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 좀 넣어 주세요
2권
2부-2. 미션을 줘요
재강은 그 이후 다시 명선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다녔다.
티셔츠가 들어 올려지던 순간 불쑥 흥분이 차올랐던 명선은 재강이 또 그렇게 자신을 무시해 버리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고.
팬티는 왜 보고 간 건데? 그러고 나선 왜 또 개 무시야? 팬티는 입고 있게 해준다며? 뭐 잘못됐어?
난 진짜 손님들이랑 엄마 아빠한테 걸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데, 잘하고 있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해주고 가면 안 되는 거냐?
인간이 그따위니까 애인이 도망가지.
명선은 카운터 앞을 지나쳐 나가는 재강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면서도, 재강이 손도 아니고 그 쇠막대로 자신의 티셔츠를 들어 올리던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흥분됐다.
빨리 영업이 끝나 이 테스트도 무사히 끝이 나고, 재강과 함께 연꽃 모텔에 갔으면 싶어 좀이 쑤셨다.
명선은 10시가 지나자마자 바지를 끌어 올려 입고는 마지막 손님이 떠나길 기다렸다가 숯불 방으로 달려갔다.
재강은 한창 숯불 방 바닥을 빗자루로 쓰는 중이었다.
“어이, 숯불.”
재강이 돌아보고 바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명선이 가볍게 혀를 찼다.
“사람 보자마자 짓는 표정하고는.”
“왜.”
“통과했지?”
“뭘.”
“바지 내리고 있는 거. 네 말대로 했잖아.”
“…….”
재강은 명선의 얼굴을 보다가 다시 몸을 숙이고 바닥을 쓸었다.
“내가 영상으로 증거 남겨두기까지 했으니까 딴소리하지 마라.”
“…….”
“영상 보여 줘?”
“됐어.”
“밥 후딱 먹고, 내 차 타고 가자.”
“알았으니까 일하게 좀 꺼져.”
재강은 명선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웬일로 고분고분?
명선은 재강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서 귓가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니면, 밥 먹지 말고 그냥 우리끼리 먼저 퇴근하는 건 어때?”
“아, 씨벌, 진짜.”
재강이 짜증 가득 담긴 몸짓으로 명선을 밀어냈다.
“좀 꺼지라고. 난 밥 먹고 갈 거니까 너 혼자 가 있든지.”
“아오, 성질머리.”
명선은 진저리를 치고 다시 홀로 돌아왔다.
사람이 왜 저렇게 매사에 짜증투성이야? 몸만 예뻐, 몸만.
네가 그따위로 생겨 먹었으니까 애인이 도망가는 거라고, 인간아.
……어쨌든 같이 모텔에 가긴 가는 거니까 다행이긴 하다만.
아니야. 아직 마음을 놓으면 안 돼. 막판에 저게 또 무슨 핑계를 대면서 발 뺄지 모르는 거야.
명선은 잽싸게 재강의 식사 지정석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뒤늦게 식사 자리에 합류한 재강이 곁에 와 의자를 빼내자 명선은 그를 올려다보며 필살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강은 못마땅한 표정인 채 털썩 앉았다. 동시에 특유의 재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은근히 좋단 말이지.
명선은 숨을 흥흥 들이켜다 잽싸게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형, 제가 따라 드릴게요.”
“제가 따라도 되는데요.”
재강이 곧장 명선의 손에 들린 소주병을 잡았다.
잡는 순간 둘의 손가락이 겹치자 재강은 얼른 그곳을 피해 다른 부분을 잡았다.
명선은 손을 밀어 올려 다시 재강의 손가락에 겹쳐지도록 만들며 생글생글 웃었다.
“술은 혼자 따라 먹는 거 아니잖아요.”
재강이 다시 명선의 손을 피해 아래쪽을 잡았다.
“술도 혼자 못 따라 먹으면 애초에 마실 생각을 말아야죠.”
재강은 은근하게 힘을 줘서 소주병을 빼앗아 갔다.
“맞는 말씀이에요. 형님 덕에 제가 인생을 배우네요.”
명선이 깨달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사이가 좋아.”
건너편에 있던 정식이 둘을 보고 흐뭇하게 웃으며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재강은 컵에 소주를 가득 따르더니 몸을 살짝 돌리고 들이켰다. 평소와 달리, 이번엔 컵을 한 번에 몽땅 비웠다.
“그치. 나랑 진짜 잘 맞아. 밥 다 먹고 형이랑 놀러 가려고.”
입에 밥을 한 숟갈 넣었던 재강이 명선의 말에 입을 가리며 큽, 하고 기침을 삼켰다.
“엥? 이 밤에 어딜?”
정식이 기침을 열심히 삼키는 재강과 명선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드라이브 좀 하고, 형 집에도 놀러 가고.”
“피곤할 텐데. 피곤하지 않겠어?”
“괜찮아. 같이 노는 거 너무 재밌는데 일할 땐 서로 바빠서 잘 못 하니까, 그렇게라도 시간을 내야지.”
“에구…… 재강 씨는 피곤하지 않겠어요?”
“……괜찮, 습니다.”
간신히 밥을 삼킨 재강이 목멘 소리로 말했다.
“명선이가 형, 누나랑 나이 터울도 크고 둘 다 일찍 독립해 나가서 그런지 외로움을 많이 타요. 그래서 사람들이랑 아주 금방 친해지고. 다행이야. 재강 씨 같은 형이랑 친해져서.”
“쟤가 애교가 많아서, 어디 가서 싫은 소리는 안 들었어. 어딜 가도 잘 지내고.”
정식과 양자가 차례로 한마디씩 했다.
재강이 입꼬리만 살짝 올려 미소를 짧게 짓고는 입 안으로 밥을 퍼 넣었다.
“빨리 먹고 나가자, 형.”
명선이 재강의 어깨에 자기 어깨를 찰싹 붙이고 기대며 눈웃음을 날렸다.
재강은 식탁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여전히 입만 웃는 미소를 지었다.
명선과 닿아 있는 팔 상박부엔 힘이 바짝 들어가 더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은근하게 밀고 있었다.
명선은 그 반응에 너무나 즐거워 폭소가 터질 것 같았지만 간신히 참으며 밥을 먹었다.
재강은 식사를 마친 후 컵에 다시 소주를 가득 따라 단번에 비웠다.
“잘 먹었습니다.”
재강이 일어서자 명선도 젓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저도 잘 먹었습니다. 퇴근합니다.”
명선은 정식과 양자, 직원들에게 따사로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고는 잽싸게 재강의 뒤를 따랐다.
“징그러운 짓 좀 그만할래?”
홀을 나오자마자 재강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징그러운 짓이라니.”
“잘 맞긴 뭐가 잘 맞아.”
“몸이 잘 맞잖아. 몸끼리 많이 친해지기도 했고.”
“친해진 것도 아니고, 너 같은 거랑 친해질 생각도 없어.”
재강은 빠르게 뒤뜰 잔디를 지났다.
“좆을 내 입이랑 뒤에 쑤셔 넣기까지 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서운하지.”
명선은 그 곁에 바짝 붙어 걸었다.
“너 같은 새끼들 재수 없어.”
숯불 방에 도착한 재강이 신경질적으로 티셔츠를 홱 벗으며 낮게 말했다.
명선은 숯불 방 입구에 서서 재강의 드러난 몸통을 바라봤다.
“나 같은 새끼들?”
“느물대는 새끼들.”
