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6. 엿들어요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보였다. 닫힌 창문 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
명선은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재강이 누워 있었다.
이게 또 웬 떡이야.
명선의 얼굴이 바로 환해졌다.
어젯밤 섹스하고 곯아떨어진 후 둘 다 안 깨고 아침까지 곤하게 잔 모양이었다.
여전히 나체인 재강은 등을 대고 누워 명선의 반대쪽으로 약간 고개를 돌린 채 잠들어 있었다.
살짝 어둑한 방 안에서 근육의 아름다운 굴곡이 도드라져 보였다.
아침에 봐도 절경일세.
그 몸을 보자 어제의 섹스, 그 강력하고도 강렬한 감각이 떠오르며 명선은 곧장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깰 때부터 이미 단단하던 성기가 더 탄력을 받는 기분이었다.
명선은 살짝 몸을 일으켜 재강의 몸을 훑어보다 성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끝이 위쪽으로 살짝 휜, 탱글탱글한 성기. 그것 역시 명선의 것처럼 빳빳해져 있었다.
와. 어떡하지. 진짜 맛있게 생겼어. 한 번만 빨아보면 안 되나.
명선이 침을 꿀꺽 삼켰다.
자다 깨서 보니 더욱더 유혹적이었다.
지금 내가 저걸 빨면 깨서 노발대발하려나.
아니야, 자기도 사람인데 기분 좋게 깨지 않을까. 감히 내 입을 거부할 수나 있겠어? 내가 오랄을 얼마나 잘하는데.
그리고 잠결에 오랄 받으면서 깨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데.
머뭇거리던 명선이 슬그머니 일어나 재강의 하체 쪽으로 가려는 순간, 멀찍이 놓인 자신의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재강에게 걷어차이는 바람에 액정이 다 깨져버린 핸드폰.
처참하게 갈라진 액정을 떠올리니 다시금 속이 쓰려왔다.
좆에 입대는 순간 깨서 내 얼굴도 바로 저 액정 꼴로 만들지도 모르지.
성질이 불같아서 원.
명선은 못마땅한 얼굴로 물러나 고개를 젓다가 다시 재강의 몸을 차근차근 훑어봤다.
체크아웃하기 전에 한 번만 더 하면 안 되나……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 아쉬운데.
그럼 23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하나?
설마. 그건 진짜 도둑놈 심보 아니야? 어제도 한 번밖에 안 했잖아.
23만 원이나 받고 섹스 한 번이 웬 말이냐고. 아무리 환장하게 좋았다고는 해도.
그래도…….
명선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뜨끈한 성기를 느릿느릿 문지르며 재강의 몸을 응시했다.
추가로 내고서라도 할까.
다음 주는 그때 가서 생각해 보지 뭐.
정 안 되면 진짜 최후의 수단으로 누나한테 돈 좀 빌려달라고 부탁해 봐도 되고.
명선이 재강의 어깨를 툭 쳤다.
“어이.”
재강이 숨을 들이켜며 눈을 번쩍 떴다.
재강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며 명선을 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길게 숨을 내쉬며 얼굴을 문질렀다.
“아, 씨…… 몇 시냐.”
재강이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몰라.”
명선은 재강의 몸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곧 재강이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 앉았다.
어젯밤 감은 후 말리지도 않고 그대로 잔 탓에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솟아 있거나 눌리고 구겨져 엉망이었다.
재강이 일어서려 하자 명선이 그의 팔을 붙잡아 도로 앉혔다.
“한번 하자.”
잠이 덜 깬 얼굴의 재강이 명선을 쳐다봤다.
“……뭐?”
“한번 하자고. 둘 다 벗고 둘 다 서 있는 김에.”
명선이 말하며 재강의 가슴팍을 눌렀다.
재강은 명선의 손에 밀려 얼떨결에 누우면서 자신과 명선의 몸, 발기된 두 개의 성기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뭔…… 왜 이래? 아침부터 재수 없게.”
재강이 명선의 손을 쳐내고 일어나 앉았다.
“23만 원 줄게.”
명선이 다시 조급하게 재강의 가슴팍을 누르며 필요 이상으로 더듬어댔다.
그 손길에 저절로 딱딱해진 유두를 살짝 쥐고 굴리자 재강이 움찔했다.
네 몸도 원하고 있잖아, 새끼야.
이때다 싶어 명선은 재강의 다른 쪽 가슴도 더듬었다.
재강이 곧장 그 손을 잡았지만, 손목을 꽉 쥐기만 할 뿐 밀쳐내진 않았다.
너 게이가 같은 남자 흥분시키는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아냐.
남자 몸은 남자가 잘 안다고. 우리는 그 포인트만 딱딱 집어서 건드려 줄 수 있다 이거야.
명선은 이제껏 수많은 남자를 흥분시켰던 손놀림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재강의 가슴을 정성스레 애무했다. 가슴과 쇄골, 옆구리 부근도.
재강은 명선의 한쪽 손목을 움켜잡은 채, 명선이 주물러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둘의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명선은 재강의 100퍼센트 몸이 달아오르는 것이 손바닥에서 고스란히 느껴지자 흥분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아, 못 참겠네.
