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4. ‘저’가 아닌 ‘나’ (18/33)

외전 4. ‘저’가 아닌 ‘나’

10월의 바람은 생각보다 후덥지근했다. 기록적인 더위를 기록한 올여름은 그 후폭풍으로 9월 한 달을 통째로 여름으로 만들었고, 10월 초인 지금까지도 바람에 약간의 더운 공기가 담겨 있었다.

일부러 바람이나 쐴까 해서 카페 발코니에 나와 자리를 잡았더니, 따끈한 공기 탓에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야만 했다. 여성용 검정 정장 재킷을 고이 접어 옆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두고 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베이지색 H라인 스커트에 흰 셔츠 차림이다 보니 혹여 지금 마시는 커피를 흘리기라도 했다간 아주 볼만한 모습이 될 거다. 커피 잔을 향해 뻗는 손이 괜히 조심스러워진다.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입에 머금은 찰나에, 테이블에 올려 둔 휴대폰이 짧게 신호음을 내었다.

[무슨 카페가 4층이나 되냐? 강희 너 몇 층?]

휴대폰 액정에 뜬 미리 보기 메시지를 본 강희가 짧게 답장을 적었다.

[4층.]

[바보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더니.]

[죽고 싶지, 지금?]

[죄송합니다. 살려 주세요.]

답장을 본 강희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내렸다. 곧 올라올 상대를 기다리며 그녀가 발코니에서 카페 안쪽 계단을 바라보았다. 곧 계단을 통해 올라온 한 남자의 스포츠머리를 보며 반가운 얼굴을 했다.

시원한 카페라테가 든 유리잔을 든 채 발코니에 발을 들인 기언은 강희를 보자마자 사정없이 눈을 깜빡여 댔다.

“이야, 김강희. 좀 세련되어졌긴 하다?”

“칭찬 맞지? 말투는 비꼬는 것 같은데.”

“그건 네 착각이고.”

기언이 강희가 앉은 테이블 쪽 의자를 하나 빼어 앉았다. 그가 편하게 다리를 꼬며 강희를 힐끔거렸다. 학교 다닐 때는 누가 봐도 공붓벌레처럼 보이는 답답한 캐주얼 차림이었는데, 지금은 ‘차가운 도시의 여자’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멋들어진 커리어우먼의 모습이었다.

“차림새 보니까 오늘도 일한 것 같은데, 할 만해?”

기언의 물음에 강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직 1년도 안 돼서 배울 것도, 할 것도 많아. 주말에도 열심히 해야지.”

“하여간 대단해요. 난 주말에는 절대 일 안 해.”

고개를 내저은 기언은 의자에 껄렁하게 늘어져 애꿎은 카페라테만 빨대로 쪽쪽 빨아 마셔 댔다.

강희는 그녀가 그렇게도 가고 싶어 하던 유명 자산운용 회사에 들어갔다. 경쟁률이 상당한 곳이었음에도 강희는 무리 없이 합격했고, 그녀는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신입답지 않게 벌써 회사의 중요 업무에 손을 대고 있었다. 윗선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강희는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만큼 빠르게 업무를 배워 나갔다.

‘성실한 건 여전하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그 속은 여전하다고 생각하며 기언이 피식 웃었다.

“저번에 면접 본 건 어떻게 됐어?”

강희가 찻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기언은 일전에 기존에 근무하던 회사가 맞지 않아 수습 기간에 사표를 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회사에서 나와 새로운 곳의 면접을 본 게 열흘 전이다.

기언이 반쯤 마신 카페라테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연락이 없다. 지금 다른 곳 더 찾아보고는 있는데, 마땅한 데가 없네.”

“그러게 그냥 우리 회사 오라니까.”

기언의 실력이라면 강희도 잘 아는 데다, 그녀의 회사에서도 마침 새 인원을 충원 중이다. 타이밍도 좋은데 기언은 당최 지원하려 하질 않는다.

“네 회사 좋은 건 알겠는데, 난 안 간다니까.”

‘너랑 비교될 거 뻔한데, 가고 싶겠냐.’

차마 속내를 터놓진 못하고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쉴 뿐이다.

그러던 두 사람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강희와 기언 둘 다 휴대폰을 집어 들고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둘 다 4층에 있어?]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글을 보며 두 사람 모두 작게 미소 지었다. 강희가 미소 띤 얼굴로 빠르게 키패드를 눌렀다.

[4층 발코니야. 어서 와.]

[커피 받아서 금방 올라갈게.]

