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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1. 투정 부려요 (21/28)

4부-1. 투정 부려요

준원이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허둥대는 재강을 보며 명선은 비웃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긴 했지만 불쾌감과 불안감으로 몸이 짓눌려지는 기분이었다.

“……내일 보자.”

재강이 휙 돌아서는 순간 명선도 동시에 휙 몸을 돌려서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걸었다.

재강이 밀친 가슴팍과 벽에 부딪힌 등이 갑자기 지나치게 얼얼했다.

왜 사람을 치고 난리야. 말로 하지.

누가 진짜로 보겠대?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내 성격 뻔히 알면서 그런 식으로 막냐?

왜? 내가 이준원 코라도 부러뜨려 놓을까 봐?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인간을 건드리면 너는 당연히 나한테 그 두 배로 갚겠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그래도 누가 그런 거 겁나서 못 건드리냐?

내가 성격이 좋아서 참는 거야. 마음 같아선 코를 백 번도 더 부러뜨렸어. 당장 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

명선은 문득 주위를 둘러보고 서서히 걸음을 멈췄다. 주차한 곳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곳으로 가고 있었다.

명선은 가만히 숨을 고르다 주차한 쪽으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차에 올라타는 순간에야 손에 든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 씨…….”

안에는 아이스크림과 오이가 들어 있었다.

“아, 씨!”

명선은 괜히 허공에 소리를 지르고는 거칠게 시동을 걸었다.

재강의 동네를 차로 뱅글뱅글 돌다가 명선은 연락도 없이 대용의 집으로 갔다.

다행히 대용은 깨어 있었다.

“뭐야, 써니.”

티셔츠와 트렁크 차림의 대용이 문을 열었다.

“아이스크림 먹자.”

명선이 비닐봉지를 들어 보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갑자기 여기까지 와?”

식탁 앞에 선 명선 뒤로 대용이 다가왔다.

아이스크림은 좀 녹아 있었다. 명선은 축축한 아이스크림 통을 식탁에 놓고 숟가락 두 개를 가져와 앉았다.

“오이는 또 뭐야?”

대용이 얼떨결에 숟가락 하나를 받아들면서 봉지 안을 들여다봤다.

“아, 이거 해장에 좋아. 너도 해봐. 많이 마신 다음 날 아침에 그냥 우적우적 먹으면 돼.”

명선이 아이스크림 통 뚜껑을 열고 한 숟갈 크게 퍼먹었다.

“너 뭐 하냐…….”

대용은 숟가락을 쥔 채 찌푸리고 명선을 바라봤다.

“아, 너무 녹았네.”

명선이 뚜껑을 도로 덮고 숟가락을 내려놨다.

“집에 술 있어? 마실래? 없으면 같이 나가고.”

대용이 숟가락의 볼록한 부분으로 명선의 이마를 쳤다.

“아.”

“써니, 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친구 보고 싶어서 왔지. 오는 길에 먹을 것도 사왔구만.”

“됐고, 그 사람이 이제 섹파 그만하쟤? 그런 거야?”

명선이 하하, 소리 내 웃었다.

“그럴 리가 없지. 나 같은 사람이랑 섹스할 기회를 어떻게 차 버리겠냐?”

“…….”

“아직 섹파 맞아. 완전 잘 맞는 섹파야. 그냥 시간 나서 네 얼굴도 볼 겸 온 거지. 그래서, 집에 술 있어, 없어?”

명선이 식탁 표면에 손가락을 두들기며 대용을 쳐다봤다.

대용은 가만히 명선을 바라보는 채였다.

눈치 빠른 대용이니 명선이 재강과 무슨 일이 생겨 이런다는 사실, 그리고 거짓말로 빙빙 돌리고 있다는 사실도 물론 알 터였다.

그래도 명선은 이 화제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 일과 자신의 감정에 대해 지금은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혼자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까지도 대용이 알아 줬으면 했다.

대용이 곧 짧게 한숨을 쉬더니 숟가락을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요 앞에 새로 생긴 데 가자.”

대용이 바지를 입으며 말했다.

명선은 살짝 웃어 보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명선은 점심때가 훌쩍 지나서야 눈을 떴다. 대용은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어으…….”

입 안이 텁텁하고 목이 말랐다. 머리에선 어젯밤 곱창집에서 밴 냄새가 아직도 나는 듯했다.

명선은 간신히 입맛을 다시며 그대로 누운 채 텅 빈 집안을 둘러봤다.

최근, 잠에서 깼을 때 늘 보던 풍경은 재강의 집이었다.

재강의 냄새가 나고, 재강의 소리가 나는 집.

침대에서 같이 자게 된 후로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곁에 누운 재강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보고, 만지고, 질척댈 수 있어서.

“준원이가 왔어.”

어젯밤 일이 다시 떠오르자 명선은 찌푸리고 눈을 감았다.

왜 왔지?

이준원. 왜 왔어?

뭐 하는 거야? 왜 남의 집을 들락날락하면서 사람 기분을 이런 식으로 망쳐 놔?

그럼 언제 갈 건데? 언제까지 있을 건데? 나는 언제까지 숯불이랑 못 노는 건데?

너는 언제까지 숯불을 이렇게 괴롭힐 건데?

“…….”

명선은 스르르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봤다.

이준원이 또 떠나면 숯불이 힘들어할 텐데.

숯불이 힘들어지는 순간이 나한테는 기쁜 순간이 되는 거네.

근데 이준원이 떠났다고 해서 얘가 나랑 다시 놀려고 하긴 할까…….

나한텐 뭐든지 맘대로 해도 된다고 했던 전략을 또다시 공들여서 써야 하는 건가.

그게 다시 먹히기나 할까.

그래도 나는, 지금 보고 싶은데. 이준원이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거 말고. 지금.

“에휴, 씨…….”

명선이 양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옆으로 웅크렸다.

목이 타는 만큼이나, 재강이 보고 싶어 애가 탔다.

명선은 한참 동안 그렇게 웅크리고 있다가 비척비척 일어나 냉장고로 갔다.

생수병을 꺼내 식탁으로 온 명선의 눈에 오이가 들어왔다. 어젯밤 놓았던 자리 그대로, 봉지 밖으로 꼭지를 비죽 내민 채 놓여 있었다.

문득, 머리는 다 뻗치고 몸과 얼굴 여기저기 이불 자국이 난 채 앉아, 착한 소처럼 오이를 씹던 재강의 모습이 떠올랐다.

시간이 없어 빨리 나가야 했을 때 금세 씻어 자른 오이 스틱을 종이컵에 꽂아 건네주던 모습도.

아…… 어떡하지.

명선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서서 차가운 생수병을 만지작거렸다.

재강을 향한 그리움으로 몸이 다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계속 쪼그라들고 쪼그라들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게 되는 것 같은 기분.

야, 그냥…… 이준원은 버리고 나한테 오면 어때? 내가 훨씬 더 잘해 줄 수 있는데.

명선은 속으로 같은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재강을 보고 싶었지만,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보면 바로 화가 나거나 슬퍼질 것 같았다. 갑자기 저런 말을 내뱉을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명선은 망설이다 핸드폰을 켰다.

예상했던 대로 재강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명선은 재강의 전화번호를 내려다봤다.

나 지금 내 친구 집에 있는데, 데리러 와 줄래? 이번엔 대리비 받아도 돼. 여기로 와서 나랑 섹스하고 같이 출근하면 어때? 그리고 같이 너희 집으로 퇴근해서 이준원을 쫓아내 버리는 거야. 물러가라, 이준원! 숯불 인생에서 영원히 꺼져라!

