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네, 아저씨. 수호가 와서 미안하다고 할 때까지 아주 드러누우셨네요.”
“……진짜 그랬어?”
“그랬어. 너 그러니까 나중엔 수호도 따라서 그러더라. 둘이 번갈아 가면서 아주 난리였어.”
그랬던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일이라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듣다 보니 그랬나 싶다. 애 버릇 잘못 들인 게 진짜 나였네.
“내가 왜 그랬지?”
“왜는. 그맘때 어린애들 독점욕이지. 그래도 지금까지 그러면 안 되지. 수호한테 얼른 사과해.”
독점욕. 내가, 최수호를.
식탁 앞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내 어깨를 두드려 주며 엄마는 깔깔 웃었다.
“사람 속은 다 밴댕이 소갈딱지야. 좋아하는 애가 다른 사람하고 놀면 질투 나고 자기한테 더 집중해 줬으면 하는 거, 누가 안 그러겠니. 그래도 참아야지.”
“질투?”
질투. 내가, 최수호한테.
목이 콱 막혔다. 절대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열이 너 되게 질투 많아. 수호는 옛날부터 너 하는 건 다 따라 했잖아.”
지금 자업자득의 역풍을 맞고 있다, 이건가.
힘이 쭉 빠져 식탁에 이마를 박았다.
질투.
목구멍으로 삼킨 단어가 위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아우성을 쳤다.
* * *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내 방 침대에 널브러져 천장만 보는 중이다. 천장에 최수호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사과해야겠지.”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이유도 없이 걔한테 막 대한 거니까, 최수호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을 거다. 아니, 차라리 그러면 낫지. 사실 최수호는 내가 화내면 자기가 다 잘못했다고 해서 문제다.
‘나 같은 거’ 운운 못 할 만큼 최수호한테 똑바로 얘기해 줘야 하는데. 넌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라고.
“언행일치가 안 되잖아…….”
머리를 쥐어뜯다 아예 팔로 눈가를 가렸다. 천장에 아른대는 최수호 얼굴조차 피하고 싶다.
내가 짜증 난다고 최수호한테 그런 식으로 굴면 안 되는 거였다. 이래서야 다른 애랑 도시락 먹었다고 앓아누운 유치원 때하고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놈의 질투가 뭐길래.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던 단어가 다시 머릿속에 깜빡였다. 허구한 날 싸우는 양용배랑 붙어서 놀았다고 질투? 정열, 미쳤냐?
최수호가 양용배랑 뭘 했다고? 늘 하던 얼굴 자랑 좀 했을 뿐인데. 내가 그 모습에 질투를 한다고? 왜? 전엔 한 번도 이런 적 없는데.
아, 생각하기 싫다. 앓는 소리가 끓어오른다. 예전에는 한 번도……. 그럼 지금은?
“정열.”
갑자기 누가 팔을 붙잡는 바람에 튕기듯 일어나 앉았다. 놀라서 뿌리칠 뻔했다.
“뭘 식겁해.”
시큰둥한 말투에 사나운 눈매. 우리 형이었다.
“노크 좀 하고 들어와.”
“했어, 네가 못 들은 거겠지. 다쳤다며. 어디냐.”
형이 침대 위에 약상자를 올려놓았다. 웬일로 내 방에 왔나 했더니 엄마한테 다친 걸 들었나 보다.
“……약 발라 주게?”
“어딘지나 말해.”
티셔츠를 끌어 내려 다친 어깨를 드러내자 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들으라는 듯 커다란 소리였다.
“고정 붕대는 안 해도 된대?”
“관절 상한 거 아니라서.”
“뭐 떨어지는 거 맞았냐.”
“알아보네.”
“맞아서 드는 멍 맨날 봤는데 모르겠냐. 촬영장?”
“응.”
척하면 척이다. 형은 익숙하게 내 어깨에 연고를 발랐다. 굳은살로 까슬대는 손가락 감촉이 익숙하다. 한창 운동할 때는 나나 형이나 진통 소염제 냄새를 달고 살았다.
