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3. 옥탑방에 가요 (10/28)

2부-3. 옥탑방에 가요

재강에게 속옷을 보여 준 이후, 명선은 그에게 더는 추근대지 않았다.

저녁을 먹을 때도 일부러 재강에게서 먼 자리에 떨어져 앉아 애덕과 대화를 나누는 데 집중했다.

“무릎이 그렇게 안 좋아서 어쩐대요? 병원은 다니세요?”

“가봤자 침 맞는 거지, 뭐. 똑같아. 맞으면 좀 낫고, 그러다 돌아다니면 다시 아프고.”

“에구, 큰일이네.”

재강은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숯불 방 뒷정리를 마친 후 떠났다.

명선은 재강이 직원들에게 인사할 때 일부러 그쪽을 보지도 않았다.

이쯤 하면 내가 자기한테 흥미를 잃은 것처럼 보이겠지?

그래, 마음껏 안심해라. 방심한 틈을 노려 주겠어. 후후.

재강이 퇴근한 후 시간을 보다가 명선도 가든을 나왔다.

직원 정보에서 미리 봐둔 재강의 주소를 내비게이터에 찍고 느긋이 차를 모는 동안 ‘승승장구’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아, 권명선. 넌 어쩜 이렇게 계획적이고 추진력이 강하니.

어디 가서도 인재 대접받을 만한 인물이야, 정말.

아파트 단지와 단독 주택 단지를 지나 으슥한 나무 그늘을 뚫고 나가자 길 오른쪽은 단층 공장들이, 왼쪽은 오래되어 보이는 집들이 이어졌다.

목적지인 재강의 집에 다다랐지만 근처에 주차할 자리가 마땅치 않아 명선은 계속 주위를 둘러보며 길 끝으로 향했다.

내내 자신감 넘치던 명선의 얼굴은 주변을 몇 바퀴 뺑뺑 돌고 나자 짜증이 가득해졌다.

명선은 한참 만에야 재강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간신히 차를 세웠다.

“뭐 이런 동네에 살아…….”

명선이 중얼거리며 차 문을 쿵 닫았다.

아 씨, 하마터면 집에 가고 싶을 뻔했어.

잠깐 위기가 오긴 했지만, 이런 것 따위로 무너질 내가 아니지.

명선은 재강의 집을 향해 척척 걸었다.

근데 집에 없으면 어떡하지?

딱히 이 시간에 어디 갈 약속이 있을 인간으론 안 보이지만.

자고 있으면 깨워야 하나?

혹시 그 애인 도망가고 나서 동거하는 사람이 새로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니면 누굴 데려와서 한참 섹스 중이라거나…….

아니야. 그럴 놈으로도 안 보여. 나 같은 심미안이 아니고서야 누가 걔랑 자고 싶어 하겠어.

새벽 한 시가 넘어가는 시각, 동네는 어둑하고 고요했다.

재강의 집 앞에 선 명선은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작은 대문을 슬쩍 밀어 봤는데 다행히도 잠겨 있진 않았다.

어차피 허술해 보이는 문이라 걷어차면 바로 열릴 것 같았고, 담도 낮아서 넘어갈 수 있을 듯했지만, 이 밤에 낯선 동네에서 그런 짓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대문 안쪽에 재강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걸 보자 문득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명선은 조심스레 대문을 닫고 주변을 둘러보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옥외 철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깨어 있으면 잘 된 거고, 자고 있으면 문을 두들겨서 깨우고, 혹시라도 누구랑 같이 있으면…… 뭐, 직장 동료인데 뭘 두고 갔다고 하고 잠깐 불러내서 얘기하면 되겠지.

뭐가 됐든 여기 온 목표는 달성하고 갈 거다.

옥상에 가까워질수록 명선의 심장도 더 빠르게 뛰었다.

옥상의 전경이 펼쳐진 순간, 멀찍이 평상 뒤에 선 재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재강은 눈을 크게 뜨고 계단 쪽을 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

명선이 옥상 안으로 풀쩍 뛰어들어 재강을 향해 집게손가락을 쭉 뻗었다.

“하!”

멍하니 명선을 바라보던 재강이 한 발짝 주춤 물러났다.

“……씨발, 너 뭐야.”

재강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잡았다, 요놈.”

명선이 그대로 재강을 가리킨 채 그 앞으로 척척 걸어갔다.

둘은 평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섰다.

놀란 얼굴 좀 봐라. 가관이네.

명선은 씩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켜서 재강에게 보여 주었다.

“지금 시각 1시 12분. 어제는 어제가 되어 버렸네요. 오늘은 내일이고.”

“…….”

“미션 컴플리트라고, 씨밸럼아. 홧. 홧. 홧.”

명선이 어깨를 들썩이며 과장된 웃음을 내뱉었다.

재강은 입을 반쯤 벌리고 여전히 멍하게 명선을 바라보는 채였다.

“내가 성공 못 할 줄 알았지? 야, 너 사람 잘못 봤어.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포기하는 인간이 아니야.”

