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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오메가버스 ver.) 17 (33/41)

#IF 외전(오메가버스 ver.) 17

임성은 일단 이천에서 컨디션 조절 겸 상태를 체크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그라운드를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오늘은 홈경기라 선수들이 미리 나와 훈련 중이었다. 그라운드로 향하는 복도 저 끝에서 셔츠를 펄럭이며 걸어오는 권재영이 보였다.

“재영이 형.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야. 임성. 너 이 새끼! 부상은 다 나았냐? 갑자기 말소돼서 놀랐잖아.”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뛰어온 권재영이 한쪽 팔을 높게 들었다. 헤드록을 걸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도는 튼실한 팔이 임성의 목을 휘감기 직전, 김희도가 그의 어깨를 감싸 제 뒤로 당기면서 무산됐다.

“권재영 선배. 김세현 코치님이 할 말 있는 것 같던데, 들었습니까?”

“코치님이? 알았어. 성아, 그럼 이따 보자.”

쓰읍,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거지? 농땡이 친 거 들켰나. 중얼거리던 권재영이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네, 형. 들어가십쇼.”

권재영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것까지 보고 김희도에게 물었다.

“코치님이 재영이 형 불렀었나?”

“투코가 투수한테 할 말이 없겠어요? 일단 찾아가면 뭐라도 말하겠죠.”

와, 이 자식 좀 봐라.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하는 김희도가 어이없었다.

권재영에 이어 만난 사람은 오웬 엘리오스였다.

“헤이, 오웬.”

통역사와 열심히 대화하던 오웬은 임성이 부르자 반가운 얼굴로 기다란 팔을 내밀었다. 자연스럽게 맞잡으려는데 갑자기 오웬이 “쒯! 더 뻑!” 된소리로 욕을 뱉으며 상체를 물렸다. 덕분에 악수하러 뻗은 임성의 손만 허공에 어색하게 방황했다.

왜 저래요? 옆에 있는 통역사에게 눈으로 물었다. 오웬과 몇 마디를 주고받던 통역이 곤란한 듯, 혹은 머쓱한 듯 코끝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너 거북하다는데?”

“제가요? 갑자기 왜요?”

“자기도 모르겠대. 하루 종일 멀쩡하다가 갑자기 내키지 않는다는 거 보니까 컨디션이 안 좋나 봐. 수고하고 다음에 보자.”

의문을 채 해결하기도 전에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본 오웬의 미간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여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나방을 볼 때 딱 저런 표정이었다.

“이름만 부른 게 싸가지 없었나?”

어쨌든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 형이라고 해야 했나. 그러기엔 여태 아무 말 없었을 뿐 아니라 오웬보다 어린 선수들도 그를 편하게 불렀다.

……혹시 내가 오메가라서? 아니야. 현재 페로몬 비활성화라잖아. 하도 지독한 히트를 보내 당분간은 페로몬을 쥐어짜도 안 나올 거라고. 바짝 마른 수건이란 소리까지 들었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둬요. 짐 싸러 갈 거죠? 제가 도와줄게요.”

* * *

복귀 사흘 만에 1군 합류 소식을 들었다. 지난 경기 퓨처스에서 던진 공이 너무 좋다는 게 이유였다. 원정 중간에 콜업을 받은 거라 혼자서 경기장까지 찾아가야 했다. 소취제와 억제제를 꼼꼼하게 챙기고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잠깐 눈을 붙였다가 떴더니 벌써 부산 도착이었다.

어묵 좀 사 갈까? 여기 치즈 고로케 어묵 진짜 맛있던데. 역 안에 있는 유명 어묵 가게를 떠올리며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

에스컬레이터 끝까지 올라온 임성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대합실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중이었는데, 그는 개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할까. 흔치 않은 체격인 이유도 있겠지만, 분위기 자체가 묘했다. 누구든 저 남자에게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몇몇 사람은 그가 누군지 알아본 듯 연신 힐끔거렸다. 신기한 점은 사인을 해 달라거나 몰래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이었다.