그 답장을 보는 강희의 얼굴이 보기 좋게 밝아졌다. 기언이 강희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좋냐?”

강희가 얼른 미소를 지우며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그냥 오랜만에 보는 거니까 그렇지.”

“어련하시겠냐.”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구만.’

기언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하긴, 요즘 한창 히트 친 CF에 버젓이 그 얼굴이 들어가 있으니 보기 싫어도 아른거리겠지. 아니다, 그 얼굴로 CF를 찍어서 그게 히트가 된 건가.

기언은 아직도 홀로 짝사랑 중인 강희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그녀를 따라 카페 안쪽 계단을 바라보았다.

계단에서 머리만 보였을 땐 못 알아봤다. 검정 모자에 검정 마스크를 쓴 웬 남자네 할 뿐. 하지만 계단을 마저 올라와 그 늘씬하고 훤칠한 몸이 드러났을 땐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한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든 멋들어진 남자가 두 사람을 보고 눈가를 휘었다. 얼굴 중에서 고작 눈만 보일 뿐임에도 참 매력적인 눈웃음이었다.

발코니로 나온 그가 멍한 표정의 강희와 기언을 보며 마스크를 벗었다.

“오랜만이야. 다들 그새 많이 변했네?”

‘네가 할 소린 아닌 것 같은데.’

은율의 말에 강희와 기언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스크를 벗은 얼굴은 CF를 그대로 뚫고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매력적으로 아름다웠고, 피부는 이전보다 한층 더 보드랍고 탱탱해 보였다. 고급스럽고 시원해 보이는 하늘색의 슬림핏 와이셔츠에, 군데군데 찢어진 블랙진의 조합이 그의 늘씬한 몸매를 한층 부각해 주었다.

은율은 강희와 기언 사이에 있는 의자를 빼 앉고서 모자를 벗었다. 약간 짓눌리긴 했지만, 워낙 부드러운 머리카락인지라 그가 손으로 살짝 털었다 쓸어내리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모양이 잡혔다.

그러던 은율은 두 사람이 시선을 제게 고정한 채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들 봐?”

은율의 물음에 기언이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까 진짜 신기해서.”

“뭐가?”

“설마 네가 연예인이 되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 사실 난 네가 졸업하자마자 바로 회사 들어가서 펀드매니저 딱지 달 줄 알았어.”

대학 4년간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은율이다. 같은 과 사람들은 그가 그리도 숨겨 왔던 외견을 드러내고 대학의 독보적인 킹카로 유명세를 타던 그 순간에도, 잘나가는 펀드매니저가 될 거라고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12월의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과 동기들은, 아니 대학의 모든 이들은 그야말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BLESS의 메인 보컬 진태휘의 솔로곡 뮤직비디오가 전국적으로 크게 히트를 함과 동시에 그 뮤직비디오의 주연인 서은율이란 사람은 모든 인터넷 포털을 뜨겁게 달구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며칠이나 차지했던 것이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지하철 미남, 영화 <12>의 이름 없는 배우, 이진환의 파트너로 나왔던 몽환적인 모델, 그리고 진태휘의 솔로곡 뮤직비디오의 주연. 그 모두가 ‘서은율’이라는 한 남자였다는 것에 대학 동기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졸업식 날에는 또 어찌나 난리였는지 모른다. 은율의 졸업식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기자들이 가득 몰려오고, 그의 사인을 받기 위해 찾아온 외부인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의 소속사에서 사람을 보내 통제해 주지 않았다면 그날 은율은 졸업 사진 한 장 마음 편히 찍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기언의 시선이 퍽 조용해진 강희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은율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마음 접으라니까.’

가망 없는 짝사랑을 계속 마음에 품고 있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을 텐데.

은율이 웃는 낯으로 아메리카노에 꽂힌 빨대에 입을 대었다.

“나도 내가 연예인이 되어 있을 줄은 몰랐어. 그래도 그때 기언이 네가 해 준 말이 도움 많이 됐다.”

“응?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기언이 갸웃하며 물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결국 잘 해내고 인정도 받을 거라며. 하고 싶은 게 생겼으면 젊을 때 해 봐야 한다고.”

“……내가 그런 아저씨 같은 말을 했단 말이야?”

진지하게 되물으니 은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댔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 보라고도 했지. 그 덕에 나도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맙다.”

“잠깐, 너 그럼 그때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던 게 이거였어?”