명선이 재강의 등을 안으며 그 가슴을 빨려는 순간, 재강이 명선의 머리를 홱 밀쳤다.
“켁.”
명선이 옆에 있던 베개 위로 처박혔다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가슴에 금칠해 놨냐!”
“박을 테니까 내 몸에 입 대지 마.”
재강이 무릎을 대고 서서 침대 옆 탁자에 있던 콘돔을 집어 들었다.
호오.
명선은 멈칫했다가 곧장 얌전히 등을 대고 누웠다.
새침하게 구는 것 좀 보소.
자기도 남자라 이거지. 몸이 반응하는 건 어쩔 수 없고, 흥분하는 거 보여 주기는 쑥스럽고, 혹시 게이라도 되는 건 아닌가 싶어 겁도 나고, 그치? 우쭈쭈, 무서웠쪄요?
명선은 슬그머니 나오는 미소를 감추며 다리를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정체성 고민되기 시작하면 나한테 상담하러 와. 게이 선배로서 조언해 줄 테니까.
대신 조언 한마디에 섹스 한 번이야.
명선의 머릿속으로 즐거운 상상이 날아다니는 동안 재강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윤활제를 발라 미끈거리는 성기를 명선의 뒤에 문지르고 있었다.
명선은 잔뜩 흥분한 채 재강의 몸을 응시했다.
입을 대지 말라니. 그렇게 맛있게 생겨가지고 무슨 가혹한 소리야.
더 흥분하게 만들 작정으로 그런 거면 진짜 잘 통하긴 했다만.
아…… 저 100퍼센트 젖꼭지에선 무슨 맛이 날까. 배랑 옆구리, 겨드랑이, 다 개처럼 핥아보고 싶은데.
금단의 과일이 따로 없네.
“아하아아아…….”
재강의 것이 뒤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순간 명선이 눈을 감으며 소리를 뱉어냈다.
몸 안 가득 색색의 크리스마스 전구라도 켜지는 듯했다.
어떡하지. 오늘 밤에도 하면 안 되나?
돈…… 돈만 아니었어도, 아…… 아, 씨발, 왜 이렇게 좋냐, 사람 미치게 만드네…….
명선은 재강의 허벅지를 꽉 잡았다 놓고 더듬어댔다. 재강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그 피부 아래의 근육이 딱딱해졌다가 느슨해지는 것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재강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 다른 곳에 눈을 고정하고 씨근대기만 했다.
그에 비해 명선의 리액션과 신음은 현란하고 요란했다.
“아, 씹, 흐윽…….”
명선은 재강에게 밀려 정신없이 흔들렸다.
씨근거리던 재강이 명선의 몸 양옆에 손을 짚고 엎드리자 그 몸이 명선의 눈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명선은 잔뜩 찡그린 채 재강의 가슴과 배를 응시하다 손을 뻗어 그 양 가슴을 꽉 쥐었다.
재강이 흠칫 몸을 떨면서 작게 흡, 하고 소리를 냈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되는 몸은 그 나름의 감촉과 온도가 있었다. 적당히 말랑하고 적당히 따끈하며 적당히 이완된 그 상태.
어젯밤 만졌을 때의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저녁 내내 노동에 시달렸던 그 뜨겁고 단단했던 몸.
여전히 재강의 몸은 뜨겁고 단단했지만 아침과 밤의 그 미묘한 차이를 명선은 느낄 수 있었다.
명선은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자신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밤에도 맛보고 아침에도 맛보고, 최고네. 고급 코스 요리 먹는 기분이야.
물론 나 같은 몸 전문가라면 자격이 있지, 자격이 있어.
앞으로도 계속 이러면 좋을 텐데.
명선은 한껏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재강의 가슴을 애무하고 배와 옆구리, 쇄골과 어깨, 목도 탐욕스럽게 더듬어댔다.
명선이 그러는 동안 재강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꼭 감은 채였다.
살짝 드러난 목 옆으로 바짝 선 핏줄이 보였다.
세상에, 목 좀 봐. 목도 맛있게 생겼어.
가슴이 안 되면 목이라도 좀 빨아보자.
명선이 재강의 등으로 손을 미끄러뜨려 확 끌어당기자 재강이 명선의 몸 위로 답삭 엎어졌다.
둘의 가슴이 부딪치며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입을 한껏 벌려 재강의 목을 빨려던 명선은 재강이 홱 뿌리치고 윗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허공만 한 입 크게 깨물었다.
“압.”
“이 새끼가…….”
재강이 씨근대는 호흡 사이로 낮게 중얼거리며 명선의 얼굴을 잡고 짓눌렀다.
“윽…….”
재강이 몸을 부딪치는 힘이 더 빠르고 격해졌다.
명선은 한쪽 뺨과 귀를 재강의 손에 잡혀 잔뜩 눌린 채 그의 팔뚝을 붙잡고 덜컹거렸다.
발가락은 잔뜩 오그라들고 두 다리는 거칠게 흔들렸다.
“흐으윽, 응…… 으윽…….”
