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부-5. 소풍 가요 (5/28)

1부-5. 소풍 가요

일요일 오전, 재강은 명선보다 먼저 출근해 개시 준비 중이었다.

명선은 뒤뜰을 지나 숯불 방으로 다가가며 재강의 몸을 훑었다.

오늘 종일 저 몸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게 된다 이거지.

“어이, 숯불.”

재강이 명선의 말에 뒤를 돌아보더니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재강이 중얼거리며 쌓여 있던 숯 상자 중 맨 위에 있는 것을 끄집어냈다.

명선이 그 뒤에 팔짱을 끼고 섰다.

“동료 직원한테 예의 좀 지키지?”

“뭐?”

“나 오늘부터 카운터에서 다시 일한다고. 이제 너랑 나는 직장 동료야.”

재강은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도 없이 숯 상자를 내려놓고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고 앉았다.

명선이 주위를 둘러보고 바지 주머니에서 3만 원을 꺼내 재강에게 내밀었다.

숯 상자에 묶인 비닐 끈을 자르던 재강이 명선과 그 돈을 쳐다봤다.

“예약금으로 3만 원 낼게. 모텔로 오면 남은 20만 원 주고. 앞으론 이렇게 해.”

재강은 물끄러미 지폐를 바라보다 짧게 한숨을 쉬었다.

“너 혹시 이것 때문에 돈 필요해서 여기서 일하는 거냐?”

“어.”

“너희 부모님도 참 안됐다.”

“받을 거야, 말 거야?”

명선이 지폐 세 장을 펄럭펄럭 흔들었다.

곧 재강이 그 돈을 낚아채 자신의 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명선이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 재강 쪽으로 살짝 몸을 숙였다.

“내일 낮 12시, 연꽃 모텔.”

“그러든지.”

재강은 바로 원래 하던 일로 고개를 돌렸다.

“잊지 마. 내가 너 예약한 거야.”

재강은 대답도 없이 일에 열중했다.

명선은 돌아섰다가 다시 재강에게 몸을 돌렸다.

“아, 네 핸드폰 번호.”

“번호 뭐.”

“번호 내놓으라고.”

“왜?”

“모텔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거 별로야. 먼저 도착하면 방에 들어가서 몇 호로 오라고 문자할 테니까 네가 거기로 오면 되잖아.”

숯 통에 새 숯 몇 개를 나눠 담은 재강이 앞에 있던 직육면체의 깡통을 자기 쪽으로 드르륵 끌어왔다.

그 시끄러운 마찰음에 명선이 미간을 찡그렸다. 재강이 일부러 소리를 더 크게, 더 오래 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직원 정보에 나와 있을 텐데 거기서 찾아보면 되는 거 아닌가?”

“뒷조사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내가 예의상 너한테 직접 물어봐 주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냐?”

이미 정보는 다 봤지만.

“너 같은 거한테 예의 안 바라니까 차릴 것 없어.”

“말을 존나 이쁘게 하네?”

“알짱대지 말고 바쁘니까 좀 꺼져.”

“바쁜 척이야, 누가 일요일 아침부터 와서 고기를 처먹는다고.”

깡통 속에서 숯 몇 개를 골라 숯 통에 넣던 재강이 킥 웃었다.

“이 주변에 교회 세 개 있는 거 아냐? 모르지?”

“뭔 상관?”

“미사 끝날 시간에 봐. 누가 아침에 와서 고기를 처먹는지.”

“…….”

으, 일하기 싫어.

명선은 갑자기, 벌써부터, 지긋지긋한 기분이 들었다.

저딴 거랑 시간을 같이 보내겠다고 내가 이딴 일을 하기로 했다니. 이 황금 같은 일요일에.

명선은 얼굴을 구기고 있다가 문득 재강의 등을 내려다봤다.

재강이 숯을 나눠 담느라 손을 움직일 때마다, 견갑골과 그 주변의 근육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티셔츠 아래로 드러났다.

그래. 이 새끼 인성은 저딴 거인지 몰라도, 몸은 절대 저딴 거가 아니지.

게다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몸인데.

돈을 벌자.

부자가 되어서 숯놈의 몸을 취하자.

일이 빡세고 좆같아도 저놈의 몸을 구경하면서 버티자.

그러나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도 일요일의 가든은 지옥이었다.

교회의 모든 사람이 단골인 듯했고, 교회의 모든 사람이 명선의 부모와 몇십 년 지기 친구라도 되는 듯했다.

명선은 ‘명선 가든의 그 명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수없이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그들에게 명선은 ‘훤칠’하고 ‘예쁘’고 ‘기특’하고 ‘다 자랐’으며 ‘듬직’한 아들이었다.

모두가 비슷한 감상을 건네며 명선의 어깨를 두드리고 악수를 하고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와 부모님 고생시키지 말라는 당부를 건넸다.

점심은 내내 그런 사람 천지였다.

다음 일요일에도 이 짓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

점심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홀 안이 한산해졌을 무렵, 명선은 멍하니 앉아 정신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저녁 장사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이대로 집에 돌아갔으면 싶었다.

게다가 주말엔 브레이크 타임도 없이 종일 열었다.

홀을 오가는 재강의 몸이 없었더라면 정말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달려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옥 같은 수다와 인사와 참견과 훈계 속에 재강의 몸만이 한 줄기 빛이었다.

재강은 여전히 투명 인간처럼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아무도 신경 쓰지도 관심 주지도 않는 숯불 알바. 오직 명선에게만 뚜렷한 재강의 존재감.

광화문 한복판에 겨울옷을 잔뜩 입히고 세워놔도 명선은 어쩐지 재강의 몸을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명선아, 밥 먹어.”

정식이 와서 명선을 일으켜 세웠다.

“주말 점심은 팀 나눠서 먹으니까 가서 먼저 먹어. 아빠가 여기 보고 있을게.”

명선이 홀 안으로 들어가 구석에 있는 식탁에 앉자마자 입구로 들어오는 재강이 보였다.

아하.

명선은 얼른 재강이 저녁 식사 때 늘 앉는 자리의 맞은편으로 옮겨 앉았다.

재강은 무심한 얼굴로 다가와 명선의 앞에 앉았다.

“점심땐 소주 안 드시나 봐요?”

명선이 묻자 재강이 명선을 힐끗 쳐다보고 다시 밥 위로 시선을 내렸다.

“네.”

명선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둘이 있을 땐 맘대로 싸가지 없게 굴 수 있는데 주변에 다른 직원들 있을 땐 꼬박꼬박 존댓말도 해야 하고, 묻는 말에 일일이 대답도 해야 하고. 속이 뒤틀리지, 새끼야?

“근데 저녁땐 반주를 그렇게 하시고? 아, 원래 술이 좀 센 편이라고 했던가요?

“네.”

“어, 나도 센 편인데. 주량이 얼마나 되세요?”

“글쎄요.”

“언제 같이 마셔 봐요. 저는 저보다 센 사람을 아직 만난 적이 없어서, 같이 마시면 재밌을 것 같네요.”

“명선이, 무슨 술이야, 점심때부터?”

2층에 있다가 뒤늦게 내려와 합류한 양자가 명선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

“지금 마신단 얘기가 아니야, 엄마.”

명선은 짜증 나는 표정을 속으로 삼켰다.

“명선아, 아까 그 파란 옷 입은 권사님 있지? 그분이 너한테 소개팅해 주고 싶으시다더라.”

“무슨 소개팅을 해, 갑자기.”

