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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tunt/Fade In(1) (6/33)

5. Stunt/Fade In(1)

“혼자 있느라 힘들었지? 몸은 괜찮아?”

묻는 게 늦었다. 진환은 제 어깨에 뒤통수를 기대고서 늘어져 있는 은율의 목가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가 연보랏빛 물속에서 움찔하다 대답했다.

“좀 나른한 것만 빼면 괜찮은 것 같아요.”

진환은 혹여 은율이 한기를 느낄까 싶어, 욕조의 따끈한 물을 손으로 떠서는 그의 목과 쇄골 라인에 뿌려 주었다. 맞닿은 제 몸에서 은율의 몸이 떨어질까 봐 그의 허리를 바짝 당겨 단단히 안았다. 물속이라 그런지 가볍게 달라붙는 게 좋았다. 은율은 입욕제의 라벤더 향을 맡으며 기분 좋은 얼굴로 눈을 감았다.

진환이 은율의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며 그 볼에 입술을 댔다.

“앞으로 비 오는 날은 무조건 같이 있어 줄게.”

“그래도 일이 우선이죠.”

“무슨 소리야.”

진환이 인상을 썼다.

“내겐 언제 어느 때고 율이 네가 최우선이야.”

이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은율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함께 있어 주실 수는 없잖아요.”

은율이 쓴웃음을 지었다. 진환이 두 팔로 그의 부드러운 몸을 껴안고서 그 어깨에 제 턱을 기댔다.

“걱정되는 걸 어떻게 해.”

그러고는 약간 투정부리듯 말해 온다. 은율은 가슴이 간지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서로의 마음을 자각한 직후라서 그런 걸까. 그의 말 하나하나가 제 심장을 톡톡 건드렸다.

은율은 약간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형 목소리나 녹음해서 주세요.”

“목소리?”

“형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안심이 되니까…….”

은율의 얼굴이 불이라도 지핀 것처럼 붉게 타올랐다. 덩달아 진환의 얼굴도 붉어졌다.

진환이 멍하니 있다가 은율을 꼭 끌어안고 그의 목 언저리에 제 볼을 비벼 댔다.

“진짜 귀여워 죽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다 음흉하게 웃었다.

“원래 트라우마는 강렬한 기억으로 이겨 내야 한다고 하던데.”

은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본다. 이런 순진한 아이에게 자신이 생각한 걸 그대로 말했다간 단박에 미움을 받겠지 싶었다.

진환이 히죽거리며 그의 입술에 연달아 버드키스를 날렸다. 은율이 미간을 확 찌푸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왜 자꾸 뽀뽀하세요? 민망하게.”

“민망해? 난 좋은데. 우리 율이는 싫은가? 그런 거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매달리니, 은율이 당황했다.

‘아, 버릇되겠어.’

진환이 보기에, 은율은 자신이 보이는 침울한 얼굴이나 측은한 모습에 한없이 약했다. 이렇게 나가면 아무리 그라도 한 수 접어 준다.

“그건…… 아니지만…….”

거봐.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서 다시 달라붙어 입술을 대었다. 얌전히 진환을 받아 주던 은율이 깜짝 놀라며 얼굴을 들었다.

“저희 중요한 걸 잊고 있었습니다.”

약간 파리해진 낯빛에, 진환이 덩달아 얼굴을 굳혔다.

“하진이 눈썰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어쩌면 만나자마자 형이랑 그런…… 관계가 되었다는 걸 알아챌지도 몰라요.”

진지하디진지한 얼굴로 은율이 말했다. 진환은 괜히 걱정했다는 얼굴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서하진은 알아도 괜찮아. 편견 가질 녀석이 아냐.”

어째 하진에 대해 잘 아는 듯한 말투였다. 은율이 진환을 바라보자, 그가 걱정 말라는 얼굴로 웃어 보인다.

“형이 잘 말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게 안심시키며 은율의 몸을 놓아준다.

진환은 먼저 욕조에서 나온 후, 일어나려는 은율을 손으로 막았다.

“오늘은 형이 다 알아서 해 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

은율은 무슨 말인가 싶어 욕조 안에서 눈만 깜빡였다. 진환이 욕조 안으로 팔을 넣어 은율의 몸을 단단히 붙잡아 안아 들었다. 물에서 쑥 올라온 은율은 당황한 낯으로 진환의 목에 팔을 둘렀다.

“내려 주세요. 걸을 수 있어요.”

“안 돼. 몸이 안 좋을 때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쉬는 게 최고야.”

“까딱 정도는 해도 되니까 내려 주시죠.”

“알았어, 알았어.”

진환이 웃으면서 은율을 간이 의자에 앉혀 주었다. 은율이 의자에서 일어서려는데, 진환이 아예 의자째로 그를 옮겼다. 은율이 깜짝 놀라며 한 손으로는 제 가랑이 사이의 의자 끝을, 한 손으로는 진환의 어깨를 잡았다.

“으앗! 뭐, 뭐 하는 거예요! 허리 나가요!”

“이 정도로 나갈 만큼 약하진 않아.”

“제 무게가 얼마인지 아세요?!”

“응, 깃털보다 약간 무겁다는 건 알겠어.”

“형!”

실랑이하는 동안 어느새 은율은 의자에 앉은 채 샤워부스에 옮겨진 상태였다. 진환은 샤워기를 틀어 온도를 적절히 맞추었다. 그가 은율을 보며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은율이 움찔하며 의자에 제 몸을 더 파묻었다.

*  *  *

은율은 입술을 삐죽이며 진환의 목에 제 팔을 감아 매달렸다. 진환이 고집해 입힌 그의 새하얀 셔츠가 은율의 사타구니를 아슬아슬하게 가렸다. 진환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를 또 한 번 안아 들었다.

진환은 힘들지도 않은지, 움직일 때마다 은율을 번쩍번쩍 안아 들고 다녔다. 말리다 지친 은율은 이제 마음대로 하라는 듯 거부하지도 않았다.

직접 몸을 닦아 주고 제 셔츠까지 입혀 놓은 게 썩 마음에 드는지, 진환은 기분 나쁠 정도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진환이 침대에 다가서서 은율을 바르게 눕혀 주었다. 곧 진환도 재빨리 불을 끄고는 그의 옆에 냉큼 누웠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려 꼼꼼하게 덮어 주고는 은율의 몸을 끌어안는다. 따뜻한 온기가 섞이며, 기분 좋은 나른함이 퍼졌다.

은율이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이다, 계속 말할지 말지 고민하던 말을 꺼내었다.

“형은…… 제가 남자인 게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진환이 은율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야?”

“……형이라면 굳이 남자가 아니어도…!”

“율아.”

낮게 깔린 목소리에 은율이 움찔했다.

“형은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냐. 율이 너를 좋아하는 거지. 넌 아니야?”

은율이 눈을 내리깔았다.

“저도 형이니까 좋은 겁니다. 하지만…….”

은율은 겁이 났다. 자신에 비해 진환은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축복받지 못할 사랑을 택해 그것들을 잃게 될까 두려웠다. 자신은 어떤 취급을 받아도 상관없지만, 그는 자신과 달랐다.

진환이 은율의 볼에 따뜻한 제 손을 가져다 댔다.

“성별은 상관없어. 난 서은율이라는 사람에게 반했어. 그게 중요한 거야.”

“형이 가진 것들을 잃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이 알게 돼서 손가락질하면…!”

“난 상관없어.”

진환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애당초 그렇게 쉽게 잃을 것들도 아니지만, 잃어도 상관없어. 말했잖아. 내겐 네가 최우선이라고.”

진심이 담긴 말에 가슴이 저렸다. 은율도 그와 같은 말을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진환만큼이나 제 동생들이 우선이었다. 그들의 우열 따위, 도저히 가릴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을 아는지, 진환이 은율을 품에 안아 토닥였다.

“너도 날 최우선으로 두라고 하진 않을게. 넌 그냥 그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

진환이 은율의 귓가에 감미롭게 속삭였다.

“네가 하나하나 걱정하며 떨지 않도록 형이 잘할게.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줄 거고, 누구도 널 건들지 못하게 할 거야.”

진환은 은율을 제 품에서 떼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두 쌍의 맑은 눈동자가 시선을 맞댄다.

“그러니까…… 넌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줘. 평생.”

은율이 진환의 진지한 눈을 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거침이 없을까.

어둠 속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은율이 애써 태연하게 웃었다.

“그게 뭐예요. 프러포즈 같게.”

“프러포즈 맞는데.”

진환이 얼굴에 웃음기를 얹었다. 그가 다시금 은율을 꼭 끌어안았다.

“조만간 정식으로 이벤트 준비해서 다시 프러포즈할게. 율이 감동한 얼굴이 잘 안 보인다.”

그렇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키스를 시도했다. 은율은 그걸 받아 내며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  *  *

장마 동안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비를 쏟아냈다. TV에선 충북의 한 지역에서 홍수가 났다는 둥, 강원도에선 산사태가 났다는 둥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

오늘도 심각할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나름 방음이 잘되는 집임에도 빗소리가 계속 들려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진환은 침대에 상체를 일으켜 앉아 있는 상태로 제 옆에 누워 있는 은율을 내려다보았다. 잠결에 제 셔츠 자락을 손에 꼭 쥔 채 잠든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진환은 그런 은율의 머리를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었다.

그 와중에 잘게 진동이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둔 진환의 휴대폰 액정에 누군가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손에 가져와 확인해 보니, 서하진이다.

진환은 곧바로 받질 못하고 은율을 내려다보았다. 안정적인 모습으로 잠들어 있으니 잠깐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 그의 손에서 조심스레 제 옷자락을 떼어 냈다. 어찌나 꽉 붙잡고 있었던지, 빼낸 옷자락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갔다 오면 옷자락이 아니라 내 손을 쥐여 줘야지.’

진환은 그렇게 소심하게 제 옷자락을 질투하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방 밖으로 나간 진환은 그제야 하진의 전화를 받았다.

-왜 이리 늦게 받아?

은율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그간 진환과 하진은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하진도 진환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놓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굳이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애당초 하진과 진환은 구구절절 속사정을 나눌 만한 친구 사이도 아니었다.

-……좋지 않은 소식이야.

하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한선무역, 결국 강제로 인수 합병당했어.

진환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여자, 아니 이모도 회장직을 사퇴했고.

진환은 하진에게 들었던 그의 이모 정가영을 떠올렸다. 은율을 살리다 죽은 정나영과는 쌍둥이 언니가 되는 사람이다. 그녀는 사랑하던 여동생이 죽은 것을 은율의 탓으로 돌려, 그를 굉장히 싫어하고 경멸하고 있었다.

‘하물며 그 여동생의 아이도 아니니…….’

가영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무 잘못도 없는 은율을 그리 대한다는 것에는 격한 거부감이 들었다.

가영이 회장으로 앉아 있던 한선무역은, 한국 무역계의 큰 축을 떠받드는 대기업이다.

8년 전, 부도 위기를 맞았을 때 가영이 제 사비를 모두 털어 회사를 지켜 냈고, 그 결과 한선무역은 국내 3대 무역회사로 손꼽히게 되었다.

당시 가영은 부도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은율의 부모로 인해 나온 거액의 사망보험금 일부에 손대게 되었고, 이후 회사가 탄탄해진 후에는 하진과 지희에게 양자로 들어올 것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가영이 사망보험금을 가로챈 사실을 알고 있는 데다 자신들이 은율의 삶의 이유가 되어 버렸으니, 그들은 당연하게도 그 권유를 거절했다.

결국 그녀는 강경책으로 은율을 만나 그를 반쯤 협박했고, 그 때문에 큰 상처를 받은 바가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두 사람이 가영에게 더욱 적대감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가영은 그럼에도 꿋꿋하게 두 사람을 설득해 왔다.

대기업 회장 자리에 있는 여성이 죽은 여동생의 자식들 중 둘을 양자로 들여 보살피려는 이야기. 은율 남매와 가영의 이야기는 그것이 전부처럼 보였다.

하지만 진환은, 하진만이 알고 있는 가영의 진실에 대해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가영은 8년 전의 사고가 한 외국인 남자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남자는 줄곧 은율을 쫓았었고, 한국에서 번듯하게 정체를 드러내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남자가 아예 작정을 하고서 사람을 보내 은율을 납치하려 했던 것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은율을 이동시키던 부모는 그들과의 추격전 끝에 큰 추돌 사고를 당했고, 결국 사망했다.

내막을 알게 된 가영은 그 남자와 은율에게 분노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은율을 내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그를 노리던 남자만 좋을 꼴이 되고 말 거라서 억지로 붙잡아 두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은율로 인해 하진과 지희마저 잘못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끌어안았다.

가영에게 있어 혈육이라고는 그녀와 하진, 지희뿐이었고 자식도, 남편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여동생의 자식들만큼은 어떻게든 지켜 주고 싶었다. 덤으로 여동생의 원수인 남자가 은율을 데려갈 수 없도록, 그리고 하진과 지희에게까지 손을 뻗치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적 입지가 있어야 했다.

당시, 상대는 그저 어둠 속에 살다가 이제 막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사람이었고, 외국인일 뿐이었다. 국내에서의 사회적 입지가 굳건하고 나름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밀어낼 수 있었다.

그랬기에 가영은 자신의 회사를 어떻게든 바르게 세워야 했고, 결국 여동생과 그 남편의 사망보험금에까지 손을 대며 부도를 막았다.

가영 덕에 남자는 한동안 한국에 제대로 발도 붙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발을 들이려 할 때마다 그녀가 손을 써 둔 곳곳에서 압박이 들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자가 갖고 있는 기업의 힘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대로는 금세 밀리고 말 거라는 생각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끈질기게 하진과 지희를 찾아가 그들을 설득했다. 두 사람을 양자로 들여서 은율과의 관계를 끊어 버린다면, 이젠 그가 그 남자에게 끌려가든 어찌 되든 상관할 바 아니라고 생각했다.

속이 탄 가영은 고집을 부리는 조카들을 데려오기 위해 은율을 따로 불러 갖은 협박을 일삼았고, 그걸 하진에게 들켜 버려서 그가 크게 난동을 피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가영의 회유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덧 케이라는 그 남자는 그의 방해꾼이나 다름없었던 가영의 한선무역을 인수 합병해서 삼켜 버리기에 이르렀다.

하진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작게 웃었다. 그는 진환이 나타나 준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은율이 진환을 이용해 사회적 입지를 제대로 잡길 원했고, 누구도 그에게 함부로 손을 뻗칠 수 없게 만들기를 원했다. 진환은 은율을 충분히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도 모자라 오로지 은율만을 바라봐 주니, 더할 나위 없었다.

하진의 그런 생각은 딱 들어맞았다. 얼마 전의 납치 미수 사건만 해도 경찰의 철저한 조사가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게 진환 덕분이라는 것쯤은 하진 역시 알고 있었다.

진환의 아버지는 현 경찰청장인 이영환이었다. 하진은 그런 든든한 뒷배를 가진 진환이야말로 은율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와중에 진환이 은율과의 정식 교제를 알려 왔다.

‘야, 이 사기꾼아!’

하진은 여태 한없이 좋게 생각하던 진환에게 저도 모르게 상소리를 뱉었다.

그래도 하진은 얼마 안 가 진환과 은율이 이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은율에 대해서는 그 본인보다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하진이었다. 은율과 연락할 때마다 진환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길어지는 것을 보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리 없었다.

진환은 그 당시 하진의 씁쓸함이 담긴 목소리를 떠올리며, 아주 약간의 미안한 감정을 가졌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하진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이제 그 사람이 직접 움직일 거야. 한국에 버젓이 자리까지 잡았으니.

“준비하던 건?”

-거의 다 되어 가. 마무리되는 대로 넘겨줄게.

진환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조심해라.”

-……뭐야, 소름 돋게. 그쪽은 형이나 잘 지키고 있으라고.

볼멘소리를 내며 하진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때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문고리를 잡은 채 나른한 얼굴을 한 은율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집스럽게 입혀 둔 큼직한 흰 셔츠 아래로 그의 늘씬한 맨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긴 소매에 손등이 반쯤 덮인 모양새가 너무도 귀엽게 느껴졌다.

진환이 은율에게 얼른 다가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깼어?”

은율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진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형이 없어서…….”

잠이 덜 깬 상태로 나른하게 말하니, 듣는 사람은 죽을 맛이었다. 진환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은율의 얼굴 곳곳에 키스를 해댔다.

“더 잘까?”

은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엉겨 붙었다. 진환은 그를 안아 들며 눈가에 살포시 입술을 내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침대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  *  *

그날은 유달리 진환을 찾는 전화가 많았다. 일과 관련된 연락들이라서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지라, 수시로 침실을 비웠다.

진환에 의해 반강제로 침실에서만 생활하던 은율은, 잠결에 제 휴대폰의 진동 소리를 들었다. 자정에 가까운 늦은 밤이었던지라, 누군가 싶어 액정 화면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은율은, 눈을 번쩍 뜨고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가 긴장한 낯으로 깊이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전화를 받았다.

“예……, 이모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여태껏 거의 들리지 않던 빗소리가 점점 또렷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전화 상대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이리 오는데도 생각보다 멀쩡한 것 같구나.

조소와 경멸이 섞여 있었다. 언제나처럼.

-직접 만나고 싶진 않으니 전화로 말하마.

은율이 입술을 떨며 시선을 떨구었다.

-한선무역은 케이트레이딩에 강제 인수합병을 당했고, 난 회장직에서 퇴출됐어. 이제 내겐 너희 남매를 지켜 줄 힘도, 권력도, 아무것도 없어.

은율은 그녀가 하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하진이가 너에겐 말하지 말라고 해서 얌전히 있었다마는, 어차피 내가 발을 빼게 된 이상 당사자인 너도 알기는 해야 하잖니?

“무슨…… 말씀이신지…….”

곧이어 가영이 한탄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은율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낯빛이 파리하게 질려 갔다. 몸은 덜덜 떨리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자꾸만 몸에 한기가 돌았다.

-……이제 알겠니? 넌 그 애들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 네 부모도. 그러니까 얌전히 애들 설득해서 보내. 그 스토커 놈 때문에 애들까지 위험하게 만들지 말라고.

은율은 거칠게 흘러나오는 숨을 최대한 참아 내며 몸을 떨었다. 지금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정말 진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 이야기를 하진은 모두 알고 있었다고? 지희도? 대체 언제부터?

-듣고 있니?

가영이 짜증을 담아 물었다. 은율은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그의 입에선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예상치 못한 충격 때문에 거친 숨만 색색거리고 있는데, 그사이 진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은율이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방의 불을 켰다. 그러자 은율이 파리한 안색으로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환이 당황한 얼굴로 한달음에 침대로 뛰어갔다. 은율이 초점 나간 눈으로 진환을 바라보았다.

“율아, 왜 그래?!”

진환이 놀란 얼굴로 침대 위에 올라가 은율의 안색을 살폈다. 그가 은율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보고는 굳은 얼굴로 그것을 빼앗아 들었다. 액정 화면에 뜬 ‘이모님’이라는 세 글자를 본 진환이 낮게 욕을 뱉었다.

-뭐니? 듣고 있어?

전화 너머로 가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환은 단숨에 전화를 끊어서 전원까지 꺼 버리고는 휴대폰을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진환이 은율의 앞에 앉아 두 손으로 그의 양 볼을 잡았다.

“괜찮아? 무슨 말을 들은 거야?”

잔뜩 굳은 얼굴로 물으니, 은율이 더듬더듬 말했다.

“제가…… 부모님…… 자식이……. 하진……, 하진이도……, 지희도…… 알고…… 있었…….”

“율아, 천천히 숨 쉬어. 괜찮아.”

자꾸만 숨이 넘어가려는 통에, 진환이 그의 등을 쓸어 주었다. 은율이 사색이 된 채 헐떡거렸다.

“왜, 왜……. 믿을…… 수가…….”

은율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진환이 속으로 가영에게 욕을 해 대었다. 하필 전화를 해도 이렇게 비 오는 날 할 건 뭔지. 게다가 은율의 반응으로 봐서는 그녀가 다 말해 버린 것 같았다. 당연히 충격이겠지.

“괜찮아, 율아. 다 괜찮아.”

“그……, 그럴 리가…….”

“율아.”

“그, 그 사람이……. 하지만 그땐…….”

“율아, 정신 차려.”

은율이 불안하게 눈을 굴리며 눈물을 뚝뚝 흘려 댔다. 때맞춰 창밖이 번쩍였다.

콰르릉-!

“흡!”

은율이 크게 놀라며 제 귀를 양손으로 막았다. 그의 얼굴이 무너져 내렸다.

“시, 싫어! 아냐……. 아냐, 아냐!”

진환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은율이 고개를 거칠게 내저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진환이 그의 두 손을 붙잡아 귀에서 떼어 냈다.

“율아!”

힘을 주어 부르니, 그제야 움찔하며 시선을 맞춰 온다.

“괜찮으니까 진정해.”

“하, 하진이가……. 지희가…….”

“율아!”

진환은 가슴이 후벼 파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이를 악물었다. 은율을 끌어당겨 그의 몸을 세게 안아 주었다. 은율이 진환의 품에서 덜덜 떨었다.

“형…….”

진환이 은율을 품에서 떼어 그 입술에 제 입을 맞추었다. 여느 때보다 더 거칠고 여유 따윈 없는 키스가 이어졌다. 은율이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떼어 내려 했지만, 진환이 그의 뒤통수를 잡아 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은율이 벗어나려 몸을 바르작거리자, 그 몸을 한 팔로 단단히 감아 붙들었다.

혀를 뽑아낼 것처럼 거세게 키스를 한 진환이 입을 떼며 속삭였다.

“괜찮아. 형이 지금…… 다 잊게 해 줄 테니까…….”

흐릿한 은율의 눈동자를 또렷이 바라본 진환이 다시금 그에게 깊은 키스를 시도했다. 은율은 진환이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품에 절실히 매달렸다.

진환은 은율의 뒤통수와 허리를 잡아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다. 그러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연신 키스를 해 댔다. 일부러 빠르고 강하게 혀를 놀려 은율이 키스에 열중하게끔 유도했다.

키스를 퍼부으며 진환은 손을 은율의 셔츠 앞으로 가져갔다. 단추를 하나하나 톡톡 풀어내면서도 은율의 얼굴을 살피고 그 입술을 할짝거렸다.

