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앞을 보면 카메라에 둘러싸여 진중하게 연기 중인 최수호가 보인다.
나는 어린 수호가 거대한 카메라가 코앞까지 다가오는 게 무서운데 참아야 했던 걸 알고 있다. 촬영이 싫고 힘들어서 놀이터에 숨었던 수호를 기억한다.
내가 찾으러 갈 때까지 수호는 혼자 겁에 질려 있었다. 그래도 수호는 다음 날 촬영장에 갔다.
한 컷이 끝나자 최수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따라서 손 인사를 해 주자 좋다고 미소 만발이다.
“정열 씨하고 있을 때 수호 씨 표정이 되게 부드럽네.”
내가 한 얘기가 건방지게 들렸을 법한데도 황 감독님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성격이 좋은 건지, 뻔뻔한 건지 잘 모르겠다.
“친구니까요.”
“그래. 엄청 뻣뻣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러니까 또래 애 같다.”
진심으로 신기하다는 양 말하는 걸 들었더니 경계도, 불만도 누그러졌다. 맥이 빠졌달까.
그래, 악의가 있어 최수호 얘기를 꺼낸 건 아니었을 거다. 수호네 가정사로 시비 걸리는 게 하도 오랜 일이라 예민하게 들었던 거지. 옆에서 최수호한테 계속 감탄하고 있는 걸 보니 다 그러려니 싶어졌다.
옆에서 연신 떠드는 황 감독님 얘기에 맞장구를 치다 보니 어느덧 촬영이 멈춰 있다.
“수호 씨 동선하고 겹칠 때 저거 자꾸 흔들린다. 잠깐 소품 맞추고 갑시다.”
아마 PD인 듯한 사람이 세트 천장에 달린 문제의 조명을 가리켰다. 스태프 중 하나가 사다리를 세우고 조명 쪽으로 올라섰다.
나머지 스태프들은 하던 일을 손에서 놓았다. 으레 있는 잠깐의 휴식 시간인 모양이었다. 최수호도 이제 쉬려나.
최수호를 본다고 열심히 눈을 굴리는데, 세트장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어딘가로 돌아가는 게 보였다. 특별히 소란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사람들의 이목이 한 방향으로 향한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었다가 나중에는 절반 이상이 하던 일도 손 놓고 뒤돈다. 사다리에 올라가 조명을 손보던 사람도 어느덧 손을 떼고 입구를 보았다.
존재감이란 이런 걸까.
나 역시 사람들이 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목이 쏠린 곳은 문을 덜 닫아 빛이 새는 입구였다. 세트장 안으로 걸어 들어온 한 사람이 있었다.
챙이 넓은 모자 아래 선글라스와 장밋빛 입술이 반짝인다. 바지 정장은 눈이 부시게 희어서 혹시 얼룩이라도 질까 보는 쪽이 다 조마조마했다.
모자를 벗자 귀밑으로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어도 알아볼 수 있다. 내가 아는 사람과 너무나도 닮은 얼굴이었다.
방금 도착한 게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순간 반사적으로 최수호를 확인했다.
최수호는 창백해진 얼굴로 굳어 있었다.
“윤서화 선생님 아니야?”
황 감독님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줄곧 빤질빤질하던 말투가 놀라움에 젖어 있다.
나는 대답하거나 최수호의 어머니를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계속해서 최수호를 보고 있었다.
최수호는 입구 쪽에 시선을 빼앗긴 채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앞으로 나서자 위에서 내리쬐는 조명이 최수호에게로 무자비하게 빛을 퍼부었다.
최수호의 발치로 흘러내리는 빛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최수호.”
자리에서 일어서서 이름을 불러도 최수호는 나를 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최수호, 비켜!”
크게 외치고 나서야 최수호의 시선이 내게로 떨어진다. 나는 이미 세트장 위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산책로에서 로드워크를 할 때같이 다리가 지면을 박찬다. 오래 뛴 것도 아닌데 벌써 심장은 터질 듯 뛰고 긴장을 곤두세운 온몸의 근육이 피를 돌리며 팽팽해졌다. 3분간의 경기에 돌입할 때처럼 온몸이 폭발적으로 움직인다.
내 육체는 순식간에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끌어냈다. 아드레날린으로 머리에 불이 붙은 듯했다.
퍽, 비슷한 큰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귀가 먹먹해 확신하기 힘들다. 어깨에 통증이 벼락처럼 꽂혔다.
내 밑에 깔린 최수호가 크게 헐떡였다. 열아, 부른 것도 같다.
수호의 눈동자에 비친 내가 보였다.
* * *
‘열아, 괜찮아?’
아래에서 당혹한 최수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최수호를 감싸면서 얻어맞은 어깻죽지가 얼얼했다. 최수호가 나보다 더 아픈 표정이었던 게 기억난다.
‘괜찮겠냐?’
여름이라 학교 복도에는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매미 소리와 함께 바람이 열린 창으로 들이쳤다. 강렬한 햇빛이 최수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기말고사 직후였다. 말인즉슨, 최수호가 한창 투견 본능을 뽐내던 시절이란 뜻이다.
누가 톡 치면 울어 버리던 강아지 시절을 지난 최수호는 세상이 다 싫은 사춘기에 돌입했다. 중학교에도 최수호를 괴롭히는 애들은 있었다. 최수호는 전보다 더 눈에 띄었고, 아역 활동을 시작하고는 별별 시비에 다 휘말렸다.
전과 달라진 점은 최수호가 시비를 무시하지만은 않았다는 거다. 뇌에 폭약을 심어 놓은 것 같은 남자 중학생들이 득실거리는 남중에서 싸움은 흔하다 못해 일상이었다.
‘너 애들이랑 또 싸우면 나 너하고 친구 안 해.’
