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88)

73.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최수호 이름이 떠 있는 건 익숙하다.

최수호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별별 기사를 다 봤다. 출생 관련 얘기는 물론이고 밑도 끝도 없는 루머, 왜 기사화되는지도 모를 사소한 신변잡기, 뜬금없는 염문설에 이르기까지.

다른 배우와 나란히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여러 번 봤다. 당연히, 보긴 했는데.

지원 누나의 핸드폰 액정에 뜬 영상이 재생됐다. 책상 앞에 앉은 양용배가 혼자 웃으면서 횡설수설 뭐라고 떠드는 게 영상의 전부였다.

문제는 양용배가 말하는 내용이었다.

최수호, 그리고 키스. 영상 아래쪽에서 마구 쏟아져 올라오는 하트들.

“이거 감독님이 찍으신다는 영화 얘기 맞죠, 그쵸?”

지원 누나가 신이 나서 물었다. 황 감독님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내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아휴, 어쩌다가 얘기가 이리로 빠졌지. 정열 씨가 복싱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축하해 주러 온 건데. 영화 얘기는 그만하고 우리 그 얘기나 하자.”

내가 최수호하고 양용배의 염문설 아닌 염문설에 열 받기라도 할까 봐 걱정되시는 모양이다.

글쎄다. 이걸 열 받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살 테니까 우리 다 같이 가서 기념으로 고기나 먹을까? 어때, 혹시 체중 조절 들어갔어?”

“아직 체급 월장 할지 관장님하고 논의하는 중이라서, 잠시만요.”

주머니에 넣어 놨던 핸드폰이 열심히 울렸다. 누구인지 안 봐도 알겠다.

“왜.”

- 열아, 지금 어디야?

최수호는 죽었다 깨도 양반은 못 될 거다.

“체육관. 왜.”

- 다행이다.

“뭐가.”

- 지금 거기로 가는 중이라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뭔가 싶어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갑자기 왜?”

혹시 지금 자기 스캔들 수습하러 오는 건가. 방금 내가 본 것도 스캔들이라고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예전에도 스캔들 뜨자마자 만사 뒤로하고 나한테 달려오는 바람에 기영이 형이 울면서 전화 걸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최수호한테 왜 내게 그런 걸 해명하냐고 하니까 최수호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뿐이랬나 뭐랬나. 하여간 혼자 난리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졸업하기 전에도 엄청 고백했었네. 내가 둔했던 건가.

- 그게, 지금…… 어, 지금 천 관장님네 체육관 앞이야.

“뭐, 벌써?”

당황한 나머지 곧장 건물 정문으로 눈길이 갔다.

때마침 고급 SUV가 미끄러지듯 건물 앞에 정차 중이었다.

최수호 차는 당연히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언젠가 촬영장에 나타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모조리 훔쳐 버렸을 때처럼, 선글라스를 쓴 여성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내가 예상한 그림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최수호가 양용배 욕이나 하러 달려왔을 줄 알았건만. 뭔가 훨씬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수호네 어머니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 * *

최수호하고 반평생이 넘게 단짝으로 살아왔지만 수호네 어머니를 만난 적은 많지 않다.

길게 얘기를 나눠 본 경험은 더욱더 적었다.

“음식은 입에 맞아요?”

“아, 예.”

그런데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하게 될 줄이야. 준비 운동도 못 하고 링으로 떠밀려 올라가면 이런 느낌이 들까.

아무리 그래도 준비할 시간은 줬어야지, 이 자식아.

분노를 담아 테이블보 밑에서 최수호의 발을 지그시 밟았다. 최수호가 들고 있던 나이프를 접시에 떨어뜨렸다.

같이 차 타고 올 때부터 얘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서 더 뭐라고 하기도 뭐 하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건지.

예고도 없이 등장한 두 사람 덕에 나는 기껏 와 준 황 감독님과 지원 누나를 돌려보내야 했다. 어쩔 수 없잖은가. 최수호뿐이면 모르겠는데 수호네 어머니 초대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최수호네 어머니가 나와 최수호를 데리고 온 곳은 호텔에 자리한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심지어 딱 테이블 하나만 두고 따로 마련된 방은 두 면의 벽이 유리로 돼 있어 시원하게 펼쳐진 시티 뷰가 장관이었다.

무슨 상견례 자리 같아서 숨 막힌다. 거기다, 막 훈련을 마쳤던 참이라 트레이닝복에 후드 집업만 걸친 차림도 신경 쓰였다.

그나마 씻어서 천만다행이지. 땀 냄새 풀풀 풍기면서 끌려올 뻔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말은 쉽죠. 보기만 해도 비쌀 것 같은 장소와 읽을 수도 없었던 메뉴판,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분위기의 소유자인 예비 애인 어머니가 쓰리 콤보를 넣으면 아무리 대범한 사람이라도 긴장할 거다.

새삼스럽지만, 엄청난 미인이다. 그 최수호를 낳았으니 오죽하겠냐만. 앞에 두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계속 입이 마를 정도였다.

최수호가 무표정하게 있으면 이럴까. 잘 깎은 대리석 조각상 같아서 은근한 위압감마저 든다. 구겨진 운동화가 민망해서 테이블 밑에서 괜히 발을 꼼지락거리게 됐다.

“요즘도 운동하나 봐요.”

“저 열이 좋아해요.”

수호네 어머니가 말을 건넨 상대는 나고, 거기 갑자기 끼어들어서 고백해 버린 건 최수호다.

왜 사고 나니까 깜빡이 켜고 들어오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순서가 있어야 할 거 아니냐고. 포크를 으스러져라 쥐면서 최수호의 발등을 열심히 밟았다.

