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Actor/Relaxation
예능 촬영이 성공적으로 끝난 다음 날.
오랜만에 오프를 받은 은율은 자신의 집에서 푹 자는 중이었다. 마침 그 날은 일요일이었기에 하진과 지희 모두 집에 있었다. 사실은 각자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지만 은율이 오프라는 소식에 얼른 일정을 취소해 버렸다. 은율은 동생들도 약속이 없구나, 하고 잘됐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은율도 그렇지만 하진과 지희 모두 서로 바빴기에 다 같이 날짜 맞춰 쉴 수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하진은 교수의 추천으로 졸업과 동시에 유명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한창 적응 중이었다. 그 안에서는 아무래도 어시스트이다 보니 이리저리 굴려지는 감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빠르게 경험을 쌓고 있었다.
지희는 여름방학 내내 레슨실에 붙박여 가을에 있을 해외 콩쿠르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칼의 지원 덕분에 러시아에서 이름 높은 바이올리니스트를 선생으로 데려왔는데,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음에도 그의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매일 감탄하며 레슨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방학다운 방학을 보내지 못해도 투덜거림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렇게 바쁜 세 사람이 모처럼 같은 날 집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은율은 평소보다 더 깊고 편하게 잠들어 버렸다. 눈앞에 다가온 하진이 몇 분이나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하진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서 두 손으로 제 턱을 받치고 있었다. 그 상태로 잠든 은율의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도저히 깨울 수가 없다. 이렇게 아기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은율을 깨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황홀한 눈으로 멍하니 은율을 감상하고 있던 하진은 문이 벌컥 열린 것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오빠, 아직 율이 오빠 안 일어났어?”
그새 성숙미 있게 자란 막내 지희가 앞치마를 입은 채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를 매만지던 그녀가 질문을 던졌지만, 하진은 반응하지 않았다. 넋을 놓고 있느라 반응하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하진의 상태를 알아본 지희가 코웃음을 치더니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엉덩이를 냅다 후려갈겼다. 꽤나 찰진 ‘퍽’ 소리가 났다.
“악!”
매서운 발길질에 하진이 큰 소리를 내며 앉은 자세 그대로 옆으로 넘어졌다. 그가 지희에게 맞은 엉덩이를 손으로 감싸며 이를 악물었다.
부모님을 여읜 후, 병원에서 퇴원한 은율은 한동안 하진과 지희를 붙잡고서 갖은 호신술을 가르쳤다. 운동에 그다지 관심 없던 두 사람은 왜 그런 걸 배워야 하냐고 생각했고, 그럴 시간에 매일 정신없이 사는 은율이 더 쉬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워낙 비장해서 그런 말도 못 한 채 가르쳐 주는 걸 묵묵히 배웠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은율 딴에는 사고 당시를 생각하며 동생들이 혹시라도 위험해질까 봐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단련한 발길질을 설마하니 이렇게 써먹다니. 하진은 감각이 사라진 엉덩이를 문지르며 눈을 부라렸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흠칫 놀랄 법한 매서운 눈길이었지만, 지희는 되레 쌍심지를 켜며 말을 씹어뱉었다.
“내가 조금만 늦었으면 입술 박치기라도 했겠다? 응?”
“너 이……!”
“으음…….”
큰소리를 내려던 하진의 입이 꾹 다물렸다. 소란스러움에 잠이 깬 은율이 작은 신음을 흘리며 눈가를 찌푸렸다. 곧 그의 몽롱한 눈이 반쯤 드러났다. 지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한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더니 은율의 볼을 부드럽게 쓸어 주며 나긋하게 재촉했다.
“오빠,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응…….”
비몽사몽인 와중에도 지희의 손이 기분 좋은지 작게 웃으며 대답한다. 지희의 표정이 무너지고 금세 헤실거린다. 그런 지희의 손을 하진이 덥석 잡아뗐다.
“너야말로 입술 씰룩이지 마라.”
“아, 뭐! 왜!”
지희가 눈을 치뜨자 하진 역시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을 보낸다. 둘 사이에 날카로운 기류가 흐르고, 공중에서 거친 스파크가 튀는 듯했다.
“……싸워……?”
은율이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묻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활짝 웃어 보인다.
“아니, 그럴 리가.”
“오해야, 오빠.”
이럴 때 보면 둘이 짜기라도 한 것 같다.
하진이 은율의 상체를 받쳐 일으켜 주고, 지희가 그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진해서 하는 그 행동들에는 은율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새 조금 정신을 차린 은율이 침대에서 내려서자 하진은 습관처럼 침대의 누웠던 자리를 정리하고, 지희는 그 옆에서 조잘거리며 오늘의 메뉴를 읊어 주었다. 누가 봐도 칭찬을 원하는 것 같은 들뜬 목소리에 은율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대단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칭찬 한마디에 헤벌쭉 웃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가볍게 씻고 나온 은율은 두 동생과 함께 앉은 식탁에서 가장 먼저 숟가락을 들며 물었다.
“오늘은 둘 다 집에 있을 거라고 했지?”
하진과 지희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약속까지 취소한 거였으니까.
“그럼 부탁 좀 하나 할게.”
은율의 말에 밥을 한술씩 뜨던 두 사람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은율이 뭔가를 부탁하는 일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눈빛이 뜨겁기까지 하다.
그걸 알아채지 못한 은율은 애꿎은 흰쌀밥만 내려다보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 내가 내일 중요한 일이 있는데…….”
동생들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한 은율이었지만, 오늘따라 그답지 않게 머뭇거린다. 괜히 밥을 숟가락으로 쿡쿡 찌르던 은율이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옷 좀…… 골라 줄 수 있을까?”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그 말을 내뱉자마자 은율이 고개를 푹 숙였다. 명백히 부끄러워하는 그 행동에 하진과 지희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며 동시에 은율을 바라본다.
“데이트 가?!”
“오빠, 데이트?!”
고개 숙인 은율의 얼굴이 한층 붉게 달아올랐다. 반박하지 않는 걸 보니 데이트가 분명했다. 그것도 밖을 돌아다니는 데이트.
“진환이 형이랑 어디 가기로 했길래 옷까지 골라?”
하진이 의아하게 물었다. 은율은 둘째치고 진환이 워낙 유명인이다 보니 두 사람의 데이트 장소는 거의 그의 집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밖에서 둘이 이렇다 할 애정 행각을 보이지 않는다면 파파라치가 붙더라도 딱히 문제될 건 없었으나, 혹시라도 일반인들이 알아보고 시끄러워질까 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잘 아는데 이번엔 밖으로 데이트를 간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은율이 제게 집중된 두 쌍의 눈을 힐끗거리며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냥…… 영화관이라든지 길거리 돌아다니는 거라든지……. 나도 밖에서 데이트라는 걸 해 보고 싶어서…….”
자기가 말해 놓고도 부끄러운지 ‘데이트’라는 단어에 눈동자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린다. 하진과 지희마저 은율의 처음 보는 모습에 얼굴을 붉혔다.
은율은 두 동생의 눈치를 보다가 그들이 말없이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말 꺼내서 신경 쓰게 한 걸까.
진환과 은율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서로가 내걸었던 바를 둘 다 이행하기로 했다. 진환의 요청이 워낙 민망한 것이라서 거절할까 했지만, 은율이 가진 로망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진환도 마찬가지이지만, 은율은 연애라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진환과 사귀기 전, 아주 한참 전에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다른 커플들처럼 즐거운 길거리 데이트를 하는, 그런 상상을.
하지만 데뷔 전에도 연애 상대가 유명인이라 다른 연인들처럼 마음 편히 바깥 데이트를 즐겨 본 적이 없었다. 은율이 배우로서 활동하는 지금은 더더욱 요원했다. 행동에 제약을 두고 조심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그런지 연인들의 당연하고 자유로운 행위에 로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진환이 바라는 것을 들어주기로 해 버렸다. 그래야 자신이 그리도 해 보고 싶었던 길거리 데이트라는 걸 해 볼 수 있으니까.
진환이 불편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걸 들어줘야 자신이 원하는 걸 요구할 수 있기 때문도 있고, 애당초 진환이 은율의 그런 귀여운 부탁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최대한 안 들키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데이트라는 것 하나 때문에 입고 갈 옷을 고민하게 된다.
이런 게 사람 마음인가 보다. 모자와 마스크는 기본이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다.
은율의 고민 많은 얼굴을 보고 있던 하진과 지희는 자꾸만 흘러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은율이 이런 거로 고민하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저렇게 귀엽게 우물쭈물하는 모습이라니.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결연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름 아닌 은율이 바라는 거다. 기왕 하는 거, 이진환이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예쁘게 꾸며 줘야겠다.
* * *
데이트 당일.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한 진환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둔 후, 홀로 은율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탑을 올려다본 진환은 자신이 상당히 일찍 도착했다는 걸 알았다. 약속을 잡았을 때 일찌감치 도착하기보다는 딱 맞춰 등장하는 일이 많았던 진환으로서는 30분이나 일찍 와 버린 자신이 새삼 신기했다.