“…….”

“미션 성공하면 오늘도 나랑 논댔다. 난 분명 자정될 때까지 너한테 말 안 걸었고. 그건 너도 인정하지?”

“……여긴 어떻게…….”

재강이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명선이 직원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란 사실은 재강도 이미 알 터였다.

“그렇지. 일단 주소는 거기서 봤고, 나는 한발 더 나아가서 애덕 씨한테 은근슬쩍 물어보고 제대로 확인을 했지. 네가 서류상 주소지랑 다른 데 살 수도 있는 거잖아?”

“……애덕 씨?”

“애덕 씨 지인이 여기 아래층에 산 적 있다며. 사는 동네 얘기하다가 그런 얘기가 나와서 너희 집 어딘지 알게 됐다던데? 덕분에 네가 옥탑방에 사는 것도 알게 됐고. 역시 정보 수집력은 그런 중년 여성분들을 따라갈 수가 없어. 최고야.”

재강이 기억을 더듬는 듯 평상을 내려다보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보 캐느라 내가 가든 직원들이랑 계속 쓸데없는 수다 떨면서 이리저리 쑤시고 다녔어. 그러다 애덕 씨한테서 정보를 얻은 거지. 대단하지 않냐? 너 내가 미션 성공 못 하게 하려면 정말로 머리 빡세게 굴려야 할걸? 나는 만만치 않은 놈이니까.”

“…….”

재강이 명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짧게 쉬더니 몸을 돌려 평상에 털썩 앉았다.

뭐야. 웬일로 짜증을 안 낸대? 몽둥이 들고 쫓아내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명선은 미심쩍은 눈으로 재강의 뒷모습을 보다 그 곁에 놓인 소주병을 발견했다.

“혼자 깡소주를?”

명선이 평상에 올라가 기어서 재강 가까이 다가갔다. 재강에게선 비누 냄새가 났다.

“샤워했나 봐?”

명선이 킁킁대며 재강의 목덜미 쪽으로 얼굴을 갖다 대자 재강이 얼른 몸을 피했다.

“오자마자 수작을 떨어?”

“수작은 무슨, 안부 좀 나누자는 건데.”

명선이 싱글싱글 웃으며 재강의 곁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았다.

“안 꺼질 거면 느물대지나 말고 있어라.”

“외롭게 혼자 마시냐. 같이 마실까? 안주는 없어?”

“없어.”

“뭔가는 있겠지. 내가 찾아볼까?”

명선이 집 쪽을 가리키자 재강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맘대로 하라는 듯한 손짓을 짧게 했다.

명선은 얼른 일어나 후다닥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

방은 작고 깔끔했다. 침대와 옷장, 서랍장, 한쪽에 차곡차곡 쌓인 상자들 외엔 별로 세간살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뭐 이리 앙증맞아.”

명선이 냉장고 앞으로 가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명선의 집엔 큰 냉장고 두 대에 김치 냉장고도 두 대인데, 한 대뿐인 재강의 냉장고는 그에 비교하니 한없이 작아 보였다.

열어 보니 안에는 소주와 생수, 오이뿐이었다.

“이게 뭐야. 뭘 먹고 사는 거야.”

명선이 냉장 칸을 닫고 냉동 칸을 열었다. 얼음과 아이스 팩이 있었다.

늘 산더미 같은 각종 음식과 식재료로 가득 찬 명선의 집 냉장고와 비교가 됐다.

“숯불.”

명선이 옥상으로 나왔다.

“집에서 뭘 안 해 먹어? 냉장고가 왜 이렇게 깨끗해?”

“네가 유난히 깨끗할 때 왔나 보지.”

재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네. 보통 육포나 소시지, 치즈 정도는 있지 않나? 하다못해 계란이라도. 내가 살라미나 프로슈토, 올리브까진 바라지도 않아.”

“살라미고 날라미고 뭔 배부른 소리야.”

“여기 있어 봐, 내가 과자라도 좀 사 올 테니까. 청승맞게 깡소주야, 무슨.”

명선이 계단 쪽으로 가다가 돌아섰다.

“여기 꼼짝 말고 있어라. 있을 거지? 문 안 잠글 거지?”

재강은 그대로 앉아 돌아보지도, 아무 대답도 없었다.

“문 잠그면 내가 진짜 얼마나 정신 나간 인간인지 이 동네에 보여 줄 테니까 판단 잘해. 나는 너한테 지옥을 선사할 수도 있는 인간이야.”

“그러든지 말든지.”

명선은 미심쩍은 표정이면서도 별수 없이 계단을 내려왔다.

근데 쟨 왜 혼자 궁상을 떨고 있어, 홀애비같이.

몸은 예뻐가지고.

편의점에 들어간 명선은 혀를 차며 바구니에 과자 몇 개를 대충 골라 넣었다.

혹시 내가 오늘 계속 말 안 걸어서 울적했던 거 아니야?

그럴 만도 하지. 애인도 도망가고 칙칙한 인생에 나와의 섹스가 한 줄기 즐거움이 됐을 텐데.