“그분 조카가 너보다 두 살 적은데, 여대 다니고…….”

양자는 지인의 조카 얘기로 신이 나 명선에게 끊임없이 말을 붙였다. 그 덕에 명선은 재강에게 더는 지분거릴 수가 없었다.

재강은 말없이 밥만 먹고는 휑하니 나가 버렸다.

* * *

으, 지겨워.

명선은 카운터 앞을 빗자루로 쓸며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소강상태이긴 했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 식당은 다시 지옥으로 변할 것이고,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게 지긋지긋했다.

사람들은 이런 걸 어떻게 매일 하면서 사는 거지.

명선은 쓰레받기에 담긴 먼지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매일 같은 시간, 일터에 나가 일하다 집으로 돌아오길 반복하며 사는 사람들이 엄청난 초인처럼 느껴졌다.

명선은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해본 적도, 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눈앞에서 재강이 돌아다니며 그 몸이라도 보여주지 않았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명선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가 손님들이 나오는 기척이 들리자 재빨리 접대용 미소를 얼굴 가득 띄우고 카운터로 갔다.

“맛있게 드셨어요?”

손님들은 밑반찬에 대한 감상과 지적 따위를 한참 늘어놓다 떠났다.

먹고 가면 그만이지, 좆같게 구네.

바닥 구석엔 아까 쓸다 말고 던져놨던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있고, 입구 밖으로 보이는 야외는 한창 초여름의 일요일다운 날씨였다.

문득 짜증이 밀려왔다.

날씨도 좋은데 이런 곳에 처박혀 바닥이나 쓸고 있어야 한다니.

저 새끼 때문에.

명선은 쇠막대를 들고 입구로 들어와 홀 안쪽으로 사라지는 재강의 무심한 실루엣을 노려봤다.

3만 원을 생으로 뜯기고 나서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다시 예약하고 예약금 3만 원까지 건넸는데도, 그런 고객에게 손톱만큼의 친절함도 보이지 않는 재강.

도대체 저 새끼 고객들은 다 어떤 사람들인 거야? 그런 걸 다 참고 넘겨주는 건가?

아니면 오히려 그렇게 재수 없게 구는 걸 좋아하는 취향들인 건가?

……혹시 나한테만 그따위로 구는 건가?

명선은 얼굴을 구긴 채 재강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다가 일어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다시 집어 들고 바닥을 쓸었다.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대체.

나랑 하다 남자 고객한테 익숙해지면 앞으로 남자도 좀 받고, 그럼 고객 풀도 넓어져서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는 거잖아, 이 멍청한 새끼야.

그 스타트를 끊어 주겠다는데 알아 모시지는 못할망정…….

곧 재강이 숯 통을 막대 끝에 꿴 채 밖으로 나왔다.

“어이, 아저씨.”

명선이 낮게 부르자 곁을 지나치던 재강이 멈춰 서서 돌아봤다.

“살살 좀 다니시죠? 바닥에 재 다 떨어지네.”

“…….”

재강이 말없이 바닥을 내려다봤다가 숯 통을 발로 한 번 툭 건드렸다. 재가 흩날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야.”

명선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는데도 재강은 그대로 돌아서 나가 버렸다.

“아, 저 씹새끼…….”

명선은 그 뒷모습을 노려보고 욕을 중얼거리며 바닥을 쓸었다.

* * *

저녁을 먹을 때도 명선은 다시 재강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계속 말을 붙이면서 재강이 어쩔 수 없이 존댓말 쓰는 꼴을 보고 싶었는데, 역시나 정식과 양자의 방해 아닌 방해 덕에 일은 수월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둘은 명선이 정식 직원으로서의 한 걸음을 내딛는 오늘을 너무나 축복스러운 날로 여겨 기뻐하면서 쉼 없이 명선에게 말을 붙였다.

명선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애써 감추며 맞장구를 쳐줄 수밖에 없었고, 재강은 그 앞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묵묵히 밥을 먹었다.

재강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반쯤 남은 소주를 들이켜자 명선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재강의 식사가 끝났단 뜻이었다.

“확실히 명선이가 오니까 식당 분위기가 밝아지긴 했어.”

정식의 말을 들으며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명선은 문득 식탁 아래에서 재강이 발을 툭 치는 바람에 흠칫했다.

“…….”

재강은 컵을 쥐고 앉은 채 식탁을 내려다보다가 눈만 들어 명선과 시선을 맞추더니 밖으로 따라 나오라는 듯한 눈짓을 짧게 했다.

명선의 눈과 콧구멍이 동시에 살짝 커졌다.

뭐지, 이 섹시한 상황은.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명선은 재강을 봤다 식탁을 봤다 다시 정식을 보며 표정의 변화가 없도록 애를 썼다.

방금, 따라 나오라고 한 거 맞지?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숯불 방에서 한번 하겠다는 건가? 상상만 하던 그 일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거? 그 스릴을 드디어 맛볼 수 있는 거?

아, 근데 상상 속에선 내가 박았는데. 그 싱크대에 기대 놓고 내가 박아야 하는 건데. 혹시 누구한테 들켜도 그편이 나한텐 좀 더 낫지 않겠어?

“잘 먹었습니다.”

재강은 인사를 하며 일어서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홀을 빠져나갔다.

그나저나 쟤 갑자기 왜 저러지? 급 꼴렸나?

어차피 내일 낮에 할 건데, 못 참겠디? 그렇게 내숭을 떨어대더니…….

너도 확실히 꼴리긴 꼴렸던 거지? 오랄이라도 빨리 해보고 싶다 이거지?

혹시 지난번에 내 벗은 몸 보고 나서 잠도 못 자고 딸쳐 댄 거 아니야? 그래 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새침하게 굴기나 하고 말이야.

명선은 멀어지는 재강의 뒷모습을 훑다 혼자 피식 웃었다.

재강 때문에 다 갈려 나갔던 자존심이 순식간에 다시 제 모습을 되찾고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럴 줄 알았어, 이 새끼야. 그렇게 게이가 되는 거지.

명선은 속으로 의기양양한 미소를 한껏 띠고 있다가 얼른 일어났다.

“아, 나 차에 좀 갔다 올게. 뭐 두고 온 게 있어서.”

평소의 속도로 홀을 지난 명선은 입구로 나오자마자 후다닥 뛰어 뒤뜰로 향했다.

아, 씨. 갔는데 홀딱 벗고 앞치마만 두르고 서 있는 거 아니야? 숯불 방에 문도 없는데 어떡하지? 상상 속에서야 스릴 있고 좋긴 한데, 실제 상황이 되면 정말 진지하게 조심해야 하는 거잖아.

그 앞치마를 처마에 걸어두면 좀 가려지려나?

열심히 생각하며 모퉁이를 돈 순간 한창 물청소 중인 재강의 뒷모습이 보였다. 평소 웃통을 벗고 할 때와 달리 티셔츠는 그대로 입은 채였다.

명선은 우뚝 멈췄다가 다시 걸어 숯불 방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뭐야. 그냥 지 나름의 방식으로 유혹하는 건가?

돌아서던 재강이 명선을 발견하고는 호스를 내려놓고 물을 잠갔다.

명선은 그 앞에 서서 침을 한 번 삼키고 공연히 주위를 둘러봤다.

재강이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더니 뒷주머니에서 뭔가 꺼내 명선에게 내밀었다.

구깃한 만 원짜리 세 장이 들려 있었다.

“…….”