재강이 벗은 티셔츠를 선반 쪽으로 던져 놓고는 옆쪽으로 가서 고무호스를 풀어냈다.
재강이 던졌던 티셔츠가 선반에 걸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러시나.”
명선은 미소를 띤 채 재강의 티셔츠를 집어 들어 툭툭 털었다.
살짝 축축한 티셔츠엔 재강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명선은 벽에 기대서서 티셔츠를 만지작거리며 재강의 몸을 구경했다.
바닥 이리저리 물을 뿌리던 재강이 명선을 보더니 그 발치로 물줄기를 쏘아 보냈다.
“저리 떨어져.”
“성질 좀 죽여요, 아저씨.”
명선이 킬킬 웃으며 잔디 쪽으로 나갔다.
재강은 찌푸린 채 마저 청소를 했다.
명선은 계속 티셔츠를 주물럭거리면서 재강의 몸을 감상했다.
땀에 젖은 재강의 몸은 쨍한 조명 아래에서 근육의 결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이 앞에 의자랑 테이블, 시원한 맥주 갖다 놓고 앉아서 저 몸이 움직이는 걸 느긋하게 감상만 해도 참 좋을 텐데.
종일 그러고만 있어도 전혀 안 지루할 거야.
흐뭇하게 웃으며 손으로 코를 한 번 훔쳤던 명선은 문득 손 냄새를 맡아보고 재강의 티셔츠를 코에 댔다.
신기하네. 탄내랑 땀 냄새 좀 섞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좋지? 향수 같은 것도 좀 섞인 건가?
그럼 무슨 향수? 오크를 베이스로 하는……? 아님 약간 바닐라 느낌?
냄새를 열심히 분석하며 티셔츠에 코를 묻고 킁킁대던 명선의 눈과 재강의 눈이 마주쳤다.
“씨발, 저 변태 새끼.”
재강이 명선에게 물줄기를 뿌렸다.
“아, 왜!”
명선이 얼른 멀리 달아났다.
“남의 옷에 뭐 하는 거야, 역겨운 새끼가.”
재강이 눈을 부라렸다.
“냄새 특이해서 맡아 본 거야. 존나 발끈하네, 뭐 대단한 거라고. 아, 왜 저렇게 예민해?”
재강은 진저리치는 표정을 지었다가 한숨을 쉬며 물을 잠그고 호스를 정리했다.
“잠시라도 역겨운 짓을 안 하면 생명 유지가 안 되는 거야 뭐야.”
중얼거리는 재강의 곁으로 명선이 다가갔다.
“너 향수 뭐 써?”
“향수 안 써.”
“그럼 로션은?”
“…….”
재강은 기억을 더듬는 듯 눈을 깜박이며 벽 앞으로 가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몰라. 그냥 집에 있던 거.”
그럼 애인이 갖다 놓고 쓰던 거였겠네.
애초에 꾸미고 관리하는 건 전혀 관심이 없는 인간이구만.
이러니 진성 헤테로로 보이지, 쯧쯧.
“샴푸랑 보디 워시랑 세제 같은 것도 다 그냥 집에 있던 거?”
“샴푸…… 아, 뭔 상관이야? 네가 알 게 뭐야?”
“냄새 특이하니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왜 또 예민하게 굴어?”
“개인적인 것 좀 묻지 마. 너랑 아무 상관없으니까.”
재강이 배낭에서 새 티셔츠를 꺼내 입고는 명선의 손에서 티셔츠를 낚아채 배낭에 넣었다.
“그렇게 개인 정보에 민감하면 한국에선 살기 힘들어.”
“가서 시동이나 걸어.”
둘은 나란히 뒤뜰을 지나 정원 쪽으로 갔다.
재강이 홀 입구 쪽으로 가 인사를 하는 사이 명선은 먼저 주차장으로 가 시동을 걸었다.
어느새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다시금 소풍 가기 전날 밤의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오늘은 무슨 체위로 할까.
역시 몸을 보려면 정상위나 내가 위로 가는 게 제일 좋긴 한데, 어쨌든 숯놈이 어떤 체위를 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잖아. 뭐든 다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해둔 바람에.
아…… 괜히 그런 말을 했나?
…….
아니야. 그 말이 결정적으로 숯놈을 확실하게 낚았던 거니까 번복해선 안 돼.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밀고 나가야 돼.
숯놈이 정말 뭐든지 다 원하는 대로 하는 것처럼 보이게끔 만들면 되는 거지.
명선은 어떻게 하면 재강을 교묘하게 조종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느라 운전 내내 조용했다.
옆에 앉은 재강도 말없이 창밖만 바라봤다.
* * *
이번에도 재강이 먼저 샤워하고 명선이 뒤이어 씻었다.
명선은 역시나 습관적으로, 가슴을 부풀리고,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거울에 비춰보고, 골반의 가장 섹시한 위치에 수건을 위치시키며 신경을 쓴 후 욕실 밖으로 나왔다.
지난번과 달리 재강은 가운을 입고 침대 끝에 걸터앉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명선이 나오자 재강은 명선을 힐끗 보고 다시 텔레비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호.
짧은 순간이었지만 재강의 눈이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는 걸 명선은 놓치지 않았다.
전엔 쳐다보는 척도 안 하는 것 같더니만, 몇 번 박아 보니까 이제 눈에 좀 들어오나 봐?
하긴, 그냥 무시할 수 없는 몸이긴 하지.
으이그, 너도 어쩔 수 없는 게이구나.
명선은 뿌듯함이 스며 나오는 표정을 감추며 재강 가까이 다가갔다.
텔레비전을 끄고 일어나려는 재강을 잡아 앉히고, 명선은 그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었다.
“…….”
재강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명선을 내려다봤다.
“빨아 줄게.”
명선이 필살기 미소를 날리며 속삭이고 재강의 가운 자락을 양옆으로 젖혔다. 동시에 재강의 두 허벅지도 양옆으로 부드럽게 열어젖히듯 했다.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움찔했던 재강이 머뭇거리며 다리를 벌렸다.
이미 반쯤 발기된 재강의 성기를 보며 명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전에는 나한테서 등 돌리고 문질러대야만 섰던 좆이 자기 혼자 이만큼 서 있다니.
길들이면 어쨌든 길이 들기는 하는 놈이었구만!
그래, 차근차근히 해나가면 되는 거지. 이제 완전히 내 걸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겠는데.
혀로 입술을 한 번 축인 명선이 재강의 것 이곳저곳을 할짝댔다.
재강의 손이 침대 가장자리를 꽉 쥐며 바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명선은 얼마간 그렇게 하다 입술 끝으로 성기를 가볍게 물었다 놓고, 핥고, 입 맞추길 반복했다.
성기는 금세 단단하게 부풀었다. 명선은 곧 입을 한껏 벌려 그것을 깊게 물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용한 방 안은 재강의 씨근거리는 숨소리와 명선이 성기를 쪽쪽 빠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명선은 재강의 성기를 맛있게도 빨았다. 깊숙이 삼키듯 하다 끝부분을 할짝대고, 기둥을 길게 핥아 올리고, 끝부분만 물고 세게 빨며 자극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허벅지를 어루만지고 음낭을 부드럽게 애무하며 재강의 표정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재강은 다리를 활짝 벌리고 앉아 몸을 움찔거리며 침대 가장자리만 움켜쥐고 있었다. 고개를 한껏 옆으로 돌리고 방의 구석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재강이 몸을 움찔거릴 때마다 꽉 다문 턱과 목 옆의 피부가 울룩불룩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또 입 꾹 다물고 있는 것 좀 보게. 신음 좀 들려주면 어때서. 같이 학학대고 즐기면 좋지, 뭘.
