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4. 어떤 사람이에요
“명선이, 이따 갈 때 주방 냉장고에서 보따리 꺼내 가. 반찬이랑 좀 싸 놨어.”
양자가 카운터를 지나다 문득 다가와 말했다.
“어? 아, 진짜? 엄마, 안 그래도 되는데.”
“너 어제 집에 들렀다 갔지? 또 술만 가져가고. 이것아.”
양자가 명선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사람이 밥을 먹고 살아야지, 술만 먹고 사니? 그 집 반찬만 자꾸 축내고.”
“축내긴, 그냥 같이 먹는 거지.”
“이것도 갖고 있어.”
양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카운터 뒤쪽으로 쑤셔 넣듯 내밀었다.
봉투 안엔 오만 원짜리 지폐가 몇 장 들어 있었다.
“마음 같아선 월세라도 줘야 되나 싶은데 재강 씨가 받을 것 같진 않고, 음식이랑 필요한 거 있으면 네가 알아서 사.”
“주시면 나야 고맙게 받지요.”
명선이 씨익 웃으며 봉투를 주머니에 넣었다.
양자는 그런 명선을 물끄러미 보다 짧게 한숨을 쉬었다.
“대체 멀쩡한 자기 집 놔두고 왜 남의 집에 가서 그렇게 뻗대는지, 원.”
“형이랑 같이 있는 게 좋으니까 그렇지. 출퇴근 같이하는 것도 재밌고. 내가 형 때문에 여길 계속 나오게 된다니까.”
“에휴.”
양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숯불의 소중함을 엄마랑 아빠한테도 계속 각인시켜놔야 돼.
숯불이 이 가든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명선은 빙그레 웃으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 * *
대용용
[너무 개같다 써니,,,,,,,]
[남의집에서 혼자 뭐하는 거라니]
써니
[좀있으면 퇴근할거야]
[냄새가 나 킁킁]
대용용
[사우나냄새를풍기며]
[그가온다]
[주인님이]
써니
[멍멍]
[주인니뮤ㅠㅠㅠㅠ]
대용용
[오면 너도 그때 자는거야?이렇게 안자고 기다리다가?]
써니
[ㅋㅋ]
[원래는 걔가너무 피곤할것 같아서 안고 곱게 잠만 자려고했는데]
[와서 눈마주치면 또 불꽃이 팍 일더라구]
[한판하고 자]
대용용
[그사람 체력도 참]
[놀라운 수준이구나,,,,,]
써니
[나도 피곤해할까봐 걱정은 좀 했는데]
[며칠 이러니까 익숙해진듯?]
대용용
[노가다근육이 정말 실속있는 근육이었나]
평상에 앉아 키득대던 명선은 아래쪽에서 대문 여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반짝 들었다.
써니
[어 왓다]
[대용 안녕]
대용용
[써니?????????]
명선은 얼른 핸드폰을 끄고 계단 쪽을 바라봤다. 자전거를 들이고 자물쇠를 채우는 소리에 이어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 이때가 진짜 좋다니까.
명선은 그대로 앉아 궁둥이만 들썩였다. 얼굴 가득 기대감이 차올랐다.
계단 위로 재강의 머리가 나타나자 명선은 얼른 양팔을 쳐들고 흔들며 환호했다.
“주인님 오셨다! 주인님! 주인님!”
“야, 조용히 해.”
재강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피식 웃으며 계단을 마저 올라 평상 쪽으로 다가왔다.
저렇게 웃는 얼굴도 진짜 좋다니까.
명선은 재강이 평상 앞까지 오는 동안 앉아서 춤추며 수선을 떨다가 얼른 재강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다구.”
재강은 말없이 명선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었다.
명선은 재강의 탄탄한 배에 얼굴을 파묻고 이리저리 문지르며 숨을 들이마셨다.
사우나 청소를 마친 후 샤워하고 오는 재강에게선 늘 비누 냄새가 났다.
이렇게 가만히 내 머리 쓰다듬어 줄 때도 진짜 좋아.
꼭 특별한 사람한테 해주는 것 같잖아.
……그럼 이준원한테 이렇게 해줬으려나.
명선은 살짝 찡그렸다가 눈을 감으며 재강의 배에 귀를 바싹 붙였다.
“……사우나 오늘이 마지막인데.”
재강의 목소리에 명선이 눈을 뜨고 재강을 올려다봤다.
“응?”
“그만뒀다고. 이제 안 가.”
“어, 진짜?”
재강이 명선의 곁에 와 걸터앉자 명선은 재강에게 바싹 붙어 앉았다.