단추를 모두 풀어내고 나자, 진환의 입술이 은율의 입술에서 턱으로, 목젖으로, 목의 옆으로 이동했다. 목가를 힘 있게 빨아 들이자 은율이 크게 움찔했다.

“핫…!”

저릿하면서도 기분 좋은 쾌감이 목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진환은 목과 어깨 사이에 있는 여린 살을 빨며 또 하나의 키스마크를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은율의 드로어즈로 향했다.

“앗, 형…!”

드로어즈를 지체 없이 벗겨 내자, 은율이 당황한 얼굴로 시선을 내렸다. 그러다 진환의 맹수를 닮은 눈동자에 말을 멈추고 만다. 진환은 말없이 은율의 가슴으로 제 입술을 가져갔다.

“아앗!”

단숨에 유두를 빨아서 잘근 깨물자 은율이 교성을 내질렀다. 고개를 젖힌 채 입을 뻐끔거리며 숨이 넘어갈 것처럼 놀란다. 은율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감각에 아랫도리가 뻐근해지기 시작하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진환이 그 유두를 살짝살짝 깨물어 댈 때는 몸을 비틀며 덜덜 떨기까지 했다.

“흐으…… 그, 그만…!”

하지만 진환은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은율의 유두뿐 아니라, 그 주변의 유륜을 혀끝으로 빙글빙글 핥으며 애를 태우기까지 했다. 그러다 공격적으로 유두를 빨고 치대면, 은율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본인이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색스러운 교성이 자꾸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약간 심했나 싶을 정도로 빨아 댄 통에 작은 유두는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서서 진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사이, 은율은 눈물을 흘리며 헐떡여 대는 중이었다.

은율은 생소한 감각에 전신이 찌릿거리는 것만 같았다. 머릿속에는 아직까지도 가영과의 통화 내용이 생생한데, 몸은 제 머릿속과 완전히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핫!”

진환의 손이 은율의 성기에 닿았다. 은율이 눈을 크게 뜨며 진환을 바라본다. 진환은 은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그의 귓가를 잘근 깨물었다.

“긴장 풀어.”

진환이 속삭인다.

그의 목소리가 유달리 감미로웠다.

은율은 말 잘 듣는 어린아이인 양, 뻣뻣해진 몸의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진환은 누워 있는 은율의 어깨를 한 팔로 감아쥐고 그 옆에 누운 상태로 그의 성기를 위아래로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은율이 겁먹은 얼굴로 진환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진환은 그의 입술에 짧게 키스해 주고서, 다시금 그의 유두로 입술을 가져갔다.

“악!”

입술 안에 갇힌 유두를 진환의 뜨거운 혀가 희롱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성기를 잡은 손에도 점점 속도가 붙었다.

“흐…… 아아…! 형, 그만…!”

은율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진환은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손을 놀렸다. 은율의 허리가 활처럼 휜다고 생각한 그 순간, 그의 성기에서 따뜻한 정액이 쿨럭 토해졌다. 경험이 적고 민감한 몸이라서 그런지, 토정이 상당히 빨랐다.

진환은 제 팔 안에서 움찔거리는 은율을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며 그의 가슴골에 입술을 대고 세게 빨았다. 은율의 몸이 한차례 크게 움찔했다.

숨을 몰아쉬는 은율을 바르게 눕혀 주고서 진환이 침대에서 내려갔다. 그는 침대 옆 협탁에서 무언가를 꺼내 와 다시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는 가져온 물건 중 휴대용 물티슈를 꺼내 제 손과 은율의 배에 튄 정액을 꼼꼼히 닦아 주었다. 은율의 달아오른 몸은 어찌나 민감한지, 차가운 물티슈가 배를 닦아 주는 것에도 몸을 잘게 떨어 댔다.

성기까지 닦아 내고 나서야 진환은 제가 입고 있던 옷가지를 모두 벗어 침대 밖으로 던졌다. 은율이 걸친 흰 셔츠도 벗겨서 함께 던져 버리고는 그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또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을 제 혀로 핥아 주며, 진환은 그의 입에 다시금 진하게 키스했다. 혀로 빨아 줄 때마다, 은율은 평소보다 더 격렬히 몸을 떨었다. 진환은 그의 도톰한 입술을 몇 번이고 빨고 핥고 물어 대며 은율의 정신을 또 한 번 쏙 빼놓았다.

은율은 저를 올라탄 채로 퍼부어 대는 진환의 키스에 열중하다, 갑자기 제 밑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에 움찔하며 눈을 크게 떴다.

“혀, 형?!”

차가운 액체를 묻힌 진환의 손이 은율의 뒤쪽 구멍 근처를 매만졌다. 은율은 왜 그가 그런 곳을 문질러 대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몸을 떨었다.

“괜찮으니까 가만히 있어.”

진환이 낮게 속삭여 왔다. 그 말을 들으니 왜인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엉덩이골을 부드럽게 비벼 대던 진환의 손가락 끝이 은율의 구멍 입구에 멈춰 섰다. 그러고선 그 중지를 미끈거리는 구멍 안으로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악!”

은율이 크게 놀라며 소리를 냈다. 그가 다리를 꽉 오므리며 제 다리로 진환의 팔을 잡아 버렸다.

“율아, 다리 벌려.”

“하, 하지만……! 아니, 형…… 이, 일단 소, 손가락……! 읏!”

굵은 뼈대의 중지가 더 깊숙이 들어왔다. 은율은 뒤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입술을 달달 떨었다. 통증 때문보다도, 배설을 위한 곳에 진환의 손가락이 들어 왔다는 것에 더 경악하고 있었다.

진환은 도통 다리를 벌리려 하지 않는 은율을 보며, 그의 다리 한 짝을 잡아 옆으로 벌렸다. 그리고 벌린 다리는 제 다리로 막아 더 이상 오므릴 수 없게 만들었다. 은율이 겁먹은 표정으로 진환을 올려다보자,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프지 않게 할 테니까, 힘 풀자, 율아.”

“뭐, 뭐 하려고…….”

“금방 기분 좋게 해 줄 테니까. 응? 율아.”

달래듯 말해 오니 저절로 몸의 긴장이 풀려 간다. 은율은 설마 진환이 제게 심한 짓을 하겠나 싶어 아래쪽에 몰린 힘을 스르르 풀었다. 이때다 싶어 진환의 약지가 함께 밀고 들어왔다.

“악!”

두 개의 손가락을 머금은 은율의 구멍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당장이라도 다리를 오므릴 것처럼 몸을 비틀었지만, 한쪽 다리가 진환의 다리에 걸려 그리할 수가 없었다. 은율은 진환의 가슴팍을 밀었다.

“그만, 그만해요! 이상해…!”

“괜찮아. 그러니까 힘 풀어, 율아.”

“히……익…! 우, 움직이지…! 학!”

제 구멍 안을 더듬는 느낌에 사색이 되었던 은율이 갑자기 번개라도 맞은 듯 흠칫했다. 그가 전신을 덜덜 떨어댔다. 그러고는 크게 뜬 눈으로 진환을 올려다보았다. 진환의 눈이 이채를 띠는가 싶더니, 방금 찔렀던 부위를 조심히 다시 찔러 본다.

“하윽!”

은율이 또 한 번 소리를 내더니 벌벌 떨었다. 그의 얼굴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아래에서 느껴진 무서우리만큼 강렬한 쾌감이 머릿속을 통째로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여기, 기분 좋아?”

“모, 몰라……. 무서……워……요.”

은율이 훌쩍였다. 진환이 그의 뒤에서 손가락을 빼내자, 그가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진환은 은율의 옆으로 옮겨가 한 팔로 그의 어깨를 잡아 상체를 반쯤 일으킨 뒤 제게 기대게 했다. 그의 몸을 단단히 받친 뒤, 그의 뒤쪽 구멍에 다시금 손가락을 넣었다.

“힉!”

은율이 구멍에 힘을 꽉 주었다. 진환이 그의 이마에 입술을 대며 힘을 빼라 일렀다. 그제야 다시금 힘을 풀었고, 이내 아까처럼 두 개의 손가락을 어렵사리 받아들였다. 진환은 아까 기억해 둔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흐악!”

은율이 격하게 반응하며 벗어나려 했다. 진환은 그의 어깨를 제 팔로 단단히 잡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서, 조금 빠른 속도로 그 부분을 연신 찔러 대었다.

“악! 읏, 흐읏! 응! 하악…!”

은율이 제 입으로 쏟아져 나오는 교성을 삼키려 안간힘을 썼다. 처음 자극당해 보는 전립선의 쾌감은 그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손가락으로 건드리는 것만으로 이런 격렬한 쾌감의 파도를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아랫도리에 힘이 모이고 정신이 나갈 정도의 쾌감이 계속되었다. 아래에서는 젤 때문인지 자꾸만 찌걱거리는 소리가 들려, 그의 귓속까지 자극해 댔다.

은율은 이젠 아예 진환에게 매달린 채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하으으……. 혀, 형……. 어떻, 흐윽! 어떻게 해…! 이, 이상해…! 하아악!”

조금 전에 배출했음에도 다시금 성기가 빳빳하게 서 있었다. 이에 맞춰 진환의 성기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진환은 은율의 색기 어린 얼굴을 보며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성미대로 했다가는 분명 상처가 날 거다. 손가락 두 개에도 힘들어하니, 좀 더 시간을 들여 풀어 줘야만 했다.

손가락 두 개가 전립선을 계속해서 자극했고, 은율의 정신이 혼미할 때에 맞춰 조심스레 검지까지 넣어 보았다. 다행히 그리 어렵지 않게 들어갔다. 약간의 흥분 작용이 있는 러브젤이다 보니, 그의 구멍이 따끈하게 풀어진 것이 느껴졌다.

“으으……. 핫!”

손가락을 추가하느라 잠시 끊겼던 자극이 다시금 몰아쳐 왔다. 은율은 진환의 가슴팍에 제 머리를 묻고서 자꾸만 몸을 비틀어 댔다.

“흐윽, 싫어어……! 혀엉…….”

진환이 달래듯 은율의 입술에 제 입술을 대었다. 격한 쾌감에 무서워하기만 하던 은율의 몸이 자연스레 풀어지기 시작했다. 진환은 그의 혀를 쪽쪽 빨아 당기며 아래를 쑤시는 손가락에 좀 더 속도를 붙였다.

“흐읍! 읍! 으응…… 읍!”

은율의 교성이 힘겹게 새어 나온다. 진환은 완전히 풀려 버린 은율의 눈을 보며 입을 떼었다. 뒤쪽에서 천천히 손가락을 빼내니, 그가 울상을 지으며 흠칫거렸다.

당장이라도 손을 대면 곧바로 토정할 것 같은 은율의 성기가 먹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진환은 침대에 은율을 눕히고서 그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은율은 몽롱한 얼굴로 숨만 몰아쉬고 있다가, 자신의 성기에 닿는 뜨거운 숨에 깜짝 놀랐다. 아래를 보니, 다리 사이에 자리한 진환이 은율의 성기를 입에 물려 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 혀, 형! 뭐, 뭐 하는……! 하악!”

떨리는 목소리로 진환을 말리려 했지만 진환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척, 일말의 주저도 없이 은율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따끈한 숨이 성기를 감싸고 말캉한 혀가 그 표면에 닿자마자, 은율의 허리가 크게 휘며 복부에 힘이 들어갔다. 은율은 뒤쪽 구멍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격렬한 쾌감에 도리질을 쳤다.

“아, 아아! 그, 그만……! 형, 그마안…!”

쓰나미처럼 아래로 몰려오는 쾌감에 은율이 크게 당황하며 진환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환은 그런 은율의 두 손을 제 손으로 하나씩 잡아 그의 엉덩이 옆 바닥에 붙여 버렸다. 악력은 진환이 더 세다 보니, 은율은 그의 손아귀에 손을 잡힌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사이, 진환은 은율의 것을 머금고서 천천히 펠라를 시작했다. 빠른 속도가 아님에도 은율이 너무도 격하게 반응하니, 자꾸만 괴롭히고 싶어졌다. 진환은 처음 물어보는 남자의 것임에도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듯 쪽쪽 빨고 이로 살살 긁어도 보고 제 목구멍 근처까지 넣어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은율은 자지러졌다. 차마 진환의 입에 내보낼 수는 없어서 몸부림을 쳐 보지만, 그럴 때마다 성기에서 격한 쾌감이 느껴져 도무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필사적으로 진환에게 애원하는 것뿐이었다.

“혀엉, 그만……! 나, 나올 것 같……! 흐윽! 혀엉……! 제발……!”

눈물을 쏟아내며 말하니, 진환의 입이 떨어져 나갔다.

“싸도 돼, 율아.”

그 말만 내뱉고는 다시금 진환이 입 안에 은율의 성기를 물었다. 은율의 낯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가 다시 교성을 터뜨렸다.

“……흐악! 읏! 하악! 혀엉…! 흐윽…! 으앗…!”

필사적으로 참던 은율이 눈을 홉뜨며 발끝에 힘을 주었다. 다리근육이 딱딱해지고 엉덩이가 들렸다. 은율은 그렇게, 진환의 입 안에 두 번째 사정을 하고야 말았다.

마침 진환이 목구멍 깊이 은율의 것을 삼킨 때라, 진한 정액은 그대로 목구멍을 타고 쉬이 넘어가 버렸다. 뜨끈하고 걸쭉한 것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감각은 참으로 오묘했다. 그것이 은율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진환은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은율의 정액을 쪽쪽 빨아 먹고 나서야 그의 성기를 놓아주었다. 부피가 작아진 말랑한 성기가 입에서 빠져나가자, 목구멍 근처에 남은 비릿한 향이 진환의 정신을 깨웠다. 콩깍지가 씌어도 제대로 씌었나 보다. 어쩜 이 비릿한 향까지 마음에 든단 말인가.

숨을 몰아쉬던 은율이 상체를 벌떡 일으켜 진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얼굴 가득 미안한 빛을 띠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 어떻게 해. 형, 괘, 괜찮아요? 뱉어요, 얼른!”

은율이 붉어진 얼굴로 당황하며 진환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진환이 그의 손을 붙잡고는 색기 어린 표정으로 그 손가락 끝을 할짝- 핥았다. 이미 진환의 입 안에는 티끌만큼의 정액도 남아 있질 않았다.

“우리 율이는 어떻게 정액도 맛있지?”

“뭐, 뭐……!”

은율은 경악하며 굳어 버렸다.

진환은 은율의 몸을 밀어 도로 눕히며, 그의 두 다리를 잡아 올렸다. 그것을 제 어깨에 하나씩 걸치고서 몸을 바짝 붙인다. 진환의 꼿꼿한 성기가 은율의 엉덩이 골에 안착했다. 미끌미끌한 골에 성기를 위아래로 비벼 대니, 은율이 당황했다.

“형, 뭐 하려고…….”

아까부터 진환이 이상했다. 뒤쪽에 자꾸만 집착하는 것 같은 게, 너무 불길했다. 뒤쪽 구멍을 자극하듯 비벼 대는 진환의 성기가 새삼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진환은 심호흡을 하며, 아까 젤과 함께 가져온 콘돔 포장지를 입으로 쭉 뜯어냈다. 은율은 콘돔을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라, 그저 눈만 깜빡대고 있었다. 진환은 힘겹게 제 것에 콘돔을 씌우고서 은율에게 생긋 웃어 주었다.

진환이 한 손으로 제 성기를 붙잡고는 그 끝을 은율의 구멍에 약간 힘을 주어 비볐다. 많이 풀어진 데다 사정까지 한 번 한 뒤라 그런지 어떻게든 넣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율아, 긴장하지 말고 몸에 힘 풀어.”

“왜, 왜…….”

“우리 율이, 착하지?”

진환은 부드럽게 웃으며 나긋하게 은율을 달랬다. 그 미소를 보며 은율이 몸에 들어간 힘을 빼기 시작했다. 진환은 은율의 다리와 엉덩이에 힘이 빠지자, 그때를 노려 물건 끝을 구멍에 밀어 넣었다.

“흐…… 아악……!”

귀두가 들어갔을 뿐임에도 은율이 고통스런 소리를 내었다. 구멍이 삽시간에 수축하며 진환의 것을 옥죄었다.

“윽…… 율아, 힘 빼.”

“으…… 으으……. 빼, 빼 줘요……. 흑…… 뭐야…….”

은율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진환은 그의 경직된 허벅지 안쪽에 달래듯 키스를 해 댔다.

“괜찮을 거니까, 응?”

“흐윽……. 아파…….”

“힘 빼면 안 아파. 괜찮아.”

아이를 달래듯 다정하게 말해 오니 은율도 어쩔 수가 없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아래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줄여 볼 요량으로 그의 말을 따랐다. 힘을 빼니, 확실히 고통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진환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제 것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안으로 굵직한 것이 들어오는 느낌에 은율이 숨을 삼켰다. 다시금 구멍이 조여 오자, 진환의 얼굴도 살짝 일그러졌다.

“흣…… 혀엉…!”

“힘…… 빼…… 율아. 하아…….”

진환의 것이 상당히 긴 것인지, 아직 조금 더 남았는데도 끝에 벽이 닿는 느낌이었다. 진환은 숨을 몰아쉬며 은율의 허벅다리와 엉덩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신음도 내지 못하고 헐떡대기만 하는 은율이 안쓰러웠다.

“조금만…… 참아.”

진환이 은율의 골반을 단단히 잡았다. 그 상태로 천천히 앞뒤로 움직였다.

“하으으……. 우, 움직이지……! 악!”

괴로워하기만 하던 은율이 순간적으로 교성을 내질렀다. 스파크가 튀는 것 같은 느낌에 은율이 부르르 떨었다. 격통에 시달리던 찰나, 미친 쾌감이 일순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진환은 자신의 것이 찌른 안쪽 부분을 기억하며 다시금 그 자리를 꾹 찔러 넣었다.

“하앗-!”

은율이 크게 들썩이며 떨어 댔다. 진환은 저도 모르게 제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렸다.

“여기? 여기가 좋아? 응? 율아, 좋아?”

“악! 앗-! 하앗! 그만-! 하으!”

정신없이 쿡쿡 찔러 대는 통에 은율은 절규하듯 교성을 내질렀다. 목소리가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야하기 짝이 없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진환이 추삽질을 계속하며 그의 두 손을 떼어 냈다.

“소리, 들려줘, 율아. 하아…….”

“으, 아아-! 하아-! 형! 그만! 하으읏!”

눈앞에서 몇 번의 번개가 내리쳤다. 괴로울 정도의 쾌감의 파도가 전신을 훑을 때마다 미칠 것만 같았다.

진환이 제 입술을 색스럽게 핥으며 은율의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

“이 안에 형 거 들어 있어, 율아. 느껴져?”

“으으…… 모, 몰라……! 하아-!”

진환이 은율의 아랫배를 꾸욱 누르며 뿌리 끝까지 세게 쳐올렸다.

“아아악-!”

지금까지 보다도 더 강한 쾌감에 은율의 허리가 휘어졌다. 진환이 아랫배를 눌러 전립선을 그의 것에 밀착한 뒤 강하게 찔러 대니, 은율은 죽을 맛이었다. 은율은 눈물을 펑펑 흘려 대며 계속 도리질을 쳤다.

“그마안-! 형, 안 돼! 흐아악-! 그만!”

은율의 그만하라는 소리에도 진환은 멈추지 않았다. 점점 추삽질이 빨라지고, 은율의 물건도 그에 맞춰 점점 부피를 더해 갔다. 이제 은율은 아까의 격통 따윈 잊은 지 오래였다. 처음 느껴 보는 쾌감에 전신을 지배당한 채, 제 몸이 아닌 것처럼 헐떡대며 자꾸만 섹시한 교성을 질러 댔다.

진환은 발갛게 달아오른 은율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이 상태라면 넣은 상태로 몇 번이고 싸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율이 때문에 형 미치겠다.”

진환이 은율의 위에 몸을 기울이며 그의 두 팔을 제 목에 감았다. 당장이라도 쌀 것 같아서 제 것이 움직이는 속도를 느릿하게 하니, 은율이 숨을 몰아쉬며 약간 안정을 되찾는다.

물기 젖은 흐릿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진환이 은율의 입술에 제 입술을 대었다. 한 팔로는 은율의 어깨를 둘러 그를 껴안고, 다른 한 팔은 사타구니로 가져가 그의 물건을 손에 쥐었다. 그 와중에도 은율은 진환의 키스가 주는 몽롱함에 넋을 잃어 가고 있었다.

“같이 가자.”

“흐…… 어딜 가……. 아앗-! 하응! 으응-! 형, 그만! 하악-!”

간다는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어리숙한 은율이 왜 이리 섹시해 보이는 걸까. 진환은 머릿속의 퓨즈 한 가닥이 열에 녹아 툭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랫도리에 힘이 강하게 모이며, 진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것이 격렬히 움직여 댔다.

은율은 또다시 이어지는 쾌감에 진환의 목에 두른 제 팔에 힘을 주었다. 그와 동시에 제 물건이 진환의 손에 의해 위아래로 비벼지며 이중의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랫도리가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심하게 발작을 해 댔다.

“아악-! 안 돼! 안 돼! 형! 으항! 그만! 하-앗!”

“형도…… 윽…… 지금 갈 것 같으니까…… 같이 가자, 율아.”

“나, 이상…… 이상해! 악! 하앗…! 그만, 그만, 그만! 혀…… 읏…! 흐아…!”

절정이 다가오는지, 은율이 고개를 도리질 치며 진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은율의 어깨를 붙잡은 진환의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와 비례해 아래쪽의 추삽질은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다급해졌고, 은율의 것을 쥔 손도 여지없이 빨라졌다.

“하아악-!”

“윽…!”

은율의 고개가 홱 꺾이며 그의 것이 새하얀 정액을 길게 토해 냈다. 이에 맞춰 진환의 것도 은율 안에서 토정했다. 진환과 은율은 몇 차례 움찔하며 한 몸처럼 쾌감의 잔류를 느꼈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진환이었다. 그는 은율의 넋 나간 얼굴에 키스 세례를 퍼부어 주며 제 것을 천천히 빼내었다.

“흐…… 으읏…!”

