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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3. 연꽃 모텔로 가요 (3/28)

1부-3. 연꽃 모텔로 가요

명선은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재강과 애덕의 대화만을 곱씹었다.

아주 별세계야, 별세계.

그럼, 주변 사람들 상대로 몸을 팔고 있었던 건가? 엄마랑 아빠는 이걸 모르는 거고?

아니면 설마…… 엄마도?

명선은 곧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엄마가 그럴 리 없지. 가든이랑 교회 아니면 다른 데 신경 쓸 새도 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 그리고 아빠랑 사이도 좋잖아.

내가 엄마 아빠한테 찌르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당연히 잘리겠지?

그럼 걔한테 돈 주고 섹스한 사람들도 같이 잘리나?

그런 건달 같은 새끼라면 다 불어버리고 줄줄이 걸려 나가게 만들지 않을까? 비열한 새끼…….

근데 가든에 있는 사람 중 몇 명하고 한 거지?

고객은 주로 나이 든 여자들? 아니면 나이, 성별 상관없이?

아니야. 진성 헤테로니까 아마 여자만 상대하겠지.

돈은 얼마나 받는데?

돈만 주면, 나랑도 하나?

돈만 주면 되는 거야? 너한테 돈만 주면?

……얼마나 줘야 되지?

카운터 3일 보고 받은 돈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긴 해.

거기에 남은 용돈을 좀 더 보태면…… 20만 원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20만 원으로 되나?

남자는 절대 상대 안 한다고 뺄 수도 있으니까 진짜 혹할 만한 액수여야 할지도 몰라.

무리해서라도 좀 더 준비해야 하나? 대용이나 누나한테 꿔서?

아니면 그냥 다음 달 용돈 날까지 기다려서 30만 원 정도를 준비하는 게 나은가?

명선의 머릿속은 어느새 돈을 준비할 생각으로만 꽉 찼다.

* * *

쉼 없이 재강과의 섹스를 살 생각을 하면서도, 명선은 그 주 내내 돈을 쥐고 망설였다.

‘돈을 줄 테니 나와 섹스하자’라고 말하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까진 섹스가 필요하면 그저 앱을 켜거나 클럽에 가 자신과 같은 욕구를 가진 사람과 만나면 그만이었다.

이제껏 그렇게 잘 지내오던 명선이었는데, 갑자기 큰 변화를 마주하고 말았다.

재강을 알게 되는 바람에.

“이게 뭔 꼴이야.”

명선이 투덜거리고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곁에 앉아 칵테일을 홀짝이던 대용이 쯧쯧 혀를 찼다.

주말 밤, 클럽의 바에 앉아 빈둥대던 중이었다.

“한심한 써니. 정말 이게 뭔 꼴이라니.”

“그냥 다음 달에 용돈 받아서 더 많이 제시하는 게 나을까?”

“써니, 지금 몸이 너무 달아올라서 뇌가 작동을 멈춘 것 같다.”

“30만 원은 많긴 하지?”

대용이 명선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그거 다 너희 부모님 돈이야.”

“…….”

명선은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 이마를 문질렀다.

“소름 끼치게 부자인 것도 아니면서 같잖게 재벌 놀이를 하려고 해?”

대용의 잔소리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명선은 이 끝으로 맥주병 입구를 긁어대다가 울컥했다.

“근데 진짜 웃기는 인간 아니냐? 진작 알았으면 내가 너한테 고기까지 먹이면서 감별 안 했지. 그냥 돈 주고 자자고 했으면 됐던 건데.”

대용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망가진 거야.”

“내숭 떨고 있었어, 숯불 새끼.”

“너는 꼴값 떨고 있고.”

“…….”

명선은 번쩍이는 조명 아래 춤추는 남자들을 보면서도 재강 생각뿐이었다.

“근데 너 내가 감별해 봐서 헤테로면 그냥 물러나겠다며.”

“그건 걔가 남창인 걸 알기 전의 얘기고.”

“하긴, 네가 그렇게 쉽게 물러날 거라고 믿지도 않았다.”

“대용아, 내가 전 재산 닥닥 긁어 보니까 23만 7천 원 정도 나오거든? 천 원짜리 주긴 좀 그러니까 그건 빼고, 23만 원이 낫겠냐, 아니면 딱 떨어지게 20만 원이 낫겠냐? 그냥 3만 원 차이인데 은근히 고민된다.”

“진심 하찮고 가치 없는 고민이다.”

“아, 생각 좀 해봐. 네가 그 입장이면 23만 원이 낫겠어, 20만 원이 낫겠어? 아니, 너라면 어떨 것 같아? 누가 23만 원 주면서 섹스 한 번 하자고 하면.”

대용이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내 직업이 그렇다면 당연히 돈 받고 자겠지.”

“하긴, 그걸로 돈 버는 사람이면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지.”

“근데 헤테로라 남자 고객은 안 받을 수도 있다며.”

“과연 나를 거절할 수 있을까?”

명선이 자신의 턱 밑에 손을 받쳐 들고 대용을 쳐다봤다.

대용은 명선을 외면하며 칵테일을 들이켰다.

“그동안 항상 여자 고객만 받다가 남자 고객이 처음이라면 좀 망설여지긴 하겠지만, 솔직히 첫 남자가 나라면 걔한텐 완전 행운인 거야.”

“나르시시즘과 육욕에 눈이 멀어 그 사람이 남창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군.”

“아, 그럼 만약에 네가 그냥 너라면? 직업이 그쪽 아니고 그냥 너야. 근데 누가 23만 원 주면서 한번 하자고 해.”

“그럼 안 할 것 같은데.”

“왜? 23만 원인데도?”

“일단 돈을 받았으면 23만 원의 값어치를 해야 한단 얘기잖아. 그게 부담돼서 제대로 못 할 것 같다.”

“흠.”

“그리고 살짝 기분 나쁠 것 같기도 해. 침대까지 가기 위해 들여야 할 정갈하고 세심한 수고 같은 건 전혀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섹스만 하면 된다는 얘기잖아. 왜? 나한테 그 정도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는 없다는 건가? 그럼 기분 나쁘지.”

“…….”

남창이 아니면, 어떡하지?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이번엔 진짜로 눈을 파버리는 거 아니야? 본인은 교도소 가든 말든 정말 상관없는 것 같던데.

“써니, 그럼 넌 누가 23만 원 주면서 하자고 하면 할 거야? 네가 그냥 너여도?”

“난 바로 할 거 같은데.”

“왜?”

“섹스도 하고 돈도 생기고. 완전 개이득 아니야? 그만한 돈을 주고서라도 나랑 하고 싶을 정도로 내 몸에 꼴렸단 얘기고.”

“…….”

“나 잘하잖아. 23만 원이 아니라 23억 정도의 값어치는 한다고.”

“정말 23원도 주고 싶지 않은 인간이야.”

명선은 대용의 중얼거림엔 신경도 쓰지 않고 열심히 합리화할 구석을 찾는 중이었다.

“근데, 야, 남창 맞을 거야. 착각일 리가 없어. 애덕 씨가 별세계라고 했다니까. 자기 남편도 못 하는 걸 해줬다고 했다고. 그건 누가 봐도 진짜 막 뿅 가는 섹스 끝낸 고객이 할 법한 말 아니야? 안 그래?”

“전체 대화를 듣지 못한 상황에서 네 욕정만 가지고 끼워 맞춘 걸 너무 맹신하지 말라고.”

