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88)

35.

“오래, 하아, 오래 기다렸어?”

헐떡대는 최수호가 안으로 쏟아지듯 들어온다. 주차장에 내려 주자마자 뛰어왔는지 숨이 턱까지 닿았다.

“뭘 뛰어와. 숨차게.”

“집에 너 있다고 해서…….”

“나 두 명 있으면 날아왔겠다.”

“…….”

“농담한 거니까 이상한 표정 짓지 마.”

“열이가 둘이라니, 행복한 고민이 들어서.”

“고민하지도 마.”

둘 있으면 어쩌려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듣고 싶지도 않다. 왜 얘는 자랄수록 애가 변태가 되냐.

“이게 다 뭐야?”

나를 따라서 식탁까지 접어든 최수호가 거기 놓여 있는 것들을 가리켰다.

“케이크.”

“나 오늘 생일이야?”

“한참 남았구만 생일은 무슨. 넌 네 생일도 기억 못 하냐.”

“네가 오늘 생일 하라고 하면 오늘로 바꾸려고. 출생일 정정 신청하면 돼.”

“야…….”

“생일 아니면 왜?”

“그냥. 정신없어서 같이 졸업 축하 못 했잖아. 대학 합격한 것도 축하해.”

수능 전부터 정해져 있던 합격이건만, 최수호는 수능 시즌에도 바빠서 축하도 제대로 못 하고 지나갔다. 수능 끝나고 졸업 시즌엔 최수호가 사고 쳐서 싸운다고 잊어버렸고.

“어차피 연기 활동으로 들어간 거야.”

“연기는 뭐, 네가 쌓은 커리어가 아니라 누가 기증해 준 거냐? 넌 성적도 좋았잖아.”

“열이 너도 공부 열심히 했잖아.”

열심히는 했지. 결과가 안 따라 줘서 문제였지.

운동을 해도 학생의 본업인 학업을 도외시하지는 말 것.

부모님과 천 관장님의 가르침이었으나 아무리 틈틈이 공부해도 성적이 안 나오는 건 별수 없었다.

반면 최수호는 나랑 비슷하게 학교를 빠지면서도 늘 상위권에 들었다. 저렇게 생긴 놈이 머리도 좋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사기다.

“나도 대학 가려고.”

“정말?”

“어, 너랑 같은 학교. 1년 해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안 되면 딴 데 가야지.”

“나하고 같이 다녀 줄 거야?”

최수호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나를 보는 눈에서는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 의사보다는 서울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대학에 내가 1년 만에 갈 가능성을 먼저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만.

“합격하면.”

고작 이런 대답으로도 최수호는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소박한 놈.

“수능 성적 안 되면 내가 잔디 깔게. 그거 밟고 들어와.”

소박하다는 말은 취소다. 이 자식은 자기가 돈이 많아 봤자 얼마나 많다고. 혹시 내 생각보다 훨씬 많나? 최수호의 자산 규모가 의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내 머리로 노력해 볼 테니까 앉기나 해. 말해 두는데, 난 잔디는 못 깔아 준다. 이걸로 만족해.”

“이게 진짜 다 뭐야? 꽃은 왜 있어?”

“추가 촬영도 거의 끝났다며. 예전엔 너 작품 끝날 때마다 다 같이 축하했잖아.”

최수호가 더 어릴 때는 우리 집에 둘러앉아서 자랑스러운 배우 최수호 군의 작품 마무리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데다 낯을 가려서 종방연 같은 데 가기 싫어한다는 걸 듣고 우리 부모님이 낸 아이디어였다.

최수호가 자라면서 여기저기 불려 가고 나서부터는 서서히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할 땐 재밌었다. 생일 파티가 1년에 서너 번은 더 생긴 기분이었다.

“이건 뭐야?”

최수호가 꽃 옆에 있던 네모난 상자를 집었다. 나름대로 리본 포장도 돼 있다.

“초콜릿.”

대답을 들은 최수호가 리본을 풀다 말고 굳었다.

“이번엔 아무거나 주는 거 아니야. 비싼 데서 샀어.”