속살이 딸려 나가는 느낌에, 은율은 오한이라도 온 것처럼 덜덜 떨어 댔다. 진환이 그런 그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진환의 것은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콘돔이 꽉 찰 정도로 사정을 했음에도 그 부피가 거의 줄지 않았다. 진환은 한 손으로 물티슈를 꺼내 은율의 몸에 묻은 정액을 닦아 주었다. 거의 대부분이 은율의 배에 튀었다. 물티슈로 천천히 닦아 주니, 그때마다 흠칫거리며 은율의 죽은 성기가 살짝 끄덕거렸다. 그것을 본 진환은 다시금 제 것이 팽창하는 것을 느꼈다.

‘미친……. 자제해야 하는데…….’

이성의 끈을 부여잡으며 은율의 배를 다 닦아 준 진환은 이번엔 새 물티슈로 제 것에 씌운 콘돔을 제거했다. 힘겹게 제거해 내니, 아직도 발사 직전인 것처럼 팽팽한 제 물건이 보였다. 진환은 굵직한 제 것을 내려다보며, 이것을 잘도 받아 내었구나 싶어 은율이 대견해졌다. 수고했다는 키스나 해 줄 요량으로 은율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혀엉……. 이제…… 끝……났어……요…?”

그 누구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섹시하기 짝이 없는 나른한 얼굴이 진환의 이성을 또 한 번 날아가게 만들었다.

“젠장…….”

진환이 굳은 얼굴로 작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진환이 은율의 몸을 돌려 고양이자세를 취하게 하고는 그의 엉덩이 골에 제 것을 생으로 문질러 댔다. 콘돔을 가지러 가기엔, 진환의 이성이 이미 마비 상태였다.

엉덩이를 진환에게 내민 자세가 된 은율은 민망함과 불안감에 뒤로 돌아보았다.

“혀, 형, 또……!”

진환이 두 손으로 은율의 엉덩이를 붙잡았다. 작은 구멍이 약간의 틈을 보이며 뻐끔거렸다. 진환은 그 구멍을 향해 제 성기를 들이밀었다.

“이따가 명치 세게 맞아 줄 테니까…… 조금만 더 참아 줘…….”

“뭐……! 하악!”

진환의 것이 다시 한번 은율의 구멍을 뚫고 그 안을 꽉 채웠다.

“핫! 아앗!”

단 한 번의 삽입이었음에도 진환은 은율의 쾌감 포인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것이 여지없이 은율의 전립선을 건드렸다.

“아악-!”

바닥을 짚고 있던 은율의 팔이 힘을 잃고 꺾인다. 엎드리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진환이 그의 아랫배를 붙잡고 그의 등에 제 몸을 기울여 밀착했다. 그러자 아랫배가 눌린 데다 자세가 바뀐 바람에, 진환의 것이 아까보다 더 그것을 꾹 누르는 모양새가 되었다.

은율이 기겁을 하며 교성을 질렀다. 진환은 더 격렬한 반응에 씩 웃으며 그대로 깊이 쳐올렸다. 은율의 고개가 뒤로 꺾이며 전신에 빳빳이 힘이 들어갔다.

“여기 좋지, 율아. 그치?”

“하윽! 핫! 학! 그, 그만! 아앗! 이상해! 형, 읏, 아악! 하으-!”

은율의 색스러운 신음을 즐기며 진환이 연신 그 부분을 찔러 댔다. 은율의 것이 삽시간에 부피를 키워 갔다. 진환은 콘돔을 꼈을 때보다 더 짜릿하게 닿아 오는 은율의 내벽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제 것을 놔주지 않으려는 듯 착착 붙어 오는 것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진환은 왼손으론 은율의 아랫배를 누르고, 오른손은 그의 왼쪽 유두에 대어 제 손가락 사이에 그것을 끼웠다. 손가락 사이로 작은 유두를 꾹꾹 누르고 비벼 대자, 교성이 한층 간드러졌다.

“하악-! 형, 아, 안 돼! 손, 흐읏……!”

“위아래 다 괴롭혀 주는 게 좋아?”

“아냐, 아냐, 아냐! 하악-! 으으, 혀엉……! 핫!”

진환이 은율의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쭉 빨아올렸다. 그의 목덜미에 또 하나의 키스마크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아……. 율아, 너무 좋아. 사랑해.”

귓가에 속삭여 주니, 어깨가 부르르 떨린다. 숨을 헐떡이던 은율이 힘겹게 뒤로 돌아보며 진환과 눈을 마주쳤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에 진환은 숨을 멈추었다.

“나도…… 나도…… 좋아……해. 환이 형…….”

그 말이 트리거가 되어 진환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진환이 인상을 확 쓰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진환이 은율의 가슴과 아랫배에서 손을 떼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가 은율의 두 팔을 뒤로 뻗게 해 단단히 잡는다. 은율의 두 팔을 당겨 잡은 진환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최대한 참으려 했더니 봐주질 않는다.

“넌 진짜……!”

“앗!”

퍽 소리가 나게 안으로 박아 넣자 은율이 눈을 크게 떴다. 은율은 제 안에서 한층 거대해진 압박감에 몸을 떨었다.

이윽고 진환의 것이 엄청난 속도로 은율의 안을 쑤셔 대었다. 은율은 그에게 팔을 잡힌 채 속절없이 흔들리며 자꾸만 덮쳐 오는 쾌감에 교성을 내질렀다. 그런 그의 귓가에 진환이 달래듯 속삭인다.

“율아, 뒤로만 느껴서 쌀 수 있겠어?”

“뭐……! 하악! 몰……라! 흐응! 응!”

“형이 지금 손이 안 남아서 못 만져 주는데.”

자꾸만 가학심이 들어 괴롭히게 된다. 진환은 나중에 은율에게 된통 혼날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추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모, 못 싸아……! 몰라……! 하악!”

“할 수 있어, 율아. 여기, 좋잖아. 여기, 여기, 여기, 여기.”

“하아악-! 으앗! 아, 하앗-!”

일부러 더 콱콱 찔러 대니 예상대로 몸을 비틀며 어쩔 줄 몰라 한다. 힐끔 은율의 것을 보니,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창해 있었다. 진환이 색기에 절어 눈을 가늘게 떴다.

“싸 주면, 형도 쌀게. 해 보자, 율아. 착하지?”

민감한 이들은 뒤로만 해서도 충분히 쌀 수 있다고 알고 있다. 진환은 남몰래 제가 공부한 것들을 실현해 보려 부단히도 이성을 잡아 보는 중이었다.

은율은 침대에 머리를 대고서 뒤로 팔을 잡힌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가 한없이 색정적이다.

은율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제게 박고 있는 진환을 보았다.

“어, 어떻게 하면……! 하읏! 으응! 나, 뭐, 뭘…… 해야……! 하으으…….”

정신이 없는 게 분명했다. 제가 싸는 것을 어떻게 해야 쌀 수 있냐고 물어 오는 것을 보니 말이다. 진환은 은율이 이런 백치미까지 갖고 있었나 싶어, 전신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괴롭히고 싶어 미치겠다.

진환이 혀로 제 입술을 핥으며 나른하게 말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느껴. 참으려 하지 말고. 알았지?”

은율이 겁먹은 얼굴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진환의 추삽질이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를 내었다.

“학! 아앗! 학! 아-! 너무 빨……! 으읏!”

진환의 고환이 은율의 회음부와 고환을 아플 정도로 쳐 대었다. 그 부분마저 간질간질해져 기분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은율의 머릿속엔 이젠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진환이 했던 말만 무한으로 반복되었다. 쾌감을 참지 않고 몸을 맡기니, 제 아랫도리에 피가 몰리는 게 느껴졌다.

“흐앗-! 앗! 혀, 형! 그만……! 싸, 쌀……! 흐윽……!”

“싸, 율아. 싸도 돼. 같이 싸자.”

사실 은율보다도 진환이 더 죽을 맛이었다. 당장이라도 시원하게 싸고 싶은데, 그랬다간 은율이 제대로 싸지 못한 채 쾌감이 멈추게 된다. 그렇다고 먼저 싸고 다시 이어서 하자니, 그걸 버텨야 할 은율이 안쓰러웠다.

“하읏! 나, 싸, 싸……! 하악-!”

은율의 몸이 크게 움찔하며 허리가 뒤로 확 휘었다. 전신에 딱딱하게 힘이 들어가고, 진환의 것을 물고 있는 구멍이 그 어떤 때보다 더 세게 조여 들었다. 그 바람에 진환은 은율의 안에 그대로 사정하고 말았다.

“하으윽-!”

몸을 움찔대며 길게 사정하던 은율은 제 안에 퍼지는 뜨끈한 느낌에 또 한 차례 전율했다. 이번엔 진환도 은율 못지않게 길게 사정했다. 모든 정액을 끌어 담아 뱉어 내는 것처럼 진환의 정액이 은율의 속에 가득 차올랐다.

은율의 팔을 놓아주자 그가 당장이라도 옆으로 쓰러질 것처럼 휘청했다. 진환이 그의 허리를 받치고는 제 것을 천천히 뽑아냈다.

“흐으으…….”

다른 것보다도 뽑아내는 감각이 너무도 소름끼쳤다. 진환의 것이 빠져나간 뒤쪽이 허전한 듯 뻐끔거렸다. 그럴 때마다 진환의 정액이 꿀렁하고 흘러나왔다. 그것을 보며 진환은 제 것이 또 커지려는 것을 애써 참아 내었다.

진환은 은율을 바로 눕혀 주고서 그의 입술에 진하게 키스했다. 지친 와중에도 말캉하게 얽혀 오는 작은 혀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입술을 떼고 내려다보니, 졸린 듯 눈을 깜빡이는 게 보였다.

“힘들었지? 자고 있으면 형이 알아서 할게.”

다정한 목소리에 은율이 입을 달싹이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곧바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진환은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향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채우고는 침실로 돌아와 은율을 번쩍 안아 들었다. 은율을 욕실의 간이 의자에 앉히고 따뜻한 물을 몸에 뿌려 주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잠들어 있는 은율을 보며 진환이 작게 웃으며 그 볼에 입을 맞추었다.

의자에 앉은 은율의 다리를 벌리게 해서 제 한 팔에 그의 두 다리를 걸쳤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은율의 구멍을 보자 또다시 아랫도리가 뻐근해졌다. 진환은 마른침을 삼키며, 은율의 다리를 걸친 손에 샤워기를 쥐고 그 방향을 그의 아랫도리로 향하게 했다.

“으음…….”

샤워기의 자극에 은율이 작게 신음했다. 진환은 속으로 애국가를 읊으며,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 그의 구멍 입구를 매만졌다. 그러자 은율이 움찔했다.

검지와 중지를 조심스레 넣으니, 그래도 아직 풀려 있는 터라 어렵지 않게 들어갔다. 두 손가락을 넣고 그대로 구멍을 약간 벌리니, 새하얀 정액 한 줄기가 길게 떨어져 내렸다. 진환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그의 아랫도리가 꺼덕거렸다.

스스로를 타박하며 짧게 심호흡했다.

기절하다시피 잠은 애를 데리고 한 번 더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진환은 당초의 목적대로 은율의 구멍 안에 가득 들어찬 자신의 정액을 손으로 살살 긁어내었다. 긁어낼 때마다 정액이 길게 흘러내렸다.

“흣……!”

안을 긁어대던 진환의 손가락이 은율의 전립선을 자극했다. 잠든 은율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진환이 그대로 굳은 채 은율을 바라보았으나, 그는 깨어나질 못했다. 진환의 흑심 가득한 장난기가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다.

“흐음…… 음……. 흐……. 하아…….”

살짝살짝 자극해서인지, 아니면 잠들어서인지 억눌린 신음 소리가 자꾸만 흘러나왔다. 진환은 점점 힘을 받는 은율의 것을 보며 얼른 도리질을 쳤다. 이대로 가다간 또 한 번 가게 할 것 같은데, 아무리 체력이 좋은 은율이더라도 지금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

언젠가 은율을 전립선 자극으로만 대여섯 번은 보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손가락으로 그곳을 벌려 샤워기의 물이 향하게 했다. 따뜻한 물이 은율의 안에 조금씩 차고, 진환은 그것을 다시 손가락으로 빼내고 하는 작업을 네 번에 걸쳐 해냈다. 그제야 은율의 안에서 깨끗한 물만이 흘러나왔다.

은율의 다리를 내려 주고 그의 얼굴을 살피니,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잘만 자고 있었다. 그의 몸에 비누칠을 해 주고 저도 한 뒤에 샤워기로 몸을 씻어 내었다. 그 과정에서 자꾸만 은율의 부드러운 피부가 손에 감겨 또 한 번 이성의 끈을 놓칠 뻔했으나,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진환은 물이 찬 욕조에 숙면을 돕는 아로마 입욕제를 가득 풀었다. 연한 노란빛이 된 욕조를 바라보며 진환이 은율을 품에 안은 채로 안에 들어갔다. 은율을 뒤에서부터 끌어안은 자세로 자리를 잡은 진환이 은율의 허리를 두 팔로 단단히 지탱했다. 그러다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잘 자, 율아.”

진환이 행복에 취한 표정을 지으며 은율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  *  *

잠에서 깬 진환은 제 옆자리가 비었다는 것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옆자리를 더듬어 보니 온기는 그대로였다. 진환은 잔뜩 긴장한 낯으로 침대에서 내려섰다.

진환은 그제야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환은 추리닝 바지만 입은 채로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걷었다. 눈부신 햇살이 방 안으로 들이쳐 온다. 하늘을 보아 하니 전날과 달리 말끔하게 개어 있었다.

진환은 혹여 비가 그쳐서 은율이 밖으로 나갔나 싶어 단숨에 거실로 뛰어나왔다. 그러자 걱정이 무색하게도, 은율은 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채 거실에 서서 태연하게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은율이 진환의 기척을 알아보고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율의 얼굴에 표정이 없는 것을 보고는 진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래. 조만간 직접 만나서 얘기해.”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진환이 휴대폰을 쥔 은율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를 제 품에 꼭 껴안고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은율이 얌전히 진환의 어깨에 제 머리를 대었다.

“예, 괜찮습니다. 비도 그쳤고…….”

“그래. 아픈 데는……! 큭!”

안심한 투로 아픈 데는 없는지 물으려다, 진환은 갑작스러운 명치의 통증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은율을 잡고 있던 팔을 풀고 몸을 웅크려 본능적으로 제 명치를 감쌌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만큼 제대로 얻어맞았다.

은율이 태연한 얼굴로 주먹을 거둬들이며 싱긋 웃었다.

“이걸로 봐드릴게요.”

진환이 허탈하게 웃었다.

“하…… 내가 맞겠다고는…… 큭……. 했지만……. 좀 봐주지…….”

“형은 어제 제가 그만하라고 해도 안 봐주셨잖아요.”

볼멘소리로 투덜거린다. 그게 귀여워 명치가 아픈 것도 잊을 뻔했다.

진환이 이맛살을 찌푸린 채 한 손으로 제 복부를 매만졌다. 그러면서 다른 한 손으론 은율의 허리를 감았다.

“어디 아프지는 않아?”

“아파요.”

“어디가?!”

진환이 깜짝 놀라 은율의 양어깨를 잡아 그를 찬찬히 살폈다. 제 명치가 저릿하다는 것은 잊은 지 오래다.

은율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어디……겠어요.”

그 말에 진환의 얼굴도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그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은율을 끌어안았다.

“형 싫어졌어?”

은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싫어져야 합니까?”

“아니, 물론 싫어지면 안 되지만……. 그래도 어제 좀…… 괴롭혔으니까.”

괴롭혔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다. 은율이 픽 웃으며 진환의 등을 토닥였다.

“앞으로 부드럽게 해 주시면 되는 거잖아요.”

그 말에 진환이 은율을 확 떼어 내었다. 물음표를 담은 은율의 눈동자가 진환의 놀란 눈동자를 마주했다. 진환이 찡그린 얼굴로 힘겹게 미소 지었다.

“율아, 진짜…… 진짜 형이 잘할게.”

“……믿어 보겠습니다.”

입을 삐죽이며 말하는 게 왜 이리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진환은 은율을 부스러뜨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제 품에 꽉 껴안고는 히죽히죽 웃어 댔다. 은율도 부끄러운 얼굴로 작게 미소 지었다.

진환은 문득 전날의 일이 떠올라 짐짓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어제 그 사람이 뭐라고 했어?”

은율이 진환의 등에 팔을 두르고서 그에게 나른하게 기대었다.

“……형은 다 알고 있었죠? 그래서 전화 온 사람이 누구인지 보자마자…….”

은율이 말을 흐렸다. 진환은 은율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서하진한테 대략적으로 들었어.”

은율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디까지 아는 겁니까? 형이 아는 걸 말해 줘요.”

진환이 머뭇거리다 결국 차분히 말해 주었다.

그가 해 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은율은 짧게 자조했다. 이모가 말해 준 내용을 진환도, 하진도 모두 알고 있었던 거다. 어쩌면 지희까지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형도 아는 걸 나만 몰랐다는 거네.”

“율아…….”

“참 바보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가만히 그 생각만 했어요. 동생들은 내가 자기 형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잘해 줬던 걸까. 왜 그 사건의 범인을 나에겐 숨겼던 걸까. 왜 난 몰랐던 걸까. 왜……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걸까.”

은율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누구의 문제점도 아니었어요. 모든 잘못은 나였던 거예요.”

“아냐, 율아. 왜 네 잘못이야. 넌 아무것도 잘못한 것 없어.”

“무지했다는 게 잘못이죠.”

은율이 단호하게 말하며 진환의 품을 벗어났다. 그러더니 진환의 양팔을 매달리듯 꾹 잡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보호만 받는 거, 제 성미에 안 맞아요. 또……, 또 부모님처럼 잃을까 겁이 나요. 비록 피가 이어진 애들은 아니지만, 그 애들은 지금도 내 소중한 동생들이에요. 그 애들마저 잃고 싶지 않습니다.”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젠 저도 알아야겠어요. 그 사람이 왜 날 찾는지, 왜 날 데려가려는지.”

그것을 알아내면 모든 의문이 풀릴 것만 같았다. 왜 아버지, 아니 서유건은 그의 자식도 아닌 자신을 데려다 그렇게 키워 왔던 걸까. 완벽한 타인인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해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뭘까. 그리고 자신과 케이라는 남자의 정확한 관계성은 무엇인 걸까.

은율은 진환의 팔을 잡은 손을 힘없이 떨어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비도 오지 않는데 머릿속이 축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진환이 두 손을 뻗어 은율의 차가운 양 볼을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숙여져 있던 은율의 고개가 들리고, 그의 맑은 눈동자가 진환의 부드러운 눈동자와 마주친다.

“같이 찾아 줄게. 네가 원하는 대답, 내가 다 찾아 줄 거야. 네가 원하는 모든 걸 내가 이루어 줄게.”

은율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은율이 눈꼬리를 휘며 유혹하듯 웃어 보였다.

“그 약속, 꼭 지키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진환이 마주 웃으며 은율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갔다. 은율은 당연한 것처럼, 진환의 입술을 적극적으로 받아 주었다.

*  *  *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틀어 보니, 장마가 지나갔다는 뉴스가 떴다. 은율이 새삼스러운 얼굴로 그 뉴스를 얌전히 보고, 듣고 있다. 진환이 은율의 허리에 팔을 감은 채 그의 볼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은율이 약간 벅차오른 얼굴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뭔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장마 기간에는 언제나 침울하고 늘어지고…… 하루라도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작년 장마 때만 해도, 하진이 무리해서 옆에 붙어 있어 주지 않으면 단 하루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진이 붙어서 돌봐 주더라도, 잠에서 깨면 곧바로 약부터 찾아 먹었다. 그래도 잘 가라앉질 않아서 습관처럼 수면제를 먹고서 장마가 끝날 때까지 골골대며 잠만 잤다.

하진은 언제나 그런 자신을 안쓰럽게 보며 만사 제쳐 놓고 오로지 저만 돌보곤 했었다. 자신은 그런 하진에게 미안하면서도 공포에 질려, 그의 손을 꼭 붙들고만 있었다.

그때와 이번은 비교도 되질 않는다. 이번 장마 때는 몸이 나른하긴 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고, 별도로 약을 먹지 않았음에도 심한 발작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장마가 오긴 왔었나 싶을 정도였다.

은율은 이번 장마를 쉬이 넘긴 이유가, 옆에 있기만 해도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진환이 제 옆에 항상 붙어 있어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사실이었다.

은율이 반짝이는 눈으로 진환을 바라보았다.

“형은 정말 대단해요.”

그 말에 진환이 작게 웃으며 은율의 목 언저리에 입술을 비볐다.

“그렇게 대단하면 상 좀 줘.”

“상……이요?”

“무슨 상을 줄지는 율이에게 맡길게.”

은율이 눈을 굴렸다. 갑자기 상을 달라 하니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힐끗 진환의 얼굴을 보아하니, 뭔가 음흉해서 수상쩍다.

은율은 살짝 웃어 보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그가 일어나니, 진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본다.

은율이 소파에 앉아 있는 진환의 다리 위로 올라갔다. 두 다리를 진환의 다리 밖으로 구부려 세웠다가 그대로 엉덩이를 내렸다. 약간 자세가 어정쩡해, 진환의 허벅지에 앉은 상태로 그의 어깨를 잡고 제 엉덩이를 밀착했다. 포즈가 꽤 낯이 익었다.

“읏…….”

은율의 엉덩이가 제 허벅지를 쓸고 지나가자, 진환이 짧은 신음을 뱉었다. 은율이 모르는 척하며 그와 제 배를 바짝 맞대었다. 그러고선 진환의 목에 팔을 둘렀다.

벌써 진환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다. 은율이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요?”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하지만 은율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진환은 은율과 사귀기 전과 사귄 후의 극명한 차이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사귀기 전에는 이런 포즈를 해도 그저 귀엽게 보이는 수준이었다면, 사귀고 있는 지금은 당장이라도 제 아랫도리의 반응을 유도할 만큼 자극적이었다. 게다가 허벅지를 쓸던 그 감각만으로도 이성을 잃을 것 같다.