“그럼, 대용아, 그냥, 딱 그 대화만 놓고 봐봐. 남창이랑 고객의 대화 같이 들리긴 하지? 그건 동의? 인정?”

대용은 눈을 깜박이며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부분만 놓고 들으면 그렇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건 인정. 근데…….”

“남창 맞네.”

“…….”

“맞아.”

대용은 떨떠름한 표정인 채 한숨을 쉬었다.

“넌 정말 그렇게 그 사람이랑 섹스를 하고 싶어?”

“어.”

“남창 아니면 어쩔 건데?”

“남창 맞아.”

대용은 다시 쯧쯧 혀를 찼다.

“내 친구지만 가끔 참 역겹단 말이야. 너도 알지?”

“알어.”

명선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맥주를 마셨다.

“난 춤이나 출란다.”

대용이 명선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는 스툴에서 내려와 조명 아래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명선은 다닥다닥 붙어 춤추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습관적으로 숫자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22퍼센트, 49퍼센트, 57퍼센트…….

사람들 각자의 몸 위로 그 수치에 해당하는 숫자가 뾰롱뾰롱 소리를 내며 떠오르는 듯했다.

“…….”

무심히 사람들의 몸을 훑던 명선의 눈이 한 남자의 몸에서 멈췄다.

92퍼센트…….

클럽 안으로 지금 막 들어온 듯한 남자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명선은 위아래로 꼼꼼하게 남자의 몸을 살폈다.

발이 넓은 사람인지, 인사가 끝날 때쯤엔 다른 무리가 가까이 다가와 계속 인사를 나누고 잡담을 하는 듯했다.

92퍼센트면 최근 들어선 진짜 높은 수치인데.

명선은 맥주병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그쪽을 바라봤다. 남자는 그사이 명선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온 채였다.

명선은 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느릿느릿 맥주를 마셨다.

상대와 대화하며 크게 웃음을 터뜨리던 남자와 명선의 눈이 마주쳤다.

명선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상대에게로 눈을 돌렸던 그가 다시 명선을 바라보고, 상대를 보고, 또다시 명선을 봤다.

명선은 아주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가 고개를 돌리고 맥주를 마셨다.

그쪽은 다시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앉아 있는 명선의 곁으로 곧 누군가 다가와 섰다.

“같은 거로 주세요.”

92퍼센트의 남자가 지폐를 끼운 손으로 명선의 앞에 놓인 맥주병을 가리키며 바텐더에게 말하고 바에 등을 기댔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더 좋았다.

명선은 남자를 힐끗 쳐다봤다가 살짝 웃고 맥주를 마셨다.

명선이 눈을 내리깐 채 맥주를 마시는 동안 남자는 팔짱을 끼고 옆에 서서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요.”

바텐더가 맥주를 내놓자 그가 팔을 뻗어 병을 잡았다.

명선의 앞쪽에 내밀어진 그의 손등엔 둥근 도형 같은 것이 크게 새겨져 있었다.

“무슨 그림이에요?”

명선이 그의 손등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남자가 맥주병을 든 자신의 손등을 들여다보고 싱긋 웃었다.

“트라이벌이라고, 옛날 부족들이 하는 문양 같은 거예요.”

“멋있네요.”

내 타입은 아니야. 나라면 안 해.

“여기도 비슷한 거 있어요.”

남자가 자신의 티셔츠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드러난 그의 허리에 새겨진 타투가 보였다.

명선은 살짝 우묵하게 들어간 허리에서 시작해 바지 속으로 사라지는 그 타투를 보며 남자의 골반과 배, 갈비뼈 부근도 빠르게 훑어봤다. 그러고는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가 얼른 멈칫했다.

“아, 만져 봐도 돼요?”

마치 저도 모르게 손을 댈 뻔했다가 실례라는 걸 깨달았다는 듯이.

물론 모두 계산된 행동과 질문이었다.

“네.”

남자는 명선의 눈을 똑바로 보며 엷게 웃었다.

명선은 너무 끈적한 느낌이 나지 않게, 그러면서도 또 너무 무심한 느낌은 나지 않도록 하며 손끝으로 남자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타투 볼 때마다 왠지 그림 부분이 좀 튀어나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어서, 실제론 어떤지 궁금했어요.”

명선은 남자의 허리를 내려다보며 말하고 눈만 들어 그와 시선을 맞췄다.

물론 타투한 피부가 올록볼록하지 않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근데 진짜 그냥 평평하네요.”

그리고 필살기 미소 지어 주기.

손을 뗄 땐 바지 허리춤 가장자리를 가볍게 쓸면서, 못내 손을 떼기 싫다는 듯 느껴지도록 하기.

“여긴 튀어나왔어요.”

남자가 타투로 덮인 자신의 손등을 내밀면서 말했다.

명선이 놀라는 얼굴을 하며 그 손등을 쓰다듬었다가 피식 웃었다.

“에이, 아닌데?”

“힘줄 튀어나왔잖아요.”

남자가 자신의 손등에서 떨어지는 명선의 손을 붙잡고 다시 손등 정맥 부분에 갖다 댔다.

둘은 마주 보고 큭큭 웃은 후 손을 뗐다.

“서울은 처음 와 봤는데 좋네요. 이런 클럽도 많고.”

“아? 어디 사는데요?”

“부산.”

“그런데 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아요?”

명선이 남자의 뒤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남자가 피식 웃었다.

“어제 종로에서 놀았거든요. 다 어제 알게 된 사람들이에요. 근데 알죠, 이쪽 사람들 가끔 친한 척 쩌는 거.”

명선이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빙긋이 웃으며 명선을 마주 봤다. 그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먼저 피하는 법이 없었다.

“부산에서 와서 바다 냄새가 났구나.”

명선이 남자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남자가 키득거렸다.

“설마 생선 비린내?”

“확실히 해두게 좀 맡아볼까요?”

명선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면서 말하자 남자는 곧장 목 옆부분을 명선 쪽으로 내밀었다.

명선은 그 목에 윗입술과 코를 바짝 대고 숨을 깊게 들이켰다. 피부가 닿자 갑자기 몸에 불이 확 붙는 기분이었다.

남자의 목에선 향긋하고 부드러운 냄새가 났다.

“바다 냄새가 아니라 씨 솔트 향이었네.”

명선은 남자의 목에 코끝을 댄 채 낮게 말하고 천천히 몸을 뗐다.

“냄새 좋네요.”

“발목에서도 날 거예요.”

남자가 말하며 자신의 발을 가리켰다.

명선의 머릿속으로 곧장, 다리를 활짝 벌리고 누워 있는 그의 벌거벗은 몸이 상상됐다.

명선이 몸을 부딪칠 때마다 남자의 아랫배 위에서 이리저리 춤을 출 그의 붉고 단단한 성기.

대책 없이 허공에 흔들리는 발목.

그 발목을 잡아 옴폭 팬 부분에 입을 맞추는 자신의 모습.

남자의 92퍼센트짜리 몸.

명선은 남자의 발목을 내려다봤다가 종아리, 무릎, 허벅지, 골반을 지나며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옮겨 마치 그 몸을 스캔하듯 했다.

마지막으론 그의 눈을 응시했다.

남자는 그대로 선 채 명선이 자신을 스캔하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명선은 남자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필살기 미소를 한껏 날린 후 남은 맥주를 마시고 일어섰다.

“그럼, 재밌게 놀다 가세요.”

최대한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명선은 곧장 남자를 지나쳐 문 쪽으로 향했다.

찰나 그의 얼굴엔 당혹감이 떠올랐다.

