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어머니에게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기대하고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저는 역시 안 되나 봐요.”
열이 탓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열이가 나하고 사귈 수 없었던 것도, 내 아버지를 닮은 얼굴로 태어난 걸 내 스스로 어쩔 수 없었듯 그저 정해져 있던 일일 수도 있다.
“외국 나가 있는 거 생각해 볼게요. 촬영 기간 고려하면 반년 정도는 되겠죠.”
“어차피 휴학계 내야 할 텐데 1년 정도는 잡는 건.”
학교. 원래 안 다니던 날이 더 많아서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다.
열이가 나 다니는 학교에 들어올 거라고 했는데. 공부하는 1년 동안 내가 안 보이면 열이는 그래도 나한테 오려고 해 줄까.
1년이나 떨어져 있게 된다면, 열이는 내가 보고 싶을까.
오랫동안 아무것도 누르지 않자 핸드폰 화면이 저절로 꺼졌다. 새카만 액정에는 허전한 천장만 비친다.
어차피 열이를 못 본다면, 여기든 북극이든, 다를 거 없다. 뉴욕이든 시베리아든, 똑같다.
죽든 살든, 다 똑같다.
“기사 내리려고 연락 돌리고 있어.”
“어차피 이미 SNS에 다 돌았을 텐데요. 계속 돌 거고요.”
그래도 상관없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상관해야 할 게 인생에 너무 많아진다. 이 많고 많은 사람을 나는 감당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제 이름 얘기한 거 그 다큐멘터리 방영 후였어요. 나 네 살 때 찍은 거.”
어머니의 무심한 표정에 균열이 생긴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조금씩 나이 들어오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생경했다.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당신의 나날들.
“이 사람이 자기가 영화 찍고 싶을 때 내 이름 거론하는 거나, 그 다큐멘터리나 사실 별 차이 없잖아요? 어차피 그건 내려가지도 않을 거고.”
내가 네 살이 되고 찍은 다큐멘터리로 어머니는 이미지 반등에 성공했다. 3년 내내 통 일감이 들어오지 않아 어렵던 가계도 점차 사정이 나아졌다.
남들은 네 살 이전에는 기억이 거의 없다는데 나는 왜 하나하나 다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다큐멘터리 PD가 잠시 휴식을 외치면 구석에 앉아 피로에 젖은 눈가를 문지르던 어머니 모습까지 다 기억난다.
다큐멘터리에 비치는 모습은 어머니와 당시 소속사가 기획한 창작물이었다. 내 말과 행동도 얼추 정해져 있었다. 그러니 내 첫 아역 데뷔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헌신적인 모성애를 지닌 어머니를 좋아했고, 예쁘고 말 잘 듣는 나를 좋아했고, 불행한 우리 모자를 동정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그 다큐멘터리에서 보기 좋을 만큼만 측은했다.
“제 팬들이 좋아해요, 그 영상. 난 어릴 때도 예쁘고 귀여워서 좋다나……. 짠해서 좋대요. 아빠 없는 애라 어릴 때 고생하고 따돌림당한 것까지도, 불쌍해서 좋대. 어머니도 좋다고, 수호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러던데.”
남들이 좋아하는 최수호란 결국 그런 거다.
나는 배우가 되고 세상과 화합하는 일을 나도 모르게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 끊임없이 나를 만들어 내는 것 외엔 달리 살아갈 방법이 없다.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후 어딜 가나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원한 적 없는 일이었다.
“이럴 때마다 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머니의 입가가 떨렸다. 여기저기 잔 균열이 가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문득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다큐멘터리를 찍던 시절, 카메라를 피해서 지치고 울 것 같은 얼굴을 숨기던 어머니.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차마 숨기지 못한 공포로 물들어 가던 얼굴.
어떻게 네가 여기 있을 수 있지. 너는 도대체 누구지. 무엇이 너를 만든 거지. 내가 정말로 너를 길러야 하나…….
수 없는 물음이 소용돌이치던, 그 얼굴이다.
“나는 자식 대하는 법 같은 건 배운 적도 없고 배울 생각도 없었어. 가질 생각이 없었어.”
당신한테 나는 없는 게 더 나았던 사람.
선택지가 있었더라면 어머니는 나를 낳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나도, 선택권이 주어졌더라면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당신에게서는.
하지만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알아요.”
“수호야.”
“알아요. 가셔도 돼요.”
나로 인해 깨져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고개 숙였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면 덜 외로울까.
열아, 너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내가 너를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네 이름만을 되뇌는데.
* * *
일부러 배웅하지 않고 침실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니 당연히 집에는 나밖에 없을 줄 알았다.
“왜 안 갔어.”
진작 돌아갔을 줄 알았던 양용배와 홍 감독님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홍 감독님이 과자를 들고서 내게 흔들어 보였다.
“우리 술 먹는 중.”
“댁에 가서 드세요.”
“우리 집에서 마시면 맛이 없을 것 같아서.”
“장소 바뀐다고 멀쩡한 술맛이 왜 변해요.”
“무슨 섭섭한 소릴. 술맛은 장소가 반, 같이 마시는 사람이 반이지. 수호 씨, 이거 좋아한다며?”
홍 감독님이 과자들 틈에 섞인 포도 모양 젤리를 내밀었다. 초등학교 때 열이가 사 준 후로 일하면서 자주 먹던 거다.