“잘됐네. 너도 피곤하긴 했구나. 어차피 나도 있으니까 잠도 잘 자고.”
“……응.”
재강이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선은 그 옆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너 사실은 나랑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어서 그만둔 거지?”
재강이 그대로 눈만 깜박이다 고개를 돌려 명선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니거든.”
명선은 계속 웃으며 재강의 가슴을 만지작댔다.
“뻥치지 말고.”
“아니라고.”
“자신을 속이지 마.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재강이 한숨을 쉬었다.
“됐다. 그냥 네 맘대로 생각해, 네 맘대로.”
명선이 혀를 찼다.
“사람이 빈말도 할 줄을 모르고, 참. 이렇게 꽉꽉 막혀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시려고.”
“너보다 사회생활 더 많이 했어.”
“자랑이시네요, 빈말하는 스킬 하나 못 키우신 분이.”
재강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너랑 있으면 대체 한숨을 몇 번을 쉬는지 모르겠다.”
“늙어서 그런 거야. 뭔 내 탓을 해.”
“너랑 나랑 세 살 차이야.”
“웬일이야. 그것밖에 안 된다고? 나는 한 서른 살 차이 나는 줄 알았네, 하도 꼰대같이 굴어서.”
“네가 워낙에 애 같아서 내가 훨씬 더 어른으로 느껴질 순 있겠다.”
“형아, 늙은 게 져아여? 난 잘 모루겠쪄.”
명선이 재강의 엄지를 가져다 쳡쳡대며 빨기 시작했다.
“씨발, 저리 안 가?”
재강이 손을 빼자 명선은 다시 그 손을 꼭 붙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형아, 난 네 손가락 빠는 게 좋은데, 왜.”
“…….”
명선은 재강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재강의 손가락을 하나씩 하나씩 입 안에 깊숙이 넣었다 뺐다.
재강은 잡힌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이긴 했으나 빼내진 않고 그대로 명선의 입을 바라봤다.
명선은 최대한 유혹하는 몸짓으로, 혀를 길게 빼 재강의 손가락을 핥아 올리고 다시 재강의 엄지를 입에 넣어 부드럽게 빨았다.
곧 재강이 명선의 뺨을 잡았다가 천천히 뒤로 밀었다.
얼굴이 뒤로 밀리며 명선의 입술이 재강의 엄지손가락을 주르르 훑고, 뽁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명선이 다시 재강의 엄지를 답삭 물자, 재강은 명선의 뒤통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명선은 입을 벌린 채 살짝 할딱이며 재강의 엄지를 놓아주었다.
젖은 엄지손가락으로 명선의 입술을 꾹 누르며 쓸던 재강은 명선이 손을 놓아주자 나머지 손가락으로 명선의 뺨을 감싸 쥐었다.
재강은 명선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잡은 채 입술을 응시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재강의 입술이 와 닿는 순간 명선은 눈을 감았다.
둘은 고개를 느릿느릿 움직이며 서로의 입술과 혀를 빨았다.
“오늘은 너한테…….”
입술이 살짝 떨어진 틈에 명선이 속삭였다.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는데.”
“…….”
재강은 명선의 입술을 내려다보다 눈만 들어 시선을 맞췄다. 명선이 눈짓으로 집 쪽을 가리켰다.
둘은 곧 일어서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명선은 티셔츠를 훌렁 벗으며 침대 옆으로 가 재강을 마주 보고 섰다.
명선과 마찬가지로 티셔츠를 벗으며 뒤를 따랐던 재강은 명선이 히히 웃자 흠칫하며 멈춰 섰다.
“뭔데?”
명선은 바지를 살짝 끌어 내렸다가 뒤돌아 재강에게 엉덩이를 내밀면서 완전히 내렸다.
“…….”
재강이 티셔츠를 쥐고 선 채 명선의 엉덩이를 내려다봤다.
명선은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리고 재강을 바라보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작스트랩 처음 보지? 이런 거 안 입어 봤지?”
설마 이준원이 이런 걸 입고 보여줬을 리가 없고.
“……자…… 스트랙?”
역시 없군.
“작스트랩.”
“…….”
“이런 모양의 속옷이야.”
재강은 멍하니 명선의 엉덩이만 내려다봤다.
“만져 봐. 너를 위해서 입은 거야.”
명선이 살랑대던 걸 멈추고 재강 쪽으로 엉덩이를 살짝 더 내밀었다.