그나저나 내가 이렇게 맛있게 빨아 주고 있는데, 너도 내 몸을 쓰다듬는 수고 정도는 해주면 안 되겠니, 이 새침한 자식아?
못내 아쉽긴 했지만 이 정도라도 온 게 얼마인가 싶었다.
명선은 목 근육을 최대한 이완시켜 재강의 것을 목구멍 깊숙이 넣었다.
동시에 느슨하게 묶여 있던 가운의 끈을 풀고, 가운 자락 안으로 양손을 깊숙이 밀어 넣으며 재강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재강의 아랫배에 파고드는 형국이었다.
재강이 명선의 머리를 잡았다가 얼른 손을 떼고 다시 침대 가장자리를 꽉 잡았다.
명선은 끅, 끅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재강의 것을 더 깊이 삼키듯 달려들었다.
곧 재강의 엉덩이가 명선 쪽으로 미끄러지며 재강이 드러눕는 자세가 되어 버렸다.
골반은 여전히 명선에게 단단히 잡히고 성기는 깊숙이 물린 채였다.
“하…….”
재강이 팔꿈치로 침대를 짚고 누우며 짧게 소리를 내뱉었다.
아, 최고네. 저 목소리. 이 맛.
명선은 어느새 무아지경으로 재강의 것을 흡입하고 있었다.
성기는 정말 꿀맛이라도 나는 듯 맛있었고, 자신의 팔 안에 갇힌 재강의 등, 엉덩이의 감촉도 미치도록 좋았다.
곧 명선이 헐떡이며 성기에서 입을 뗐다.
성기와 자신의 입술 사이에 길게 이어져 있는 침 줄기를 걷어낸 후, 그대로 성기를 손으로 문지르며 재강을 쳐다봤다.
재강은 등과 머리를 대고 누워 눈을 감은 채였다. 벌어진 입에서 거친 호흡이 나올 때마다 가슴과 배가 빠르게 오르내렸다.
명선은 허벅지 안쪽에 입을 맞추고 다시 성기 쪽으로 가서 할짝대다가 고슬고슬한 음모에 코와 입술을 이리저리 비비며 조금씩 위쪽으로 올라갔다.
최대한 부드럽게, 그리고 느릿느릿, 재강의 아랫배에서 배꼽으로, 그 위로, 입을 맞추며 조심스레 침대 위로 기어올랐다.
그러는 동안 소리 없이 허리에 두른 수건을 풀어 던지고, 계속 재강의 눈치도 살폈다.
재강은 그대로 누운 채 씨근대는 중이었다.
입술에 와 닿는 재강의 몸은 환상적이었다.
명선이 입술을 댈 때마다 움찔거리고 들썩이는 그 몸.
피부의 적당한 두께와 적당한 뜨거움, 적당한 근육량.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 완벽함이 수치화되어 명선의 입술을 타고 입력되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물론 모두 100, 100, 100이었다.
과일의 당도를 숫자로 보여주는 기계처럼, 명선은 자신이 완벽한 몸을 숫자로 보여 주는 기계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재강은 풀어헤쳐 진 가운을 입은 채여서, 포장이 반쯤 풀어진 고급 과일 같기도 했다.
이 완벽한 몸을 알아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그걸 쟁취하기 위해서 개고생과 수난을 마다치 않는 사람도 나밖에 없고.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나는 이걸 누릴 자격이 있다, 이거야.
명선은 자신의 결론에 감탄하고 환호하며 열심히 재강에게 기어올랐다.
명선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재강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찡그린 얼굴엔 흥분이 가득했다.
명선은 곧장 재강의 가슴에 입술을 찰싹 붙였다.
“아……!”
재강이 몸을 들썩이며 명선의 머리를 붙잡았다.
명선은 아까처럼, 재강의 어깨를 꽉 끌어안으며 가슴을 세게 빨고 파고들었다. 아래에서 둘의 성기가 거칠게 문질러졌다.
재강이 명선의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잡았다.
명선은 재강의 유두를 힘껏 빨았다가 혀를 대고 이리저리 굴렸다. 입을 크게 벌려 유두와 함께 가슴 전체를 답삭 물기도 했다.
재강은 힘겹게 소리를 삼키며 명선을 꽉 붙들기만 했다. 힘이 잔뜩 들어간 둘의 다리가 뒤엉켰다.
아, 맛있어. 100퍼센트 몸은 역시 맛도 100점.
한참 재강의 왼쪽 가슴을 희롱하던 명선이 입술을 떼고 오른쪽 가슴으로 가려는데 재강이 그 얼굴을 양손으로 탁 붙잡았다.
명선은 입을 한껏 벌린 그대로 재강을 쳐다봤다.
재강의 얼굴엔 흥분과 함께 혼란도 가득해 보였다.
아니, 전에도 느꼈지만, 꼴리는 건 이해하겠는데 또 이렇게까지 혼돈 대잔치일 건 뭐야.
애인이랑 동거도 해놓고서 왜 자꾸 경험 없는 인간처럼 구냐고.
꼭 평생을 헤테로로 살아온 사람이 처음으로 남자 때문에 흥분해서 당황하는 것처럼…… 헐,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꼴리는데?
재강의 눈을 마주 보던 명선이 다시 가슴으로 돌진하려 하자 재강이 결국 명선을 밀쳐냈다.
“왜 또. 잘 있다가.”
쓰러졌던 명선이 웅얼거리며 일어나는 동안, 재강은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머리맡 쪽으로 가 콘돔을 집어 들었다.
그러는 동안 드러난 재강의 엉덩이를 탐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명선이 그곳을 덥석 움켜잡자 재강이 곧장 쳐내며 펄쩍 뛰었다.
“야!”
재강이 엉덩이를 붙잡은 채 명선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알았어. 미안, 미안.”
명선은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으며 진정하라는 손짓을 했다.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단 걸 알면서도 눈앞에 있는 몸을 그냥 내버려 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재강의 반응이 너무나 재밌기도 했다. 험한 말로 협박당하고 얻어맞기까지 한 전적이 있지만, 이제 그런 게 별로 겁나지도 않았다.
재강은 무릎을 대고 앉아서 명선을 계속 노려보며 성기에 콘돔을 끼웠다.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명선이 손에 침을 뱉어 자신의 뒤에 문지르며 재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주춤했던 재강은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로 계속 콘돔을 끼우며 엉겁결에 뒤로 조금씩 물러났다.
명선은 저돌적으로 다가갔다.
원래 명선의 계획은 재강의 성기를 빨다 몸 이곳저곳을 빨면서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간 후 그의 성기를 자신의 뒤에 끼워 넣으며 앉는 것이었는데, 재강이 밀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명선은 그저 뭐든 빨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재강의 몸은 유혹적이기 짝이 없었다.
물러난 재강이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며 털썩 앉는 동시에 명선이 그 허벅지 위로 올라앉으려 하자 재강이 명선을 홱 밀었다.
명선이 뒤로 벌렁 자빠지며 침대가 크게 출렁였다.
아휴, 이 새끼.
내가 리드할 테니까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보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명선은 그대로 누운 채 체념하듯 다리만 양옆으로 활짝 벌렸다.