음악 소리가 커서 그가 자신을 불렀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명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 클럽 밖으로 나왔다.

[나 먼저 들어간다]

명선은 밖으로 나와 대용에게 문자를 보내고 택시를 타러 가기 위해 걸었다.

남자와 플러팅을 주고받던 순간, 명선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나 매력 넘치는 인간인데.

92퍼센트나 되는 놈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와서 추파를 던지는 게 바로 난데, 숯놈 너 따위가 굴복 안 하고 배길 것 같냐.

솔직히 92퍼센트도 100퍼센트 앞에선 잔챙이지. 나는 앞으론 고급만 상대할 거야. 저런 잔챙이 말고.

왜냐면 나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명선은 자신감과 뿌듯함, 성적 긴장감까지 꽉꽉 들어찬 몸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다.

그래도 20만 원보다는 23만 원을 제시하는 게 재강을 혹하게 하기에 더 낫겠다고 생각하며.

* * *

명선은 주차장이 아닌, 가든과 좀 떨어진 곳의 길가에 차를 세우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올라갔다.

월요일 오후의 브레이크 타임인 가든은 고요했다.

명선은 담장 옆에 서서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숯놈 출근했으려나.

명선은 낮은 담 너머를 기웃거리다가 그 담을 따라 걸어 뒤쪽으로 갔다. 뒤뜰로 통하는 입구가 있는 곳이었다.

그 입구 바로 옆에 숯불 방이 있었다.

양자와 정식의 눈에 띄지 않고 딱 재강만 만나 용건을 전달하고 바로 빠져나오고 싶었다.

근데 정말 눈을 파버리면 어쩌지.

문득 든 생각이 명선의 걸음을 늦추게 했다.

이틀 전 밤, 92퍼센트짜리 부산남 덕에 그렇게나 빵빵하게 차올랐던 자신감과 온갖 패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그라들었고, 정말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의심이 자꾸만 머리를 쳐들었다.

여기까지 운전해 오는 동안에도 계속 들었던 생각이었다.

재강이 대체 혼자 무슨 망상을 펼치는 거냐며, 짐승같이 포효하면서 공격이라도 하면 어쩔 것인지.

명선은 멈춰 선 채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짧게 도리질을 치고는 계속 걸었다.

어쩌긴 뭘 어째. 치면 나도 치고, 욕하면 나도 욕하고, 그러고 마는 거지, 뭐 씨발.

명선은 애써 자신을 다독이고 허세를 부풀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숯불 방에 가까워질수록 명선의 청각이 곤두섰다.

그간 숯불 방에 가까이 갈 때마다 들려왔던 소란스러운 소리들은 하나도 없이 고요했다.

아직 안 왔나?

명선은 뒷문 입구로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주변을 살피고 몸도 들이밀었다.

재강은 보이지 않았다.

재강이 배낭을 걸어두는 곳도 비어 있는 걸 보니 아직 출근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직원 장부에서 봤을 때 평일 내내 저녁 근무, 토요일은 오프, 일요일엔 종일 일한다고 했으니 월요일인 오늘도 출근하긴 할 것이었다.

명선은 숯불 방 앞에 서서 숯불 착화기와 숯 상자, 싱크대, 물속에 잠긴 불판 몇 개, 벽에 걸린 앞치마, 목장갑과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쌓인 선반 등을 찬찬히 바라보다 그 안쪽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착화기 앞에는 낡은 의자가 있었다. 그 옆엔 반쯤 찬 생수통이 있고 빈 상자, 목장갑 따위도 널브러져 있었다.

명선은 의자 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호출 기다릴 땐 여기 앉아 있는 건가.

“뭐냐?”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명선은 소스라치며 뒤를 돌아봤다.

한쪽 어깨에 배낭을 멘 재강이 숯불 방 앞에 서 있었다.

“뭐긴.”

명선은 애써 태연하게 말하고 공연히 착화기를 쓰다듬었다.

“어떻게 쓰는 기계인가 궁금해서 보고 있었다.”

재강은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 벽 쪽으로 갔다.

명선은 뒤에서 재강이 내는 소리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채 착화기를 들여다보는 척했다.

배낭을 벽에 걸고 앞치마를 입은 듯한 재강은 싱크대 쪽으로 갔다.

물속을 뒤적이는 소리가 나고 곧 윙윙거리며 세척기가 돌아갔다.

명선은 찌푸린 채 의미도 없이 착화기 뚜껑을 노려보다가 머뭇머뭇 걸어 나와 재강이 있는 쪽으로 갔다.

그 몸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나왔다. 일주일 만에 보니 더 감동적이었다.

저런 몸을 놔두고 잔챙이들한테 박아대고 92퍼센트랑 시시덕대고…… 권명선, 수준 좀 높이자.

명선이 넋을 빼고 있는 동안 재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업에 몰두했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하지?

나는 네가 별세계를 만든 일을 알고 있다? 네가 몸을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 애덕 씨한테 얘기 듣고 왔다?

아니면…… 돈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야 하나?

작업을 끝낸 재강이 세척기를 끄자 사방은 갑자기 소름 끼치도록 고요해졌다.

재강은 명선을 소 닭 보듯 하며 벽 앞으로 가 앞치마와 젖은 목장갑을 벗었다.

“야, 너…….”

명선이 입을 떼자 재강이 수건에 손을 닦으며 명선을 쳐다봤다.

명선은 어물거리다 입을 다물고 침을 꿀꺽 삼켰다.

바지 뒷주머니에 꽂힌 봉투 속 23만 원이 온몸을 후려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 제대로 해라.”

명선은 겨우 웅얼대고 홱 돌아 뒷문으로 허둥지둥 나왔다.

권명선, 뭐 하냐!

길을 황급히 걸어 내려오며 명선은 속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이런 식으로 자꾸 수상하게 집적댈수록 저 새끼 신경을 거스르게 돼 있다고!

지를 거면 지르고, 말 거면 말고! 너 똑바로 안 하냐! 정신 못 차리냐!

겨우 차까지 돌아온 명선은 운전석에 올라타자마자 소리 내서 숨을 몰아쉬었다.

돈 줄 테니까 같이 자자고 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렵지? 어차피 저 새끼가 돈벌이로 하는 일일 텐데.

애덕 씨는 어떻게 한 거지? 아니, 애초에 어떻게 알고?

“으으.”

명선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낮게 신음했다.

한참 그러다 머리는 다 헝클어진 채 앞 유리 너머를 보다, 다시 머리를 쥐어뜯고 다시 앞을 멍하니 보길 반복했다.

* * *

명선은 저녁 내내 차를 몰고 가든 주위를 뱅글뱅글 돌거나 길가에 차를 세우고 멍하니 앉은 채 시간을 보냈다.

재강의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몇 번이나 집에 그냥 가 버리고 싶은 걸 참으며 명선은 마음을 다잡았다.

최종적으로 자신감을 얻기 위해, 이제껏 섹스 후 자신에게 반해 매달리던 사람들이나 넋이 나가 황홀해하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기도 했다.

자신이 잘나고 대단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거듭 곱씹으며.

명선은 그렇게 차 안의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앉아 있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성큼성큼 걸어 가든 뒷문 쪽으로 향하는 동안 다시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숯불 방 쪽은 고요했다.

이제 좀 있으면 밥 다 먹고 소주도 마저 마시고 나오겠지.