명선이 그 손을 내려다봤다가 다시 재강을 쳐다봤다.

재강이 돈을 다시 한번 더 명선 쪽으로 들이밀었다.

“도로 가져가.”

“……뭐? 왜?”

“내일 일이 생겨서 못 하게 됐다.”

명선은 눈을 크게 뜬 채 재강을 보다 돈을 보고 다시 재강을 봤다.

“뭔…… 씨발, 뭐? 왜?”

“가져가라고.”

“뭔 일?”

“그건 네가 알 거 없고.”

명선이 눈과 입만 크게 벌린 채 멍하니 있자 재강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바짝 다가서더니 돈을 명선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돌아서려는 재강의 팔을 명선이 붙잡았다.

“야, 숯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나랑 장난해? 고객의 예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거면 뭐 때문인지라도 말하고 사과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재강이 명선의 손을 뿌리쳤다.

“네가 알 거 없다고.”

명선이 다시 재강의 팔을 잡았다.

“자꾸 이딴 식으로 굴지? 숙이고 들어가 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누가 숙이고 들어오래? 고까우면 그만 질척대고 네 갈 길 가면 될 거 아냐.”

“사과해라, 씨발 새끼야.”

“미안해. 됐냐?”

“이건 왜 사과가 항상 그딴 식이야?”

명선이 재강의 목을 콱 쥐고 밀어붙였다.

주춤 물러섰던 재강이 곧장 명선의 턱을 움켜잡고 밀자 이번엔 명선이 뒷걸음질을 쳤다.

“전액 환불받았으면 곱게 받고 꺼질 것이지, 뭔 말이 이렇게 많아?”

“…….”

재강의 손가락이 뺨으로 파고들며 명선의 입이 벌어졌다. 명선은 양손으로 재강의 손목을 붙잡았다.

땀이 난 재강의 피부는 후끈하고 축축했다.

“네가 내 사생활 같은 걸 알 게 뭐야? 아쉬운 게 네 쪽인데 내가 왜 구구절절 설명하고 사과를 해?”

재강이 말하며 꽉 붙잡은 명선의 얼굴을 한 번, 두 번 흔들었다. 명선의 머리카락이 이마 위에서 이리저리 흩어졌다.

명선은 눈을 내리깐 채 재강의 가슴팍을 내려다보다 그 손목을 더 꽉 쥐었다.

“……그어 언에 에은에.”

명선의 벌어진 입에서 말이 뭉개져 나왔다.

재강이 명선의 얼굴을 집어 던지듯 놓고 뒤로 물러났다.

“뭐?”

명선은 한 발짝 물러났다가 얼얼한 턱을 문지르고 재강을 쳐다봤다.

“그럼 언제 되느냐고 묻잖아, 개 같은 새끼야.”

재강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뭐 하는 놈이야, 이거?”

명선이 주머니에 처박혀 있던 3만 원을 꺼내 재강의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 짧은 순간에 느껴지는 재강의 몸, 그 굴곡마저도 명선을 흥분시켰다.

“사정이 생겨서 날짜를 변경해야겠다고 하고, 제대로 사과하고, 예약금은 네가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나랑 상의해서 날짜만 바꾸면 되는 거 아냐. 멍청한 게 그런 요령도 없이 장사를 해?”

재강은 물끄러미 명선을 바라보다가 이제는 완전히 꼬깃꼬깃해진 3만 원을 주머니에서 꺼내 명선의 발치로 후두둑 던졌다.

“당분간 휴업이고, 예약 안 받아. 됐지?”

“…….”

재강은 명선에게서 등을 돌려 고무호스를 집어 들고 다시 청소했다.

명선은 한동안 입술을 씹으며 그 뒷모습을 보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돈을 주워들고 숯불 방을 나왔다.

* * *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명선은 부스스한 머리로 침대에 앉은 채 멍하니 방 안을 보며 눈을 끔뻑댔다.

문득 책상 위와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구겨진 지폐 세 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짜증이 난 채로 집에 돌아와서는 주머니에서 끄집어내 홱 팽개친 흔적이었다.

재강의 주머니에 들어갔다가 다시 자신의 주머니로 돌아오고, 그리고 또다시 재강의 주머니로 갔다가 결국엔 자신의 발치에 흩뿌려진 지폐 세 장.

당분간 휴업이고, 예약 안 받아.

재강이 한 말이 명선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젯밤엔 화가 났고 짜증도 났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감정이 조금이나마 희석된 지금은 ‘당분간’이라는 말에 신경이 쏠리는 중이었다.

‘당분간’이랬어, 분명히.

‘폐업’이 아니라 ‘당분간 휴업’이라고 했다고. 얼마 동안은 안 하지만 휴업 기간이 지나면 다시 한다는 뜻인 거잖아.

그러니까 그때 다시 예약하라는 말인 거지. 문을 아예 닫아 버리진 않았다는 거지.

그럼…… 언제?

명선은 도로 스르르 드러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식당 휴가 같은 것도 길어 봤자 일주일 아닌가? 어쨌든 자기도 장사를 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일주일 넘게 휴업하려나?

그럼 언제쯤 되냐고 물어봐야 하나? 귀찮게 군다고 지랄할 게 뻔하긴 한데…….

아니, 왜 계속 나한테만 땍땍거리고 난리야? 왜 나는 고객 취급도 안 해주는 건데? 그렇게 예민해가지고 사람 대하는 장사를 어떻게 해나가려고.

“아, 씨…….”

명선은 문득 시계를 봤다가 양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낮 열두 시가 다 돼 가는 시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연꽃 모텔의 고요하고 아늑한 방에서 재강의 벗은 몸을 볼 생각에 들떠 있을 시각.

재강의 벗은 몸을 원 없이 보고 만지고 닿을 수 있었을 시각.

재강이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바람에 환상 속 무언가로만 남아버린 시각.

한번 해보기 더럽게 힘드네, 진짜.

명선은 천장을 노려보며 입술을 씹었다.

내가 돈도 내고 뒤까지 바쳐 주겠다는데. 뭣도 아닌 게 성질만 더러워가지고는.

왜 하필 그런 새끼야? 왜 그런 놈이 그런 몸을 갖게 된 거지? 왜 하필?

“짜증 나…….”

생각하다 보니 다시 짜증이 밀려왔다. 명선은 머리를 헤집으며 몸을 웅크리고 배배 꼬았다.

오늘도 가든에 나가서 일해야 할 텐데, 벌써 지긋지긋했다.

재강을 보면 대체 그 알량한 휴업이 언제 끝나냐고 닦달하고 싶을 게 뻔해 그것도 짜증이 났다.

* * *

가든에 도착한 명선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정원에 서 있다가 미적미적 뒤뜰로 향했다.

재강의 몸이라도 일단 보고 일을 시작하는 게 그나마 나을 것 같았다.

“…….”

뒤뜰 잔디를 지나던 명선이 서서히 걸음을 늦추다 멈춰 섰다.

숯불 방은 조용했고 재강이 착화기 앞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허벅지에 둔 깍지 낀 손에 핸드폰을 끼운 채였는데, 핸드폰을 보는 건 아니고 앞쪽 어딘가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항상 부지런히 움직이며 뭔가를 하는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보니 생소했다.

명선은 그대로 서서 재강의 몸을 훑어봤다.

재강은 한참 동안 미동도 없이 있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하기 싫어서 저러나.

하긴, 일 같은 걸 누가 하고 싶어 해.

재강이 일어나며 몸을 돌리는 순간 명선과 눈이 마주쳤다.

