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너 혼자 보내면 안 갈 거잖아.”
“가서…….”
“너 재울 거다.”
쓸데없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 차단했다. 아침이라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간혹 우리 옆을 지나갔다. 다들 하루를 여는 시간에 애를 재우러 가고 있으니. 걱정이 안 되겠냐고.
“나 하나도 안 졸려.”
“최수호, 사람이 자꾸 안 자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심혈관 터져서 죽어.”
차에서 자서 괜찮다느니, 이따 오후에 잘 거라느니 하며, 보통은 여기서 말꼬리를 더 잡고 늘어질 텐데 오늘따라 최수호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금세 아파트 단지였다.
“어제 내가 너한테 화낸 것 때문에 온 거지.”
“아직도 화났어?”
기다렸다는 듯 최수호가 마스크를 내렸다. 그것 때문에 잠도 안 자고 뛰어왔냐고 하고 싶다가도, 결국 내 잘못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애 잠이라도 맘 편히 자게 밤에 문자라도 보내 놓든 할 걸 그랬다.
“아니.”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어제부터 연습한 사과의 말이 입 안을 메웠다.
“열아, 나한테 왜 화났어?”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입이 뭔가로 가득 찬 채로 입마개가 씌워진 것 같았다. 사과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최수호의 질문은 어려웠다.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나 때문에 다쳐서?”
“이중인격이냐. 내가 몸 던져 놓고 나중에는 다쳤다고 화내게.”
아직도 제대로 된 대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질투했다고 말하면 최수호는 뭐라고 할까.
좋아할까? 당황하려나? 싫을까? 옛날엔 어땠지. 나 따라서 드러누웠다는 건 들었어도 최수호 기분이 어땠는지는 못 들었으니까.
결국 최수호네 집에 들어갈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했다.
불이 꺼진 최수호의 아파트는 냉하고 적막했다. 차가운 아침 햇살이 거실에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침실 커튼을 닫아 줘야겠다. 수호의 침실은 햇볕이 잘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두운 데서 자는 게 싫었다고 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최수호가 한 말이었다.
현관 센서 등이 꺼졌다. 아직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에 서 있는 최수호를 나는 아연히 돌아본다. 모자챙으로 가려진 최수호의 얼굴이 그림자로 덮였다.
“버리지 마.”
“뭐?”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너는. 당황하는 사이 최수호가 걸어와 막무가내로 나를 끌어안았다. 모자챙이 맞닿은 몸 어딘가에 걸려 떨어진다. 수호의 신발이 현관에서부터 부연 발자국을 남겼다.
몸이 뜨겁다. 떨어져 있을 땐 몰랐는데 온몸이 뜨끈했다.
“최수호, 너 열…….”
“네가 미워하면 난 죽을 거야.”
매달리는 최수호를 품에서 떼어 놓을 수가 없다. 상대를 껴안아 공격을 무너뜨리는 기술인 클린치에서 벗어나는 건 선수 시절 내 특기였는데도.
“죽는단 소리 함부로 할래.”
목구멍이 조여들어 쉰 소리가 났다. 나는 네가 아프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는데.
“정말이야.”
최수호는 무섭도록 진지하다.
“너한테 버림받느니 죽는 게 나아.”
내 어깨 위로 머리를 깊이 파묻으며 최수호가 속삭였다. 피로에 젖은 목소리.
이토록 맹목적인 최수호를 보면 겁이 날 때가 있다.
죽는 게 낫다는 최수호의 말이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 안다.
최수호는 나한테 지나치게 의지한다. 다른 사람한테 무심한 만큼 나한테는 예민하다. 나한테만.
아마 최수호 나름의 방어 기술일 거다. 수호는 예민하고 마음이 깊다. 공격이 깊은 데까지 들어오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러니 안전한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주고 싶어 하는 것뿐이다.
“내가 널 왜 버리냐?”
최수호의 등에 팔을 두르자 약한 떨림이 전해졌다. 무방비했다. 내 손 하나만으로도 KO시킬 수 있을 정도로.
최수호가 온 마음을 허락한 상대가 나라는 사실이, 무섭다.
“사람이 무슨, 버리고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네게 섣불리 손 내밀지 않는 게 좋았을까, 가끔 생각한다.
다른 애들한테서 지켜 주려고 했던 것도, 반대로 다른 애들과 더 친하게 지낼 것 같으면 짜증 냈던 것도 내 딴에는 최수호가 좋아서 한 일이었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최수호한테 도움이 됐을지는 알 수가 없다.
줄곧 최수호의 옆에 붙어 있는 게 맞는 일이었을까. 내가 그렇게까지 최수호하고 가깝지 않았더라면 최수호도 좀 더 많은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쌓았을지도 모르는데.
한 사람한테 모든 게 집중된 관계라니, 절대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다른 사람한테 미움받는 것 정도로 죽느니, 마느니 하지 마.”
잘난 척 타이르지만 자업자득. 내가 방조한 일이다.
엄마 말이 옳다. 난 욕심도 많고 승부욕도 강하다. 늘 최수호가 내 옆에만 붙어 있으니 잘 안 보인 거지, 최수호가 친구하고 장난 좀 쳤다고 화가 나서 화풀이나 하는 유치한 놈이다.
좀 더……. 더 어른스럽게 최수호를 배려해 줄 수 있었더라면. 무작정 최수호한테 쏟아지는 관심이나 주먹질을 막아서기만 하는 게 아니라 최수호가 다른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걸 응원해 줄 수 있었다면.
그럼 최수호는 지금보다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어제 화낸 거 내 잘못이니까 신경 쓰지 마. 넌 잘못한 거 없어.”