은율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며 기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밝게 소리 내어 웃었다. 자신이 했던 별것 아닌 독려가 은율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게 꽤 가슴 간지러울 정도로 기분 좋았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이따 나 사인이나 해 줘라. 조카들이 내가 너랑 찍은 졸업식 사진 보더니 사인 받아다 달라고 난리다, 아주.”

“얼마든지.”

은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강희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한층 붉어진 얼굴로 흠칫 놀랐다.

“강희는 진짜 예뻐지고 멋있어졌네. 기언이는 그냥 한량 같은데.”

“야, 뭐가 어째?”

기언이 장난기를 섞어 으르렁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희는 수줍게 시선을 떨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고마워. 너도…… 멋있어.”

강희의 수줍음 가득한 말에 은율도 기언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기언이 은율의 귀에 속삭였다.

“여러 가지 의미로 쟤도 변하긴 했다.”

“그러게.”

이전에는 그래도 저렇게 수줍어하며 고맙다는 둥 멋있다는 둥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은율은 이전의 딱딱하고 도도하던 모습과 달리, 풋풋한 소녀 같은 느낌이 생긴 지금의 강희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는 워낙 포커페이스였던 터라 감정을 읽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표정이 상당히 많아졌다.

‘사회생활 덕분인가.’

확실히 대학 생활과 사회생활은 차이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점에서는 같을지 몰라도, 그 공기부터가 다르다. 각양각색의 인간관계의 최종편 같은 느낌이랄까.

그것은 은율 역시 느끼고 있는 바였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벌써 졸업 후 시간이 상당히 지났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던 그때, 은율의 휴대폰이 울렸다.

[도착했어?]

액정에 뜬 메시지를 본 은율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본 강희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상대가 은율의 애인이라는 것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린 강희의 손이 작게 주먹을 쥐었다.

그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은율은 그저 상대에게 답장하기 바빴다.

[지금 막 도착해서 만났습니다.]

[전화해도 돼?]

은율은 머뭇거렸다. 그가 강희와 기언에게 잠시 통화하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냥 여기서 해.”

강희가 새초롬하게 말했다.

“애인 연락 아냐?”

아까의 소녀 같던 여인은 어디 가고, 지금은 대학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딱딱한 강희만이 남아 있었다.

“우린 괜찮으니까 그냥 여기서 받아. 통화하기 힘든 내용이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괜찮아. 그냥 해.”

은율은 어쩔까 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전화를 받기로 했다. 두 사람에게 애인이 ‘남자’인 데다 톱배우인 ‘이진환’이라고는 도저히 밝힐 수가 없어 대충 연상의 여인이라고만 해 둔 상태다.

‘형이라고 부르지만 않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진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신호가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전화를 받는다.

-저번에 MT 갔던 곳에서 봤던 여자애랑, 나보다 먼저 친구가 되었다던 그 녀석이지?

“정확하시네요.”

일전에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해 준 적이 있었지만, 진환은 워낙 관심 없는 것에는 인색하다 보니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미지로나마 기억해 주는 게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설마 그 둘, 우리 율이한테 마음 있는 건 아니겠지? 여자애는 그때 우리 율이 좋아한다고 고백까지 했었잖아.

“그때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러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애들 아닙니다. 그냥 친한 친구들일 뿐이에요.”

은율의 말에 강희의 어깨가 움찔했다. 기언은 그런 그녀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얘기 끝나면 말해. 데리러 갈게.

“안 그러셔도 됩니다. 바쁘신데 뭘…….”

-데리러. 간다고. 꼭.

일부러 끊어 말하는 게 귀여워, 은율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하여간 질투는 어지간히도 한다.

“알겠습니다. 연락드릴게요.”

-응. 꼭이야, 꼭.

진환을 다독여 전화를 끊은 은율은 강희와 기언의 시선이 제게 쏠려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었다.

강희가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 말했다.

“별로 깊은 사이는 아닌가 봐?”

질투로 인한 독기가 서려 말이 꽤 날카로웠다. 기언이 놀란 눈으로 강희를 보았지만, 그녀는 은율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너 연장자 모두한테 그런 말투 쓰잖아.”

“아, 방금 통화한 애인도 연장자야.”

둔한 은율은 강희가 말에 날을 세웠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태연히 대답했다.

“그래. 그 애인도 그저 연장자일 뿐이지. 흔하디흔한 연장자.”

“흔한…… 연장자?”

은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그는 강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화하는 것만 들었는데도 둘이 얼마나 벽이 있는지 알 것 같아. 연인끼리의 대화가 아니라 그냥 연장자와 연하의 대화 같았어.”

“야, 김강희, 너 왜 그래?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래?”

