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괜히 뜨끔했다. 최수호가 내가 좋다느니, 사귀자느니 떠들어 댄 걸 엄마가 알 리는 없을 텐데.
“빨리 화해해. 괜히 수호 마음고생 시키지 말고.”
“사실 최수호, 엄마 친아들 맞지?”
“그랬으면 좋겠다, 얘.”
‘수호가 우리 집 애였으면 좋았을걸.’
엄마는 전에도 종종 얘기했다. 엄마가 최수호를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래 불쌍한 어린애는 가슴 시려서 가만히 두고 보질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부모님은.
“수호 요즘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 만큼 바쁜 모양이던데. 어린 나이에 연예계 같은 데서 혼자 일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니. 안 그래도 맘 붙일 데 없는 애잖아. 친구 좋다는 게 뭐니. 네가 이럴 때일수록 더 잘 챙겨 줘야지, 스무 살이나 먹어서 애처럼 싸우기나 하고.”
우리 집에 처음 왔던 일곱 살 때에 비하면 최수호는 한참 자랐지만, 엄마 눈에는 아직 뚱하게 고개 숙이고 다니던 어린애로 보이는 모양이다. 나한테는 매번 다 컸다면서.
처음 최수호를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인형처럼 곱상한 얼굴을 하고 표정 없이 돌아다니던 남자애. 작고 말라서 너무 세게 쥐면 어디든 부러져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어릴 때 최수호는 자주 울었다. 나하고 같이 있지 않을 때는 더 그랬다.
‘나 어제 엄마하고 전화했어.’
최수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왜 어려서나 커서나 최수호의 그런 목소리는 날 멈춰 서게끔 하는 걸까. 처음 최수호를 만났던 골목길에서 돌아보고 말았던 것처럼.
“……그래도 이번엔 못 넘어가.”
“비싸게 구네. 누가 네 아빠 아들 아니랄까 봐.”
“엄마가 몰라서 그렇지, 평소에 내가 엄청 참아 주는 거거든.”
“유세는. 엄마가 보기엔 수호가 너 때문에 고생이 많아.”
최수호, 진짜 사람 홀리는 건 소질 있다. 더 말해 봤자 뭐 하겠나.
일어서는 나를 엄마가 흘깃 쳐다본다.
“삐쳤니? 어디 가.”
“운동하러 내 방.”
“네 아빠하고 형이 게 가져온다는데 먹고 올라가. 다 왔대.”
엄마가 소파 옆자리를 두드리는 바람에 몇 걸음 옮기다 말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요즘 나 하는 거 보면 나만큼 말 잘 듣는 아들도 드물 거다.
“게? 갑자기 웬 게.”
“천 관장님이 주셨다네. 몇 년째 챙겨 주시고, 되게 살뜰하시지 뭐니.”
“천 관장님?”
천 관장님이라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 사람 정도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프로까지 형의 코치였던 분이다. 옛날부터 형하고 날 쭉 가르쳐 줬던 은사님. 이제는 은사라고 불러도 될지 상황이 모호해졌지만.
“그래. 네 얘기도 하셨다더라.”
나도 선수 준비하던 시절엔 천 관장님 아래서 열심히 배웠다. 그때 재밌었는데. 형하고 같이 훈련도 하고. 시험이 코앞인데 시합 준비하다 엄마한테 깨지기도 하고.
“열아, 너 복싱 정말 그만둔 거지?”
잠시 말이 없던 엄마가 갑작스레 물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한 물음에 움찔했다. 복싱을 재밌다고 생각하는 게, 요즘은 괜히 죄책감이 든다.
“오늘도 하다 왔는데 무슨 소리신지.”
“취미로야 상관없지. 엄마 말은, 프로 전향, 이제 정말 미련 없느냐고.”
“하고 싶다고 하면 또 울게?”
“그럼. 울지.”
아닌 게 아니라 졸업 전에 내가 복싱을 포기 못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정말로 울었다. 그것도 펑펑. 엄마만 운 건 아니고 우리 아빠도 울고, 형도 울었다. 우리 가족은 대체로 눈물이 많다. 나만 빼고.