은근히 내가 미션 성공해서 오늘 밤 같이 놀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라.

맨날 은근히 그러지 말고 티를 좀 내주면 좋을 텐데.

역시 아직은 수줍은 건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재강은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앉은 채였다.

“먹이를 구해왔다.”

명선이 신발을 벗고 평상에 올라앉아 봉지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재강의 곁에 놓인 소주병은 비어 있고 손에 든 병은 방금 막 딴 듯했다.

재강이 그 병에 입을 대고 몇 모금 마신 후 명선이 꺼내 놓은 것들을 살펴봤다.

“병나발까지 부는 거야? 와, 아저씨 진짜 암담하다.”

재강은 말없이 과자 봉지 하나를 집어 들어 들여다봤다.

“소주엔 해산물 과자가 좋더라고. 내가 사러 간다고 했을 때 네가 별 얘기 안 해서 그냥 내 취향으로 샀다.”

명선이 과자 봉지를 뜯어서 펼쳐 놓고 한쪽에 놓인 컵을 집어 들었다.

“나도 줘.”

컵을 재강에게 내밀자 재강이 거기에 소주를 반쯤 따라 주었다.

“그대의 완벽한 몸을 위하여.”

명선이 재강의 소주병에 컵을 부딪치며 꾸며낸 목소리로 말하고 윙크했다.

재강은 역시나, 불쾌하다는 표정부터 지었다.

“역겹게 굴 거면 꺼져.”

명선이 소주를 마시고 찡그린 채 킥킥 웃었다.

“넌 릴랙스 좀 해. 왜 이렇게 매사에 뾰족뾰족하냐?”

“내가 릴랙스하건 말건 네가 뭔 상관이야?”

“너 친구 없지?”

“신경 꺼.”

둘은 얼마간 말없이 소주를 마시고 과자를 집어 먹었다.

“방 귀엽더라.”

명선이 방 쪽을 가리켰다.

“저런 곳은 에어컨 필수겠다. 옥탑방이 여름에 되게 덥다던데. 정말 그렇게 더워?”

“해맑은 티 좀 그만 내.”

“내 피부가 좀 해맑긴 하지?”

명선이 뺨을 톡톡 두들기며 재강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재강은 진저리를 치며 평상에서 내려갔다.

“야, 어디 가.”

“술 가지러.”

재강이 집 안으로 들어가 소주를 두 병 더 가지고 나왔다.

“경치는 좋네.”

명선이 주위를 둘러봤다.

“이런 게 옥탑방의 좋은 점 첫 번째로 꼽히긴 하더라. 탁 트여 있는 거. 나도 독립해서 옥탑방 하나 얻어 볼까?”

“해맑은 티 그만 내랬지.”

“근데 둘이 살기엔 좁아 보이는데.”

명선은 과자를 우적거리며 무심히 말했다가 곧 아차 하며 재강을 슬쩍 쳐다봤다.

재강은 손에 든 소주병 입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좁긴 하지.”

재강이 중얼거리고 소주를 들이켰다.

명선은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조심해야지. 가뜩이나 청승 떠는데 도망간 애인까지 자꾸 떠오르게 만들면 여기서 더 흑화할지도 몰라.

“화분이 되게 많네.”

명선이 옥상 벽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서 있는 화분들을 둘러봤다.

“다 네가 키우는 거야?”

“그냥…… 어.”

“오, 의외의 모습? 저런 거 좋아해? 식물 키우는 거?”

“내가 산 것도 아니야.”

“그럼?”

“이사 올 때 있던 걸 물 좀 줬더니 자라길래 둔 거랑…… 다른 집에서 갖다 둔 것도 있고.”

“말하자면 식물 보호소 같은 거구나.”

“…….”

“너는 보호소의 섹시한 소장이고.”

“뭔 소리야.”

재강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와, 그나저나 오늘 사람 별로 없어서 좋지 않았냐? 보통 목요일에 이거 두 배는 왔던 것 같은데.”

“내일 미어터질 거야. 교직원 회식 있어서.”

“윽.”

재강이 명선을 보며 픽 웃었다.

“넌 카운터 보는 게 그런 스케줄 파악도 안 해? 돈만 받으면 끝인 줄 아냐?”

“너는 내가 돈 계산만 하고 있는 걸로 보이지? 아니? 나는 그 식당의 얼굴이자 기둥이야. 카운터에서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거라고. 내가 그걸 잘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든이 돌아가고 있다는 거 모르겠냐?”

“하긴, 식당 이름이 자기 이름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명선이 입을 꾹 다물고 재강을 노려봤다.

“이름 얘기는 하지 말지?”

재강이 킬킬 웃었다.

“가든, 릴랙스해. 뭘 그렇게 뾰족뾰족하게 굴어?”

“뭐, 가든?”

“얼굴이자 기둥이라며. 가든 이름이랑 네 이름도 똑같고.”

“숯불 주제에, 씨벌?”

“마음껏 불러. 나는 상관없으니까.”