“야, 나한테 물어보셨잖아.”

“소개할 사람 생겼다고 했을 때부터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어.”

진땀을 흘리는 나와 달리 최수호네 어머니는 우아하고 건조하게 응답했다.

“달리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없었고, 좋고 싫은 건 어렸을 때부터 확실한 애였으니까.”

하긴, 조금이라도 최수호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최수호의 좁아터진 인간관계를 모를 수가 없다.

“이 친구 때문에 한국에 있겠다고 했던 거였지?”

중학교 때 얘기를 하는 건지, 이번에 최수호한테 남아 달라고 한 걸 말하는 건지 헷갈린다. 둘 모두를 가리키는 걸 수도 있겠다.

최수호가 대답하지 않아도 수호네 어머니는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여전히 나는 그게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은 안 드네.”

이거 혹시 그런 그림인가. 부모의 반대에 부딪힌 비운의 연인들.

최수호네 어머니가 하도 우아하게 돌려 까는 중이라 내가 당하면서도 당하는 줄 모르는 건가?

“대표님이나 어머니가 뭐라고 하시든 저는 열이 좋아하고, 포기할 마음 없어요.”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그 어머니가 아직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최수호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대표님 얘기는 또 뭐야.

“비장하네.”

수호네 어머니가 가만히 읊조렸다. 말만 들으면 놀리는 것도 같고, 감탄 같기도 한데, 정작 말하는 사람은 아무 표정 변화가 없어서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고요하고 나긋한 말투로 던져진 물음에 최수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반대하셔도 저는 열이랑…….”

말려야 되나. 얘 실수할 것 같은데. 다시 최수호 발을 쳐 봤지만 소용없었다.

“결혼이라도 하니.”

결혼이요? 여기서요?

수호네 어머니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알 수 있었다. 저건 놀리는 거다.

“열이랑 결혼할 거예요.”

쟤는 또 뭐라는 거냐.

덤프트럭이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질주하는 현장이었다. 상황 판단이 안 되는 선수가 아드레날린에 취해서 무작정 상대 쪽으로 파고들며 난타전을 벌이는 게 바로 이런 그림이다.

“수호야, 우린, 아직, 어리잖, 아.”

끊어지는 부분마다 발등을 꽉꽉, 눌러 주면서 말을 마쳤다. 결혼은 무슨. 연애도 아직인데, 넌 도대체 혼자 어디까지 가 있냐.

부모님께 처음 소개한다는 자리에서 갑자기 결혼이 뭐냐고, 결혼이.

그러나 이번에도 당황한 건 나뿐인 듯했다. 수호네 어머니는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접시의 대구 요리를 자르는 중이었다.

놀린 거 아닌가? 혹시 진심이셨나? 최수호나 수호네 어머니나 스무 살이라도 진지하게 만나려면 결혼 정도는 염두에 둬야 한다는 생각인가? 집안 가치관인가, 이거?

그보다 애초에 결혼을 어떻게 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관련 법이 없지 않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더 큰 대한민국이 왔었나.

혼란스럽다. 기껏 한 조각 먹었던 구운 가지가 다시 목구멍을 타고 역류하려고 한다.

“수호하고 같은 생각이에요?”

“……아직 결혼은 생각 안 해 봤습니다.”

“결혼 말고.”

부드러운 대답에 민망해졌다. 하긴 여기서 나까지 결혼 생각하고 있으면 문제가 크다.

“직업이 직업이잖아. 구설에 휘말리기 좋은 환경이죠. 옆에서 지켜봐 왔으니 잘 알겠지만. 수호가 막무가내기도 해서 힘들 거예요.”

이거 아무래도 결혼 허락받는 자리 맞는 것 같은데. 연애 아닌 연애에서 받을 질문치고 묵직했다.

잔뜩 긴장해서 굳은 우리 둘과 달리 수호네 어머니는 매끄럽게 식사 중이었다. 냅킨으로 입술을 닦아 내고 나를 향하는 눈빛은 역시나 초연하고, 예리한 기세가 있다.

“감당하기 힘든 애지 않나요, 수호?”

테이블보 위로 올라와 있던 최수호의 손이 움찔대다 주먹을 쥐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최수호는 까다롭다. 성격도 그렇고, 조건도.

예민하고 독점욕이 넘치는데다 좋고 싫은 게 지나치게 뚜렷하다. 막무가내라는 말이 딱 맞아서 제멋대로 굴 때는 감당이 안 될 지경이다.

조건은 더 말해서 뭐 할까. 전국에 얼굴 팔려 있어서 같이 다니려면 안경에 마스크로 중무장을 해야 한다.

나까지 지나가는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는 건 물론이고, 오늘처럼 남들이 최수호하고 다른 사람이 어울리네 마네 하는 걸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제가 많이 좋아합니다, 수호를.”

하지만 그런 건 이미 최수호한테 고백하기 전에 다 고민했던 거다.

최수호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진다. 예의 그 사랑스러워 미칠 것만 같다는 시선이라 목이 간지러워졌다. 닭살 돋는다.

만약에 최수호가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음. 제대로 된 수입도 없는 지금은 역시 안 된다고 해야겠지.

여건은 그렇다 치고 법은 어쩌지. 다른 나라에서 하고 오는 수밖에 없나? 국내엔 비밀로 하고? 밝혀야 하나?

분명 최수호하고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왜 결혼부터 고민하고 있는 건지. 이러다 연애 건너뛰고 식장으로 직행하게 생겼다.

수호네 어머니는 턱을 괴고 꼭 내 머릿속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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