“당분간 어깨 조심해서 써. 인대 나가.”
“응.”
나는 형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 복싱도 형을 따라서였다.
형은 항상 나를 챙겼다. 부상을 입으면 마사지를 해 주고, 약을 발라 주고, 붕대를 감고 테이핑을 해 주고. 늘 한발 앞서 나가며 나를 보살피는 형이 든든하고 존경스러웠다.
형하고 이러고 있는 것도 오랜만이다. 형이 쓰러지기 전에는 둘이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재수는.”
“몰라. 아직 결정 안 했어.”
“하기 싫냐?”
“싫은 건 아닌데…….”
“근데 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형은 말없이 약만 발랐다. 날개뼈까지 넓게 바르고 나자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운동을 그만둘 때 형도 같은 고민을 했을까. 복싱할 땐 형이 먼저 배운 걸 가르쳐 주곤 했는데 지금 형은 아무 말이 없다.
“결정할 때까지 체육관에서 아르바이트나 해. 내일 아침에 상담받으러 신규 회원 오는데 네가 봐 드려.”
“내가 회원을 어떻게 받아.”
“간단한 테스트나 체육관 소개 같은 거나 해. 회비하고 시간대 너 다 알잖아.”
형이 약상자를 닫았다. 오랜만에 가진 둘만의 시간이건만 용건 마치자마자 나가려는 걸 보면, 새삼 거리가 느껴진다.
“내일 약속 있어?”
“병원.”
“병원 어디. 검사받으러 가?”
형은 내 질문을 무시했다. 뒤돌아서 방문을 나서려던 형이 잠시 멈췄다.
“다치고 다니지 마. 집에 병원 다니는 사람 느는 거 싫다.”
문이 닫히고도 나는 형의 말을 오래 곱씹었다. 왜 싫은데. 그게 어때서.
하고 싶은 말은 뱉지도 못하고 삼켰다. 또다시 속이 아팠다. 어깨보다도 많이.
* * *
뛰면서 줄넘기를 하도 열심히 했더니 멈춰도 바닥이 흔들린다. 어깨 무리하게 안 쓰려고 스내치, 프레스, 중량 치는 건 다 건너뛰니 할 게 턱없이 줄어들었다.
“우리 열이 토끼 같네. 잘 뛰네.”
“누나는 왜 아침부터 나와 있어요.”
우리 형보다 지원 누나하고 더 자주 보는 것 같다. 지원 누나는 오늘따라 평상시보다 일찍 나타나더니 내 옆에서 같이 줄넘기를 뛰고 있었다.
“관장님이 너 혼자 두기 뭐 하다고 부탁하셔서 보살펴 주러 왔지.”
“형이요? 자기가 시켜 놓고 뭐야.”
아직 체육관 열 시간도 아닌데 왔길래 준비 도와주러 왔나 생각은 했는데. 딱 집어 나 때문에 부른 거였다니. 형한테는 아직 내가 코흘리개 꼬마로 보이나 보다.
하긴 철없이 친구랑 싸우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어젯밤 내도록 최수호한테 뭐라고 할까 말만 고르다 문자도, 전화도 못 했다. 오늘은 최수호한테 사과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가 여전히 고민이다. 어제 갑자기 화내서 미안하다? 왜 그랬냐고 하면?
“누나는 친구한테 질투한 적 있어요?”
질문을 받은 지원 누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친구가 더 잘해서?”
“아뇨. 다른 애랑 놀면 짜증 난다거나. 독점욕, 뭐 그런 거.”
“그거 되게 흔한 거 아니야? 아예 안 겪어 본 사람이 드물지 않을까.”
“진짜요? 친구 사이에도 흔하게 질투해요?”
“어, 근데 좋은 행동은 아니지? 당하는 친구는 열 받을걸.”
“…….”
“왜. 친구가 딴 애랑 놀아서 질투 났어?”