명선은 움찔했다가도 그대로 서서 재강을 쳐다봤다.

“뭘 쳐다봐, 씨발아.”

재강이 핸드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꽂아 넣으며 낮게 말했다.

“내 눈깔은 내 거고요. 뭔 상관?”

“가서 카운터나 지켜.”

재강이 앞치마를 매고 목장갑을 끼며 세척기 앞으로 가자 명선이 그 뒤로 가까이 다가섰다.

“예약 언제 받을 건데?”

“지분거리지 마라.”

“돈 벌게 해주겠다는 걸 왜 마다해?”

재강은 말없이 불판 하나를 집어 들고 세척기를 켰다. 뒤에 서 있던 명선이 곧장 세척기를 껐다.

“…….”

재강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명선을 쳐다봤다. 눈에서 온갖 욕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왜 취소했는지는 꼬치꼬치 안 물을 테니까 다시 예약받아.”

“…….”

재강은 명선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세척기를 켰다. 명선은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세척기를 껐다.

재강이 이를 악물며 턱에서 으득, 소리가 나고 불판을 쥔 재강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게 명선의 눈에 들어온 순간.

“명선아!”

정식의 목소리였다.

명선은 긴장이 탁 풀리는 걸 느끼며 뒤를 돌아봤다.

손에 접시를 든 정식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왔으면 들어오지, 왜 여기 있어?”

정식이 가까이 오자 고소한 냄새가 났다.

“형이랑 많이 친해졌나 보네. 재강 씨, 부침개 좀 들어요. 부추랑 고추 듬뿍 넣고 매콤하게 했어.”

“고맙습니다.”

재강이 접시를 받아 옆쪽으로 가서 의자에 올려놨다.

명선은 먼저 숯불 방을 나와 뒤뜰을 성큼성큼 지났다.

“명선이도 들어가서 부침개 먹어. 먹고 해.”

정식이 따라오며 말하는 동안 뒤쪽에선 불판 세척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명선은 공연히 이마를 문지르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재강이 분노한 순간, 자신의 얼굴이나 목을 콱 움켜쥐어 주기를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었다.

그 기대감이 명선을 흥분시켰다.

재강의 피부와 근육, 골격의 감촉을 느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재강의 신경을 아무리 거스르더라도, 행여나 얻어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몸 가까이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 *

명선은 저녁을 먹은 후에도 다시 재강을 보러 숯불 방으로 갔다.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재강의 몸을 보고 싶기도 했고, 어쨌든 빨리 예약도 해야 했으니.

매일 닦달해서 미치게 만들어 주마. 포기해서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해주겠다고.

물청소는 이미 끝났는지 숯불 방은 조용했고, 재강은 배낭이 걸린 벽 앞에서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서 있었다.

명선은 이번에도 걸음을 서서히 늦추다가 잔디 위에 멈춰 섰다.

재강은 얼마간 그대로 있다가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화면을 보더니 다시 귀에 댔다.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데 상대가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꼴에 전화 걸 사람은 있는 모양이네. 나 같아도 네 전화는 안 받는다.

섹스하자는 전화면 받겠지만.

명선은 팔짱을 끼고 계속 재강을 주시했다.

곧 재강은 핸드폰을 끄더니 그 검은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눈가를 감싸 쥐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숯불, 우냐?”

명선의 목소리에 재강이 흠칫하며 돌아봤다.

“…….”

재강은 언짢은 표정을 지은 채 말없이 배낭에 핸드폰을 넣고 한쪽 어깨에 멨다.

명선이 그 앞으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3만 원 도로 가져왔어.”

“…….”

“예약 좀 하자.”

“…….”

재강은 그 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눈을 들어 명선과 시선을 맞췄다.

명선은 재강이 갑자기 주먹이라도 날릴지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배와 목에 힘을 주고 재강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최대한 네 사정에 맞춰 줄게. 네가 날을 골라.”

“…….”

“대신, 가급적이면 이번 주 안으로 하자.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지금 해, 그럼.”

재강이 명선의 손에서 돈을 낚아챘다.

“…….”

재강은 무심히 돈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명선을 지나쳐 잔디 쪽으로 걸어 나갔다.

명선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재강의 뒤를 따랐다.

“지금 한다고?”

“그래.”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어?

벌써 두 손 두 발 다 든 거야? 질척대는 게 통하긴 한 건가?

씨발, 권명선. 이게 뭔 일이야. 꿈꾸는 건 아니겠지?

재강은 홀 쪽으로 가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외쳤다.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명선도 얼른 그쪽으로 가서 인사했다.

“저도 갈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안에서 양자와 정식, 직원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재강은 그사이 정원을 지나 주차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명선이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어이, 같이 좀 가지?”

재강은 들은 척도 않고 주차장 한쪽 구석에 있는 자신의 자전거로 향했다.

명선이 주위를 둘러보다 재강에게 다가갔다.

“연꽃 모텔?”

“그래.”

“내 차 타고 가.”

“됐어.”

“그게 더 낫잖아. 끝나고 여기까지 차로 데려다줄 테니까 그때 자전거 타고 가든지.”

“됐다고.”

재강은 자물쇠를 풀더니 자전거를 끌어내 제대로 세웠다.

명선이 자전거 핸들을 탁 붙잡고 재강의 눈을 들여다봤다.

“이대로 도망가면 내일 가만 안 둔다.”

“…….”

재강은 그 손을 쳐내고 한심하다는 눈빛을 명선에게 고정한 채 자전거에 훌쩍 올라타더니 스르르 가 버렸다.

명선은 그 뒷모습을 보다 얼른 차로 갔다.

너무 설레서 처음 소풍을 가게 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기까지 했다.

첫 섹스인 것도 아닌데 첫 소풍에 비유하다니 좀 우습긴 하지만, 어쨌든 재강의 몸과 실제로 바싹 맞닿는 일은 처음일 테니 아주 틀린 비유도 아닐 터였다.

명선의 머릿속으로 첫 섹스 상대인 100퍼센트의 남자가 떠올랐다.

그의 등, 색의 경계가 나뉜 피부, 애써 삼키던 낮은 신음.

이제 포지션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지만, 어쨌든 재강의 100퍼센트 몸에 자신의 몸을 맞댈 생각을 하니 그때의 흥분과 설렘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래, 그 몸을 보고 만지면서 소풍 간 기분 좀 느껴보자. 천국으로의 소풍이겠지.

한적한 도로를 얼마간 달리니 저 앞에 자전거를 탄 재강이 보였다.

차 타고 같이 가자니까. 저 속도로 모텔까지 어느 세월에 오겠냐고. 한심한 새끼.

명선은 헤드라이트가 비친 재강의 엉덩이를 응시하다 공연히 클랙슨을 시끄럽게 여러 차례 울려대며 그 곁을 지났다.

힐끗 돌아보는 재강과 명선의 눈이 짧게 마주쳤다.

명선은 룸미러로 뒤쪽의 재강이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킥 웃었다.

내가 끈질기긴 했지? 오래 버티지도 못할 거면서 성깔만 살아가지고 틱틱대더니만.

그냥 처음부터 이렇게 순순히 굴었으면 서로 감정 상할 일도 없고 좋았잖냐.

* * *

의기양양했던 기분도 잠시, 연꽃 모텔에 먼저 도착한 명선은 이 시간엔 대실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상기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숙박 요금을 내야 했다.