뒤틀린 입술 사이로 명선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명선은 재강의 팔을 꽉 쥔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재강이 쥔 얼굴만 남고 몸의 다른 부분이 쾅쾅 소리를 내며 터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색색의 크리스마스 전구들은 어느새 거대한 횃불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얼마 후 주륵, 주륵, 뿜어져 나온 정액이 명선의 가슴과 배에 흩뿌려졌다.
이번에도 재강은 명선이 사정하자마자 바로 물러나 욕실로 달려들어 갔다.
“아, 하아, 하아…….”
짓눌려 새빨개진 얼굴로, 명선은 눈을 감고 헐떡헐떡 호흡을 고르면서 시트를 쥐어짜고 발꿈치로 느릿느릿 문질러댔다.
너무나 강렬하고 격앙되어서 현기증마저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명선의 몸 아래에서 시트가 이리저리 말리고 구겨졌다.
명선은 샤워기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몸을 뒤틀다가 눈을 떴다.
호흡은 아주 서서히 가라앉았다.
명선은 몽롱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몸속 가득 켜져 있던 크리스마스 전구들이 깜빡거리며 하나둘씩 꺼지는 상상을 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하아아…….”
명선은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얼굴 가득 흡족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띤 채 흡족하기 짝이 없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생애 최고의 섹스를, 벌써 두 번이나 했어.
이런 식으로 아침을 열다니.
오늘은 무슨 개 같은 일이 생겨도 다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아.
매일 이렇게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했으면 좋겠다.
그럼 한 달에 총 얼마가 드는 거지?
돈을 계산해 보다가 명선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왜 나는 제대로 된 부자도 아니고 어중간한 부자로 태어나서 이런 돈 걱정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재벌 2세라도 됐어 봐. 23만 원이 뭐야, 2,300만 원씩 막 날려 주고 종일 이 짓만 했겠지.
그냥 금전 거래 없이 하면 안 되겠니. 아까 만져 줄 때 너도 좋았잖아. 숨기려고 해도 표정에 나오는 게 보였다고.
내가 네 기분도 좋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냥 자주 만나는 섹파 관계를 맺어보면 어떻겠냐.
이런 걸 내가 아무하고나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다.
곧 문이 열리고 재강이 욕실 밖으로 나왔다.
재강의 벗은 몸을 보며 명선의 얼굴은 다시 행복감으로 가득 찼다.
명선은 늘어져 누운 채, 가까워지는 재강의 몸을 감상했다.
“좀 닦으라고.”
재강이 젖은 머리를 문지르던 축축한 수건을 명선의 얼굴로 던졌다. 명선의 목과 가슴, 배는 이번에도 정액이 범벅된 채였다.
“깔끔 떨긴.”
명선이 수건을 집어 몸을 닦았다.
재강은 탁자 앞에 서서 핸드폰을 켜 들여다봤다.
“몇 시야?”
명선이 느릿느릿 일어나며 물었다.
“10시 40분.”
“아…… 집에 갔다 다시 와야 하나. 4시 출근이면 애매한데.”
“…….”
“너 집 어디냐?”
재강이 명선을 힐끗 봤다.
“우리 집은 왜?”
“가든 근처 맞지? 나 너희 집에 잠깐 있다 출근하면 안 돼?”
“저게 돌았나.”
재강은 핸드폰을 끄고 옷들이 걸쳐져 있는 소파 앞으로 갔다.
“서울까지 갔다가 다시 와야 되는 게 번거로워서 그러지. 지금 가든에 가 있기는 싫고.”
“네 사정을 내가 알 게 뭐야.”
“섹스까지 한 사인데 집에 잠깐 데려가는 게 뭐 어때서 그래? 그냥 구석에 앉아서 폰이나 보다가 출근 시간 되면 나온다는데.”
“쉬어 빠진 소리 하지 말고 돈이나 내놔.”
“거 되게 빡빡하게 구시네.”
명선이 침대에서 내려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누구 때문에 액정은 다 개박살 나고, 씨.”
명선이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옷을 입던 재강이 코웃음을 쳤다.
“애초에 그런 변태 짓을 안 했으면 멀쩡했겠지.”
“이거 다 물어내라고 하지 않은 걸 고맙게 여겨라.”
“물어낼 생각도 없어.”
“계좌나 찍으쇼.”
명선이 뱅킹 앱을 켜 재강에게 내밀었다.
“총 43만 원이다.”
재강이 계좌 번호를 입력하고 명선에게 다시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돈독 오른 것들이 기억력은 또 좋지.”
명선이 중얼거리며 재강의 계좌로 43만 원을 보냈다.
용돈의 절반 이상이 성큼 날아가 버린 걸 보니 다시 피눈물이 나는 듯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려고 했는데 모닝 발정을 못 참고 저질러 버렸네.
이러면 다음 주엔 못 하는 건가. 아님 알바를 하나 더 뛰어야 하나. 에휴…….
“됐지?”
명선이 재강에게 핸드폰을 내밀어 이체 결과를 보여 주었다. 재강은 고개를 끄덕이고 배낭을 집어 들었다.
“근데 너 원래 안 싸? 어제도 그렇고 좀 전에도 그렇고.”