비록 우승 상금 대부분은 엄마가 만든 예금 통장에 묶여 있다지만 나도 전문점 초콜릿 정도는 살 수 있다, 이거다. 상자를 열어 보는 최수호의 얼굴은 누가 스트레이트 훅이라도 갈긴 것처럼 얼이 빠져 있었다.

비싼 데라고는 해도 그냥 몇만 원짜리 시판 초콜릿이다. 잔디 깔아 주는 스케일하고는 장르가 다른데, 잔디 갑부 최수호는 고작 초콜릿 열 알에 눈시울이 다 촉촉해져 있었다.

“또 못 쓰게 만들지 말고 지금 먹어.”

“아까워서 못 먹겠어.”

“먹어. 또 사 줄 테니까.”

나눠진 칸에서 동그란 초콜릿을 집어 입술에 들이대자 최수호가 입을 벌렸다. 손가락까지 한꺼번에 삼켜서 빨아 당기는 게 아주 자연스럽게 음란하다. 이 자식이.

“야, 누가 손가락까지 먹으래.”

항의는 들은 체도 안 하고 손가락을 깨물어 대고 난리가 났다. 강아지냐.

촉촉하게 휘감기는 혀와 손톱을 누르는 이의 감촉이 이상야릇하다. 최수호가 내 손이며 입술이며 빨아 대는 데 이제는 적응할 만도 한데. 최수호 얼굴을 보고 매번 감탄하는 것처럼 이것도 간지러워 죽겠다.

“달아.”

초콜릿을 우물거리며 최수호가 중얼댔다. 만족감에 찬 표정만 보면 시판 초콜릿이 아니라 세계 3대 진미라도 먹은 것 같다.

녹은 초콜릿까지 덕지덕지 묻은 검지와 엄지를 노려보다 대충 입에 넣었다. 혀끝에 초콜릿 맛이 느껴졌다. 단 건가? 약간 쓴 것 같기도.

“왜. 뭐.”

시선이 따갑다. 최수호는 아까처럼 넋이 나가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손가락, 그거.”

“넌 싫다는 사람 붙들고 그렇게 물고 빨아 대더니 내가 네 입에 들어갔다 나온 손가락 빠는 게 부끄럽냐.”

어버버거리며 손가락을 가리키길래 무슨 소릴 하나 했다. 급기야는 얼굴까지 상기된다.

“열아, 너무 야해…….”

퍽이나 야하다. 침 범벅으로 떡꼬치 나눠 먹던 사이에 무슨.

최수호가 하도 야릇한 얼굴로 보니까 나까지 기분이 꺼림칙해졌다. 최수호하고 스킨십에 길들고 있는 것 같기도.

최수호 저건 자기가 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저기 입술을 비벼 대면서 왜 나한텐 일일이 얼굴을 붉히고 난리냐.

“케이크 먹고 잠깐 나갈래?”

흠, 헛기침하고 현관 쪽을 눈짓하자 최수호도 대번에 얼굴빛을 바꾸었다.

“어디 가게?”

“근처 놀이터.”

“지금 나가자.”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최수호는 대답이 빨랐다. 저러니까 더 떨린다. 왜 마음의 준비는 해도해도 모자란 건지.

“너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쉬었다 나가.”

“괜찮아. 지금 가자.”

최수호가 앞장서서 현관을 나섰다. 말릴 겨를도 안 준다.

“야, 최수호. 너 모자 안 써? 마스크는.”

“맞다.”

“맞다가 아니라, 빨리 가서 챙겨.”

“괜찮아. 집 앞인데.”

괜찮은 거 맞아? 맨날 챙기던 본인이 괜찮다니 어쩔 수 있나.

엘리베이터에서도 사람이 들어올 때 눈치를 살피는 나와 달리 최수호는 여유롭게 인사까지 했다. 거리에서 누가 자기 알아보는 시늉하는 거 죽어라 싫어하더니 마음이 바뀌었나.

애가 어째 취한 것처럼 들떠 있는 게 걸렸지만 일단 뒀다. 여기가 이태원이나 강남 한복판도 아니고 최수호가 모자 안 쓰고 나간다고 별일 생기겠어.

걱정한 게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아파트 놀이터는 한적했다.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안 보인다.

