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6. 더 잘해요 (13/28)

2부-6. 더 잘해요

작게 철썩이는 소리에 명선이 눈을 떴다.

에어컨이 틀어진, 깔끔하게 정리된 작은 방은 나름 쾌적했고, 늦은 오후의 오렌지색 빛이 창문 사이로 스며들어와 천장을 물들이고 있었다.

방 안에 재강은 보이지 않고 밖에서 간헐적으로 철썩, 철썩, 하는 소리가 작게 났다.

명선은 잠이 덜 깬 눈을 끔뻑이며 천장에 드리워진 빛을 바라봤다. 밖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뭔가 철썩거렸다.

빨래 널고 있나 보네.

명선이 빙그레 웃었다.

문득 평화롭고 따사로운 무언가가 명선의 몸을 보드랍게 감싸는 것 같았다.

그동안엔 대체로 부모가 출근한 후 조용한 빈집에서 느지막이 일어났는데, 잠에서 깼을 때 다른 사람의 기척이 있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게 생각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란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명선은 잠시 그 소리와 분위기를 만끽하다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는 버럭 외쳤다.

“숯불!”

분명 들릴 만한 크기였건만 재강은 답이 없었다.

곧 밖에서 다시 철썩이는 소리가 났다.

명선은 침대 위에서 발광했다.

“숯불! 숯불! 숯부우우우울!”

“아, 씨발, 왜.”

재강의 대꾸가 들리자 명선은 키키 웃었다.

“뭐 해?”

“빨래 널잖아.”

명선이 꾸물꾸물 일어나 창문을 내다봤다.

재강은 옥상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한창 빨래를 너는 중이었다. 옷을 허공에 세게 털 때마다 철썩이는 소리가 났다.

여전히 웃통을 벗고 바지만 입은 채여서, 재강이 그렇게 빨래를 힘차게 털 때마다 등과 팔의 근육들이 불룩이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이쁘다, 이뻐.

명선은 그 몸을 감상하며 흐뭇하게 웃다가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잘랐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후끈한 공기가 훅 끼쳤다.

“한낮도 아닌데 덥네.”

수박이 담긴 큼지막한 접시를 들고 명선이 평상으로 가 앉았다. 낮 동안 태양에 달궈진 평상은 뜨끈뜨끈했다.

“야, 여기 위에 뭐 좀 달아야겠다. 파라솔 같은 거.”

명선이 수박을 아작거리며 평상 주변을 둘러봤다.

“와서 수박 먹어. 내가 파라솔 사 줄까?”

“됐어.”

재강은 명선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빨래를 널었다.

수박을 안 먹겠단 말인지 파라솔이 필요 없다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명선은 별로 개의치 않고 계속 수박을 먹다가 벽에 기대 서 있던 검은 장우산을 가지고 다시 평상으로 와 앉았다.

마지막 빨래를 널고 바구니를 집어 들며 몸을 돌린 재강이 명선을 보고는 흠칫했다.

명선은 검은 우산을 쓴 채 평상에 올라앉아 수박을 먹는 중이었다.

“뭐 하는 거야.”

“햇빛이 그대로 내려오잖아. 그늘도 없고.”

재강이 한숨을 폭 쉬고는 평상 쪽으로 와 바구니를 내려놓고 걸터앉았다.

“먹어 봐. 존나 달아.”

명선이 수박 한 조각을 집어 내밀자 재강이 받아서 잠시 들여다보다 베어 물었다.

“달지?”

재강이 햇빛에 찡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야, 너도 이 안으로 들어와.”

명선이 우산을 살짝 들어 올리고 손짓했다.

“됐어.”

“너 그러다 피부 다 망가져.”

“이 정도로 무슨.”

“너 트럭 운전사들 왼쪽 피부만 변한 거 못 봤냐?”

“뭐?”

“미국인가 어디서 트럭 운전사들 상대로 조사를 했는데 장거리 운전할 때 주로 창문에 왼팔만 걸쳐 놓고 하는 경우가 많잖아. 창문도 바로 왼쪽에 나 있고. 몇 년 그렇게 하고 나서 보니까 오른쪽이랑 왼쪽 피부 상태가 완전 다르더라니까. 자기도 모르는 새 쌓이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거야.”

“…….”

“빨리 들어와. 예쁜 몸에 흠집 나게 하지 말고.”

명선이 우산을 좀 더 들어 올리고 가까이 오라는 고갯짓을 했다.

재강은 별로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면서도 엉덩이를 느릿느릿 움직여 우산 아래로 들어와 앉았다.

둘은 얼마간 그렇게 나란히 앉은 채 수박을 먹었다.

그러다 알람이 들리자 명선은 재강에게 우산을 건네고 주머니를 뒤적였다.

재강은 말없이 우산을 받아 들고 계속 수박을 먹었다.

대용용

[써니 써니 어디니 이따 마감 시간 맞춰서 가게로 올래? 승규형이 쏜대]

명선은 수박을 씹으며 문자를 내려다보다 재강을 힐끔거렸다.