“쌌어.”
재강이 핸드폰을 배낭에 집어넣으며 무심히 말했다.
“언제?”
“화장실에서.”
명선이 떨떠름한 얼굴로 재강을 쳐다봤다.
“왜 굳이 화장실에서?”
“내 맘이지.”
“뭐야. 내 앞에선 싸는 모습도 보여 주기 싫다 이거냐?”
“내 맘이라고.”
재강은 한쪽 어깨에 배낭을 메며 문 쪽으로 향했다. 명선이 그 뒤를 따랐다.
“전희도 안 하고, 키스도 안 하고, 하는 동안 애무도 없이 박아대는 거 진짜 말도 안 되는 거 알지? 한 번에 23만 원씩이나 챙겨가면서.”
“네가 자진해서 주겠다고 한 돈이야. 어쩌라고.”
“너 다른 고객들한테도 이렇게 박하게 구냐? 아니면 그냥 내가 첫 남자라 이러는 거야?”
“…….”
신발을 신은 재강이 허리를 펴고 서서 명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 덕에 장사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겠어? 나한테 연습해서 남자한테도 박을 수 있는 거잖아. 고객의 풀을 더 넓힐 기회라고. 왜 그 생각을 못 해?”
“그렇게 맘에 안 들면 그만 지분대면 되잖아. 뭔 말이 이렇게 많아?”
“다음엔 전희랑 키스, 애무도 해. 이건 23만 원이나 내는 고객으로서의 정당한 권리 주장이야.”
재강이 픽 웃었다.
“게이 포르노 구해서 보고 연습이라도 하라고. 프로의 자세로. 알겠냐?”
재강은 말없이 한숨을 쉬며 돌아서서 문을 열었다.
“정 못하겠으면 내가 시범을 보여 줄 테니까 따라 하기라도 하든지.”
문밖으로 나가는 재강의 뒷모습에 대고 명선이 서둘러 말했다.
재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떠나 버렸다.
다음엔 무슨 일이 있어도 전희부터 시작해야겠어.
명선은 문을 닫고 욕실로 들어가며 다짐했다.
벌써 46만 원이 훅 나가 버려서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날이 오면 일단 씻고 나오자마자 달려들어서 가슴부터 조져놔야지. 가슴이랑 쇄골 쪽으로 꽤 느끼는 것 같던데.
입 대지 말라던 것도 너무 자극적일까 봐 겁나서 그런 거겠지. 일단 한번 빨리고 나면 정신 못 차리고 더 해달라고 할걸?
명선은 샤워기 물줄기 아래에 서서 머릿속으로 애무의 동선까지 짜보며 설레는 미소를 머금었다.
* * *
씻고 모텔을 나온 명선은 별수 없이 근처 카페에 앉아 빈둥대다가 시간이 되자 가든으로 갔다.
이제는 출근해 숯불 방으로 먼저 가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차를 주차하고 가 보니 재강은 아직 출근하지 않은 채였다.
명선은 뒷짐을 지고 숯불 방 안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기웃거렸다. 괜히 숯불 착화기 뚜껑을 열었다가 닫고 불판 세척기를 켰다 끄기도 했다.
오늘 밤엔 정녕 못 하는 건가. 또 23만 원 내는 건 너무 부담인데…….
명선은 작은 숯불 방 안을 느릿느릿 돌아다니며 재강과의 섹스 생각에 골몰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주 할 수 있을지, 어떤 수를 써야 재강이 자신과 거리낌 없이 전희와 애무, 키스까지 즐기며 섹스를 할지.
진짜 나한테 중독되게 만들어 줄 수 있는데. 가슴 좀 만져 주니까 그 대쪽 같은 게 손도 제대로 못 쳐내고 굴복했잖아.
내 손이랑 혀가 얼마나 마법을 잘 부리는지 너 모르지? 네가 마음만 조금 고쳐먹으면 내가 너한테도 천국을 선사할 수 있다 이거야.
그럼 23만 원이고 뭐고, 나한테 한 번만 하자고 매일매일 애원을 하겠지.
이제껏 내 박음질에 환장했던 바텀들 모아서 간증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진짜…….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못내 아쉬웠다.
재강을 헤테로라 여기면서도, 자꾸만 미련이 남았다. 이제껏 자신과 섹스한 남자들이 얼마나 큰 만족을 느꼈는지, 재강이 알아주면 좋으련만.
숯놈, 이 멍청아. 너 정말 멍청한 거 아냐? 눈앞에서 마법의 손과 혀와 좆을 가진 인물이 버젓이 몸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데 그런 식으로 외면을 하고 말이야.
헤테로로서의 체면만 살짝 내려놓으면 23만 원보다 훨씬 값진 경험을 하면서 살 수 있게 될 텐데.
“왜 또 얼쩡거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명선은 재강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사장 아들이 가게 순찰도 못 하나.”
명선이 중얼거리며 괜스레 착화기 앞에 있는 의자 등받이를 만지작댔다.
재강은 말없이 배낭을 벽에 걸더니 앞치마를 입었다.
명선은 재강이 옆쪽으로 가 불판을 세척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 주변 풍경을 보며 건들거렸다.