남들한테 대놓고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별로 없는데, 매니저 형이 얘기해 주고 간 모양이다. 제대로 살펴보니 술 마시고 있었다면서 술병은 저만치 떨어진 채 뚜껑도 열지 않았다.
“집도 삭막하니, 너만 두고 가면 외로울까 봐 홍 감독님하고 내가 희생하기로 했다.”
술병에 머무르는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양용배가 멋쩍게 웃으면서 병을 잡았다. 아마 어머니가 왜 여기 왔는지 매니저 형한테 들은 거다. 혹은 사방에 도배된 기사를 봤거나. 이런 상황에 나 혼자 남겨 두기 뭐 해서 남은 거라는 건 쉽게 짐작이 갔다.
“희생은 내가 하는 것 같은데.”
“보셨죠? 이 새낀 생각해 줘도 이래요.”
“겪어 봤지, 어제.”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이미 죽이 잘 맞은 듯했다.
“최수호, 너 어제 술 엄청 잘 마셨다며. 원래 말술이었냐?”
“몰라. 많이 마셔 본 게 어제가 처음이라서.”
“왜 이 새낀 술도 잘 마시지? 왜지? 짜증 나게.”
“그래도 키는 용배 씨가 크잖아. 아닌가?”
“양용배 키, 공식 프로필 키에서 5센티 빼야 맞아요.”
“5센티 사기는 심한데?”
“야! 5센티 아니거든? 2센티 올렸거든? 너보다 딱 1센티 작그등? 나 아직 성장 중일지도 몰라. 내년에는 내가 더 클 수도 있어.”
“용배 씨가 포기해. 원래 키는 다 유전이야.”
시끄러워 죽겠다. 어떻게 이렇게 쉬지도 않고 말을 할 수가 있지. 정신없어서 어머니하고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도 잠시간 잊었다.
“수호 씨 키 큰 건 부계 유전인가.”
그 말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삽시간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말실수했다 싶었는지 홍 감독님이 입가를 훔쳤다.
“그으…… 좋게 생각해요. 누가 잘못했는지 뻔한데 수호 씨 탓하는 사람 없잖아.”
나름의 수습인지 말이 이어졌다. 양용배가 홍 감독님의 팔을 붙잡으려다 주먹을 쥐고는 내 눈치를 살폈다.
“드라마 홍보됐다고 생각하면 되지. 털어 버려요.”
“홍보요.”
“위기를 기회로, 셀링 포인트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런 거지. 어차피 대한민국에 수호 씨 집안 사정 모르는 사람들 없고, 흉잡힐 사람은 따로 있잖아.”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 거다. 아마도 위로하려고. 악의가 없다는 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나름대로 나를 생각해 줘서 여기 남아 있었으리라는 것도 안다.
“감독님 영화에서요.”
포도 젤리를 입에 넣자 달콤한 향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단 걸로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하룻밤 실수로 임신한 여자가 죽게 되잖아요. 광신도들이 그 여자가 가진 애가 적그리스도라는 계시를 받아서요.”
난데없는 영화 얘기에 홍 감독님은 물론이고 양용배마저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 영화 본 후부터 감독님 영화를 좋아한 적이 없어요.”
“수호 씨, 갑자기 무슨…….”
그 여자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야 사건이 촉발되어서든, 포퓰리즘 비판을 위해서든, 영화 속 담론을 현 사회의 배타적 헤게모니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든, 나는 납득할 수가 없다.
“약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은 도구가 되는 기분을 모르는 것 같아요.”
“수호 씨가 뭔가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홍 감독님이 내려놓은 컵이 식탁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유리가 박살 나면서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다.
“가세요. 제가 치울게요.”
뒤에서 홍 감독님이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는 대신, 부서진 잔과 바닥에 고인 물만 바라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닥을 디디는 발바닥이 따끔거렸다.
찾을 수도 없는 조그만 파편이 박히느니 칼날처럼 흉흉하게 도사린 조각이 낫다고 생각하고 만다. 조금이라도 내게 중요한 사람에게 찔리는 것보다 만인에게 난자당하는 쪽이 낫다.
흥건한 물웅덩이에 비친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만다.
* * *
홍 감독님이 나가고도 양용배는 한참 꾸물거리며 남아 있었다. 현관에서 운동화 끈을 풀고 고치기만 한참이다.
“야, 최수호. 나 진짜 가?”
세 번째로 운동화 끈을 다시 묶으면서 양용배가 나를 올려다봤다.
“그럼?”
“너 혼자 있어도 괜찮겠냐고.”
“나 원래 혼자 살아.”
“그게 아니라. 아, 됐다. 말아라, 말아.”
“뭐.”
양용배가 머리를 마구잡이로 긁적였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 표정이 평소 같지 않다.
“꼭 그렇게 다 밀어낼 필요까지 있느냐고. 이러니까 정열이 너 걱정하는 거야.”
“열이 얘기 하지 마.”
쏘아붙이자 양용배가 지친 듯 고개를 돌렸다.
“그래라, 이 개쉐끼야. 잘나셨어요. 최수호 님은 천재시니까 니 마음대로 하세요. 걱정해 주는 사람한테 하여간.”
운동화 끈을 조여 매던 손을 놓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은 양용배가 현관문 문고리를 돌렸다. 거침없이 나갈 것 같던 양용배는 문을 열다 말고 또 머뭇거렸다.
“그래도…… 어떻게 인간이 혼자 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