재강은 빨랫줄에 걸려 가볍게 흔들리는 옷들을 보며 무심히 수박을 먹고 있었다.

명선은 망설이다 주저주저하며 썼다.

써니

[오늘도 오프 ㅎㅎㅎ]

대용용

[몇신데? 끝나고 와]

써니

[오늘은 숙박할거야]

[밤새 놀려공]

대용용

[요새 오프 자주하네]

[얼굴 보기가 왜이리 힘드러 양지 형네도 안 오고]

써니

[ㅎㅎㅎㅎㅎ 내가 원래 잘 나갔잖니]

대용용

[그럼 뭐,,,,,, 즐거운 박음질 되시게]

써니

[ㅇㅇ 조만간 놀러가께]

명선은 핸드폰을 끄고 재강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얘랑 노느라 바쁘다고 하면, 대용이가 뭐라고 하려나.

대용이랑은 이제까지 비밀 하나도 없이 지냈는데, 이건 왠지 사실대로 말하기가 꺼려진단 말이지…… 왜일까.

재강은 흔들리는 빨래들 쪽에 시선을 둔 채 수박을 먹다가 그 수박 조각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리고 손목 쪽으로 흘러내리는 즙을 가볍게 빨고 다시 수박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우산은 꿋꿋이 둘의 머리 위로 받쳐 든 채였다.

이런 걸 우직한 맛이 있다고 하나? 처음엔 절대 안 보여도 같이 시간을 좀 보내다 보면 알게 되는 그런 숨은 매력…….

어떻게 만나서 얼마나 사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애인이 어떤 식으로 얘한테 빠졌을지를 좀 알겠달까.

거기까지 생각하다 명선은 우뚝 생각을 멈추고 미간을 찡그렸다.

뭐래, 권명선? 뭔 소릴 하는 거야? 매력은 무슨 매력? 몸 예쁘고 잘 박고 가끔 귀여워 보이는 게 다지.

존나 착즙이야 뭐야, 왜 자진해서 매력을 찾아주고 있어?

게다가 그 애인은 일산에서 통영까지 야반도주했잖아. 같이 있는 게 얼마나 지옥 같고 지긋지긋했으면 그랬겠냐?

처음에 어떤 식으로 빠졌는지 어땠는지 그걸 내가 왜 생각하고 있냐고.

……이 새끼는 왜 자꾸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어?

명선은 재강을 흘겨보며 입을 오물거리다가 그 몸을 겨냥해 수박씨를 훅 뱉었다.

명선의 입에서 튀어나온 수박씨가 재강의 어깨에 가 달라붙었다.

“…….”

재강이 씹던 걸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명선을 쳐다봤다.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 얼굴 가득 떠올라 있었다.

명선은 재강과 눈을 맞춘 채 계속 오물거리며 입 안에서 열심히 씨를 골랐다.

명선이 다시 씨를 뱉으려고 숨을 들이켠 순간 재강의 손이 명선의 입을 틀어막았다.

“웁, 푸켁.”

재강이 손을 떼자 명선의 입술에 반쯤 나와 붙어 있던 수박씨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잔기침하며 수박씨를 줍는 명선을 보고 재강이 혀를 찼다.

“뭐 하는 짓거리야.”

“너도 나한테 뱉어.”

“내가 그런 짓을 왜 해?”

“복수를 하라고 판을 깔아줘도 이래요. 내 목도 네 목만큼 시뻘게지도록 빨고, 나한테 수박씨도 뱉고 그러라고. 왜 이렇게 착한 척이야?”

재강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명선을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말 시키지 마. 유치한 거 옮으니까.”

“맬 섀캐쟤…….”

“아, 시끄럽다고.”

“키스할래?”

“어으.”

재강은 치를 떨며 수박을 와구와구 먹었다.

후후 역시, 바로 닥치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

명선은 마지막 남은 수박 조각을 집어 들고 씹으며 재강을 바라봤다. 재강의 어깨엔 수박씨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나날이 귀여워지는 새끼.

명선의 시선이 재강의 입술로 향했다.

언제쯤 저걸 물고 빨고 할 수 있으려나. 언제까지 키스도 없는 섹스를 계속해야 하냐고.

섹스도 좋고 이제 몸도 좀 만질 수 있고, 섹스 도중에 얘가 내 걸 만져 주기도 하니까 좋긴 한데, 그래도 나는 입술에 곰팡이가 피고 있다고, 이 자식아.

내가 이 정도로 키스를 오래 안 했던 적이 없어.

근데 너는 괜찮은 거냐? 애인 도망가고 나선 너도 키스 안 했을 거 아냐.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 애인이랑 섹스할 땐 전희랑 키스랑 다 하지 않냐?

원랜 그런 걸 했으면서 나랑 섹스할 땐 그걸 딱 차단하는 거야?

그게 된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명선이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아니면 혹시…… 애인한테도 키스를 안 해줘서 도망간 건가?

설마.

이따 술을 마시면 마음을 좀 열려나. 내 좆 만진 것도 술 마시고 나서였잖아.

그래도, 그런 걸 원할 때마다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휴.