희도야. 이름을 부르기 전에 김희도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물기 없이 메마른 땅 같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임성이 제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왜 이렇게 심장이 쿵쿵댈까.

“선배. 잘 왔어요.”

김희도가 팔을 양쪽으로 활짝 벌리며 빠르게 뛰어왔다. 주인을 오랜만에 본 강아지도 쟤처럼 격하게 반기진 않을 것 같았다. 픽 웃으며 어느새 눈앞에 선 김희도의 머리를 마구 흐트러트렸다.

“너 최근 엄청 날아다니더라. 세 경기 연속 멀티 히트 축하해.”

농담이 아니라 최근 김희도는 날아다니는 걸 넘어 지구를 뚫고 나갈 기세였다.

김희도는 다짜고짜 야구 얘기부터 하는 임성에게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선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페로몬이 멋대로 춤추는 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비결이 뭐냐? 나도 좀 알자.”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 구애할 때 수컷들이 앞가슴을 부풀리거나 깃털 손질을 하잖아요.”

“그래그래. 그래서 진짜 비결이 뭐냐니까?”

“사랑이요.”

이러다 희망과 용기까지 나오겠네. 허허 웃으며 캐리어 손잡이를 끌었다. 바퀴가 한 바퀴를 채 돌기도 전에 옆에서 빠져나온 손이 그것을 가져갔다.

* * *

반가움의 표현은 기차역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선배 못 보면 서울 가려고 했어요.”

호텔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김희도가 꽉 껴안았다. 체중을 실어 꾹 누르는 것을 못 이긴 상체가 뒤로 꺾였다. 넘어가는 허리를 휘감아 지탱한 김희도가 임성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뜨겁고 축축한 혀가 살갗을 느리게 핥았다. 지독할 정도로 좋은 체취. 몇 번이고 맛봤는데도 부족했다. 이 탄탄한 살갗이 얼마나 달큼한지 알기에 더 참기 힘들었다.

“너 지금 무슨 생각 하냐? 지금 엄청 진득진득한 냄새 나거든.”

“선배가 맡는 냄새랑 같은 생각 중이요.”

달뜬 숨과 함께 밀려오는 체취가 아찔할 정도로 기분 좋았다. 허벅지를 찌르는 묵직한 것도 흥분을 부추겼다. 임성은 무의식중에 김희도의 목을 핥으려다가 정신을 차렸다.

와, 방금 큰일 날 뻔했네.

“단장님 말 기억하지? 우리 조심해야 해.”

단호한 말에 김희도가 입맛을 쩝 다시며 물러섰다. 당장 저 남자의 목에 이를 박고 싶었지만, 미움받지 않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 * *

마운드를 밟고 올라선 임성이 발끝으로 흙을 고르며 숨을 들이켰다. 무섭게 쏟아지는 여름 햇볕과 관객들의 함성이 뒤섞인 공기가 가슴을 들썩이게 했다.

현재 5회, 여전히 임성이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보통 이닝이 지날수록 어깨에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무겁고 팔꿈치가 화끈대기 마련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가뿐했다. 첫 이닝과 비교해도 구속이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제구가 정교해져 변화구가 잘 들어갔다.

수비 실책으로 선취점을 내줄 뻔했지만, 다행히 실점 없이 잘 틀어막았다. 그리고 같은 이닝 공격 때 김희도가 쓰리런을 때려 내며 페어리즈는 선취점을 올렸다.

5, 6회에 이어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오늘따라 왠지…….

송우림의 미트를 향해 힘껏 공을 던지며 제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너무, 이상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나? 마운드가 아니라 솜을 밟고 있는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완봉(完封). 한 명의 투수가 상대팀에게 한 점도 내주지 않고 9회까지 마운드를 책임지는 것. 평생 한 번도 이루지 못한 투수도 부지기수였다. 그 대기록을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젊은 투수가 해낸 것이었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는 순간 임성은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그깟 공놀이! 한 줄 게시판>

■7월 13일(금)/■분류: 전체

-페어리즈 야구공 725: (속보) 페어리즈 임성 9회에도 올라옴.