어때? 그렇게 할래?

그렇게 해주지 않을래? 나랑 같이 있어 주지 않을래?

명선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끄고 의자에 앉았다.

좆됐네, 진짜.

내 인생 좆돼 버렸네.

명선은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다가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오늘 쉬면 안 될까?”

-잉? 왜?

“어제 대용이랑 좀 마셨는데 너무 힘드네. 미안.”

-으이구, 얼마나 마셨길래, 이것아. 너는…….

명선은 이어지는 양자의 핀잔을 멍하니 들었다.

엄마, 이준원 좀 사라지게 해달라고 대신 기도해 주면 안 될까? 엄마 기도발 좋잖아.

엄마의 주님은 그런 거 안 해주시려나?

안 되면 사탄한테 사주라도 하고 싶다, 정말.

* * *

하루 만에 본 재강이 너무 좋아서 명선은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리고 재강이 갑자기 더 무뚝뚝해진 것 같아 서운했다. 꼭 둘이 가까워지기 전 모습 같았다.

이준원 돌아왔다고 금세 저렇게 태도를 바꾸냐.

재강에게 매달리는 듯 보이지 않기 위해 97퍼센트의 남자를 만났다느니 뭐니 없던 얘기를 마구 지어내고 과장해 지껄이긴 했지만, 재강은 별 관심도 없는 듯했다.

그저 이준원이 다시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명선은 재강을 뒤로하고 씩씩대며 홀 건물로 돌아왔다.

걔가 영원히 안 떠나길 바라는 쪽이란 생각은 안 들어?

아, 그러시겠지. 어련하시겠어. 이제 금쪽같은 이준원 비위나 열심히 맞추며 사시겠지.

솔직히 그게 너 같은 인간한테 제일 어울리는 자리라는 거 아냐?

평생 비위 맞추고 굽신대고 눈치나 보면서 살아, 이 루저 새끼야. 네가 아무리 죽을 똥을 싸도 이준원은 어쨌든 언젠가는 떠나 버릴 테니까.

너는 혼자 그러고 살다 고독사하는 거야. 네가 고독사하는 동안에도 이준원은 다른 데서 즐겁게 놀고 있을걸?

그때 가서 후회해 봤자 나도 네 옆에 없어. 나도 다른 데서 즐겁게 놀고 있을 거고.

카운터로 쿵쿵 돌아와 앉은 명선은 우거지상을 하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나고, 슬프고, 답답하고, 울적하고, 짜증 나고…….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몸속에서 바글거렸다.

이런 기분으로 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지만, 오늘도 쉬자니 재강을 보고 싶은 마음도 컸고, 재강을 보고 있으면 좋으면서도 화가 나서 힘들었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명선은 공연히 볼펜 꼭지를 까득까득 씹으며 입구를 노려봤다.

이준원…… 암살해 버릴까.

사람 하나 사서 집 알려 주고 처리해 달라고 할까.

이 하등 쓸모없는 새끼. 두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새끼.

너만 없으면 숯불이랑 나 두 사람이 편해지는 거라고, 이 새끼야.

얼굴은 모르지만 키는 나보다 작고 빠는 것도 나보다 별로인 새끼.

도대체 뭘 가진 거지? 숯불은 왜 이준원을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거지? 나보다 잘 빠는 것도 아닌데!

……빠는 건 별로여도 섹스가 어마어마하게 좋은가?

아니지. 은근히 보수적인 저놈이 나랑 하는 걸 좋아하는 거 보면, 이준원이랑 할 땐 별로였으니까 그랬겠지.

아…… 하고 싶다. 숯불이랑 하고 싶다.

명선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너 아직도 속 안 좋아?”

홀에서 나오던 양자가 다가와 물었다.

“……어.”

“얼마나 마셨길래 이렇게 빌빌거려.”

양자가 혀를 차며 명선의 얼굴을 감싸 쥐고 더듬었다.

“너 술 말고 다른 것 때문에 아픈 거 아니니? 열이 있나?”

입구로 숯 통을 든 재강이 들어와 양자의 뒤를 지나갔다.

이쪽을 힐끗 보는 재강과 명선의 눈이 짧게 마주쳤다.

“아, 그런가…….”

명선은 멍하니 재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재강은 예전처럼 소 닭 보듯 하는 눈길이었다.

매정한 새끼.

“머리도 아파? 설사 같은 건?”

“엄마, 나…… 오늘도 쉬면 안 되나?”

양자는 입을 다물고 곧장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명선은 어깨를 더 늘어뜨리고 기운 빠지는 얼굴을 만들었다.

“입구에서부터 이렇게 축 처져 있으면 손님들한테 인상도 안 좋잖아. 카운터가 식당의 얼굴인데. 이러다 여기서 토하거나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

“……에휴, 그래, 그럼. 들어가.”

양자는 체념의 한숨을, 명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양자가 정식에게 이 상황을 알려 주기 위해 홀 안으로 들어가고, 빈 쇠막대를 든 재강이 나왔다.

재강은 카운터 쪽으론 눈길도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이준원 왔다고 저렇게까지 쌩깔 필요는 없잖아. 영원히 안 볼 것도 아니고 어쨌든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명선이, 왜? 몸이 아파?”

정식이 양자와 함께 카운터 쪽으로 왔다.

“어, 그냥, 몸살인가 봐. 오늘까지만 쉴게.”

명선은 건성으로 인사하고 정식에게 카운터를 맡긴 후 밖으로 나왔다.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자연스레 숯불 방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재강은 선풍기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 머리를 문지르고 있었다.

명선은 건물 모퉁이에 서서 재강을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갔다.

재강이 힐끗 이쪽을 봤다가 살짝 찡그리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노골적으로 저럴 건 또 뭐야.

명선이 선풍기 곁에 가 섰다.

“……덥냐?”

“몰라서 묻냐?”

“난 퇴근한다.”

머리를 문지르던 재강의 손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하든지 말든지.”

“여기 있어 봤자 더워서 일도 안 되고, 그 97퍼센트랑 섹스를 너무 빡세게 했나, 아직도 몸이 쑤시네.”

“…….”

“걔 덕분에 너랑 안 해도 난 괜찮으니까 너도 이준원이랑 재밌게 놀아라. 몸이 나랑 진짜 잘 맞더라고. 키스도 엄청…….”

“씨발, 내가 그런 걸 알 게 뭐야?”

재강이 고개를 들고 명선을 쳐다봤다.

“갈 거면 빨리 꺼지든가. 어쩌라는 거야, 더워 죽겠는데 붙어서 쫑알대고.”

“야, 키스할래?”

“…….”

재강이 이를 악물었다.

명선은 재강이 이걸 예전처럼 장난으로 받아들여 주길 바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재강을 만지고 싶어 애가 탔다. 재강이 이걸 진심으로 받아들여 주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들었다.

재강은 한동안 명선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빨리 꺼져.”

명선이 침을 꿀꺽 삼키고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갑자기 조급해지는 기분이었다.

“왜? 여기엔 이준원 없잖아.”

명선이 가까워지자 재강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숯불 방 안쪽으로 갔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뿜는 숯불 착화기 옆쪽에 선 재강은 팔짱을 끼고 서서 명선을 쳐다봤다.

“꺼지라고.”

재강을 가만히 바라보던 명선이 한 발짝 더 다가서자 재강은 주춤 물러났다.