생각해 보면 은율과 약속을 잡고 만날 때마다 30분이나 1시간쯤 미리 도착해 있는 게 기본이었다. 혹시라도 은율이 자신 때문에 조금이라도 기다리는 일이 생길까 봐 거의 습관적으로 미리 나와 있곤 했다.
오늘만 해도, 이런 사람 많은 번화가에서 은율이 혼자 기다리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미리 나와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드는 게 느껴졌다. 훤칠한 키와 탄탄한 몸매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게 만들었고, 저희끼리는 모델이나 연예인이 아니냐는 수군거림까지 돌고 있었다. 진환이 본능적으로 내보내는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이 아니었다면 벌써 몇 사람이 붙어 그에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던 진환은 휴대폰의 진동에 얼른 그것을 꺼내 들었다.
[거의 다 왔어요. 혹시 벌써 도착해 있어요?]
마스크 속에 감춰진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거의 다 왔어.]
사실 도착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일부러 아닌 척했다. 은율의 성격이라면 진환이 멋대로 일찍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것임에도 본인이 미안해할 거다.
진환은 제 가슴이 한층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차로 데리러 가겠다고 말하는 진환을 만류하며 일부러 약속 장소에서 따로 만나자고 요청한 게 새삼 이해가 되었다. 한쪽이 데리러 가서 만나는 것과 약속 장소에서 함께 시간 맞춰 만나는 것에는 두근거림의 차이가 확연했다. 이런 사소하면서도 평범한 연애의 맛도 꽤 나쁘지 않았다.
은율을 기다리며 혹시라도 오는 길에 그를 채가려 한다거나 집적대는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던 진환은 제 팔을 누군가에게 불쑥 잡는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쳐 둔 무형의 바리케이드 안으로 이리도 쉽게 다가와 팔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어서 와.”
검은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음에도 상대가 누군지 너무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평소 내리고 있던 앞머리를 반쯤 쓸어 올려 둔 덕에 훤히 드러난 눈매를 보기 좋게 휜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 거리의 사람 중 일부가 순간적으로 넋을 놓고 말았을 거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 나도 방금 도착해서…….”
말을 잇던 진환은 순간 숨을 삼켰다. 그의 눈이 은율의 차림새를 훑었다.
쇄골을 드러낸 반팔 체크 와이셔츠에 다리 라인을 살려 주는 약간 타이트한 블랙 진이 꽤나 잘 어울렸다. 왼쪽 손목에는 과거 자신이 사 줬던 고급 시계가, 오른쪽 손목에는 매듭이 지어진 연갈색 가죽띠 세 줄이 멋들어지게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환이 숨을 삼킨 건 그런 것보다도 은율의 목을 감싼 무광의 검은 가죽 초커 때문이었다. 하얗고 얇은 목을 검은 띠 하나가 보란 듯이 감싸고 있을 뿐임에도 그게 묘하게 섹시하고 유혹적이다.
진환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역시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쪽을 보고 있다. 그들은 두 사람 모두를 호기심과 흥미가 담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나, 진환에게는 그들의 시선이 전부 은율을 노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눈살을 찌푸린 진환의 시선이 제 목에 닿아 있는 것을 알아챈 은율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이거 이상해요? 지희가 꼭 하고 가라고 해서 해 봤는데…….”
괜히 한 걸까? 지희가 남녀 공용이라며 채워 주긴 했는데 진환의 눈빛이 저리 안 좋은 걸 보면 어지간히 안 어울리는 모양이다.
말없는 진환을 바라보며 초커를 풀어내려는데, 그가 손을 덥석 잡아 만류했다.
“전혀 안 이상해. 너무 잘 어울려.”
목소리가 너무 진지해서 놀랄 지경이다. 그래도 진환이 내뱉은 진심 어린 말에 은율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처음 착용해 보는 거라서 목이 약간 갑갑하기도 하고 거슬리긴 했지만 진환의 마음에 든다면야 아무렴 어떠하랴 싶었다.
진환이 은율의 팔을 덥석 잡아 빠르게 앞서 걸었다.
“얼른 이동하자. 이러다 파리 꼬이겠어.”
“예? 파리?”
고개를 갸웃하는 은율을 끌며 진환이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이 곧바로 향한 곳은 번화가에 자리한 영화관이었다. 진환은 미리 예매해 둔 영화 티켓을 발권해 은율에게 건네고는 팝콘과 음료를 준비해 왔다. 그걸 본 은율의 눈이 쉴 새 없이 반짝였다.
진환과 영화관에 온 적은 몇 번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여유롭게 데이트를 즐기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둘이 함께 영화관에 갔던 건 은율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 <12>의 <페르소나>를 관람할 때였는데, 그 당시엔 워낙 가슴이 벅차올라 제대로 된 감상을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이후로 두 번 더 영화관을 찾았지만 그건 모두 진환이 주연을 맡은 영화의 시사회장이었다. 당연히 연인다운 여유를 부리며 영화를 관람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전과 달리 팝콘과 음료까지 준비하며 여유로운 영화관 데이트를 즐길 생각에 은율은 벌써부터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그러나 진환을 따라 상영관 안으로 들어간 은율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가 약간 당황한 눈으로 약간 어둑한 내부를 훑었다.
“형, 여긴…….”
넓은 상영관 안에 일정 거리를 두고 배치된 좌석의 수는 결코 많지 않았다. 좌석은 모두 고급스러운 2인용 가죽 소파로 되어 있었으며 각 자리에는 팝콘이나 음료 등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작은 테이블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여태껏 영화관의 1인용 좌석만 생각하던 은율은 여기가 영화 상영관이 맞나 하는 생각에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진환은 상영관 내의 벽 쪽 제일 뒷자리를 향해 성큼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 자리에 도착한 은율은 좌석 좌우에 칸막이까지 있는 것을 보고는 신기한 눈을 했다.
일반 영화 티켓값보다 3배나 비싼 VIP 프리미엄관은 진환에게 꽤 만족감을 주었다. 모든 자리가 2인용 좌석인 데다가 칸막이까지 있으니 몰래 애정 행각을 한다 해도 들킬 위험이 없었다. 그런데도 혹시 몰라 은율을 벽 쪽 좌석으로 몰아넣었다.
얼마 가지 않아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평일 낮인 데다가 개봉한 지 2주가 지난 영화라서 그런지 상영관의 사람들은 극히 적었다. 은율과 진환을 제외하면 친구 사이로 보이는 두 여대생과 한 커플이 전부였다.
둘 다 모자와 마스크를 벗은 채 편안히 영화를 즐기고 있을 무렵,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던 은율이 흠칫 놀랐다. 고개를 돌리니 진환이 제 쪽으로 아예 몸을 돌린 채 손을 붙잡고 있었다. 한 손으로 은율의 손을 받쳐 들고는 그 부드러운 손등을 다른 손으로 간지럽히듯 쓸어 주었다. 더불어 어둠 속에서 빛나는 시선은 은율의 얼굴에 닿아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진환이 은율의 손등에 입술을 내렸다. 비슷한 자리에 몇 번이나 입 맞추던 그가 은율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입술을 눌렀다.
진환의 노골적인 스킨십에 당황한 은율이 굳은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다른 두 팀 모두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데다가 앞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들킬 위험은 없어 보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이런 공공장소에서의 스킨십은 아직 조심스럽기만 했다.
“형, 그만해요.”
작은 목소리로 만류하던 은율은 제 손끝을 혀로 핥아 올리는 그의 행위에 몸을 흠칫 굳혔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요?”
“어차피 아무도 안 봐.”
다른 사람들의 위치도 그렇고 칸막이까지 있어서 두 사람을 보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진환은 은율의 손가락 사이를 핥으며 마치 그를 유혹하듯 눈을 흘겼다. 어둠 속 스크린의 희미한 빛에 비친 진환의 얼굴이 너무 야릇해 보여서 저 깊은 곳이 찌르르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는 없어 보이지만 이런 공공장소에서 혹시라도 들키면 큰일 난다는 생각 때문인지 묘한 스릴감까지 찾아왔다.
손가락을 간지럽히는 뜨거운 혀의 느낌과 진환의 눈빛에 취해 있던 은율은 제 아래쪽에 닿아 오는 손길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바지 앞섶을 문지르는 진환의 손목을 덥석 붙잡으며 당황했다.
“설마…….”
제 손목을 붙든 떨리는 손을 떼어 낸 진환이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더니 갑자기 은율의 다리 사이로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가 태연하게 은율의 벨트를 풀기 시작한다.
“형, 형! 지금 뭐 하는……!”
“쉿.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해야지.”
어둠 속이었지만 은율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진환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이 벨트를 풀고서 바지 버클과 지퍼까지 풀어냈다. 진환의 손이 바지 사이로 드러난 드로어즈에 닿았다. 은율이 신음이 나올 뻔한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은 채 고개를 내저었다.
“소리 내면 들킬지도 몰라. 알았지?”
진환의 눈가가 샐쭉 휘어졌다.
은율의 만류에도 진환은 그의 드로어즈에 가려진 성기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몸이 크게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으나 공공장소라는 것 때문에 소리 하나 내지 않는 게 기특했다.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은율의 것에 짧게 입을 맞춘 진환은 그것을 드로어즈째 혀로 할짝 핥아 올렸다.