진환이 은율의 허리에 팔을 감아 안았다. 그런 진환의 얼굴에 은율이 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은율은 진환의 허벅지 위에 올라탄 채로 그에게 키스했다. 약간의 머뭇거림은 있었지만, 이젠 직접 혀도 넣을 줄 알았다. 진환이 했던 것처럼 그의 입술을 부드럽게 빨아 당기니, 그가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며 입을 살짝 열어 주었다. 그 안으로 혀를 넣어 진환의 혀를 감아 보았다. 제 것보다 약간 더 굵은 느낌의 혀가 거리낌 없이 얽혀 왔다.

은율은 제 혀로 감은 진환의 혀를 약간 힘을 주어 빨아 당겼다. 진환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며, 은율의 허리를 감은 팔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 은율은 좀 더 적극적으로 그의 혀를 톡톡 쳐 대며 그의 안쪽 치열과 입천장까지 혀를 놀렸다. 은율의 적극적인 모습에 진환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은율은 그와 눈을 맞추며 눈꼬리를 휘어 웃었다.

그것을 본 진환이 갑자기 제 혀로 은율의 혀를 감아 쭉 빨아 당겼다. 이번엔 은율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진환은 은율의 입 안을 농밀하게 탐했다. 은율의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진환은 은율의 입 안을 제 것인 양 휘저어 댔다. 그러면서 한 팔은 은율의 등을 수직으로 지탱하다시피 해서 그 손으로 목 뒤를 받쳤다. 다른 한 손은 은율의 엉덩이골로 향했다.

“……흡!”

바지 밖에서 엉덩이골을 누르는 손길에 은율이 화들짝 놀랐다. 그 때문인지 은율의 얼굴이 더욱 달아올랐다. 은율이 입을 떼려 하자, 진환은 그의 목 뒤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엉덩이골에 들어간 진환의 손가락이 자꾸만 은율의 은밀한 부위를 꾹꾹 눌러 댔다.

“읏……! 잠……! 읍…….”

당황하며 말리려는데 진환이 도통 놔주질 않았다.

결국 은율은 한참이 되어서야 그 입을 뗄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진짜…… 못됐어…….”

은율이 비난의 눈빛을 보냈다. 진환이 입가에 묻은 타액을 혀로 핥아먹으며 씩 웃었다.

“우리 율이, 형 미치게 하는 데 재주 있네.”

은율이 능글맞은 말을 내뱉는 진환의 가슴팍을 아프지 않게 탁탁 쳤다.

“빨리 손 안 떼요.”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돼?”

“안 됩니다. 자꾸 위아래로 찔러서 아파요.”

입을 삐죽이며 말하니 진환이 큭큭거리며 은율의 입을 살짝 맞추고 풀어주었다. 자유로워진 그가 얼른 그의 다리에서 벗어났다.

다시 옆자리에 털썩 앉은 은율을 진환이 몸을 돌려 바라보았다. 꿀이 진득하니 떨어지는 눈동자에 은율이 민망한 듯 눈을 돌렸다.

“왜 피해, 율아.”

“부담스럽게 보시니까요.”

진환이 눈을 크게 뜨며 일부러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내가 그렇게…… 부담스러워?”

진환의 얼굴을 본 은율이 제가 더 놀라서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은율이 당황하는 것을 본 진환이 재빨리 그를 끌어당겨서는 다시 아까와 같이 제 다리 위에 앉혔다. 그러고선 늘씬한 허리를 제 팔로 감아 안았다. 은율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진환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눈을 감은 진환이 다정하게 불렀다.

“율아.”

“예, 형.”

감고 있던 진환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형이랑 평생 같이 살래?”

은율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조금 머뭇거렸다.

“제집 있잖아요.”

“그 집, 솔직히 너무 작고 불편하잖아. 그리고 아직 위험해. 이대로 형 집에서 살자.”

“하지만…….”

은율이 머뭇거렸다. 아직 계약 기간이 3개월이나 남았다.

“계약 기간 남은 건 형이 처리해 줄게.”

은율은 진환이 나긋하게 조르는 것에 약했다. 커다란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졸라 대니, 은율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 동생들도 한 번씩 봐야 하고…… 여긴 제가 쓸 방도…….”

“동생들은 원하면 언제든 불러도 좋아. 근데 다른 방이 필요해?”

“그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땐…….”

둘러댈 말이 없어 그렇게 말하니, 진환이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알았어. 그럼 창고 정리해서 방 하나 만들어 줄게. 그럼 되는 거지?”

사실 제 방에서 같이 지내는 것 말고는 답이 없게끔 하려고 했으나, 끝까지 그렇게 고집을 부렸다간 은율이 집에 들어오는 것을 피해 갈 것 같았다.

은율은 머리를 굴렸다. 확실히 진환의 집은 굉장히 쾌적했다. 주기적으로 가정부가 와서 반찬을 채워 넣어 주고, 꼼꼼히 청소도 해 준다. 마음에 드는 커다란 욕조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하기 좋은 방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푹신한 침대와 진환이 있는 집이 아닌가.

은율이 진환을 바라보았다. 그가 기대감 찬 눈으로 저를 마주 보고 있었다.

결국 은율은 그의 제안을 승낙해 버렸다.

“알겠습니다. 만약 제가 불편하시면 언제든 내보내 주세요.”

“그럴 일 없어. 이렇게 예쁜데 어딜 내보내. 못 보내.”

진환이 환하게 웃으며 은율의 볼에 몇 번이고 뽀뽀했다. 은율은 간지러워하면서도 그를 피하지 않았다.

“그래도 월세는 꼬박꼬박 낼 겁니다. 얼마 드리면 될까요?”

“음, 돈은 됐고…….”

진환이 잠시 생각하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대신 매일 모닝 키스 해 줬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들은 은율이 뭐가 대수냐는 듯 싱긋 웃었다.

“그걸로 돼요? 싸네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매일 모닝 키스하는 것만으로도 월세가 해결된다니, 은율에게 있어 최고의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  *  *

끼익-!

눈앞으로 검은 승용차가 돌진해 왔다. 얼른 뒤로 몸을 빼 가까스로 피해 내자마자 뒤에서 수많은 발소리가 들렸다. 돌진했던 차량도 갑자기 우뚝 멈추더니, 저마다 몽둥이를 하나씩 든 네 명의 남자들이 내려섰다.

뒤쪽엔 스물이 넘는 검은 남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앞뒤 잴 것 없이 정면의 차량 쪽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네 명의 남자가 험악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머리를 노리고 휘둘러진 방망이를 몸을 숙여 피해 내고는 남자의 몸을 제 몸으로 밀어 넘어뜨렸다. 옆에서 휘둘러진 방망이를 피해 그의 손목을 잡고는 그의 뒤로 돌아 그대로 꺾어 올렸다.

“으악!”

남자가 비명을 터뜨렸다. 팔을 꺾인 남자의 등을 세게 밀어, 건너편의 다른 남자와 부딪게 했다.

순간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얼른 머리를 뒤로 꺾으니, 눈앞에 은빛의 야구배트가 내리 찍혔다. 구두 끝으로 그 손목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려 야구 배트를 떨구게 하고는, 그 머리를 잡아 얼굴에 주먹을 두 번 연달아 꽂아 넣었다. 억억 소리를 낸 남자가 뒤로 넘어졌다.

다른 남자들이 몽둥이를 휘두르기 직전,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밟고 단숨에 차량 트렁크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선 차량 천장으로 앞구르기를 해, 차 보닛에 앉은 자세로 자연스레 안착했다. 그대로 곧바로 발을 내려 내달렸다. 뒤에서 남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차량을 돌아 뛰어오는 게 보였다.

빠르게 내달려 지하주차장의 아래층으로 내려와 주머니에서 차 키가 내장된 폴딩키를 꺼냈다. 표면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저 멀리서 차량 한 대가 소리를 내며 반응한다. 차를 준비해 놨다더니, 저것인 모양이다.

다리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지만, 멈추지 않고 내달렸다. 뒤에서 우르르 소리와 함께 수많은 남자의 고함이 들렸다.

새하얀 차량의 깜빡이는 전조등을 확인하고서 얼른 그 운전석으로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차량의 문을 동시에 잠그자, 곧바로 남자들이 달려들었다. 한 사람은 보닛에 올라타 앞 유리를 향해 몽둥이를 내려찍었고, 다른 이들은 차 문을 열려고 난리였다.

얼른 차를 몰아 자리에서 나아가니, 남자들이 더 달라붙어서는 차량에 몽둥이를 휘둘러 댔다.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을 밟으니 보닛에 올라타 있던 남자가 어어 하면서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차에 매달리던 다른 남자들도 하나둘 떨어져 나가, 이내 차가 홀로 내달렸다.

타이어에서 끼이익 하는 마찰음이 몇 번이고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남자들은 차량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과 욕설을 내뱉어 댔다.

그런 그들의 뒤에서 잠시 후―

“컷! 오케이!”

종료 사인이 떨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남자들이 바닥에 떨어진 몽둥이 소품을 주워들고 주변에 ‘수고하셨습니다’를 연발했다.

모니터에서 눈을 뗀 철민이 테이블의 무전기를 작동시켰다.

“은율아, 수고했어. 돌아와.”

-예, 감독님.

무전기를 통해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주차장을 벗어났던 흰 차량이 마치 되감기를 하듯 부드럽고 빠른 속도로 후진을 하며 나타났다. 차량은 남자들이 선 지척까지 와서야 멈춰 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은율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밝게 웃었다.

“잘 나왔습니까?”

“낄낄, 그럼. 잘 나왔지.”

철민이 웃으며 모니터를 턱짓했다. 조금 전 찍은 장면을 돌려 틀어 주니, 은율이 눈을 빛내며 바라본다. 영상도 깔끔히 건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제 뒤에서 은율에게 넋을 놓고 있는 현우에게 그가 했던 과정을 똑같이 반복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액션 부분은 거의 패스하고 클로즈업이나 바스트 샷 위주로 가겠지만.

“현우 씨! 준비하지!”

“예!”

현우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는 자신과 똑같은 옷과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은율에게 다가가 헤벌쭉 웃었다.

“고생하셨어요. 어디 다치진 않았어요?”

“예? 예에…….”

현우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다가오자, 은율은 약간 당황했다. 현우가 은율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저, 형이 스턴트맨으로 나온 거 다 찾아봤어요! 진짜 멋있으신 것 같아요!”

“……예?”

현우의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렸다.

“저번에 한강에서 형 연기하시는 거 보고 반했거든요! 아, 물론 오늘도 반했고요. 진짜 형 배우 하셔도 될 것 같아요!”

팬심마저 느껴졌다. 은율은 그에게 두 손을 잡힌 채 어색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옆에서 지켜보던 철민이 현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배우 하고 있는 건 현우 씨거든? 본분에 집중하자?”

“아, 네! 알겠습니다!”

현우가 몸서리를 치며 대답했다. 그가 은율에게 밝은 얼굴로 꾸벅 인사해 보이고는 다른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은율이 처음 연기했던 주차장 층으로 이동했다.

옆에서 철민이 의자를 하나 내주고는 은율을 앉혔다. 어차피 현우는 올라가서 위에 대기 중인 스턴트팀의 강 팀장에게 짧게나마 브리핑을 들어야 한다. 그때까진 본의 아닌 휴식이다.

은율이 의자에 앉자, 철민이 제 의자를 바짝 붙여 소곤거렸다.

“아직도 너 찾아다니는 거 알아?”

“예? 누가요?”

얼마 전 괴한까지 만난 은율이다. 그가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누구긴 누구야, 대중들이지. 난 아직도 기자들이 못살게 굴어. 너 누구냐고.”

은율이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직도 찾아다닌다는 게 신기하네요.”

“그만큼 네 연기가 죽여줬다니까. 거기다 그 지하철 미남? 뭐 하여튼 그것도 한몫 단단히 했고. 전부 진환 씨 작품이지? 낄낄.”

은율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을 예리한 눈으로 보던 철민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스태프들은 다음 촬영 준비 때문에 분주해, 이쪽은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철민이 은율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결국 사귀어?”

그 말을 듣자마자 은율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당황한 얼굴을 보며 철민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냈다.

“낄낄낄, 내 그렇게 될 줄 알았지. 진환 씨가 얼마나 지극정성인데 안 넘어가겠나.”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철민이 은율의 얼굴을 즐기듯 바라보며 씩 웃었다.

“너한테만 진환 씨가 딴사람이 되는데 모를 리가 있나. 눈치 빠른 사람들은 다 알아챌걸.”

은율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철민이 아차 싶어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걱정 마. 이럴 땐 그냥 친한 형, 동생 사이라고 배 째라 하면 돼. 기사만 안 나가면 된다.”

마지막 말에 은율이 더 사색이 되었다.

“기사…….”

둘이 사귄다는 기사가 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진환에게 큰 타격이 가고 만다.

“음? 은율이는 아직 모르나?”

“예? 뭘 말입니까?”

철민이 낄낄거렸다.

“진환 씨 관련해선 자극적인 기사도, 추측성 있는 기사도 못 나가. 워낙 본인이 깨끗한 것도 있지만, 그런 기사는 뒷배가 일찌감치 해결해 주거든.”

“뒷배요?”

처음 듣는 이야기다. 진환에게 뒷배가 있었나?

그때,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 진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휴대폰의 액정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 철민이 그 액정에 뜬 상대의 이름을 보며 또 한 번 웃었다.

“낄낄, 여기 어디 스파이라도 심어 놨나 보다. 딱 맞춰 전화하네.”

철민이 전화를 받으라는 듯 턱짓하고는 의자를 약간 떼어 앉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다. 은율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끝났어?

스태프들을 피해 구석으로 걸어가며 대답했다.

“예, 이제 끝났습니다. 형은 어디세요?”

-근처야. 거의 다 와 가.

은율이 뒤돌아 철민을 힐끔거리며 휴대폰에 속삭였다.

“차 대고 기다리시면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다리 아프게 왜? 주차장으로 들어갈게. 어차피 촬영하는 구역은……!

“제가. 그쪽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힘을 주어 끊어 말하자, 갑자기 진환이 공손해졌다. 그게 퍽 귀여워, 은율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대신 옷은 집에서 갈아입자.

“이쪽에 갈아입을 차량 있어요.”

-안 돼. 절대 안 돼. 누가 보면 어떻게 하려고?

진환이 정색하며 말했다.

-이제 넌 너 혼자의 몸이 아니야. 내 몸이기도 하단 말이야. 알아?

“제가 왜 형 몸입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자, 진환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 거잖아.

“…….”

말문이 막혔다. 속이 간질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여튼……. 알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응, 기다릴게. 보고 싶으니까 빨리 와. 사랑해.

“저도…… 사랑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은율이 후다닥 전화를 끊었다. 볼이 화끈거려 죽을 맛이다.

철민을 포함한 촬영 스태프들과 스턴트팀 팀원들에게 먼저 가 보겠다고 인사를 돌렸다. 그러자 강 팀장에게 브리핑을 듣던 현우가 단박에 뛰어왔다.

“형! 가시게요?! 벌써요?!”

“제 분량 촬영은 끝났으니까 가야죠.”

현우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시무룩해 했다. 은율은 그 모습이 마치 진환이 시무룩해 할 때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났다. 그가 현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에 놀란 현우가 고개를 번쩍 들고는 은율을 바라보았다.

“아, 기분 나빴어요?”

저도 모르게 한 행동에 은율이 당황하며 손을 떼려 했다. 현우가 얼른 그 손을 도로 잡아서 제 머리 위에 올린다.

“아뇨, 전혀요!”

그러고는 상기된 얼굴로 히죽히죽 웃는다. 귀여운 동생 같은 느낌에 현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만면에 행복함을 띤다.

“그럼 수고하세요.”

“잠깐만요, 형!”

인사하고 가려는 은율을 현우가 붙잡았다. 그가 쭈뼛거리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 혹시 번호 교환…… 괜찮나요?”

“번호 교환이요?”

은율이 갸웃했다.

“나, 나중에 합 맞추다가 뭔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액션신 조언……이라든지…….”

그 말을 들은 은율이 작게 웃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은율이 휴대폰을 꺼내어 물었다.

“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제, 제가 입력해 드릴게요!”

은율이 순순히 키패드 화면을 띄워 건넸다. 현우는 떨리는 손으로 제 번호를 꾹꾹 눌러 입력했다. 그 상태로 통화버튼을 누르고서, 제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진지한 얼굴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내 현우의 휴대폰이 잘게 떨렸다.

현우가 환하게 웃으며 은율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는 게 퍽 귀여웠다. 은율은 그를 가볍게 격려해 주곤 주차장을 나섰다.

제 옷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손에 들고서 주차장 입구로 나온 은율은 어렵지 않게 진환의 차량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입구 바로 옆에 차를 대놓고서 차주인 진환이 차밖에 나와 입구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조금 전에 촬영이 끝난 것인지, 의상부터 남달랐다. 그도 은율도 정장이었지만, 은율은 먼지 묻은 흰 셔츠에 검정 정장 재킷, 검정 바지일 뿐인 단출한 차림이었다.

그에 비해 진환은 몸에 꼭 맞는 검정 투 버튼 재킷에 약간 슬림핏이 들어간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 깔끔한 푸른 셔츠에 짙은 와인색 넥타이, 거기다 금색 넥타이핀에 소매 쪽엔 사각 커프스까지 하고 있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왼쪽 손목엔 고급스러운 은색 시계가 반짝거렸다.

은율이 순간 넋을 놓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잘생겼다…….’

그저 친한 형일 때는 순수하게 감탄하면 그만이었거늘, 지금은 감탄으로 끝나질 않는다. 그가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뿌듯해지고 가슴이 떨려 왔다. 이제야 진환이 말한 ‘내 거’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비록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는 것을 알아챘다. 웃는 낯으로 진환에게 다가가자, 그가 얼른 은율의 팔을 붙잡으며 씩 웃었다.

“많이 기다렸……! 어어, 형?”

진환이 웃는 낯으로 말없이 은율을 조수석에 앉혔다. 그대로 문을 닫고는 빠른 걸음으로 운전석에 올라타, 선글라스를 벗어 정장 재킷의 앞주머니에 넣는다. 진환이 이글이글 불타는 것 같은 눈으로 은율을 바라보자, 그가 움찔하며 문에 바짝 붙었다.

“무슨 일 있어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을 깜빡이자, 진환이 눈꼬리를 휜다.

“빨리 집에 가자.”

그렇게 말하며 손수 안전벨트를 채워 준다. 폭풍 전야 같은 고요함에 은율이 움찔했다.

차를 몰고 가는 와중에도 뭔가 공기가 찌릿해 도저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은율은 자신이 뭔가 잘못한 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분명 전화할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은율이 촬영한 곳의 주차장은 진환의 집과 그리 멀지 않는 거리였다. 제한속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며 달려오니, 집까지는 금방이었다.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가자, 은율이 눈치를 보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저, 무슨 일…… 있는 거죠?”

조심스레 물어보며 옆을 보자, 진환이 고개를 숙여 핸들에 이마를 대고 있다. 은율이 놀라 그의 어깨에 손을 대었다.

“형, 괜찮……!”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진환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은율의 양어깨를 잡았다. 그의 눈이 아까보다도 더 이글거렸다.

“미치겠다, 진짜.”

“……예?”

진환이 단추를 두 개 풀어 둔 은율의 셔츠 가운데에 손을 올렸다.

“고작 단추 두 개 푼 것만으로도 이런데, 앞으로 촬영장에 어떻게 보내?”

은율이 입을 벌린 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놀리는 건가 싶었는데 진환의 눈이 너무도 진지했다.

“이런 모습으로 그렇게나 날아다녔단 말이지. 거기 스태프들한테 질투 나는걸?”

은율이 입을 삐죽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래 봐야 전 어차피 형 건데.”

자기가 말해 놓고는 부끄러워서 눈을 내리깔고 말았다.

그걸 본 진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돌연 차 밖으로 나가더니 빠른 걸음으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 진환이 놀란 얼굴의 은율을 단번에 안아 들었다. 차 문을 대충 닫고선 그 상태로 주차장을 나와 마당으로 향했다.

“형, 뭐 하는 거예요?! 내려 주세요!”

장마 때야 워낙 몸에 힘이 없고 나른해서 반쯤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안겨 옮겨졌다지만, 지금은 스턴트 액션까지 척척 해낼 정도로 건강한 상태였다.

허리를 걱정하며 내려 달라고 바동거리니, 진환이 더욱 고집을 부렸다.

“형이 지금 좀 많이 급하거든? 가만히 있자, 율아.”

진환이 여유 없는 얼굴로 은율을 단단히 안아 든 채 걸음을 옮겼다.

“차에 갈아입을 옷 두고 왔어요!”

내려 줄 핑계를 대 보지만, 진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일 가져오면 돼. 그리고 집 안에선 형 셔츠 입어.”

“그거 입을 땐 바지도 못 입게 하잖아요! 민망하다고요!”

“내 로망인데 안 돼? 그렇게 야박하게 굴 거야?”

“그건 아닌데……. 아니, 잠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려 달라니까요!”

은율은 얼굴을 붉힌 채 당황했다. 얼결에 진환의 말에 말려 벌써 집 문 앞까지 와 버렸다.

“율아, 카드키 대 줘.”

은율은 한숨을 내쉬며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 둔 제 휴대폰을 꺼냈다. 진환이 그를 안아 든 상태로 몸을 약간 낮추자, 은율이 휴대폰 케이스 안쪽에 넣어둔 작은 카드키를 현관 도어록에 댄다. 곧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진환이 싱글거리는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형, 이제 다 왔으니까 좀 내려 주시면 안 돼요? 이러다 진짜 허리든 팔이든 어디 하나 상한다니까요.”

은율이 진환의 목에 팔을 두른 상태로 걱정스럽게 말했다. 억지로라도 내리게끔 하고 싶은데, 날뛰었다가 그가 다칠 수도 있겠단 생각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간 진환은 그 상태로 곧바로 침실로 향했다. 결국 은율이 자유로워진 건 진환이 그를 침대에 걸터앉혀 준 후였다.

진환은 은율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신발을 손수 벗겨 주었다. 신발을 벗겨 한쪽에 가지런히 두자마자, 진환이 은율에게 달려들었다.

“우왁, 잠깐, 형!”

진환이 은율을 침대에 눌러 눕히고는 그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재킷을 벗어 침대 밖에 던지고서 제 목을 옥죄던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은율이 밑에 깔린 채 힘겹게 웃으며 방어하듯 두 손을 제 가슴 앞에 들고 있었다.