“나는 내 아들이 둘이나 그런 꼴 나는 건 못 봐. 아들 병수발 드는 건 이제 지긋지긋해, 얘. 수발은 내가 받아야지. 이제 내 나이가 몇인데.”
동그란 어깨가 진저리를 친다. 나는 목덜미를 긁적이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1년 반 전 얘기다. 형은 프로 복서였고 전도유망했다. 신인왕전 미들급 챔피언 결정전, 형은 우승을 확신했다. 다들 그랬다. 나도 형이 챔피언 벨트를 차고 돌아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형은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라운드 중간에 상대방의 훅이 꽂히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쓰러지더니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뇌출혈이었다. 수술을 받고도 반년이 넘도록 치료했고 아직도 한쪽 다리를 약간 전다. 같은 쪽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 지경이 됐는데 안과를 가 봤더니 뇌의 이상 때문이라 렌즈나 안경은 소용이 없다고 했다.
형이 장애 5급 판정을 받았을 때, 엄마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갑자기 또 왜 사람을 괴롭혀, 박 여사. 천 관장님이 나 프로 보내래?”
“아주 울고불고하지.”
“거 봐. 나 잘한다니까.”
“사람 치고받는 거 잘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형이 입원한 뒤부터 엄마는 격투기를 질색한다. 복싱은 거의 증오하게 됐다. 취미로나마 허락받은 게 기적이다. 그것도 형이 차린 체육관이라 간신히 허락한 거지만.
“애초에 네 형이 그거 하겠다고 했을 때, 그때 말렸어야 했어. 너나 진이나 하던 유도나 계속했어 봐. 네 형 그렇게 죽다 살아나는 일도 없었을 거고…….”
“엄마.”
“진이 요즘도 병원 다니는 거 보면, 나는.”
“안 할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그간 쌓인 수상 실적으로 체대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철들기 전부터 복싱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매일같이 훈련했고, 힘들지만 즐거웠다. 챔피언 외에 다른 게 되려고 해 본 적이 없다.
하고 싶은 게 명확한 삶이 얼마나 충만한 것이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내가 얼마나 운 좋은 놈이었는지도.
“나 복싱 안 한다고. 천 관장님이 꼬셔도 안 넘어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이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가 젖은 눈으로 나를 본다. 코끝이 빨갛다. 오늘 새로 말았다는 머리가 귀밑에서 찰랑거린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멋쟁이였는데. 형이 병원에 있는 동안 제대로 머리도 못 하고 다니더니 요즘에야 겨우 미용실에 다니기 시작한 우리 엄마. 전에 비하면 많이 여위었다.
“박 여사 울면 못생겼어.”
“열이 너 안경 맞춰야 하는 거 아니니? 너희 아빠는 울면 더 예쁘다던데.”
“아빠 말이 맞다고 쳐, 그럼.”
크응. 코끝을 훔치던 엄마가 내 머리를 끌어당겼다. 엄마의 어깨에 기댄 채 나는 내 앞에 펼쳐진 까마득한 나날을 생각했다.
명료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 캄캄해진 뒤부터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소경처럼 앞을 더듬기만 한다. 여기가 막다른 곳은 아닌지, 낭떠러지는 아닌지, 이제 내게 추락만 남아 있는 건 아닐까 겁났다.
무섭다.
기댄 어깨는 가냘프고 따뜻하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너희 형 왔나 보다.”
현관에서 기계음이 들리자 엄마가 고개를 움직였다. 이쯤 오겠다 싶었는데, 귀신 같다.
“내가 나가 볼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문밖에는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가 둘, 그 사이에 있으니 이질적으로 눈에 띄는 호감형 미남이 하나 있다.
“최수호?”
어떻게 꼴 보기 싫을 때면 이렇게 악착같이 나타날 수가 있지. 신음하는 나를 향해 최수호가 상큼하게 웃었다.