명선은 별수 없이 이를 갈며 소주를 들이켰다.

빨리 사장이 돼서 이름을 바꾸든가 해야지, 빌어먹을.

그사이 재강은 새 소주병을 따고 있었다.

* * *

빈 소주병은 어느새 여러 병으로 늘어났다.

“여기서 혼자 궁상떨고 있던 이유가 있었네. 술이 쫙쫙 들어간다. 완전 루프탑 바야.”

명선이 비스듬히 앉아 빈 과자봉지의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훑어 빨아먹으며 말했다. 얼굴이 벌겋고 눈은 살짝 풀린 채였다.

“술 먹기엔 좋지.”

재강이 막대사탕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강의 눈도 살짝 풀려 있었다.

“야, 다음엔 내가 집에서 안주 좀 챙겨올게. 제대로 각 잡고 먹어 보자. 우리 아빠가 쟁여둔 양주 중에 괜찮은 거 있거든. 그것도 좀 갖고 올게. 여기다가 소파를 몇 개 들여놓자. 탁자랑. 이 위에 전구도 쫙 걸어 놓으면 분위기 죽이지 않겠냐?”

“별로.”

“너는 분위기를 살릴 줄을 몰라. 그러니까 애…….”

그러니까 애인이 도망가지, 라고 말할 뻔한 명선은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으며 말을 멈췄다.

재강은 명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애애…… 에에헤헤헤헤헤…….”

명선은 어물거리다가 눈을 한껏 둥글리며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그런 명선을 물끄러미 보던 재강이 갑자기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명선도 따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낄낄대기 시작했다.

“뭘 처웃어, 숯불 새끼야.”

“넌 왜 처웃는데, 가든 새끼야.”

“가든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럼 가든 이름을 바꾸든가.”

둘은 계속 낄낄거렸다.

“사장 돼서 바꿀 거야. 이제 내가 사장 될 거야. 나 지금 경영 수업받는 거야.”

“이제 식당 망하겠네.”

“내가 바로 드라마에만 나오는, 그 유명한, 재벌 2세 남주라는 거 아니냐. 신분 속이고 기업 말단 사원으로 들어간 거지. 나랑 눈 맞으면 이제 팔자 펴는 거라고.”

“더 구기지나 말아라.”

“일단 이 환상적인 몸을 가진 직원의 팔자부터 펴 볼까.”

명선이 말하며 재강의 가슴을 턱 잡았다.

재강은 웃음이 남은 얼굴로 멈칫했다가 자기 가슴을 내려다봤다.

재강의 입 안에 있던 막대사탕이 움직이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재벌 2세 남주가 반하고도 남을 몸이야.”

명선이 재강의 가슴을 느릿느릿 어루만졌다. 손바닥 아래에서 유두가 단단하게 서는 느낌이 고스란히 났다.

명선이 입술을 혀로 축이자 젖은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너 몸 진짜 예쁜 거 알지.”

명선이 재강의 가슴을 꽉 쥐었다 놓고 손을 넓게 펼쳐 그 위를 이리저리 쓸었다.

재강은 고개를 숙인 채 그런 명선의 손을 따라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숨이 조금씩 가빠졌다.

명선이 몸을 살짝 일으켜 재강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야, 내가 사장되면…….”

“…….”

재강이 눈을 들어 명선과 시선을 맞췄다.

“너 나랑 동업할래? 어때? 내가 부사장으로 앉혀 줄게.”

“…….”

잠시 서로를 보던 둘은 동시에 다시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랄하지 마, 가든 새끼야.”

“너무 작업 멘트였나? 야, 근데 내 친구도 사장 잘 만나서 지금 같이 가게 운영해.”

“지랄하지 말라고.”

둘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배를 잡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킬킬거렸다.

그러다 재강의 입에 있던 막대사탕이 튕겨 나가자 그걸 보고 더 미친 듯이 웃어댔다.

웃음이 잦아들 때쯤, 둘은 평상에 널브러져 누워 헐떡였다. 두 쌍의 다리는 아무렇게나 엉켜 있었다.

명선은 너른 밤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다 고개를 돌려 재강을 바라봤다.

재강은 웃음이 남은 얼굴로 눈을 감은 채였다.

재강의 호흡에 맞춰 가슴과 배가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명선이 몸을 굴려 다가가서 곧장 재강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 너무 빨고 싶어.”

명선이 속삭이며 재강의 단단한 유두 부분을 입술 끝으로 깨물었다.

“아…….”

재강이 작게 소리 내며 명선의 어깨를 붙잡고 살짝 몸을 일으켰다.

명선이 재강의 어깨를 눌러 도로 눕히며 가슴을 입술로 애무했다.

재강의 티셔츠 가슴 부분이 조금씩 젖어 들어갔다.

“아하아, 씹…….”

재강이 명선의 어깨와 팔을 꼭 붙잡은 채 몸을 들썩였다.

명선은 계속 재강의 가슴을 애무하며 천천히 다리를 움직여 그의 몸 위로 올라갔다.