그리고 방을 잡은 후엔 재강이 올 때까지 결제기 앞에서 서성대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직원 장부에서 재강의 핸드폰 번호를 베껴 적어둔다는 걸 또 깜빡했다.

그때 봤던 재강의 핸드폰 번호를 기억해 보려 애썼으나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양자나 정식에게 전화해 물어볼 수도 없었다.

“번호 내놔.”

마침내 도착한 재강이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명선이 낮게 말하며 자기 핸드폰을 내밀었다.

재강은 멈춰 섰다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직원 정보에서 찾아보라고.”

명선은 재강을 노려보다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나중에 뒷조사니 뭐니 딴소리하지 마라.”

명선이 복도로 들어서자 재강이 그 뒤를 따랐다.

예약한 방에 가까워지니 다시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명선이 문을 열고 서서 재강을 먼저 들여보냈다. 재강이 앞을 스쳐 가자 특유의 재 냄새가 났다.

“이번에도 먼저?”

재강이 배낭을 소파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네가, 흠, 네가 먼저 씻어.”

갑자기 목소리가 갈라져 나와 명선은 헛기침을 했다.

재강은 곧장 욕실 앞으로 가더니 지난번처럼 옷을 모두 훌훌 벗어 던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명선은 곁눈질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재강이 문을 닫자 침대에 쏟아지듯이 주저앉아 숨을 내쉬었다.

재강의 벌거벗은 몸은 지난번 봤을 때와 다름없이 100퍼센트에 1,000퍼센트를 자랑하며 빛을 내고 있었다.

거의 다 됐어, 권명선. 이제 정말 100퍼센트 몸이랑 하는 거야. 몇 분만 기다리면 돼. 천국으로 소풍 가는 거야.

아니, 근데 쟤 잘 나가다가 또 갑자기 별것도 아닌 거로 트집 잡아서 변덕 부리는 거 아니야? 내가 바텀으로 바꾸기까지 했는데.

혹시 뭐 신경 쓰이게 할 만한 게 있나?

명선은 미리 챙겨온 콘돔 세 개와 윤활제를 꺼내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봤다.

조명이나 침대의 푹신함도 이 정도면 괜찮고…… 방 온도도 나쁘지 않아.

그렇게 방의 상태를 체크하다 명선은 문득 짜증이 났다.

아주 대단한 상전 납셨네, 씨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저딴 놈 때문에.

내가 이런 취급을 받을 급이 아닌데, 어? 너 따위가. 이 답 없는 헤테로 새끼야.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명선은 재강이 욕실 밖으로 나오자 슬쩍 그쪽을 쳐다봤다.

막 씻은 재강의 몸은 지난번처럼 여기저기 물기가 묻어 반짝이고 있었다.

하긴…… 답 없는 헤테로면 어떠냐. 나랑 섹스만 하면 그만이지.

명선은 곧장 수긍하며 일어서서 욕실로 갔다.

잽싸게 씻고 난 후, 이번에도 역시 욕실을 나서기 전 가슴을 부풀리고 허리에 두른 수건을 적절한 위치까지 끌어내리는 수고를 들였다.

재강이 진성 헤테로라 확신하고 있음에도, 습관적으로 나오는 몸단장이었다.

“…….”

배에 적당히 힘도 주고 가식적인 걸음으로 사뿐사뿐 나오던 명선은 침대에 누워 있는 재강을 보고 곧장 김빠진 표정을 지으며 배에서 힘을 뺐다.

침대 한가운데 누운 재강은 곯아떨어져 있었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고 한 손엔 리모컨을 느슨하게 잡은 채였다.

아재가 따로 없네. 자기 집 안방이야 뭐야.

아니 그리고, 얼마나 오래 걸렸다고 그새를 못 참아서 잠이 들어?

못마땅한 얼굴로 침대 가까이 다가가는 명선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었다.

재강의 벌거벗은 몸은 마치 접시에 담긴 먹음직스러운 음식 같았다.

얌전히 누워 명선이 맛봐주기만을 기다리는, 군침 도는 별미.

절경이네, 절경이야.

명선은 감탄하는 표정으로 침대 곁에 서서 재강의 몸을 내려다봤다.

자신을 경멸하고 귀찮아하는 재강의 눈빛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이렇게 유유자적 벗은 몸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다.

명선의 눈이 재강의 발가락 끝부터 목까지 구석구석을 훑으며 오갔다.

재강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새근새근 숨만 쉬는 중이었다. 호흡에 맞춰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가슴과 배는 팽팽하고 탄탄했다.

발기하지 않은 성기와 음낭의 모양마저도 훌륭했다.

저 발치로 기어가서 발등부터 복숭아뼈,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차례차례 입 맞추고 빨다가 좆을 입에 넣고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바짝 서겠지.

부랄이랑 뒤에도 좀 빨아 주고, 혀를 집어넣으면 움찔움찔할 거야.

웬만큼 적시면 다리 한쪽을 내 어깨에 걸쳐 놓고 내 걸 저 뒤에다 박아 넣는 거야.

다리랑 배가 덜덜 떨리겠지. 저 찰진 근육이 하나하나 다 바르르 떨어대는 게 고스란히 보일 거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재강의 몸을 스캔하듯 훑던 명선은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고 살짝 봉긋해진 자신의 앞섶을 쓰다듬었다.

아, 미치겠네. 계속 이렇게 감상하고 싶기도 하고, 빨리 깨워서 섹스하고 싶기도 하고…….

어차피 내가 못 박고 박혀야 하긴 하지만.

딱 5분만 더 구경하고 깨울까?

명선은 팔짱을 끼고 재강의 몸을 내려다보다 슬그머니 핸드폰을 집어 들고 다시 침대 곁으로 돌아와 섰다.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재강의 몸을 비춰보던 명선은 작게 감탄했다.

재강의 몸은 화면 안에서도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햐…… 예술 작품 같네, 진짜.

명선은 이리저리 앵글을 바꿔보다가 재강의 발치로 자리를 옮겨 다시 렌즈를 겨눴다.

재강의 목부터 발까지만 화면 안에 꽉 차게 나오도록 잘 조정하고 필터를 이것저것 바꿔보면서 감상했다.

화면발도 진짜 잘 받네. 오, 흑백도 섹시한데? 딱 요렇게 한 장만 찍어 뒀으면 좋겠다. 돈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할 텐데 남은 6일을 달래 줄 것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

명선이 입맛을 다시고 키득대며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재강이 눈을 떴다.

흠칫하며 미끄러진 명선의 손이 버튼을 누르며 찰칵, 소리가 났다.

“…….”

명선은 그 자세 그대로 눈만 크게 뜬 채 얼어붙었다.

“죽고 싶냐.”

재강이 곧장 발을 쳐들어 명선의 손을 걷어찼다.

명선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이 허공으로 붕 날아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내 아이폰 엑스에스!”

명선이 괴성을 지르며 핸드폰을 향해 달려들었다.

액정 모서리 부분에서 중심부로 퍼져나가듯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가 있었다.

“크아아!”

명선이 포효하다 핸드폰을 끌어안고 재강을 쳐다봤다.

“액정 다 나갔잖아, 씨발!”

“알 게 뭐야, 이 변태 새끼야. 사진 지워.”

“뭔 사진!”

“사진 찍었잖아. 지우라고.”

“남의 폰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그런 얘기가 나오냐!”

명선이 재강 쪽으로 핸드폰 화면을 내밀고 흔들었다.

“그러게 누가 몰래 찍으래?”