고생이 많다, 권명선.

* * *

둘은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소주 몇 병을 나눠 마셨다.

“내가 내려고 했는데 왜 네가 내? 내가 더 부잔데.”

식당을 먼저 나서는 재강의 뒤를 따라 나오며 명선이 투덜거렸다.

“가급적이면 너 같은 거한테 안 얻어먹으려고.”

“나 같은 거?”

“돈도 없으면서 허세부리는 것들.”

명선이 코웃음을 쳤다.

“너보다 내가 더 돈 많은 거 알지?”

“너희 부모님이 많은 거겠지.”

“부모님 돈이 내 돈이지, 뭔 소리야.”

“그럼 나한테 돈 주고 섹스하려고 했을 땐 왜 가든까지 나와서 일했는데?”

“아니 뭐, 용돈도 거의 떨어졌고.”

“부모 돈이 네 돈이었으면 애초에 집에 있는 돈 갖다 나한테 주면 됐겠지. 근데 못 했잖아.”

“…….”

“넌 그냥 부모한테 용돈 받아 쓰는 인간인 거야. 네 재산은 없어.”

명선은 말없이 걷다가 킥 웃으며 재강의 어깨에 자기 어깨를 갖다 붙였다.

“안 어울리게 논리적인 척하지 마, 숯불.”

“아, 떨어져.”

재강이 팔꿈치로 명선을 밀치고 명선은 계속 달라붙었다.

둘은 얼마간 실랑이를 벌이며 걷다가 떨어졌다.

“뭐 그럼, 잘 먹었다. 다음엔 내가 살게.”

“그러든지.”

“그리고 나도 지금은 떳떳하게 돈 벌고 있으니까 너무 애 취급하지 마.”

“단지 그것 때문에 애처럼 보인다고 생각한 거냐.”

“꼭 돈 버는 것 때문이 아니어도, 나는 너랑 같이 일하려고 계속 출근하는 건데.”

“…….”

명선이 재강의 옆얼굴에 대고 싱글싱글 웃는 동안 재강은 앞쪽만 보는 채였다.

“아무리 일이 좆같아도 네 몸을 보면 피로가 싹 가신단 말이지.”

명선이 재강의 등을 쓰다듬자 재강이 얼른 사이를 벌렸다.

명선은 그만큼 따라가서 곁에 붙어 걸었다.

“나 그래서 근무일도 네 스케줄이랑 똑같이 맞췄잖아. 너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꼬박꼬박 나가서 일할 인간이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 엄마 아빠가 너한테도 고맙게 생각하는 거고.”

“……너희 부모님도 참 안됐다.”

“안 되긴, 다 상부상조하는 거지. 부모님은 내가 가든 나와서 좋고, 나는 네가 가든에 있어서 좋고.”

“넌 말을 좀…….”

재강이 말을 끊고 입을 다물었다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명선이 재강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말을 좀?”

“됐다.”

“말을 좀, 뭐?”

“됐다고.”

“말을 좀 예쁘게 한다고? 말을 좀 잘한다고?”

명선이 얼굴을 들이밀자 재강이 명선을 밀어냈다.

“아니, 말을 왜 그렇게 하냐고, 씨발아. 사람 자꾸 헷갈리게.”

“뭐가 헷갈려?”

재강이 멈춰서 대문을 열고 손짓했다.

“들어가.”

“뭐가 헷갈리는데?”

명선이 먼저 들어가 옥외 계단을 올랐다.

“어? 뭐가 헷갈리는데?”

명선은 앞서 오르면서도 일부러 계속 뒤를 돌아보며 재강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재강은 귀찮다는 얼굴로 명선의 몸을 밀며 계단을 올랐다.

“왜? 내가 너 좋아하는 것처럼 들려서?”

명선이 싱글거리며 평상에 걸터앉았다.

재강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은 채 서서 명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네가 내 몸만 밝히는, 징그럽고 이상한 취향인 건 나도 아는데, 말을 할 때만이라도…… 그런 걸 명확히 하든지 하라고, 이 변태 새끼야.”

“아, 그럼 ‘가든에 네가 있어서 좋아’라고 하지 말고 ‘가든에 네 몸이 있어서 좋아’라고 하라는 거야?”

“그렇…… 게라도 하라고. 그래.”

“야, 근데 너나 나나 어차피 내가 네 몸만 좋아한다는 걸 뻔히 아는데 뭐 하러 그런 걸 일일이 덧붙여? 척하면 착이지. 굳이 그러는 건 시간 낭비 아니야?”

“앞에 몸 자 하나 붙이는 게 무슨 시간 낭비야, 언제부터 그렇게 시간 절약하면서 살았다고, 한량 새끼가.”

“아, 남의 시간을 막 대하시네.”

재강이 한숨을 쉬며 뒤통수를 북북 긁었다.

“시끄럽고, 암튼 앞으론 똑바로 해. 알겠어?”

“알았어. 난 가든에 네 몸이 있어서 좋아. 네 몸이 너무 좋아. 맨날 네 몸만 보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맨날 네 몸이랑 하고 싶어.”