바지 앞섶이 맞닿자 재강의 것도 자신의 것만큼 단단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 너무 좋아.

명선은 재강의 몸을 열심히 더듬으며 맞닿은 성기를 꾹 누르고 비볐다.

찡그리고 눈을 감은 채 그대로 누워 있던 재강도 조금씩 골반을 움직여 마주 비비기 시작했다.

재강의 가슴팍을 더듬던 명선의 입술이 쇄골을 지나 목으로 올라갔다.

그 뜨겁고 얇은 피부에 명선의 입술이 닿자 재강이 몸을 떨며 길게 숨을 뱉어냈다.

명선은 재강의 목에 얼굴을 파묻고 짧게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벌린 입술을 찰싹 붙이고 세게 빨았다.

“흐윽…….”

재강이 몸을 움찔하는 순간 뭔가 덜그럭, 하더니 깨지는 소리가 났다.

둘은 동시에 머리를 쳐들고 재강의 발치를 바라봤다.

빈 소주병 하나가 재강의 발에 걷어차이며 평상 아래로 떨어져 깨진 듯했다.

알게 뭐냐는 심정으로 다시 재강의 목을 향해 돌진하려던 명선을 재강이 얼른 붙잡았다.

“…….”

명선이 숨을 몰아쉬며 재강의 눈을 마주 봤다.

재강 역시 숨을 조금 가쁘게 쉬면서 명선의 눈을 보다 입을 다물고 침을 꿀꺽 삼켰다.

재강이 일어나 앉자 명선도 그에 밀려 동시에 일어나 앉았다.

명선은 조급한 마음으로 재강의 팔을 슬쩍 붙잡았다.

“좀만 더…….”

“안으로 들어와.”

재강이 낮게 말하고 평상에서 내려갔다.

재강은 슬리퍼를 신으며 한 번 비틀했다가 방 쪽으로 향했다.

“…….”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명선의 얼굴에 곧 미소가 헤벌쭉 번졌다.

명선도 얼른 일어나 평상 아래로 내려갔다가 한 번 비틀하고는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하며 허겁지겁 그 뒤를 따랐다.

재강은 켜져 있던 실내등을 끄며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후끈했다.

어둠 속에서 침대 옆까지 간 재강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명선은 현관에서부터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며 그런 재강에게 다가갔다.

언제나 그렇듯 미리 챙겨온 콘돔도 잊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서 꺼내 침대 위로 톡 던져 놨다.

창을 통해 새어 들어온 빛에 비친 재강의 몸은 유혹적이었다.

재강이 곁으로 다가온 명선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곧장 내리눌렀다.

명선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앉아 단단히 서 있는 재강의 성기를 입 안 깊숙이 빨아들였다.

“하…….”

재강이 숨을 길게 내쉬며 명선의 머리를 붙잡았다.

명선은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재강의 허벅지 뒤쪽을 잡고 있다가 그 손을 쓸어 올렸다.

땀이 난 재강의 피부는 축축하고 뜨거웠다. 명선의 손이 넓게 펼쳐진 채 미끄러져 올라가다가 그 엉덩이를 꽉 쥐었다.

재강은 제지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젖힌 채 헐떡이며 명선의 머리만 어루만지고 있었다.

명선의 얼굴 앞에서 재강의 아랫배가 거칠게 오르내렸다.

재강의 것을 맛있게 빨면서 명선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사이즈도 딱이고 길이도 딱이고 촉감도 딱이고 강직도도 딱이고, 다 완벽해.

엉덩이도 이렇게나 탱탱하고. 아, 맛있는 새끼.

명선은 양손으로 재강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다 한 손을 앞쪽으로 쓸어 올려 배를 쓰다듬었다.

재강이 몸을 움찔거릴 때마다 여섯 팩으로 갈라진 근육이 저희끼리 불끈거렸다.

으으, 맨날 이거 베고 도롱도롱 잤으면 좋겠네.

명선은 재강의 배와 가슴, 허리, 옆구리 이곳저곳을 정성 들여 쓸고 주물러댔다.

어느 순간 명선의 머리를 어루만지던 재강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머리카락을 꽉 그러쥐었다.

재강은 명선의 머리카락을 쥔 채 그 입 안으로 성기를 퍽퍽 박아 넣었다.

“헉, 억…….”

명선은 눈을 질끈 감고 숨 막히는 소리를 겨우겨우 뱉어냈다. 눈물이 찔끔찔끔 새어 나왔다.

얼마간 그러던 재강이 동작을 멈췄다가 성기를 빼내자 명선은 눈을 뜨고 헐떡이며 위를 올려다봤다.

명선의 아랫입술과 재강의 성기 끝 사이에서 끈끈한 타액이 길게 늘어져 있다가 툭 끊어졌다.

재강은 여전히 명선의 머리카락을 쥐고서 숨을 씩씩 몰아쉬며 명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슴과 배의 굴곡이 들썩이는 모양새가 환상적이었다.