예상하며 뒷문 안으로 들어서던 명선은 작게 소스라치며 멈춰 섰다. 재강이 한쪽 손에 배낭을 든 채 벽 앞에 서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티셔츠가 바뀐 것, 그리고 바닥이 젖은 걸 보니 평소보다 저녁 식사를 일찍 끝내고 나와 마무리도 금세 끝낸 후 집에 막 가려던 참인 모양이었다.

놓칠 뻔했잖아.

명선은 안도하며 재강을 바라보다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고개를 돌린 재강의 미간이 살짝 꿈틀하는 것이 보였다. ‘쟤 또 왔네’ 싶은 얼굴이었다.

그래, 너도 내가 지겹겠지. 나도 이런 내가 지겹다. 그러니까 빨리 결판을 내자.

명선은 이를 악물고 침을 한 번 삼킨 후 입을 열었다.

“얘기 좀 하지?”

“더럽게 알짱거리네…….”

재강이 한숨 쉬듯 중얼거리고 핸드폰을 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뭔 얘기.”

재강이 한쪽 어깨에 배낭을 메며 바깥쪽으로 걸어 나오자 명선은 무의식중에 한 발짝 물러났다가 도로 다가섰다.

돈 벌게 해주겠다는데 온갖 귀찮은 티는 다 내고 있네.

명선은 손을 뒤로 돌려 뒷주머니에 꽂힌 봉투를 지그시 누르다가 홱 잡아 빼 재강에게로 내밀었다.

“…….”

재강이 눈만 내리깔아 봉투를 보고 다시 명선을 쳐다보며 묻는 표정을 지었다.

“열어 봐.”

명선이 봉투를 한 번 더 재강 쪽으로 들이밀었다.

재강은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뻗어 봉투를 가져갔다.

이제 주사위는 완전히 던져진 거야.

봉투가 손을 떠나는 순간 명선은 긴장과 함께 조금 후련한 기분도 느꼈다.

“…….”

재강은 찌푸린 얼굴 그대로 봉투 안을 들여다보고, 숯불 방의 전등 빛이 봉투 안을 비추게 하려는 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가 명선을 쳐다봤다.

안에는 5만 원짜리 네 장과 만 원짜리 세 장이 있을 터였다.

“보너스?”

재강이 조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쫄지 말자, 권명선. 너는 100퍼센트의 몸을 취할 자격이 충분해.

명선은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부업으로 몸 파는 일도 하시는 것 같던데.”

“…….”

재강의 눈썹이 살짝 꿈틀했다.

“다 알고 왔으니까 괜히 딴소리는 할 거 없고. 여기저기 떠벌릴 생각도 없으니까 걱정할 것도 없어.”

“…….”

“그 정도면 어때? 혹시 손님 성별을 가려 받아? 나이는 굳이 안 가리는 것 같아 보인다만.”

“…….”

“장소를 그쪽에서 제공하면 거기로 가고, 아니면 모텔비 정도는 내가 낼 수 있어.”

혹시 몰라 명선은 대용에게서 모텔비만큼의 현금을 미리 빌려두기까지 했다.

“…….”

재강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말없이 명선을 바라보다, 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숙여 봉투를 내려다봤다.

저건 뭔 반응이야. 돈이 너무 많아서 놀랐나? 아니면…… 혹시 내가 너무 싸게 책정했나?

몸값이 저거보다 더 비싸다고 하면 어떡하지?

명선은 그제야 문득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애덕이 말한 대로 재강이 정말 ‘다재다능’하고 ‘별세계’를 선사할 정도로 실력이 좋다면, 가격이 그보다 높을 가능성도 있었다.

재강은 물끄러미 봉투를 내려다보다가 지폐들을 밖으로 살짝 꺼내 세었다.

지폐를 다 세고 나서도 재강이 돈을 내려다보고만 있자 명선은 속이 타기 시작했다.

어이 숯불. 된다, 안 된다 말이라도 좀 하지? 되도록이면 된다는 쪽으로.

“……왜, 모자라?”

“…….”

“모텔비까지 내가 내고 대실 시간 정도만 같이 있으면 될 텐데, 그게 적다고?”

재강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

“…….”

명선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눈을 깜빡였다.

재강은 무심히 봉투 안에 돈을 도로 넣고 배낭 안에 집어넣었다.

“아…… 어, 언제 할 거냐고?”

“그래.”

명선은 얼얼한 기분인 와중에 안도했다.

어쨌든 남창이 맞긴 맞았던 거잖아? 씨, 괜히 고민했네.

그럼 빨리 해치우자. 참을 만큼 참았다.

“지금 해도 되고.”

“난 일해야 돼.”

“퇴근하려던 거 아니야?”

“다른 알바 있어.”

“이 밤에 무슨 알바를 또 해?”

“난 누구처럼 한량 짓 할 팔자가 아니라서.”

“그건 언제 끝나는데?”

“2시 반.”

“그럼 그 후에?”

“끝나면 피곤해. 잘 거야.”

모텔에 와서 섹스 한 판 하고 자도 되지 않나? 부업을 대하는 태도가 형편없네.

“그럼 언제 일어나는데?”

재강이 피식 웃었다.

“너 그렇게 급해?”

명선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왕 할 거면 빨리하는 게 낫지, 선금도 아니고 돈을 다 줬는데.”

말을 끝내고 명선은 아차 싶었다.

일단 선금 몇만 원만 주고 나머지는 섹스 끝난 다음에 준다고 해야 했는데, 망할. 마음이 급해서 한꺼번에 다 줘버렸네. 저 돈만 받고 입 싹 씻어버리면 어쩌려고.

“내일 낮 열두 시.”

재강이 말하고 다른 쪽 어깨에도 배낭을 멨다.

명선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장소는.”

“이 근처 모텔로 해. 돈은 말한 대로 네가 내는 거고.”

명선은 재강의 눈을 노려보며 핸드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켰다.

“근데 네가 정말 나올지 안 나올지 어떻게 믿지?”

“믿든지 말든지는 네 맘이지. 어차피 내 개인 정보는 사장 아들인 네가 갖고 있는 거고.”

하긴, 23억도 아니고 23만 원인데 설마 그걸 갖고 알바 자리까지 버리면서 튀기야 하겠어?

명선은 그사이 지도 앱에서 근처 모텔을 검색해 가든과 적당히 떨어져 있는 곳 중 하나를 클릭했다.

‘연꽃 무인모텔’

명선이 핸드폰을 내밀자 재강이 받아 모텔 위치를 확인했다.

고개를 끄덕인 재강은 명선에게 도로 핸드폰을 건네고 바로 몸을 돌려 뒤뜰 잔디를 휘적휘적 지났다.

명선은 그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목소리가 너무 크게 나오지 않도록 애쓰며 소리쳤다.

“너 꼭 나와라.”

재강은 들었는지 어쨌는지 아무 대꾸도 없이 건물 모퉁이로 사라졌다.

* * *

명선이 연꽃 무인모텔에 도착한 시각은 11시 52분이었다.

세 군데 빼고는 개별 주차 칸의 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명선은 그중 가장 끝 칸으로 들어가 차를 주차했다.

설마 저 중 하나가 숯놈 차는 아니겠지. 먼저 왔을 리가 없어. 차가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 모르고.

셔터가 내려간 후 명선은 운전석에 잠시 그대로 앉은 채 핸들을 만지작거렸다.

직원 명부에서 핸드폰 번호라도 적어올 걸 그랬나. 먼저 들어가 있을 테니까 몇 번 방으로 오라고 문자 보내 놓으면 되는 건데.