명선이 필살기 미소를 가득 띤 채 다정한 어투를 지어내 말했다.

“아, 저 징그러운 새끼.”

재강이 치를 떨며 돌아서서 현관 쪽으로 갔다.

명선은 신발을 벗고 평상 위에 올라앉았다.

“숯불, 위스키 마시자. 그거랑 초콜릿도 좀 가져와. 얼음이랑.”

대꾸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간 재강은 얼마 후에 명선이 말한 것들과 유리잔 두 개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다리를 뻗고 평상에 늘어져 앉아 있던 명선은 이쪽으로 오는 재강을 보며 피시식 웃었다.

은근히 순종하는 타입이라니까.

명선은 얼른 다리를 접어 재강이 물건들을 내려놓을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숯불, 우리 쟁반 하나 사야겠다. 이런 거 옮길 때 좀 불편하네.”

재강은 말없이 신발을 벗고 평상 위로 올라와 앉았다.

“쟁반 사고, 파라솔도 사고. 또 뭐 있지? 옷장도 하나 사야 되나?”

“남의 살림에 참견 좀 그만해.”

“남의 살림이라니, 우리 살림이지. 너와 나의 살림. 아니, ‘너의 몸’과 나의 살림.”

찝찝한 표정의 재강에게 미소를 날리며 명선은 위스키를 두 개의 유리잔에 조금씩 따랐다.

“너 얼음 넣어? 아니면 물?”

“됐어.”

재강이 자신의 잔을 들어 조금 마시고, 명선은 잔 안에 얼음을 넣은 후 살짝 흔들었다.

“초콜릿이랑 같이 먹어 봐. 이거 되게 잘 어울려.”

명선이 초콜릿 상자의 뚜껑을 열어 살짝 밀자 재강은 그중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다시 위스키를 조금 더 마셨다.

“괜찮지?”

재강은 찌푸린 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얼마간 말없이 먹고 마셨다.

“근데 그런 식으로 헷갈리는 게 뭐 어때서. 넌 헷갈리는 게 싫어?”

명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재강은 입 안의 초콜릿을 녹이는 동안 말없이 있다가 꿀꺽 삼키고 입을 뗐다.

“헷갈리는 걸 누가 좋아해.”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어쨌든 내가 네 몸에만 미쳐 있는 걸 너도 아는 상태인 거면, 헷갈릴 수조차도 없지. 헷갈린다 해도 그게 신경 쓰일 리가 없고.”

“아, 되게 따지고 드네, 그냥 듣기 싫으니까 구분해서 쓰라고, 이 새끼야. 네가 날 좋아할 리도 없지만 너 같은 게 날 좋아하는 것도 싫다고. 됐냐?”

“아휴, 말 이쁘게 하는 것 좀 봐라.”

명선이 쯧쯧 혀를 찼다.

“저러니 애인이 도망가지.”

“뭐, 이 씨발?”

재강이 눈을 부라리며 잔을 쿵 내려놨다.

“뭐라고 했냐?”

“사람을 이렇게 막 대하고 막말을 퍼붓는데, 애인한테는 마냥 잘했을 리가 있겠냐? 본성이 어디 가? 이런 건 아무리 숨겨도 언젠가는 나오게 돼 있어.”

“미친 새끼가, 뭘 안다고 남 일에 좆 구린 주둥이를 갖다 대? 내가 왜 걔랑 너를 똑같이 대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네가 뭔데? 나랑 섹스 몇 번 한 거 말고 뭐가 있어? 몇 번 깔리니까 뭐라도 되는 줄 아냐? 꼴같잖은 게 어디서 주제넘게 걔랑 비교를 해?”

“아, 그래? 나보다 잘생겼어? 나보다 키 커? 나보다 몸 좋아? 나보다 잘 빨아?”

“…….”

재강이 입을 벌린 채 명선을 멍하니 쳐다봤다.

“나보다 잘생기고 키 크고 몸 좋고 잘 빨면 내가 인정할게. 진짜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비교해 봐서 내가 현저히 떨어지면 나를 계속 푸대접해도 깨끗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고.”

재강은 눈을 끔뻑거리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사고의 흐름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재강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잔을 들어 남은 위스키를 들이켰다.

“야, 나 진짜 진지하게 감별을 요구하는 거야. 정말 객관적으로.”

“됐어.”

재강이 빈 잔에 위스키를 조금 더 따랐다.

“아니, 등급 나누는 얘기를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지금은 또 뒤로 빼고 있어.”

“등급은 무슨…… 아니, 애초에 사람 등급을 나누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왜 등급을 그런 기준으로 나눠? 몸 좋고 잘 빨면 일 등급이야? 도대체 너는 뭐가 문제야?”

“고기 등급 나눌 때 몸으로 하지, 마음씨가 얼마나 착하고 똑똑한지 그런 거로 따지냐? 아니잖아.”

재강이 눈만 들어 물끄러미 명선을 바라봤다.