“지, 진정해요.”

진환이 섹시하게 제 입술을 혀로 핥았다. 이미 그의 눈동자는 맹수처럼 일렁거리고 있었다.

“미안. 그런 거 할 줄 몰라.”

“잠…!”

진환의 다급한 입술이 은율의 겁먹은 입술에 내려앉았다. 밑에서 놀라 발버둥 치던 은율은 결국 포기한 듯 그의 등에 제 팔을 둘렀다.

진환의 거친 키스를 받아 내며 은율은 진환의 등에 매달렸다. 몽롱하게 기분 좋은 키스가 이어지고, 진환은 은율이 정신없는 틈을 타 그의 정장 재킷을 벗겨 내었다. 먼지 묻은 재킷을 벗겨 바닥에 내팽개치고 그의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어느새 앞섶을 완전히 풀어 헤치고서 바지 버클에 손을 대었다.

“읍! 으읍-!”

은율이 눈을 크게 뜨고 진환의 등을 퍽퍽 때렸다. 그제야 진환이 입술을 떼며 아쉬운 듯 제 입술을 혀로 핥아 보였다.

“왜?”

좋을 때 멈추게 했다는 못마땅한 얼굴로 내려다본다. 은율이 훤히 벌어진 제 앞섶을 보고 얼른 셔츠를 손으로 여며 부여잡고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뛰어다녀서 땀투성이예요. 씻고 싶습니다.”

진환이 은율의 목에 코를 묻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음, 냄새만 좋은데.”

은율이 민망해하며 진환의 머리를 떼어 냈다.

“아, 정말! 갈수록 변태가 돼 가는 거 아니에요?!”

진환이 낮게 웃으며 은율의 머리에 키스했다.

“그럼 씻게 해 주는 대신 내가 씻겨 줘도 돼?”

“그게 뭐가 재미있어서 대신 씻겨 주려고 하시는 거예요?”

“난 율이 몸 만지는 건 다 재미있는데.”

은율의 얼굴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그가 당황해서 입만 벙긋거리고 있자, 그 입에 짧게 키스한다.

“내가 벗길 거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어. 금방 올게.”

진환이 섹시하게 눈웃음치며 방을 나섰다. 은율이 상체를 일으켜 앉은 채 멍하니 문만 바라보았다.

어렴풋하게 욕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욕조에 물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진환은 은율의 피로를 풀어 주는 데에는 욕조에 몸 담그는 것만 한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은율은 진환이 물을 받는 동안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려 벗었다. 답답하던 다리가 단번에 시원해졌다.

바지를 벗어 개고 있었더니, 방에 들어선 진환이 짐짓 심각한 얼굴로 그 바지를 뺏어 들었다.

“내가 벗긴다고 했잖아.”

“뭐 어때요? 어차피 씻을 건데.”

“무슨 소리야. 네 옷 벗길 때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넌 지금 형의 즐거움 중 하나를 빼앗아 갔어.”

“뭐…….”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 진환이 으르렁거리듯 나직이 속삭였다.

“형이 하지 말란 거 했으니까 각오해.”

“예? 잠깐……!”

진환이 은율의 몸을 안아 들었다. 은율이 자동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또! 좀 내려놔요! 직접 제 발로 갈게요!”

“오늘은 집 안에서 못 걸어 다닐 줄 알아.”

“무슨 소리예요?! 못 걸으면 어떻게 돌아다니라고!”

“내가 안고 다닐게.”

“그러니까 왜 사서 고생을 해요!”

진환이 짐짓 심통 난 얼굴로 눈도 마주치질 않았다. 그대로 은율을 안고 욕실로 들어선 진환은 샤워부스 안에 미리 준비해 둔 간이 의자로 향했다. 이젠 은율에게도 익숙한 의자에 그를 앉혔다.

진환은 섹시한 표정으로 은율을 내려다보며 제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은율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입고 있던 셔츠를 완전히 풀어헤치자 잘빠진 근육이 바로 눈앞에 드러났다. 은율이 깜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진환이 단번에 셔츠를 벗어 욕실 밖으로 던져 버리고는 바지의 벨트 버클도 풀었다. 가죽벨트를 풀어 욕실 밖으로 던지자, 그것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에 은율이 움찔했다.

바지를 단번에 벗어 내리자, 진환의 커다란 것을 품고 있는 속옷이 눈앞에 보였다. 이윽고 그 속옷마저 내려가자, 벌써 단단히 발기한 진환의 것이 은율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왜 벌써…….”

은율이 말을 더듬자, 진환이 요염한 얼굴로 은율의 얼굴 앞에 제 얼굴을 가져갔다.

“네가 눈앞에 이런 모습으로 있는데 안 서면 정상이 아니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날카롭기만 하다. 은율은 진환의 눈동자가 저를 샅샅이 뜯어보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진환은 은율의 턱을 손으로 잡아 돌려 자신을 보게 했다.

“형이.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겨 줄게.”

뚝뚝 끊어 말하니 무섭기까지 하다. 은율이 딱딱하게 얼어 있자, 진환이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그가 은율의 셔츠를 벗겨 내 던져두고는 한 손을 은율의 드로어즈 안으로 집어넣었다.

“흣…!”

진환의 서늘한 손이 은율의 장골에 닿았다. 진환은 한 팔로 은율의 몸을 지탱하고는, 그의 속옷 안에 넣은 다른 손으로 그 속옷을 벗겨 버렸다. 금세 발가벗겨진 은율이 얼굴을 붉히며 몸을 움츠렸다.

샤워기를 틀고서 고정대 위치를 조절해 은율에게로 향하게 했다. 앉아 있는 은율의 쇄골에 샤워기의 물줄기가 닿았다.

진환이 물줄기 안에 들어가 은율의 몸을 끌어안아 키스했다. 물줄기가 두 사람에게 동시에 닿아 그들의 몸을 적셔 갔다.

은율은 진환의 품에 안긴 채 그의 키스에 열심히 응하고 있었다. 따뜻한 물을 맞고 있어서인지 몸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후끈한 열기와 머릿속에 몰린 피가 은율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진환은 은율의 혀가 이젠 제 입 안까지 자유자재로 침범하는 것을 느끼며 작게 웃었다.

두 사람의 몸이 완전히 젖었다고 생각한 진환은 입술을 떼고서 작은 샤워볼에 보디클렌저를 두어 번 눌러 묻혔다. 두 손으로 그것을 비벼 잔뜩 거품을 낸 진환이 샤워기의 물을 껐다.

진환이 애써 장난기를 숨기며 은율의 몸에 샤워볼을 대었다. 그가 움찔했다.

“저, 이건 제가…….”

“가만히 있어. 씻겨 준다고 했잖아.”

은율은 의자에 앉아 가만히 있으려니 불안하기만 했다.

진환은 샤워볼을 천천히 미끄러뜨려 그의 상체에 거품을 발라 댔다. 일부러 유두 부분에서 오래 머무르자 은율이 움찔거렸다.

상체를 꼼꼼히 바르고 아래로 내려오자, 아직 작게 처진 상태 그대로인 은율의 것이 보였다. 진환의 눈썹 끝이 꿈틀했다.

‘난 이런 상태인데.’

혼자만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일부러 샤워볼을 은율의 아래쪽에 연신 문질러 댔다. 그제야 약간 움찔하며 반응한다. 샤워볼을 미끄러뜨려 사타구니와 안쪽 허벅지를 간지럽히듯 문지르자 또 그것이 꺼덕거린다.

발끝까지 내려와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거품을 묻혀 대자, 은율이 긴장하며 움츠렸다. 샤워볼을 내려놓고 거품 묻은 손으로 마사지하듯 그의 발가락 사이사이를 매만지고 꾹꾹 눌러 댔다.

“읏…….”

은율의 발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은율이 느끼고 있다는 신호에 진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환은 한 손으로 은율의 뒤꿈치를 받쳐 들고서 다른 한 손으로는 은율의 발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끼워 넣고 오므렸다 폈다 주물렀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흐읏…….”

기분 좋은 마사지와 미끈거리는 감촉이 더해지자 자꾸만 몸에 반응이 왔다. 진환은 은율의 발을 매만지다 그대로 손을 미끄러뜨려 올렸다. 진환의 두 손에 은율의 양 발목이 가볍게 잡혔다. 발목과 복숭아뼈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약간 힘을 주어 종아리 근육을 타고 올라가자, 또 한 번 움찔한다.

무릎까지 올라간 손의 엄지로 양 무릎을 살살 간지럽히듯 문질렀다. 은율이 들썩였다. 엄지로는 무릎 앞을 문지르고 다른 손가락들은 오금을 꾹꾹 누르고 매만지며 자극했다.

“흐읏…… 형, 그만…….”

은율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미간을 모은다. 오금을 누를 때마다 다리 전체가 들썩거렸다. 진환이 일부러 무릎을 앞뒤로 꾹꾹 누르며 밀어 올렸다.

“흣!”

은율의 종아리가 펄쩍 올랐다 내려갔다. 진환은 은율의 새로운 성감대를 발견한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진환은 허벅지를 지압하듯 손으로 꾹꾹 누르며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수줍게 고개를 치켜든 은율의 것이 보였다. 진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거품 묻히는 거에 흥분했어?”

“……못됐어, 정말…….”

은율이 부끄러움 가득한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진환의 두 손이 허벅지 안쪽으로 향했다. 안쪽을 쓸어 주자 또 움찔거린다. 은율이 손을 뻗어 진환의 어깨를 밀어냈다.

“형, 이제 그만……. 씨, 씻어요, 빨리.”

“아직 덜 묻혔는데.”

진환이 씩 웃으며 은율에게 키스했다.

“흐읍…!”

진환은 그에게 키스하며 제 어깨를 잡은 은율의 팔을 살며시 떼어 내 의자 뒤로 옮겼다. 은율은 키스만 했다 하면 반쯤 무아지경이 되어 제가 어떤 일을 당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진환은 그의 두 팔을 의자 뒤로 해서 왼손에 그의 양팔을 교차해 잡았다. 가느다란 두 손목이 한 손에 꽉 잡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살짝만 키스한 진환이 입을 떼었다. 은율이 숨을 몰아쉬다가 그제야 제 두 손이 진환의 손에 의해 의자 뒤로 결박당했음을 깨달았다. 그가 당황한 얼굴로 진환을 바라보았다.

“형, 왜, 왜…….”

진환이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안쪽도 깨끗하게 씻어야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거품을 잔뜩 묻힌 진환의 오른손이 은율의 사타구니 쪽으로 내려갔다. 다리를 오므리려 했지만, 양다리는 이미 진환의 허벅지에 걸려 적나라하게 벌려진 상태였다.

“형, 잠깐, 잠깐 기다려요.”

“못 기다려.”

진환이 못되게 웃으며 은율의 구멍에 오른손 중지를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하윽!”

작은 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는 감촉에 은율이 깜짝 놀라 신음을 뱉었다. 진환은 제 중지를 깊숙이 집어넣고는 일전에 만졌던 부분을 찾아 손가락을 휘저었다.

“핫-!”

진환의 손가락이 한 지점에 닿자마자 은율이 허리를 튕기고 고개를 뒤로 홱 젖혔다. 그의 전신에 힘이 들어가며, 벌벌 떤다. 진환이 안달 난 얼굴로 조금 전 닿았던 그 부분을 다시 푹 찔렀다.

“하악-!”

은율이 높은 교성을 내질렀다. 진환이 몽롱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은율을 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율아. 저번에 여기 만져서 갔던 거 기억나?”

은율이 대답 없이 불안한 눈으로 벌벌 떨었다.

“그때 기분 좋았지? 그때처럼 가볍게 한 번 가자.”

은율이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때의 이상한 쾌감의 파도가 아직도 생생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막상 다시 겪는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진환이 거품 묻은 검지를 추가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은율이 움찔거리며 애걸하듯 진환을 바라보았다.

“형, 제발…….”

그 모습을 보자마자 진환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흐아아-!”

진환이 은율의 전립선을 손가락 두 개로 푹푹 찔렀다. 은율이 신음을 토하며 들썩였다. 진환이 오른손으로 전립선 부분을 연신 찔러 대며 은율의 귓가에 속삭였다.

“기분 좋아, 율아? 여기 좋지? 쌀 것 같지?”

“흐아-! 아앗-! 그, 그만……! 흣……!”

그만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은율의 성기는 빠르게 그 부피를 더해 가고 있었다. 진환이 은율의 귓가에 혀를 넣어 핥았다.

“하읏!”

귀와 아래에서 찌걱거리는 소리가 민망할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진환이 은율의 귓바퀴를 혀로 핥아 대며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 은율의 눈가에 생리적인 눈물이 고이고 엉덩이와 다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환의 손이 찔러 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싸 봐, 율아. 자.”

“하으응-! 흐응-! 혀엉……! 하악!”

진환이 푹푹 찔러 대는 부위에서 올라오는 쾌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전과 달리 맨정신으로 느끼니 더 죽을 맛이었다. 거기다 두 팔이 결박되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되니, 이상하게 더 빨리 흥분하는 것 같았다.

은율이 진환에게로 고개를 돌려 울상을 지었다.

“혀……엉……! 핫……! 키스…… 흐응! 키스……해 줘…! 하아-!”

진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진짜…!”

진환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리더니 은율의 입술로 돌진했다.

“흐읍!”

은율의 입술을 먹어 버릴 것처럼 제 입 안에 품고는 그 속에 혀를 집어넣었다. 은율의 혀를 빨아 당겨서 그 끝을 제 이로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씹어 주자 은율이 눈을 크게 뜨며 움찔댔다.

진환은 은율의 혀를 거칠게 유린하며 아래쪽 손놀림에 속도를 더했다. 보디클렌저의 미끌미끌함 때문에 기계처럼 빠른 속도로 전립선을 눌러 댈 수 있었다. 은율이 연신 막힌 신음을 흘려 댔다. 그의 성기가 당장이라도 토정할 것처럼 빳빳이 몸을 일으켰다.

“싸도 돼.”

“혀엉……! 하악-! 흐앗-!”

진환의 말이 허락이라도 되는 듯,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정을 해 댄다. 은율의 엉덩이가 들썩이더니 그 성기에서 진한 정액을 토하고 또 토해 냈다. 그것을 보며 진환은 뜻 모를 희열을 느꼈다.

“흐읏…….”

은율이 눈을 내리뜨며 신음을 삼켰다. 그의 시선이 거품과 섞인 제 정액에 닿았다.

“나빴어…….”

은율의 원망 어린 말이 너무도 귀여웠다. 진환이 은율의 팔을 풀어 주고서 그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춰 댔다.

“잘했어, 율아. 착하다.”

나른해진 은율을 달래 주며 그의 구멍에 들어있던 손가락을 살며시 빼냈다.

“흐응…….”

넣을 때는 긴장 때문에 아파하긴 하지만, 막상 뺄 때는 못 나가게 하려는 듯 꽉 잡아 댄다. 진환은 그가 의도하고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알지만, 본능적으로 그리한다고 생각하니 자동으로 아래가 뻐근해져 왔다.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약간의 틈을 보이는 구멍이 빠끔거렸다. 진환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제 것을 넣어 버리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진환은 은율을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선 멍한 은율을 다짜고짜 마주 끌어안고는 두 손으로 그의 양 엉덩이를 잡았다.

“힉!”

은율이 화들짝 놀랐다. 진환은 은율의 탄탄하고 작은 엉덩이를 주무르며 속삭였다.

“이쪽, 앉아 있느라 아직 안 발라졌어.”

“으읏…….”

은율의 뒤쪽 허벅지에 묻은 거품을 끌어 올려 그의 엉덩이에 부드럽게 발라 댔다. 말이 바르는 거지, 그저 주물럭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은율은 진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열심히 신음을 참아 내고 있었다.

진환은 그 상태로 척추를 따라 손을 밀어 올렸다. 등을 수직으로 올라오는 손길에 은율이 바르르 떨었다. 양손으로 은율의 도드라진 어깨뼈를 매만지고 주무르니, 그가 진환의 등에 팔을 두르고는 꼭 껴안는다. 이것만으로도 느끼는지 몸을 떨어 댔다.

진환에게 맞닿은 은율의 그곳이 조금씩 반응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대체 얼마나 민감한 거야.’

이쯤 되면 걱정될 정도다.

“율아, 이렇게 잘 느끼면 어떻게 해.”

느끼게끔 만져 놓고는 걱정을 담아 말한다. 은율이 고개를 살짝 틀어 기댄 채 진환과 눈을 마주친다.

“형이 만지면…… 자꾸 이상해져요…….”

진환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이성의 끈이 날아가려 했다. 진환은 이를 악물고서 은율을 꽉 끌어안았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대체 어쩌면 좋을까.

진환은 급하게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직접 샤워기를 붙들고 은율의 몸에 뿌려 주었다. 은율은 갑자기 쏟아지는 따뜻한 물에 움찔하며 진환을 더 꼭 끌어안았다.

속으로 몇 번이나 애국가를 열창하며 가까스로 은율과 제 몸을 씻어 낸 진환은 그를 잠시 의자에 앉혔다. 다소 급한 걸음으로 욕조의 물 온도와 높이를 확인한 그가 수도를 끄고 돌아왔다. 진환은 나른하게 앉아 있는 은율을 단숨에 안아 들었다. 은율은 이제 내려 달란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얌전히 안겨 있었다.

은율을 안은 채로 연녹색 물이 가득한 욕조에 들어간 진환이 조심스레 그를 앉혔다. 뜨거운 물 안에 들어가자마자 몸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향긋한 로즈마리 향이 코를 간질였다.

진환은 뒤에서 안는 모양새로 은율을 제게 기대게 해서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몸이 밀착하고, 진환의 사타구니에 은율의 엉덩이가 닿았다. 은율이 움찔하며 진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형, 괜찮아요? 너무…….”

은율이 말을 잇지 못했다. 아플 정도로 쿡 찌르는 진환의 그것이 얼마나 괴로울지는 같은 남자인 은율도 알고 있었다. 진환이 은율의 뒤통수에 입을 맞추었다.

“괜찮아. 다 씻고 따로 빼면 돼.”

은율이 제 허리를 두른 진환의 팔을 풀고 돌아앉았다. 진환과 마주 본 모양새가 된 은율이 그의 것을 내려다보았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돼요?”

은율의 얼굴이 진지했다. 진환은 놀란 얼굴로 눈만 깜빡여 댔다.

은율은 방법이야 어떻든 일단 자신이 기분 좋게 사정했던 것을 인정했다. 비록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이상한 쾌감에, 진환이 상당히 괴롭히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진환은 제게 뭔가를 해 주기만 하고 받은 게 없다. 사정도 하지 못했다.

연인 관계라면 응당 진환도 기분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느끼고 신음하는 모습을 보는 걸로 쾌락을 느끼는 진환이었지만, 은율은 그가 그저 자신을 기분 좋게 해 주기만 하고 본인은 아무것도 얻은 게 없는 것 같았다. 같이 기분 좋아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둘 다 기분 좋을 방법.

은율이 생각나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넣으면…… 될까요?”

부끄러워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묻는다. 진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싶더니 은율의 양팔을 단단히 잡았다.

“지금 그거 진심이야?”

오늘 어떻게든 잘 구슬려서 그의 안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진환이다. 설마하니 이렇게 직설적으로, 그것도 긍정을 담아 물어오다니.

은율이 순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의 제스처가 보이자마자, 진환의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뚝 끊어졌다.

“젠장, 율아. 율아.”

진환이 다급하게 키스를 해 댔다. 은율은 그의 키스를 받으며, 진환이 제 허리를 붙들고 그의 허벅지 위에 앉히는 것을 느꼈다. 그가 제 엉덩이를 잡아 좌우로 살짝 벌려 댔다. 아직 열려 있는 작은 틈새로 뜨끈한 물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입구를 찔러 대는 진환의 것도.

은율이 겁먹은 듯 몸을 움츠렸다. 진환은 은율의 등을 한 손으로 받치고 다른 한 손을 뻗어 제 물건이 은율의 구멍에 제대로 들어가게끔 위치를 맞췄다. 진환이 은율의 목에 입을 대고서 물기를 할짝거렸다.

“하아……. 미칠 것 같아, 율아.”

“흐읏…….”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가 은율의 귀를 자극했다. 목을 핥아 대는 뜨거운 혀에 온 정신이 쏠렸다.

“흐…… 아악-!”

진환의 것이 은율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뒤로 젖혀지는 은율의 몸을 단단히 받치고서 다른 손으로는 은율의 엉덩이를 매만지고 주물러 댔다.

“힘 빼, 율아. 저번처럼 편안히 힘 빼 봐.”

“흐…… 으으…….”

은율은 며칠 전의 첫 결합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도 처음에는 비명을 지를 만큼 아팠다.

아직 귀두밖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힘겨워하는 은율을 보며, 진환이 그의 유두에 입술을 가져갔다.

“흐앗-!”

유두를 힘 있게 쭉 빨아 당기고서 입 안에서 그것을 살짝살짝 깨물어 댔다. 혀끝에 힘을 주고 그것을 빠르게 튕겨 대자, 은율의 몸이 덜덜 떨리며 밑의 긴장이 살짝 풀어졌다. 진환은 자신의 것을 천천히 밀어 넣으며 그 작은 유두를 정성스레 핥아 주었다. 은율이 진환의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벌벌 떨었다.

“흐읏……. 혀엉…….”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애원하듯 쳐다보니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진환이 제 것을 단번에 밀어 넣으며 은율의 유두를 확 빨아 당겼다.

“하아-!”

은율이 목을 뒤로 젖히며 교성을 질렀다. 진환이 그의 등을 쓸어 주며 속삭였다.

“다 들어갔어, 율아. 잘했어. 착하다.”

“흐으…….”

등을 쓸어 주니, 딱딱하던 몸의 긴장이 살살 풀렸다. 칭찬하듯 한 손으로 은율의 얼굴을 붙잡고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은율은 흐릿한 눈으로 그것을 얌전히 받아 내고 있었다.

“움직여도 돼?”

은율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붕붕 내젓는다.

“잠깐, 잠깐만…….”