“흡……!”
은율이 어깨를 움츠리며 다리를 떨었다. 진환은 그의 두 다리가 오므려지지 못하도록 손으로 잡아 벌리면서 아래를 몇 번이나 핥아 댔다. 은율은 한 손으로 제 입을 막고서 다른 손으로는 진환의 머리카락을 아프지 않게 그러쥐었다.
“흐읏……, 형, 그만……!”
말을 하다가 신음이 그대로 터질 뻔했다.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 채 숨을 들이켜고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무시하려 애썼다. 하지만 은율의 바람과 달리 누군가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긴장과 초조함은 전신의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만들었고, 진환의 혀가 핥아 주는 느낌이 머리끝까지 자극해 왔다.
‘그만하게 해야 하는데…….’
오싹한 느낌과 미칠 듯한 자극이 정신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터지려는 신음을 막는 데 급급해서 그런지 빠르게 숨이 차고 그로 인해 눈앞이 몽롱해졌다.
진환은 은율의 속옷 안에서 힘을 더해 가는 살덩이를 조심스레 밖으로 빼내었다. 평소와 달리 훨씬 빠르게 발기한 은율의 것이 벌써 끈적한 액을 흘리고 있었다.
“……!”
성기가 뜨거운 입 안으로 삼켜지는 느낌에 은율이 눈을 홉뜨며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한 손으로도 모자라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전신을 경련하듯 떨었다. 손을 조금이라도 떼면 그대로 신음이 흘러나갈 것 같아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은율의 성기를 입에 문 진환은 치아가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목구멍 입구까지 그의 것을 깊이 삼켰다. 목구멍 벽에 은율의 것이 닿음으로 인해 기도가 막히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름대로 요령이 있어서 볼썽사납게 숨 막힌 소리를 내거나 구토감을 느끼진 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 눈을 위로 떠 은율의 반응을 체크했다.
어둠 속에서 스크린의 빛을 받아 빛나는 촉촉한 눈동자가 진환마저 자극해 왔다. 아래쪽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끼며 입 안에 든 은율의 것을 혀로 쓰다듬었다. 크게 들썩이는 은율의 반응에 눈가를 휘며 느릿하게 움직였다.
은율의 것이 점차 부피를 더해 가고, 희미하게 헐떡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목구멍에 닿을 때마다 끈적하게 묻어나는 액이 특히나 뜨겁게 느껴졌다.
“형……. 흡……, 이제……. 윽……!”
은율의 다리가 자꾸만 오므려지려 했다. 버티기 힘든 것처럼 그의 성기가 입 안에서 파르르 떨어 댔다.
터질 듯 부푼 성기 끝에 짧게 입을 맞추며 요도 부분을 바짝 세운 혀끝으로 살짝 찔렀다. 은율의 허리가 퉁기더니 그의 눈이 원망하듯 내려다본다.
“소리 안 내고 쌀 자신 있어?”
“그럴 자신 없으니까 그만해요.”
손을 떼고서 얼굴을 일그러뜨린 은율이 작은 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다양한 스크린 빛 때문에 확연한 색상까지 알아보는 건 힘들었지만, 얼굴에 열이 올라 있을 거라는 것 정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진환이 눈을 휘며 씩 웃었다. 은율이 불길함을 느낀 순간, 그가 단숨에 은율의 것을 집어삼켰다.
“아, 흡……!”
큰 소리를 낼 뻔한 은율이 다시금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한 손으로는 소파의 팔걸이를 꽉 쥔 채 본능적으로 손톱을 세웠다. 점점 속도를 더해 가는 펠라에 맞춰 까드득 하는 팔걸이 긁는 소리가 들렸다.
“읍, 흐읍……! 흣, 으읏-!”
최대한 소리를 죽였기에 가까이 있는 진환에게만 들릴 테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숨쉬기 어려울 만큼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면서도 그새 촉촉해진 눈으로 다른 좌석을 훑었다.
저 멀리 두 팀이 보였다. 그들 모두 정면의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서로 이야기를 하려고 고개를 움직일 때면 바짝 긴장해서 아래에 더욱 힘이 몰렸다. 그들이 고개를 돌린다 한들 가장 뒷좌석 구석에 앉은 은율이 보일 리 만무했고, 앞좌석에 가려진 아래쪽 상황은 더더욱 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마치 아무 벽 없이 다리를 벌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흐음-!”
진환의 목구멍 벽에 성기 끝이 아릿할 정도로 퍽 하고 부딪치는 느낌이 났다. 그것과 동시에 척추를 얼음으로 훑는 듯한 오싹함과 쾌감이 몰아쳐 저절로 고개가 젖혀졌다. 전신의 감각이 온통 아래로 쏠린 것만 같았다.
스피커 소리 사이로 미약하게 질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타액을 잔뜩 묻힌 채 촉촉한 진환의 입 안을 출납하는 야한 소리가 제게만 들리는 듯했다. 이런 곳에서 진환의 입에 사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과 이대로 쾌감을 받아들이라는 본능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진환은 은율의 이런 정신적 혼란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사정을 유도하기 위해 갖은 자극만 해 댈 뿐이었다.
결국 은율은 진환의 입 안에서 그의 혀와 목구멍에 유린당한 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인내의 끈을 놓치고 말았다.
“흣-! 으읍-!”
이를 악물고 입을 틀어막은 채 허리와 가슴을 크게 퉁겼다. 그 자세 그대로 사시나무 떨듯 경련하며 길게 사정했다. 미칠 듯한 쾌감의 폭풍이 봇물 터지듯 터져 강하게 뇌를 때렸다. 부릅뜬 눈이 시야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을 만큼 강렬하게 흔들렸다.
은율이 사정하는 타이밍에 맞춰 성기를 목구멍 깊이 넣었던 진환은 능숙하게 그의 것을 꿀꺽 받아먹었다. 이미 몇 번 펠라로 사정하게 해 본 경험이 있었던지라 어떻게 해야 정액 특유의 비린 맛을 최소화해서 쉽게 먹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뜨겁고 질척한 액이 목구멍에 그대로 쏟아부어져 흘러내려 가는 게 느껴졌다. 은율의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것을 꿀꺽 삼키자 이상하게 자극이 된다.
사정 후, 힘이 빠진 은율이 소파에 늘어지며 색색거리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눈이 원망과 혼란을 담아 진환을 노려보았다. 목구멍에 닿아 있는 은율의 것을 한 번 깊이 흡입해서 혹시나 남아 있을 정액까지 빨아먹은 진환이 그제야 입을 뗐다. 목구멍과 입 안에 약한 밤꽃 향이 남아 있긴 했지만 은율을 사정하게 만들었다는 묘한 충족감이 그것마저 기분 좋게 느끼게 했다.
손수건을 꺼내 제 입가와 은율의 젖은 성기를 꼼꼼히 닦아 준 진환이 늘어진 주인 대신 추슬러 바지 앞섶까지 잠가 주었다. 은율의 옆자리에 앉아 음료를 빨대로 길게 빨아 마신 진환이 씩 웃으며 그의 어깨를 팔로 둘러 안았다.
“좋았어?”
“……묻지 마요.”
은율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을 내쉬었다. 공공장소에서, 그것도 진환의 입 안에 사정하다니. 은율로서는 수치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진환이 작게 웃으며 은율의 머리와 얼굴에 짧은 입맞춤을 이었다. 간질거리는 버드키스에 은율의 얼굴도 점차 풀어져 갔다.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야한 짓을 해 버리는 바람에 영화 내용이 뭐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승전결에서 승에 해당하는 부분을 통째로 놓쳐서 그저 흐린 눈으로 끝까지 봤을 뿐.
소중한 영화 관람 시간을 방해했다며 진환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고만 있었다. 은율 역시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진환과 함께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지라 마스크 안에서 몰래 미소 지었다.
상영관을 나와 아래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로 다가가던 은율의 눈이 갑자기 반짝거렸다. 은율이 먼저 에스컬레이터에 오르길 기다리던 진환은 그의 시선이 닿은 곳으로 눈을 돌렸다. 대낮부터 네온사인에 휘황찬란하게 빛이 들어간 ‘오락실’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 둔 시설 같은데, 보기보다 한적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은율은 오락실과 영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제약받는 생활을 해 왔을 뿐 아니라 양부모를 잃었던 사고 이후로는 두 동생을 돌보며 공부하는 데에만 사력을 다했다. 그 뒤엔 연기에만 전념했던지라 오락실처럼 뭔가를 즐길 만한 곳을 가 본 적이 없었다. 영화관도 손에 꼽을 정도밖에 와 본 적 없을 정도로 유희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새삼 측은함까지 느껴졌다.
진환이 은율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가 보자.”
주어 없는 말임에도 은율은 그가 뭘 말하는지 곧바로 이해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쪼르르 달려갈 거라는 생각과 달리, 은율은 머뭇거리기만 했다.
“저 때문이라면 괜찮아요. 어린애들이 가는 데고…….”
고지식하기는.
오락실 근처에도 가 보지 않았던 은율인지라 그런 곳은 어린애들이나 간다는 늙은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호기심과 흥미를 이기지 못하고 연신 힐끔거린다.