보다 못한 기언이 작은 소리로 타박했지만, 강희는 그만할 생각이 없었다.

“서은율, 네가 뭐가 부족해서 동등한 연인 관계의 사람에게 그렇게 깍듯하게 말해? 그 사람이 무슨 네 주인님 같은 거라도 돼? 약점이라도 잡힌 건 아니지?”

그런 강희의 머릿속에 돈 많은 커리어우먼이 채찍을 들고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하니 정말 그런 사람과 사귀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는 떠오르는 신인 배우인데 감히 그런 은율을 누가 막 대한다는 말인가.

강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은율이 당황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약점 잡힌 것 없어. 이건 그냥 내가 별생각 없이 평소 말투대로…….”

그렇게 말하다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말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동급생이나 아랫사람에겐 상관없었지만, 연장자에겐 그저 습관대로 ‘다’나 ‘까’를 붙여 깍듯이 말하는 게 버릇이 되어 버렸다. 그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좋게 보일지라도, 연인 관계의 사람에게 하는 말투로는 부적절해 보이는 걸까.

은율이 약간 심각한 얼굴로 강희를 마주했다.

“내 말투가 좀 이상해?”

“응? 아, 아니, 이상하다기보다는…….”

질투 때문에 심통을 부린 것뿐인데 갑자기 진지하게 물어오니 되레 당황스러웠다.

“그냥 워낙 깍듯이 존대를 하니까 훨씬 나이 많은 연장자와 대화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래.”

강희가 고개를 돌려 은율의 시선을 피했다.

“연인끼린 좀 그런 거 있잖아. 나만 특별하다는 걸 느끼고 싶은…….”

그녀가 진지한 얼굴의 은율을 힐끔거렸다.

“그래서 뭐…… 그냥 너도 그 사람한테 별로 감흥 없는 건 아닌가 싶고, 그 사람도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해. 물론 그 사람이 네 존댓말을 좋아한다면 그걸로 된 거지만.”

심통을 부리던 강희는 어디 가고, 보이지 않는 식은땀을 흘리며 제 말을 수습하려는 이만 남았다.

은율은 강희의 말을 들으며 처음으로 제 말투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연인이라는 걸 처음 사귀어 보는 것이기도 하고, 애당초 말을 놓은 사이가 아니라면 ‘다’나 ‘까’를 쓰는 존댓말만 써 왔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타인에겐 벽을 세우는 말투처럼 들리는 걸까.

‘형도 그렇게 느낄까?’

진환은 한 번도 은율의 말투에 대해 지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진환이 은율에게 뭔가를 고쳐 달라 지적할 수나 있을까.

‘형은 아무 말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진환과 은율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딱히 문제될 것은 없지만, 혹시라도 진환이 그것을 신경 써서 한순간이라도 기분이 나빠질까 봐 걱정된다.

은율이 눈을 내리깔았다.

‘역시 내가 고쳐야겠지?’

은율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말투를 고쳐 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로지 진환을 위해서.

“강희야, 나 말투 바꾸는 것 좀 도와줘.”

*  *  *

번화가의 좁은 골목에 차를 대어 두고 은율을 기다리던 진환은 저 멀리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였는데, 진환은 그들의 가운데에 검은 모자와 검은 마스크를 쓴 이가 은율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당장 운전석을 열고 뛰어가 은율을 품에 안고 싶었다. 촬영 때문에 고작 이틀 못 봤을 뿐임에도 마치 두 달은 못 본 것만 같았다.

진환은 은율이 빨리 이쪽으로 와 주길 바라며 싱글대었다. 운전대에 두 손을 올리고서 손가락을 까딱이며 그를 보고 있던 그때, 진환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진환의 차를 가리키며 은율이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듦과 동시에 여자 쪽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은율을 꽉 안고는 그의 어깨 너머로 이쪽을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하…….”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선팅 때문에 이쪽이 자세히 보이진 않을 테지만, 누가 봐도 자신에게 경고하는 듯한 행위였다. 운전대를 붙잡은 진환의 손아귀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은율이 당황하며 여자를 조심히 떼어 놓았다. 여자는 싱글거리는 얼굴로 은율을 보다가 그의 모자 아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뭐가 묻은 것 같다고 둘러대는 모양이지만, 그런 짓을 하며 이쪽을 힐끗거리는 걸 보니 그 속내를 알 만했다.