잠시 후 세척기가 꺼지고 재강이 젖은 목장갑과 앞치마를 벗으며 명선이 있는 쪽으로 왔다.
“너 왜 안 가.”
“내 맘.”
“가서 카운터나 봐.”
“아직 브레이크 타임이라 카운터에 가도 할 일 없어.”
“난 여기서 할 일이 있으니까 걸리적대지 말고 좀 꺼지라고.”
“…….”
명선은 양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재강을 쳐다봤다.
문득, 머리카락은 다 뻗치고 눌린 채로, 가슴을 애무하는 명선의 손목을 꼭 잡고 있던 재강의 모습이 떠올랐다.
명선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선은 잔뜩 내리깐 채, 입을 꾹 다물고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을 제어하려 애쓰던 모습.
이렇게 명선에게 험한 말과 표정을 내보이는 평소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명선은 재강 같은 사람의 그런 은밀한 모습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즐거워졌다.
말없이 올려다보던 명선이 씨익 웃자 재강은 대뜸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발 꺼져라.”
“얘기 좀 하자.”
“으어.”
재강이 진력난다는 소리를 길게 내뱉었다.
“넌 오늘 아침에 섹스 어땠어?”
재강이 미간을 찡그렸다가 뒤쪽을 살피더니 한 발짝 가까이 왔다.
“처돌았냐?”
“너도 좋은 순간이 있긴 했지?”
“내가 너랑 그런 감상 나누고 싶어 하는 거로 보여? 그것도 이런 데서?”
“가슴 만져 주는 걸 꽤 좋아하는 것 같던데. 쇄골 쪽이랑.”
재강은 말없이 명선을 내려다보다가 명선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빨리 꺼져.”
명선은 순순히 일어났다가 재강의 가슴을 턱 움켜잡았다.
“씹, 팔 새끼가.”
움찔했던 재강이 곧장 명선의 턱을 후려쳤다.
명선이 의자와 뒤엉켜 나동그라지며 구석에 처박혔다.
“아후, 씨…….”
명선은 얼마간 끙끙대다 벽을 붙잡고 비척비척 일어섰다. 턱과 입술 가장자리, 몸 이곳저곳이 얼얼했다.
“…….”
재강은 그대로 주먹을 꽉 쥐고 선 채 눈을 크게 뜨고 명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명선은 까지고 흙먼지가 묻은 손바닥을 들여다보다 바지에 문질러 닦고 아래턱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엄지손가락으로 입가를 꾹 눌렀다 떼니 피가 조금 묻어나왔다.
둘은 잠시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그 수도꼭지 접합부 있잖아.”
멀찍이서 정식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재강의 미간이 살짝 꿈틀했다.
재강의 어깨너머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정식과 양자의 모습이 보였다.
명선의 눈이 그리로 갔다가 다시 재강의 얼굴로 돌아왔다. 재강이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둘이 가까워질수록 재강의 표정이 복잡해지는 것을 명선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세히 관찰했다.
짜증과 분노가 뜨끔함, 불안함, 그리고 체념으로 바뀌는 모습을.
결국엔 ‘좆됐다’라는 문장이 떠올랐을 게 분명하다는 것을.
“거기서 찌익 하고 나오다 그치고, 나오다 그치고, 그런다는 거야…… 어, 명선이 출근했네?”
정식과 양자가 가까워지자 명선은 바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 오늘 좀 일찍 왔어.”
명선이 널브러져 있던 의자를 세워 놓고 재강의 곁을 지나 숯불 방 바깥쪽으로 나왔다.
“에구? 너 이게 왜 이러니?”
양자가 명선의 턱을 잡고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을 크게 떴다.
“여긴 또 왜 이래?”
정식도 명선의 팔에 묻은 흙먼지와 긁힌 상처를 들여다봤다.
“제가…….”
재강이 돌아서며 입을 떼는 순간 명선은 하하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저 의자에 앉아서 깝치다가 의자 쓰러지는 바람에 넘어졌어. 괜찮아.”
“아이고, 의자가 낡긴 낡았지. 저거 위험하다. 바꿔야겠네.”
정식이 안쪽으로 가 의자를 살펴봤다.
“그나마 형이 옆에 있다 잡아 줘서 이 정도였지, 형 아니었으면 더 크게 다칠 뻔했다니까.”
명선이 재강을 쳐다보고 말한 후 필살기 미소를 지었다.
재강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명선을 바라보다 양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다행이네. 재강 씨, 고마워요.”
“…….”
재강은 말없이 입꼬리만 짧게 올렸다 내리며 고개를 끄덕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명선이가 형이랑 많이 친해졌구나. 출근하면 맨날 여기부터 와 있고. 하긴, 여기 다들 나이가 많은데 또래가 있으니까 좋지.”
“그럼. 형이랑 같이 있으면 재밌지. 잘 맞는 구석도 많고. 그치, 형.”
명선이 재강의 어깨를 툭 치고 문지르며 웃었다.
재강은 명선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다시 입꼬리만 올려 건조한 미소를 지었다.
“아, 여기 여기.”
