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뭘 놀라. 내 방에서 자 놓고 나 깼다고 놀라냐.”
먼저 깨서 쳐다보고 있던 주제에 혼비백산할 것까지야.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니 어제 혹사한 근육에서 기분 좋은 뻐근함이 느껴졌다. 어째 황 감독님 댁 방향에서 아침부터 앓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먼저 씻을래?”
“아니야. 열이 너 먼저 씻어.”
“어, 얼마 안 걸려. 아니다. 형 어차피 나갔을 텐데 내가 안방 욕실에서 씻을 테니까 네가 거실에 있는 거 써라.”
최수호는 말 잘 듣는 어린애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자 뽀송뽀송한 최수호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한테 실연 아닌 실연을 당하고부터 묘하게 조신해진 최수호 모습이 약간은 거슬린다.
“그거 어제 입고 온 거 아니냐? 갈아입을 옷 줄게.”
“아니야. 집에 가서 갈아입으면 돼.”
“너 저녁까지 집에 못 가니까 갈아입어. 내 옷 안 맞지? 형 옷 빌려야 하나. 분명 네 옷 우리 집에 있을 텐데. 모자는 내 거 쓰면 되겠다. 이거.”
“나 집에 못 가? 갑자기 모자는 왜?”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최수호는 내가 건네는 모자를 소중히 받아 안았다. 아침부터 내가 이러는 게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아마 더 그럴 거다.
나는 최수호가 갈아입을 후드 티를 꺼내며 손짓했다.
“개구리 보러 가자.”
* * *
우리가 초등학생일 때 개구리를 기증한 식물원은 걸어서 30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전에는 지하철 타고 다녔지만, 오늘은 걷기로 했다.
아파트를 빠져나와 걸으면서 최수호는 나하고 아주 모호한 거리를 유지했다. 손이 닿을 듯 말 듯, 멀지도 않지만 아주 가깝다고 하기에도 뭐 한 거리다.
“최수호, 손 이리 줘.”
최수호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그대로 최수호의 손을 잡았다. 붕대가 손바닥에 닿을 정도로만 살짝.
“자꾸 꽉 쥐지 마. 꿰맸다며, 상처 벌어져.”
내 옆에서 걸으면서 최수호는 자꾸 손을 꽉 움켜쥐었다. 걷다가 나하고 조금이라도 닿으면 더 그랬다.
손을 잡고도 움찔거리며 내 손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풀기를 반복하던 최수호가 겨우 느슨하게 팔을 늘어뜨렸다.
“어쩌다 그랬냐.”
“나, 이거. 컵이 깨져서.”
“네가 깼냐.”
“아니, 홍 감독님이.”
혼날까 겁난 애처럼 변명이 잽싸다. 홍 감독님이 컵을 깼는데 네 손이 왜 그렇게 되냐.
“너 옛날에 중학교 때, 애들이랑 싸우고 다녔잖아. 기억나?”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집 주변의 골목은 우리에게 익숙했다. 최수호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손을 잡고 쏘다니던 곳들이다. 상권이 변하고 풍경이 달라진 곳도 있지만 최수호와 내가 자라며 변했듯 함께 바뀐 장소들이었다.
“그때 너 맞으려고 싸웠지.”
“…….”
“너 그때도 비슷하게 상처 난 적 있었어.”
이렇게까지 다칠 리가 없는 일에 심하게 다쳐서 나타난 적이 있었다. 내가 괜히 신경 곤두서서 최수호 시비 붙었다는 소리만 들리면 밥 먹다가도 튀어 나간 게 아니다.
이해는 한다. 나도 화가 나고 답답해서, 누굴 때리는 게 아니라 얻어맞고 싶을 지경일 때가 있었다.
“그러지 마. 어디서 맞고 오면 때린 놈 혼내 주러 가기라도 하지, 네가 너한테 그러면 어떡하라고.”
“……응.”
“손 아파?”
“하나도 안 아파.”
“난 아픈데.”
“…….”
“네가 너한테 이럴 때마다……. 그 유리컵에 내가 찔린 거 같다, 나는.”
최수호가 최수호한테 상처 낼 때가 제일 속상했다.
지금도, 속상하다.
최수호가 내 손등을 누르듯 지그시 잡았다. 붕대의 까끌한 감촉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형이 병원 데려갔다며.”
“응. 형이 약도 사 줬어.”
“집 와서 우리 엄마랑 아빠는 봤냐?”
“응. 미역국도 챙겨 주셨는데.”
“맛있었어?”
“응.”
“그래. 다행이다.”
식물원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최수호와 나는 그저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르게 금세 식물원이 나타났다.
우리는 익숙하게 입장권을 끊고 식물원 안으로 들어섰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식물원은 조용했다. 현장 학습 온 학생들이라도 있을 법한데 우리 말고는 커플이나 가족 단위 몇몇이 전부다.
최수호와 내가 개구리를 찾으러 올 때면 먼저 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온실부터다.
둥그런 유리 천장으로 된 관은 열대 식물로 가득 차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관 너머에는 바깥으로 이어지는 다리와 연못이 있다.
“개구리 아직 있을까?”
“열이 보러 온 거야?”
“어, 오랜만에 열이가 열이 보러 왔다. 저번에 우리 언제 왔지? 형 쓰러지기 전이니까 고등학교 2학년 봄인가.”
“봄방학 끝나고 나서.”
“기억난다. 3월?”
경칩 지나갔으니 슬슬 개구리 깨어났을 거라고 하면서 왔던 것 같다. 그때 개구리를 봤던가.