팔을 툭툭 털며 일어서자 복도 바닥에 쓸린 팔꿈치가 따끔거렸다. 중학생 때부터 최수호는 애들과 싸웠고, 덕택에 최수호를 말리는 게 내 일상이 됐다.
‘싸운 거 아니야.’
‘너 싸운다고 급식실까지 소문나서 밥 먹다 말고 뛰어왔는데 무슨.’
내가 복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두 놈이 나뒹굴 참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끼어들기는 했는데 너무 아슬아슬하게 온 바람에 말리다 처맞기까지 했다.
언제까지 일일이 다 말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수호가 촬영 때문에 학교 못 나올 때가 꽤 있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도 연습하고 대회 때문에 학교 빠지는 날이 느는데 대회에 나가면서도 최수호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그만 싸워라, 제발.’
최수호를 일으키자 주변을 둘러싼 학생들의 시선이 나와 최수호에게로 쏠렸다.
‘구경났냐?’
눈을 부라리자 비로소 하나둘씩 흩어졌다. 막판에는 최수호하고 싸우던 놈까지 어영부영 사라졌다.
누가 보면 내가 싸운 줄 알 광경이었다.
아무리 혈기 넘치는 애들이라도 복싱 트로피로 심심찮게 조례에 얼굴 비치는 놈하고 붙을 생각은 쉽게 안 한다는 게 당시 내겐 행운이었다.
난 애들하고 싸우다 걸리면 출장 자격 정지였으니까. 최수호 싸움에 끼어드는 건 위험했다.
‘맞은 데 아파? 보건실 가자.’
‘맨날 하는 짓이 링 위에서 맞는 연습이다. 넌 얼굴로 일하는 놈이 뭘 믿고 시비를 붙어.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네가 불리할 거 뻔한데.’
하지만 내 출장 자격보다 위험했던 건 그 시절의 최수호다.
내 맞은 쪽 어깨를 애면글면 쳐다보면서 최수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진심으로, 자기가 더 아파 보였다.
최수호는 아파 보였다.
‘최수호, 미국 말이야.’
어차피 돌아가서 급식을 먹기는 늦었다고 판단한 우리는 매점에서 산 빵과 이온 음료를 들고 교정 벤치에 앉았다. 내가 소시지가 든 빵을 연달아 세 개나 먹어 치우는 동안 최수호는 내 빵을 까 주느라 바빴다.
‘진짜 영영 안 가기로 한 거야?’
나뭇잎의 그늘이 수호의 얼굴에 어지러운 그림을 그렸다. 최수호의 얼굴이 파편처럼 조각났다.
‘갔으면 좋겠어?’
‘그게 아니라. 어머니가 같이 가자고 하셨다며.’
그 시절 최수호는 혼자였다.
살면서 나한테 전설적인 복서 조지 포먼을 떠올리게 한 사람이 딱 두 사람 있다. 하나는 천 관장님, 다른 하나는 최수호네 어머니다.
사실 조지 포먼은 천 관장님의 초창기 별명이기도 했다. 한국의 조지 포먼, 천수관. 복싱 역사상 최고의 피지컬을 가졌다는 헤비급 복서가 세계적 챔피언인 천수관 관장님을 연상하게 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으나 수호네 어머니는 헤비급은커녕 플라이급에 겨우 속할 체격이다.
수호네 어머니는 첫 은퇴를 하기 전의 조지 포먼처럼 싸웠다. 그로기에 빠진 상대를 봐주지 않고 끝까지 두들겨 패는 무자비한 파이팅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었다.
적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최수호한테도 그랬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차피 같이 가고 싶어서 가자고 하신 것도 아닌데, 뭐.’
최수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고 캔을 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최수호의 얼굴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가 수호의 이목구비를 날카롭게 베면서 흔들렸다.
미혼모라는 스캔들에 휘말려 링 위에서 완전히 나가떨어진 수호네 어머니는 심장 마비로 은퇴한 조지 포먼 같았다.
조지 포먼의 은퇴 전 경기와 달리 수호네 어머니의 적수는 비겁한 인간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사고 같은 은퇴였다는 점은 비슷했다.
유명한 배우였던 윤서화는 어떤 감독과의 염문설에 휩싸였다. 감독에게는 사실혼 관계였던 부인이 있었고, 부인이 언론에 사실을 고발하면서 모든 추문을 배우가 뒤집어쓰게 되었다.
최수호는 그때 생긴 아이다. 결혼 사기, 불륜, 혼전 임신. 온갖 자극적인 단어가 수호네 어머니 이름과 함께 붙어 다녔다. 어린 나조차 수호네 어머니 이름이 가십 삼아 떠돌곤 하는 걸 들었을 정도였다.
수호네 어머니는 링으로 돌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격렬한 투쟁이었다.
그런 그가 최수호의 어머니만 아니었어도, 어쩌면 난 그를 존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최수호가 가장 소중한, 수호의 제일 친한 친구였다.
그 투쟁에는 최수호가 없었다. 수호네 어머니는 수호를 위해서는 싸워 주지 않았다. 최수호는 늘 혼자 싸웠다.
‘열이 네가 여기 있잖아.’
‘…….’
‘난 너랑 있을래.’
나로는 충분하지 않았을 거다. 나한테는 내 시합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최수호와 같이 있고 싶어도 우리는 서는 링이 달랐다. 최수호는 내가 아니었고, 나는 최수호를 위해 싸울 수는 있어도 최수호의 싸움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최수호가 촬영장에서 듣는 말들, 아빠 없는 자식이라는 꼬리표, 어린 나이에 겪어야 하는 유명세와 외로움을 나는 알고 있었다.
최수호는 연기를 하면서 단 한 사람한테 칭찬받고 싶어 했다.
수호네 어머니는 수호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지만, 수호를 안아 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