재강이 만지작대던 티셔츠를 바닥에 던지고 명선의 엉덩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명선의 허리 위로는 굵직한 흰색 밴드가 가로지르고, 그보다 가느다란 검은 밴드가 각 엉덩이의 아래쪽을 받치는 채였다.
그 거꾸로 된 삼각형의 밴드 사이에서 명선의 엉덩이는 유난히 더 탱탱하고 볼록하게 강조되어 보일 터였다.
“평소 내 취향대로 빨간색이나 좀 화려한 색이 들어간 걸 고르려다가, 아무래도 너는…….”
엉덩이를 잔뜩 내밀고 고개를 숙인 채 주절대던 명선은 뒤에 재강의 손이 와 닿자 문득 말을 멈췄다.
재강의 뜨거운 손이 명선의 드러난 엉덩이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다가 허리 쪽 밴드로 갔다.
명선은 침대를 내려다보며 침을 삼켰다.
“……너는 이런 거 처음이니까.”
재강의 손가락이 밴드 아래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서, 좀 기본적인 색부터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더라고.”
재강의 손가락에 당겨졌던 밴드가 다시 돌아와 피부를 가볍게 때리며 찰싹, 하는 소리가 작게 났다.
명선이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봤다. 재강은 명선의 엉덩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섹시하지?”
“…….”
재강이 눈만 들어 명선의 눈을 봤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명선의 입술과 어깨, 등을 지나 허리와 엉덩이까지.
당연히 섹시하겠지. 가뜩이나 내 엉덩이에 미치는데.
명선은 재강의 눈동자가 자신의 몸을 훑고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갑자기 갈증이 나면서, 몸에서 활활 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재강은 다시 명선의 엉덩이를 가만가만 어루만지다 골반을 잡고 천천히 몸을 돌려세웠다.
명선은 재강의 손에 이끌려 느릿느릿 돌아서 그를 마주 보고 섰다.
재강은 반쯤 발기한 명선의 성기를 감싼, 작스트랩의 앞쪽 부분을 보고 다시 밴드 부분을 쓸다가 명선의 몸을 천천히 돌렸다.
명선은 재강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시 몸을 돌려 그를 등지고 섰다.
재강의 손이 명선의 엉덩이를 가득 감싸 쥐었다. 손가락이 밴드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볍게 쓸고 지나가기도 했다.
재강의 손은 명선의 엉덩이를 아주 부드럽게, 녹이기라도 하듯 어루만지며 명선을 감질나게 했다.
명선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명선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박아 줘.”
명선의 말이 끝나자마자 재강은 명선의 엉덩이를 콱 움켜잡았다. 너무 세게 잡아서 명선이 흠칫 놀랄 정도였다.
명선은 재강에게 밀려 침대로 풀썩 엎어졌다.
재강은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내리고 명선의 위로 올라와 그의 엉덩이 사이에 이미 바짝 선 성기를 대고 문질렀다.
명선은 침대에 뺨을 대고 시트를 그러쥔 채 헐떡였다. 재강이 밀어붙일 때마다 명선의 성기도 침대에 압박되고 문질러졌다.
뒤에서 재강이 씨근대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재강은 잠시 몸을 뗐다가 양손으로 명선의 엉덩이를 쥐어짜듯 하더니 골반을 잡고 바짝 들어 올렸다.
“아하아……!”
뒤에 재강의 입이 와 닿자 명선은 가쁘게 신음하며 시트에 얼굴을 묻었다.
재강은 명선의 엉덩이 사이를 세게 빨고 핥고 혀로 애무했다. 춥춥, 하고 빠는 소리 사이사이로 재강이 헐떡이는 소리가 크게 났다.
“아으…….”
명선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등을 떨어댔다. 세운 발도 파들파들 떨렸다.
재강의 짧은 수염이 피부에 문질러질 때마다, 그 느낌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눈을 꼭 감고 부들대는 와중에도 명선은 문득 떠오르는 광경을 멀리 치워 버리기 위해 애썼다.
재강이 이준원의 뒤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광경.
상상 속 이준원의 얼굴은 김 서린 거울에 비친 것처럼 흐릿했다.
한동안 명선의 뒤를 파고들고 엉덩이 이곳저곳도 빨아대던 재강은 무릎에 걸쳐져 있던 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명선은 무아지경이던 상황에도 정신을 붙잡고서, 얼른 베개 밑에 있던 콘돔을 끄집어내 포장을 뜯어 재강에게 건넸다.
재강은 명선의 웅크린 몸 위로 엎드린 채 등에 입을 맞추며 콘돔을 끼웠다.