명선은 그 몸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배를 어루만졌다. 재강은 그 손을 쳐내지 않았다.

명선이 재강의 아랫배에 얼굴을 묻고 이리저리 비볐다.

“너한테서, 나는 냄새…… 좀 좋은 것 같아.”

명선이 속삭이며 재강의 엉덩이와 허벅지 뒤쪽, 오금을 어루만졌다.

가볍게 쓸고 간질이는 명선의 손길 아래에서 재강의 허벅지가 살짝 떨렸다.

“자꾸자꾸, 맡고 싶은 냄새거든…….”

명선은 재강의 피부에 대고 속삭이면서 이곳저곳에 계속 입을 맞추고 핥았다.

재강이 낮게 욕을 중얼거리며 명선의 어깨를 붙잡았다.

명선은 재강의 아랫배로 파고들다가 다시 그 성기를 입 안 깊숙이 밀어 넣었다.

살짝 비틀했던 재강은 명선에게 밀리며 뒷걸음질 치다가 침대에 턱 걸려 풀썩 앉았다.

명선은 재강의 가슴을 밀어 그대로 눕히고 그의 피부에 코와 입술을 비비면서 훑어 올라갔다.

이미 아래에선 콘돔 포장지를 뜯어 콘돔을 꺼내고 그걸 재강의 성기에 살살 씌우는 중이었다.

다년간 수많은 사람과의 섹스를 리드한 덕에 이 정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었다.

지금은 다만 콘돔을 씌우는 그 성기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것이라는 사실이 달랐지만.

명선의 코와 입술이 킁킁거리고 쪽쪽거리고 할짝거리며 재강의 가슴까지 올라가는 동안 콘돔은 그곳에 안전하게 씌워졌다.

명선은 손에 침을 뱉어 뒤쪽을 적시고 재강의 성기에도 문질렀다. 그러는 동안 재강의 가슴과 쇄골에 열심히 입을 맞췄다.

목에 명선의 입술이 닿자 재강이 턱을 쳐들었다.

명선은 최대한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차츰차츰 재강의 얼굴 쪽으로 올라갔다.

명선이 재강의 몸 위에 올라앉자 재강은 명선의 엉덩이를 움켜잡고는 그 사이에 대고 성기를 조금씩 문질렀다.

그 감촉, 그리고 재강이 자신의 엉덩이를 잡고 있다는 사실에 명선은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명선은 눈을 감고 씩씩대는 재강을 힐끔거리며 그의 귀를 빨다가 뺨으로 옮겨갔다.

키스하고 싶어 목이 바짝바짝 탄 지 오래였다.

아, 죽겠네. 마지막 키스가 언제였지?

말랑말랑한 입술이랑 혀랑 그 소리랑 이것저것 전부 다, 너무 그리워.

마음이 조급해 입술이 다 타 없어지는 듯했지만, 명선은 재강의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며 천천히 그 위를 가로질렀다.

거의 다 왔어, 거의 다.

스치는 둘의 가쁜 숨에서 독한 소주 냄새가 풍겼다.

재강의 입 가장자리에 명선의 입술이 안착하는 순간 재강이 눈을 뜨더니 고개를 돌려 피했다.

제엔장.

바로 그 머리를 콱 잡고서 거칠게 입술을 빨아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명선은 다시 재강의 귀 쪽으로 입술을 옮겼다.

곧 재강이 끝만 살짝 들어간 채이던 성기를 명선의 안으로 꾸욱 밀어 넣었다.

“아아하아아아…….”

명선이 길게 신음하며 재강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엉덩이와 골반을 잡고 내리누르는 재강의 손은 뜨거웠다.

명선은 재강이 쳐올리는 대로 덜컹덜컹 움직이며 재강의 어깨에 소리를 뱉어냈다.

“아, 숯불, 야…… 흐윽, 너무 좋다 이거, 진짜 좋아…….”

“좀…… 조용히 좀 해, 좀…….”

“좋, 은데, 하윽, 어떡하냐고…….”

“…….”

둘의 움직임에 따라 침대도 거칠게 흔들렸다. 몸은 어느새 모두 땀범벅이 되었다.

재강은 명선의 엉덩이와 골반 부분을 감싸 잡고 꽉 짓누르며 골반을 세게 쳐올렸다.

등을 웅크린 채 무아지경으로 들썩이던 명선이 윗몸을 일으키며 재강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명선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튀어나온 재강의 살과 근육은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몸 좀 봐…… 몸, 진짜…….”

명선은 그 가슴을 세게 쥐었다가 놓고 더 아래로 손을 쓸어내려 와 재강의 배를 쓰다듬었다.

재강은 잔뜩 찡그린 채 씨근대며 명선의 성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후, 씨…….”

명선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재강이 쳐올릴 때마다 명선의 머리가 덜렁거리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찰랑댔다.

명선이 뒤로 손을 뻗어서 재강의 무릎을 잡고 기대자 명선의 등이 둥글게 휘고 배가 팽팽해졌다.