재강이 침대에서 내려와 다가오더니 명선의 핸드폰을 낚아채 갔다.

핸드폰을 켰던 재강은 잠금 화면이 뜬 핸드폰을 명선에게 도로 내밀었다.

“열어.”

“…….”

명선은 처참한 액정과 재강을 번갈아 가며 노려보다가 핸드폰을 받아 잠금을 풀었다.

재강의 몸 사진은 흔들린 와중에도 아름답게 찍혀 있었다.

씨발…….

명선은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피눈물을 훔쳤다.

재강이 다시 손을 내밀자 명선이 그 손에 핸드폰을 쥐여 주었다.

재강은 그 한 장 말고 더 찍힌 사진이 없는지 확인하는 듯하더니 도로 핸드폰을 돌려줬다.

“네가 직접 지워. 내가 보는 데서.”

재강이 허리에 양손을 짚고 선 채 말했다.

명선은 한숨을 쉬고 재강에게 화면이 잘 보이도록 한 후 사진을 삭제했다.

화면 위를 문지를 때마다 액정의 균열이 느껴지자 더 피눈물을 쏟는 기분이었다.

“그것뿐인 거 확실해? 어디 다른 데 저장해두거나 한 거 아니고?”

“이거 하나야.”

“넌 도대체…….”

재강이 말을 잇지 못하고 명선을 바라보다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문지르더니 침대에 털썩 앉았다.

바닥에 철퍽 앉은 명선은 찌푸리고서 다 깨진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봤다.

얼마간 말없이 그렇게 있다가 재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넌 도대체 뭐 하는 새끼야? 왜 이렇게 쉬지도 않고 역겹게 굴어?”

명선이 눈만 들어 재강을 노려봤다.

“진짜로 찍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지만 사진 좀 찍는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씨발, 대가리도 안 나오게 찍혀 있던데 뭘 그렇게 발끈해? 그리고 지우라는 대로 얌전히 지워 줬잖아. 솔직히 물리적 손해로 따지면 내가 피해자 아니야?”

“넌 이 상황에서 뭐가 문젠지 아예 파악이 안 되냐?”

“액정이 이 지랄 난 게 문제다, 왜.”

“저따위로 구는데 섹스할 맛 뚝뚝 떨어진다는 말이 안 나와?”

“야, 숯불.”

명선이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살짝 일으켰다.

“또 3만 원만 갖고 튈 생각이면 이번엔 진짜 가만 안 있는다.”

재강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명선을 바라봤다.

“이러고도 섹스를 하겠다고?”

“섹스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

“……됐다. 말을 말자.”

재강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명선이 핸드폰을 한쪽에 놓아두고 일어섰다.

“또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해. 너 자꾸 변덕 부려서 안 되겠어.”

“…….”

재강이 명선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명선이 허리에 두른 수건을 풀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이리 와.”

“…….”

재강은 팔짱을 낀 채 침대 곁에 서서 명선을 바라봤다.

“이리 오라고. 섹스하게.”

명선이 벌린 다리 사이의 침대를 팡팡 두들겼다.

재강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 진짜 너한테는 안 설 것 같다.”

순간 자존심에 쩌억 하고 생채기가 나는 듯했지만 명선은 곧장 이를 악물고 자신을 다독였다.

진성 헤테로다. 저 새끼는 진성 헤테로야.

헤테로라서 나한테 매력을 전혀 못 느끼는 거야. 이런 건 당연해.

남자랑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었는데, 위축되고 어색한 건 당연하지. 그런 것 정도는 내가 이해해 줘야지.

몇 번 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괜찮아질 거야.

“내가 알아서 세우고 박기만 할 테니까 넌 네 거 세우든지 누워 있든지 맘대로 해.”

“…….”

명선은 여전히 상처 난 자존심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애쓰며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재강은 곧장 뒤돌아 침대에 걸터앉더니 자신의 것을 잡고 문질렀다.

명선은 아랫입술을 물고 코를 벌름거리며 그 뒷모습을 노려봤다.

아무리 진성 헤테로여도 그렇지, 23만 원이나 받아 가면서 저래도 되는 건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도대체 왜 저래?

안 설 것 같아도 서게 만들어야지. 돈을 받고 이런 걸 하는 이상 너는 프로여야 되는 거 아니야? 프로가 그 정도도 못 해?

혹시 고객이 애덕 씨 하나만 있는 거 아니야? 딱 하나 있는 고객이라 별세계가 보일 정도로 잘해 준 거고.

저따위로 구는데 누가 돈까지 내면서 같이 자고 싶어 해?

…….

내가 23만 원이나 내면서 들러붙긴 했지.

근데 저 몸을 어떻게 그냥 떠나보내냐고. 게다가 돈 주면 섹스도 할 수 있단 걸 알게 됐는데, 누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있겠어.

정신적인 건 생각하지 말고, 육체적인 것에만 집중하자. 저 몸에 닿고 저 몸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는 거야.

그래, 권명선. 집중하자. 천국으로 소풍 갈 시간이 다가온다. 집중하자.

명선은 조금씩 흔들리는 재강의 등을 응시하며 자신의 성기를 잡고 느릿느릿 문지르다, 그때까지 켜져 있던 텔레비전을 껐다.

방 안이 고요해지자 재강의 피부가 마찰하는 소리와 그 숨소리가 더 잘 들려왔다.

어차피 전립선으로 뭘 느끼진 못할 거고, 박히면서 저 몸만 보고 딸쳐야지.

체위도 정상위로 해야겠어. 다리 벌리고 누워 있는 게 좀 어색하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몸을 볼 수는 있을 테니까, 뭐.

근데 대실도 아니고 숙박인데 얼마나 더 여기 있으려나. 붙잡아 봤자 또 지랄지랄하면서 맘대로 가버릴 건 뻔하고…….

야, 네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적어도 내가 세 번 정도는 싼 다음에 가야 하지 않겠니? 23만 원이나 받는 건데 말이야.

아니지, 따지고 보면 26만 원이지. 지난번에 그런 식으로 삥 뜯어간 것까지 합치면.

저 돈독 오른 새끼…….

그러는 사이 명선의 성기는 단단하게 부풀었다.

곧 재강이 몸을 돌려 침대 위로 올라왔다.

재강이 이쪽으로 엉금엉금 기어 오자 명선은 그 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등을 대고 누웠다.

재강의 것은 여전히 훌륭한 자태를 뽐내며 바짝 선 채였다. 살짝 위로 휜 성기가 탱탱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 번만 빨아보고 싶네. 입천장 뒤쪽을 쿡쿡 찔러대겠지.

명선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무릎을 세운 두 다리를 넓게 벌렸다.

그렇게 발기까지 한 채 바로 앞에 와 있는 재강의 몸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가득 차올랐다.

명선의 다리 사이로 와 앉은 재강이 잠시 머뭇거렸다.

“……이렇게 할 거야?”

“뭐가, 이 자세? 어. 왜?”

“…….”

재강은 또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명선이 이마를 찌푸렸다.

“야, 뭐가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아? 대체 내가 어디까지 맞춰 줘야 돼?”

재강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내가 딴 데 보면서 하면 되지.”

“그런 말은 속으로 좀 하시지?”

재강은 말없이 콘돔을 자신의 성기에 끼우고 윤활제를 손에 짜냈다.

재강이 성기에 윤활제를 바르는 동안 명선은 자신의 것을 계속 문지르며 감탄하는 심정으로 그 몸을 바라봤다.