“가서 그 97인지 뭔지랑 놀라고, 씨발아.”

너도 나랑 하는 거 좋아하잖아. 그래서 이렇게 겁내고 있는 거 아니야?

하고는 싶은데, 그러면 이준원한테 혼날까 봐.

명선이 한 발짝 더 움직였다. 재강도 물러났다.

나랑 놀자. 그리고 같이 집에 가서 이준원을 쫓아내자. 응?

“솔직히 말하면.”

명선이 입을 열었다.

“그 97이랑 하는 키스, 별로였어.”

“…….”

“키스는 너랑 하는 게 훨씬 좋더라.”

명선은 어느새 숯불 방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방 안은 후끈거렸다.

그만큼 물러난 재강은 벽에 거의 등이 닿은 채로 서서 명선을 노려봤다.

“키스만 잠깐 하면 어때?”

둘의 신발코가 맞닿았다.

명선은 재강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얼굴을 들이밀다가, 가슴팍을 턱 잡는 재강의 손에 의해 멈췄다.

명선이 재강에게 밀려 뒤로 살짝 물러났다.

명선의 얼굴에 고정돼 있던 재강의 눈이 뒤뜰 쪽으로 갔다 다시 돌아왔다.

아. 이준원 때문에 주저하는 게 아니라, 누가 볼까 봐 그러는 건가?

명선은 재강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재강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맞지? 이준원 때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가 우릴 볼까 봐, 그게 걱정되는 거지?

명선은 입술을 한 번 축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너도 나랑 하고 싶은 거 맞지?

숯불 방 안은 착화기 덕에 후끈거리고 소란스러웠다.

명선의 가슴에 닿아 있는 재강의 손이 머뭇거리듯 조금씩 움직였다.

명선은 그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덮었다.

재강의 시선이 그 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뒤뜰 쪽으로, 그리고 명선의 눈으로 돌아왔다.

명선은 점점 확신이 들었다. 흥분과 함께 기쁨이 조금씩 차올랐다.

이준원이랑 하는 게 별로인 거 맞지?

이준원을 사랑하긴 해도, 섹스는 정말 별로인 거야. 나랑 하는 게 더 좋은 거야. 맞지?

그렇다고 말해 주면 안 될까?

“난 너 만지고 싶었는데.”

명선이 낮게 말하며 재강의 손등과 손목을 어루만졌다.

머뭇거리던 재강이 손을 잡아 빼는 순간 명선은 재강에게 바싹 다가붙으며 키스했다.

코가 재강의 뺨을 짓누르며 한없이 익숙한 그 특유의 냄새가 나자 명선은 현기증이 나는 듯했다. 뜨거운 재강의 입술 역시 명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받아 주는가 싶던 재강이 곧 명선의 턱을 콱 움켜쥐고 뒤로 밀어냈다.

“으, 씨…….”

명선은 일그러진 얼굴을 재강 쪽으로 들이밀려 애쓰고 재강은 꿋꿋이 그 얼굴을 잡은 채로 얼마간 대치했다.

“자까닌에 어 엇떠야거.” (잠깐인데 뭐 어떠냐고.)

“꺼진댔으면 좀 꺼져, 이 새끼야.”

결국 재강에게 밀려 몇 발짝 물러난 명선은 씩씩대다 입술을 한 번 빨고 손등으로 문질렀다.

재강도 가슴을 살짝 들썩이며 명선을 쳐다봤다. 아마도 명선의 침일 것이 입가에 묻어 반짝였다.

저걸 빨아 주고, 입술을 빨아 주고, 온몸을 빨아 주고 싶은데.

명선은 부글부글 끓는 몸을 진정시키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곧 재강이 명선을 밀쳐내고 잔디 쪽으로 나갔다.

명선이 따라 나오자 재강은 다시 방 안쪽으로 갔다.

“야. 내가 무슨 전염병 환자야? 왜 이렇게 피해 다녀? 기분 나쁘게.”

“자꾸 추근대니까 그러는 거 아냐.”

“추근? 이게 왜 추근대는 거야? 이 정도도 못 해? 이것보다 더한 것도 하고 지냈으면서.”

“상황이 바뀐 거 안 보여? 그만 좀 할래?”

재강은 목소리를 쥐어짜는 듯했다.

그렇긴 한데.

근데 갑자기 그렇게 태도까지 바꿀 건 없잖아.

명선은 갑자기 시무룩해져서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내렸다.

얼마간 재강의 발치를 바라보던 명선이 다시 눈을 들었다.

“야, 그럼 너 휴가는…….”

명선의 눈을 마주 보던 재강이 고개를 돌리더니 벽에 걸려 있던 수건을 빼내 얼굴에 난 땀을 닦았다.

“네 친구랑 가든지 해.”

“…….”

“계획 세우느라 고생한 건 미안하긴 한데, 어쨌든…….”

“…….”

“어쩔 수 없으니까.”

“뭔 소리야? 왜 어쩔 수가 없어?”

“…….”

재강은 얼굴을 닦은 수건을 내려다봤다.

“너 뭐, 감금이라도 당한 거야? 걔가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게 해?”

“준원이랑 같이 있을 거야.”

“…….”

“혼자 둘 순 없잖아.”

재강은 여전히 손에 든 수건을 내려다보는 채였다.

명선은 이를 악물고 재강의 옆얼굴을 노려보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 그럼 그 97퍼센트랑 가야겠네. 아니면 혼자 가서 누굴 만나든지. 나 정도야 뭐, 만나는 건 금방이니까.”

재강은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목덜미를 수건으로 문질렀다.

“그 97이랑 하는 키스 별로라는 거 뻥이었어. 그냥 네 입술 보다 보니까 갑자기 100퍼센트랑 키스하고 싶어서 다급한 마음에 거짓말한 거야. 원래는 키스 되게 좋았거든. 키스가 뭐 별건가. 그냥 입술이랑 혀만 있으면 되는데.”

권명선. 또 횡설수설하고 있잖아.

“암튼, 계획 세우느라 고생했다고 미안해할 건 없다. 나야 뭐, 너 아니어도 같이 갈 사람은 많으니까. 별로 상관은 없어.”

으, 권명선…… 닥쳐, 제발.

곧 재강이 고개를 들고 명선을 바라봤다.

“열쇠, 돌려줄래?”

“…….”

“네 물건은 싸서 내일 갖다줄게.”

명선은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인 채 재강의 눈을 응시했다.

갑자기 온몸이 욱신욱신 아프기까지 했다.

“열쇠…… 그거 뭐, 어차피 복사본이잖아. 네가 네 열쇠 없는 것도 아니고.”

“지금 없으면 내일 줘도 돼.”

“왜? 내가 너 없을 때 너희 집 들어가서 깽판이라도 칠까 봐?”

“…….”

재강이 명선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명선은 재강을 마주 보다 픽, 코웃음을 쳤다.

“잃어버렸는데?”

“…….”

“그 97이랑 놀던 모텔에서 떨어뜨렸나? 청소하다 버렸겠지, 뭐.”

재강이 명선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수건으로 턱 아래쪽을 닦았다. 명선도 질세라 재강의 눈을 쳐다봤다.

“야, 근데 우리끼리 내숭은 떨지 말자.”

“…….”

“너도 솔직히, 섹스는 이준원보다 나랑 하는 게 더 좋잖아.”

“…….”

“안 그래?”

재강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착각도 가지가지한다.”

“…….”