은율은 그 여자와 구릿빛 피부의 건장한 남자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여자와 남자가 몸을 돌려 골목을 나서자 그제야 은율이 이쪽에 시선을 준다. 그러고선 이쪽으로 빠르게 걸어오는데, 그 드러난 눈이 진환을 향해 살짝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눈을 보자마자 조금 전의 화가 삽시간에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진환은 은율이 가까이 다가오자 조수석 쪽으로 몸을 기울여 손을 뻗어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은율이 냉큼 들어와 문을 닫고는 곧바로 진환의 오른손을 잡아 왔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냐, 별로.”

생글거리며 모자를 벗은 은율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 빗겨 주며 진환이 그의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나 빼고 노니까 재밌었어?”

“아뇨, 전혀요. 형 촬영 스케줄만 아니었으면 다 같이 보고 좋았을 텐데.”

“난 그런 애들 그다지 흥미 없어.”

심드렁하게 말하는 진환의 볼을 은율이 두 손으로 잡아 제게 향하게 했다.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불퉁거렸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내 절친한 친구들이에요. 이름 정도는 기억해 주고 너무 싫어하지 말아요.”

“나도 우리 율이 친구들이니까 얼굴 기억하고 있는 거야.”

새삼 아까의 장면이 떠올랐다. 보란 듯이 은율을 만지고 이쪽을 향해 눈을 흘기던 여자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다시금 질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까 그 여자는 뭐야? 왜 그렇게 질척거려?”

“질척거리다뇨? 그냥 친구 사이예요.”

“그걸 어떻게 믿어?”

“형은 나 못 믿어요?”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응…?”

뭔가 이상했다. 은율이 차에 탄 순간부터 어딘가 위화감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은율이 차에 타서 말하는 순간부터였다.

진환은 곧,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챘다.

“율아?”

“왜요, 형?”

“……무슨 일 있었어?”

“아뇨,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은율이 고개를 갸웃하며 진환의 얼굴을 잡았던 손을 내렸다. 진환이 그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의 얼굴이 꽤 심각하다.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갑자기 데리러 온다고 해서 화난 거야?”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진환이 눈을 굴리며 머릿속을 뒤적였다. 은율에게 뭔가 실수한 건 없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은율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무슨 소리냐니까요?”

“잠깐만, 지금 내가 너한테 잘못했을 것 같은 목록을 추려 보는 중이야.”

“형 잘못한 거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럴 리가 없어. 형이 뭘 잘못했는지 짚어서 말해 줄 수 있어? 너무 많은가? 아, 혹시 마지막 날에 너무 해 대서 울렸던 걸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거야? 그땐 율이 네가 너무 예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은율이 얼굴을 붉히며 질색했다.

진환이 다급함과 답답함을 섞어 언성을 높였다.

“그럼 말투가 왜 그래?!”

진환의 말에 은율이 움찔했다. 역시 이상했던 걸까.

은율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많이…… 이상합니까?”

그제야 진환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은율이 시무룩해하니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건 아닌데 갑자기 그러니까 당황해서…….”

진환이 한껏 당황한 표정으로 은율의 손을 부드럽게 매만져 댔다.

“얼굴 들어 봐, 율아.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그냥 형이 당황해서 그랬어.”

그제야 은율이 고개를 들고 진환과 시선을 마주했다. 아직도 은율의 얼굴은 시무룩하다.

“제 말투가 너무 딱딱하고 애정이 없습니까?”

“아니? 전혀. 오히려 귀여운데.”

“장난칠 기분 아닙니다.”

“장난 아니야.”

진환이 은율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었다.

“그런 말투도 율이 매력인걸.”

“그렇지만 너무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연장자면 누구에게든 이런 존댓말을 쓰니까 애인이 특별함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사실 진환은 은율의 말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은율의 말투가 특이한 건 맞지만 그것 나름의 매력이 있었고, 오히려 깍듯한 존대가 대우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진환은 은율의 말투를 제법 좋아하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막상 은율의 입에서 ‘특별함’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솔깃하기도 했다.

“그럼 형한테만 그런 말투 쓸 거야?”

약간 들뜬 진환의 목소리에 은율이 이마를 맞댄 채로 눈을 들어 그와 시선을 맞대었다.

“형한테만 반존대 할 거냐고.”

“……그럼 다른 사람 누구한테 반존대를 합니까?”

은율이 작게 미소 지었다.

“형이니까 특별하게 대하고 싶은 거죠. 제가 지금처럼 말하는 건 너무 딱딱하고 거리감 있어 보이잖아요.”

진환도 그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지금도 좋긴 한데, 듣고 보니 역시 나만 특별한 게 좋겠어.”