어차피 자신이 재강의 위로 올라가는 체위나 정상위 둘 중 하나만 하면, 섹스하는 동안 얼마든지 그 몸을 구경할 순 있었다.
재강이 엎드리라는 말을 하지만 않는다면.
다행히도 재강은 바로 명선의 다리 사이로 다가왔다.
“흐윽…….”
뒤로 재강의 것이 밀고 들어오자 명선은 찡그리며 신음을 삼켰다. 재강 역시 잔뜩 찡그린 채였다.
명선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재강의 몸을 응시했다.
재강의 것이 깊숙하게 들어오며 둘의 몸이 더 가까워졌다.
“아하아, 씨이발…….”
명선은 눈을 질끈 감으며 재강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재강이 명선의 몸 양옆으로 손을 짚고 엎드렸다. 그러고는 명선의 한쪽 다리를 어깨에 걸친 채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 하, 흐으응…….”
명선은 재강의 허벅지를 꽉 쥔 채 흔들리며 헐떡였다.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성기를 잡고 문질렀다.
재강의 움직임은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웠다. 여전히, 정확한 곳을 적절한 힘으로 콱콱 찔러 주고 있었다.
명선은 금세 황홀경에 빠지는 기분으로 재강의 것을 한껏 느꼈다.
곧 재강이 몸을 부딪치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명선이 눈을 뜨고 재강의 몸을 바라봤다. 쿵쿵 부딪칠 때마다 재강의 가슴이 탄탄하게 흔들렸다.
오 마이 갓. 저 절경.
“아후, 씨, 존나 좋아…….”
명선은 재강의 허벅지를 놓고 그의 팔을 꽉 잡았다가 쓸어 올렸다.
재강은 여전히 고개를 수그려 아래쪽으로 시선을 향한 채였다.
명선의 손이 재강의 가슴을 더듬다가 쇄골을 지나 얼굴로 올라갔다.
재강의 얼굴은 뜨겁고 땀이 배어나 있었다.
뺨에 명선의 손이 닿자 재강은 살짝 고개를 틀어 피했다.
그 움직임에 어쩐지 수줍음이 가득한 듯 보여 명선은 문득 웃음이 나왔다.
명선이 다시 따라가 재강의 뺨을 감싸 잡았다.
“야.”
명선의 말에 재강이 눈만 들어 명선을 쳐다봤다. 명선이 자신의 입술을 깊게 한 번 빨았다.
“하, 키, 스할래?”
“…….”
“전, 전희도 괜찮, 지 않았냐? 어?”
“…….”
“입술도 좀 먹어보자, 너, 하윽, 너 진짜 맛있는 거, 알지.”
명선이 손을 빠르게 미끄러뜨려 재강의 뒤통수를 꽉 쥐고 끌어당겼다.
“윽.”
예상치 못했는지 홱 끌려왔던 재강은 둘의 입술이 닿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명선의 머리 옆으로 얼굴을 처박았다.
“이 새, 끼가.”
재강이 곧장 명선의 손을 떼어내고 윗몸을 일으켰다.
다시 자신의 얼굴을 잡으려는 명선의 손을 뿌리친 재강이 그 양 손목을 잡고 짓눌렀다.
“조용히 좀 하라고, 씹새끼야.”
재강은 힘이 셌다. 명선은 그 사실에 더욱더 흥분하는 기분으로, 잡힌 팔을 빼내려 버둥거렸다.
“좆이랑 가슴이, 조온나 맛있으니까, 하, 입술도 맛있을 거 아냐, 안, 그래?”
“안 닥쳐?”
한쪽 손이 풀려나는 순간 명선이 그 손으로 재강의 목덜미를 잡고, 재강은 곧장 명선의 얼굴을 붙잡아 짓눌렀다.
재강은 그 상태로 명선의 몸에 자신의 성기를 퍽퍽 박아 넣었다.
“우으윽…….”
명선은 재강에게 얼굴과 한쪽 손목을 잡힌 채 밀쳐지며 거세게 흔들렸다.
재강이 손에 무게를 꽤 실은 채여서, 명선은 머리가 침대 속으로 아예 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땀으로 젖은 재강의 목덜미 위에서 바짝 힘이 들어간 명선의 손이 미끄러졌다. 목덜미의 단단한 굴곡마저 100퍼센트 그 자체였다.
아, 진짜 죽을 것 같아.
나 이대로 요단강 건너도 존나 후회 없겠는데.
명선의 손가락이 재강의 짧은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파고들었다.
재강이 단단한 몸을 부딪칠 때마다 정신이 조금씩 조금씩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 * *
재강이 성기를 빼내자 명선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늘어져 누운 명선의 배와 가슴엔 정액이 흥건했다.
명선은 한껏 만족스러운 얼굴인 채, 콘돔을 빼는 재강을 바라봤다.
재강의 배에도 명선의 정액이 조금 튀어 있었지만 재강은 모르는 듯했다.
역시 한 번 내 앞에서 싸고 나니까 이제는 안 도망가고 잘 싸네.
좋아, 좋아. 잘하고 있어.
명선은 속으로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포장지에 콘돔을 쑤셔 넣은 재강이 손등으로 명선의 허벅지를 툭 쳤다.
명선이 옆으로 비척비척 움직여 자리를 만들어 주자 재강이 빈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명선은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쉬는 재강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그 입술을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
곧장 눈을 뜬 재강이 경멸스럽다는 표정을 얼굴 가득 담고 명선을 쳐다봤다.
명선이 피식 웃었다.
“아, 또 눈으로 칼부림하시네.”
“뭔 짓이야?”
“키스할래?”
“죽을래?”
“싸고 나면 키스하고 싶지 않아? 난 그렇던데.”
“난 안 그래.”
“더 좋은 세상 알게 해준다는데, 거참.”
“그 좋은 세상 너나 혼자 뛰어놀아.”
재강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성질하고는.”
명선이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재강을 향해 누워 그 몸을 바라봤다.
명선의 가슴과 배에 흩뿌려져 있던 정액이 시트 위로 흘러내리자 아니나 다를까, 힐끗 본 재강이 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야, 좀 닦아라.”
“…….”
명선은 아래쪽을 힐끗 보고 손으로 대충 훑어서 시트에 문질러 닦았다.
재강이 더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명선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명선은 재강의 완벽한 등을 바라보다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여기서 바로 바짝 붙어서 꼭 안으면 저 등에 내 정액이 칠해지겠지. 그 상태에서 귀랑 목덜미를 쭙쭙 빨면서 몸을 비벼대면 진짜 환상일 텐데. 아휴.
상상만으로 다시 성기에 피가 쏠리는 기분이었다.
전희, 섹스 도중의 키스와 각종 터치, 꼭 끌어안기, 후희. 모두 명선이 늘 몹시도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좋아하기도 하고, 잘한다고 자부하기도 했다.
그걸 아직 재강에게 반도 못 보여 줬다는 사실, 재강과 그걸 자유롭게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물론 이번 섹스에서 재강의 몸에 입을 대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니 앞으로 또 얼마큼 발전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명선은 그것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앞으로 차츰 나아지리라는 것.
“한 판 더 할래?”
한참 군침을 삼키던 명선이 문득 묻자 재강이 움찔했다가 숨을 길게 내쉬며 몸을 웅크렸다. 잠들었다가 명선의 말에 깬 모양이었다.
“잠깐 누워 있다 집에 갈 거야.”
재강이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지난번에도 그래 놓고는 푹 자다가 아침에 깼으면서.