“너한텐 사람이 그냥 고기 같다는 거냐? 먹으면 그만인?”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까 놓고 말해서 너나 나나 어차피 섹스 때문에 이렇게 붙어 있는 건데 서로 고기 취급 안 할 것도 없지, 뭘.”

재강은 얼마간 잔 가장자리를 입에 댄 채 눈을 내리깔고 깜박였다.

“참 알면 알수록 대단한 인간이다.”

“등급이 대단하다는 얘기로 알아들을게.”

명선이 씨익 웃고 초콜릿을 입에 던져 넣었다.

재강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헷갈릴 수도 있다는 말을 왜 그렇게 이해 못 했는지 이제 알겠네. 너 같은 인간 머릿속에선 그냥 다 몸이랑 섹스뿐이니까 다른 감정이 끼어들 수도 있다는 걸 아예 생각조차 못 하는 거지.”

“그런 몸을 하고 앉아서 나를 분석해 주니까 왠지 꼴리는데.”

“됐다, 그럼. 이제 구분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해라. 좋아한다고 하든지 사랑한다고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 속뜻은 다 몸 아니면 섹스일 텐데, 뭐.”

“난 네가 미치게 좋아.”

명선이 잔을 들어 내밀자 재강이 그 잔에 자신의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

둘은 동시에 위스키를 벌컥 마시고는 크으, 소리를 내며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명선이 재강에게 몸을 살짝 기울였다.

“야, 근데 진짜로, 어때?”

재강이 초콜릿을 입에 넣으며 명선을 힐끗 봤다.

“뭐가.”

“나보다 잘생겼어?”

“……그만 안 하냐.”

“아니, 이건 진짜 그냥 순수한 궁금증이야. 너도 알잖아. 내가 이런 인간인 거. 그치? 알지?”

“어휴.”

재강이 초콜릿을 으적으적 씹으며 뒤로 팔을 뻗고 기대앉았다.

명선이 엉덩이를 꾸물꾸물 움직여 그 옆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앉았다.

“어때? 진짜 객관적으로. 사심 다 빼고.”

재강은 입을 우물거리며 멀리 야경을 바라보다 입을 뗐다.

“걔가 더 잘생겼어.”

“뻥치시네.”

“걔가 더 잘생겼다고.”

“사심 빼고 객관적으로 보라니까?”

“사심 빼고 객관적으로 봐도 걔가 훨씬 더 잘생겼다는데 왜 자꾸 구질구질하게 물고 늘어져? 한 번 말하면 좀 처들으라고.”

명선이 체념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다 다시 재강을 쳐다봤다.

“사진 있어?”

“내가 걔 사진을 너한테 왜 보여 줘?”

“네 말만으론 내가 인정하기가 쉽지 않잖아.”

“선 넘지 말라고, 이 찌질한 새끼야.”

“지금 전 애인 편드는 것 같은데. 너무 치우쳐 있어.”

“믿든지 말든지 네 맘대로 해. 어쩌라는 거야, 도대체.”

명선이 찝찝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객관성이 좀 부족한 것 같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키는?”

재강이 명선의 머리부터 전신을 한 번 훑어봤다.

“너 키 몇인데.”

“아, 뭐야. 나랑 같이 있었던 게 벌써 몇 시간인데. 평소 눈높이를 떠올려 보면 몰라?”

재강이 명선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이다 평상에서 내려와 섰다.

“앞에 서 봐, 그럼.”

명선이 재강의 앞에 지나치게 바짝 다가서자 재강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명선의 얼굴과 머리 위를 훑어봤다.

“키는 네가 더 크네.”

재강이 평상에 앉으며 말했다.

“예스!”

명선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재강은 말없이 한숨을 쉬며 두 개의 잔에 위스키를 조금씩 더 따랐다.

“그다음이 뭐였지? 아, 몸. 몸은?”

“몸이 뭐.”

“누구 몸이 더 좋냐고.”

“걔 몸이 더 좋아. 그만 비교해.”

“아니, 좋아하는 몸 말고, 말 그대로 좋은 몸 말이야. 라이크 말고 굿. 비율이 좋고 근육이 예쁘고 그런 거. 객관적으로.”

재강이 잔을 입에 댄 채 명선의 몸통 쪽을 훑어봤다.

“또 이런다. 그게 바로바로 안 떠올라? 나랑 몇 번을 잤는데? 넌 도대체 사람 몸을 안 보고 뭐 하는 거야?”

“무슨…… 다들 너처럼 변태인 줄 알아?”

명선이 티셔츠를 훌렁 벗어 던지고 팔을 양옆으로 벌린 채 섰다.

“어때?”

“…….”

재강이 여전히 눈만 껌뻑이고 있자 명선은 그대로 한 바퀴 돌았다.

“어떠냐고.”

“…….”

재강은 명선의 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잔을 천천히 기울여 위스키를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

명선은 재강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바지를 훅 내렸다.

재강의 눈이 명선의 하반신을 훑었다.

명선은 바지를 발목에 걸친 그대로 비척대며 다시 한 바퀴 돌았다.

“아직 모르겠어?”

“…….”

“팬티도 벗을까?”