“요즘에는 어른들이 더 많이 가. 나도 오락실은 오랜만이라 가 보고 싶은데, 별로야?”
진환의 말에 은율이 눈을 반짝였다. 자신의 생각과 달리 어른들도 많이 가는 데다가 진환도 가고 싶은 거라면야 거절할 이유가 없다.
언제 내뺐냐는 듯 은율이 오히려 진환의 팔을 붙잡아 앞장섰다.
“빨리 가 봐요.”
은율의 들뜬 목소리와 상기된 눈가에 진환이 애꿎은 손만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순간적으로 은율을 끌어다 마스크를 벗겨내 키스할 뻔했다.
너무 귀여운 것도 문제다, 정말.
오락실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화려한 조명으로 꾸며진 타악기 게임기와 모형 기관총이 달려 있는 건 슈팅 게임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주변에는 다양한 색상의 반구형 버튼을 눌러 조작하는 아케이드 게임도 있었고, 음악에 맞춰 발판을 밟아야 하는 리듬 게임도 있었다.
오락실의 게임기라고 해 봐야 조이 스틱과 알록달록한 버튼이 달린 모형만 생각했는데, 아예 판이한 게임기들이 즐비하니 적잖이 놀라 버렸다. 은율은 자신이 너무 구시대 사람인가 싶어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사실은 진환도 게임을 즐기기 위해 오락실에 와 본 적은 처음이었다. 일 때문이긴 하지만 오락실에 첫발을 내디뎠던 건 대략 10년 전쯤이었다. 당시 영화에서 오락실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비행 청소년 역을 맡았던 진환은 캐릭터 연구를 위해서 꽤 오랜 시간 동안 갖은 오락기 앞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제대로 오락기를 다뤄 본 건 그때뿐이었다. 그 후로 작품 때문에 몇 번 오락실에서 촬영을 한 적은 있지만 그때처럼 직접 게임을 해 보진 않았다. 그래서 은율만큼 오락기들이 생소하진 않더라도 막상 게임을 잘할 자신은 없었다.
오락실을 둘러보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꽤 신나게 게임을 즐겼다. 대부분의 오락기 조작법은 진환이 알고 있었기에 게임 자체를 시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게임을 제대로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인지라 적응하는 게 워낙 어려워서 뻔질나게 동전을 바꿔 와야만 했다. 그래도 오락은 오락이어서 몇 번이나 [TO BE CONTINUE]가 떠도 재밌었다. 무시 못 할 즐거운 승부욕도 한몫 단단히 했다.
한가한 오락실에서 갖가지 게임을 즐기던 두 사람은 어느덧 마지막 게임기 앞에 다가섰다. 다른 오락기처럼 모니터에 뭔가가 뜨는 걸 두고 게임하는 게 아니라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다양한 인형을 뽑는 기계였다.
흔히들 말하는 인형 뽑기 기계 앞에 선 은율은 반짝이는 눈으로 인형들을 훑었다. 유명 만화에 나오는 다양한 생김새의 인형들이었지만 TV로는 진환이 출연하는 드라마나 뉴스, 예능 프로그램 정도밖에 보지 않았던지라 알아볼 리가 없었다.
유리 안에 가득 쌓인 인형을 들여다보던 은율이 그중 하나에 관심을 두었다. 머리에 진녹색 이파리를 달고 있는 붉은 눈의 녹색 동물이었는데, 작은 체구이면서도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당당한 눈을 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은율의 눈에 담긴 인형을 알아본 진환이 미리 환전해 둔 오천 원 한 장을 집어넣었다.
“한번 해 봐. 조작법 알려 줄게.”
기계에 친절히 조작법이 적혀 있었지만, 진환은 구태여 은율의 손을 잡아 일일이 조작해 주었다. 순진한 은율은 진환의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깨닫지도 못한 채 집게 같은 기계가 움직이는 걸 즐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작법을 터득하긴 했으나 인형을 뽑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하는 인형의 바로 위에 집게 위치를 맞추는 것도 힘들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내려간 집게가 인형을 그러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인형의 무게 때문에 올라가던 도중에 그걸 놓치기도 했고 위쪽 레일에 집게가 되돌아간 충격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두 사람 입에서는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천 원어치인 6회분을 모두 소진한 은율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아쉬워했다. 진환은 오천 원 한 장을 더 꺼내 넣고는 자신이 그 앞에 섰다.
주어진 기회는 6회. 그 안에 저 녹색 동물 같은 인형을 뽑아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뽑은 인형을 은율에게 안겨 준다면 분명 활짝 웃어 줄 것이다. 그 미소가 얼마나 예쁠지 알 만한 터라 의욕이 불끈 샘솟았다.
투지를 담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인형을 노려보며 레버를 신중히 움직였다. 집게가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에 이입이라도 된 것처럼 퍽 진지하다.
결과는 6회 모두 실패였다. 처음 두 번은 위치를 맞추는 게 힘들었지만 금세 요령을 터득하고서 거의 정확히 인형을 잡았다. 하지만 집어 드는 데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6회째에선 인형을 옭아매다시피 정확히 잡아서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으나 옮기는 과정에서 툭 떨어져 탄식을 자아내기도 했다.
은율이 두 주먹을 움켜쥔 채 눈을 부릅뜬 진환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형, 이제 이거 그만하죠. 다른 거 해요, 네?”
너무 진지해져서 걱정이었던 터라 만류하려 했으나 진환은 그새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더 집어넣고 있었다. 은율은 한숨을 내쉬며 이번 6회가 모두 끝나면 억지로라도 끌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도면 저런 인형쯤 아예 돈 주고 사는 게 더 싸게 먹혔다.
그렇게 은율이 벼르고 있던 찰나, 벌써 5회가 지나갔다. 진환은 이게 뭐라고 잔뜩 긴장한 눈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은율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렸다. 직접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지금처럼 진환이 뭔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일순 진환의 눈이 번뜩였다. 여태까지 시도했던 것 중에 가장 정확하게 인형의 중앙을 그러쥔 집게가 안정적으로 그것을 끌어올렸다. 이쯤 되니 은율마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인형 뽑기는 집게로 정확히 타깃을 잡았다고 한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너무도 잘 알아 버렸다.
가장 긴장해야 할 순간은 바로 지금이었다.
인형을 끌어올린 집게가 레일에 덜컥 부딪혔다. 안정적으로 그러쥐고 있던 인형의 자세가 약간 흐트러졌다. 진환과 은율은 바짝 긴장한 눈으로 집게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집게가 느릿한 동작으로 출구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눈도 제대로 깜빡이지 않은 채 그걸 보고 있었다. 출구에 거의 다다르기 직전, 인형이 흔들리더니 이내 스륵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속으로 몇 번이나 ‘안 돼’를 외쳐 댔다.
두 사람의 바람과 달리 인형은 그대로 툭 떨어지고 말았다. 안타까움의 탄식이 흘러나오려던 순간, 출구의 사각 틀에 떨어진 인형이 공중에 살짝 떴다. 그러더니 출구로 미끄러지듯 굴러 들어갔다.
진환과 은율은 일순 숨을 멈췄다가 출구로 사라진 인형을 떠올리며 황급히 몸을 숙였다. 출구의 덮개를 열자마자 커다란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은율이 일순 놀라서 흠칫하고 있는데, 진환이 손을 넣어 그것의 머리를 덥석 잡아 빼냈다. 완전히 드러난 녹색 인형은 기계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귀여워 보였다.
“와…….”
인형에 시선을 고정한 은율이 감탄 어린 소리를 흘렸다. 설마하니 진짜 뽑을 줄이야. 마지막에 아슬아슬하긴 했어도 성공적으로 인형을 뽑아 낸 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환이 눈가를 휘며 인형을 내밀었다. 은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얼떨떨하게 있자, 굳이 그의 품에 인형을 안겨 준다.
“갖고 싶어 했잖아.”
“그래도 이건 형이 힘들게 뽑은 거잖아요.”
“그래. 힘들게 뽑았지. 우리 율이 주려고.”
진환이 싱긋 웃으며 인형의 볼을 콕 찔렀다.
“형이 처음으로 뽑아 본 인형이니까 많이 아껴 줘. 누구 주지 말고.”
은율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마스크 덕에 티가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지희랑 닮았길래 선물해 줄까 했던 거였는데…….’
그걸 입 밖에 냈다가는 진환의 표정이 좋지 않을 것 같다.
은율은 제 품에 안긴 녹색 인형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붉은 눈동자와 인상적인 진녹색 이파리를 보고 있노라니 생각보다 더 귀엽다. 진환이 자신을 위해 처음으로 뽑아서 안겨 준 인형이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애정이 생겼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형.”
진심을 담아 말하자 진환이 한 번 더 눈가를 휘어 화답했다.
오락실을 나온 두 사람은 번화가를 제법 오래 돌아다녔다. 마스크를 벗을 수는 없어서 꿈에 그리던 길거리 음식을 사 먹어 보진 못했지만, 대신 눈으로 많은 걸 보고 즐겼다.
하지만 다 큰 남자가 유명 만화 캐릭터 인형을 안고 다니는 건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긴 하지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걸 알아챘는지, 진환이 은율에게 귓속말을 했다.