물론, 또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내일 아침에도 한 판 하겠네.
“알았어.”
명선이 빙그레 웃고 작게 말했다.
* * *
“아흑…….”
재강이 끌어안는 힘에 명선은 숨이 다 턱턱 막히는 듯했다.
명선은 가쁜 숨을 간신히 내뱉으며 재강의 몸을 힘껏 마주 안았다.
재강의 등으로 명선의 손가락이 세게 파고들었다. 손 아래에서 재강의 근육이 힘 있게 움직이는 것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어후, 씹…….”
재강이 명선의 목을 빨다가 그 위에 입술을 댄 채 낮게 욕을 중얼거렸다.
재강이 밀어붙일 때마다 명선의 피부가 재강의 입술 아래에서 미끌미끌 쓸렸다.
“아하아, 하, 학…….”
명선은 눈을 꼭 감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숨을 뱉어냈다.
재강의 뜨거운 입술이 목을 더듬다가 뺨으로 차츰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명선은 바싹 말라 있던 입술을 얼른 축이고 고개를 살짝 돌려 재강의 입술을 맞을 준비를 했다.
재강의 숨이 명선의 입술 언저리에 와 닿는 순간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명선이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
명선은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재강이 막 욕실 문을 열고 나온 참이었다.
뜨거운 물에 섞인 비누 냄새가 훅 풍겼다.
씨, 꿈이었잖아.
명선은 아쉬워 죽겠다는 표정을 애써 숨기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래를 보니 성기는 잔뜩 빳빳하게 서 있었다.
아, 한참 좋았는데. 하필 딱 키스하기 직전에 깰 건 뭐야.
명선은 문 여는 소리를 내 자신을 깨운 재강을 원망하면서도 그 몸을 열심히 응시했다.
재강은 무심히 한쪽에 있는 소파 앞으로 가 옷을 뒤적였다.
“숯불, 뭐 해.”
“옷 입잖아.”
재강이 옷더미에서 속옷을 끄집어내 다리를 끼워 넣었다.
“몇 시야?”
“열 시 좀 넘었어.”
“집에 가게?”
“어.”
재강이 바지를 집어 들자 명선은 얼른 일어나 재강에게로 풀쩍 뛰어들었다.
재강이 흠칫하며 팔을 쳐들고 물러났다.
명선의 성기는 여전히 바짝 선 채였다.
“체크아웃 열한 시야.”
“나도 알아.”
“이 아까운 시간을 그냥 떠나보내겠다는 거냐?”
“너를 좀 떠나보내고 싶다. 아, 왜 이래?”
명선이 재강의 다리를 안으며 그 앞에 무릎을 꿇자 재강이 비틀거리다 소파 등받이를 붙잡았다.
명선이 자리 선정을 잘한 덕에 재강은 벽과 소파, 명선 사이에 갇힌 상황이 되어 버렸다.
“빨아 줄게.”
명선이 빠르게 말하고 재강의 팬티 앞섶에 바로 얼굴을 파묻었다.
“윽.”
재강이 명선의 어깨를 붙잡으며 몸을 움츠렸다.
명선은 재강의 것에 대고 얼굴을 비비다가 입술 끝으로 가볍게 꼭꼭 물었다.
“샤워 막 끝내고 나온 좆이 얼마나 보들보들하고 맛있는지 모르지?”
명선이 입술을 이리저리 미끄러뜨리며 속삭였다.
그 아래에서 재강의 성기는 금세 무럭무럭 부풀었다.
재강의 손이 명선의 머리카락을 그러쥐었다. 그 손아귀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며 뒤쪽으로 당기자 명선이 입을 벌린 채 끌려갔다.
“너는, 왜 이렇게…… 끝이 없어?”
재강은 간신히 명선의 머리를 떼어 놓고 자신의 옷을 쥔 채 명선의 몸을 넘어 서둘러 지나갔다.
명선은 쓰러지는 동시에 얼른 재강의 다리 한쪽을 잡고 늘어졌다.
“씨발!”
“아오옥!”
재강은 명선에게 붙잡혀 엎어지며, 명선은 재강에게 끌려가다 바닥에 허벅지가 쓸리며,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왜 이러냐고, 도대체!”
무릎을 찧으며 엎어졌던 재강이 몸을 돌리고 명선을 향해 옷을 홱 집어 던졌다.
명선은 여전히 재강의 다리 한쪽을 부여잡은 채였다.
“야, 나도 아프다구.”
쓸려서 벌게진 허벅지를 보여 주며 명선이 항의했다.
“그럼 놓으면 될 거 아냐.”
재강이 잡힌 다리를 걷어차듯이 흔들어댔다.
명선은 꿋꿋이 그 다리를 안은 채 흔들리다가 기회를 틈타 얼른 놓고 재강의 다리 사이로 쓰러지는 척했다.
“아이쿠, 이런.”
명선은 곧장 재강의 허벅지 아래로 양어깨를 집어넣고 골반을 양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다시 성기에 얼굴을 파묻자 아까보다 더 단단해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자기도 좋으면서 대체 왜 이렇게 빼는 거야. 쓸데없이 또 새침하게 굴고.
이럴 때일수록 내가 이끌어 줘야지.
“음. 냄새 좋다.”
명선이 성기 위에 코와 입술을 비비며 속삭였다.
재강은 경악과 흥분, 어이없음이 뒤섞인 듯한 표정으로 그런 명선을 멍하니 바라봤다.
명선은 아랑곳없이 재강의 앞섶에 얼굴을 문질러대다가 슬금슬금 그의 속옷을 끌어 내렸다.
“아휴…….”
재강이 곧 한숨을 길게 내쉬며 털썩 드러누웠다.
* * *
섹스 후 둘은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재강은 무릎을 꿇은 명선을 침대에 기대게 해놓고 뒤에서 거칠게 박아댔다. 명선은 침대에 엎드려 시트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질러댔고 재강은 명선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씨근댔다.
“아, 러그 아니었으면 무릎 완전 다 나갈 뻔했네.”
명선이 숨을 고르다 무릎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얄팍한 러그여서 여전히 무릎이 좀 아프긴 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너 때문에 샤워 또 해야 되잖아.”
곁에 누워 함께 숨을 고르던 재강이 투덜거렸다.
“같이 할래? 샤워하면서 또 한 판?”
명선이 머리를 쳐들고 묻자 재강이 질색하는 표정을 짓더니 몸을 일으켰다.
재강이 욕실로 들어간 후 잠시 누워 있던 명선은 벌떡 일어나 달려가서 욕실 문을 열었다.
막 샤워기를 튼 재강이 흠칫하며 명선을 바라봤다.
“좀 기다리라고, 씨발아.”
“체크아웃 시간 얼마 안 남았어. 같이 후딱 씻자. 효율적으로.”
명선이 샤워부스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샤워기 아래에 섰다.
재강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살짝 옆으로 비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야, 너 핸드폰은 고쳤냐? 그거 완전 망가졌지?”
명선이 샴푸를 짜내 머리에 문지르며 물었다. 재강은 샤워 젤을 손에 짜 몸에 문질렀다.
“아직 안 고쳤어.”
“언제 고치게? 안 불편해?”
“네가 뭔 상관이야?”
“넌 최소한의 공감 능력이란 것도 모르냐? 하루라도 폰을 못 보면 불편한 걸 내가 아니까 하는 얘기잖아. 이게 바로 스몰토크의 기본이라는 거야. 공감하기.”