목소리가 떨린다. 막상 제 속에 진환의 거대한 것이 들어가 꽉 채우고 있으니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진환이 그의 귀를 잘근 깨물었다.

“읏…….”

“이대로 있을 거야? 계속?”

낮은 소리로 속삭여 오니 몸이 저릿저릿했다. 은율이 눈을 내리깔며 머뭇거렸다.

“아프지 않게 살살 할게. 응?”

은율이 눈치를 보다가 결국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받자마자 진환이 은율의 양 옆구리를 손으로 잡았다. 부력 덕분에 은율의 몸이 쉽게 올라온다.

“하읏!”

내벽이 쓸리는 느낌에 은율이 신음했다. 진환은 약속한 대로 그의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되 최대한 천천히, 살살 다루었다.

“흐으……. 으읏…….”

은율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진환은 아래의 격한 쾌감과 은율의 작은 신음만으로도 절정에 달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정작 은율이 그다지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익숙지 않은 자세 때문에 은율의 기분 좋은 부분을 찌르기가 쉽지 않았다.

다급해진 진환은 은율의 허리를 붙잡고 그의 안을 한차례 깊이, 푹 쑤셨다.

“하악-!”

갑자기 전해져 온 찌릿하는 쾌감에 은율이 턱을 쳐들고 교성을 질렀다. 더불어 진환의 것을 사정없이 꽉 조여들었다. 오싹하는 쾌감에 진환이 더 떨었다.

“하아…… 율아……. 살살 했다가는 아프기만 하고 느끼질 못할 것 같은데……. 형이 좀 세게 해도 돼?”

은율이 손을 떨며 진환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진환의 열감 가득한 눈을 보며 은율이 머뭇거리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렸다는 듯 진환이 그의 양 옆구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선 은율을 높이 쳐들었다 그대로 빠르게 내려 제 것을 뿌리까지 박아 넣었다.

“하아아-!”

소리부터 달라졌다. 은율이 온몸을 쥐어짜는 것 같은 쾌감에 교성을 질러 댔다. 진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그의 몸을 위아래로 쳐올려 댔다. 물이 거세게 출렁이며 철벅거리는 소리가 교성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흐앗-! 아악-! 아……하윽! 흐앗!”

욕실이라 소리가 울려 더 야하게 들려왔다. 진환이 눈을 빛내며 은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물을 머금은 진환의 것이 안쪽을 깊이 찔러 댈 때마다 은율의 눈에 눈물이 들어차고 목소리는 높아져만 갔다.

“하으으-! 기, 깊어어-! 하앗! 아-!”

“흣! 그렇게 조여 대면……!”

은율이 너무 느낀 통에 진환의 것을 쥐어짜듯 조여 왔다. 그 때문에 한계에 다다른 진환의 것이 은율의 안에서 최대한으로 팽창했다.

“하악-!”

배 속에서 급격히 커진 진환의 것을 느끼며 은율이 눈을 크게 치떴다. 진환이 이를 악물며 더 빠른 속도로 은율을 움직이고, 제 엉덩이에도 힘을 주어 찔러 댔다.

“율아……. 크읏-!”

“하으으-!”

진환이 깊이 찔러 올리며 억누르고 있던 절정을 단번에 터뜨렸다. 은율의 속으로 욕조의 물보다 더 뜨거운 진한 정액이 퍼졌다. 진환과 은율의 몸이 마치 한 몸인 양 같이 떨어 댔다. 그 어느 때보다 황홀한 충족감이 서로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하아……. 율아아…….”

진환이 은율을 끌어안은 채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벼 댔다. 은율의 빠르게 두근대는 고동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다.

“혀엉…….”

은율의 나른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그의 볼을 잡아 뽀뽀해 댔다.

“그래, 율아. 힘들었지?”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애정을 담아 입을 맞춰 대니 그가 몽롱한 눈으로 진환을 바라본다. 진환은 순간 은율의 눈동자에 제정신이 모두 빨려드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은율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요염하게 미소 짓는다.

“기분…… 좋았어요……?”

죽어 가던 진환의 아랫도리가 급속도로 단단해졌다.

*  *  *

“그럼 내일은 뮤직비디오 촬영에 드라마 촬영까지 가시는 거예요?”

은율이 이불 밖으로 몸을 드러내 엎드렸다. 그가 아쉬운 눈으로 제 옆에 누운 진환을 바라본다. 진환이 은율 쪽으로 돌아누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응, 그래서 좀 늦을 것 같아.”

“일인데 어쩔 수 없죠.”

진환이 손을 뻗어 은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러 올래?”

“일반인은 가 봐야 민폐만 끼치죠.”

“민폐 아니야. 내가 말해 놓을 테니까 와서 현장 분위기도 보고 그래. 그리고 중간에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가자.”

은율이 눈을 굴리며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래도 죄송스러워서 못 가겠어요.”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만큼, 진환의 일을 따라다니면 도움이 되긴 될 거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진환에게 신경 쓰게 하고 싶진 않았다. 더불어 스태프도 아닌 사람이 덩그러니 있어 봐야 방해만 될 터였다.

진환이 은율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가 손을 뻗어 은율을 제 품에 안았다. 서로의 맨살이 닿자 따스한 체온이 공유되고 기분 좋은 나른함이 퍼졌다.

진환이 몸의 힘을 빼고 제게 안겨 있는 은율의 정수리에 입술을 찍어 댔다. 은율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서하진은 언제 만나?”

은율이 눈을 뜨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이번 주 주말이나 되어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멀리 있다고 하니까…….”

“그래…….”

은율의 등을 토닥여 주며 진환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하진은 은율에게 알린 것과는 다른 이유로 지방에 가 있었다.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 방학 동안 유명 사진작가의 보조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사진작가가 아닌 기자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것도 비리 캐는 데 일가견이 있는 유명 기자와.

마침 그 유명 기자는 급성장한 케이트레이딩에 대해 조사하는 중이었고, 하진은 교수를 통해 그 기자가 자기 대학 선배라는 것을 알았다. 하진은 일찍이 그와 접점을 만들어, 상당히 예전부터 함께 케이트레이딩에 대해 캐고 다니는 중이었다. 아마도 이번에 은율과 만나면 이에 대해 전부 털어놓지 않을까.

진환은 은율의 체향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빨리 모든 일이 해결되어 은율이 마음 편히 연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

*  *  *

은율은 쇼핑백 하나만 들고서 다급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이 근처라고 했는데 진환이 말한 간판이 잘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은율의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형, 근처인데 간판을 못 찾겠습니다.”

-잠깐만, 지금 나갈게.

“예? 나오다니…….”

사람이 많은 대로변 한복판이다. 차라리 제가 찾아 들어가는 게 낫다 싶어 만류하려 했지만, 그보다 진환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율아, 여기.”

들려온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멋들어진 롱가디건을 입은 진환이 불쑥 얼굴을 들이댄다.

“오느라 고생했어.”

화사하게 미소를 지으니, 대낮의 태양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연하게 화장까지 해 놓으니, 그 잘생김이 사람 혼을 쏙 빼놓기 알맞았다.

대로변의 사람들이 일제히 발을 멈추고 저마다 소리를 질러 댔다.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은율이 재빨리 진환의 몸을 돌려 그 등을 밀었다.

“빨리 들어가요! 사람들 다 보잖아요!”

은율이 붉어진 얼굴로 밀어 대자, 그게 귀여워 진환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간판은 잘 보이지 않을 법했다. 간판 없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옆 벽면에 간판이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은율은 내려가면 갈수록 자신이 올 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싸 보이는 갖가지 장비가 가득하고, 넓은 공간의 부분 부분마다 화려한 배경이 가득했다.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는 벽면 이곳저곳에는 늘씬하고 멋진 모델들의 화보가 보란 듯이 걸려 있었다. 대부분 낯이 익은 유명 연예인들이었다.

계단을 다 내려간 은율은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 볼품없는 반팔 티에 색 바랜 면바지, 커다란 둥근 안경, 눈앞을 답답하게 가린 긴 앞머리까지.

도저히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율아, 뭐 해?”

가만히 서 있자, 앞서 걷던 진환이 뒤로 돌아 손목을 잡아챘다. 은율이 그의 손을 떼어 내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차피 이거 전해 드리러 온 거니까 그만 돌아가 볼게요.”

“기다렸다가 같이 가.”

“아니, 그렇지만…….”

은율이 우물쭈물하자, 진환이 그의 손목을 다시 잡아당겼다. 그의 손에서 쇼핑백을 뺏어 들고는 그대로 끌고 들어간다.

스튜디오 깊숙이 들어가자, 생각보다 많은 스태프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 중 무거워 보이는 사진기를 든 남자가 진환을 보고 그에게 걸어왔다.

“진환 씨, 바로 가능해?”

“예, 금방 가겠습니다.”

은율에게 말할 때와는 높낮이가 현저히 다른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사진작가는 은율의 존재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진환에게만 시선을 주고 돌아갔다.

진환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싱긋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자 마련해 줄 테니까 보고 있을래?”

“하지만…….”

“금방 끝낼 테니까 같이 밥 먹으러 가자. 너 없으면 내가 기운 없어서 밥 못 먹을 것 같아서 그래.”

이렇게까지 애교를 떨며 얘기하니, 은율도 무작정 거부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진환의 집에서 하루 종일 자격증 공부를 하거나 대본만 봤다. 하루 정도는 뭐 어떨까 싶었다.

“알겠습니다.”

“고마워. 연우도 와 있으니까 걔가 챙겨 줄 거야. 필요한 거나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따뜻한 배려가 가득한 말에 은율의 가슴이 간질거렸다. 하여튼 매사 다정한, 신기한 사람이다.

진환이 사람들 쪽을 둘러보다 한쪽으로 손짓을 했다. 연우가 그 손짓을 알아보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어? 은율 씨 아니에요? 어쩐 일이세요?”

“안녕하세요. 형이 두고 간 것 전해 주려고 들렀습니다.”

“아하, 시계랑 구두 가져오셨군요? 여기서 준비한 게 영 이미지가 안 맞긴 했죠. 근데 작가님이 그렇게 해도 된대요?”

진환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어차피 의상 보여 주려고 찍는 거니까 시계나 구두는 상관없을 거라던데. 의상만 잘 나오면 됐지.”

그렇게 말하며 연우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본다.

“율이한테 의자 준비해 주고, 옆에 딱 붙어 있어.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지 못하게 미리 얘기 돌려 놓고.”

“예? 예에.”

연우가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진환이 연우에게 향했던 눈을 은율에게 향하며 눈꼬리를 휘었다. 그가 은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럼 형 갔다 올게. 어디 가지 말고 편하게 앉아서 보고 있어.”

“예, 다녀오세요.”

진환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거두자, 은율도 마주 웃어 주었다.

사진작가를 향해 걸어가는 진환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은율이 연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기묘하게 일그러진 연우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이 왜 그래요?”

은율이 순수하게 물었다. 연우가 얼른 표정 관리를 하며 싱긋 웃었다.

“그냥 못 볼 걸 봤다 싶어서요.”

“예?”

“아니에요. 여기 잠깐 계세요! 금방 의자 가져다드릴게요.”

연우가 사람 좋게 웃으며 사람들 쪽으로 뛰어갔다. 그는 스태프들 몇 명에게 뭐라 말을 하더니 접이식 의자를 두 개 받아 왔다. 그 와중에 진환의 일행이라 언질을 준 것인지, 그들이 연신 은율을 힐끗거렸다.

진환이 촬영할 곳이 잘 보이는 자리이되 스태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간 거리를 두어 앉았다.

연우는 은율을 의자에 앉히고서 종이컵에 시원한 음료를 담아 가져오고 있었다. 사진작가와 촬영 콘티를 보며 대화하던 진환이 그것을 보고는 연우에게 손짓했다. 연우가 그에게 다가가자, 진환이 종이컵을 빼앗아 들었다. 그러고선 그것을 조금 입에 대어 맛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진환이 굳은 얼굴로 연우에게 뭐라 말하니, 연우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연우가 한숨을 내쉬며 종이컵을 도로 받아 들고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은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고 있자, 눈이 마주친 진환이 해사하게 웃는다. 덕분에 사진작가를 포함한 수많은 스태프들이 놀란 눈으로 은율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주목에 은율이 민망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진환이 다시 표정을 무뚝뚝하게 바꾸고서 콘티에 마저 시선을 두었다. 사진작가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와 다시금 콘티를 살폈다.

새 종이컵에 음료를 담아 온 연우가 그것을 은율에게 내밀며 옆자리에 앉았다.

“고맙습니다. 근데 형하고는 무슨 이야기를 하신 겁니까?”

“아……. 주스 가져오고 있었는데, 자기가 맛보더니 은율 씨 단거 못 먹는다고, 당분 없는 거로 챙겨 주라고 해서요.”

그래서 맛을 봤던 거구나.

은율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연우에게 미안해했다.

“죄송해요.”

“은율 씨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요.”

연우가 히죽 웃어 보인다. 은율도 마주 웃어 주며 제 컵에 담긴 탄산수를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셔 본다. 전혀 달지 않은 탄산수를 마시며, 은율은 진환의 배려에 고마워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에 걸렸다. 역시나 자신이 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진환이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촬영이 시작되자 카메라에 집중한 진환은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초가을을 겨냥한 의상인 듯 촬영하는 옷마다 긴팔의 캐주얼한 의상들이었지만, 진환이 입고 포즈를 취하니 절대 일반인은 입을 엄두도 못 낼 멋들어진 의상처럼 보였다. 의상을 고급스럽고 멋있게 탈바꿈시키는 데에는 그의 몸매와 포즈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도 표정이 압권이었다.

어떨 때는 섹시하고, 어떨 때는 무심하고, 어떨 때는 악동 같고, 어떨 때는 귀여웠다.

의상에 맞춰 표정을 확확 바꿔 대니, 은율의 눈이 반짝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진환을 제 두 눈 가득 담아, 한 장면도 잊지 않으려 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집중한 채 진환을 보고 있는 은율을, 그 옆에 앉아 있던 연우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최근 연우는 경악의 연속이었다. 은율이 진환을 받아 줬다는 것도 놀라운데, 지금은 아예 동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진환이 자세히 말해 주지는 않았지만 은율이 사는 동네가 위험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연우가 보기에도 원룸촌 구석 반지하 방보다는 진환의 집이 훨씬 안전하고 보안이 철저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환이 반은 사심, 반은 K로부터 은율을 지키기 위해 동거하자 했던 것이었지만, 연우는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연우는 제 주변에 동성 커플이 생겼다는 것도, 그 커플의 주인공이 자신이 케어하는 배우라는 것도 신기했다. 심지어 연우 본인이 보기에도 둔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그 배우의 연인이다. 연인이 되기 전에도 진환이 그리 아끼고 챙기는 것을 보긴 했지만, 지금은 또 얼마나 심해졌을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뭐, 음료수 하나까지 일일이 체크할 정도이니 심해지긴 심해졌지.’

연우는 은율이 앞머리를 들어 올리고 안경을 벗었으면, 했다. 그러면 그가 진환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이젠 아예 제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 대놓고 은율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쁘긴 하지.’

은율이 맨얼굴을 드러냈던 때를 떠올렸다. 주변이 저절로 환해지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의 얼굴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 옆에 그 어떤 절세미녀를 데려다 세운다고 해도 가장 먼저 시선을 두게 되는 것은 은율일 것이라 장담했다.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고정시키는 그 외모는 저기서 멋들어진 촬영을 해 대는 진환마저 한 수 접어 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초절정 미인 커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몸서리를 쳤다.

문득 연우의 시선을 느낀 은율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연우가 멍하니 바라보다 화들짝 놀랐다.

“왜 그렇게 보세요?”

은율이 의아하게 물었다. 연우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그냥 눈이 가네요, 자꾸.”

‘진환이 형이랑 사귄다니까 신경 쓰여서요.’

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은율이 작게 미소 지었다.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으십니까?”

연우가 뜨끔했다. 속마음이 읽힌 기분이었다. 연우가 눈을 굴리며 머뭇거렸다.

“그…… 형이랑 사귀신다고 들었는데요…….”

은율이 움찔했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적으로 들으니 겁이 났다. 심장이 격하게 두근거렸다.

자기 배우가 남자와 사귄다는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싶다. 심지어 그 상대는 알게 된 지 오래된 사이도 아니고, 고작 스턴트맨 알바나 하는 대학생이다. 염치없이 진환의 대저택에 얹혀살고 이렇게 챙김을 받으며 촬영장 구경까지 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동성이라는 것도 문제인데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손끝이 잘게 떨려 왔다.

“형이 많이 귀찮게 하죠?”

들려온 말은 너무도 평온한 질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걱정이 담겨 있었다. 은율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연우를 마주 보았다.

“형이 예전부터 은율 씨 걱정도 많이 하고 엄청 챙기는 거 아는데, 정작 은율 씨는 그게 부담스럽거나 귀찮지 않을까 했거든요.”

연우가 생글생글 웃는다.

“두 분이 이어지신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은율 씨가 힘들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기도 하거든요. 진환이 형이 누굴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뭐든 다 해 주고 챙기는 거 말고는 애정 표현할 줄을 몰라요. 아, 저도 최근에 형이 은율 씨 대하는 거 보고 안 거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요.”

앳된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더니, 그가 은율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진환이 형이 사람으로서는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은율 씨가 부디 이해 좀 해 주세요. 형 머릿속엔 연기랑 은율 씨밖에 안 들어 있거든요. 은율 씨가 형 밀어내면 진짜 난리 날 거예요.”

그러더니 마지막엔 사색이 된다.

은율은 제 손을 잡은 연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사람에 비하면 자신이야말로 턱없이 부족한 사람인데.

은율이 눈을 내리깔며 얼굴을 약간 붉혔다.

“밀어낼 일…… 없을 겁니다. 제 주제에 어떻게 형처럼 잘난 사람을 밀어낼 수 있겠어요.”

“무슨 말씀이세요!”

연우가 짐짓 단호한 얼굴을 했다.

“전 솔직히 은율 씨가 아까운걸요. 은율 씨처럼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어디 흔한가요? 거기다 예쁘……. 흠흠, 여하튼 부족한 거 전혀 없고, 오히려 넘쳐흘러서 형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고 계세요.”

연우가 씩 웃는다.

“진환이 형 얼굴이 완전히 폈어요. 예전엔 언제나 무심하고 차가운 느낌만 드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제법 따뜻하게 웃을 줄도 알고 생기가 돌아요. 이게 다 은율 씨 덕인걸요.”

그런 말을 들으니 은율은 내심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받은 것만 같았는데.

“밀어내지 않으실 거라니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연우가 웃는 낯으로 은율의 손을 잡은 채 흔들어 댔다. 혹여 은율이 그를 밀어내면 진환이 얼마나 미친 듯이 굴지 상상이 되어 절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연우가 앳된 얼굴 가득 순수하게 웃어 주니, 은율은 그가 귀엽고 친한 동생 같았다. 근래 저보다 어리고 귀여운 이들을 보면 동생들이 생각나, 더 챙겨 주고 싶고 아껴 주고 싶어졌다.

그런 두 사람 사이로 다른 이의 손이 쑥 들어왔다. 그 손이 은율의 손목을 아프지 않게 살며시, 그리고 연우의 손목은 아프도록 꽉 잡아 쥔다.

“아야야!”

“손. 떼.”

진환이 싸늘하게 말하며 연우의 손을 떼어 냈다. 연우가 저릿한 제 손목을 다른 손으로 쓰다듬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올려다보았다.

“아, 진짜!”

“함부로 손 붙잡고 그러지 마. 닳아.”

연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제 반팔 티 밖으로 드러난 팔을 거칠게 쓰다듬었다. 닭살이 돋아도 너무 돋았다.

진환이 싱긋 웃는 낯으로 은율의 의자 앞에 쭈그려 앉아 눈을 맞추었다.

“지루하진 않아?”

“전혀요.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다행이네.”

진환이 은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며 제 팔을 아예 손톱으로 긁어 대고 있는 중이다.

“촬영 끝나신 겁니까?”

얼마 찍지 않은 것 같은데 진환이 제 눈앞에 있으니 의아했다. 진환이 사진작가와 스태프들 쪽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아니, 아직. 컨셉 콘티가 뭔가 안 맞는 것 같아서 조정 중이야. 좀 늦어질 수도 있겠어.”

“컨셉 콘티가요?”

화보 촬영에 대해선 문외한에 가까운 은율이라 고개만 갸웃거렸다.

진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약간 팔을 벌리고 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간편한 연하늘색 체크무늬 남방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 위에 아이보리색의 긴팔 롱가디건을 입은 상태였다. 앞머리는 단정히 빗어 내리고 약간 화사하게 메이크업을 해 둔 상태라 화려한 외모의 대학생 같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때 보여?”

은율이 진환의 말에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활발한 대학생 같은 컨셉…… 아닌가요?”

솔직하게 말하니, 진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갑자기 컨셉 바꾸자고, 이 의상을 섹시하게 표현해 달라고 하네.”

그 말이 곧바로 와 닿지는 않았다. 캐주얼한 복장을 섹시하게 표현할 필요가 뭐가 있으며, 그럴 것 같으면 현재의 메이크업이나 헤어스타일은 안 맞는 게 아닐까 했다.

“처음엔 그런 컨셉이 아니었나 봐요?”

“캐주얼한 의상에 맞춰서 활발한 남학생 컨셉이었지. 저기, 저쪽 보여?”

진환이 사진작가에게 붙어 있는 한 여자를 가리켜 턱짓했다.

“저 사람이 클라이언트인데, 사진 찍은 거 보더니 섹시한 컨셉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말이야.”

진환이 그녀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녀는 진환이 촬영한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며, 활발한 느낌과 달리 섹시한 느낌을 표현해 달라고 말해 왔다.

분명 처음에는 평소 차갑고 무게 있는 느낌의 진환과 달리 활달하고 밝은 느낌을 원한다며 한사코 밀어붙였었다. 그래 놓고 막상 촬영을 하고 나니 다른 컨셉의 진환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현장에서 컨셉을 변경하고 콘티를 새로 짜는 것은 사진작가와 모델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를 고생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의 강력한 주장이 있다면 무조건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컨셉을 어떻게 잡느냐다. 단순히 섹시하고 뇌쇄적인 것만 살린다 하면 어려울 것은 없는 일이지만, 그걸 원할 것 같으면 콘티를 새로 짤 필요도 없다. 진환이 알아서 포즈와 표정을 취해 주면 끝날 일이니까.