재강의 입술과 숨이 닿을 때마다 명선의 등이 부르르 떨렸다.
재강은 콘돔을 끼우자마자 안으로 쑥 들어왔다. 명선은 입을 크게 벌린 채, 순간 터져 나오는 소리를 삼키며 앞으로 퍽 밀쳐졌다.
재강은 밀어낸 만큼 무릎걸음으로 더 바짝 다가왔다.
명선은 거의 흐느끼듯 신음하며 시트만 쥐어짜다 뒤로 손을 돌려 재강의 허벅지를 붙잡았다. 너무 좋아서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재강은 얼마간 명선의 뒤에 거칠게 몸을 부딪쳐댔다. 철썩, 철썩, 하는 소리가 후끈한 방 안을 꽉 채웠다.
명선은 점점 더 벽 가까이 밀쳐지고, 재강은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땀이 흥건한 명선의 등으로 손을 쓸어 올린 재강이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가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재강이 당기자 명선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명선의 허리 역시 움푹하게 패이듯 하며 둥글게 휘었다.
명선은 몸이 반대로 접히듯 한 채 할딱거리며 재강이 미는 대로 덜컹덜컹 흔들렸다.
아…… 진짜로.
이 상태에서 죽어 버려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야.
재강이 머리를 놓아주고 다시 등으로 손을 쓸어내리자 스르르 고개를 숙이던 명선의 눈앞에서 갑자기 불이 번쩍였다.
“아오!”
“씨발!”
명선이 얼굴을 감싸 쥐고 웅크리는 동시에 뒤에서 재강도 소리를 지르며 성기를 쑥 뺐다.
“아우, 씨…….”
명선이 손을 내리며 고개를 들자 옆에 와 얼굴을 들여다보는 재강이 보였다.
눈을 크게 뜨는 재강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만 같았다.
명선은 코가 얼얼한 와중에, 멍한 기분으로 그 얼굴을 바라봤다.
“씨발, 너 코…….”
재강은 양손으로 명선의 얼굴을 잡으려다 멈추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침대에서 훌쩍 뛰어 내려갔다.
명선은 손에 묻은 피를 내려다봤다가 방금 전 얼굴을 부딪쳤던 벽을 쳐다봤다. 벽에도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헐.”
시트 위로 피가 톡 떨어졌다.
코와 입 주위가 순식간에 흥건하게 느껴져 명선은 다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젖혔다.
“젖히지 마.”
어느새 다가온 재강이 명선의 손을 치우고 뒤통수를 잡아 조금 숙이게 만들면서 입 쪽에 휴지 뭉치를 조심스레 갖다 댔다.
잔뜩 풀어내 뭉쳐져서 마치 구름 같던 두루마리 휴지 뭉치는 명선의 피를 금세 빨아들이며 숨이 죽었다.
재강은 그 상태로 명선의 코를 살펴봤다.
“부러진 것 같진 않은데. 아파?”
재강이 명선의 콧대를 살살 만지작거렸다.
“별로.”
재강이 휴지를 명선의 코 쪽으로 올리고, 콧대를 잡고 꽉 눌렀다.
명선은 눈만 내놓고 위로 치뜬 채 재강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얼굴이 어쩐지 여전히, 창백하게 질린 듯 보였다.
“놀랬냐?”
명선이 코맹맹이 소리로 킥 웃었다가 물었다. 재강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럼 안 놀라? 웃음이 나오냐?”
“코피 좀 난 걸 가지고.”
“코피 우습게 보지 마. 안 멈추면 병원 가야 돼.”
“왕년에 코피 좀 터뜨려 보셨나 봐?”
“…….”
재강은 찌푸리고 명선의 코를 감싸 잡은 채 그의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다쳤다고 걱정하는 것 좀 봐라.
눈깔 뽑아버린다고 이빨 털 땐 언제고.
……와. 우리가 그러던 때도 있었네.
명선이 재강의 허리를 안으며 배에 머리를 기댔다.
재강의 몸은 여전히 뜨겁고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지?”
명선이 눈을 감은 채 재강의 등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벽 쪽으로 너무 가까이 갔었나 봐. 박자가 좀…… 내가 미는 순간에 네 얼굴이 벽 앞에 있었던 거고. 씨발…….”
“흠. 둘 다 좀 흥분하긴 했지.”
명선이 재강의 성기를 더듬었다.
“죽었네.”
“넌 이런 상황에서 그게 문제야?”