정식이 수도 쪽으로 가 손짓하자 양자가 그쪽으로 갔다.
“이거 봐, 이거 봐. 여기서 물이 새는 거지.”
“그러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수도꼭지를 들여다보며 웅성대는 동안 명선은 재강의 얼굴을 보면서 빙글빙글 웃었다.
재강은 그런 명선을 가만히 바라봤다.
역시나, 두 눈에서 온갖 쌍욕이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재강 씨, 이쪽으로 와서 좀 봐 봐요.”
정식이 부르자 재강이 그 둘의 곁으로 갔다.
“이거 어젯밤에도 이랬나? 영찬 씨가 아까 아침에 보고 물 샌다고 알려 준 건데.”
“어젠 괜찮았어요.”
“그럼 오래된 건 아닌가 보네. 근데 여기 봐, 이게…….”
셋이 그러는 동안 명선은 싱크대 앞으로 가 까진 손과 팔, 얼얼한 입가를 물로 씻고 다시 옆쪽 구역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명선은 느긋하게 앉아 핸드폰을 켜고 빈둥거렸다.
“일단 양 씨한테 한번 와서 보라고 해야지, 뭐.”
“재강 씨, 일하다 혹시 뭐 눈에 띄는 거 있으면 바로 알려 줘요.”
“네.”
대화가 일단락된 듯 정식과 양자가 숯불 방 바깥쪽으로 나갔다.
“명선이 안 들어가니? 거기 약 발라야 되지 않아?”
“살짝 까진 건데 약은 무슨. 괜찮아. 아직 영업 전이니까 형이랑 좀만 더 놀다 들어갈게.”
“그래.”
양자와 정식은 수도꼭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뒤뜰을 지나 사라졌다.
사방이 고요해지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명선이 뒤를 힐끔 돌아봤다.
재강이 팔짱을 낀 채 칸막이에 기대 명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선이 피식 웃고는 핸드폰을 껐다.
“좆될 줄 알았지?”
“…….”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몸도 섞은 사이에 이 정도는 해야지.”
재강은 피곤한 얼굴로 명선을 물끄러미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좀 가라.”
“할 얘기 있다고 했잖아.”
“그럼 빨리하고 가.”
“생각해 봤는데, 가격을 좀 내려 주면 어떨까 싶다.”
“……뭐?”
“23만 원 너무 빡세.”
“…….”
말없이 있던 재강이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명선이 일어서서 재강 가까이 다가갔다.
“난 너랑 더 자주 했으면 좋겠거든. 내가 얘기했잖아, 네 단골 되겠다고. 근데 어제 한 번, 오늘 아침에 한 번 한 걸로 벌써 46만 원이 나갔어. 진짜 감당이 안 된다.”
“…….”
“너 나 몇 살인지 아냐? 스물넷이야. 존나 한창때라 몸에서 불이 난다고. 너도 알지?”
“…….”
재강은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옆쪽만 내려다봤다.
“딱 절반 가격으로 해서 11만 5천 원 어때? 천 원짜리 받기 좀 그러면 그냥 11만 원이나 12만 원으로 할까?”
“…….”
“너 박리다매 알지? 그런 거라고 생각해. 12만 원으로 열 번이면 벌써 120만 원…….”
명선은 문득 말을 끊고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8만 원 어떠냐. 대신, 한 번만 박는 걸로. 딱 섹스 한 판. 하고 나서 한 판 더 하자고 안 조를게. 그렇게 해서 8만 원. 어때? 그래도 열 번 하면 벌써 80만 원인데. 열 번 박고 80만 원을 버는 거야. 죽이지 않냐? 모텔비도 지금처럼 내가 계속 낼 거고.”
“…….”
“그리고 전희랑 애무, 키스도 좀 넣자. 박기만 하면 무슨 재미야. 그런 거 다 합쳐져서 질펀하게 놀아대는 게 진정한 섹스지. 나는 그런 거 되게 좋아하거든.”
“…….”
“너도 그냥 여자 고객들이랑 할 땐 하지? 그냥 내가 남자라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못 하는 거지? 근데 괜찮아. 몸이 흥분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처음이 어렵지, 일단 하면 남자나 여자나 다를 게 없다.”
“…….”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나랑 연습해서 익숙해지면 네 고객이 배로 늘어나는 거라고. 길게 갈 거면 멀리 봐야 하지 않겠냐? 정 못하겠으면 내가 가르쳐 줄게. 내가 말 그대로 녹여버린 바텀들이 꽤 있…….”
“나 남창 아니야.”
재강은 여전히 시선을 옆쪽에 둔 채였다.
명선이 입을 다문 채 눈을 깜박였다.
“……뭐?”
재강이 명선과 눈을 맞췄다.
“남창 아니라고.”
“뭐…… 언제부터? 이제 관둔다고?”
“처음부터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니야.”
“…….”
“돈은 내일 다 돌려줄게. 없던 일로 하자.”
“…….”
명선은 눈만 크게 뜬 채 껌뻑거렸다. 그 얼굴을 보고 있던 재강이 곧 숯불 상자가 쌓인 벽 쪽으로 갔다.
“야, 잠깐만. 잠깐.”