하지만 무려 대형 잡지에 특집으로 실릴 화보다. 어영부영 찍었다가는 다방면으로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진환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돌연 은율을 바라보았다.

“율아, 형 촬영 좀 도와줄래?”

“예?”

진환이 씩 웃으며 은율의 손을 잡았다.

“좋은 생각이 나서 그래. 네가 도와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제가 도움이 될까요?”

다짜고짜 도와 달라고 하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일단 도와줄 거야, 말 거야?”

진환이 눈을 반짝인다. 은율이 눈을 굴리다 결국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진환이 연우를 바라보았다.

“연우야, 율이 데리고 차에 가 있어 봐. 금방 따라갈게.”

“예? 예에.”

연우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리둥절해 하는 은율을 데리고 건물 뒤편의 작은 주차장에 대놓은 밴으로 이동했다. 차 안에 올라탄 두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환이 차 문을 연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는 품에 웬 옷가지들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급히 가져온 건지, 전부 흰색 옷걸이가 끼워진 상태다.

진환이 차 문을 잡은 상태로 연우에게 눈짓했다.

“연우 너는 내려가 있다가 30분 뒤에도 우리가 안 내려가면 그때 데리러 와. 사람들한텐 말해 놨으니까 걱정 말고.”

“형, 뭐 하시려고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연우가 걱정을 담아 물었다. 차에 올라탄 진환이 진하게 웃어 보였다.

“변신.”

그 말을 남기고서 짙게 선팅이 된 밴의 문을 닫아 버렸다. 연우가 벙찐 얼굴을 한 채 가만히 서 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지하 스튜디오로 향했다.

*  *  *

30분 뒤, 연우는 시간을 체크하다 결국 스튜디오 밖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섰다.

진환이 뭐라 말해 둔 것인지 사진작가와 클라이언트, 스태프들까지 전부 촬영 준비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특히나 저 깐깐한 사진작가와 클라이언트가 워낙 조용하기에 어떻게 된 건가 싶어 한없이 궁금했다.

계단을 두어 계단 올라가다, 마침 스튜디오로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얼른 고개를 드니, 진환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내려오고 있었다.

연우가 밝은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형, 마침 모시러 가려고…….”

연우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진환의 뒤에서 그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을 본 연우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감탄사가 나왔다.

뒤따라 내려오는 사람은 하늘거리는 순백색의 와이셔츠에, 다리 선을 살려 주는 어두운 스키니 청바지를 입은 남자였다. 진환이 입은 것과 동일한 롱가디건을 입은 남자는 긴 앞머리를 한쪽으로 몰아 내려서 왼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 덕에 훤히 드러난 오른쪽은 잔머리를 고정해 두기 위해 흰색 실핀 몇 개를 ‘X’ 자로 교차해 달아 둔 상태였다.

연우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혼이 쏙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안 그래도 하얀 피부에 메이크업을 해 둔 탓인지,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의 눈가엔 결코 과하지 않은 검은 아이라인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근처는 검은 펄 섀도로 특징을 잡았다. 눈이 깊어 보이도록 눈썹 바로 아래의 아이홀은 갈색 섀도로 약하게 음영이 들어가 있었고, 눈 위의 눈썹은 가늘지만 진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입술이었다. 안쪽에만 약간의 틴트를 발라, 마치 바깥으로 나올수록 그러데이션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붉은 입술이다. 그러면서도 살짝 촉촉한 것이, 보면 볼수록 같은 남자임에도 연우의 가슴이 심하게 요동쳐 댔다.

‘우와…….’

연우가 새빨개진 얼굴로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자, 진환이 그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짝 소리 나게 때렸다.

“정신 차려.”

진환의 말에 그제야 연우가 정신을 차렸다.

“형, 이분은…….”

연우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더듬었다. 진환이 히죽 웃으며 그에게 귓속말한다.

“모르는 척해.”

“어……, 예……?”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자, 진환이 가만히 웃기만 했다.

진환은 제 뒤에 가만히 서 있는 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율아.”

나른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던 은율이 그의 손을 잡았다. 진환은 맞잡은 은율의 손등을 제 엄지로 쓸어 주며 그를 데리고 사진작가와 클라이언트를 향해 걸어갔다.

연우가 눈을 크게 뜨며 그들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저게 은율 씨라고?!’

연우는 파리해진 낯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은율을 데리고 걸을 때마다 스태프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연우처럼 멍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힌 채, 마치 시선이 고정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뗄 줄 몰랐다.

진환은 내심 으쓱하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많은 시선이 은율에게 쏟아지니, 마음 같아서는 죄다 안대를 씌워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진환이 한창 대화 중인 사진작가와 클라이언트에게 다가갔다.

“아까 말한 모델 데려왔습니다.”

“오! 드디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은 저마다 숨을 삼켰다. 그들은 곧 눈에 이채를 띠며 은율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진환은 내심 걱정이 되어 은율을 바라보았다. 급하게 짠 캐릭터에, 이만큼 부담스러운 시선들이 죄다 쏠려 있다. 혹여 연기 중인 얼굴이 무너지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우였구나 싶었다. 이미 은율은 그 짧은 시간에 구상해 낸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퇴폐미 가득한 눈은 흔들림이 없었고, 바르게 서 있지만 다소 나른해 보이는 모습도 진환이 생각한 그대로였다.

사진작가가 진환의 팔을 잡아 그에게 속삭였다.

“처음 보는데, 신인인가? 어디 소속이야?”

“비밀입니다. 그보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촬영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사진작가가 은율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스튜디오 렌탈 시간이나 바쁜 스케줄의 진환을 생각하면 당장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

진환은 은율을 데리고 촬영 배경으로 다가갔다. 회색의 빈티지한 배경지 앞엔 미리 요청해서 배치해 둔 3인용 가죽 소파가 있었다. 진환은 소파로 걸어가며, 근처에 소품용으로 준비해 둔 하드커버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진환은 소파의 정면 왼쪽 끝에 앉아 오른쪽 다리는 굽혀서 그 발끝을 소파 끝에 걸쳤고, 왼쪽 다리는 자연스럽게 내렸다. 책의 중간 페이지 정도를 펼쳐 오른손으로 펼쳐 잡고, 그 팔은 굽혀진 무릎 위에 걸쳐 내렸다. 그러면서 은율을 향해 제 왼쪽 허벅지를 툭툭 두드렸다.

은율은 진환의 왼쪽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소파의 등받이에 닿는 왼쪽 다리는 약간 구부려 세워서 발끝이 팔걸이 안쪽 바닥에 안착하도록 했다. 오른쪽 다리는 허벅지까지는 소파 위에 있지만, 그 아래로는 바닥에 비스듬히 내려가 그 발끝이 바닥에 닿았다. 오른팔은 힘없이 바닥에 늘어뜨리고, 제 배 위에 올린 왼팔은 그 기다란 손가락이 화면에 보이도록 오른쪽 옆구리 근처까지 나와 있다.

그런 은율의 턱을 진환의 자유로운 왼손이 부드럽게 붙잡아 약간 치켜들었다. 은율의 나른하면서도 우수에 찬 눈동자가 진환을 거꾸로 올려다보고, 진환은 고개를 약간 기울여 그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포즈를 본 스태프들이 할 일을 멈추고 시선을 박았다. 사진기를 들고 다가오던 사진작가는 걷던 걸음 그대로 멈춰서 두 눈에 그들을 담기 바빴고, 클라이언트 여성은 헤벌쭉한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뒤에서 지켜보던 연우가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

‘아니, 저 늑대! 촬영장에서 사심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연우는 진환이 아예 작정을 했구나 싶었다. 신성한 촬영장에서 연애질이라니!

하지만 컨셉을 생각해 보면 또 그것만도 아닌 듯싶었다. 둘 다 복장만 본다면 한없이 학생 같은 느낌이다. 포즈도 편안해 보이고 자연스럽다. 두 사람이 사귀는 걸 알기 때문에 사심 채우는 촬영처럼 보이는 건가?

‘……라고 생각할 리가 없지! 저 턱 붙잡아서 자기 보게 만드는 손은 뭔데!’

다른 부분은 몰라도 저 손이 참으로 신경 쓰였다.

*  *  *

사각의 스트로보에서 빛이 팍 하고 터질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의 두 남자가 카메라에 담겼다. 사진작가는 신이 나서 쉼 없이 셔터를 눌러 대었고, 스태프들은 옹기종기 모여 두 남자의 모습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특히나 클라이언트 여성은 아예 입을 벌리고 웃는 낯으로 바라보는 중이다.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수많은 모델을 보았다. 회사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아낌없는 돈을 쏟아부어 일류 연예인들과 유명 모델들을 동원한 화보를 지치지 않고 찍어 냈다. 그 덕에 회사 주가는 날로 올라갔고, 이 덕을 톡톡히 본 그녀는 이젠 누구나 다 알 만한 톱스타가 아니면 절대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인지라 진환이 파트너를 데리고 온다고 할 때 내심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컨셉을 급하게 바꾸자 했던 것도 그녀였던지라, 일단은 감수해 주기로 했다.

파트너를 끼워 넣는 것은 진환이 멋대로 한 일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개런티를 지불할 필요도 없고, 데려온 파트너가 유명 연예인이라면 그야말로 득을 보는 것이었다. 만약 듣도 보도 못한 파트너라면 촬영 도중 일일이 트집을 잡아 끌어낼 요량이었다. 차마 대배우 이진환에게 대놓고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웬걸.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은 맞는데, 도저히 끌어낼 수가 없었다. 저렇게 잘빠진 모델이 어디서 툭 튀어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화장기가 분명 있긴 하지만 저건 화장이 문제가 아니라 본판 자체가 아름다운 남자다. 이쯤 되니 맨얼굴까지 궁금했다.

그러던 와중에 두 사람이 자세를 바꿨다.

진환이 소파에 아예 바르게 누웠고, 다른 남자가 그 배 위에 올라탔다. 진환이 그의 가디건을 살짝 내려 팔에 걸치게 했고, 셔츠의 단추를 두 개 풀어내어 쇄골을 노출시켰다. 그러면서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진환의 위에 올라타 그가 하는 것을 가만히 받아 주고 있던 남자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클라이언트 여성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미친…….’

여성은 제 영혼이 송두리째 잡아먹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몸을 떨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길 수가 있을까.

눈동자는 렌즈를 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수에 차 있었고, 눈매는 한없이 농염해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가 먼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면 아마 제정신을 차리는 데에만 한참이 걸렸을 것이다.

여성은 저도 모르게 콧대를 꾹꾹 눌러 댔다.

‘진짜 코피 쏟겠어.’

단언했다.

저 모델에겐 여태껏 보았던 그 어떤 연예인, 그 어떤 모델보다도 독보적인 매력이 있었다.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런 매력이.

여성 클라이언트가 은율을 그리도 마음에 들어 하며 눈을 빛내고 있을 때, 진환은 정작 죽을 맛이었다. 은율이 제 배 위에 올라타 있는데도 이성을 자제해야만 하다니. 다양한 연기 생활로 인내심이 다져지지 않았다면 큰일을 치를 뻔했다.

진환은 제 위에 올라타 나른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는 은율을 올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건 정말 팔색조가 따로 없다. 눈동냥으로 배운 메이크업 기술을 써먹어 봤는데, 이렇게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다. 눈 위주로 메이크업을 하고 피부톤을 창백함에 가깝게 바꿨더니 ‘이유건’이 되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유건일 때 늘씬한 몸매에 카리스마 있는 무뚝뚝한 캐릭터였다면, 지금의 그는 조금만 세게 끌어안아도 부서질 것처럼 연약하고 나른한 캐릭터였다. 진환은 제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그의 현재 모습 어디에서도 ‘이유건’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 정말 같이 연기하고 싶다.’

이런 화보 촬영의 모델 연기가 아닌, 대사를 주고받고 감정이 부딪치는 진짜 연기를.

그와 정극 연기를 하는 상상을 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났다. 은율이 그런 그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눈이 마주친 진환이 손을 뻗어 은율의 볼을 매만졌다.

“왜?”

웃는 낯으로 물었지만 은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볼에 올라온 그의 손을 제 손으로 덮을 뿐.

사진작가가 그 과정을 신이 나서 찍어 댔다. 그는 이미 두 사람이 남자라는 것도 잊고 홀린 듯이 이리저리 찍기 바빴다.

소파에서의 촬영이 끝나고, 이번엔 밝은 배경의 호리존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소품도 배경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새하얀 배경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두 사람의 포즈와 표정, 분위기다.

사진작가는 이제 아예 포즈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길 기다려 줄 뿐이다.

진환은 과감하게 은율의 허리를 왼팔 하나로 끌어안았다. 그의 얇은 허리가 진환의 팔뚝에 착 감겨들었다.

은율은 진환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그의 왼쪽 어깨에 제 오른팔을 쭉 뻗고는 팔꿈치를 걸쳤다. 그 상태로 왼손으론 제 허리를 감은 진환의 왼손을 자연스레 덮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비스듬히 눕혀 카메라를 바라본다.

진환은 한술 더 떠서 오른손 끝으로 은율의 턱을 들 듯이 받친다. 그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은 은율의 붉은 입술.

두 사람의 포즈에 좌중이 단체로 숨을 죽였다. 뇌쇄적인 두 사람의 모습에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소리만 울렸다.

사진작가는 떨리는 손으로 두 사람의 모습을 파인더에 담았다. 찍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저 섹시한 배우의 눈동자엔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파인더를 통해 보고 있음에도 제 영혼이 그 눈동자에 통째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누구도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은 고요한 촬영이 금세 끝이 났다.

진환은 은율의 흐트러진 옷을 손수 여며 주고서 사진작가에게 다가갔다. 그는 오늘 촬영분을 컴퓨터로 옮겨 모니터로 크게 띄워 놓은 상태였다. 사진작가는 두 사람에게 사진을 하나씩 하나씩 보여 주었다.

그것을 보던 진환의 얼굴이 점점 딱딱해져 갔다. 그것을 알아본 사진작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왜? 사진이 너무 별로인가?”

그가 보기에는 심각할 정도로 잘 나왔다.

“아뇨, 사진이 너무 잘 나와서요.”

그리고 그건 진환도 동의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은율의 저런 모습이 잡지에 실린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모두 은율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옆의 은율을 보니,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변화 없는 얼굴이다. 직접 찍힌 사진까지 봤는데도 그다지 감흥이 없어 보였다.

두 사람에게 클라이언트 여성이 다가와 눈을 반짝였다.

“옆의 모델분 소개 좀 해 주겠어요, 이진환 씨?”

처음엔 묻지도 않더니 촬영이 끝나고 나니까 얼른 다가와 묻는다. 은율을 향한 그녀의 집요한 시선을 진환이 제 몸을 끼워 넣어 막아 냈다.

“정식 모델이 아닌 일반인입니다. 그래서 소개하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일반인이라고?!”

“정말이에요?!”

사진작가와 여성이 세트로 놀라 외쳤다. 그들은 은율이 영락없이 전문 모델인 줄로만 알았다. 모델도 아닌 일반인이 그런 퇴폐미 가득한 표정과 포즈로도 모자라 분위기까지 후끈하게 만들어 냈다고? 그것은 유명 연예인들도, 웬만한 모델들도 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섹시함을 퍼뜨리는 이가 어디 흔하던가.

“이것 참, 어디서 대단한 원석을 데려왔구만. 그래, 이름은 뭔가? 이후로도 모델 할 생각은 있고?”

“비밀입니다.”

진환이 단호하게 말했다.

“사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데려온 파트너를 함께 찍게 된다면 그에 대해선 묻지 않기로.”

“그건 그렇지만…….”

사진작가가 아쉬운 듯 말끝을 흐렸다. 자꾸만 진환의 뒤에 서 있는 저 청년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잡지에 실을 때 이름 정도는 써야 하지 않겠나?”

“그것도 비밀로 해 주시죠. 부끄러움이 많은 친구라서요.”

그렇게 말하며 클라이언트 여성을 바라보았다.

“지금 입은 의상 두 벌은 제 쪽에서 구매하겠습니다. 매니저 통해서 대금 처리될 겁니다.”

촬영용으로 협찬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의상을 그 자리에서 구매하겠다니. 여성은 진환이 자신의 브랜드 의상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실제로 화보 촬영을 진행하면서 촬영 의상이 마음에 들 경우엔 그것을 현장에서 바로 구매해 입고 돌아가는 연예인들도 상당히 많았다.

진환은 기분 좋게 히죽거리는 여성과 사진작가에게 간단히 인사하고는, 은율의 팔을 잡아 연우에게로 다가갔다. 연우는 붉어진 얼굴 가득 미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아니…… 형도 참 대단하다 싶어서요.”

“뭐가?”

“……아니에요.”

연우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거 의상 구매하기로 했으니까 이따가 저쪽 클라이언트에게 대금 확인해서 지불해. 그리고 차 키 내놓고 밥 먹고 와.”

“예?”

마지막 말에 진환을 바라보았다. 그는 뭔가 초조한 얼굴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차 키 나 주고, 천천히 밥 먹고 오라고.”

“그럼 형이랑 은율 씨는요?”

“우린 할 일 있으니까 먼저 먹고 와. 너 오면 나중에 먹으러 갈게.”

연우는 의아했지만 곧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차 키를 내주었다. 진환은 그에게 천천히 식사를 하고 오되, 도착 10분 전에는 꼭 연락하라고 일렀다. 연우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으며 왜냐고 물으려 했지만, 진환의 얼굴을 보아하니 그랬다간 욕이라도 한 사발 먹게 될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

진환은 다소 급한 속도로 은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알아볼 새도 없이 건물 뒤로 빠르게 걸어, 차 키로 밴의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은율을 밀어 넣고 자신도 올라타 문을 닫아 잠근다.

“율아.”

은율이 창가 좌석에 앉아 나른한 눈으로 진환을 바라본다. 진환은 이를 꽉 깨물며 은율의 다리 사이에 자신의 오른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는 좌석의 등받이를 잡아 몸을 기울였다. 그 상태로 은율에게 돌진해 입술을 맞댔다.

“흡…….”

진환이 은율의 입술을 탐하다, 제 혀를 집어넣어 그의 말캉한 혀를 잡아끌었다. 자연스레 신음이 흘러나오고, 은율의 허리가 살짝 휘어들었다. 진환은 그의 뒷머리를 오른손으로 붙잡아 급하게 키스를 퍼부었다.

“흐읏…… 형…….”

연기하던 캐릭터에서 벗어난 은율이 진환의 가슴팍을 두 손으로 살짝 밀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급한 키스로 인한 헐떡거림이 너무도 색스러워, 진환은 다시 제 입술을 맞대려 했다. 은율이 그의 가슴팍을 좀 더 세게 밀어냈다.

“갑자기 뭐예요.”

은율이 부끄러움을 담은 눈으로 진환을 노려보았다. 진환이 제 입가에 묻은 은율의 타액을 혀로 핥아 올리며 가디건을 벗어 던졌다.

“율아, 지금 형이 무지하게 미칠 것 같거든?”

“왜, 왜요?”

은율이 겁먹은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진환이 대답 없이 앞좌석으로 가서는 차 키를 꽂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튼다. 뒷좌석이 급속도로 시원해졌다.

은율이 전투적인 모습의 진환을 사색이 되어 진정시킨다.

“형, 진정해요. 일단 옷 갈아입고 화장도 지우고 또……!”

“나 진정이란 거 할 줄 모른다니까?”

진환이 씩 웃으며 은율의 손등을 잡아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었다.

진환은 은율의 의자를 조작해 그를 홱 눕혀 버렸다. 단숨에 차창을 보고 눕게 된 은율이 놀란 토끼 눈을 하며 제 위에 올라탄 진환을 올려다보았다.

“하아…… 율아…….”

짐승의 달뜬 숨소리가 은율의 귀를 간질였다.

진환은 은율에게 키스를 퍼부으며 한 팔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좌석에서 가볍게 몸이 뜬다. 진환은 은율이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깊이 키스를 해 대며 남아 있는 다른 손을 동원해 그의 가디건을 벗겨 차 바닥에 내던졌다. 이젠 그를 좌석에 조심히 내려놓고서 두 손으로 보지도 않고 셔츠 단추를 풀어냈다. 은율은 예상대로 진환의 키스에 빠져 무아지경 상태였다.

셔츠의 단추를 벗겨 내고 단숨에 은율의 가슴팍을 콱 잡았다.

“흡!”

은율이 깜짝 놀라 눈을 치켜떴다. 진환이 그와 눈을 마주치며 눈꼬리를 휘었다.

“흐음-! 읏-! 읍!”

진환의 손이 납작하고 탄탄한 가슴팍을 주물러 대다 유두를 간질였다. 손톱으로 살살 긁어 주니 몸을 비틀어 대는 게 귀여웠다. 손가락 사이에 유두를 넣고 꾹꾹 조였다 풀었다 하니 신음 소리와 함께 뜨거운 숨이 넘어왔다.

“율아…….”

으르렁대듯 말하며 은율의 아랫입술을 쪽 빨아들였다 놓았다. 안 그래도 붉은 입술이 약간 도톰하게 붓고 더 빨갛게 물들어 갔다.

“형, 소, 손…….”

은율이 진환에게 애원한다. 진환은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장난스럽게 유두를 괴롭혔다. 긁고, 꼬집고, 누르고, 비비고.

“응? 손이 왜?”

“하으으-! 형, 아, 안……! 흐읏-!”

은율이 약하게 말아 쥔 주먹을 제 입가에 대고는 신음을 삼켰다. 진환이 한 손으로는 그의 유두를 괴롭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셔츠의 단추를 빠르게 풀어냈다. 은율이 떨리는 눈으로 진환을 바라보니, 그의 아랫도리 앞섶이 벌써 두툼하게 부풀어 있었다.

셔츠 단추를 다 풀어낸 진환이 그 손으로 은율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형! 여기, 여기 차 안입니다!”

“알아.”

은율의 바지 버클을 푼 진환이 지퍼까지 내려 버렸다. 화장 때문에 창백하던 은율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아니, 알기는 뭘 알아요?! 지금 차 안에서 설마……!”