“별거 아니야, 숯불. 릴랙스 해. 그냥 코피라고. 내 잘생긴 코가 부러졌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안 부러졌잖아. 아직도 계속 잘생긴 상태야. 걱정 마.”
재강이 휴지를 떼고 명선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명선이 입술을 쭉 내밀고 쭙쭙대는 소리를 냈다.
재강은 그런 명선을 무시하고 코와 입 주변의 피를 휴지로 닦아냈다.
“아직 나는 것 같은데.”
“대충 막아 놓고 계속 섹스나 하자.”
명선이 재강의 배를 더듬댔다.
재강은 한숨을 쉬며 명선의 손을 잡더니 휴지를 스스로 코에 대고 있게 하고 욕실로 갔다.
명선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휴지를 코에 댔다 뗐다 하며 들여다봤다.
코가 아직도 좀 얼얼하긴 했지만 많이 아프진 않았다. 뼈에도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수건을 들고 욕실에서 나온 재강이 명선의 코와 입 주변을 닦아 주었다.
찬물에 적신 수건은 시원했다.
명선은 턱을 쳐들고 앉은 채 재강의 얼굴을 바라봤다.
재강은 명선의 콧구멍을 다시 살피더니 수건으로 콧대를 감싸고 꼭 눌렀다.
“꽤 다정한 구석이 있으시네.”
입이 수건에 덮여, 명선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보기와 달리 쫄보인 것 같기도 하고.”
“…….”
“너 예전에 내 눈깔 뽑아버린다고 협박하던 거 기억하냐?”
“그게 이거랑 같아? 너랑 섹스하던 상대가 갑자기 피를 흘린다고 생각해 봐.”
“아, 네가 패서 피 나는 건 괜찮고, 박다가 피 나면 걱정되고, 그런 거야?”
“닥쳐라, 좀.”
“앞으로 섹스할 때 자해라도 해야 하나, 이 다정함을 좀 누려보려면.”
재강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하얗게 질린 듯 보였던 얼굴이 다시 제 모습을 찾고 있었다.
명선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재강의 옆얼굴을 쳐다보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코와 입을 덮은 젖은 수건의 묵직함과 코를 누르는 압박감이 기분 좋았다.
자신의 뒤통수를 감싸 쥔 재강의 손, 그 손가락들이 무심히 움직이며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는 것도 좋았다.
진짜 다음에도 벽에 얼굴 처박아 볼까.
관심 독차지하는 것 같고 되게 좋네.
슬며시 웃음을 삼키던 명선은 재강이 수건을 떼어내자 눈을 떴다.
재강은 다시 명선의 코를 살피고 수건으로 닦아냈다.
“좀 멎는 것 같긴 한데.”
재강이 한쪽에 널브러져 있던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와 명선에게 건넸다.
명선이 휴지를 뜯어 말아서 양쪽 코에 꽂아 넣었다.
“섹스하다 쌍코피가 터지다니. 내 인생 토픽감이다.”
명선이 코 막힌 소리로 키득대며 침대 안쪽으로 물러나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재강은 허리에 손을 짚고 선 채 그런 명선을 바라봤다. 명선이 자기 옆자리를 팡팡 두들겼다.
“와서 잠깐 앉아. 노인네 얼굴 그만하고.”
재강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명선의 곁에 와 앉았다.
“혹시 다시 피 나는 것 같으면 바로 말해. 어지럽거나.”
재강이 명선의 코에 꽂힌 휴지를 살피며 낮게 말했다.
“아이고, 릴랙스 하시라고요. 이제 아프지도 않아. 별거 아니야.”
“…….”
재강은 명선의 코와 입 주변을 훑어보다 고개를 돌리고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재강이 숨을 길게 내쉬며 벽에 머리를 기대자 명선은 그 옆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걱정됐어?”
“너 같으면 걱정이 안 되겠냐고. 생각 좀 하고 말해.”
“생소하니까 그러지.”
“별게 다 생소하네.”
“넌 어떤 애인이었냐?”
멈칫했던 재강이 고개를 돌려 명선을 쳐다봤다.
“뭐?”
명선은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잠시 재강과 마주 봤다. 가볍게 긴장이 되는 듯했다.
“너는 이준원한테, 어떤 사람이냐고.”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
“갑자기 피를 거하게 봐서 그런가, 남의 인생사도 좀 궁금해지고 그러네.”
“…….”
재강은 눈만 깜박이며 명선의 얼굴을 훑어보다 스르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땀에 젖은 채인 재강의 뒤통수가 벽을 문지르며 작게 사그락대는 소리가 났다.
재강이 허공을 바라보는 동안 명선은 재강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필요한…….”