명선이 그 뒤를 따라가 재강의 팔을 붙잡았다.
“너 내가 지긋지긋해서 떨어내려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처음부터 아니었다니까 왜 또 못 알아먹고 주접이야.”
재강이 명선의 팔을 쳐냈다.
“한번 말하면 좀 들어라. 어?”
“그럼 애덕 씨랑 별세계는 뭔데?”
“뭐?”
“애덕 씨가 너한테 돈 주면서 별세계를 봤다고, 자기 남편도 못 하는 걸 네가 했다고 그랬잖아. 그건 뭐냐고.”
재강이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다 피식 웃었다.
“그런 대화를 듣고 나를 남창이라고 생각한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애덕 씨 집에 커튼 달아 주러 갔다가 천장에 야광별도 붙여 줬거든. 남편분이 어깨가 안 좋아서 제대로 못 하시던 거라 마침 간 김에 내가 했어. 그것 때문에 좋아하셨던 것 같은데.”
“…….”
“난 동네 주민들 상대로 가끔 잡다한 일 해주고 돈 받아. 그래서 애덕 씨가 나한테 그 일도 시킨 거고. 애덕 씨랑 섹스한 적은 없어. 이제 답이 됐냐?”
다시 일을 시작하려던 재강의 팔을 명선이 얼른 붙잡았다.
“씨발, 그럼 그걸 왜 이제 와서 얘기해? 뭐 하자는 거야? 너 나 갖고 놀았어?”
“너무 확신에 가득 차 있어서 아니라고 해봤자 제대로 들을 것 같지도 않았고, 알아서 돈 주겠다는데 굳이 쳐낼 것까진 없어 보여서 그냥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둔 거야. 근데 내가 실수했다. 너랑 더 엮이면 안 될 것 같아. 난 이제 손 뗄란다.”
“네 맘대로? 이딴 식으로?”
빠져나가려는 재강의 팔을 명선이 더 꽉 움켜쥐었다.
“그럼 난 어쩌라고, 이 새끼야.”
“내가 알 게 뭐야, 이 새끼야.”
재강이 명선의 팔을 뿌리쳤다.
명선은 숯불 방 바깥으로 밀려나 선 채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재강을 바라봤다.
대체 이게 뭔 날벼락이야. 게이이든 아니든, 어쨌든 돈만 있으면 섹스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젠 그것도 안 된다고?
등골이 휘는 한이 있어도 그냥 23만 원 받는다고 할 때 꼬박꼬박 내고 군말 없이 할 걸 그랬나? 가격 좀 깎자고 달려들었다가 이게 뭔 꼴이야.
명선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입을 열었다.
“너…… 아까 내가 네 일자리 보전해 준 건 기억도 안 나냐? 내가 사실대로 말했으면 너 당장 잘리는 거 알지?”
“…….”
재강은 명선에게 등을 돌린 채 앉아 말없이 숯 통에 숯을 나눠 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가서 사실대로 다 말해 볼까?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 봐?”
재강이 동작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명선을 쳐다봤다.
“이래서 너랑 더 엮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거야. 너는, 인간이 너무 역겨워.”
“…….”
“말하든지 말든지, 더 부풀리든지 지어내든지, 네 좆대로 해. 관심 없으니까.”
재강은 도로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로 돌아갔다.
명선은 그 등을 얼마간 바라보다가 뒤돌아 홀 건물로 향했다.
* * *
일이 잘될 리 없었다. 명선은 울적한 기분인 채 마지못해 일했다.
이제 돈을 벌 이유도 없어졌으니 당장 그만두고 집에 가 버려도 상관없겠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건 눈앞을 오가는 재강의 몸 때문이었다.
이젠 그나마 여기 있을 때가 아니면 볼 수도 없을 몸이었다.
저 몸을 만지던 감촉과 뒤에서 왕복 운동을 하던 그 느낌이 아직도 은은하게 남아 있는데, 앞으로 다시는 그걸 느낄 수 없게 된 것이다.
재강의 몸을 보면 볼수록 그 사실이 더 진하게 다가와 서럽고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흥분되게 만드는 몸이었다. 맛을 알아 버렸기에 더욱더 원하게 된.
명선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재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너는, 인간이 너무 역겨워.
재강이 했던 말이 떠오르자 다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말을 하던 재강의 얼굴은 이제껏 명선을 볼 때마다 나오던 짜증스럽거나 피곤하다는 표정이 아니라, 정말로 차갑게 식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게 자꾸 신경 쓰였다.
나도 내가 별로 착하지 않은 건 안다고. 가끔 쓰레기같이 굴기도 하고 가끔 재수 없게 굴기도 해.
근데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런 거 아니야? 다들 그런 식으로 살지 않냐? 적당히 개새끼처럼 굴고 적당히 가식도 떨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 같은 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나보다 잘난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너 같은 새끼가?
나 같은 걸 갖고 놀면서 삥이나 뜯던 너는 뭐 그렇게 대단한 인간인 줄 아냐?
곱씹고 있노라면 반발심이 들고 다시 재강과 대면해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넌 뭐가 그렇게 잘났냐고, 그깟 섹스 좀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리고 제발, 오늘 밤에도 한 번만 좀 하자고.