명선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다가 한숨을 쉬며 차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이미 늦은 고민이었다.

통로를 지나 1층으로 가서 유리문을 열자 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보였다. 굵직한 발이 입구의 윗부분 절반을 가리며 드리워진 채였다.

명선은 그 발 아래쪽으로 살짝 보이는 거리를 응시하다 아주 드물게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흠칫했다.

가든과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주 먼 건 아니어서, 정말 운 나쁘게 직원이나 자신의 부모를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것 때문에 걔한테 서울까지 오라고 할 수도 없고…….

아니, 근데 내가 이렇게까지 봐주면서 저거랑 섹스를 해야 하나? 23만 원 탈탈 털어 주고 모텔비도 내고? 고작 몸이 100퍼센트라서?

……100퍼센트면 ‘고작’은 아니긴 하지. 저런 몸을 만나는 게 흔한 일도 아니고.

어쨌든 대실 시간 동안은 같이 있을 테니까 세 번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면 질릴지도 몰라.

그러고 나면 딱 돌아서서 영원히 굿바이 하는 거지.

아니면, 막상 해봤는데 생각보다 섹스가 진짜 별로일 수도 있잖아.

그럼 돈이랑 들인 정성이 좀 아깝긴 하겠지만, 어쨌든 이제 더는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니까 나름대로 성과가 있긴 해.

“…….”

명선은 입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스르르 눈을 내리깔았다.

근데…… 더 하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이번 한 번으로 만족 못 하고, 다음에도 또 하고 싶으면?

그럼 그때마다 23만 원 플러스 모텔비를 갖다 바쳐야 하는 건가?

“으.”

명선은 생각을 떨쳐내려 고개를 저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좋아 봤자지, 씨. 세 번 박고 나면 그걸로 된 거야.

어차피 남자 경험은 없는 것 같은데, 처음 하면서 뭐 얼마나 그렇게 잘하겠어.

네가 박을 땐 상대한테 별세계를 만들어 주는지 어쩌는지 모르겠다만, 박히는 역할일 때도 과연 별세계를 반짝반짝 꾸려 줄 수 있을까?

센조이라도 제대로 하고 오면 다행이지.

아니, 그 몸이 벗은 걸 보고 있는 것만으로 이미 별세계일지도…….

재강의 몸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던 명선은 마당 입구로 누군가 들어서자 얼른 뒤로 물러나며 문을 닫았다.

배낭을 멘 재강이 자전거를 끌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명선은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59분.

진짜 오긴 왔네. 늦지도 않고.

명선은 검게 선팅된 유리문을 통해 바깥의 재강을 바라봤다.

재강은 한쪽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쪽으로 걸어왔다.

가든이 아닌 곳에서 보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명선은 재강의 몸을 훑어보며 입술을 한 번 깊게 빨았다.

그 터미널 화장실에서 남자의 손에 이끌려 칸 안으로 들어가던 때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문 앞까지 와 재강이 손을 뻗으려는 순간 명선은 문을 당겨 열었다.

흠칫한 재강은 문 뒤에 선 명선을 보고 미간을 한 번 살짝 찌푸렸다가 말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예의상이라도 인사 한마디가 없어.

명선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계단을 오르는 재강의 뒤를 따랐다. 시선은 자연스레 재강의 엉덩이에 꽂힌 채였다.

싸가지 없고 날건달 같은 놈인 건 둘째치고 몸은 진짜…….

명선은 문득 감격스러웠다.

이런저런 수모를 겪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엔 이만큼 일을 끌고 왔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자신이 그런 집념으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곧 재강의 다 벗은 몸을 보고 그 몸을 마음껏 만질 수도, 그 몸에 마음껏 박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재강이 결제기 옆에 멈춰 서서 팔짱을 끼고 명선을 쳐다봤다.

명선은 주춤했다가 얼른 지갑을 꺼내 대실비를 결제했다.

명선이 그러는 동안 재강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무표정으로 맞은편 벽만 보고 있다가 방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복도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명선은 그 뒤를 따르며 재강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어쩐지 자꾸 입 안이 마르고 심장 뛰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평소 섹스 상대와 모텔방으로 들어가던 때 느끼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긴장감이었다.

왜 이렇게 자꾸 긴장되지?

긴장해서 잘 안 서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복도는 고요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사방이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재강은 배낭을 한쪽에 있는 소파에 내려놓고 명선을 돌아봤다.

“씻는 건.”

“……뭐?”

“누가 먼저 씻냐고.”

“아…… 내가 먼저 씻을게.”

제대로 된 탑이라면 먼저 후딱 씻고 나와서 바텀을 기다려 줘야지.

재강이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 끝에 걸터앉으며 텔레비전을 켰다.

명선은 욕실 안으로 들어가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지고 재빨리 몸을 씻었다.

씻는 동안 자꾸 발기되는 바람에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하고 주문을 외우며 잠재우느라 애를 먹었다.

샤워 후, 명선은 몇 번이나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춰 봤다. 앞뒤로 들여다보다가 팔굽혀펴기도 몇 번 했다.

돈을 주고 하는 섹스이긴 하지만, 그리고 재강은 진성 헤테로일 게 분명하지만, 이왕이면 재강이 자신의 몸을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라도 하길 바랐다.

몸에 어느 정도 공을 들인 후, 명선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골반이 가장 섹시하게 보일 만한 위치에 오도록 세심하게 조정했다.

명선이 욕실 밖으로 나오자 텔레비전을 보던 재강이 스르르 일어섰다.

재강은 걸음의 보폭과 각도까지 조절하며 걸어 나오는 명선을 본체만체 지나쳐 욕실 쪽으로 갔다.

으이구, 답 없는 헤테로 새끼.

명선은 침대와 욕실 중간에 선 채 속으로 투덜거리며 재강을 돌아봤다.

명선이 보고 있는데도 재강은 욕실 문 앞에 서서 거리낌 없이 티셔츠를 훌렁 벗더니 바지와 속옷, 양말까지 한꺼번에 쑤욱 벗었다.

씨발.

명선은 저도 모르게 숨을 훅 들이켰다. 갑자기 몸 안의 뜨거운 피가 성기로 후루룩 쏠리는 듯했다.

와, 씨발.

재강이 욕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명선은 숨을 크게 내쉬며 침대에 손을 짚고 엎드렸다.

100퍼센트에 1,000퍼센트.

명선을 완전히, 급속도로 달아오르게 만들 수 있을 만한 몸이었다.

다 벗은 걸 보니 더 강력했다.

좆됐다…….

내가 나를 아는데, 저건 절대로 그냥 잊힐 몸도 아니고 섹스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몸도 아니야.

저 몸이랑 하는 섹스가 안 좋을 리 없어. 천년 묵은 발기 부전도 바로 세우고 질질 싸게 만들 수 있는 몸이라고.

미쳤다, 진짜.

명선은 터져 나오는 헛웃음을 애써 죽이며 허리를 펴고 서서 숨을 골랐다.

권명선. 잘했어. 잘 발견했고 잘 지켜봤고 잘 집착했고 온갖 수모도 다 잘 참으면서 여기까지 잘 끌고 왔어. 내가 너 존나 칭찬한다.

나중에 얼마나 더하고 싶어지든, 일단 지금은 저 은총 가득한 몸을 마음껏 즐겨보자.

권명선. 너 자격 있어.

명선은 욕실에서 들려오는 샤워기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얼마간 꿈꾸는 얼굴을 하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숙이고 다시 성기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 * *

침대에 걸터앉아 텔레비전 화면을 멍하니 보던 명선은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또 이를 악물었다.