재강의 유두는 바짝 선 채였고 그 주변으로 살짝 소름이 돋아 있었다.

꼭지도 어쩜 저렇게 예뻐. 저걸 입 안에 넣고 굴리다가 살짝 깨물어 주고 세게 빨고…….

명선의 눈이 이글거렸다.

곧 재강이 명선의 한쪽 무릎 뒤를 잡아 밀어 올리며 바짝 다가앉았다.

미끈거리는 재강의 성기 끝이 뒤에 와 닿는 순간 명선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재강은 아래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명선의 항문에 대고 자신의 것을 위아래로 문질렀다. 얼마간 그러다 그 위로 윤활제를 좀 더 짜내고 계속 문질렀다.

그러는 동안 끝부분을 슬쩍슬쩍 밀어 넣었다 빼기도 했다.

젖은 소리가 작게 울리고, 부드럽게 간질대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명선은 박렼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뒤를 휘젓던 때를 떠올렸다. 지금 재강이 성기로 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 느낌은 천지 차이였다.

아…… 손으로 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네.

차이가 뭘까. 얘가 테크닉이 더 좋은 건가? 단순히 손가락보다 좆이 더 두꺼워서?

아니면 얘가 이런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분상 더 낫다고 느껴지는 건가?

이 몸이랑 박렼 몸도 천지 차이이긴 하지. 아니, 비교 선상에 둘 수조차도 없어.

그나저나, 평소 모습으로 봐선 뒤 풀어 주는 건 생각도 안 하고 다짜고짜 푹 넣고 흔들다 찍 싸고 끝내는 놈일 줄 알았는데, 의외의 면이 있잖아?

명선은 재강의 몸을 훑어보다가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재강은 미간을 조금 찡그린 채 자신의 성기가 닿아 있는 부분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집중한 그 표정이 평소 일할 때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목표물을 정해 놓고 그것을 향해서만 움직이는 듯한 모습.

한동안 그러고 있던 재강이 어느 순간 성기를 천천히 밀어 넣자 명선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며 베개를 꼭 쥐었다.

“흡…….”

“힘 빼.”

재강이 여전히 자신의 성기 쪽만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알아, 이 자식아. 나도 탑할 땐 자주 했던 말이라고. 몸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걸 어쩌라는 거야.

“으윽…….”

조금씩 밀고 들어오는 이물감에 명선이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명선의 손이 빳빳한 시트 위를 문지르며 버석거리는 소리가 났다.

재강이 더 바짝 다가앉으며 성기가 끝까지 쑤우욱 들어오자 명선이 문득 눈을 떴다.

“아……?”

명선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재강이 명선을 힐끗 봤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잠시 그대로 있던 재강이 성기를 반쯤 뺐다 다시 밀어 넣었다. 명선이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쳐들었다.

“아어어어아아아……?”

이게 뭐야?

재강이 드나든 순간 안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이 명선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

멈칫한 재강이 명선을 보고 묻는 표정을 지었다.

명선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재강을 마주 보다 얼른 고개를 짧게 흔들고 도로 누웠다.

“계속…… 해. 신경 쓰지 말고.”

재강이 다시 시선을 아래쪽으로 내리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성기가 스르르 나갔다 다시 스르르 밀려들어 오길 반복했다.

“아, 아, 아아? 아?”

명선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다 입을 틀어막았다. 어느새 발가락이 잔뜩 오그라든 채였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이게 뭐…….

명선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좋은 느낌이었다.

재강의 것이 왕복 운동을 할 때마다 찌릿, 찌릿, 하고 전류가 흐르는 듯했다.

작은 불씨처럼 시작된 무언가가 조금씩 조금씩 커지면서, 엉덩이에서 시작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등 전체, 어깨, 목, 머리까지, 그리고 허벅지에서 무릎과 종아리를 지나 발가락 끝까지, 그 전류를 쫙쫙 쏘아 보내는 듯했다.

어느새 몸 전체가 그 이상한 전류로 꽉 차 번쩍이고 간질대는 기분이었다.

“우아…… 씨, 하아…… 이게, 뭐…….”

명선은 찡그린 채 바들바들 떨면서 헛웃음을 뱉어댔다.

그 사이사이 차마 삼킬 수 없는 신음까지 계속 섞여 나와 얼핏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재강은 그런 명선이 신경 쓰이는 듯 힐끔대긴 했지만 동작을 멈추진 않았다.

한동안 그러던 재강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하자 그와 함께 전류가 더 크고 강렬하게 번쩍거렸다.

어으, 씨발, 사람 살려…….

명선은 눈을 질끈 감으며 양손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얼굴을 감싸 쥐었다.

“어훅, 흐으윽…….”

무아지경 속에서 명선은 새어 나오는 소리를 간신히 집어삼켰다. 머릿속은 텅 비고 오직 그 번쩍이고 간질대는 전류만 남아 있었다.

성기를 다른 사람의 몸에 집어넣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너무 자극적이어서 그만하라고 애원하고 싶은 마음과 지독한 갈증 속에 시원한 물을 갈구하듯 좀 더, 좀 더, 하는 마음이 어지럽게 공존했다.

이런 명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강의 성기는 무심히 명선의 뒤를 쑤셔댔다. 피부가 맞닿을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작게 났다.

곧 허리가 좀 더 들리고 양옆의 시트가 눌리는 듯하며 몸 위로 열기가 다가왔다.

잔뜩 찡그리고 이를 악문 명선이 얼굴을 가린 손을 반쯤 끌어내리며 눈을 떴다.

더 바싹 다가붙은 재강이 명선의 몸 양옆으로 손을 받치고 엎드린 채 성기를 퍽퍽 박아 넣고 있었다.

재강은 입을 꾹 다물고 명선의 아랫배쯤에 시선을 둔 채였다. 씨근대는 소리는 초반보다 확실히 크고 격해져 있었다.

명선은 두 손으로 입을 단단히 틀어막고 재강의 가슴을 바라봤다. 둘의 몸이 부딪칠 때마다 재강의 가슴이 탄탄하게 진동했다.

장관이었다. 그만한 장관이 또 없었다.

명선이 덜덜 떨리는 한쪽 손을 뻗어 그 가슴을 턱 쥐자 재강은 흠칫하며 명선을 힐끗 봤다가 얼른 다시 시선을 내렸다.

손안에 가득 찬 재강의 가슴은 뜨겁고 쫄깃했다.

명선은 그 가슴을 움켜쥐고 문질렀다. 그리고 곧 다른 손도 뻗어 양 가슴을 모두 그렇게 쥐고 애무했다.

“하아, 하악…….”

명선은 헐떡이며 재강의 가슴과 배, 어깨를 조급하게 더듬어댔다.

그 굴곡과 열기로 인해 손바닥이 축복이라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 정신 나갈 것 같네.

총체적으로 천국이다. 정말로 천국이야. 천국에서 즐기는 소풍.

주님. 엄마가 좋아하는 주님. 엄마가 그렇게 찬양해서 곁다리로 나한테 상이라도 주는 건가.

네네, 주님, 제가 임양자 씨 막내아들이에요. 감사합니다.

나는 종교도 없고 신앙심 같은 거 하나도 없지만 일단 지금은 감사 감사 폭풍 감사.

재강의 움직임이 더 빨라지자 명선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턱을 바짝 치켜들었다.

“아우욱…… 하으…….”

명선의 눈이 뒤집히듯 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허공에서 흔들리는 두 다리는 잔뜩 힘이 들어간 채 경련했고, 내지르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이제 둘의 피부는 맞닿을 때마다 철썩거리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고 있었다.