“스몰토크고 나발이고 네 공감 필요 없으니까 좀 짜져 있으라고.”
명선이 샤워기 쪽으로 머리를 젖히고 서서 샴푸 거품을 씻어 내리며 재강을 바라봤다.
“너 친구 없지?”
“관심 꺼.”
명선이 샤워기를 독차지하는 바람에 재강은 벽 쪽으로 잠시 물러나 기다리며 팔과 가슴 이곳저곳을 샤워 젤로 문지르는 중이었다.
손으로만 문지르다 보니 거품이 많이 나지 않아 재강의 몸은 마치 오일을 바른 듯 미끈미끈 윤기가 가득했다.
“와, 씨. 죽인다, 진짜.”
명선이 재강의 가슴을 턱 쥐자 재강이 곧장 그 손을 쳐냈다.
명선이 미끄러지며 놓친 재강의 가슴이 탱탱하게 차르르 흔들렸다.
재강은 경계하는 표정인 채 벽에 살짝 붙어 섰다.
“너는 이런 몸을…….”
명선이 감탄 가득한 얼굴로 재강의 가슴과 어깨를 응시했다.
“몸 관리를 어떻게 해? 이건 어떻게 만들어진 몸이야?”
명선의 표정은 마치 이제 막 발굴되어 단장을 끝마친 진귀한 고대 유물을 바라보는 고고학자의 것 같았다.
재강은 그 얼굴을 보다 자기 몸을 내려다보고 다시 명선을 바라봤다.
곧 재강이 명선을 살짝 밀치며 샤워기 아래로 들어왔다.
“무슨 관리를 해. 살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지.”
재강이 빠르게 몸을 헹구는 동안 명선은 여전히 넋 나간 눈으로 그 몸을 훑었다.
“몸 하나는 진짜…… 세계 최고인 것 같아. 완벽해. 값으로 따지면 백억 달러 정도? 아니, 지금 환율 뭐가 제일 세지? 일단 파운드로 하자. 백억 파운드.”
“쉬어 빠진 소리 좀 작작 해라.”
재강은 얼른 세수까지 하고 먼저 샤워 부스를 나갔다.
“야, 같이 나가자.”
명선이 서둘러 몸을 씻으며 외치는데 재강은 대꾸도 없이 욕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사실 별 기대 없이 던진 말이었고 재강이 이미 가버렸으리라 생각했건만, 나와 보니 옷을 입은 재강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 숯불. 나 기다렸나 봐?”
명선이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르며 킥킥 웃었다.
“가든에 데려다준다며. 내 자전거도 거기 있고.”
“좋은 핑계 하나 찾아냈네.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냥 말해도 되는데.”
“느물대지 마라.”
“앙큼한 새끼.”
명선은 즐거운 표정인 채 머리를 말렸다.
거울로 슬쩍 보니 재강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자기 손과 팔에 있는 화상 자국을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있었다.
은근히 같이 놀기 재밌는 놈이란 말이지. 저러고 얌전히 있을 땐 나름 귀여운 맛도 있는 것 같고.
저런 몸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 몸이 얼마나 예쁜지 잘 모르고 별로 크게 관심 없는 것도 괜찮은 포인트랄까, 몸 만들어 놓고 과시하는 놈들은 역시 좀 별로라.
아까 몸 예쁘다고 칭찬할 땐 표정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근데 쟤는 진짜 자기 몸 예쁜 걸 왜 모르지? 그런 말해 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나?
내 취향이 좀 까다롭긴 해도, 일단 객관적으로 봐도 괜찮은 몸인데.
애인은 그런 얘길 안 해주나?
“근데 네 애이…….”
명선이 드라이를 마치고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네 애인은 네 몸에 대해서 칭찬 안 해?’라고 물을 뻔했는데, 한창 재강이 명선의 꼬임에 잘 넘어오고 있는 지금, 도망간 애인 얘기를 꺼내 봤자 왠지 좋을 게 없어 보였다.
애인 언급이 쓸모 있었던 건, 애인은 맘대로 안 되고 나는 맘대로 된다고 각인시켰던 그때뿐이지. 이후로는 그냥 입 닫고 있어야 돼.
재강은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계속 명선을 멀뚱히 바라보는 채였다.
“애이…… 버지…… 가, 아버지가 그 몸을 주신 걸까?”
“……뭔 소리야?”
“유전이냐고. 아버지 몸도 그렇게 예쁘시냐고.”
재강이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옷이나 좀 입을래?”
명선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
“몸 예쁘단 말 들어 본 적 없어?”
“없어.”
“왜 없지? 들었는데 네가 그냥 한 귀로 흘린 거 아니야?”
“없다고.”
“너 헬스 안 다니는구나? 헬스 같은 데 안 가서 그걸 모를 수도 있어. 거기선 진짜 만인이 게이화되거든. 예쁜 몸 보면 와서 칭찬하고 친해지려고 하고 난리다. 너도 가면 나름 인기 좋을걸? 육덕 근육이랑 너 같은 노가다 근육으로 파가 좀 갈려.”
“…….”
“아니면 클럽 같은 데를 안 가서…… 근데 너 클럽도 안 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언제 나갈 거야, 대체.”
재강이 일어서자 명선이 얼른 티셔츠에 머리를 끼워 넣었다.
“아휴, 되게 칭얼대시네.”
“넌 그만 좀 쫑알대라고.”
재강이 먼저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고 서 있는 바람에 명선은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나왔다.
둘은 고요한 복도를 지나 차고로 가서 차에 올라탔다.
“오늘 밤에 또 같이 놀까?”
차고 문이 스르르 올라가는 동안, 그 벌어지는 틈을 보고 있던 명선이 문득 물었다.
“싫어.”
“어? 왜?”
재강은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한 얼굴로 명선을 쳐다봤다.
“왜가 어딨어, 싫으면 싫은 거지.”
“밤에 일 있어? 다른 알바는 당분간 안 한다며.”
“내 시간 내가 알아서 쓰겠다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미션 성공하면 나랑 계속 놀기로 했잖아.”
“내가 싫을 땐 안 하는 거지, 뭐 맡겨 뒀어?”
“그럼 언제? 난 오늘도 하고 싶은데?”
재강이 고개를 돌려 앞쪽을 보고 팔짱을 꼈다.
“그건 네 사정이고.”
아, 저거 왜 또 깐깐하게 굴어.
명선은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며 시동을 걸고 차고를 빠져나왔다.
얼마간 말없이 운전하던 명선이 먼저 입을 뗐다.
“아니면 오늘도 나한테 미션 하나 줘 보든지.”
“뭐?”
“어제 했던 것처럼. 바지 내리고 있기, 그런 거. 그래서 내가 성공하면 나랑 오늘 밤에도 같이 있기. 어때?”
“…….”
오, 솔깃했나? 역시.
너도 미션이 재밌긴 했지?
명선은 몰래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한적한 도로를 달려 가든 쪽으로 향하는 동안 재강은 말이 없었다.
시킬 거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할 테니까 일단 말은 시키지 말고 둬야지.
아, 권명선. 참 전략적이야. 똘똘해.
명선은 흐뭇한 표정을 억지로 감추고 운전했다.
재강은 차가 가든 주차장 앞에 설 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명선은 안전벨트를 푸는 재강을 기대감 가득한 채 바라봤다.
재강이 아무 말도 없이 곧장 배낭을 집어 들고 문을 열자 명선이 얼른 재강의 팔을 붙잡았다.