조용히 숨만 쉬는 최수호를 껴안고 여러 차례 등을 쓸었다. 이런 것 정도밖에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체중에 눌린 어깨가 쑤셨지만 무시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화 풀 건데?”
가만히 있던 최수호가 중얼거렸다. 신경 쓰지 말라고 했더니만. 내 말을 듣기는 한 건지.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내 잘못이라고 했잖아.”
“누가 잘못했는지 같은 거 상관없어.”
“그게 왜 상관이 없어. 야, 내 말은.”
“너한테는 내가 필요 없으니까.”
최수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일그러진 호박색 눈동자가 위태롭게 일렁인다.
나는 잠시 꼼짝도 못 하고 입술만 달싹였다. 정면으로 스트레이트 훅이 꽂혔어도 이렇게 멍하진 않았을 거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누구 잘못이든, 뭐 때문이든 내가 사과할 테니까 미워하지 마.”
“필요 없다고 생각한 적 없어.”
최수호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예전부터 그랬다.
최수호를 지켜 주고 싶다. 하지만 내가 최수호를 다치게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너를 상처 입힐 것이고 너는 내게 이토록 무방비한데. 무섭다.
“너는 내가 없어도 되지만 나는 안 돼. 나는 네가 없으면…….”
횡설수설 목소리를 짜내는 최수호의 눈가에 붉은 기가 올랐다.
놔뒀다간 곧 울겠다. 달아오른 눈가를 문질러 주자 최수호가 내 손바닥에 입술을 댔다. 스스럼없는 동작이었다.
“필요 없어도 버리지 마.”
최수호가 이렇게 된 건 어느 정도 내 책임이지만, 반대로 내가 이렇게 된 데에도 어느 정도 최수호의 책임이 있다.
다른 사람이나 더 어른스러운 배려 같은 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최수호가 보여 주는 구멍은 커서, 나 자신을 다 던지지 않으면 상대가 안 된다.
“나도 네가 필요해. 좋아하고.”
“열이는 다정해.”
최수호가 힘없이 웃었다. 유기견 뺨치게 처연하다.
웃기고 있네. 손바닥에 기댄 볼을 꼬집자 최수호의 처량한 미소가 금세 무너졌다.
“최수호, 사실 내가 차에서 왜 화냈냐면.”
최수호는 뭔가 잘못 짚고 있다. 내가 아낌없이 베푸는 성자도 아니고 다정해서 최수호한테 이러고 있을 리 없잖은가. 동정심으로 빵을 줄 수는 있어도 10년이 넘게 함께할 수는 없다.
“왜 화났어?”
“네가. 아씨, 쪽팔려.”
“아픈데 귀찮게 해서?”
“내가 언제 너한테 귀찮게 한다고 화냈냐?”
화냈나?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저 축축한 눈을 마주 보고 있자니 쪽팔리고 자시고, 모르겠다.
“네가, 양용배.”
“응.”
“양용배랑 놀아서.”
“응.”
“질투.”
“…….”
“했다.”
말하는 내내 목구멍 안쪽이 부글부글 끓었다. 홧홧한 열기가 목 위로 치민다. 최수호를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열이가 왜?”
최수호가 멍청하게 눈을 깜빡댔다. 열이가 왜, 라니. 저건 나한테 물어보는 것도 아니다.
“몰라, 나도. 내가 고지식한 거냐? 나한테 고백을 했으면 내가 대답하기 전까지는 내 앞에서 다른 사람하고 그, 그렇게 끈적하게, 가까이서 놀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양용배는 오래 본 친구에 서로 치고받고 까는 사이니, 걔하고 장난쳤다고 성을 내는 건 최수호 입장에서 억울할 수도 있다. 어쩌겠나. 내가 유치한 놈인 걸.
“어…….”
최수호가 아연한 신음을 냈다.
“그래서 기분 나빴어?”
언제 울먹였냐는 듯 최수호의 눈에 이채가 돌아왔다. 뺨에 도는 홍조가 최수호의 흥분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귀는 쫑긋하게 세우고 열렬하게 꼬리를 치는 개가 한 마리 보이는 듯하다.
이마까지 화끈거린다. 내 민망함을 대가로 최수호의 안도를 얻었으니 남는 장사라고 치자.
“알았으면 이제 필요 없단 헛소리 같은 거 하지 마.”
나는 최수호를 동정하는 게 아니다. 최수호가 좋으니까 얘 붙잡고 이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는 거다.
“질투했어?”
“어, 했다고. 아까 말했잖아. 그만하고 빨리 가서 자. 너 또 열나. 신발 벗어. 집에 신발을 왜 신고 들어와.”
민망하니까 절로 말이 많아진다. 초롱초롱한 최수호가 부담스러워 눈길을 피할 겸 쭈그려 앉아 최수호 운동화 끈을 풀어 줬다. 얘 자면 흙은 내가 닦고 가야겠다.
“왜 기분 나빴어? 내가 다른 사람하고 가까이 있어서?”
“시끄럽고, 신발이나 벗어.”
“나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안 좋아해.”
누가 모르냐. 빨리 신발부터 벗으라는 뜻으로 인상을 팍 쓰고 올려다보자 최수호가 신을 벗어 가지런히 현관에 놓았다.
거기까지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최수호는 절대 끝까지 말 잘 듣는 스타일은 아니다. 꼭 뭐 하나 사고를 친다.
“열아, 너무 귀여워.”
아직 앉아 있는 내 위로 최수호가 엎어졌다. 체중으로 순식간에 덮쳐누르니 벗어날 도리가 없다. 패서 밀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귀여워. 키스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