“바로 호텔로 갈까?”
은근한 말에 은율이 흠칫 놀랐다.
애당초 오늘의 코스는 차 없이 밖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거였다. 이미 만족스러울 만큼 데이트를 즐겼기에 호텔로 향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밖에서 대뜸 그 단어를 들으니 괜히 민망함이 몰려왔다.
“호텔 레스토랑을 예약해 뒀으니 거기서 저녁 먹고 방으로 가자.”
그렇게 말하며 은율의 어깨를 부드럽게 둘러 안았다.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사람들은 그저 친구들끼리의 스킨십이라 생각하는지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다.
“호텔……은 얼마나 걸리는데요?”
진환이 조금 떨어진 곳을 짧게 턱짓했다. 고작 100m도 되지 않는 거리에 꽤 큼직한 호텔이 하나 있다. 이제 보니 진환은 그냥 걷는 게 아니라 동선을 고려하고 시간까지 계산하며 걸었던 거다.
이런 준비성 철저한 애인 같으니라고.
* * *
호텔에서의 식사는 만족스럽다 못해 감탄스러웠다. 진환이 예약한 호텔의 레스토랑은 국내에서 가장 실력 좋다던 일류 셰프가 요리하는 곳으로 유명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호평인 고가의 코스요리를 맛보았다. 은율은 음식을 먹는 내내 눈을 반짝였고, 진환은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식사를 마치고서 예약해 둔 호텔 방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진환은 마스크를 쓴 은율이 약간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안에 들어가자마자 진환이 은율을 벽으로 몰아세웠다. 긴장해서인지 눈에 띄게 흠칫하며 품에 안고 있던 녹색 인형을 목 조르듯 꽉 껴안는다.
“왜 긴장하고 그래?”
진환이 모자챙을 약간 올리며 물었다. 은율이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작게 되물었다.
“……몰라서 묻는 거 아니죠?”
“몰라서 묻는 건데.”
은율의 눈가가 금세 달아올랐다. 아마도 마스크를 벗기면 얼굴 전체가 볼 만하게 붉을 것이다.
수줍어하는 듯한 반응을 눈에 담아 즐기던 진환이 마스크 안에서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가 은율의 허리를 한쪽 팔로 감싸 안았다.
은율이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진환이 그에게 바짝 밀착하며 귀에 소곤거렸다.
“우리 율이가 하자는 대로 데이트했으니까 이제 형 하자는 거 해야지.”
“자기도 즐겼으면서…….”
마스크 속에서 부끄러움 가득한, 불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싫으면 그냥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교복 입던가.”
“그게 더 싫어요. 어떻게 교복 입은 채로 그래요.”
은율의 즉각적인 반응에 속으로 혀를 찼다.
처음에는 나름의 판타지를 위해 교복을 입고 밤을 보내는 걸 얘기했으나, 은율이 극구 반대했다. 어떻게 학생들이 입는 교복을 입고 야한 짓을 할 수 있냐며 배덕감 때문에 안 되겠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붕붕 저어 댔다. 이상한 데에서 고지식한 은율이었기에 결국 진환은 다른 조건을 내걸었다.
교복 말고 다른 걸 입어 달라고.
그리고 예악한 호텔 방 안에는 미리 준비해서 가져다 둔 그 물건이 있을 거다. 은율은 그게 뭔지 자세히 듣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끙끙대며 고민하다가 이내 받아들였다. 교복을 입는 게 오히려 편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은율은 그러느니 차라리 더 부끄러운 선택지가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두 번째 제안도 거절당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은율은 한참의 고민 끝에 진환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서로 약속했던 건 지켜야 한다며.
‘착하네.’
은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문득 호텔 안에 있을 물건을 떠올렸다. 그걸 입은 은율을 상상하니 벌써 아래에 피가 몰릴 것 같다.
가까이 붙어 은율의 목을 감싼 초커를 바라보았다. 하얗고 가느다란 목의 은율에게는 과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오늘 하루 잘도 참아 낸 자신을 칭찬하며 그의 목에 입술을 가져갔다. 은율이 화들짝 놀라며 진환의 가슴팍을 밀었다.
“방에서……, 방에서 해요.”
호텔 엘리베이터이니 안에는 분명히 CCTV가 존재할 거다. 얼굴까지 마스크로 다 가려진 마당임에도 은율은 혹시 모를 일을 생각해 진환을 밀어냈다.
진환이 아쉬워하며 입술 대신 손으로 은율의 목덜미를 쓸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은율이 당황한 동작으로 그를 밀어내 앞서 나갔다.
방에 도착한 은율은 침실의 테이블에 떡하니 올려져 있는 상자를 보며 움찔했다. 그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느릿하게 다가서서는 그때까지 안고 있던 인형을 내려놓고, 상자의 뚜껑을 조심히 열었다.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은율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어느새 뒤에 다가선 진환이 손수 은율의 마스크를 벗겨 주며 그를 끌어안았다.
“직접 입혀 줄까?”
“이게 입는다고 표현할 만한 물건이에요?”
은율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마른세수를 하며 툴툴거렸다.
“형은 대체 왜 저런 걸…….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정말.”
“나도 내가 저런 걸 부탁할 날이 올 줄은 몰랐어. 어제까지만 해도 다른 부탁을 할까 싶기도 했고.”
그런 진환이 은율의 초커 주변을 혀로 핥았다. 은율의 어깨가 크게 들썩인다.
“근데 이거 차고 있는 널 보니까 잘 선택한 거 같아. 엄청 잘 어울릴 거야.”
그렇게 말하며 은율의 볼에 짧게 입맞춤을 했다.
“고마워. 해 준다고 해서.”
“……형도 데이트해 줬잖아요.”
은율이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비록 같이 즐긴 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부탁을 위해 사람들에게 노출될 위험을 감수해 줬다. 그것만으로도 은율은 진환에게 굉장히 고마워하고 있었다. 자신의 어리광을 흔쾌히 받아 줘서.
‘조금 민망하긴 해도 단둘이 있을 때 하는 거니까 이것쯤은…….’
은율의 시선이 다시금 상자에 닿았다.
‘이것쯤……이 아닌가.’
저절로 한숨이 나오려 한다. 굳이 따지자면 ‘입는 것’이 아니라 ‘끼우는 것’에 가까운 물건들이었지만 이미 약속한 이상 군말 없이 하기로 했다.
먼저 욕실에 들어간 건 은율이었다. 그는 평소보다 훨씬 느리게 샤워를 마친 후 진환을 욕실로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도 붉어진 얼굴로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천천히 씻어야 해요. 알았죠?”
“네, 네.”
진환이 애써 웃음을 참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아참.”
문을 닫으려던 진환이 은율의 비어 있는 목을 보며 당부했다.
“입을 때 아까 그 초커도 하고 있어.”
“그건 왜요?”
“물건하고 잘 어울려서.”
의아함과 민망함을 담아 고개를 갸웃한 은율이 시선을 피하며 알았다고 답했다. 그가 자꾸만 입가를 씰룩이는 진환을 한차례 노려보더니 문을 쾅 소리가 나도록 닫아 버린다. 문이 닫히고 나자 진환은 여태 참았던 미소를 입가에 크게 걸었다.
은율이 당부한 대로 천천히 옷을 벗으며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은율의 얼굴은 흔히들 말하는 홍당무에 가까웠고 눈동자는 긴장 때문에 자꾸만 초점이 흐려졌다. 그의 얼굴을 상기하며 귀엽다는 말을 수십 번은 족히 되뇌었다.
은율에게 너무한 걸 시켰나 싶다가도 평소에는 아무리 애원해도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니 한 번쯤 어떤가 싶기도 했다. 오늘 하루는 서로서로 어리광을 받아 주기로 한 날이니까.
샤워를 하면서도 은율이 상자 속 물건을 착용한 모습이 상상돼 죽을 것 같았다. 아래가 하도 뻐근해서 중간부터는 아예 찬물을 틀어 하체를 달랬다.
마음 같아서는 후다닥 씻고, 뛰어나가고 싶었지만 은율의 당부도 있으니 최대한 천천히 샤워를 마쳤다. 욕실에 구비되어 있던 샤워 가운을 걸치고 욕실 문 앞에 선 진환은 자신이 오히려 더 긴장하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욕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진환은 침실 문 앞에 섰다. 굳게 닫힌 문 안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문에 귀를 바짝 댄 채 집중하자, 은율이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율아, 괜찮아?”
걱정을 담아 묻자, 안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괘, 괜찮아요!”
“들어가도 돼?”
“아뇨! 아뇨…….”
잔뜩 당황하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걱정되기까지 했다.
무작정 벌컥 열고 들어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서성거리던 진환의 귀에 다 꺼져 가는 듯한 은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도…… 돼요…….”
그제야 진환이 얼른 문을 열었다.
“괜찮아?”
걱정을 담아 물으며 문을 활짝 열었지만 은율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침대 위에 봉긋하게 솟은 작은 산 하나만 있을 뿐.
침대 위에 있는 산의 정체를 알아챈 진환은 그만 웃음이 터질 뻔했다. 웅크린 채 이불을 뒤집어쓴 모습만으로도 너무 귀여워 미치겠다.