“요즘 애들은 놀이터에서 안 놀고 다 학원 가나?”

“둘만 있으니까 데이트 같아서 좋다.”

“데이트는 무슨. 그네 탈래? 요즘은 그넷줄도 고무야. 신기하네.”

10년이 넘게 지나는 동안 여기도 많이 바뀌었다. 알록달록한 바닥에서부터 새로 설치된 놀이 기구들까지, 예전 모습이 거의 안 남아 있다.

이 놀이터에서 최수호를 처음 봤다.

여기서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최수호는 어떻게 자랐을까. 알 방법은 없지만, 궁금하다.

내가 없는 수호는 어땠을까.

“최수호 그네 진짜 못 탔는데. 이젠 좀 타냐?”

“더 멀리 나가는 사람이 뽀뽀해 주기 할래?”

“최수호, 개수작 부리지 마라.”

“더 오래 타는 사람이 뽀뽀하기?”

“죽는다.”

그네에 올라타자 줄이 조그맣게 소음을 내며 흔들렸다. 모래에서 말랑말랑한 고무 매트로 바뀐 바닥이 발끝에 스친다. 옆을 봤더니 최수호는 하도 다리가 길어서 다리 올리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인다. 저게 인간이냐, 학이냐.

“너 여기서 엎어져서 피 났는데. 저기 있던 미끄럼틀 속에 촬영 가기 싫다고 숨어 있었던 적도 있었고.”

“열아, 너 내 어릴 때 중에 수치스러운 부분만 유독 잘 기억하는 것 같아.”

“너 맨날 엎어지고, 까지고, 울고, 쫓겨 다니고 그랬잖아. 교회 앞에서부터 개한테 쫓기느라 울면서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질 않나.”

“바둑이. 걘 왜 나만 보면 쫓아왔을까?”

“몰라. ……예뻐서?”

개들도 예쁜 걸 알아본다면. 어린 최수호가 별별 것들한테 다 괴롭힘당한 걸 보면 왜 미인이 박명인지 알겠다. 최수호의 그네가 서서히 느려졌다.

“지금은?”

최수호가 자길 봐 달라는 의사를 확고히 담아 쳐다보길래 나도 속도를 줄였다. 하늘까지 날아갈 기세던 그네가 완만히 움직이면서 운동화 바닥이 고무 매트에 끌렸다.

“지금 뭐.”

“지금도 예뻐?”

“…….”

“잘생겼어?”

“또 재수 없게 군다, 또.”

예쁘고 잘생겼다는 말 지금 인터넷 검색 창에 ‘최수호 잘생’까지만 쳐도 백 페이지는 넘게 나올 텐데 뭘 묻는지. 최수호라면 그거 아니냐고. 뭐가 잘생겼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아래에 팬은 아니지만 잘생기긴 했다는 리플이 달리는 자타 공인 미남. 지도 지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면서, 뭘.

“예전이랑 지금이랑 비교했을 때 언제가 더 잘생겼어? 지금보다 어린이 수호가 더 좋아?”

“어린이 수호나 지금 수호나, 수호는 똑같은 수혼데 누가 더 좋고 말고 할 게 있냐? 싸가지는 어린이 수호가 더 있는 것 같긴 하다.”

최수호 어린이는 잘난 척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오히려 누가 예쁘다고 하면 겁먹고 내 뒤로 숨어 버리는 쪽이었지.

“그래도, 지금이 더 좋은 것 같긴 해.”

최수호가 겁먹는 건 별로다. 수호가 우는 건 싫다.

왜 나한테 잘해 주냐고 물어보면서 울던 최수호보다는 난 잘생겼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드는 최수호 쪽이 훨씬 낫다.

“나도 예전보다 지금 더 좋아해.”

최수호가 활짝 웃는다. 말하기도 지긋지긋하게 잘생겼다.

“예전에도 좋아했지만, 지금은 더 좋아해.”

나도.

속으로만 대답했다.

나도 그래.

“수호야.”

운동화로 바닥을 디뎌 그네를 완전히 멈췄다. 고무로 된 줄이 계속 나아가고 싶어 찰랑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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