진환이 은율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며 애정을 표현했다.

“이런 애정 표현은 형이 할 테니까, 율이는 그럼 형을 위한 말투를 써 줘.”

“알겠습니다. 아니, 알겠어요.”

진환이 은율의 입에 짧게 버드키스를 했다.

“기왕이면 말을 놔도 좋고.”

“그건 안 됩…… 안 돼요. 너무 예의 없어 보이니까요.”

“아쉽네. 그래도 침대에선 자주 반말하니까…! 윽!”

참대에서의 은율을 상상하며 말을 뱉던 진환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은율의 주먹이 짧게 치고 지나간 명치가 아릿하다.

“형은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아요?”

“……너무해.”

아픈 척하며 몸을 웅크리고 있으니 은율의 얼굴에 금세 걱정이 서린다. 때리더라도 마음 약해서 그다지 아프게 내지르지도 못하면서 혹여 심하게 아픈가 싶어 걱정하는 게 귀여웠다. 실상 딱밤을 때린 수준의 짧은 통증이 다였는데.

“아팠어요? 그러게 왜 침대 얘기를 하고 그래요, 민망하게.”

은율이 멋쩍게 손을 뻗었다. 진환은 그 손이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잡아서 홱 끌어당겼다. 진환에게 끌려 상체가 기운 은율의 입술에 말캉한 혀가 닿았다. 진환은 은율의 입술을 혀로 핥더니 그대로 키스했다.

“흐읍…….”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라긴 했지만, 은율은 진환의 농염한 혀 놀림을 모두 받아 주었다. 진환의 혀가 은율의 혀를 뽑아낼 듯 빨아 당기다 놓아주고 그의 입천장을 두드리다 치열을 쓸었다. 그러다 얼굴을 비틀어 좀 더 깊이 혀를 집어넣었다. 깊이 들어간 혀가 은율의 혀뿌리 쪽을 이리저리 쳐 대고 감아 댔다. 그럴 때마다 은율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오고 입가에는 서로가 채 마시지 못한 타액이 길게 흘러내렸다.

진환은 은율의 눈동자가 보기 좋게 풀리는 것을 보며 그의 입술을 할짝거렸다.

“형을 그렇게도 특별하게 대하고 싶었어?”

진환의 질문에 은율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은율이 진환의 입에 쪽 입을 맞췄다.

“내가 형을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그런 형에게 쓰는 내 말투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애정 없어 보인다고 하니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알아요?”

진환의 목에 팔을 두른 은율이 그의 어깨에 머리를 대었다.

“혹시 형마저 그렇게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었어요. 말투 하나, 고작 그 사소한 것 하나 때문에 형이 오해할까 봐 걱정 많이 했어요.”

“그런 걸 왜 걱정해. 형이 그렇게 느낄 리가 없잖아.”

은율은 픽 웃었다.

그래, 형은 언제나 그랬지. 언제나 올곧게 사랑해 주고, 오로지 자신만 똑바로 바라봐 준다.

그래서 더 말투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형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걸 조금이나마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럼 앞으로는 그렇게 반존대 하는 거지? 날 위해서?”

“정확히는 날 위해서죠. 밖에서 할 수 있는 애정 표현이 이런 것뿐이니까요.”

2시간 가까이 반존대 강습을 들었던 덕인지 이제는 제법 입에 붙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막상 진환이 좋아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역시 이상한 거 아니에요? 건방져 보인다거나…….”

약간 걱정을 담아 물었다. 모처럼 강희와 기언의 도움을 받아 반존대 말투를 연습해 왔는데, 그가 불쾌해하면 괜히 연습한 꼴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시무룩해지려는 찰나, 진환이 은율을 조수석에 바짝 붙였다. 그러고선 깊이 키스하며 그의 바지 버클을 풀어내었다. 은율이 깜짝 놀라 입을 떼고서 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있는 진환의 손을 보았다.

“갑자기 뭡니…… 뭐예요?!”

당황해서 다시 존댓말이 나올 뻔했다.

“우리 율이 기특해서 예뻐해 주려고.”

“미쳤어요?! 지금 밖인데!”

“정확히는 선팅 진하게 되어 있는 차 안이지.”

은율은 제 바지 안으로 들어온 진환의 손을 두 손으로 붙들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인적이 그리 많지 않은 골목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진환의 손이 은율의 드로어즈 앞쪽을 매만져 대니 은율이 흠칫하며 눈가를 떨었다. 진환이 그의 목과 볼에 입을 맞추며 손을 움직여 댔다.