웃음을 꾹 참으며 침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지척에 다다라 침대에 걸터앉으니, 봉긋한 산이 눈에 띄게 움찔한다. 진환이 은율의 등으로 추정되는 둥그런 부분을 쓸어 주며 웃음기 담은 목소리를 뱉었다.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
은율은 말이 없었다. 등을 쓰다듬는 손에 느껴지는 작은 떨림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있는지 알 만했다.
대답 없는 은율을 가만히 보고 있던 진환이 이불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그것을 느릿하게 들어내려 하니 안에서 또다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자, 잠깐만요!”
이불을 걷어 내려던 진환이 동작을 멈췄다. 안에서 이불을 엉성하게 쥐고 끌어당기는 느낌이 났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심호흡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니 왜인지 더 괴롭히고 싶어진다. 진환은 자신이 참 못됐다는 생각을 하며 은율의 말을 무시한 채 이불을 확 걷어 냈다.
“앗!”
이불 안에 웅크리고 있던 전신에 한기가 훅 몰아쳐 왔다. 은율이 고개를 번쩍 들며 진환을 노려보았다.
“내가 분명히 아직……!”
불만스럽게 말을 뱉던 은율이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를 내던 진환은 어디 가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만 눈에 들어온다.
“율아, 진심으로 물어보는 건데.”
은율의 모습을 눈으로 훑던 진환이 돌연 표정을 확 구겼다.
“사람 죽일 일 있어?”
“형이 시킨 거잖아요!”
억울한 마음에 은율이 목소리를 높였다.
은율이 한쪽 팔로 제 가슴팍을 둘러 가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은율의 머리에 달린 검은 고양이 귀였다. 겉은 부드러운 검은 털로 덮여 있으면서도 안쪽엔 고양이 귀의 속살처럼 분홍색 펠트지가 덧대어져 있다 보니 멀리서 보면 진짜 귀인 줄 알겠다.
목에는 진환의 요청대로 검은 초커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방울을 달아 주고 싶을 만큼 고양이 귀와 잘 어울린다. 하얗고 여린 목을 도드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은율이 속박당한 듯한 느낌을 줘서인지 묘한 간질거림까지 찾아온다.
그뿐 아니라 은율의 얼굴만큼이나 커다란 두 손도 인상적이다. 그가 끼고 있는 검은 털장갑은 동물의 발처럼 두툼한 손가락이 네 개뿐이었고 손바닥에는 분홍색 쿠션이 덧대어져 고양이 같은 느낌을 한층 강하게 만들었다.
아래로 내려가니 옷이라고 할 만한 건 중요 부위를 가린 자그마한 티 팬티 하나뿐이었다. 성기를 아슬아슬하게 담아 가린 검은 티 팬티는 실크 재질이라서 부드럽고 광택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그 안에 담고 있는 물건의 실루엣이 도드라져 너무 야하게 느껴졌다.
거기다 그의 뒤쪽에는 검고 긴 꼬리가 하나 불쑥 나와 있다. 티 팬티를 입은 상태로 그게 어떻게 달려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니 아래쪽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피가 몰렸다.
은율은 자신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진환의 시선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새 붉어져 버린 목덜미와 검은 고양이 귀가 진환의 눈을 어지럽혔다. 은율은 장갑이 불편한지 손가락 끝을 계속 움직거렸는데, 그걸 보던 진환의 얼굴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이, 이상……하죠?”
은율이 다 죽어 가는 소리로 물었다. 진환은 대답 대신 손을 뻗어 은율의 얼굴을 붙잡아 올렸다. 그러고선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입술을 삼켰다.
“우읍-!”
진환의 잔뜩 흥분한 혀가 입 안을 점령하고, 그의 눈빛이 은율의 놀란 눈동자를 집어삼킬 것처럼 강렬해졌다.
‘허겁지겁’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급하게 달려든 진환은 은율의 허리를 붙잡아 그를 바르게 눕혔다. 웅크리고 있던 몸이 매트리스에 강제로 눕혀지자 은율이 다리를 모으며 움찔했다.
당기고 빨아 대던 은율의 혀를 놓아주고서 그의 입술을 사탕 빨 듯 핥아 댔다. 그러면서도 손을 아래로 뻗어 팬티 위를 간지럽히듯 쓰다듬었다.
“흣!”
은율의 허리가 들썩였다. 진환의 손이 팬티에 싸인 성기를 쓰다듬는 느낌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고, 그 탓에 아래쪽 구멍 역시 힘이 들어갔다. 꼬리 착용을 위해서는 그 끝에 달린 다소 단단한 실리콘 덩이를 넣어야만 했고, 그 탓에 안쪽이 꽉 찬 느낌이었다. 그런 상황에 성기를 자극하니 안쪽과 구멍이 조여들어 압박감이 더해졌다.
“형, 잠깐…만……. 으응-!”
진환이 은율의 성기를 매만지며 그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초커를 맨 살결에 입술을 묻어 핥아 주니 아래쪽의 반응이 좀 더 빨라진다. 숨을 거칠게 쉴 때마다 초커가 살결을 압박하는 듯한 모양새가 특히나 색정적으로 보였다.
“하……, 미치겠다, 진짜.”
여유 없는 목소리의 진환이 목에서부터 아래로 미끄러지듯 입술을 내렸다. 은율은 쇄골에 닿은 진환의 입술과 혀가 너무도 뜨거워서 불에 덴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환의 입이 작은 유두를 머금으려던 순간, 은율이 그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형, 너무 급해요. 처, 천천히…….”
민망함과 수치심 때문인지 몸에 너무 빨리 열이 올라 벌써 어질거렸다. 그런 상황에 진환이 다급하게 몰아세우면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거다.
고개를 든 진환이 제 어깨를 잡은 두 손과 은율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부드러운 털에 뒤덮인 커다란 손만 봐도 자극적인데, 쫑긋 선 고양이 귀에 섹시한 초커까지 하고 있으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진환이 은율의 아래를 손으로 연신 주무르며 물었다.
“율아, 형이 해 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해도 될까?”
“흣, 으응……, 뭔……데요.”
몸을 부르르 떠는 은율의 귀에 진환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얘기를 들은 은율이 일순 눈을 크게 뜨며 숨을 삼켰다. 그러다 곧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자세는 금세 반대가 되었다.
침대에 바르게 누운 진환의 위로 머뭇거리던 은율이 거꾸로 올라탔다. 성기를 감싼 검은 팬티가 진환의 얼굴 바로 위에 자리하도록 앉은 은율은 반대로 진환의 성기 앞까지 얼굴을 내렸다.
은율은 가운을 벌리고 드러난 진환의 딱딱한 성기를 위에서부터 살짝 핥기 시작했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진환 역시 은율의 엉덩이를 붙잡고서 그의 팬티를 핥고 빨아 댔다.
“흐응…….”
진환의 커다란 성기를 입에 문 은율이 얕은 신음을 흘렸다. 아래가 핥아질 뿐 아니라 동시에 진환의 뜨거운 살덩이를 입에 물고 있으니 몸이 더 예민해진 느낌이었다. 아래가 연신 움찔거리고 자극되어 속이 간질거렸다.
은율의 팬티가 상당히 축축해지자 진환이 그것의 끈을 풀어 벗겨 내었다. 끈적하고 투명한 액을 품은 성기 기둥을 핥아 주던 진환의 눈에 검은 꼬리가 보였다. 원뿔형 딜도를 꽂아 착용하는 섹시하고 검은 꼬리는 안에 와이어가 내장되어 있어서인지 유연하게 치솟아 있었다. 그런 상태이다 보니 은율이 움직일 때마다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려 댄다.
꼬리가 흔들리는 모양새를 보던 진환은 은율의 성기를 목구멍 깊이 넣어 빨았다. 강한 자극에 은율의 엉덩이와 허리가 들썩여 꼬리가 크게 움직였다. 진환은 홀린 것처럼 은율의 꼬리에, 그리고 그 이음새 부분에 시선을 집중했다.
은율의 성기를 깊고 강하게 빨 때마다 꼬리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구멍 또한 야하게 움찔거렸다. 뭔가를 문 채 꽉 다물려고 애를 쓰는 구멍을 보다 보니 왜인지 괴롭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읍-!”
진환의 것을 입에 물고 있던 은율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구멍의 주름을 손끝으로 훑는 간지러운 느낌이 나더니, 다물린 입구로 손가락 하나가 슬쩍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진환의 얼굴을 향해 은율이 고개를 돌렸다.
“형, 뭐 하는……! 흣!”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손가락이 안으로 깊이 들어왔다. 꼬리 딜도의 입구 쪽은 몸체가 얇은 편이었지만 안쪽은 상당한 압박감이 있을 정도로 부피가 꽤 있었다. 그 상태에서 손가락이 밀고 들어오니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마요……. 으읏…….”
단단한 딜도와 내벽 사이를 파고든 진환의 손가락 하나가 자꾸만 깊이 들어왔다. 은율은 한 손으로 진환의 성기를 잡은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하지 말라니까……! 아-!”