박자에 맞춰 침대가 흔들리고, 둘의 피부가 시트에 문질러지며 나는 소리도 그 사이사이에서 어지럽게 울렸다.

울부짖듯 하던 명선은 어느 순간 한계에 다다르자 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끙끙댔다.

어, 아 씨, 아니, 주님, 잠깐만. 아직 싸면 안 돼. 아직 아니야. 좀만 더. 좀만 더. 소풍…… 지쟈스…… 잠깐만…….

“학, 끄윽…….”

명선은 쿵쿵 흔들리며 사정했다.

명선의 성기에서 주륵주륵 나온 정액이 배와 가슴을 지나 목까지 흩뿌려졌다.

명선은 눈을 꼭 감고 두 손으로 재강의 어깨를 꽉 쥔 채 몸을 떨어댔다.

곧 재강의 성기가 뒤에서 쑥 빠져나가며 명선의 손이 홱 내던져졌다.

재강은 곧장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명선은 사지를 침대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채 그대로 누워 있다가 욕실 쪽에서 샤워기 물줄기 소리가 들리자 스르르 눈을 떴다.

세상이 팽글팽글 도는 듯했다.

섹스할 때 이 정도의 절정을 느낀 것도 처음이었고, 자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것도 처음이었다.

그동안엔 섹스 리드하랴, 멋있고 섹시한 모습 유지하랴, 바텀들의 반응 신경 쓰랴, 이래저래 관리할 것이 많았는데, 이번 섹스는 전혀 달랐다.

온전한 ‘자연인’이 되어 섹스 그 자체에 흠뻑 적셔진 것 같았다.

“하아…….”

다 풀린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던 명선의 입에서 한없이 만족스럽고 황홀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여전히 몸 구석구석이 짜릿짜릿하고 얼얼했다.

명선은 몸에 범벅이 된 정액을 닦을 생각도 않고 남은 여운을 만끽하며 가만히 천장만 바라봤다.

엄마가 좋아하는 주님. 전립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고 보니 그 박렼이라는 놈 좆이 똥좆이었던 거네요. 저의 전립선은 제 좆만큼이나 아주 훌륭한 거로 결론을 내야겠어요.

이런 거였구나. 바텀들의 각종 자지러짐과 바르작댐이 이런 것 때문이었던 거야.

섹스할 때 헐떡이다 ‘잠깐만, 잠깐만’ 하고 몇몇 바텀들이 명선의 허벅지를 밀어냈다가도 도로 끌어당기던 때가 떠오르며, 명선은 이제야 그것이 어떤 것인지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웬일이야. 게다가 받싸까지 하다니.

그것도 바텀 경험 두 번 만에.

아니지. 박렼이랑 했던 건 경험이라고 칠 수도 없어. 그건 그냥 없는 셈 치자. 제대로 된 섹스라고 볼 수도 없잖아.

지금 한 게 진짜지. 진품 100퍼센트 몸이랑 천국에 소풍 다녀온 이 경험. 이거야말로 나의 바텀 첫 경험인 거라고.

나는 바텀 첫 경험에 받싸를 한 거야.

아휴, 권명선. 너는 탑질도 그렇게 잘하면서, 바텀질마저 잘하니. 못 하는 게 뭐야, 대체. 이 섹스 능력자 녀석아.

“하아…….”

명선은 다시 만족스럽고 황홀한 한숨을 내쉬며 부스스 미소 지었다.

여운은 오래도 갔다.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하며 기분 좋게 노곤했다.

애덕 씨, 정말 적확한 표현이네요. 별세계. 표현력에 리스펙 드립니다. 저랑 똑같은 걸 느끼셨나 봐요.

그러니까, 앞으론 일주일에 한 번씩 이걸 만끽할 수 있단 말이지…….

샤워기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스르르 잠에 빠져들던 명선은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벌거벗은 재강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문지르며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명선은 여전히 나른함과 여운이 남은 몽롱한 눈으로 재강의 몸을 바라봤다.

아…… 저 신의 선물 같은 몸.

어디 있다 이제 나타난 거야.

침대 곁으로 다가온 재강이 명선을 내려다보다 이마를 찌푸렸다.

“좀 닦아라.”

명선은 자신의 몸을 힐끔 보고는 건성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재강의 손에 들린 수건에 손짓했다.

재강이 수건을 건네자 명선은 그 축축한 수건으로 몸 이곳저곳을 대충 닦았다.

“옆으로 좀 가 봐.”

재강이 새 쫓듯 손을 내저었다.

명선이 꾸물꾸물 움직여 한쪽 끝으로 가자 재강이 빈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비누 냄새가 훅 풍겼다.

재강은 숨을 길게 내쉬며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명선이 수건을 바닥에 던져 놓고 하품을 쩍 했다.

졸리긴 했지만 한 번 더 할 수 있었다. 얼마든지.

“잠깐 쉬고 한 판 더 하자.”

“잠깐 쉬다 집에 갈 거야.”

이마에 팔 한쪽을 걸치고 눈을 감은 채인 재강의 말투는 무미건조했다.

“왜?”

명선이 재강 쪽으로 돌아누워 그 몸을 훑어봤다.

“피곤해.”

“뭐가 피곤해. 한 게 뭐 있다고.”

“박았잖아. 저녁 내내 일도 했고.”

“혼자 일했냐? 나도 일했어.”

재강이 코웃음을 쳤다.

“일했지. 카운터 앞에 가만히 앉아서.”

“너 카운터 일이 얼마나 빡센지 모르는구나?”

명선이 재강의 가슴 쪽으로 손을 뻗는데 채 닿기도 전에 재강이 바로 쳐냈다.

“정말 빡셌으면 한 번 더 하잔 말이 나오겠냐?”

“그건 그거고 섹스는 섹스지.”

명선이 다시 등을 대고 누웠다.

“혹시 늙어서 스태미나가 떨어진 건가? 스물일곱부터 꺾이는 거냐?”

“그렇게 기운이 남아돌면 혼자 딸이나 치든지.”

“그렇게 피곤하면 나 딸치는 거 보고 있다 또 한판 하든지.”

“뭔 미친 소리야.”

재강이 명선에게 등을 보이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명선이 갑자기 키득 웃었다.

“야, 너 봤냐, 나 받싸한 거.”

“…….”

“제대로 찌르더라?”

“…….”

“아, 근데 너 가든 일 끝나고도 무슨 알바한다고 하지 않았어?”

재강이 묵묵부답이자 명선이 그의 등을 툭 쳤다.

“알바 뭔데? 오늘은 안 하는 거야?”

“……당분간 안 해.”

재강의 목소리는 조금 잠긴 채였다.

“무슨 일 하는데?”

“신경 꺼.”

“흥.”

반쯤 감겨 있던 명선의 눈이 완전히 스르르 감겼다.

“잠깐…… 쉬고 한 판 더 하는 거다.”

“……집에 갈 거라고.”

“너 23만 원 받았어.”

“정확히는 3만 원 받았지. 남은 20만 원 내놔.”

“남은 20만 원을 내놔야 더 하겠다는 얘기냐.”

“그거 받고 갈 거야. 그건 원래 주기로 했던 돈이니까 당연히 줘야지.”

“빡빡하게 굴기는…… 계좌 불러. 쏴 줄 테니까…….”

“……이따가.”

둘의 목소리가 점점 늘어졌다.

어느새 둘 다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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