“네가 원이보다 나은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자꾸 갖다 비교하지 마.”

“웃기지 마. 너 거짓말 존나 못 해.”

재강의 표정엔 별 변화가 없었다.

곧 재강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긴, 믿든 말든 내가 알 게 뭐냐. 네 맘대로 해.”

“…….”

명선은 재강의 얼굴을 노려보다 휙 돌아서서 뒤뜰을 성큼성큼 지났다.

다 내가 착각한 건지도 몰라.

내가 자꾸 발정 나서 달라붙으니까 그냥 눈앞에 있는 몸에 잠깐 혹했던 것일 수도.

쟤는 이준원이 돌아와서 기쁘고, 집에 돌아가면 이준원이 반갑게 맞아 줄 테니까 나 같은 건 생각나지도 않겠지. 생각할 필요도 없을 거고.

다 내가 착각한 거야.

명선은 그대로 주차장까지 가서 시동을 걸고 떠났다.

* * *

“명선이, 내일도 안 나오는 거야?”

퇴근한 양자는 거실에서 빈둥대던 명선을 보자마자 그것부터 물었다.

벌써 사흘째 명선은 가든에 안 나가고 있었다.

“어.”

명선은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한동안 잘 나오더니 대체 왜 그래?”

양자의 뒤로 정식이 들어오며 물었다.

“너 재강 씨랑 싸웠어? 왜 이제 거기서 안 자고? 맨날 출퇴근 같이하더니.”

“그러니까. 재강 씨는 계속 잘 나오는데 너는 왜 안 나오느냐 이 말이야.”

둘은 명선이 누운 소파 곁에 서서 명선을 내려다보는 채였다.

명선이 핸드폰을 끄고 얼굴을 문질렀다.

“말했잖아, 형 집에 친구가 들어와서 내가 나왔다고.”

“아니, 그건 그건데 왜 출퇴근을 안 하냐는 거지. 형 있어서 재밌다고 할 땐 언제고.”

“그냥 그렇게 됐어. 아, 좀 냅둬 봐.”

명선이 양자와 정식을 피해 소파에서 내려갔다.

“싸운 거 아니야? 연락은 해?”

“재강 씨도 별말 없긴 했는데.”

방으로 가던 명선은 정식의 말에 우뚝 멈췄다가 뒤를 돌아봤다.

“뭐가? 무슨 말?”

“응?”

“형이 뭐라고 했는데?”

“뭘 뭐라고 해, 별말 안 했다니까.”

양자와 정식이 소파에 앉았다. 명선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니, 나에 대해서 뭔가 짧게라도 대화한 거 아니냐고.”

“혹시 싸웠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하던데.”

“……그게 다야?”

“또 뭐라고 했더라…… 아, 명선이가 요새 바쁜가 보네요, 그랬던가?”

“쟤가 바쁠 게 뭐가 있어. 맨날 집에서 빈둥대는데.”

양자가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틀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했어? 나 집에서 빈둥댄다고?”

“그런 걸 뭐 자랑이라고 일일이 말하고 있니?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지. 근데 너 재강 씨랑 아예 연락도 안 하는 거야? 왜 그래? 진짜 싸웠어? 왜? 뭐 땜에?”

“아휴, 싸운 거 아니라고요. 어쩌다 보니까 둘 다 바빠진 거지.”

“아니, 지가 바쁠 게 뭐 있냐고, 맨날 집에서…….”

명선은 양자의 핀잔을 뒤로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아 버렸다.

재강이 자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부모와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하자 갑자기 가슴이 아려왔다.

내 생각을 하긴 하나?

아무리 그래도 몇 주를 꼭 붙어 지냈는데,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 정도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 정도도 바라는 건 너무한 건가?

숯불. 그냥 네 쪽에서 안부 인사 문자라도 하나 보내 주면 안 되냐? 너는 정말로, 내가 조금도 안 보고 싶어?

명선은 준원이 돌아온 날 멈춘 채 더 늘어나지 않는 둘의 문자 대화창을 다시 습관처럼 열어 봤다.

마지막 대화는 그날 저녁, 가든에서 일하며 주고받은 문자였다.

써니

[숯불 9:55에 남자화장실 두번째칸으로 와 천국 보내줄테니깐]

숯불

[ㅗ]

명선은 그 마지막 대화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가든에 안 간 사흘 동안 읽고 읽고 또 읽어서 거의 외울 지경이 되어버린 대화들이었다.

재강에 관해 실질적으로 남은 건 이제껏 주고받은 문자들밖에 없었다. 그래서 재강이 보고 싶을 때마다 명선은 그것만 들여다봤다.

그러면서 재강에게 문자를 쓰다 지운 것도 수백 번이었다.

안부를 묻는 문자,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문자, 다른 사람에게 보내야 할 걸 잘못 보낸 척하는 문자 등등.

결국은 아무것도 보내지 못했다.

명선은 시무룩한 얼굴로 침대에 엎드렸다.

그간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했다.

어차피 집을 알고 있으니 그 앞에 찾아가 기다리다 얼굴 보고 오기, 재강이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수십 번 전화해서 섹스 방해하기, 재강이 집에 없을 시간에 방문해 이준원과 대면하고 담판 짓기 등.

모두 즉흥적으로 떠올라 무척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하며 혼자 불타오르다가, 이성을 되찾은 후엔 스스로에게도 민망해지며 차갑게 식은 계획들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도대체.

나는 네가 보고 싶은데 너는 나를 왜 안 보고 싶어 해!

“짜증 나.”

명선은 몸부림치며 침대 위를 굴러다녔다.

어쨌든 부모가 운영하는 곳이니 가든에 명선이 언제든 들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재강을 보면 복잡한 감정들이 터져 나올 건 분명했다.

아예 안 보자니 그건 또 그것대로 힘들었다.

“매정한 새끼…….”

명선은 침대에 늘어져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재강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 * *

명선이 고등학교 동창인 준호, 규철과 함께 가든으로 들어섰다.

“아빠, 우리 밥 먹으러 왔어.”

“아이고, 오랜만에 보네.”

카운터를 보던 정식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명선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봤다. 재강은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고 나서도 명선은 주위를 살피느라 산만했다. 입구가 잘 보이는 쪽에 자리를 잡은 채였다.

한창 저녁때라 홀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배우는 건 아마 한두 시간 정도? 그러고 나서 자유 시간 주는 거라……. 권명선, 너 진짜 같이 안 가?”

준호와 규철은 양양에 서핑 체험하러 가는 계획에 한창 들떠 있었다.

“어, 갔다 와서 얘기해 줘. 봐서 괜찮은 것 같으면 내년에 같이 가든가 하지, 뭐.”

명선이 얼른 주의를 둘에게 집중하는 척했다. 신경은 입구 쪽으로 잔뜩 쏠린 채였다.

반찬이 식탁 위에 차려지자 명선은 더 가슴이 뛰었다. 곧 재강이 나타날 것이었다.

“근데 그거 수영 되게 잘해야 되는 거 아니야?”

명선이 준호와 규철 사이로 보이는 입구 쪽에 시선을 둔 채 대화에 참여하는 척 물었다.

“못 해도 괜찮다던데? 나도 못 해.”

“구명조끼 같은 거 입고 해도 된댔어.”

“진짜 하루만 해도 되려나? 보드 위에서 일어서는 것만 하루 걸리는 거 아니야?”

준호와 규철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입구에서 재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명선은 동공이 활짝 커지는 기분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쪽을 본 재강과 명선의 눈이 마주쳤다.