“야, 미션은.”
멈칫한 재강이 명선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미션 줘. 할 테니까.”
“…….”
“아직 안 떠올라? 이따 출근해서 말할래?”
“오늘 하루 동안 나한테 말 안 걸기.”
“…….”
“그게 미션이야.”
재강은 명선의 손을 털어내고 차에서 내려 문을 닫았다.
* * *
명선은 가든에 출근하자마자 곧장 숯불 방으로 갔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 나한테 말 안 걸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미션이었다. 불합리하고 빈구석도 많았다.
재강은 막 불판 세척을 끝냈는지 벽 앞에 서서 앞치마를 벗는 중이었다.
명선은 습관적으로 재강의 몸을 위아래로 집요하게 훑으며 가까이 다가갔다.
명선이 헛기침을 몇 번 하자 돌아본 재강의 얼굴엔 바로 귀찮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직장 동료한테 예의 좀 차리시지?
라고 자동적으로 말이 튀어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으며 명선은 재강 앞에 서서 핸드폰을 켜 내밀었다.
아직 수리를 못 해 여전히 거미줄처럼 쩍쩍 금이 간 핸드폰 화면엔 미리 메모장에 타이핑해 둔 글이 떠있었다.
[말 거는 게 안 된댔으니까 글로 쓰는 건 되는 거다. 맞지? 그리고 미션에 대해서 얘기좀해]
재강이 핸드폰 화면을 힐끗 보고, 장갑을 벗으며 명선을 쳐다봤다.
“뭔 얘기.”
명선이 다시 빠르게 타이핑해 핸드폰을 내밀었다.
[오늘 하루의 기준이 뭔데? 몇 시까지?]
“하루 몰라? 오늘 밤 열두 시까지.”
재강이 젖은 목장갑을 선반에 걸쳐 두고 착화기 앞 의자 쪽으로 갔다.
명선이 타이핑하며 그 뒤를 따랐다.
[그때까지 너한테 말 안걸면 오늘도 나랑 같이 놀겠다고?]
재강이 의자에 길게 기대앉았다.
“그래.”
[근데 너 12시전에 퇴근하잖아]
“그래.”
[그럼 내가 너랑 같이 가? 같이 가서 12시 될때까지 기다려?]
“뭘 같이 가? 너는 너희 집으로 가고 나는 우리 집으로 가는 거지.”
[그럼 미션 성공인지 어떻게 알아?????]
“내가 알 게 뭐야?”
[야!!!!!!!!!!]
“꺼져, 좀 쉬게.”
재강이 파리 쫓듯 손짓을 하고 팔짱을 끼며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명선이 다시 빠르게 타이핑해 핸드폰을 내미는데 재강은 눈을 감은 채였다.
명선이 재강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아, 저리 좀 가라고.”
재강이 눈을 뜨고 손을 뿌리쳤다.
그 틈을 타 명선이 재강의 얼굴 앞으로 핸드폰 화면을 바짝 들이밀었다.
[합리적이고제대로할수있는걸로다시정해ㅅㅂ바지벗고잇으라면벗겟다고!!!!!!!!]
글을 읽은 재강이 킥 웃었다.
“야, 이렇게 답답하게 글로 쓰지 말고 그냥 말해. 나한테 말하면 되잖아. 그렇게 불합리하면 관두라고, 이 쫄보 새끼야.”
“…….”
명선이 핸드폰을 쥔 채 부들거리며 재강을 노려봤다.
재강은 늘어져 앉은 채 그런 명선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명선은 입을 반쯤 열었다가 꾹 다물고 휙 돌아서서 뒤뜰을 척척 지났다.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내가 어떤 인간인지 이번에 진짜 똑똑히 보여 준다.
* * *
……라고 씩씩대며 속으로 호언장담한 것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명선은 울적하고 안달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정이 될 때까지 재강을 곁에 붙잡아둘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은 재강의 집까지 따라가 자정이 넘기를 기다리는 것인데, 물론 재강이 따라오도록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사실 주소야 직원 정보에 버젓이 있으니까 저놈이 먼저 퇴근한 다음에 사이를 두고 따라가서 급습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그건 너무 지나치잖아.
아니지. 지나치긴 뭐가 지나쳐. 솔직히 숯놈 저게 자초한 거지. 애초에 왜 그따위 미션을 주냐고.
일단 주소 보고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아도, 서류상 주소랑 실제 사는 곳이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괜히 엉뚱한 집에 기웃거리게 될 수도 있단 말이야.
미행을 하는 게 역시 나은 것 같긴 해.
그래도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을 차로 어떻게 미행하냐고. 뛰어서 따라갈 수도 없고.
아니면 회식이나 하자고 할까? 그러면 어느 정도는 붙잡아 둘 수 있잖아.
아니지. 엄마 아빠가 하자고 하지 않는 이상 나는 영향력이 너무 없어.
그나마도 숯놈이 참석 안 한다고 하면 그만이고, 단체 행동에 순순히 섞일 놈 같지도 않아.
퇴근하고 주차장으로 갈 때 몰래 숨어 있다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킨 다음에 자정까지 데리고 있을까…….
극단적인 상황에 생각이 다다르자 명선은 고개를 저으며 머리를 헤집었다.
씨, 이게 무슨 미션이야! 미션 임파서블이잖아! 톰 크루즈도 이건 실패야!
재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명선을 소 닭 보듯 하며 가든을 지나다녔다.
재강이 눈앞을 오갈 때마다 명선은 속이 바짝바짝 타는 심정으로 그 몸을 응시했다.
오늘 아침에 존나 좋았는데.
아침에 한 섹스가 떠오르자 다시 명선의 몸에 불이 붙는 듯했다.
자신의 목덜미를 꽉 잡고 있던 재강의 뜨거운 손. 그 손아귀의 힘. 그리고 그 손이 조금씩 위로 쓸려 올라와 머리카락을 한 움큼 그러쥐었을 때의 기분.
명선은 시트를 쥐어짜며 헐떡헐떡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
문득 뒤에 철썩철썩 와 닿고 거칠게 쑤셔대던 그 감촉이 다시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배를 짓누르던 침대 모서리와 빳빳한 시트에 가슴이 앞뒤로 쓸리던 느낌 역시 생생했다.
그리고 뒤에서 들리던 재강의 씨근대는 숨소리. 등에 드리워진 재강의 뜨거운 체온.
명선은 꿈꾸는 표정인 채 멍하니 있다가, 불쑥 입구로 들어와 홀 안으로 사라지는 재강을 보고 이를 갈았다.
야비한 새끼.
지도 좋으면서 끝까지 아닌 척.
아니, 언제까지 그렇게 새침하게 굴 건데?
너도 좋은 거 맞잖아. 사이좋게 상부상조하면 되잖아. 그만 좀 쑥스러워하라고.
명선은 가만히 생각하다 핸드폰을 켜 메모장에 썼다.
[끝날 때까지 바지 벗고 있을까? 이번엔 팬티까지 벗는 걸로 하면 어때?]
재강이 다시 입구 쪽으로 나오자 명선은 얼른 헛기침했다.
힐끗 돌아본 재강은 그대로 명선을 지나쳤다.
“흠! 흠!”
명선이 배에 힘을 줘 더 크게 헛기침하는데도 재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 버렸다.
“아, 짜증 나는 새끼.”
명선은 핸드폰을 끄고 툴툴거리다가 손님들이 들어오자 얼른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좆같네, 진짜.