재강은 말없이 잔을 내려놓고 초콜릿 하나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시선은 명선의 성기 쪽을 향한 채였다.

명선은 두 손을 속옷 양옆 부분에 천천히 찔러 넣고 가만히 있다가 아래로 스윽 밀어 내렸다.

땀 때문에 살짝 끈적한 명선의 허벅지 위에서 팬티가 조금씩 말리며 무릎 위까지 내려갔다.

“아직도 몰라?”

“…….”

재강은 입 안에서 초콜릿을 녹이며 명선의 몸을 바라봤다.

“그럼, 빠는 건?”

“…….”

재강이 잔을 들어 남은 위스키를 쭉 마시고 내려놓더니 일어서서 명선에게로 다가왔다.

재강이 앞으로 다가와 서자마자 명선은 곧장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바지 앞섶에 얼굴을 묻었다.

재강이 명선의 머리를 가볍게 붙잡았다.

명선은 재강의 양 무릎 뒤쪽을 감싸 쥐고 눈을 감은 채 재강의 앞섶에 얼굴을 이리저리 비볐다.

그 안에서 성기가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걔가 나보다 더 잘 생겼다는 거 거짓말이지?

명선은 입을 벌려 옷 아래에 있는 성기를 가볍게 몇 번 물었다.

너 같은 게 나보다 더 잘생긴 놈이랑 연애를 했을 리가 없어.

너처럼 가진 것도 없고 성질 더럽고 몸만 예쁜 게.

게다가 그 애인이 몸 예쁘단 소리도 한번 해준 적 없었다는 거 보면, 미적 감각도 제로인 놈이란 걸 알 수 있지.

명선의 한쪽 손이 재강의 다리 뒤쪽을 훑고 올라가 엉덩이를 꽉 쥐었다 놓고 어루만졌다.

그러니까 너는, 얼굴도 별 볼 일 없고 감각도 없고 의리도 없고 키도 나보다 작은놈이랑 연애를 했던 거지.

명선이 재강의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잡고 살짝 끌어내렸다.

몸은 분명히 나보다 별로였을 거고.

명선은 단단히 발기한 재강의 성기를 입 안 깊숙이 넣었다.

빠는 건 나보다 엄청 별로였을걸?

명선이 고개를 앞뒤로 열심히 움직이며 힐끗 위쪽을 쳐다봤다.

재강은 명선의 머리를 붙잡은 채 고개를 조금 쳐들고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명선은 재강의 티셔츠 아래로 손을 넣어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의 탄탄한 배를 어루만졌다.

입 안에 가득 찬 재강의 성기는 뜨겁고 팽팽했다. 그 끝이 목구멍을 자극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명선은 움찔거리는 재강의 반응이 좋아 계속해서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하아, 어때?”

명선이 입을 떼고 헐떡이며 재강을 올려다봤다.

“내가 더 잘 빨지?”

재강은 말없이 씨근거리며 명선을 내려다봤다.

명선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재강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였다.

“……아니.”

낮게 말한 재강이 명선의 머리를 놓고 옷을 추스르며 현관 쪽으로 갔다.

명선도 얼른 일어나 바지를 대충 끌어 올리면서 재강의 뒤를 따랐다.

또 거짓말.

내가 빨아 주는 게 걔보다 별로였으면 네가 이 정도까지 넘어왔겠냐.

몸은 거짓말을 못 해. 너도 그 정도는 알잖아.

집안에 들어간 재강은 침대 옆에 서서 옷을 벗고 있었다.

명선은 재강의 뒤로 가며 빠르게 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티셔츠를 벗는 재강의 뒤에 서자마자 명선은 그 허리를 꼭 안으면서 맨 등을 세게 핥았다.

재강이 작게 소리를 삼키며 몸을 움츠렸다. 땀이 배어난 재강의 등에선 짭짤한 맛이 났다.

“내가 더 잘 빨잖아.”

명선은 재강의 등에 입술을 바짝 붙인 채 속삭이고 다시 혀를 넓게 펼쳐 핥았다.

재강이 자신의 허리를 안은 명선의 손을 꽉 붙잡았다. 둘은 그 상태로 잠시 비틀거렸다.

명선은 재강의 등을 여러 차례 핥고, 등과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내가 더 잘해.”

명선은 재강의 뒤통수에 얼굴을 묻고 이리저리 비비다 다시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명선의 손안에서 재강의 가슴이 불끈거렸다.

재강은 숨을 헉헉 내쉬며 몸 위에서 옮겨 다니는 명선의 손목만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곧 재강이 머리를 젖혀 명선의 어깨에 기댔다. 재강의 목을 열심히 빨아대던 명선의 입술이 재강의 뺨 쪽으로 갔다.

명선이 재강의 턱을 붙잡아 자기 쪽으로 더 돌리려는 순간 재강이 그 손을 떼어내고 물러났다.

“엎드려.”

재강이 베개 밑에서 콘돔을 꺼내며 침대 쪽을 턱짓했다.

명선은 얼른 침대 위로 올라가 엎드려서 재강을 올려다봤다.