“…….”
“사람이었으려나. 모르겠다.”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게 아니고 ‘필요한’ 사람이라고?
걔한테서 사랑받는 느낌은 받아 본 적 없다는 건가?
“그럼 걘 너한테 어떤 존재인데?”
재강은 미간을 한 번 찌푸렸다가 시선을 살짝 내리고 눈을 느릿느릿 깜박였다.
“걔는…….”
“…….”
“걔가 사람을 죽이고 나한테 대신 감옥에 가라고 한다면 난 갈 거야.”
“…….”
“우리는 서로한테 그런 존재야.”
재강은 나직이 말하면서, 한쪽만 세운 무릎 위를 만지작대고 있었다.
명선은 재강의 그 손가락을 바라봤다. 피 얼룩들이 군데군데 희미하게 보였다.
“……그렇군.”
곧 명선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그대로구나.
지가 착취당하는 쪽이란 걸 알고는 있지만, 상관없다는 거지.
달도 따다 주고 별도 따다 주고.
그러다 지 몸이 다 작살나도 상관없다는 거지.
“넌 어땠는데?”
재강이 문득 물었다.
“……응?”
“넌 네 전 애인들한테 어떤 사람이었냐고.”
“…….”
“연애를 열 번 넘게 했다면서.”
아 씨, 그런 거짓말은 애초에 뭐 하러 해가지고, 젠장.
“아아, 나야 뭐, 늘 최고였지.”
명선은 켁 웃으며 콧구멍에서 휴지를 차례로 빼 들여다보고 침대 아래쪽으로 던졌다.
“다들 나를 어찌나 좋아하던지. 물론 내가 그만큼 잘해 줬으니까 그랬겠지만.”
너한테 진짜 잘해 줄 수 있다는 얘기야.
“헤어지고 나서도 하나같이 나를 못 잊어서 쩔쩔매더라고. 하긴, 나만 한 사람을 또 어떻게 만나. 내가 얼마나 잘해 주는데.”
나는 이준원처럼 맘대로 왔다 갔다 할 리도 없고 너한테 잘해 주는 데만 혈안이 돼 있을 거라고.
나한테 애인이 있었다면, 정말 그랬을 거야.
“……다 네가 찼어?”
“어…… 어, 뭐, 그런 셈이지?”
내가 차일 만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상대가 뭘 잘못해서 내가 차면 모를까.
나 같이 잘난 인간이 잘해 주기까지 하는데 누가 먼저 그 연애를 끝내고 싶어 했겠냐고.
“아, 맨 처음에 사귄 사람만 빼고. 그 고3 짜리 형. 대학 가서 쌩깠다던 사람 있잖아. 그때 한 번 차이고 그 이후는 다 내가 찼지.”
명선은 전에 대용의 경험을 빌려 와 거짓말을 늘어놨던 걸 마침 떠올리고 얼른 주워섬겼다.
재강은 여전히 무릎을 만지작대며 그 위에 시선을 둔 채였다.
“……왜 찼는데?”
“어, 뭐, 연애가 그렇지 뭐. 사귀다 헤어지고. 좋았다가도 안 좋아지고…… 다들 그러지 않나?”
……엄청 잘해 주다가 찼다는 게 뭔가 좀 앞뒤가 안 맞나?
씨, 지금 나도 뭐라고 떠드는지 모르겠네.
알게 뭐야, 사귀는 동안엔 잘해 줬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워낙에 잘난 몸이라 한 군데 정착하기가 힘들기도 하고. 세상이 당최 나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니까.”
명선은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고요한 집안에서 그 웃음소리가 유독 공허하게 울리는 것만 같았다.
재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선은 입술을 잘근대다 재강의 허벅지를 툭 쳤다.
“야, 그렇게 잘난 내가 네 몸에 빠져서 정착이란 걸 한 거야. 대단하지 않냐? 너는 진짜 네 몸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돼. 내 전 애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할 사람이 아마 너일걸? 내가 이 정도로 누구한테 달라붙어 본 적이 없어요. 걔들이 지금 내가 이러는 걸 보면…….”
명선은 재강이 턱을 잡자 말을 멈췄다.
재강이 명선의 턱을 살짝 쳐들고 코를 살피는 동안, 명선은 재강의 얼굴을 응시하며 마른 입술을 축였다.
“이제 완전히 멈췄나 보다.”
재강이 피범벅 된 수건을 들고 침대를 내려갔다.
명선은 욕실로 들어가는 재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찌푸린 채 머리를 문질렀다.