생각은 그런 식으로 이어졌다.
명선은 피로와 좌절감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인 채 시간을 보냈다.
직원 식사 땐 재강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재강이 앉은 줄의 옆쪽 끝자리여서 아예 재강이 어쩌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자리였다.
욱하는 마음에, 꼴도 보기 싫다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앉긴 했지만 곧장 후회가 들었다.
몸이라도 구경하면 좋을 것을.
명선은 정식과 양자의 수다 속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잘 먹었습니다.”
멀찍이서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재강의 인사가 들렸다.
명선은 힐끗 눈을 돌려 홀을 나가는 재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냥 가서 싹싹 빌까.
성격 역겨운 거 다 맞는 말이고 인정할 테니까, 일단 그냥 육욕만 달랜다는 기분으로 섹스나 하는 건 어떻겠냐고.
어쨌든 내가 애무했을 때 너도 좋았던 건 인정하면 안 되겠냐고, 오늘 아침보다 훨씬 더 뿅 가게 만져 줄 수 있다고…….
그렇게라도 해볼까.
아니면 한 100만 원 정도 주겠다고 하면 솔깃하려나.
아니, 근데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냐고요.
얼마 후 입구 쪽에서 재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고했어요.”
양자와 정식, 직원들이 손을 흔들며 재강에게 인사했다.
명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앉아 심술이 난 뒷모습을 재강에게 보이기 위해 애썼다. 재강이 그걸 신경 썼을 것 같지도 않지만.
“…….”
명선은 테이블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어디서도 찾을 수 없던 그 첫 섹스 상대가 떠올랐다. 100퍼센트의 몸. 100퍼센트의 흥분.
열병을 앓듯 달아오른 채 그를 찾아 소득 없이 기웃대던 그 당시의 자신도 떠올랐다.
이건 정말, 너무 가혹하잖아.
“나 잠깐 차에 좀.”
명선이 벌떡 일어나서 홀 밖으로 향했다.
명선은 버릇처럼 숯불 방 쪽으로 가려다 재강이 방금 퇴근했단 걸 깨닫고 주차장 쪽으로 달려갔다. 재강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을 곳이었다.
벌써 갔으려나? 아니겠지?
반신반의하며 허둥지둥 정원을 지나 주차장 입구로 들어선 명선의 눈에 재강이 들어왔다.
재강은 자전거 핸들을 잡고 명선을 등진 채 멀찍이 서 있었다.
워 씨, 다행.
명선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딘데.”
거리가 가까워지자 재강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늦게, 재강이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는 게 보였다.
명선은 발소리를 죽이며 스르르 멈춰 섰다.
“통영…… 아니, 뭘 하게. 이번엔 뭘 하려고.”
재강의 목소리는 잔뜩 난 화를 간신히 참고 있는 듯했다.
“또 왜 그래. 이런 거 안 하기로 했잖아. 며칠 전에 우리 그런 대화 하지 않았어? 기억 안 나?”
한편, 어린아이를 조심스레 달래는 듯 들리기도 했다.
재강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데리러 갈게.”
명선은 문득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대화를 엿듣고 있는 듯했다.
“원아, 내가 데리러 갈게. 그냥 어디 들어가서 위치만 알려 줘, 지금 갈 테니까.”
이거 듣고 있었다는 거 알아채면 또 한 대 치는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자리를 비켜 줘야 하나?
“그 일은 어차피 이번 주 내내 쉰다고 했잖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모텔 같은 데 가 있을래? 아니면 피시방?”
아하. 그러니까 지금 상대방은 원아라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통영에 있는데, 그 사람을 데리러 가겠단 상황이군?
근데 이 밤에 통영까지?
“너 물건도 다 여기 있잖아. 입을 옷이라도 있어?”
같이 살던 사람인가? 애인? 야반도주?
명선은 어느새 팝콘을 씹으며 흥미진진하게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통속적인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알았어. 그럼 물건만 전해 주는 거로 하자. 네 옷 좀 싸서 내가 갖다줄 테니까, 그러는 김에 얼굴이라도 좀 보자. 어? 얼굴 보고 얘기하자.”
와. 애인 맞나 보네. 성격이 하도 지랄 맞아서 못 참고 도망갔나 보다. 나라도 도망갔겠다.
아니, 저걸 두고 도망가기엔 몸이 아쉽긴 한데…….
애인한테는 저 몸이 별거 아니었던 건가? 참 눈썰미도 없는 사람일세.
지랄 맞은 성격을 견디면서 100퍼센트 몸이랑 뒹구느냐, 잔챙이 몸이랑 뒹굴면서 마음 편하게 사느냐 이거군.
그럼 난 당연히 전자. 몸이 우선이지.
근데 애인한텐 원래 저렇게 설설 기는 거야, 아니면 도망간 거 돌아오게 하려고 가식 떠는 거야?
재강이 고개를 수그리고 얼굴을 문질렀다.
“이준원. 사람 미치게 하지 마라, 제발.”
……남자 이름?
명선의 눈이 활짝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