“네 몸 보면서 하고 싶은데.”

“엎드리라고.”

콘돔을 낀 재강은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명선의 머리를 잡아 침대에 처박듯 하고는 뒤쪽으로 왔다.

엉덩이만 쳐든 채 침대에 뺨을 대고 있는 명선의 뒤에서 재강은 그 엉덩이를 양손으로 철썩 때렸다가 꽉 잡고 양옆으로 벌리더니 항문 위로 침을 탁 뱉었다.

명선은 눈을 감았다.

재강이 침으로 질척한 그 부분을 손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위아래로 문지르다 구멍 안으로 손가락이 조금씩 들어왔다 나가기도 했다.

아 씨, 기분 좋은데…….

명선은 위쪽으로 양손을 쭉 뻗어 베개를 움켜쥐었다. 명선의 등이 부르르 떨다 움찔거렸다.

잠시 후 재강의 성기가 뒤에 와 닿았다. 재강은 성기 끝을 대고 문지르다 조금씩 밀어 넣었다.

“아, 아아…….”

명선이 어깨를 움츠리고 작게 신음했다.

재강은 명선의 허리를 눌러 납작 엎드리게 하며 명선의 엉덩이에 거의 올라타듯 했다.

몸의 겉과 안이 모두 짓눌리면서 강렬한 쾌감이 비집고 올라왔다.

“아흑, 씨발, 으흑…….”

명선은 허리를 휘어 엉덩이만 살짝 쳐들었다.

재강의 손이 명선의 등 윗부분을 누르고 체중을 실었다. 재강은 그렇게 명선의 엉덩이에 올라탄 채 말 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대가 위아래로 들썩들썩 움직이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났다.

명선은 눈을 꼭 감고 베개를 쥐어뜯어 대다가 한쪽 손을 내려 재강의 무릎을 붙잡았다. 뜨겁고 미끈거리는 재강의 무릎과 종아리를 정신없이 더듬어댔다.

나만큼 잘 박는 것 같은데…… 아니, 나보다 잘 박는 것 같아.

나는 잘 박히고, 너는 잘 박고. 환상의 커플이네, 진짜.

재강의 손이 명선의 등을 쓸어 올라와 목덜미와 머리카락을 차례로 그러쥐었다 놓았다.

명선은 재강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놓자마자 그 손을 잡고 끌어당겨 검지와 중지를 입 안에 넣었다.

재강의 손가락 역시 짭짤한 맛과 함께 콘돔 냄새가 났다.

언제나 명선을 흥분시키는, 고무와 윤활유 냄새.

명선은 재강의 손가락을 입 안에서 혀로 이리저리 감싸며 빨았다. 재강은 손을 빼내지 않고 명선이 마음껏 빨도록 그대로 두었다.

뒤에서 규칙적으로 들어왔다 나가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지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명선이 슬쩍 보니 재강은 자신의 손가락을 빠는 명선의 입을 뚫어지게 보는 채였다.

아…… 딱 지금이 키스할 타이밍인데. 아직도 망설이는 거야?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바보 같은 놈.

명선은 천천히 허리를 돌려 재강의 성기를 자극했다. 재강이 그쪽을 내려다보며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그러다 명선은 엉덩이를 위로 쳐올렸다. 찰싹찰싹 소리를 내며 명선의 엉덩이가 재강의 몸에 부딪히길 반복했다.

봐봐, 죽겠지. 네 전 애인보다 내가 훨씬 더 잘하지? 안 그래?

명선이 그렇게 엉덩이를 쳐올리는 동안 그걸 바라보던 재강이 곧 양손으로 명선의 엉덩이를 꽉 움켜잡았다.

재강은 명선의 엉덩이를 양옆으로 벌렸다가 오므리고 다시 꽉 쥐었다가 놓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천천히 허리를 움직여 명선의 안으로 성기를 박아 넣었다.

“아, 흐윽, 야, 내가 더 잘 받지…… 그치……?”

“…….”

“빠는, 것도, 하아, 내가 최고잖아…….”

명선이 시트를 쥔 채 신음하는 동안 재강은 아무 말 없이 씨근대기만 했다.

* * *

무아지경 속에 사정한 명선은 엎드린 그대로 한참 숨을 골랐다.

나가떨어지듯 옆에 벌러덩 누운 재강의 땀범벅인 옆얼굴을 보며 잠에 빠져들던 명선은 침대가 흔들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재강이 자신의 몸을 넘어 침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 가…….”

명선이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손을 휘저었지만 재강의 몸은 그 손에 닿지 않았다.

재강은 말없이 비척대며 욕실 쪽으로 갔다.

욕실에 노란불이 켜지고 문이 닫힌 후 샤워기 물줄기 소리가 났다.

곧 명선이 일어나 재강과 마찬가지로 비척거리며 욕실로 갔다.

명선이 안으로 들어가자 샤워기 아래 서 있던 재강이 힐끗 이쪽을 쳐다봤다.

“같이 하자, 숯불. 아, 존나 더워.”

명선은 땀과 정액 범벅인 몸을 문지르며 재강의 곁으로 갔다.