재강은 수건 하나 두르지 않고 완전히 벌거벗은 채 욕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군데군데 안 닦인 물기가 피부 위에서 반짝였다.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 이 자식아. 넌 도대체…… 신비감 조성이라는 것도 모르냐?

아니면, 혹시 저게 다 전략인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아니지. 그 정도로 머리를 쓰면서 사는 놈 같지는 않아.

명선은 재강이 가까워지자 얼른 등을 돌리고 텔레비전을 끄면서 일어섰다.

그 와중에 수건에 가려진 자신의 앞섶이 불룩하게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 돌겠네.

멋대로 반응하는 성기에 짜증이 나기도 했고, 자신이 그러는 동안 재강의 것은 여전히, 조금도 발기하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이 왠지 분했다.

설마 샤워하면서 몰래 딸치고 물 좀 빼놓은 건 아니겠지.

근데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보통 아무리 빨라도 10분은 걸리는 것 같던데.

집에서 관장을 하고 왔나?

그럼 좀 의왼데.

명선은 재강에게서 등을 돌린 채 엉거주춤 서 있다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재강은 테이블 앞에 서서 어메니티가 담긴 바구니를 뒤적이고 있었다. 재강이 콘돔을 집어 들자 명선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그거 말고 저거 쓸 거야.”

재강이 고개를 들었다가 명선이 가리킨 침대 옆 탁자를 바라봤다.

명선이 섹스 응급 키트에서 미리 꺼내 갖다 놓은 콘돔과 윤활제가 있었다.

“내가 모텔 콘돔은 취급 안 해서.”

재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콘돔을 도로 내려놓은 후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내가 알아서 세울 테니까 먼저 누워 있든지 해라.”

재강이 명선의 불룩한 앞섶을 가리키며 말했다.

언제 봤지, 씨발?

명선은 움찔했다가 재강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니, 잠깐, 뭔 소리야, 돈을 받았으면 받은 값을 해야지. 섹스엔 당연히 전희도 포함되는 거 아닌가?”

재강이 허리에 양손을 짚은 채 잠시 명선을 바라봤다.

“전희는 얼마고 박는 건 얼만데?”

“뭐?”

“전희 값만큼 환불해 줘?”

“말하는 거 보소?”

“너 같은 거랑 몸 비벼댄다고 설 것 같지도 않아서 그래. 차라리 내 손으로 하는 게 낫지.”

“…….”

명선은 눈을 크게 뜬 채 재강을 쳐다보다가 입을 다물고 가까스로 억지 미소를 지었다. 명선의 입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남자 고객이 처음이라 저러는 거겠지.

그래. 남자 고객이 처음이면 그럴 수 있어. 그 정도는 내가 이해를 해줘야지. 100퍼센트 몸인데.

그 모진 수모를 다 겪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다 뒤집어엎고 나가 버릴 순 없잖아?

“잘…… 세워 봐라, 그럼.”

명선이 잠긴 목소리로 말하고 침대 위로 느릿느릿 올라갔다.

재강의 말을 듣는 순간 성기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실제 발기가 풀린 건 아니었다.

명선은 이를 악문 채 침대 헤드 쪽으로 가서 기대앉았다.

이따 박힐 때 보자, 씹새끼야. 전립선 존나 긁어서 내 밑에서 발발 떨고 눈 돌아가게 만들어 준다. 그때 가서 보자고.

재강은 명선에게 등을 보이고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자신의 것을 문질렀다. 피부가 마찰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났다.

“…….”

명선은 재강의 뒷모습을 훑어봤다.

재강의 피부는 매끈하고 팽팽했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근육과 뼈가 그 피부 아래에서 관능적으로 춤을 추었다.

문득 그 터미널 화장실의 퀴퀴한 냄새가 명선의 코끝을 스치고 가는 듯했다.

명선이 몸을 부딪칠 때마다 진동하듯 움직이던 남자의 등. 그 굴곡들.

명선은 재강의 등에 시선을 고정한 채 허리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걷어내고, 이미 한참 전부터 빳빳하게 서 있는 자신의 성기를 만지작거렸다.

나 쟤 단골 될 것 같은데.

불길하면서도 설레는 생각이 명선의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이대로 그냥 끝내기엔 말도 안 되는 몸이었다.

엎어 놓고 한 번, 정상위로 한 번, 그러고 나선 내 위에 앉혀 놓고 한 번.

다 하고 나면 가격 흥정을 좀 하자. 원래 얼마씩 받는지 물어보고, 다음엔 그 가격으로 하자고.

분명 23만 원이 적은 건 아니었을 거야. 그러니까 그 돈 보고 나서 남자인 나랑도 한다고 한 거겠지. 저 진성 헤테로 새끼가.

혹시 좀 꺼림칙해하면, 원래 받는 거에서 조금만 더 얹어 주겠다고 할까.

얼마여야 저 새끼가 납득할까. 3만 원 정도……?

얼마 후 재강이 일어서서 명선을 돌아봤다.

명선은 재강과 눈을 맞췄다가 그 몸을 훑어보며 자신의 성기를 계속 문질렀다.

터미널 화장실에서 만났던 남자의 성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발기한 재강의 것은 훌륭했다.

100퍼센트의 몸과 어우러져 훌륭해 보이는지, 성기만 따로 떼어 놓고 봤을 때도 여전히 훌륭한지는 알 수 없으나, 재강의 몸 구석구석은 그저 감탄스럽기만 했다.

몸은 100퍼센트 완벽 노가다 근육에, 좆은 참좆이기까지 하네.

저런 게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내 눈에 띄었지?

머뭇대는가 싶던 재강이 침대에 두 손과 무릎을 대고 엉금엉금 기어 명선 쪽으로 왔다.

콘돔을 집어 들고 몸을 살짝 일으킨 명선은 재강이 누울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며 무릎을 꿇고 앉아 포장지 입구를 찢었다.

재강은 그런 명선 앞에 무릎을 대고 앉았다.

명선이 포장지에서 꺼낸 콘돔을 재강이 가져갔다.

“누워.”

재강의 말에 명선은 빈 콘돔 포장지를 쥔 채 어리둥절한 얼굴로 재강을 바라봤다.

재강은 자신의 성기에 콘돔을 끼우고 있었다.

명선의 머릿속으로 물음표가 줄지어 지나갔다.

재강은 콘돔을 다 끼우고 명선을 보더니 눈짓으로 침대를 가리켰다.

“엎드리든지.”

“워, 잠깐만. 잠깐만.”

명선이 양손을 쳐들고 뒤로 조금 물러났다.

“그걸 왜 껴?”

재강이 아래를 내려다봤다가 다시 명선을 봤다.

“콘돔 없이 한다고?”

“아니, 그걸 왜 네가 끼냐고.”

“그럼 누가 껴?”

“내가 껴야지, 내가 박을 건데.”

“…….”

얼마간 눈을 가늘게 뜨고 명선을 바라보던 재강이 시선을 옆으로 돌리더니 픽 웃었다.

저 새끼가…… 맨날 박기만 하던 헤테로라 헷갈렸나? 애초에 제대로 설명을 해야 했나?

재강은 허리에 두 손을 짚고 엷게 웃음 띤 얼굴인 채 있다가 곧 콘돔을 잡아 빼며 침대에서 내려갔다.

그렇지. 이제 상황 파악이 되냐?

“가서 제대로 씻고 와.”