재강은 무심히 시선을 내리고 팔뚝으로 얼굴을 훔쳤다.

숯불, 나 안 보고 싶었어? 넌 내 생각한 적 없어?

명선은 점점 가까워지는 재강을 응시했다.

“실례합니다.”

재강이 식탁 옆에 서자 열기와 함께 익숙한 내음이 퍼졌다.

오랜만에 듣는 재강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재강의 표정과 땀에 젖은 그 피부도 모두 여전했다.

준호와 규철은 열기를 피해 몸을 살짝 뒤로 젖힌 채 계속 서핑 얘기 중이었고, 명선은 재강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재강은 그런 명선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숯불을 넣은 후 휑하니 가 버렸다.

명선은 빠르게 걸어 입구로 나가 버리는 재강의 뒷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봤다.

가볍게 눈인사 정도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우리가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벽을 쳐야 돼? 넌 내가 그 정도로 싫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그 후로도 재강은 이쪽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바쁘게 돌아다녔다.

명선은 계속해서 재강을 주시했다. 어쩐지 재강이 일부러 자기에게 무심한 걸 티 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재수 없으니까 빨리 꺼지라 이건가?

야, 지금 티 팍팍 내면서 재수 없게 구는 게 누군데?

명선은 찌푸린 채 고기를 질겅질겅 씹다가 숯불을 들고 곁을 지나가는 재강을 노려봤다.

뒤쪽 어딘가에 숯불을 넣고 다시 곁을 지나가는 재강의 팔을 명선이 탁 붙잡았다.

“아저씨.”

재강의 팔은 뜨겁고 축축했다.

재강이 우뚝 멈춰 명선을 봤다가 명선에게 잡힌 자신의 팔뚝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서핑 얘기에 여념이 없던 준호와 규철이 말을 멈추고 둘을 쳐다봤다.

“숯불 좀 갈아 주실래요?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명선이 재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냄새?”

규철이 킁킁거리며 불판 쪽으로 살짝 몸을 숙였다.

“어. 좀 역한 냄새가 나네.”

명선은 재강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네.”

재강은 그때까지 잡혀 있던 팔뚝을 부드럽게 돌려서 빼내고 불판을 들어 올린 후 숯 통을 뺐다.

“새 거는 냄새 맡아 보고 가져오세요. 또 이상한 냄새 날지도 모르니까.”

숯 통을 들고 입구 쪽으로 가는 재강의 뒷모습을 응시하던 명선이 시선을 돌리자 자신을 멍하니 보는 규철과 준호가 보였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지금까지 고기 잘 먹어 놓고.”

“야, 근데 너 되게 띠껍게 말한다?”

명선은 시선을 피하며 물을 마셨다.

“알바생 교육하는 거야.”

명선의 말을 듣고 둘은 동시에 풉 웃었다.

“네가 왜 알바생 교육을 해?”

“네가 뭔데?”

“뭐긴, 여기 물려받을 사람이지. 미리 각인을 시켜 놓는 거라고.”

“각인이래.”

규철과 준호는 명선을 비웃기만 했다.

곧 재강이 새 숯불을 가져왔다.

“아, 이것도 냄새나는데. 숯 관리 제대로 하는 거 맞아요? 이상한 숯 쓰는 거 아니야?”

숯 통을 막 넣으려던 재강이 멈칫하고 명선을 쳐다봤다.

규철과 준호도 눈을 끔뻑대며 명선을 멍하니 쳐다봤다.

“제대로 보고 오라고 했잖아요. 똑바로 좀 하시죠, 아저씨?”

순간 재강의 허리춤에 매달린 무전기에서 치직대는 소리가 났다.

-2 다시 8, 2 다시 9에 갈비 하나씩이요.

“새로 드릴게요.”

재강이 명선을 향해 낮게 말하고는 불판을 도로 내려놓고 몸을 돌려 2층으로 올라갔다.

“권명선, 너 왜 그래?”

재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준호가 테이블 아래에서 명선의 발을 툭 찼다.

“내가 뭘.”

“방금 졸라 싸가지 없었어.”

“알바 교육하는 거라니까.”

“네가 왜 갑질이냐고, 벌써부터.”

이 새끼들 괜히 데려왔어. 거추장스러워.

“식당 경영에 대해서 아는 거 없으면 그냥 가만히 있어.”

명선은 공연히 얼굴을 문지르며 시선을 피했다.

“이것도 별론데. 새로 갖다주실래요? 일부러 이상한 것만 골라오는 거야 뭐야.”

재강이 새로 숯불을 가져왔을 때 명선은 다시 트집을 잡았다.

땀에 잔뜩 젖은 재강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리며 흥분이 됐다.

재강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쉬시네? 어린놈한테 잔소리 들으니까 속이 뒤틀리시나 봐?”

“아니, 아무 냄새 안 나는데, 괜찮아요.”

준호가 어서 숯 통을 넣으라는 듯 손짓하며 서둘러 말했다. 테이블 아래에선 누군가 명선의 발을 다시 찼다.

“왜, 눈이라도 뽑으시게?”

명선이 눈을 치뜨고 재강을 쳐다보며 낮게 말했다.

“새로 드릴게요.”

재강이 명선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하고 바로 몸을 돌렸다.

차라리 나를 한 대 치고 목이라도 잡았으면.

명선은 울고 싶은 심정으로 재강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권명선, 미쳤어? 왜 이래?”

“이게 무슨 교육이야, 그냥 갈구는 거지.”

시선을 돌리자마자 준호와 규철의 아우성이 이어졌다.

명선은 재강이 새로 가져온 숯불을 넣을 때도 재가 튄다느니 부주의하기 짝이 없다느니 하며 기어코 또 트집을 잡아댔다.

“죄송합니다.”

재강은 명선과 눈을 맞추며 허리까지 살짝 숙여 사과하고 가버렸다.

죄송은 무슨! 안 죄송하잖아!

명선은 우거지상을 한 채 재강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한 대 치고 싶잖아. 목이라도 잡고 벽에 밀어붙이고 싶잖아, 안 그래?

그렇게라도 나한테 관심 좀 주면 안 돼?

“권명선, 싸가지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개진상이야.”

준호와 규철은 명선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 * *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명선은 혼자 앉아 재강을 바라봤다.

재강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명선 쪽으론 눈길도 주지 않고 바삐 돌아다녔다.

“명선이, 이럴 거면 카운터로 가 있든가 하지, 왜.”

양자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일하러 온 거 아니고 밥 먹으러 온 거라니까.”

“밥 다 먹었잖아. 왜 이러고 앉았어.”

“그냥 쉬는 거야, 엄마.”

“얘는 집에서도 그렇게 쉬면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양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멀어졌다.

명선은 꿋꿋이 앉아 있다가 영업이 끝나는 시각인 10시가 되자 슬그머니 뒤뜰로 갔다.

재강은 한창 숯불 방 바닥을 빗자루로 쓰는 중이었다.

내가 정말 싫은가?

명선은 찌푸린 채 우두커니 서서 재강을 바라봤다.

이준원 오기 전에 같이 지낼 땐 그래도 어느 정도는 좋아해 주는 줄 알았는데.

바닥 쓸기를 끝낸 재강이 얼굴의 땀을 닦으며 몸을 일으키다 명선과 눈이 마주쳤다.

재강은 명선을 쏘아보는 듯하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던져 놓고 수도 쪽으로 갔다.

명선이 숯불 방 가까이 다가갔다.