“혀, 형, 여긴 안 됩니다. 차라리 지, 집에 가서……!”

“말투 또 바뀌었어.”

“하지만…… 흐읏…….”

살살 문질러 대며 그 모양을 따라 손으로 훑으니 움찔대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진환이 그의 귀를 할짝이더니 낮게 속삭였다.

“형이 말투 바뀔 수 있게 도와줄게.”

“아, 안 도와줘도 됩니다……! 앗……!”

버릇처럼 존대가 나오니 진환의 손이 그의 것을 속옷째로 움켜쥐었다.

“또, 또. ‘다’나 ‘까’ 나오면 안 되잖아.”

“괴롭히지 마십…… 아니, 마, 말아요.”

은율은 진환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얼른 말을 바꿨다. 진환이 은율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은율은 제 입 안에 들어오던 혀가 금세 되돌아가는 것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진환이 그의 아랫입술을 엄지로 가볍게 쓸었다.

“율이 말하는 거 들어야 하니까 키스는 나중에 해야겠다.”

그렇게 말하더니 돌연 은율의 좌석 아래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은율의 좌석이 뒤로 홱 젖혀지고,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던 그 역시 졸지에 눕는 꼴이 되었다. 당황해서 상체를 일으키려는데, 진환이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잡아 못 일어나게 했다.

누워 있는 은율의 의문이 담긴 눈과, 한 손으로 그를 누르고 있는 진환의 장난기 담은 눈이 마주쳤다. 진환의 눈꼬리가 반달로 예쁘게 휘더니, 은율의 드로어즈를 쓸던 손이 그 안으로 쑥 들어갔다.

“앗……!”

“말투 바꾸자고 누가 그랬어? 친구 누구?”

“형, 그만하십……! 흣!”

“말투.”

“그만해요…….”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만져 대는 통에 자꾸만 전신이 찌릿찌릿해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슴팍을 진환이 누르고 있는 터라 몸을 일으키기도 어려웠다.

“친구 누가 바꾸자고 했냐니까?”

“바, 바꾸자고 한 건 아니고…… 흐읏…… 애인 사이 아닌 것 같다고 해서…….”

“그 말을 누가 했는데?”

은율의 성기를 잡은 진환의 손이 애를 태우듯 살살 위아래로 쓸어 댔다. 은율의 허리가 들썩거리고 그가 한 손으로는 가슴을 누른 팔을, 다른 한 손으로는 성기를 만지는 진환의 손목을 잡았다. 떼어 내려고 힘을 줘 보지만, 도통 힘이 들어가질 않아 효과가 없다.

“아까 그 여자애지?”

진환이 확신을 담아 물었다. 은율이 숨을 헐떡이다 입을 다물었다. 별것도 아닌데 괜히 일러바치는 느낌이다.

진환은 강희의 모습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뱉었다. 그녀는 분명 아직도 은율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게 확실했다. 아마도 질투심에 그런 말을 했으리라.

‘뭐, 그 덕에 율이가 더 특별하게 대해 준다면 나야 고마워할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 그녀가 자신에게 눈을 흘기던 모습 정도는 가벼이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껴안은 건 용서가 안 되네.’

갑자기 속이 부글거렸다.

진환의 손이 은율의 성기를 약간 힘 있게 쥐어 쓸어 올렸다.

“흐아-!”

은율이 허리를 튕기며 신음을 뱉었다.

“그래서 율이는 그 여자애가 하자는 대로 하는 거야?”

“흣……. 전 그저…! 하아-!”

“난, 이라고 해야지?”

“나, 난 그저…… 형이 조금이라도 오해……, 흑……, 오해할까 봐…….”

“왜?”

은율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을 삼켰다. 진환이 은율의 성기에서 손을 떼었다. 운율의 숨이 안도하듯 훅 내뱉어진다.

“앗-!”

은율이 안심하려는 찰나, 진환의 입이 그의 성기를 단숨에 삼켰다.

“혀엉-! 흣, 아, 흐응-!”

진환은 일부러 더 질척한 소리를 내며 은율의 성기를 강하게 빨아올렸다. 은율의 몸이 바르르 떨리고 그의 숨이 여지없이 흐트러진다.

“하으-! 가, 갈 것 같…… 아, 으!”

쾌감이 훅 치고 올라오는 순간, 진환이 입을 뗐다. 은율이 헐떡이며 의문을 담아 진환을 바라보았다. 한두 번만 더 왔다 갔다 하면 바로 쌀 것 같았고, 그걸 진환 역시 알았을 것이다.