이준원 얘기는 괜히 물어봤나.
그래도 자꾸 이준원에 대한 것들이 궁금해지잖아. 아직도 그렇게 숭배하는지.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지.
근데 뭐? 그걸 알아서 뭘 하겠다는 건데?
……도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 * *
“그 사람은 너를 섹파로만 생각하는 게 맞긴 해?”
대용이 묻고 새우튀김을 바삭 베어 물었다.
명선은 연어 조각을 막 입에 넣으려다 말고 우뚝 멈춰 대용을 쳐다봤다.
“뭐? 왜? 왜 그런 걸 물어? 아닌 것 같아? 그쪽도 나한테 마음이 있어 보여? 어디서 그런 걸 느꼈는데? 어느 부분? 왜?”
대용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은 채 튀김을 씹었다.
“써니, 진정해.”
“아니, 어디서 그렇게 느꼈는지 말 좀 해보라고.”
“몰라, 그냥 전반적으로.”
“전반적으로 뭘? 왜? 어떻게?”
“너한테 꽤 잘해 주는 것처럼 들려서 그래.”
명선이 연어 조각을 덮밥 그릇에 던져 놓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치? 나 혼자만 삽질하는 건 아니지?”
“꼭 둘이 연애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학.”
명선이 키득대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사람을 위해 왁싱도 하고 작스도 입고, 잠도 안 자고 기다리고,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꼭 붙어서 밤이고 낮이고 쿵덕쿵덕. 그 사람도 네가 불평하니까 옥상에 그늘도 만들어 주고 그랬다며. 집 열쇠도 내주고, 볼일 보고 나면 꼬박꼬박 제시간에 와서 너랑 어울리고.”
“야, 그렇게 나열해 주니까 진짜 연인 사이 같잖앙.”
“그래. 그러니까 그 사람은 지금 어떤 마음인 채 이런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단 얘기야.”
“…….”
일단 나랑 하는 섹스를 좋아하는 건 확실한데.
그 외의 행동들은 단순히 인간적인 친절을 베푸는 건지 뭔지 모르겠네.
어쨌든 오래 같이 붙어 있어서 친분이 쌓이긴 했으니까, 딱 그만큼 잘해 주는 정도?
아님 아무 생각이 없는 건가?
그냥…… 이준원 없을 때 마음껏 섹스하고 꿀잠도 잘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는 정도?
“아닌가? 감정이 섞여서 이야기가 좀 왜곡됐나?”
대용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뭐?”
“나는 어쨌든 둘 사이의 일을 네 입을 통해서 들을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너는 그 일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으니까, 어느 정도는 네 입맛에 맞게 기억이 조작될 수도 있는 거고. 거짓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네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대용아…….”
명선이 어깨를 맥없이 늘어뜨렸다.
“나한테 희망을 좀 줘 봐. 그렇게 짓밟아야겠니.”
“글쎄, 그런 희망은 네가 알아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마는.”
“자기는 나를 너무 거칠게 키워.”
대용이 밥을 먹으며 쿡쿡 웃었다.
“그 사람이랑 이런 대화는 해봤어?”
“무슨 대화?”
“서로를 섹파로 생각하는 게 확실한 건지.”
“그냥…… 나는 늘 걔 몸만 칭송하고 걔는 이준원을 칭송하니까 대충 서로 합의는 됐다고 봐도 되겠지.”
“흠.”
“걔가 이준원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준원한테 별도 달도 따다 줄 놈이라니까?”
명선이 젓가락으로 밥그릇 안을 헤집었다.
“이준원이 그러라고 하면 살인죄 뒤집어쓰고 교도소도 가겠대. 진짜 미친 거 아니냐?”
“…….”
“그건 공중의 안녕을 위해서도 진짜 안 될 짓이지. 그러면 살인자가 멀쩡히 사회에서 돌아다니는 거잖아. 사랑 때문에 사회 질서를 헤쳐? 살인범이 한 번 죽였는데 두 번은 못 죽일 것 같냐? 그렇게 돌아다니다 또 누구 죽이면 어쩔 건데? 교도소에 있는 놈이 뭘 어쩔 거냐고. 그땐 어떻게 도울 거냐고.”
“논리가 이상한 쪽으로 튀는 것 같은데.”
“누구는 그런 사람 없을까 봐? 대용아, 너 내가 사람 죽이면 나 대신 교도소 갈래? 갈 거지?”
“내가 왜 가, 써니. 사회 질서는 어쩌고.”