“청소 제대로 하나 보러 왔다.”

재강은 말없이 수도꼭지에 감긴 고무호스를 둘둘 풀어냈다.

“숯 관리도 영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서 말이지…… 입.”

재강이 명선을 향해 갑자기 쏘아 보낸 물줄기에 맞아 명선은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다물었다.

“이것도 관리를 제대로 못 하고. 그치?”

재강이 물이 줄줄 흐르는 호스를 살짝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명선은 입 안에 들어온 물을 푸 뱉어내며 눈을 뜨고 젖은 얼굴을 문질렀다.

재강은 무심히 돌아서서 숯불 방 바닥에 물을 뿌리는 중이었다.

명선은 재강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재강이 명선을 힐끗 보고 호스를 들어 보였다.

“관리 부실한 상태 좀 더 보여 줘?”

“연꽃 모텔.”

“…….”

“같이 가자.”

재강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명선의 얼굴을 쳐다봤다.

얼마간 재강의 손에 들린 호스에서 물이 줄줄 나오는 소리만 울렸다.

“집에 가라.”

재강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너 밥 먹는 동안 차에서 기다릴게.”

“집에 가라고.”

“난 진짜 보고 싶었는데.”

“…….”

“네 몸이.”

“…….”

“너무 보고 싶었다고. 만지고 싶고. 하고 싶고.”

재강은 언짢은 표정으로 명선의 얼굴을 훑어보다 고개를 돌리고 다시 바닥에 물을 뿌렸다.

“왜? 이준원한테 미안해서? 어차피 섹스만 하는 건데 왜. 걔랑 연인 사이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혼자 정절을 못 지켜 안달이야? 그거 진짜 이상하지 않아?”

재강은 명선을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청소만 하다 비키라는 듯 팔뚝으로 스윽 밀어냈다.

명선은 자신의 배에 와 닿는 재강의 팔을 살며시 붙잡았다가 놓아주었다. 잠시라도 피부가 닿자 금세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재강은 여전히 청소에만 열중했다.

“차에서 기다릴게. 밥 먹고 보자.”

명선은 돌아서서 잔디를 지나 주차장 쪽으로 갔다.

주차장엔 어쨌든 재강의 자전거도 있고, 집에 가려면 여길 지나쳐 갈 수밖에 없으니 붙잡을 기회가 한 번 더 있는 셈이었다.

명선은 차에 들어가 앉아 휴지로 젖은 얼굴과 몸을 닦고 멍하니 앞 유리 너머를 바라봤다. 참담한 기분이었다.

미동도 않고 한참 동안 그대로 있던 명선은 재강이 나타나는 순간 얼른 문을 열고 나왔다.

재강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명선을 피해 자전거가 있는 쪽으로 갔다.

명선이 재강의 팔을 붙잡자 재강이 곧장 쳐냈다. 명선이 다시 그 팔을 붙잡았다.

“너 여기서 잘리고 싶냐?”

명선이 재강에게 몸을 바싹 붙이며 낮게 말했다.

“뭐?”

“나 역겨운 놈인 거 너도 알지? 역겨운 짓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도 알고. 지금 여기서 내가 자해하고 홀에 뛰어 들어가서 네가 나 팼다고 하면 사람들이 누구 말을 믿을까?”

“…….”

재강이 명선의 눈을 빤히 마주 보다 입꼬리 한쪽을 비틀어 올리며 픽 웃었다.

“왜 웃어? 내가 못 할 것 같아?”

“아니. 너 같은 양아치 새끼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얼마든지 해봐.”

“…….”

“아까 눈 뽑고 싶냐고 했지? 뽑아 줘? 공갈이 아니라 진짜로 보이게 내가 좀 도와줘?”

명선이 으득 이를 갈았다.

“뽑아 봐, 이 씨발 새끼야. 맨날 말로만 그러지 말고 뽑아 보라고.”

갑자기 재강의 손이 한쪽 눈과 머리통을 한꺼번에 턱 붙잡자 명선은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홱 밀쳐지는 동시에 명선은 재강의 그 손을 붙잡고 손바닥 가장자리를 콱 깨물었다.

“씨발!”

재강이 명선의 이마를 밀면서 손을 홱 뿌리쳤다. 명선의 이에 물린 손이 지익 긁히며 빠져나갔다.

재강은 낮게 신음하며 손을 들여다보다가 허공에 몇 번 털었다.

명선은 손등으로 입을 한 번 훔치고 침을 삼켰다. 찝찔한 피 맛이 났다.

“차에 타. 너 없을 때 너희 집에 가서 이준원도 그렇게 물어 버리기 전에.”

재강이 눈을 크게 뜨고 명선을 쳐다봤다. 물린 곳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게 보였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난 너희 집이 어딘지도 알고 네가 집에 없는 시간이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인지도 알아. 너는 어쨌든 일을 해야 하니까 이준원 옆에 24시간 붙어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

“내가 이준원이랑 대면해서 우리 둘이 지금까지 뭘 했는지 직접 다 말해 줄 수도 있다는 얘기야. 네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고 떠받드는 이준원한테.”

“…….”

“넌 그게 제일 무섭지? 이준원이 알게 되는 거. 근데 너도 알겠지만 나는 네가 어떤 수를 쓰든 이준원과의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는 인간이거든. 네가 제일 무서워하는 일을 얼마든지 벌일 수 있는 인간이거든.”

재강은 팔을 늘어뜨리고 선 채 가만히 명선을 바라보기만 했다.

명선은 완전히 제삼자가 되어 자신과 재강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런 식으로밖에 못 하나?

내 밑바닥은 어디인 거지?

대용이 말대로 나는 정말 거대한 음쓰봉이 제격인 인간인가?

그래도 같이 있고 싶은데 어떻게 해?

같이 있을 방법이 섹스하는 것밖에 없잖아.

이렇게 지랄 맞게 굴지 않으면 쳐다봐 주지도 않잖아.

재강이 어느 순간 눈을 내리깔더니 명선의 차 조수석 쪽으로 갔다.

명선은 그 뒷모습을 보다 운전석에 올라탔다.

재강은 물린 손을 허벅지 위에 둔 채 앞만 바라봤다.

명선이 글로브박스를 열어 휴지 팩을 꺼내 내밀자 재강은 명선을 쳐다보지도 않고 받았다.

명선이 차를 운전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재강은 휴지로 배어 나온 피를 닦았다. 재강이 찡그리며 작게 신음을 삼켰다.

명선은 가라앉은 기분으로 말없이 운전했다.

정말 그게 제일 무서운 일이었구나.

누명을 쓰고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 이준원한테 내 존재를 알리는 게 너한텐 더 위협적인 일이었구나.

이런 약점을 잡은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얼마간 운전하던 명선은 편의점이 보이자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는 없어서 별수 없이 밴드만 하나 사 들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재강은 미동도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거라도 붙여.”

재강은 명선이 내민 밴드 상자를 받긴 했지만 열지도 않고 그대로 든 채 앞만 바라봤다.

이제 나를 더 싫어하게 되겠지.

나는 맨날 쟤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 하고 앉았네.

모텔에 도착해 주차하고 결제 후 방까지 가는 동안에도, 제발 여기서 멈추고 재강을 보내 준 후 가든엔 얼씬도 말고 살라는 목소리가 머릿속 어딘가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명선의 몸은 그 목소리를 도무지 따를 수가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오자 어색한 공기는 배가 됐다.