명선이 재강의 움직임에 맞춰 골반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이어 재강이 쳐올리던 동작을 서서히 늦췄다.

명선은 찌릿찌릿한 전율을 느끼며 계속해서 엉덩이를 짓찧었다. 잔뜩 선 성기가 재강의 아랫배를 두들겨댔다.

“흐읍…… 하아, 하아…….”

눈을 꼭 감고 거칠게 헐떡이던 명선은 문득 자신의 성기에 뭔가 와 닿자 눈을 떴다.

한 손으론 명선의 허벅지를 잡은 채인 재강이 다른 손으로 명선의 것을 잡고서 문지르고 있었다.

명선은 눈을 크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재강의 손은 단단하고 셌다. 그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명선의 성기를 쉼 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아, 오늘…… 오늘 진짜…….”

“…….”

“야, 어떡해, 좆에…… 좆에 축복 내려, 오는 기분이야.”

재강은 시끄럽다는 타박도 하지 않았다.

“두드, 리면 열리는 철문을 아냐, 네가…… 그 철문이 열리, 열리는 거야.”

명선은 무작정 떠오르는 말을 주절대며 계속 골반을 흔들어댔다.

앞에서 문질러대는 재강의 손, 뒤에서 찔러대는 재강의 것, 자신이 잡은 재강의 단단한 무릎, 엉덩이에 느껴지는 재강의 젖은 피부까지, 명선은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흑, 나 쌀…… 쌀 것 같은, 데.”

명선이 잔뜩 쉰 목소리로 가쁘게 말하자, 성기를 문지르는 재강의 손이 더 빠르고 격해졌다.

재강은 다른 손으로 명선의 골반을 잡더니 내리누르며 다시 몸을 쳐올리기 시작했다.

명선은 허벅지에 잔뜩 힘을 줘서 몸을 살짝 띄워 앉은 채 뒤와 앞을 자극하는 재강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명선과 재강은 거의 동시에 사정했다.

재강이 흐읍, 하는 소리를 내며 골반을 퍽 쳐올리자 명선의 등이 팽팽하게 휘었다.

명선은 허벅지를 바르르르 떨며 그대로 있다가 재강이 엉덩이를 털썩 내려놓자 앞으로 몸을 숙였다.

명선이 재강의 몸 양옆으로 손을 대고 윗몸을 살짝 기울인 채 있는 동안 재강은 씨근대며 성기를 몇 번 더 퍽, 퍽, 밀어 넣었다.

명선은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뒤틀면서 신음을 뱉어냈다.

곧 재강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명선과 마찬가지로 재강의 몸 역시 부르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재강이 멈추자 명선은 그 몸 위에 주저앉으며 힘을 뺐다.

둘은 얼마간 그렇게 몸을 붙이고 가만히 숨만 골랐다.

재강은 명선의 골반과 엉덩이를 여전히 붙든 채 땀에 젖은 피부를 조금씩 어루만지듯 했다.

아…… 좋네. 이렇게 만져 주는 것도.

재강의 손길을 만끽하던 명선이 스르르 눈을 떴다.

자신의 정액이 흩뿌려진 재강의 가슴과 배가 눈에 들어왔다.

이걸 어떡해야 돼, 정말…….

명선은 황홀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찬찬히 시선을 위쪽으로 옮겼다.

재강은 여전히 눈을 감고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땀에 젖은 재강의 얼굴과 몸이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다.

명선은 그 얼굴, 특히나 입술을 응시하다 홀린 듯 엎드렸다.

명선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재강이 문득 눈을 뜨더니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제발 키스 좀…… 하자, 어? 짧게라도.”

“저리 가.”

명선은 몸을 뒤척이는 재강의 어깨를 잡고 누르며 그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지금 키스 너무 하고 싶어. 나 너 알고 나선 너한테 집중하느라고 키스도 못 한 지 되게 오래됐단 말이야. 입술에 곰팡이 필 것 같은 기분이야. 너 그 기분 뭔지 아냐? 그 절망적인 기분? 네가 그걸 알어?”

명선이 재강의 목에 입술을 거칠게 문지르며 숨을 씩씩 섞어 말했다.

“내가…… 알 게 뭐야, 아, 새끼 정말.”

재강이 명선의 어깨를 잡았다가 가까스로 얼굴을 붙잡고 밀쳐냈다.

둘이 실랑이를 하는 사이 명선의 뒤에서 재강의 것이 쑥 빠져나갔다.

명선은 침대에서 내려가려는 재강을 다시 붙잡았다.

“너는 입만 벌리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돼.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입술도 빨아 주고 혀도 빨아 주고.”

“꺼지라고.”

재강은 끝내 명선을 밀쳐내고 침대를 벗어났다.

“씨발, 키스가 뭐 별거냐? 뒤는 있는 대로 쑤셔 놓고 왜 입술엔 민감하게 구는데?”

명선이 침대 구석에 처박힌 채 원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재강은 대꾸도 없이 콘돔을 잡아 빼 던지고는 비틀대며 욕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곧 샤워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아으, 저 답답한 새끼.”