“나를 아끼면 그 정도는 해야지. 난 갈 거야. 난 너 대신 갈 수 있어. 난 너를 아끼니까.”
“또 횡설수설하는군.”
명선은 괜스레 휴지로 입을 닦고 휴지 뭉치를 꼭꼭 움켜쥐었다.
“자기 대신 교도소에 가라고 하면 ‘아, 얘는 나를 이용해 먹기만 하는 놈이구나’ 딱 알아차리고 바로 차단해야지, 그런 놈인 걸 알면서도 왜 싸고돌아? 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거야? 비결이 뭐야? 어떻게 사로잡은 거야? 내가 훨씬 더 잘해 줄 수 있는데.”
“그냥 고백해 보는 건 어때?”
명선은 우뚝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있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릴.”
“언제까지 이렇게 요란스럽게 한탄만 하고 있을 건데? 그냥 질러 버리고 반응이라도 보는 게 낫지 않겠어? 네 성격에 계속 이러는 것도 너무 답답하고 힘들지 않아?”
“…….”
명선이 스르르 시선을 내렸다.
대용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새우튀김을 집어 들었다.
“하긴 뭐, 그것도 네가 알아서 할 문제이긴 하지.”
“근데…… 고백해 봤자잖아. 이준원을 그렇게 사랑하는데.”
명선이 머뭇머뭇 입을 뗐다.
대용은 새우튀김을 씹으며 명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우리 써니가, 자존심이 많이 죽으셨네? 원래 성격 같으면 당연히 뺏어올 수 있다고 큰소리쳤을 텐데. 한탄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꼬시느라 바빴을걸?”
명선은 말없이 식탁을 내려다보면서 젓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얘는 좀 달라. 어떻게 해도 안 될 게 보여서 그런가, 겁도 좀 나고.”
“와…….”
대용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살짝 젖혔다. 명선이 눈만 들어 대용을 쳐다봤다.
“너 그 사람 지이인짜 좋아하는구나.”
“…….”
명선이 다시 시선을 내렸다.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거야? 어쩌다 빠졌어?”
명선은 눈을 깜빡이며 얼마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어쩌다…… 는 모르겠고, 그냥 좋아. 같이 있으면 편하고.”
“흠.”
“진짜, 편해. 멋있는 척 안 해도 되고. 섹스할 때 날 완전히 놓아버린 건 걔가 처음이야. 전엔 섹시하고 멋있게 보이는 거 신경 쓰느라 절반은 좀 신경이 딴 데 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긴, 네가 탑질에 유난을 떨긴 했지.”
대용이 킥킥 웃다가 턱을 괴고는 명선을 가만히 바라봤다.
“써니의 인생 첫사랑인데 하필 다른 데 마음 있는 사람일 건 또 뭐야.”
“…….”
“그래도 자업자득이지. 섹파들한테 한 짓이 있는데.”
명선이 눈을 치떠 대용을 노려봤다.
“염 씨, 위로할 거야, 고소해할 거야. 하나만 해.”
대용이 킥킥 웃었다.
“눈 딱 감고 부딪쳐보든지, 계속 숨기고 겉으론 꽁냥대면서 뒤로는 피눈물 흘리든지, 결정은 네 몫이지 뭐. 내가 뭘 해주진 못 하는 거 알지? 내가 위로하려고 해봤자 그게 먹힐지도 모르겠고. 원래 이맘땐 남의 말이 잘 들리지도 않아.”
“…….”
“나는 그냥 네 한탄 들어 주는 거 정도만 할게. 적당한 선에서.”
“……알았어.”
명선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토요일에 승규 형 생파 오는 거 잊지 마라.”
윽. 까먹고 있었네.
명선이 멈칫했다가 스르르 시선을 피했다.
대용이 명선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승규 형이 네 생일에 얼마짜리 선물 줬는지 기억하지? 요새 네가 매장에 코빼기도 안 비쳐서 승규 형이 서운해하는 거 알지?”
“…….”
“못 오게 되면 네가 직접 승규 형한테 전화해서 말해야 되는 것도 알지?”
“…….”
명선은 말없이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형은 왜 하필 토요일에 생일 파티를 하고 난리야. 숯불이랑 같이 있기도 바빠 죽겠는데.
인간들이 생일 같은 게 뭐가 중요하다고 파티를 하고 난리냐고. 그냥 살면 되지.
“써니?”
대용이 대답을 요구하는 얼굴로 빤히 쳐다보자 명선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어. 갈 거야.”
숯불 데리고 가면 안 되나…….
안 되겠지.
진짜 지루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