재강이 살짝 물러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둘은 좁은 공간에서 몸 이곳저곳을 스치고 거치적거리며 말없이 씻었다.

샤워가 거의 끝나갈 때쯤 명선이 재강의 성기를 가볍게 움켜잡았다가 그 몸을 확 끌어안았다. 둘은 뒤엉켜서 비틀대며 욕실 벽에 부딪혔다.

벽에 기대선 재강은 명선을 밀쳐내지 않고 오히려 명선의 엉덩이를 잡고 어루만졌다.

명선은 재강의 젖은 가슴과 배에 자신의 가슴과 배를 밀착시키고 느릿느릿 문지르며 그 감촉을 한껏 느꼈다.

“네가 이렇게 만져 주는 게 너무 좋아.”

명선이 재강의 귀에 머리를 대고 비비며 낮게 말했다.

재강의 크고 센 손은 명선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꽉 움켜쥐었다가, 가볍게 흔들기도 했다.

물에 젖은 명선의 엉덩이는 한껏 탱글탱글하고 촉촉할 터였다.

“너 내 엉덩이 진짜 좋아하지…….”

명선이 속삭였다. 재강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곧 명선이 뒤로 돌아서 재강의 성기에 자신의 엉덩이를 대고 천천히 문질렀다.

바짝 발기한 재강의 것을 엉덩이골 사이에 끼우고 위아래로 비비고 양옆으로 흔들어대기도 하고 느릿느릿 원을 그리듯 하기도 했다.

재강은 한동안 가만히 서서 명선의 엉덩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선은 그렇게 열심히 엉덩이를 움직여 대며 어깨 너머로 재강의 들썩이는 가슴을 응시했다.

그리고 재강의 것만큼이나 바짝 선 자신의 성기를 문질렀다.

곧 재강의 양손이 명선의 엉덩이를 감싸 쥐었다가 골반과 허리까지 쓸어 올라왔다. 명선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재강은 명선의 목덜미를 꽉 잡더니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벽에 뺨을 댄 채 붙어선 명선의 뒤에서 재강이 무릎을 꿇었다.

“아, 아하아…….”

명선이 등을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신음했다.

명선의 엉덩이를 양쪽으로 한껏 벌린 재강이 그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 혀를 놀리고 있었다.

“흐윽…….”

명선은 잔뜩 찡그린 채 몸을 뒤틀면서도 허리를 최대한 휘어 엉덩이를 내밀었다.

물이 줄줄 흐르는 타일 바닥 위에서 명선의 발가락이 꼼질거렸다.

재강은 명선의 뒤를 혀로 핥고, 쭉쭉 빨고, 꼿꼿하게 세운 혀를 밀어 넣기도 했다.

“어훅, 씨…….”

앞만 빨려 봤지 뒤는 빨려 본 적 없었는데, 이것도 만만치 않게 좋잖아.

명선은 벽에 이마를 대고 헐떡댔다.

그 입놀림과 더불어 재강의 입 주위로 짧게 난 수염이 피부에 닿아 느껴질 때마다 몸서리가 쳐지도록 좋았다.

재강은 항문만이 아니라 명선의 회음부와 음낭, 엉덩이 이곳저곳도 쪽쪽 빨고 핥았다.

명선은 간신히 숨을 몰아쉬다가 뒤로 손을 뻗어 재강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 귀와 뺨을 더듬고, 목덜미의 짧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아, 존나 좋아, 진짜…….”

명선의 뒤꿈치가 부르르 떨며 바닥에서 떨어졌다 붙기를 반복했다. 발목부터 종아리와 무릎, 허벅지까지, 경련하듯 바들바들 떨렸다.

“야, 나…… 딸쳐도 돼? 갈, 때까지? 흐읍…….”

명선이 벽에 대고 쉰 목소리로 물었다.

재강은 말없이 앞으로 손을 쓸어 올리더니 명선의 성기를 쥐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명선은 곧장 양손을 위로 쳐들어 벽을 잡은 채 거친 숨을 뱉어냈다.

세상이 모두 사라지고 재강의 입과 손, 그리고 자신만 남아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앞과 뒤에서 자극하는 그 부분만 남고 모두 사라진 것만 같았다.

명선은 스스로 입을 틀어막고 거의 우는 소리를 내며 사정했다.

벽으로 튄 정액이 주르르 흘러내려 곧장 물에 쓸려갔다.

명선이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고르는 동안 일어선 재강은 명선의 엉덩이를 가볍게 찰싹 때리고 살짝 쥐었다가 놓았다.

아. 저게, 되게 좋단 말이지. 저 행동이.

명선이 스르르 눈을 떴다.

애인한테 하던 행동이었겠지, 분명히.

재강이 몸을 마저 헹구고 먼저 나갈 때까지 명선은 바닥으로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그대로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뒤에 와 닿았던 재강의 얼굴, 그 촉감과 숨과 온기를 다시 떠올릴 때마다 온몸이 전율하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처음으로 내 몸에 입을 댔네.

저 새침한 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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