못으로 인한 위약금 모두 물겠습니다. 언론엔 뭐라 하셔도 대응하지 않겠습니다. 이 일을 말해도 좋, 상관없습니다.”
이게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김희도! 너 미쳤어?”
단장 앞이라는 것도 잊고 큰소리를 냈다.
“네.”
미쳤냐는 질문에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야 히트가 일어난 오메가라 시한폭탄이지만, 김희도는 아무 제약도 없지 않나.
“뭐냐, 협박처럼 들리는 건 내 기분 탓이지?”
당연히 단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협박인지 아닌지는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겠죠.”
“너 되게 웃긴다. 무슨 메이저에서 뛰는 톱선수도 아니고, 고작 올 시즌 데뷔한 신인이? 본인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 자신감도 적당히 해야 좋은 법이다.”
“그건 구단이 판단할 몫이고요.”
덤덤하게 맞받아치는 말에 하아, 단장이 양손으로 머리통을 감싸 쥐었다. 하필이면 저 건방진 새끼가, ……알파여서. 같은 중얼거림이 언뜻 들렸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듯 움켜잡던 손을 내린 단장이 “잠깐만.” 하며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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