식물원에 온다고 개구리 열이를 매번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걔도 뭐, 걔 생활이 있으니까.
“열이 몇 살이지. 우리가 초등학교 4학년 땐가 키웠으니까, 아홉 살?”
“만으로 하면 여덟 살.”
“개구리 한 10년 정도 산다며.”
“오래 살면 더 산대.”
“더 짧게 살 수도 있겠네.”
최수호가 문득 조용해졌다. 최수호가 입을 다무니 안 그래도 고요한 식물원의 적막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우리 안 온 사이에 저 어디 하늘나라 연못으로 갔을 수도 있잖아. 개구리 열이.”
그러면 최수호는 울까. 속상해서 잠 못 들지는 않을까.
난 또 그런 것들이 걱정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이별은 곧 상실이라는 걸 알면서도 최수호에게만은 모든 게 비껴가길 바라고 만다.
어리석은 걸 알아도 기도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서.
최수호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다.
“외국 가냐?”
다른 얘기를 꺼내고 나서야 최수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형한테 말하는 것보다 나한테 말하기가 더 어려웠겠지. 이해하면서도 야속하다.
“진이 형이 말했어?”
“나한테는 언제 말하려고 했어.”
“아직 확실한 거 아니라서.”
“근데 형한테는 말하고 나한텐 입 다무냐. 너 언제부터 나한테 이렇게 비밀이 많았는데.”
요즘 우리는 이상하다. 함께한 어느 때보다도 더 멀게 느껴진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끔찍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도. 어릴 때보다 지금 더 최수호를 좋아하는데.
“너 좋아할 때부터.”
이번에는 최수호의 말에 내가 말문이 막혔다.
수호야, 내가 너한테 너무한 건가.
“나한테 자꾸 뭐든 숨기려고 하지 말고 너랑 나랑 편하게 지낼 수는 없는 거야?”
“…….”
“이젠 나 안 좋다며.”
“……아해.”
최수호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조그만 소리가 최수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좋아해.”
최수호는 떨고 있었다. 좋아해, 나랑 사귀자, 잘도 말하던 놈이 지금은 겁에 질려 있다.
“열아, 미안해. 나는 역시 네가 너무, 좋아서, 못 참겠어.”
투명한 눈물이 최수호의 눈가를 타고 흐른다. 키가 큰 열대의 나무 군락은 푸르고 커다란 잎을 펼치고 있었고 투명한 유리 돔 아래로 햇빛이 주렁주렁 쏟아졌다.
최수호가 붙잡은 내 손을 끌어당겼다.
“미안해……. 네가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아…….”
고백이 아니라 고해 같다. 속죄 같았다.
나를 쳐다보는 최수호의 눈이 일그러져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네가…… 좋아서 죽고 싶어…….”
도대체 나는 최수호한테 무슨 짓을 한 걸까.
“차라리 죽고 싶어, 열아.”
말을 마친 최수호가 숨을 몰아쉬었다. 금세라도 무릎 꿇을 듯 최수호가 비틀거린다. 휘청거리는 바람에 내가 더 크게 움찔했다.
“잘못했어. 좋아해.”
“뭘 잘못해. 잘못했다고 하지 마, 최수호.”
“좋아해. 제발 용서해 줘.”
최수호는 빌었다.
“제발 버리지 마.”
울면서 내게 애걸했다.
눈물로 젖어 든 뺨이 반들거리고, 오로지 나만을 향한 눈동자는 녹인 금처럼 찰랑거렸다.
맞잡은 손아귀가 아플 정도로 죄어든다. 내 손이 아픈 게 문제가 아니었다. 퍼뜩 확인하니 상처가 터졌는지 최수호 손의 붕대가 붉게 물들었다.
“최수호, 너 손.”
급하게 말해도 최수호는 구명줄을 붙잡기라도 하듯 내 손을 간절하게 움킬 뿐이다. 내 말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것 같다.
억지로라도 떼어 내기 위해 최수호의 손목을 잡았다. 나를 쳐다보는 최수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놔.”
최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피가 번져 나와 붕대가 축축해진다. 마음이 급해졌다.
“손 놔. 빨리.”
윽박지르며 힘으로 손목을 뿌리치자, 최수호가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겨우 한 발자국의 거리가 벌어졌는데 온통 창백해진 최수호가 희미하게 보인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사람처럼 질린 최수호의 모습은 죽은 사람 같았다.
숨도 쉬지 않고 나를 쳐다보던 최수호가 고개 숙였다. 눈물방울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순간 빛이 반사되어 흡사 깨져 나간 파편이 떨어지는 것같이 느껴졌다.
최수호가 눈물을 훔치자 붕대의 핏물에 물기가 더해졌다. 최수호의 눈가에 분홍색 선이 남는다.
최수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내게서 멀어졌다.
“최수호!”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다. 최수호가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다리가 어찌나 긴지 한 걸음마다 거리가 부쩍 벌어졌다.
따라가려 덩달아 뛰었지만 곧 무성하게 우거진 수풀이 눈앞을 가렸다. 길이 갈라지는 곳으로 접어들자 최수호는 금세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익숙한 식물원 내부가 순식간에 넓고 낯선 미로처럼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최수호 정도 되는 장신이 안 보일 리가 없는데, 까치발까지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머리카락 하나 안 보였다.
벌써 거칠어지는 심장 박동을 진정시키며 나는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최수호를 찾으면 꼭 해 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