진환이 섹시하게 미소 지으며 바지에 닿아 있던 손을 은율의 속옷 안으로 쑥 넣었다.

“설마…… 뭐?”

“히익!”

진환의 서늘한 손이 속옷 안에서 성기를 콱 잡았다. 달아올라 반쯤 서 있던 성기가 재깍 반응했다.

“형, 흐읏……! 왜, 왜…….”

은율의 눈가가 벌써 촉촉해졌다. 진환은 그의 성기가 생각보다 빨리 반응하는 것을 보며 제 입술을 핥아 댔다.

“율아, 왜 이렇게 금방 흥분해?”

“그, 그거야, 형이……! 흐읏……!”

“차에서 한다고 생각하니까 기분 좋아? 흥분돼?”

은율이 진환을 노려보았다. 꼭 이럴 때 놀려 대기는.

“자꾸 그러면…… 흐으…… 진짜 때려 줄…… 흐읏!”

헐떡이는 은율을 보며 진환이 그의 입술에 짧게 입맞춤했다. 그러면서도 은율의 성기를 주무르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미안해. 형이 너무 흥분돼서 그랬어.”

다정하게 사과해 주니 금세 표정이 풀린다. 진환은 그런 은율이 사랑스럽고 귀여워, 몇 번의 짧은 키스를 해 대었다.

진환은 은율의 성기에서 손을 떼고 그의 바지를 벗겼다. 갑자기 닥쳐 오는 시원함에 은율이 잘게 떨었다. 진환은 그의 바지를 벗겨 옆자리에 던져 놓고는 속옷과 양말, 신발까지 빠르게 벗겨 버렸다. 순식간에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알몸이 된 은율이 다리를 모아 웅크리며 얼굴만 붉혀 댔다.

진환이 은율의 왼쪽으로 쏠린 앞머리를 쓸어 넘겨 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생각도 못 한 거라 젤이 없는데.”

은율이 시선을 피했다.

“그, 그럼 못 하겠네요.”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휩쓸리긴 했지만 은율은 아직도 차 안에서 섹스를 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선팅이 되어 있다곤 하지만 누군가 지나가다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혹시라도 연우가 오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 좁은 공간이라 몸이 자유롭지 않아 겁도 났다.

그러던 차에 젤이 없다고 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걸 빌미로 상황을 정리하면…….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쓰려고.”

다른 방법?

은율이 눈으로 그 방법이 뭐냐고 물었다. 진환은 대답 없이 씩 웃었다.

“대신 율이가 도와줘야 해.”

겁부터 났다.

진환은 은율의 두 다리를 벌려 올렸다. 은율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진환이 제지했다.

“그대로 누워서 여기 허벅지 좀 잡고 있어 봐.”

은율은 얼결에 그가 말한 것처럼 무릎 위 허벅지 부분을 잡았다. 졸지에 양다리를 벌린 채 번쩍 든 자세가 되니, 민망함이 훅 밀려왔다. 진환이 그의 허리를 잡아 좌석 끝에 엉덩이가 걸치게끔 잡아당겼다.

“형, 이게 무슨 자세……예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제 고환과 회음부, 뒤쪽 구멍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진환이 그의 둔부 앞에 무릎을 꿇고서 두 손으로 그의 엉덩이를 잡았다.

“혀, 형…?”

은율이 불안하게 물었다. 제 아래쪽에 무릎을 꿇고 있어서 진환의 머리카락만 살짝살짝 보일 뿐,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언제까지 이 상태로 있어야 하나 싶어 진환을 다시금 부르려 할 때였다.

“흣-!”

구멍 입구를 따끈하고 말캉한 것이 훑고 지나갔다. 찌릿하는 감각이 전신에 퍼졌다. 그 따끈하고 말캉한 것이 다시금 제 구멍을 핥아 대기 시작했다.

“하읏-! 혀, 형, 뭐 하는……! 흐윽-! 거긴…… 거긴 안……! 핫-!”

조심스레 핥아 대던 혀가 점점 과격해진다. 혀끝으로 주름을 세세하게 핥아 대는가 하면, 그 안으로 침투라도 하려는 것처럼 힘을 주어 찔러 들어간다. 입구를 아래위로 강하게 핥아 대고, 입술을 대어 깊이 흡입한 후 혀끝으로 유린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은율은 이게 무슨 감각인가 싶어 벌벌 떨었다. 처음 겪는 제 구멍의 쾌감이 전신을 파도처럼 휩쓸고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하읏! 흐응-! 형, 그마안-! 핫-! 거긴, 흡! 더, 더러워요! 흐읏!”

진환의 것이 들락날락할 때는 그저 쓸리기만 하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 입구가 격한 쾌감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곳을 진환이 입으로, 혀로 애무하고 있는 것이다. 쾌감과 부끄러움이 함께 요동치니 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진환이 살살 풀려 가는 은율의 구멍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자신의 타액으로 축축해진 입구가 조금씩 뻐끔거렸다.

은율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며 처음에 쳐들었던 것보다 반쯤 내려와 있다. 진환이 구멍 아래에서부터 회음부까지 질척하게 핥아 올리며 주의를 주었다.

“다리 제대로 들고 있어야지, 율아.”

“그, 그치만……. 흐읏-!”

진환이 그 안으로 오른손 검지를 넣었다. 입구에 묻은 타액 덕분에 무리 없이 쉬이 들어갔다.

“제대로 안 들면 기분 좋은 곳 못 찔러.”

은율이 몸을 떨며 진환을 보려 애를 썼으나, 보이는 건 그의 머리카락밖에 없었다. 은율이 울상이 되어 몸을 틀어 댔다. 진환이 왼손으로 은율의 엉덩이를 꽉 잡아 못 움직이게 했다. 그러고선 중지를 밀어 넣는다.

“읏…….”

손가락이 두 개 들어가니 약간 괴로운 신음을 내뱉는다. 벌써부터 구멍이 빡빡하게 조여 들었다. 제 큰 것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역시 그의 전립선을 자극해 풀어 둘 필요가 있었다. 진환은 일부러 애꿎은 그곳 근처만 찌르며 몸을 살짝 일으켜 은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은율의 촉촉한 눈동자가 진환을 원망하듯 바라보았다.

“율아, 아픈 거 싫잖아. 그렇지?”

은율이 머뭇거리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진환이 왼손으로 은율의 오른쪽 다리를 높이 치켜들게 해서 그의 몸쪽으로 밀어주었다.

“그럼 잘 잡고 있어야 해. 알았지? 금방 기분 좋게 해 줄게.”

은율이 몸을 떨며 제 두 다리를 단단히 붙잡아 당겼다.

“착하다.”

진환이 부드럽게 웃으며 칭찬했다. 그가 다시 은율의 구멍에 시선을 두었다. 구멍에 삼켜진 두 손가락이 조심스레 움직였다.

“흐앗-!”

곧바로 전립선을 건드려 주자 은율이 머리를 젖히며 격렬히 반응해 왔다. 진환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찔러 댔다.

“핫-! 흐응! 읏-! 하아아-! 핫-! 흐앗-!”

은율의 안쪽이 꽉꽉 조여 들며 반응했다. 은율은 정신없이 반응하며 신음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제 두 다리를 잡은 손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라도 잡지 않으면 이 쾌감을 버텨 낼 수 없다는 듯, 단단히 잡아 지탱하고 있었다.

진환은 격렬히 반응하는 은율을 보며 다른 한 손으로 제 바지의 허리띠를 풀어냈다.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리는 동안에도 은율의 그곳을 찔러 대는 손은 속도를 더하면 더했지, 결코 느려지지 않았다.

“흐아아-! 핫-! 혀, 형! 흐읏-! 나아- 싸, 쌀 것 같-! 흐읏-!”

바지 앞섶을 열고 속옷을 살짝 내려 제 것을 꺼낸 진환이 다른 손으로 은율의 성기를 잡았다.

“하응!”

성기를 잡은 손길에 은율이 몸을 뒤틀었다. 진환은 성기 입구를 엄지로 꾹 막고서 그 손에 힘을 주었다. 덕분에 절정감이 차오르던 은율이 괴로운 듯 진환을 바라본다.

“왜애……. 싸, 쌀 것 같았……는데…….”

“아직은 안 돼, 율아. 지금 싸면 힘들어.”

“흐읏…… 그치만……! 하악-!”

진환의 손가락이 세 개가 되어 그곳을 또 한 번 찔렀다. 은율의 성기가 크게 꿈틀했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은율은 제 성기를 세게 잡은 진환의 손 때문에 절정에 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싸고 싶은데 성기가 단단히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싫어어……. 놔, 놔줘요……. 흐읏-! 하아-!”

“조금만, 조금만 더, 율아. 아직 덜 풀렸어.”

진환의 손가락 세 개가 빠르게 움직여 댔다. 그럴 때마다 은율의 두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교태스러운 신음은 높아져만 갔다. 하도 신음을 질러 대니, 입가에서 타액이 길게 흘러내리기까지 했다.

“아-! 하앗-! 손 놔줘-! 흐응-! 히, 힘들……! 흐앗-!”

쾌감은 계속되었지만 사정을 못 하니 괴롭기만 했다. 은율은 눈가에서 눈물까지 흘려 대며 고개를 도리질했다. 진환은 그 모습을 보며 안쓰럽기도 했지만, 가학심이 들기도 했다. 쾌감과 괴로움에 동시에 절어 있는 은율의 얼굴은 실로 섹시함의 극치였다.

진환이 웃는 낯으로 전율했다.

‘이젠 내가 안 되겠다.’

좀 더 버텨 보려 했지만, 당장 손도 대지 않아도 사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환은 은율의 그곳에서 손을 빼고서 제 성기를 입구에 비벼 댔다. 은율의 약간 벌어진 구멍이 자꾸만 빠끔거렸다.

“흐읏…… 흣……. 흐아앗-!”

숨을 고르던 은율은 제 안을 가르고 들어온 커다란 것에 허리를 휘며 반응했다. 진환은 은율의 성기를 한 손으로 붙잡은 상태 그대로 자신의 것을 깊이 밀어 넣었다.

은율이 숨넘어갈 것처럼 헉헉거렸다. 진환이 성기를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단단히 감아 붙들었다. 그제야 다리를 잡고 있던 은율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진환이 그 상태로 은율의 전립선을 깊이 찔러 댔다.

“앗-! 하응-! 읏! 하앗-!”

은율의 교성이 귀를 자극했다. 진환은 제 것이 급속도로 부풀어 대는 것을 느끼며 엉덩이에 힘을 주어 팍팍 쳐올려 댔다. 그때마다 은율은 자지러졌고, 눈에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 댔다. 사정을 막고 있어서인지, 구멍 안쪽이 꽉꽉 조여 들었다.

은율이 제 것을 잡고 있는 진환의 손을 두 손으로 떼어 내려 했다. 통째로 흔들리는 통에, 손가락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흐읏! 형, 소, 손……! 흐앗-! 싸고 싶……어어……! 흐읏-!”

“아직이야, 율아. 조금만 더.”

“흐아-! 앗! 제발…! 혀엉! 흐읏!”

은율이 울며 애원했다. 쾌감은 자꾸만 밀려오는데 사정을 하질 못하니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진환은 잔뜩 풀린 은율의 눈을 보며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싸게 해 줘, 율아?”

“흐읏! 응-! 싸게…… 싸게 해 줘어……! 흐읏! 하아-!”

싸게 해 달라 애원하는 은율을 보며 진환은 제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빠른 추삽질은 멈추질 않았다.

“그럼 사랑한다고 해 줘, 율아.”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율이 아련한 눈으로 진환을 바라보며 헐떡였다.

“하아…… 사랑해, 형…….”

순간 진환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번쩍하는 쾌감을 느꼈다. 자제하던 아랫도리가 토정하려는 그 순간, 재빠르게 꺼내어 입구가 은율의 배를 향하게 했다. 오른손으로는 자신의 것을, 왼손으로는 은율의 것을 가볍게 풀어 문질렀다. 그러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두 개의 성기가 토정하기 시작했다.

“아앗-!”

“흣……!”

새하얀 두 종류의 정액이 은율의 배에 흩뿌려졌다. 진환이 헐떡이며 제 것의 정액을 전부 짜내는 동안, 은율의 것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진환이 나른한 얼굴로 은율의 얼굴을 내려다보니, 그는 거의 탈진 수준이 된 얼굴로 움찔거리고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은율의 사정이 멈추었다.

정신을 차린 진환이 얼른 물티슈를 챙겨 와 그의 배와 성기에 묻은 정액을 꼼꼼히 닦아 주었다.

“흑……. 형, 나빴어…….”

은율이 흐느꼈다. 진환은 미안한 마음에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부드럽게 키스해 주었다.

“미안해.”

그렇게 말하며 눈가에 번진 아이라인 자리에도 입술을 내렸다.

*  *  *

은율이 바르게 세운 좌석에 앉아 눈을 사르르 감았다. 아이라인과 섀도가 약간 번진 흔적이 있긴 했지만, 고작 그 정도로 은율의 미모가 가려지진 않았다. 오히려 거뭇한 눈물 자국이 색정적으로 보였다.

머리 집게로 쏟아진 앞머리를 전부 올려 고정하니, 화장기 있는 은율의 얼굴이 시원하게 드러났다. 진환은 한 손에 아이리무버 티슈를 든 채 얼굴을 굳혔다. 조금 전에 한 판 했거늘 또다시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너무 예뻐도 문제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이리무버 티슈로 은율의 눈가부터 아프지 않게 살살 누르며 조심스레 닦아 주었다. 은율은 눈가를 문대는 그 손길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왜?”

진환이 은율의 입가에 뜬 미소를 보고는 물었다.

“뭔가 신기해서요.”

“신기해?”

은율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 말했다.

“형 만나고부터는 정말 새로운 일투성이예요. 제가 언제 이렇게 화장도 해 보고 화보 촬영도 해 보겠어요.”

“앞으로 많이 하게 될 건데.”

진환이 낮게 웃으며, 말끔해진 은율의 눈꺼풀 위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은율이 눈썹을 잘게 떨며 눈을 떴다.

“그래도 아직 걱정돼요. 제가 정말 잘할 수 있을지……. 오늘도 형이 이끌어 주지 않으셨으면 찍을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무슨 소리야. 넌 이미 잘하고 있어. 오늘만 해도 네가 없었으면 촬영만 길어지고 사진도 제대로 못 건졌을 거야. 어쩌면 다음에 재촬영을 해야 할 수도 있었어.”

진환이 은율의 귀를 쓸어 주며 웃었다.

“다 네 덕분이야.”

그렇게까지 말하니 괜히 부끄러워져, 은율은 눈을 내리깔고 얼굴을 붉혔다.

“제가 정말 도움이 되긴 했어요?”

진환이 클렌징티슈를 한 장 뽑아 들고 와서는 싱긋 웃었다.

“그럼. 아마 이번에 잡지 나가고 나면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뭐, 네 데뷔를 위해서도 아주 좋은 기회였고.”

은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환은 그런 은율의 얼굴을 클렌징티슈로 살살 닦아 주었다.

“오늘 촬영한 브랜드는 꽤 유명하기도 하지만 화보 모델도 일류급 아니면 안 쓰기로 이름 나 있어. 그런 곳에 실렸는데 사람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지. 저번 ‘이유건’ 때처럼 아마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게 될 거야.”

그러면서 씩 웃는다.

“율이라면 어떤 싸구려 브랜드 화보라도 화제가 되겠지만.”

“말도 안 돼요. 제가 무슨…….”

“자신감을 가져, 율아.”

클렌징티슈로 얼굴의 화장기를 모두 지워 낸 진환이 그의 두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 상태로 은율의 맨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본다. 화장을 지워 낸 맨얼굴임에도 이건 이것대로 순수하고 청초한 인상이다. 본판이 워낙 화려해서 그런지, 화장한 모습보다는 역시 이런 맨얼굴이 더 예뻐 보였다.

“넌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야. 형이 보증할게.”

진지한 얼굴로 두 손을 붙잡고 얘기하니, 은율이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진환이 그런 은율을 제 품에 안고서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때 진환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꺼내서 확인해보니 연우였다. 그는 착실하게 도착 10분 전이라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연우 10분 뒤에 도착한대.”

은율이 화들짝 놀랐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당황했다. 사실 그는, 촬영 때 입었던 와이셔츠에 속옷만 입은 상태로 좌석에 앉아 있었다.

진환이 낮게 웃으며 그의 평상복을 가져왔다. 은율은 입고 있던 셔츠의 단추를 풀어내며 그것을 홱 벗어 버렸다. 진환이 갑자기 얼굴을 굳히며 엄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아무 데서나 그렇게 훌렁훌렁 벗으면 안 돼. 알았지?”

“예?”

은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환이 한숨을 내쉬며 은율의 상체에 직접 반팔 셔츠를 입혀 주었다.

“넌 이제 내 거니까, 아무 데서나 옷 벗고 맨몸 보여 주고 하는 거 아니라고.”

“하지만 스턴트 일을 하다 보면…….”

“몰래 갈아입어, 몰래. 절대 몸 보여 주면 안 돼. 알았지?”

은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율아, 넌 누구 거라고?”

“형 거요.”

진환이 기분 좋게 웃으며 은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착하네.”

“형도 조심하세요.”

은율이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작게 속삭였다.

“형은…… 제 거니까…….”

자기가 말해 놓고도 부끄러운 건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말을 삼킨다. 진환은 그게 너무 귀여워서 은율을 단숨에 꽉 안아 버렸다.

“예뻐 죽겠네.”

“자, 잠깐, 형! 저 연우 씨 오기 전에 바지 입어야 해요!”

“그래그래, 내가 입혀 줄게. 자, 다리 들어 봐.”

“우악! 형, 갑자기 그렇게 들어 올리면……!”

발목을 잡혀 갑자기 다리가 들어 올려지자, 엉덩이가 미끄러져 좌석 끄트머리에 닿았다. 진환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그 다리를 제 팔에 걸치고는 은율에게 몸을 가까이한다. 은율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천천히 식사를 끝내고 일부러 근처까지 한 바퀴 돌고 돌아온 연우는 스튜디오 뒤편에 주차된 밴을 바라보았다. 건물 전용 주차장이라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연우는 혹시 몰라 진환에게 메시지를 다시 보냈다.

[형, 저 들어가도 돼요?]

혹시라도 제가 상상하는 그런 일을 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다행히 진환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응?”

보자마자 진환이 보낸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의아해하며 밴으로 걸어가 차 문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훤하니 올린 앞머리를 집게로 고정한 은율이 기다렸다는 듯 밝게 웃는다. 연우는 순간 그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은율의 손에는 진환의 것이 분명한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예에. 저, 진환이 형은……?”

은율이 민망한 얼굴로 제 볼을 긁적였다. 그가 살짝 눈을 굴려 한곳을 힐끔거렸다. 연우가 밴에 오르며 그를 따라 눈을 돌렸다.

“어…… 형, 살아 계신 거죠?”

뒷좌석에 진환이 반쯤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제 명치를 잡은 채 고통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눈을 가늘게 흘기며 으르렁댔다.

“살아 있으니까 신경 꺼.”

“예, 무슨 일이냐고 안 물어볼게요.”

보나마나 덮치다가 한 대 맞았겠지, 뭐. 이젠 보지 않아도 쉬이 예상이 갔다.

연우는 진환을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형, 방금 연락 왔는데, 로케 장소가 바뀌어서 바로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요.”

스튜디오에서의 촬영이 늦어지는 바람에 꽤 넉넉하던 여유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그 상태로 로케마저 더 먼 곳으로 변경된 탓에 예상보다 시간이 빠듯했다.

진환이 한 손으로 명치를 짚은 채 몸을 바르게 했다.

“안 돼. 율이 배고파.”

“전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배고픈 거로 하자. 여하튼 그래서 안 돼.”

연우의 얼굴에서 어이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은율이 얼른 진환을 구박했다.

“차라리 차 안에서 간단히 드실 만한 걸 사죠. 밥도 중요하지만 일도 당연히 중요하잖아요.”

얼굴을 훤히 드러내 놓고 눈에 쌍심지를 켜니, 진환이 움찔하다가 알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알았어, 출발해. 가는 길에 샌드위치 같은 거라도 좀 사자.”

진환이 앞 좌석으로 나와 앉으며 은율의 손을 잡았다.

“안 그래도 말랐는데 끼니라도 제때 챙겨 먹여야지.”

그러면서 은율을 그윽하게 바라본다. 연우가 한숨을 푹 내쉬며 밴 밖으로 나갔다.

“예예, 가는 길에 아주 넉넉하게 살 테니까 걱정 마세요, 형.”

연우는 괜히 울적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운전석에 올라탔다. 이럴 때만큼은 유학 간 제 여자 친구가 그리도 보고 싶어졌다.

‘지선아……. 오빠가 이러고 산다…….’

시큰거리는 눈가를 손끝으로 꾹꾹 누르며 차를 출발시켰다.

은율이 진환을 바라보며 곤란한 얼굴을 했다.

“형, 역시 전 돌아가는 게…….”

“왜? 할 일 많아?”

은율이 곤란한 얼굴로 눈을 굴렸다.

“그런 건 아니지만…… 갔다가 괜히 짐만 될 것 같고 신경 쓰입니다.”

“그렇지 않아. 전혀. 아, 오늘 감정 잡을 부분 많은데 네가 도와주면 되겠네.”

진환이 은율의 머리에 꽂혀 있는 핀들을 아프지 않게 제거해 주며 씩 웃었다.

“형 캐릭터가 오늘 상대한테 사랑 고백하거든.”

은율의 긴 앞머리를 손수 내려서 살살 빗겨 준다. 핀을 한동안 꽂아 줬음에도 워낙 부드러운 머리카락이라 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

“우리 율이 상대로 연습하면 굉-장히 잘할 것 같아. 형 좀 도와줄래?”

“대본 연습 때문이라면야…….”

은율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진환은 은율을 애정 하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의 이마가 있을 앞머리에 입술을 몇 번이고 내렸다.

“형, 블랙박스 있습니다.”

운전석에 있던 연우가 담담히 말했다. 은율이 퍼뜩 놀라며 진환을 밀어내지만, 그는 태연하기만 했다.

“이따 카드 넘겨. 포맷해서 줄게.”

“예, 꼭 그래 주세요.”

-다음 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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