파고들어 온 손가락이 은율의 전립선을 찾아 건드렸다. 은율의 고개가 뒤로 홱 젖혀지고 그의 허리가 가파른 경사의 곡선을 만들어 냈다.
“흐, 으읏-!”
진환이 은율의 성기 기둥을 핥아 주며 그의 안쪽을 몇 번이나 쑤셨다. 손가락에 밀린 딜도가 은율의 속을 강하게 압박하고, 그 와중에 안쪽 예민한 부분까지 찔리니 허리 아래가 사정없이 떨려 왔다.
“형, 그만……. 흣, 이러다 싸겠……어…….”
아래의 떨림에 맞춰 진환의 것을 붙잡은 은율의 손 또한 움찔거렸다. 털장갑 표면의 부드러움과 손의 떨림이 함께하니 여간 간질거리는 게 아니었다. 거기다 열기 띤 은율의 거친 숨이 성기의 귀두에 닿아 은은한 자극까지 해 댄다.
은율의 안쪽을 찔러 대던 손가락을 회수한 진환이 그를 붙잡아 돌려 눕혔다. 참다못한 진환이 위에 올라탄 채로 은율의 눈가와 볼에 입을 맞췄다. 간지러움 때문에 속눈썹을 떨던 그가 눈을 내리깔며 작은 소리로 부탁했다.
“형, 그……, 안쪽이 답답……한데 꼬리라도 빼고 하면 안 될까요……?”
아래의 뻐근함뿐만 아니라 안쪽에 느껴지는 압박감 때문에 답답하고 불편했다. 거기다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원뿔형 딜도의 가장 두꺼운 부분이 내벽을 자극해 대는 통에 속이 울리는 것 같았다.
진환이 은율의 두 다리를 한쪽 팔로 감아서 제 왼쪽 어깨에 얹듯이 기대게 했다. 그러고선 다른 손으로 꼬리가 시작되는 부분을 붙잡았다. 단단한 실리콘 덩이의 얇은 부분이 손가락에 붙잡힌다.
“빼 줄까?”
진환의 질문에 은율이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환은 곧바로 빼 줄 생각이 없는 듯, 꼬리 딜도 부분을 붙잡은 채 손가락의 등 부분으로 구멍 입구를 비비적거리기만 했다.
“이거 넣을 때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냐니…….”
은율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자, 진환이 꼬리를 살짝 잡아당겼다. 입구가 벌어지는 감각에 은율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렀다.
“젤도 없었는데 이만한 걸 어떻게 넣었어?”
은율은 떨기만 할 뿐 대답하지 못했다. 진환이 꼬리를 좀 더 잡아당기자 은율이 숨을 집어삼킨다. 반쯤 뽑아낸 딜도 부분을 다시 안으로 푹 집어넣자 허리가 들썩거리고 숨이 가빠진다.
“말해 줘, 율아. 어떻게 넣었어? 응?”
진환의 장난기 섞인 얼굴을 본 은율이 이를 악물었다. 다 알면서 꼭 저렇게 괴롭혀 댄다.
이대로 버티고 있어 봐야 진환이 더 괴롭혀 올 게 분명하다. 은율은 포기한 듯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손가락……으로……. 아읏!”
딜도를 빠르게 뺐다가 다시 안쪽 깊이 푹 찌르자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에 입을 맞춘 진환이 빙긋 웃어 보인다.
“안 들리는데.”
은율이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끝나고 두고 봐요, 형.’
진환이 원하던 대로 고양이 코스프레 소품을 착용한 채 그에게 맞춰 줄 의향은 충분하지만, 그 뒤에는 자신을 괴롭힌 대가를 어떻게든 치르게 해 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손가락으로 안을…… 직접 풀어서 넣었어요.”
“이렇게?”
진환의 손가락 하나가 아까처럼 또다시 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은율이 눈가를 찡그리며 몸을 들썩이는데 두 다리가 잡혀 있어 제대로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그새 체액이 나왔던 모양이다. 진환의 손가락이 아까에 비해 비교적 부드럽게 안을 들락거린다.
“이렇게 풀었어? 응?”
“형, 좀……, 흣, 그만 빼 줘요……!”
타박하듯 말하자 진환이 그제야 손가락을 빼내었다. 안쪽의 압박감이 약간 사그라졌다 싶은 순간, 진환이 다시금 딜도를 붙잡았다. 그러고선 씩 웃으며 그것을 단번에 확 잡아 뺐다. 핑크색 원뿔형 딜도가 드러남과 동시에 은율의 다리가 뻣뻣하게 굳고 엉덩이가 허공에 떠올랐다.
“아앗-!”
딜도의 굵은 부분이 안쪽을 긁으며 빠져나간 느낌의 여파는 상당했다. 긁힌 내벽이 갑작스럽게 수축하는 느낌에 전신이 찌르르 울렸다. 배설의 감각과 내벽의 자극이 맞물려 이루 말할 수 없는 묘한 쾌감을 가져왔다. 은율의 성기가 눈에 띄게 움찔하더니 당장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꺼덕거렸다.
그걸 본 진환이 못 참겠다는 듯 제 성기의 끝을 구멍에 대었다. 안쪽의 자극에 파들거리던 은율이 눈을 크게 뜨며 손을 내저었다.
“형, 잠……!”
은율이 말을 잇기도 전에 진환의 것이 단번에 안을 쳐올렸다. 구멍이 사정없이 벌어지는 화끈한 고통과 안을 채우는 압박감에 숨이 멎은 것도 잠시, 안쪽 깊은 곳을 정확히 찔린 충격에 은율의 것이 힘껏 고개를 들었다. 곧 그의 것이 왈칵 정액을 토했다.
“아앗-!”
은율의 배에 뜨끈한 정액이 흩뿌려졌다. 그의 허리가 높이 들썩이더니 쉴 새 없이 움찔거린다.
내벽이 성기를 비틀 듯 감싸 쥐는 느낌을 받으며 진환이 색스럽게 제 입술을 핥아 댔다.
“이젠 넣기만 해도 가는 거야? 야하기는.”
쾌감에 취해 몸을 떨면서도 은율은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장갑 낀 두 손으로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진환에겐 은율의 그런 부끄러워하는 모습마저 짜릿한 자극으로 다가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흥분한 탓에 축축하게 묻어난 체액이 마찰로 인해 찌걱하는 소리를 냈다. 뜨거운 성기가 안쪽을 가득 채웠다가 완전히 빠져서 구멍이 수축하려는 순간, 그것이 다시 안을 단숨에 치고 들어왔다. 내벽이 홧홧하게 쓸리고 안쪽 끝 벽이 아릿할 정도로 쳐올려지는 느낌에 은율의 허리가 훅 휘었다.
“하윽-!”
사정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라 은율의 성기가 안쪽에 남아 있던 정액을 한 번 더 울컥 뱉었다. 전신이 저릿해지는 충격과 쾌감에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찰나, 진환이 또 한 번 같은 방법으로 안을 강하게 때렸다.
전립선이 뭉개지는 것 같은 섬뜩한 자극과 내벽의 열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 팔로 매트를 꾹 눌러 대며 허리를 비틀었다. 장갑만 아니었다면 은율의 손에 의해 지금쯤 시트가 찢어질 듯 구겨져 있을 것이다.
사정감으로 인해 한껏 예민해진 성기가 주책없이 또 소량의 정액을 뱉었다. 은율은 제 배에 뿌려지는 뜨거운 정액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제 안을 가득 채우던 진환의 성기가 또다시 완전히 빠져나가려 하자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형, 그거…… 싫어…….”
완전히 빠져나갔다가 안이 줄어들 때 급박히 파고드는 감각은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쾌감을 가져다줬지만 그만큼 무섭기도 했다. 이러다 필름이 뚝 끊기듯 기절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진환은 섹스 중에는 야속할 만큼 얄궂었다. 역시나 은율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쪽을 강하게 쳐올린다.
“하악-!”
은율이 고개를 젖히며 눈을 홉떴다. 벌어진 입에선 완벽한 소리가 되지 못한 숨이 헉헉대며 흘러나왔고, 그의 성기는 몇 번이나 움찔하며 액을 흘렸다.
뜨거운 성기가 뿌리까지 깊이 박혀 들어서 내벽과 내장이 놀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마치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긴 바늘이 꿰뚫고 지나간 것 같은 강한 저림이 찾아와 숨마저 떨려 댔다. 진환의 것을 버겁게 받아들이느라 화끈해진 아래쪽의 아릿함마저 더해져 뇌를 흔들었다. 그와 맞물려 찾아온 쾌감은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진환은 은율이 연이어 사정하는 모습을 보며 제 성기가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강한 자극을 주면 줄수록 착실히 반응하는 은율은 진환에게 있어 최고의 흥분제나 마찬가지였다.
뿌리를 깊이 박은 채 비비적대자 은율의 허리가 움찔거리고 그의 성기가 움찔거린다. 은율이 두 팔을 뻗어 진환의 손을 덮었다. 부드러운 장갑 너머로 그의 떨림이 느껴진다.
“형, 흑, 이거 너무……, 너무 느껴져서 힘들어…….”