손님들이 떠나자 다시 재강이 숯 통 두 개를 꿰어 들고 들어와 홀 안쪽으로 갔다.
명선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카운터 밖으로 나와 섰다.
재강이 빈 쇠막대를 들고 입구 쪽으로 오자 명선은 얼른 다가가 재강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땀범벅인 재강의 팔은 늘 그렇듯 축축하고 뜨거웠다.
재강은 비틀대다 끌려오며 홀 안쪽을 얼른 살피는 듯했다.
명선은 말없이 재강을 끌고 카운터 책상 뒤쪽으로 갔다.
팔을 놓아주고 선 명선이 곧장 바지를 벗었다. 부드러운 소재의 헐렁한 바지가 발목까지 툭 떨어졌다.
명선은 셔츠 자락을 들어 올려 속옷도 드러나도록 했다.
마침 명선은 특별히 좋아하는 팬티 중 하나를 입은 채였다. 밴드 부분과 봉제선들이 노란색으로 마감된 파란색 삼각팬티.
명선은 ‘이케아 팬티’라 불렀고 대용은 ‘스웨덴남 꼬시기용 팬티’라고 불렀다.
쨍한 파란색이 자신의 피부 톤에 아주 잘 맞는다고 여기는 명선은, 별생각 없이 집어 들었던 오늘의 팬티가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
재강은 말없이 명선의 훤히 드러난 다리와 ‘이케아 팬티’를 내려다봤다.
그 얼굴을 바라보던 명선이 얼른 핸드폰을 켜 내밀었다.
[끝날 때까지 바지 벗고 있을까? 이번엔 팬티까지 벗는 걸로 하면 어때?]
재강은 그 메모를 읽고 다시 명선의 다리를 봤다가 눈을 맞췄다.
명선이 한껏 인위적이고 과장된 ‘착한 아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광대가 최대한 봉긋하게 튀어나오도록 방긋이 웃으며 눈 깜박거리기.
“아, 재수 없게.”
재강은 대뜸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으우욱!”
명선은 이를 악문 채 비명도 뭣도 아닌 소리를 냈다. 바지를 벗은 채라 재강을 따라 달려 나갈 수도 없었다.
“아, 진짜 어쩌라는 거야.”
명선은 바지를 끌어 올려 입고 머리를 감싸 쥐며 의자에 앉았다.
역시 기절시켜서 묶어 놓고 자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
생각은 다시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당연히, 실행할 수는 없는 계획이었다.
명선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협상 방안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돈을 준다고 해볼까…….
아니야, 다시 돈을 줘야만 할 수 있는 관계로 가게 만들어선 안 되지. 지금 와서 다시 돈 얘기를 꺼내면 그때보다 더 많이 줘야 먹힐 게 뻔하고.
오늘 좀 쉬라고 하고 내가 대신 숯불 놓는 일 해준다고 할까?
아니지. 뭘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카운터 일도 해야 되는데.
그리고 쉬라고 하면 그냥 집에 가 버리고도 남을 놈이야. 그럼 안 되지.
엄마 아빠한테 말해서 휴가 좀 얻어다 준다고 할까? 유급 휴가?
아, 그래. 유급 휴가. 그건 괜찮네. 근데 알바도 그런 거 받을 수 있나?
아니지. 엄마 아빠가 내 말만 듣고 왜 그런 걸 하려고 하겠어.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고 데리고 가면…… 아니야. 식성이 어떤지도 잘 모르고, 딱히 먹는 걸 즐기는 인간 같지도 않아.
술은 좋아하는 것 같던데. 술 사준다고 하고 데리고 나갈까?
종로나 한남동에 괜찮은 데도 많고. 아니면 을지로나 연남동…….
근데 고분고분 따라올 리가 없지.
드라이브라도 하자고 해야 하나…… 아니, 고분고분 따라올 리가 없다니까.
아, 씨.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오늘도 같이 있고 싶은데!
명선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속으로 비명을 지르다가 우뚝 동작을 멈췄다.
“…….”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같이 있고 싶은데’ 라니. 그건 무엇이란 말인가.
명선이 전에는 좀처럼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적어도 섹스를 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상대에게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
명선은 누구를 만나든 한 번이면 족했다.
잘 놀고 난 후엔 별 아쉬움 없이 헤어졌고, 상대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도 해본 적 없었다.
뭐지……?
명선은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멍하니 눈만 깜박이다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어릴 때도 이런 생각 했던 적 있잖아. 친구들이랑 놀다가 시간이 늦어서 각자 집에 가야 하면 아쉬워하고 그랬단 말이지.
그치. 그랬지.
명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멈추고 머리를 갸웃했다.
이건 그런 기분이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아, 맛있게 드셨어요?”
손님들이 다가오자 명선은 얼른 활짝 웃고 일어나며 물었다.
계산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내 미소를 띠고 있긴 했지만 명선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의 전 생애가 갑자기 주마등처럼 스쳐 가기까지 하는 듯했다.
“안녕히 가세요.”
떠나는 손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명선은 문득 자신이 어떻게 게이로 정체화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남자의 몸이 너무 좋아서였다. 남자에게 성적으로 흥분이 되어서.
그런데 성욕 외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 같은 건 여태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대용이 몇 번의 연애와 짝사랑을 하며 감정적으로 풍부한 경험을 하는 동안, 명선은 그 모든 걸 곁에서 보고 들으며 그저 고개만 끄덕여 주고 있었다.
자신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 적도 없고, 그런 감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혹시 이게…… 좋아하는 감정 같은 건가?
때마침 재강이 숯 통을 든 채 안으로 들어와 카운터 앞을 지나쳐 갔다.
명선은 그 몸을 가만히 따라가며 보다가 갑자기 역겹다는 표정을 짓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뭔 소리야! 말이 돼? 그건 아니지!
“와, 씨.”
명선이 머리를 매만지며 헛웃음을 지었다.
아, 진짜, 피곤하고 안달 나니까 별생각을 다 하네.
좋아하긴 뭘 좋아해…… 사랑하는 거지! 저 새끼가 아니라 저 몸을!
대용이도 그랬잖아. 몸이랑 사랑에 빠진 거라고. 대상화를 했네 어쩌네 그런 얘기 씨부려가면서.
그렇지. 저 새끼가 아니라 저 몸이지.
저런 거한테 연애 감정을 느낄 리가 없잖아.
“참 나.”
명선이 목덜미를 긁적이면서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섹스도 그렇게 좋고 저 몸도 그렇게 좋은데 매일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 첫 섹스남 때문에 몸이 달아서 몇 날 며칠을 끙끙대며 찾아다니던 때를 떠올려 보라고.
내가 그 사람을 인간적으로 좋아해서 그랬겠어? 아니잖아.
이것도 그거랑 똑같은 거야. 그 몸이 너무너무 고픈 거.
이건 사람을 좋아하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지.
그 단순한 걸 뭐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했는지, 참.
생각이 너무 많아도 안 좋다니까. 이상한 데로 빠지잖아.
역시 단순한 게 최고야. 사람은 단순하게 살아야 돼.
명선의 머릿속과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동안,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재강은 무심하게 카운터 앞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자, 그럼 이제 마음 정리는 됐고, 미션 임파서블을 미션 파서블로 만들 방법이나 계속 생각해 봐야지.
내가 어떤 놈인지 똑똑히 보여 준다.
……대체 몇 번을 보여 주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암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