지원 누나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물었다. 그렇다네요. 제가 이 나이 먹도록 제대로 성장을 안 했나 봅니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고심하다 줄넘기를 놓았다.
줄넘기를 원래 있던 자리에 걸어 두고 아침에 와서 청소한 체육관 내부를 죽 훑어보았다. 내 눈엔 깨끗했다. 형은 깐깐하기가 결벽증 수준이라 체육관이 매일 번쩍번쩍하다.
“대답 안 하고 피하네?”
“손님 올 시간이라서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자 8시. 슬슬 상담한다는 신규 회원이 올 시간이었다. 8시에 연다고 써 놨을 뿐이지 보통 회원들 오는 시간은 10시 넘어서부터인데 부지런하기도 하다.
라커룸 닦거나 도구 더 정리하고 있을까, 고민하는데 체육관 문에 달아 둔 종소리가 들렸다. 시간 엄수가 칼이다.
“어서 오세요.”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문으로 걸어갔다. 모처럼 형이 시킨 일이니 최선을 다할 예정이었다.
“어.”
문을 열고 들어온 중년 남자를 보자 놀란 신음이 나왔다. 갈색 곰 같은 인상과 턱에 삐죽삐죽 돋아난 밤송이 수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열 씨, 안녕.”
황춘식 감독님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 * *
“정말 우리 체육관 등록하시게요?”
“등록할 생각이니까 상담을 받으러 왔지.”
미심쩍어서 한 질문에도 황 감독님의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어디 사시는데요.”
“나 구의동.”
“거기서 여기까지 버스로 40분 걸리는데요.”
동네 체육관을 가시지, 왜? 의심을 듬뿍 담아 쳐다봐도 황 감독님은 허허, 웃을 뿐이었다. 저 능청맞은 얼굴이 의심스럽다.
“무려 정진 선수가 운영하는 체육관이잖아.”
형이 보고 싶어서 등록한 회원이야 많다. 지원 누나만 해도 다른 동네인데 굳이 우리 체육관에 등록했다. 하지만 누나는 버스로 다섯 정거장이고, 굳이 운동을 40분 거리인 딴 동네에서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정열 씨도 있고.”
“전 왜요.”
“팬이라니까.”
“저 이제 시합도 안 하는데 팬은 무슨 팬이에요.”
“원래 한 번 팬은 끝까지 가는 거야.”
그놈의 팬이 뭐길래. 나 때문에 왔다니까 갑자기 부담스럽다.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일단 체육관 내부를 슬렁슬렁 발맞춰 걸었다.
“복싱은 해 보셨어요?”
“이래 봬도 소싯적엔 우리 동네에서 날렸어. 내가 경북 의성 출신인데…….”
“신규로 오는 분 중에 옛날에 날리셨다는 분들 많아요. 최근에도 운동하셨어요?”
“최근에는 생업이 바빠서.”
하하, 멋쩍게 웃으며 황 감독님이 뺨을 긁적거렸다. 최근? 최소 3년 이상 스텝도 안 밟아 봤다는 데 내 글러브를 건다.
“스텝부터 하시죠.”
“에이, 해 봤다니까. 미트 정도는 치게 해 줘야지.”
“예. 그럼 미트도 치세요. 지금 쳐 보실래요?”
“스파링, 어때?”
황 감독님의 눈이 반짝였다. 호기롭다. 아주 호기로워. 소위 소싯적 날렸다가 복귀하기로 마음먹은 복서들의 호기란.
처음 시작하는 사람보다 무서운 게 옛날에 해 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다. 아직도 자기가 그때 그 기량인 줄 안다.
프로 복서들도 쉬다 복귀하면 무참하게 깨지는 게 현실이다. 은퇴 후 돌아와서도 챔피언 타이틀을 딴 조지 포먼 등의 케이스는 예외로 치고. 나도 지금 당장 시합에 올라가면 기량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다.
“무슨 첫날 오자마자 스파링을 해요. 등록도 안 하셨으면서.”
“딱 한 번만. 실력 볼 겸 살살 해 보면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