울먹이며 말하자 진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은율의 말대로 안쪽 내벽은 심할 정도로 요동치는 중이었다. 꽉 물었다가 밀어낼 듯 힘을 주는가 싶더니 진환이 숨을 삼킬 정도로 빨아당겨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진환의 손이 은율의 성기 아래에 달린 작은 고환을 호두 두 알 굴리듯 맞물려 매만졌다. 은율의 손이 장갑 안에서 진환의 손등을 강하게 그러쥐었다.
“응……, 하아……. 아……!”
“우리 율이는 이렇게 상냥하게 만져 주는 것보다 안쪽 깊이 강하게 쳐 주는 거 좋아하잖아.”
“흑……, 아냐…….”
눈물진 얼굴로 애써 부정했다. 하지만 안을 채운 성기는 일절 움직이지 않은 채 고환만 주물럭대고 있으니 간지럽기만 했다. 기분은 좋지만 그보다 더 강한 자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민망함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환이 몸을 숙여 은율의 초커 주변에 입을 맞췄다. 간질거리는 감각에 목 주변이 금세 예민해진다.
은율은 진환이 차라리 몸 여기저기에 선명한 자국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로 데뷔하기 전에는 그가 제 몸에 문신처럼 새겨 주던 자국과 깨문 흔적을 내심 좋아했다. 누군가에게 속박당한다는 느낌과 그것을 새길 때의 강한 자극은 절정으로 가는 길목을 훑는 것만 같았다.
이제 그런 자극을 받아선 안 되는 처지가 되어 버려서 그런지 더 애가 닳는 것 같았다. 뭔가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열에 달아올라 있을 때는 더욱더.
그걸 아는지, 진환이 나긋하게 속삭여 온다.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
안쪽을 채운 흉흉한 것이 주던 자극과 달리 입맞춤과 할짝임은 간지럽기만 했다.
“박는 거 싫으면 지금처럼 입으로만 해 줄까? 상냥한 게 좋아?”
진환이 다정하게 속삭이더니 은율의 목 언저리를 지나 쇄골을 훑고 가슴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가 연한 빛의 유두를 혀끝으로 감싸듯 핥는 순간 안쪽의 내벽이 꿈틀했다. 은율이 아랫입술을 잘근 짓씹으며 숨을 삼켰다.
부끄러움과 강한 자극의 여파 때문에 당황스러울 정도로 예민해진 몸은 자꾸만 은율을 부추겼다. 이걸로는 모자라니 더 강한 걸 요구하라고.
“박…….”
어렵사리 입술을 떼었으나 수치심 때문에 단번에 문장을 토할 수가 없었다. 한 글자만 뱉은 상태로 부끄러운 듯 두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장갑이 워낙 커서 그것만으로도 얼굴이 죄다 가려진다.
“박아 줘요……, 형…….”
은율의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를 들은 진환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가 은율의 유두를 힘 있게 쪽 빨았다. 가슴팍이 들썩이며 장갑 사이로 작은 신음이 터진다.
“그냥 박아 주기만 하면 돼? 살살 해 줄까?”
그 물음에 고개를 젓듯 안쪽 내벽이 연이어 꿈틀하는 게 느껴졌다. 진환이 순간적으로 인상을 쓸 정도로 내벽이 성기를 꽉 틀어쥔다.
“강하게 해 줘……. 아플……, 아플 정도로…….”
쥐어 짜낸 목소리에 담긴 말은 은율이 도저히 내뱉기 힘든 내용이었다.
“안쪽…… 깊이 박아 줘요……. 거친 게 좋아…….”
어디서 저런 말을 배워 온 건지.
큰 장갑에 얼굴을 완벽히 가리고 있어서인지 은율의 깊은 곳에 내재해 있던 욕망이 자꾸만 말이 되어 흘러나왔다.
“그만하라고 해도……, 싫다고 해도…… 계속해 줘요……. 계속 박아 줘…….”
진환의 집착과 욕망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걸 깨달은 상태로 박히는 것은 극상의 절정을 선사했다. 전신을 부숴 버릴 것처럼 느껴지는 강한 쾌감이 무서워서 벌벌 떨 정도로.
솔직해진 은율의 말을 들은 진환은 도저히 이성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은율의 말이 끝나자마자 흠칫하며 굳었던 그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고 강하게 아래를 움직여 댔다.
“아악-!”
여전히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몸을 들썩거렸다. 갑자기 공격당한 안쪽으로 인해 머릿속이 새하얘져 갔다. 아래쪽에서 폭풍처럼 밀려온 쾌감이 전신을 사슬처럼 옭아맸다.
“응아아-! 아, 흐읏-! 아-!”
은율의 높은 신음 사이로 살과 살이 부딪치는, 퍽퍽 대는 마찰음과 찌걱거리는 체액 비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은율의 것이 당장이라도 토정할 것처럼 삽시간에 꼿꼿해졌다.
“율아, 하아……, 이렇게 세게 박아 주는 게 좋아? 응?”
“흐윽-! 좋……아! 하악-! 더……!”
한 번 솔직해지고 나니 진환의 말에도 곧잘 대답한다.
진환은 이글거리는 눈과, 쾌감에 심취한 얼굴을 한 채 은율의 양 옆구리를 꽉 붙잡았다. 강하게 안을 쳐올릴 뿐 아니라 귀두 끝까지 뽑았다가 빠르게 처박길 반복했다. 안쪽이 강하게 요동치고 쉴 새 없이 쓸렸다 밀리는 감각이 소름 끼치게 찾아와 몸을 바르작거렸다. 하지만 진환에게 단단히 붙잡혀 있어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흐으응-! 아앗-!”
허리가 둥글게 튀어 오르더니 성기에서 울컥 정액이 뱉어졌다. 안쪽이 사정없이 조여들어 진환의 것도 토정하길 종용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사정 직전에 찾아오는 극한의 절정감이 좋기도 했지만, 지금이 제 것의 부피가 가장 클 때였다. 힘줄이 튀어나올 만큼 굵고 딱딱한 성기로 안을 쑤셔 대니 연이어 정액을 내뱉던 은율이 팔 하나를 뻗어 허우적댔다.
“흐윽, 형, 나 가, 갔어……! 하응-! 갔다고……! 아아-!”
“더 가, 율아. 갈 때 쑤셔 주면 안 멈추고 잘 가잖아.”
“아니야, 아니……! 아읏! 흑!”
허우적대던 손이 다시금 얼굴을 가리려 돌아간다. 진환은 은율의 두 손목을 붙잡아 그의 얼굴 옆 바닥에 내리눌렀다.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잔뜩 흐트러진 은율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아래가 자극되어 사정할 뻔했으나 가까스로 참아 냈다.
엉망이 된 얼굴이 드러나 부끄러웠으나, 그걸 표현할 새도 없이 아래가 너무 빠르게 꿰뚫려 헉헉대는 소리와 높은 교성이 터졌다.
“아앗-! 흣, 아-! 그……만……! 아아-!”
“그만두지 말라고 한 건 율이 너야.”
“흑, 하읏, 형, 제발……! 아윽!”
강한 쾌감에 겁먹은 은율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했다. 진환은 그의 눈물을 혀끝으로 핥아 주며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췄다. 은율의 머리와, 같은 색의 고양이 귀가 자연스레 녹아들어서인지 심각할 정도로 귀여우면서도 섹시해 보인다. 그걸 인식하자마자 가까스로 붙들고 있던 인내가 툭 끊어질 것 같았다.
진환이 신음을 삼키며 은율에게 속삭였다.
“형 쌀 것 같은데 밖에 할까?”
그렇게 말하며 느릿하게 빼기 시작한다. 안쪽의 허전함이 점차 커지자 은율이 잔뜩 흔들리는 눈으로 입을 오물거렸다. 기다려 주다가 아예 모두 빼 버리니 움찔하며 눈을 크게 뜬다.
“아, 안에…….”
다급하게 흘러나온 목소리가 아직 떨리고 있다.
“안에…… 해 줘요…….”
말하면서도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뒤처리의 귀찮음이 있긴 해도 제 안에 진환이 사정하는 느낌만큼 큰 충족감을 주는 것은 없었다. 마치 자신에게 영역 표시를 하는 듯한 그 감각은 솔직하게 말해서 은율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진환이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은율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혀가 질척하게 얽히는 그 순간, 진환의 것이 은율의 안을 강하게 쳐올렸다.
“흐읍-!”
은율이 눈을 크게 뜨고 하체에 힘을 준 그 순간, 진환의 것이 안에서 크게 움찔했다. 곧 내벽을 타고 퍼지는 뜨거운 느낌에 전신이 저절로 전율했다. 사정으로 인해 진환의 숨이 가빠지고 그의 나직한 신음이 키스 도중에 흘러나왔다.
끝난 줄 알고 숨을 고르며 키스에 응하던 그 순간, 진환의 것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은율의 안에서 가열된 움직임을 시작했다. 눈앞에 스파크가 튀고 연이어 시야가 점멸하는 느낌을 받으며 은율은 또다시 미친 듯 박히기 시작했다.
그 날 진환은 은율의 겁먹은 거짓말과 자극적인 진심을 들으며 날이 밝을 때까지 추삽질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