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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외전(오메가버스 ver.) 25 (41/41)

#IF 외전(오메가버스 ver.) 25

임성은 열성 오메가였다. 뒤늦게 발현해서인지, 페로몬 수치가 평균보다 한참 낮아서인지 자신이 오메가라는 의식이 없는 듯했다. 김희도는 그가 오메가든 알파든 베타든 상관없었지만, 페로몬에 휘둘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야.

임성이 다른 알파에게 조금이라도 반응했다면 두 사람의 관계도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아주 많이.

각인한 알파나 오메가는 오직 그 사람에게만 반응했다. 각인 대상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의미가 없어져 우성 오메가가 눈앞에서 히트를 일으킨대도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딱 그만큼 각인 대상자에게 미치는 것이었다.

다른 페로몬을 느끼지 못하니까 갑작스러운 발정기에 시달리지 않아서 편할 것 같지만, 그건 각인 대상자를 잃은 알파와 오메가를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였다.

‘선배. 내 손 잡아 주세요. 지금 엄청 긴장돼요.’

김희도는 루틴을 핑계로 그의 손을 잡고 자신의 페로몬을 조금씩 흘렸다. 매일매일, 조금씩.

의도하지 않아도 그의 옆에 있으면 페로몬이 멋대로 둥실둥실 떠올라 그의 살갗에 내려앉았다. 만약 볼 수 있다면 살랑살랑 춤추다가 게걸스럽게 달라붙지 않을까.

그 남자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지난 3년간 배 속에서 뒤틀리던 기운이 잠잠해졌다. 마치 주인을 만난 개처럼. 혹은 그 개가 마킹을 하듯이.

하지만 안정감은 얼마 가지 못했다. 임성과 함께 있는 날이 늘어날수록 김희도는 제 페로몬이 점점 더 통제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느꼈다.

타들어 가는 목구멍에 물 한 방울을 떨어트리면 당장의 갈증은 해결되지만, 곧 더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는 것과 같았다. 그의 흔적이 잔뜩 묻은 물건에 코를 박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원하는 마음만 커질 뿐.

야. 김희도. 임성 쟤, 네 거잖아. 하고 싶은 대로 해.

김희도가 본인과 충돌하는 사이 임성 역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체취가 점점 깊고 진하게 느껴졌다. 땀을 흘릴 때면 달큼한 향이 더 참기 힘들었다.

‘희도야. 나 감기 걸렸나 봐. 너도 조심해.’

컨디션 조절을 잘못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김희도는 흥분인지 희열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

날 위해 존재하는 남자. 설령 자신이 그를 위해 존재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이미 제겐 임성밖에 없었으므로 절대 놓아줄 수 없었다.

히트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열성 오메가는 우성 알파의 곁에서, 그가 쏟아 내는 페로몬을 은밀히, 그러나 온전히 받으며 조금씩 형질이 변해 갔다.

그리고 결국 히트가 찾아왔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더는 중요치 않았다. 김희도는 도망가듯 저를 지나치는 남자를 느긋이 뒤쫓았다. 혹시 그가 의심할까 봐 그의 가방까지 챙기고선.

임성의 자취방. 꽉 닫힌 문. 이 너머에 히트가 온 임성이, 자신의 짝이 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묘한 흥분으로 숨이 가빠지는 게 느껴졌다.

6년.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를 상대로 홀로 각인한 지 6년째였다.

‘선배. 가방 여기 놓아둘게요. 누가 가져가기 전에 찾아가요.’

가방을 내려놓고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죽였다. 복도 전등이 꺼지며 어둠이 찾아왔다.

길고 긴 억겁, 혹은 찰나 같기도 한 시간이 지나고 천천히 문이 열렸다.

훅, 열기와 함께 황홀한 향이 번졌다. 손바닥과 손끝이 저리다 못해 찌릿찌릿 울렸다. 겨우 버티고 있던 이성이 흐려지고 본능이 그 자리를 채웠다.

러트 때 기억은 정확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곤죽이 되고 온몸의 감각이 흉포하게 날뛴 것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 그의 다리를 잡아 벌려 발정기의 짐승처럼 성기를 쑤시면서도 부족함을 느꼈다. 살점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깨물고 빨아도 갈급했다. 더, 조금 더 깊게 닿고 싶었다. 난폭할 정도로 강렬한 독점욕이었다.

그냥 러트라도 이성이 끊기는데 하물며 각인한 오메가였다. 애써 억눌렀던 욕망이 폭발하듯 터졌다.

그의 모든 것을 갖고 싶었고, 자신을 모조리 주고 싶었다.

선배도 내게 각인해 주지 않으려나. 물론 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 없었다. 각인 여부와 상관없이 그를 놓아줄 마음이 전혀 없었으므로.

“누군지 몰라도 참 불쌍하다. 어쩌다 너 같은 놈 눈에 띄어선.”

차도현은 독한 술을 한 번에 들이켠 사람처럼 혀를 쯧 찼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 같던 페로몬 수치가 안정된 걸 보면, 각인한 오메가와 같이 밤을 보낸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꽤 높은 확률로 그 오메가는 너덜너덜해졌겠지.

“그 사람은 지금 멀쩡하냐? 웬만해선 네 페로몬 못 받아 낼 텐데.”

차도현은 저 허우대만 멀쩡한 미친놈에게 걸린 상대에게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다. 지난 6년간 몰래 쫓아다니면서 집착했는데 곱게 놔뒀을 리가 없지. 앞으로는 또 어떻고. 안 봐도 고생길이 훤하네.

“그쪽은 너 우성 알파인 거 알아? 알면 되게 좋아하겠네. 돈 많아, 나이 어려, 게다가 각인까지 했으니 바람피울 일도 절대 없잖아. 성격이 개차반인 게 좀 많이 흠이지만.”