명선이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며 말하고 빈 콘돔 포장지를 구겨 바닥으로 던졌다.

어쩐지 빨리 나오더라니.

얼마든지 기다려 줄 테니까 뒤에 청소 깨끗이 하고 나와라. 콘돔은 다섯 개나 챙겨왔으니까 새것 뜯어 쓰면 되고.

안도하는 명선의 눈에 속옷을 입는 재강이 들어왔다.

“야, 뭐 하냐?”

“너한테 박힐 일 없다.”

명선은 눈만 끔뻑이며 바지와 티셔츠, 양말을 차례차례 착용하는 재강을 바라봤다.

“……뭐라고?”

“바텀 안 한다고.”

재강은 명선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옷을 다 입고 배낭에서 지갑을 꺼냈다.

“뭔 소리야, 그냥 가겠다고?”

재강이 지갑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한 장씩 차례차례, 총 네 장을 침대 발치에 나란히 내려놨다.

“이건 네가 도로 가져가고.”

“…….”

“3만 원은 여기까지 와서 벗고, 씻고, 세우고, 콘돔까지 낀 수고비로 내가 갖는다.”

“씨벌놈이, 말이 되는 소릴 해.”

명선이 침대 아래로 허둥지둥 내려와 허리에 수건을 둘렀다.

재강은 대꾸도 없이 지갑을 배낭에 넣으면서 입구 쪽으로 갔다.

명선은 얼굴이 벌게진 채 어찌할 바를 모르며 우왕좌왕하다가 침대에 나란히 놓인 네 장의 지폐를 모아들고 재강의 뒤를 따랐다.

“야, 숯불!”

신발을 신는 재강의 앞에 명선이 돈을 내밀었다.

“돈 준다잖아, 씨발. 이만한 돈이 생기는데 뒤에 좀 뚫리는 게 대수야?”

재강이 허리를 펴고 서서 명선을 바라봤다.

“그만한 돈까지 내가면서 나랑 하려고 했던 넌? 네 뒤가 뚫리는 건 대수야?”

“…….”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힌 명선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재강은 곧장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 * *

멍하니 운전해 집으로 돌아온 명선은 고요한 거실 소파에 앉아 여전히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봤다.

막 입 앞으로, 정말 입술에까지 닿을 정도로 들이밀어 졌던 맛있는 음식을 홱 빼앗긴 기분이었다.

게다가 평생 그 음식을 맛볼 수도 없다는 엄청난 벌까지 내린 듯한.

내 인생 갑자기 왜 이렇게 꼬이는 거지.

명선은 아까부터 벌써 몇백 번은 쉬는 듯한 한숨을 다시 한번 깊이 내쉬고는 천천히 소파에 기대 천장을 올려다봤다.

화가 나거나 어이없는 것보다도, 자꾸 재강의 벗은 몸이 아른거려 힘들었다.

처음 섹스를 한 후 그 원조 100퍼센트 남자를 떠올리며 열병을 앓던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적어도 그 남자와는 섹스를 하긴 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가면 재강을 볼 수 있는지 알긴 안다는 것.

네 뒤가 뚫리는 건 대수야?

재강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뒤가 뚫리는 건 대수냐고? 무슨 거지 같은 소리야? 바텀 아닌 건 나도 똑같거든? 지만 탑인 줄 아나.

근데 넌 일단 돈을 받았으니까 뭐라도 해야 했던 거잖아. 다른 손님들한테도 그따위로 구냐?

“어……?”

명선이 문득 미간을 찡그렸다가 몸을 세워 앉았다.

잠깐만…….

“바텀 안 한다고.”

헤테로들이 ‘바텀’ 같은 말은 잘 안 쓰지 않나?

아까는 당황하기도 했고, 대화가 후루룩 흘러가 버려서 눈치를 못 챘는데, 생각해 보니 재강은 분명 그 단어를 사용했다.

……뭐지?

명선은 심각한 얼굴로 허공을 노려보며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혹시 게이였던 건가?

그럼 정말 딱 돈만을 위해서 중년 여성들 상대로 돈을 벌고 있던 거?

사실 고객이 그렇게 한정돼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아니면 그냥 헤테로인데 퀴어 쪽에 관심 많은, 그런 사람인가? 내가 게이라는 건 어쩌다 알게 됐고, 그래서 나랑 대화하면서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단어를 쓴……?

아닌데. 아무리 봐도 그런 타입의 헤테로로는 안 보이는데.

아니, 그런 타입의 헤테로는 또 뭐야? 그런 타입의 헤테로는 어떻게 생긴 사람인데?

……아니야. 게이일 수도 있어.

정말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아무리 게이 눈에 게이처럼 안 보여도 게이면 게이지.

겉모습만 보고 그걸 어떻게 맘대로 판가름하냐고.

아니 근데, 게이가 그럴 수 있나?

섹스하려고 만난 남자가 골반에 수건만 걸치고 가슴은 펌핑된 채로 나왔는데 그렇게까지 시선을 안 줄 수가 있어?

적어도 쳐다보기라도 할 수는 있는 거 아니야?

그냥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도 그것보다는 더 쳐다보겠다.

어, 그럼…… 헤테로 맞나?

아니야, 모든 게이가 남자 벗은 것만 보면 질질 싸는 것도 아니고. 자기 타입의 몸이 아니면 감흥 없을 수도 있지.

……아.

그럼 나는 그냥 걔 타입이 전혀 아니었던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자 명선은 문득 우울해졌다.

잘생겼다는 칭찬, 몸이 예쁘다는 칭찬을 들은 적도 많고, 나름대로는 평균적으로 ‘잘 먹히는’ 몸과 얼굴을 가졌다고 늘 생각했는데, 이 정도의 무관심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를 자기 고객으로 받아 놓고는 어떻게 일을 그런 식으로 하는 거지?

애덕 씨한텐 별세계도 보여주고 다재다능하게 굴었다며? 애덕 씨보다 내가 못한 게 뭐야? 돈도 내가 더 많이 준 거 아니야?

아닌가?

혹시 자기 타입의 고객한테만 잘해 주는 건가?

애덕 씨는 타입이라는 거야?

그럼 헤테로네?

씨발.

명선은 다시 깊디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생각은 좀처럼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욕실에서 가슴도 키우고 수건도 적당히 끌어 내리기까지 했는데 그런 무시를 당하고 나니 재강이 게이라 해도 왠지 별로 달갑지 않았다.

게이에게 철저히 무시당한 게이라니, 명선의 기준에선 너무 굴욕적인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재강이 이성애자라고 한다면 그건 왠지 더 달갑지 않았다.

둘 중 하나라고 한다면 차라리 게이인 게 낫지.

그냥, 오랄이나 칼싸움이라도 하자고 할 걸 그랬나. 탑끼리 잘 땐 주로 그렇게 하잖아.

아니야. 일 꼬이자마자 바로 돈 내놓고 가버리는 거 봐. 내 몸에 손끝 하나 안 대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나한테 설 것 같지도 않다고 못돼먹은 말이나 했잖아.

근데 몸 바싹 붙이고 비벼대는 걸 하려고 하겠어?

“뭣도 아닌 새끼가, 진짜…….”

명선은 얼굴을 감싸 쥐고 소파에 털썩 누웠다.

자신감이 완전히 바닥나고 자존감도 탈탈 털려버린 기분이었다.

* * *

명선은 혼자 끙끙대다 결국엔 대용의 동네까지 차를 몰고 와서 집 근처 편의점으로 불러내 재강과의 일을 털어놓았다.