재강은 방 가운데까지 느릿느릿 갔다가 배낭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명선은 머뭇대다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이렇게라도 재강과 한 공간에 같이 있으니 또 살포시 설렌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명선은 한쪽 다리를 살짝 떨면서 재강을 바라봤다.

재강은 눈을 내리깔고 자기 무릎만 내려다보는 채였다.

“야.”

침묵을 깨고 명선이 입을 열었다. 재강은 명선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같이 씻을래?”

“…….”

“아님 먼저 씻든지.”

“…….”

“내가 먼저 씻는 게 나아?”

“…….”

“뭐가 더 좋은데. 말 좀 해봐.”

재강이 눈을 들어 명선과 시선을 맞췄다.

“뭐가 더 좋은지 왜 나한테 물어, 그런 걸 언제부터 신경 썼다고.”

“신경이 쓰이지 왜 안 쓰여.”

“그렇게 신경이 쓰여서 협박하고 여기까지 데려왔냐?”

“결국엔 지 발로 와 놓고 왜 지랄?”

재강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너 먼저 씻든지 딸을 치든지 맘대로 해. 나는 여기 있다가 그거 다 끝나면 내 발로 나갈 테니까.”

“뭔 소리야, 너랑 섹스하려고 온 건데.”

“너 아까 분명히 모텔 같이 가자고 했지, 섹스하자고는 안 했다. 난 그 말 듣고 온 거고.”

“모텔 같이 가자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숯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멍청한 알바생이 사장 아들의 깊은 뜻을 어떻게 알겠냐?”

명선이 달달 떨어대던 다리를 멈췄다.

“그럼 멍청한 알바생이 알아듣게 말해 줄까? 옷 벗어.”

재강은 천천히 눈만 깜박이며 명선을 바라보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티셔츠를 훌렁 벗었다.

드러난 재강의 몸을 보며 명선은 침을 삼켰다.

재강은 뒤이어 나머지 옷도 모두 벗었다.

명선이 일어섰다.

“박아, 이제.”

“너한테 박고 싶지 않은데.”

“너한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해?”

“너 같은 거한테 서지도 않는데 어떻게 박으라는 거야. 성욕이 하나도 안 생기는데. 그렇게 발정이 나면 내 손이라도 갖다 직접 쑤시든가. 손은 얼마든지 대 줄 테니까.”

명선은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지갑을 꺼냈다.

가슴이 조각나는 기분이었다.

“아, 돈이라도 보여 줘야 서는 건가? 너 돈 받고 나한테 박은 적도 있었잖아. 가진 게 몸 밖에 없는 가난한 새끼라 이런 게 있어야 서나 보네.”

명선은 지갑에서 지폐를 한 장씩 꺼내 구겨서 재강을 향해 집어 던졌다.

재강은 지폐 뭉치가 자신의 몸을 때리고 떨어지는 동안 가만히 앉아서 명선을 바라봤다.

여섯 뭉치가 허공을 휙휙 날아다닌 후 명선의 지갑이 비었다.

명선은 지갑을 바닥에 던지고 씩씩대며 재강을 노려봤다. 재강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명선이 재강의 앞으로 가 섰다.

“나보고 뭘 어쩌라고, 그럼!”

“넌 나보고 뭘 어쩌라고 이러는 건데.”

“말했잖아, 너랑 하고 싶다고.”

“그 97인가 뭔가도 좋았다며. 가서 걔랑 놀면 될 거 아냐.”

“……97보다는 100이 더 좋다고 말했잖아.”

“…….”

명선이 재강의 양다리를 벌리며 그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재강의 다리엔 살짝 힘이 들어가 있었다.

“빨아 주면 나랑 할 거야?”

“…….”

명선이 재강의 성기 쪽으로 차츰 고개를 수그리는데도 재강은 밀어내지 않았다.

명선이 성기를 입 안 깊숙이 물자 재강의 배가 움찔했다.

명선은 열심히 머리를 움직이며 재강의 것을 빨았다. 입 안에서 성기가 점점 커지고 단단해졌다.

나랑 섹스만이라도 하자, 제발.

너랑 같이 있고 싶어. 만지고, 마주 보고, 꼭 안고 있고 싶어.

명선의 이마 앞에서 재강의 배가 위아래로 들썩였다.

명선은 온 힘을 다해 혀를 놀리고 입술과 목구멍을 조이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명선의 성기 역시 단단하게 부푼 지 오래였다.

소파 팔걸이를 꽉 잡고 있던 재강의 손이 머리에 와 닿자 명선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익숙한 손이었다. 그 크기와 열기, 주저하듯 움직이는 동작 모두.

그냥 이렇게라도 나랑 같이 있자.

나는 너를 너무 좋아하게 돼 버렸단 말이야.

명선이 헐떡이며 재강의 것을 길게 핥아 올렸다.

“내가…… 뭐 딴 거 바라는 게 아니야, 그냥, 정기적으로 섹스만 하면 돼.”

명선이 숨을 내뱉으면서 성기에 입술을 문지르고 속삭였다.

“정말이야. 나는 그냥 네 몸만 있으면 된다니까.”

갑자기 재강이 명선의 머리카락을 콱 움켜쥐었다.

“아억…….”

재강은 명선의 머리를 잡아 고정한 채 그 입 안으로 성기를 퍽퍽 쑤셔 넣었다.

명선은 눈을 꽉 감고 눈물을 질질 흘리며 재강의 다리에 매달리듯 했다.

한동안 명선이 꺽꺽대는 소리만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얼마 후 재강은 명선의 머리를 떼어내고 바닥 쪽으로 집어 던지듯 밀쳤다. 명선은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엎어졌다.

재강이 일어나 다가오자 명선은 엎드린 그대로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재강이 명선의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잡고 홱 끌어내렸다. 명선은 얼굴과 손을 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높이 쳐들었다.

재강이 명선의 엉덩이 사이에 침을 탁 뱉더니 성기를 대고 몇 번 문지르다 쑥 밀어 넣었다.

“아으윽…….”

명선이 몸을 뒤틀며 파르르 떨었다. 발목과 무릎이 오그라들고 어깨도 잔뜩 움츠러들었다.

재강은 명선의 머리를 잡아 누른 채로 성기를 거칠게 박아 넣었다.

“평생, 그렇게, 하, 몸이나 핥으면서 살아라, 이, 변태 새끼야.”

재강이 씨근대며 낮게 말했다.

“네, 몸이라면…… 평생, 핥아 줄게, 하윽…….”

허리가 꺾이고 얼굴이 잔뜩 짓눌린 명선이 눈을 꼭 감은 채 쉰 목소리로 헐떡였다.

“닥쳐.”

머리를 잡고 있던 재강의 손이 내려와 명선의 입과 턱을 그러잡았다.

벌어진 입 안으로 재강의 손가락이 들어오자 명선은 그 손가락을 쭉쭉 빨았다. 몸이 쿵쿵 밀쳐질 때마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는 듯했다.

아, 어떡하지, 너무 좋은데.

근데 이게 천국인지 지옥인지 잘 모르겠어.

* * *

사정 후 재강은 곧장 일어나 욕실로 가 버렸다.

명선은 그대로 엎어져 누워, 뒤에서 재강의 정액이 흘러나오는 것을 가만히 느꼈다.

매일 이렇게만 만나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이틀에 한 번…… 아니,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그렇게라도 하면 좀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협박해서 억지로 서게 만들고 억지로 박게 하는 게.

이럴수록 쟤는 나를 더 싫어하게 될 텐데.