알파. 개중에서도 우성 알파는 현대 사회에선 살아 있는 왕좌, 권력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타나 열성 오메가와 우성 알파의 연애, 혹은 결혼을 두고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언론에서 떠드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페어리즈 단장이 건방진 새끼라고 투덜대면서도 한발 물러선 것도 김희도가 우성 알파인 이유가 컸다. 등급이 높을수록 체력을 포함한 운동 능력이 좋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으니까. 첫 시즌에 온갖 기록을 갈아 치운 것만 봐도 답이 나왔다.

불공평하다 해도 이게 알파가 가진 능력이었다.

“관심 꺼.”

내내 심드렁하던 목소리에 처음으로 감정이 실렸다.

“어쭈. 내 입에 올리는 것도 아깝다 이거야?”

“알면 입 닫으라고.”

“아, 네네. 알겠습니다.”

어휴, 저 싸가지 없는 새끼. 저 개 같은 성격은 옛날부터 변하질 않는구나. 속으로 투덜거리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볼일 끝났으면 얼른 꺼지라는 뜻이었다.

김희도는 검사 결과지엔 시선도 두지 않은 채 진료실을 나왔다. 집안 사정과 자신의 형질, 체질을 알고 있는 차도현이 편했지만, 그 역시 알파라 불쾌함이 컸다.

선배는 뭘 하고 있으려나. 보고 싶다.

옷깃에 달라붙은 체취를 떼어 내듯 옷을 탁탁 털며 병원을 나오던 김희도는 벤치에 앉은 남자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모자를 푹 눌러 쓴 탓에 매끈한 콧날 중간부터 드러났지만, 누군지 몰라볼 수 없었다.

남자는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고선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겼다. 살짝 상기된 뺨은 그 언젠가의 가을을 떠올리게 했다.

공기 중에 풋풋한 냄새가 섞였다. 코끝에 남았던 기분 나쁜 향을 단번에 날리는 유일한 체취였다. 혀 아래 타액이 고였다. 꿀꺽. 김희도의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다.

그때, 남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희도야.”

김희도는 마치 이끌리듯 그를 향해 뛰어갔다.

김희도가 도착하기 전에 일어선 임성이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살짝 거칠게 쓰다듬었다.

“무슨 샴푸 썼냐? 냄새 좋네.”

비누 냄새도 싫어서 무 향으로 쓰는데 향 있는 샴푸를 쓸 리가. 지금 임성이 맡는 ‘좋은 냄새’는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임성에게서 나는 향이 훨씬 더 매혹적이었다. 이성을 겨우 붙들어야 할 정도로. 혀를 내어 살갗을 핥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누르며 입을 열었다.

“언제 왔어요? 연락 안 했잖아요.”

“그냥 왔어. 못 만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야.”

눈꼬리를 내리며 씩 웃는 임성을 보던 김희도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번쩍 들어 올렸다.

어, 야야. 뭐 해. 당황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내려 달라는 듯 어깨를 가볍게 치는 걸 모른 척하며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그 자리에 내려 주었다. 생각 같아선 이대로 안은 채 다니고 싶지만, 선배가 싫어하겠지.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보러 왔잖아. 진료는 잘 받았어? 괜찮대?”

“네. 수치도 안정적이고 좋대요. 선배 봐서 더 좋아질…… 좋아졌어요.”

들뜬 기분이 전해졌는지 임성이 하하, 소리 내 웃었다. 싸늘한 겨울 공기에 하얀 입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아, 흩어지는 입김 아깝다.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뭐했어요. 점심은 먹었어요?”

“아니. 여동생들 하원 시키고 바로 오는 길이야. 너는?”

“저도 아직이요. 우리 맛있는 거 먹고 훈련하러 가요.”

“진짜? 안 그래도 변화구 하나 시험할 거 있거든. 아직 제구가 덜 되는데 쳐 보고 어떤지 말해 줄래?”

임성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지며 말이 빨라졌다. 하여튼 야구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선배가 원하면 뭐든지요.”

그나마 야구가 공을 던지고 치는 단순한 행위라 다행이지 사람이었다면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질투 나 미치겠는데 서로 말하는 꼴을 어떻게 보나.

“우선 밥부터 먹으러 가자. 간만에 또또분식 갈까?”

“좋아요. 저 매운 거 먹는 연습 했어요. 이번에야말로 5단계 성공할 겁니다.”

“무리하지 마. 난 그냥 너랑 같이 먹는 것 자체가 좋으니까.”

김희도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알면서 저러는 거면 나쁘고 모르고 저러는 거면 더 나빴다. 저 남자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질투가 났다.

김희도는 차도현을 조금도 신뢰하진 않지만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공감했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임성을 데려다 놓고 독점하고 싶었으니까.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고 싶었다. 부끄러운 말을 이 남자의 귓가에 잔뜩 퍼붓고, 또 직접 내뱉게 하고 싶었다. 옷을 모조리 벗겨 알몸으로 만들고, 자신의 흔적으로 모두 뒤덮길 바랐다. 자신에게 키스해 달라고 조르게 만들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솟는 욕망이었다.

생각만으로 입 안에 타액이 고이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정말 그렇게 할까? 김희도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핥았으며 임성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돌아봤다.

“희도. 거기서 뭐 해?”

“지금 가요.”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은 감출 수 있었다. 그래서 임성이 좋아한다면, 그래서 제게 굴러떨어진다면 순하고 얌전한 척쯤이야 얼마든지.

김희도는 저를 향해 활짝 웃는 남자를 향해 빠르게 뛰었다.

<사이클링 히트> IF 외전(오메가버스 ver.)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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