* * *
찜통에서 수증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게가 익는 동안 우리 집 네 식구와 최수호는 사이좋게 식탁에 둘러앉아 대화 중이다. 화목한 미소가 넘쳐 나는데 나 혼자만 못 웃고 있다.
“오는 길에 만나서 태워 왔지. 수호도 마침 우리 집 오는 길이었다더라고.”
“반찬 통 가져다 드리려고요.”
“이렇게 일찍 안 가져다줘도 괜찮았는데. 반찬 입에 맞았니? 너 저번에 우엉 들어간 돼지고기 조림 좋아했잖아. 그래서 그거 좀 넉넉하게 넣었는데. 근데 너 얼굴은 또 왜 이래?”
“촬영하다 다친 건데 별거 아니에요. 멍만 좀 남았지 다 나았어요.”
“촬영 많이 힘들어? 애를 멍들 때까지 굴리고 그러냐. 아버지, 뱀술 저 아니라 얘 먹여야겠는데요.”
“얼굴도 반쪽이네. 촬영장에서 밥 잘 못 챙겨 먹었어? 인마, 집에 밥 없으면 우리 집 와서 먹고 가고 그래. 요즘 통 집에서 얼굴을 못 봤네. 바빠도 너무 바쁜 거 아니야?”
화목하다, 진짜. 엄마, 아빠고 형이고 한마디라도 더 최수호 걱정을 못 해서 야단이다. 최수호는 쏟아지는 질문 세례를 받으며 헤헤, 웃고 있다.
얼굴 상처에 관해서 얘기할 때는 진땀이 흘렀다. 내가 때린 거 알면 온 가족이 다 날 얼마나 쪼아 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열이 넌 아까부터 왜 말이 없어? 수호도 왔는데.”
“둘이 싸웠대.”
아빠가 묻자마자 엄마가 대번에 답을 가로챘다. 박 여사 진짜.
“싸웠어?”
형이 눈을 홉떴다. 안 그래도 사나워 보이는 눈에 힘까지 주니 눈빛으로 사람 하나 정도는 쉽게 죽일 기세다.
“제가 열이한테 잘못해서요.”
“보나 마나 열이가 먼저 토라진 거지, 뭐. 너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면서 수호한테만 유독 그러더라. 수호 괴롭히면 못써.”
최수호가 뭐라고 하든 이미 악당은 나로 낙점됐다. 밖에서야 자주 당하는 취급이다만 가족들까지 이럴 거 있느냐고.
생긴 게 그렇게 생기긴 했지. 인상 더러운 눈매는 부계 유전인지 아빠에 형부터 나까지 한 성질 하게 생긴 바람에, 최수호하고 넷이 같이 있으면 왕자님과 건달들 같다.
학교에서 최수호하고 어울려 다닐 때도 내가 괴롭히는 거 아니냐는 소문을 종종 들었는데 난 억울하다. 굳이 따지자면 난 건달보단 왕자님 보모였는데.
“괴롭히는 건 최수호가 나를 괴롭히는 거고.”
“수호가?”
“넌 가만히 있는 수호한테 그러냐. 얘만큼 너 챙기는 애가 어디 있다고.”
아빠하고 형까지 합세하니 속이 터져 나간다. 이 집 식구들이 다 이렇지. 최수호한테 홀딱 빠져서 내 말은 하나 믿지도 않고.
뭐라고 자기변호라도 해 볼까, 하다 관뒀다. 이 새끼가 나한테 얼마나 지독하게 구는지 다른 사람들이 알 날이 올까. 나 혼자 최수호의 정체를 안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게 다 됐다.”
아빠가 접시 위에 게를 쌓기 시작했다. 발그스름한 게 껍데기가 조명 아래서 반들거린다. 맛있는 냄새까지 나는데 눈앞에 꼴 보기 싫은 얼굴이 있어서 식욕이 없다.
심드렁하게 가위만 만지작대는 사이 내 접시 위로 살만 내놓은 게 다리가 툭툭 쌓였다.
“뭐냐,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