“대답해야지, 율아.”

진환의 손이 애꿎은 고환을 쓸고 성기의 기둥을 손톱으로 긁는다. 찌르르 소름이 돋아, 은율은 몸을 비틀었다.

“가고 싶잖아. 아니면 이대로 그냥 둬?”

은율이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절정 직전에 멈춘 성기가 애처롭게 꺼덕거렸다. 진환이 그 성기의 기둥을 쓸며 애를 태웠다.

결국, 견디다 못한 은율이 작은 소리로 힘겹게 대답했다.

“형이 오, 오해해서 싫어하게 되면…… 제가 어떻게 견뎌요……. 난 형밖에 없는데…….”

은율의 성기를 애태우던 진환의 손이 우뚝 멈췄다. 그가 미간을 확 찌푸리더니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해.”

자신이 은율을 싫어하게 되는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 그런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은율은 불안했나 보다.

새삼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진 진환이 은율의 볼을 부드럽게 쓸며 그 이마에 입을 맞췄다.

“형이야말로 우리 율이밖에 모르는데. 언제나 네가 날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한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은율이 얼른 도리질 쳤다. 진환이 그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며 웃었다.

“형도 같아. 형도 그럴 리가 없다고.”

진환이 은율의 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형은 평생 너만 볼 거고, 너만 사랑할 거야.”

너무도 달콤한 말에 은율의 얼굴이 기분 좋게 달아올랐다.

“저도…… 아니, 나도…… 사랑해요, 형. 평생…… 형만 사랑할 거야.”

저 깊은 곳에서부터 간질거림이 올라왔다. 진환이 기분 좋은 미소를 건 채 은율의 아래쪽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흐아-!”

진환의 뜨거운 입이 은율의 것을 물었다. 잔뜩 부풀어 있는 그것에 빠르게 펠라치오 하며 입 안에서 혀를 굴렸다. 예상대로 은율이 쾌감에 못 이겨 몸을 떤다.

“하, 아, 아으-! 흐읏!”

은율의 허리가 튕기고 엉덩이가 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

쾌감에 휩싸인 교성이 길게 터졌다. 은율의 상체가 허공에 살짝 뜨고, 그의 두 손이 카시트 옆을 까드득 소리를 내며 긁었다.

진환은 제 목구멍에 몇 차례 토정한 은율의 것이 움찔대는 것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진하고 걸쭉한 정액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었다. 타인의 것이라면 당장에 구역질이 날 텐데, 이상하게도 은율의 것이라면 한 방울도 흘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내 정액을 모두 뱉어 낸 은율의 성기 끝을 쪽쪽 빨아 대니, 그가 다리까지 들썩이며 꿈틀거린다.

“힉-! 흣, 그만, 형, 그만! 흣! 찌릿거려…….”

은율이 경련하듯 헐떡이며 눈가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매단 채 진환을 내려다보았다. 은율의 요도 입구를 혀로 할짝이던 진환이 돌연 심각한 얼굴을 했다.

“안 되겠다.”

진환이 은율의 카시트 아래를 조작해 그의 의자를 바로 세워 주었다.

“형 죽을 것 같아.”

힘없이 숨을 몰아쉬던 은율의 시선이 진환의 아랫도리에 닿았다. 바지를 뚫을 것처럼 부푼 그의 성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진환이 차의 시동을 걸고는 눈을 번뜩였다.

“오늘 하루 종일 말투 고칠 수 있게 도와줄게.”

은율의 얼굴이 금세 파리하게 질렸다.

“아, 아니, 이미 많이 고쳤는데……요.”

“아직 멀었어.”

진환이 씨익 웃어 보이며 액셀을 세게 밟았다. 진환의 다급한 마음을 아는지, 이상하게 신호 한 번 걸리질 않는다.

은율이 얼른 바지를 수습하며 당황하는 사이, 어느새 진환의 집 앞이다. 진환이 다급히 주차장에 차를 대어 놓고는 은율의 안전벨트를 풀어 주며 그에게 눈웃음친다.

“동생들한테는 오늘 못 들어간다고 해.”

“왜…….”

이유가 짐작 갔지만 그래도 물었다. 진환이 은율의 귀에 더운 숨을 불어넣었다. 은율이 움찔하니, 그 숨 사이로 유혹하는 듯한 음성이 귓가를 간질였다.

“걷지도 못하게 만들어 줄게.”

은율은 등줄기에 오한이 드는 것을 느끼며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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