명선은 머리를 북북 긁으며 몸부림치다 침대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선 순간 휘청하며 앉았던 명선은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일어나 주춤주춤 걸어가서 에어컨을 틀었다.

열기 때문에 술기운이 더 올라왔는지 살짝 어지러웠다.

명선은 에어컨 아래에 버티고 서서 몸을 식혔다.

혹시 키스만큼은 꼭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신념을 가진 인간인가?

제정신이야? 그게 뭔 지랄인데?

혼자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순정파라도 되겠다는 거야, 뭐야?

아…… 그냥 잔챙이들을 다시 만나면서 해소되지 않은 욕망을 풀어야 하는 건가?

명선은 땀이 식어가는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쓸면서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오랄이랑 전희도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잖아.

아까 초반에 키스하려고 했을 때도 거의 입술 바로 옆에서 멈췄고. 조금씩 더 나아질 거야.

그때까진 너무 안달하는 모습 보이지 말고, 언뜻언뜻 상기시키는 정도로 하면서 조련을 하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인간이라구. 예민하고 사나운 야생 동물처럼…….

몸이 죽여주는 야생 동물…….

명선이 몽롱한 표정으로 다시금 입맛을 다시는 동안 샤워를 끝낸 재강이 나왔다.

“씻어.”

재강이 서랍에서 수건을 하나 꺼내 명선에게로 던졌다.

몸 냄새가 여기서도 나나?

명선은 수건을 코에 댄 채 욕실로 갔다.

“킁킁대는 것 좀 그만할래, 변태 새끼야?”

“내 코는 내 거고요.”

명선은 욕실 문을 쿵 닫아 버렸다. 밖에서 재강이 뭐라고 구시렁거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역시 애인 취향들인가 보네.

명선이 샴푸와 비누를 들여다봤다.

평소 ‘아재 취향’으로 보이는 재강이 직접 샀을 것 같지는 않은 브랜드의 물건들이었다.

갑자기 재강이 욕실 문을 열자 명선이 흠칫하며 돌아봤다.

재강의 얼굴은 명선처럼 벌겠다.

“칫솔…… 저기 있는 거 아무거나 빼서 써.”

재강이 수납장 쪽을 가리키고는 도로 문을 닫고 나갔다.

수납장 맨 위 칸엔 길쭉한 박스 안에 든 새 칫솔이 대여섯 개 남짓 쌓여 있었다.

명선은 그중 하나를 집어 박스에서 꺼냈다.

친구가 많아서 자고 가는 인간들도 많은 사람이 보통 칫솔을 쟁여 두지 않나?

의외로 친구가 많은지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저 성격에.

명선은 이를 닦고 몸을 씻는 동안 계속 욕실 구석구석을 살피며 재강의 취향, 행동 패턴 등을 추리했다.

욕실 밖으로 나와 보니 재강은 어느새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갈아 놓고, 그 옆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있었다.

“우왕. 내 잠자리도 마련해 주고 있는 거야?”

명선이 신난 얼굴로 재강에게 다가갔다.

“나 어디서 잘까?”

“맘대로 해.”

명선은 재강의 벗은 등을 응시했다. 재강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반바지를 입은 채였다.

“바지는 왜 입었어? 볼 거 다 본 사이에.”

“그만 보고 싶으니까 넌 옷 좀 입어라.”

“새침하게 굴기는.”

이불을 마저 정리한 재강이 한숨을 내쉬며 곧장 그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손님이라고 나를 침대에서 재워 주긴 하는구나.”

명선이 재강의 몸을 넘어 침대로 올라갔다.

“부잣집 도련님 바닥에서 재웠다가 뼈라도 상하면 어쩌려고.”

“하긴, 바닥보단 침대가 내 몸에 맞긴 하지. 너도 아는구나.”

“야, 팬티라도 입고 자. 시트 방금 갈았으니까.”

“또 안 어울리게 깔끔 떤다.”

명선은 툴툴대면서도 일어나 속옷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고 서랍장 쪽으로 갔다.

“팬티 좀 빌려 줘.”

“싫어.”

명선은 아랑곳없이 서랍들을 차례로 열어 들여다봤다.

“팬티는 매일 갈아입어야 한다구.”

재강은 포기한 듯 말이 없었다.

서랍 안에 가지런히 놓인 속옷은 대부분 같은 디자인이고 무채색이었다.

“참 재미없게도 산다.”

명선은 그중 하나를 꺼내 입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넌 바닥 괜찮아? 내 옆에서 자고 싶으면 올라와도 돼. 안아 줄게.”

“자라.”

재강이 명선을 등지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명선은 침대 가장자리에 누워, 금세 잠들어버린 듯한 재강의 어깨와 등을 바라봤다.

에어컨에서 작게 나는 소리 외에 방 안은 고요했다.

명선은 재강의 귀 가장자리 짧은 머리카락을 응시하다 문득 그곳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 상상을 했다.

깜박, 깜박, 하던 명선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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