“써니 써니 명써니…….”

대용이 안쓰럽다는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대략적인 얘기를 들은 후 계속 저런 반응이었다.

“염 씨. 못생긴 표정 좀 자제해 줄래?”

명선이 말하고 아이스커피를 들이켰다.

“짜증 나. 거슬려.”

명선은 얼음을 우걱우걱 씹으며 중얼거렸다.

“써니, 여기까지 네 바퀴 끌고 온 건 너야.”

“너 말고, 그 숯불. 아니, 너도 짜증 나.”

“사랑에 빠져 예민한 써니.”

“사랑 타령 그만해.”

“말은 바로 하자. 너는 사랑에 빠졌어. 사랑에 빠진 건 맞아. 그건 부정하지 마. 근데 보통의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몸이랑 사랑에 빠진 거야. 그냥 몸. 딱 그 육체. 바디. 오브젝트. 완전히 대상화했어. 그 사람의 인격이나 성격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그냥 네 좆을 넣고 박아댈 몸만 있으면 되는 거야. 그 사람 몸. 그거랑 사랑에 빠진 거지.”

“…….”

딱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어서 명선은 입 안의 얼음을 녹이며 말없이 대용을 바라봤다.

“이 얼마나 쓰레기 같고 소름 끼치는 사랑인가.”

대용이 혀를 차고 맥주를 마셨다.

대용을 노려보던 명선이 입 안의 얼음 조각을 대용에게 퉤 뱉었다. 얼음은 대용의 어깨에 맞고 떨어졌다.

“친구로서 도움 되는 말 좀 해주지 않겠니?”

“마음 같아선 널 음쓰봉에 담아서 저 앞에 놓아두고 싶다만, 그래, 함께 머리를 모아 보자. 둘 중 하나라도 이성적이라 다행이지 싶다.”

“…….”

명선은 눈을 한 번 굴리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써니 너는 일단, 그냥 섹스만 원하는 거잖아.”

“어.”

“그 사람은 어쨌든 돈을 주면 섹스를 하긴 한다는 거고.”

“그렇지.”

“그럼 네가 바텀 하면 되겠네.”

“…….”

대용은 맥주를 마시고 입맛을 다시면서 명선을 바라봤다.

명선은 똥 씹은 표정이었다.

“써니, 이렇게 쉽고 명확한 결론이 어딨어. 너는 죽어도 하고 싶은 거고, 어쨌든 돈을 내면 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은 네가 바텀이어야 한다고 못을 박아놨고. 그 말은 네가 바텀이면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거잖아. 애초에 그 사람이 모텔에 나온 것도 네가 바텀일 거라고 생각해서 나온 거니까.”

“…….”

쉽고 명확한 결론이긴 했다. 명선만 포지션을 바꾸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

명선도 집에서 혼자 고뇌하는 동안 그 결론밖에 없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무 자르듯 결정 내리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너도 사실은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지만 결정은 못 내리겠고, 그래서 누군가 은근하게 떠밀어 주길 바랐던 거지? 그래서 날 찾아온 거지?”

“야, 너무 그렇게 나를 간파하지 마, 소름 끼치니까.”

“넌 내 손바닥 안이야, 써니. 내가 자위하면 너도 같이 문질러지는 거야.”

“꽉 물어 버려야지.”

“내 걸 물어보고 싶었구나, 써니.”

“이빨로 문다고, 이빨로.”

둘은 서로에게 역겹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얼마간 킬킬거렸다.

대용이 맥주를 끝까지 마시고 맥주 캔의 입구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호모포비아나 위험한 사람은 아닌 건가? 모텔까지 고분고분 나오기도 하고, 둘 다 벗고 밀폐된 공간에 있었는데 별일 없었던 거 보면…….”

“별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 내가 원하는 걸 안 해줬는데. 3만 원도 삥 뜯어 가고.”

“근데 진짜 모를 사람이긴 하다. 남자한테서 같이 섹스하자는 말을 듣고 돈까지 받았는데, 굳이 그렇게 탑, 바텀을 딱 나눠 놓고 탑만 한다고 그러는 게. 내가 그런 쪽을 잘 모르긴 하지만, 상식적으로 남자 고객도 상대하는 사람이면 올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떤 타입의 고객이 걸릴 줄 알고.”

“내 말이.”

“진성 헤테로들은 일을 그렇게 하나? 아니면 첫 남자 손님이어서 그런 건가?”

대용이 미간을 찌푸린 채 턱을 만지작거렸다.

“아, 근데 걔가 바텀 얘길 했거든?”

“바텀?”

“내가 박을 거라고 했을 때 정색하면서 ‘난 바텀 안 해’ 그랬단 말이야. 이거 완전 헤테로는 아니라는 힌트 같은 거 아니냐? 헤테로들은 그런 말 잘 안 쓰잖아.”

“흠…….”

대용의 미간이 더 찌푸려졌다.

“그것만으로 판단하기엔 좀 애매한걸.”

대용의 얼굴을 바라보던 명선이 테이블 위에 엎드리며 머리를 마구 문질렀다.

“짜증 나는 헤테로 새끼들.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있어.”

“이제라도 관심 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네만.”

명선은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얼마 동안 눈만 깜박였다.

“근데 어쨌든 내가 바텀만 하면 잘 수 있는 거잖아.”

“저 추한 열정의 뿌리는 어디일까?”

“아 씨, 근데 바텀을 갑자기 어떻게 하냐고. 해본 적도 없고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

“해본 적 없다고 아예 못 할 것도 없지 않나?”

“…….”

“정 그러면 예행연습을 몇 번 해보든지.”

명선이 대용을 쳐다봤다.

“뭐?”

“너 섹스 상대는 잘만 구하잖아. 그렇게 구하되 이번엔 무조건 탑이랑 만나는 거지. 아니면 올이랑 만나서 번갈아 가며 박자고 해도 되고.”

가만히 대용을 보던 명선이 천천히 손을 들어 대용을 가리켰다.

“너도 탑이잖아.”

“…….”

대용이 찌푸린 채 명선의 손가락 끝을 내려다봤다. 그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용이 용이 대용이?”

완전히 구겨질 대로 구겨진 대용의 얼굴을 보며 명선이 키득거렸다.

둘은 오래전 술을 잔뜩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서로의 몸에 성기를 비벼대 사정까지 간 과거가 있었다.

술에서 깬 후 명선은 친구와의 남다른 추억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대용은 치욕스러워했고, 명선은 종종 그 얘길 꺼내며 대용을 놀렸다.

“으으으.”

대용이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도리질 쳤다.

“상상만으로도 내 품위가 다 갈려 나가는 이 기분.”

“친구 좋다는 게 뭔데에에.”

“그럼 난 네 친구 안 할란다.”

“새침하기는.”

명선은 몸서리치는 대용을 보며 피식대다 남은 얼음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써니, 그러지 말고 SNS 계정 하나 새로 파서 써 봐. 바텀 첫 경험 해보고 싶은데 도와줄 사람 없나 물어보면 너의 첫 탑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바로 바지 벗으면서 달려올걸? 그런 거만 밝히는 애들도 있잖아.”

“아하…….”

명선은 곧장 진지한 얼굴이 된 채 생각에 잠겼다.

나이랑 체형을 적당히 속여서 프로필에 올려놓고 뚫어 줄 사람 없냐고 해보면…….

“참 하찮은 고민을 진지하게도 하는 재주가 있어.”

그런 명선을 보며 대용은 다시 쯧쯧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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