-페어리즈 야구공 736: 찐 완봉가나?? 컨디션 존나 좋아 보이긴하네... 저번까지만 해도 빌빌대더니 드디어 정신 차린건가?

-페어리즈 야구공 762: 헐;; 벌써 투아웃ㄷㄷㄷ 와 씨발;;

-유니콘즈 야구공 774: ㄹㅇ 완투각인데? 쩌네....... 페어리즈 부럽ㅠㅠㅠㅠ

-유나콘즈 야구공 912: 임성 완봉 도전임?????? 찐? 미친;

-바이킹스 야구공 917: 씨발 제발 영봉패는 피하자. 좆이킹즈ㅗ

-페어리즈 야구공 1001: 그래. 성아 니 승리는 니가 직접 챙겨ㅠ

-페어리즈 야구공 1080: 미쳤다ㅋㅋㅋㅋㅋㅋㅋ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9회까지 던지네

-돌핀스 야구공 1112: 공 100개도 안됐구만.. 완봉 할만하지ㅋㅋㅋ 팝콘 잼~

-바이킹스 야구공 1182: 구속 145ㄷㄷㄷ 미친거아님? 9회에????????

-바이킹스 야구공 1193: (속보) 바이킹스 임성 완봉 제물됨ㅋㅋㅋㅋㅋㅋ 사람 열받게 하지말고 해체해라

-바이킹스 야구공 1194: 아이고... 바이킹스야...바이킹스야...

-페어리즈 야구공 1544: 경기 끝!!!!!!! 선발:임성 홀드:임성 세이브:임성 승투:임성

-바이킹스 야구공 1685: 씨발 바이킹스 너넨 집까지 오리걸음으로 가라ㅡㅡ

-페어리즈 야구공 1774: 방금 김희도 웃는 거 본 사람? 잘못 본건가?

-엘리펀츠 야구공 1775: 나도 봄;; 존나 놀랬네;;;;;;;; 뭔데;; 존잘ㅋㅋㅋㅋ

-페어리즈 야구공 1806: 시즌 중반에 임성 못한다고 2군 가라한 놈들 다 머리 박아

-페어리즈 야구공 1989: 나 경기 못 봣는데 성이 완투함????????? 심지어 완봉이라니. 띠용

-유니콘즈 야구공 2088: 개돌았다. 임성 오늘 ㄹㅇ 미침

-페어리즈 야구공 2102: 성아ㅠㅠㅠㅠㅠ 우리 아기요정 ㅠㅠㅠㅠㅠㅠㅠ장하다 내 새끼..

-페어리즈 야구공 2107: 그저 빛.. 성이랑 결혼하고 싶다ㅜㅜ

-페어리즈 야구공 2108: 윗댓;; 우리 성이 착하게 살았거든요ㅡㅡ???

-페어리즈 야구공 2134: 김희도 수비 존나 미침! 김희도가 슬라이딩 캐티하는거 개보기 드뭄ㅋㅋㅋㅋㅋㅋ

-엘리펀츠 야구공 1147: 김희도 슨슈 조오오오오오오ㅗㅗㅗᅟᅩᆫ잘 저번에 지나가면서 봤는데 카메라가 실물을 못담음. 찐개존잘임

-페어리즈 야구공 2206: 임성 고등학교 때 저평가 당한거 생각하면 ....ㅠㅠ 이치연이랑 비교하면서 욕 많이 먹었잖아.... 그때 악플 단 새끼들 존나 밤길 조심해라,, 쓋팔

-레전드스 야구공 1023: 페어리즈 2206 뭐임?ㅋㅋㅋ 급발진

-페어리즈 야구공 2212: 2206 타팀 실명 언급 자제좀; 그냥 성이 칭찬만 하면되지 비교는 왜 함? 여기 다른 팀 팬도 다 있는데.......

-페이리즈 야구공 2213: 2206 팀팬 맞음? 어그로ㄴㄴ

-페어리즈 야구공 2273: 임성 직구 개돌았다..진짜 멋있었어ㅠㅠㅠ 물론 얼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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