그럼 어떻게 해야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지?

추근대지 않고, 쫑알대지 않고, 협박하지 않고, 말도 걸지 않고, 눈앞에 나타나지도 않고…… 그럼 되는 건가?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하면 나는 적어도 괜찮은 사람 정도로는 남을 수 있는 건가?

곧 재강이 욕실 밖으로 나왔다.

명선은 고개를 들고 재강을 바라봤다.

이쪽으로 다가온 재강이 옷을 차례차례 입었다.

명선은 일어나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재강을 응시했다.

재강은 명선을 쳐다보지도 않고 옷을 다 입은 후 배낭을 집어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더니 머리를 문지르며 화장대 앞으로 갔다.

재강이 드라이를 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명선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잘 때도 머리는 안 말리더니, 이준원한테 어디서 씻고 들어오는 꼴 보여 주긴 또 그렇게 싫은가 보네.

머리를 다 말린 재강은 드라이를 내려놓더니 화장대에 양손을 짚고 기댄 채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명선이 일어나 다가가자 재강이 고개를 돌려 명선을 바라봤다.

명선은 티셔츠만 입은 채였고, 그 티셔츠와 몸 여기저기는 정액 범벅이었다.

재강이 명선의 몸을 내려다봤다.

“한 판 더 하자.”

명선이 속삭이며 재강의 얼굴을 감싸 쥐자 재강은 몸을 돌리고 살짝 물러섰다.

명선은 아랑곳없이 그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명선에게 밀려 재강은 화장대에 붙어 섰다.

재강은 명선의 눈을 응시하며 양손으로 화장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기댔다.

명선이 재강의 몸과 양손 사이로 두 팔을 뻗어 화장대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둘의 얼굴이 한층 가까워졌다.

“키스해.”

명선이 재강의 입술에 대고 속삭였다.

“싫어.”

“왜?”

“싫은 데 이유가 있어?”

“내가 싫어?”

“……싫어.”

“나랑 하는 섹스도?”

“…….”

명선은 재강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만 움직여 재강의 허리와 배를 쓰다듬고 천천히 바지 버클을 풀었다.

명선이 지퍼를 내리는 데도 재강은 막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 안의 성기는 살짝 단단해진 채였다.

얘를 흥분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얘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겠지.

좋아하는 게 다 뭐야, 최소한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도 없을 거야.

섹스에 미친, 시끄러운 한량 정도로 기억되려나.

명선은 재강의 속옷 안으로 손을 밀어 넣고 성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둘은 서로의 눈만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이준원은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따위로 굴면서도 얘한테 한결같은 사랑과 충성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얘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 몸이 가는 사람과 마음이 가는 사람을 철저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걸까?

근데 나도 한때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어쩌다가 네 몸뿐만이 아니라 너라는 사람까지 좋아하게 된 거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명선은 재강의 속옷과 바지를 허벅지까지 끌어내리고 몸을 밀착해 자신의 성기를 문질러댔다.

그러는 동안 재강의 목과 귀, 뺨에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재강은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한 번 더 하자, 어?”

명선이 재강의 목에 대고 헐떡였다.

“나는 싫어해도 나랑 하는 섹스는 좋아하잖아.”

재강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좆은 바짝 서고 호흡도 거칠어졌으면서, 이렇게 꼼짝도 안 하겠다 이거냐?

명선은 계속 성기를 맞대고 비벼대다가 재강의 목을 안고 한쪽 발을 화장대 가장자리로 턱 올렸다.

재강은 작게 휘청했다가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명선은 다른 쪽 발도 화장대 가장자리로 올리고 재강에게 코알라처럼 매달렸다. 힘이 잔뜩 들어간 둘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상태에서 명선은 한쪽 손을 뒤로 내려 재강의 것을 잡고 자신의 뒤에 문질렀다. 둘이 씨근씨근 내쉬는 숨이 서로의 얼굴와 몸을 뒤덮었다.

명선은 재강의 성기를 자신의 뒤에 집어넣었다.

“아하아…….”

명선은 잔뜩 찡그린 채 신음했다. 재강이 눈을 꼭 감았다 떴다.

명선은 재강에게 매달린 채 천천히 몸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몸 가득 저릿저릿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명선이 움직일 때마다 둘의 코와 숨이 스쳤다.

재강 역시 잔뜩 찡그린 채, 명선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나는…… 싫어해도, 하아, 나랑, 하는 섹스는, 좋아하잖아, 그치?”

명선이 속삭이고 재강의 입술을 깊게 빨았다.

엉덩이에 재강의 손이 와 닿는 게 느껴졌다. 오른쪽, 그리고 왼쪽에.

재강은 명선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움켜쥔 채 자기 쪽으로 더 바짝 당겼다. 아래쪽에서 재강은 바지와 속옷을 모두 벗어 버리는 듯했다.

재강이 화장대에서 몸을 떼고 몇 걸음 움직이자 명선의 발도 떨어졌다. 무게가 실리며 안쪽은 더 깊이 자극되었다.

명선은 재강의 입 안으로 숨을 헉헉 내뱉으며 신음했다.

재강은 그대로 명선을 안은 채 침대로 가 눕히고 위로 올라왔다.

재강이 밀쳐대는 힘에 명선의 다리가 덜컹덜컹 흔들렸다. 발가락은 잔뜩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았다.

명선은 재강의 몸을 힘껏 끌어안고 그의 머리와 등을 쥐어뜯기도 했다.

이준원이 다시 떠날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이렇게 하다가, 또 그 빈자리를 내가 들어가서 메꿔 주고, 그리고 다시 이준원이 돌아오면 이렇게 몰래 만나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이준원보다 나를 더 좋아하게 될지 누가 알아.

……사실, 그건 정말 모르겠다.

얘가 이준원보다 나를 더 좋아하게 될 수 있을지는.

아.

나도 한때는 자신감 빼면 시체인 인간이었는데.

* * *

사정 후 둘은 침대에 얼마간 널브러져 있었다.

재강은 천장을 바라보고, 명선은 재강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야.”

명선이 부르자 재강이 시선만 살짝 명선 쪽으로 돌렸다.

“내일 또 하자.”

“…….”

“아니면 모레?”

재강은 다시 시선을 천장 쪽으로 돌렸다.

“싫다는 뜻?”

“…….”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뜻?”

“…….”

“또 시끄럽게 쫑알대고 있으니까 닥치라는 뜻?”

재강이 피식 웃으며 양손으로 얼굴을 이리저리 문질렀다.

용기가 난 명선은 재강에게 좀 더 가까이 갔다.

“언제 되는데?”

명선이 재강의 가슴에 손을 올리자 재강이 얼른 그 손을 잡았다.

재강이 너무 꽉 잡아서 손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명선은 빼거나 쳐내지 않았다.

재강은 명선의 손을 움켜잡고 얼마간 그대로 있다가 침대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명선은 말없이 일어나 욕실로 가는 재강의 뒷모습을 응시하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일도 나랑 놀아 주긴 한다는 거야, 뭐야.

내일도 이준원한테 다 불어버린다고 양아치 짓을 해야 하는 거냐고, 뭐냐고.

그런 쓰레기 짓을 또 해야 되나? 쟤야 뭐, 내가 갈 데까지 간 인간이란 걸 이미 알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같이 있는 게 좋은 건가, 아니면 나도 마음 접고 내 인생 살아야 하는 건가.

당연히 답은 후자겠지.

근데 그게 안 되는 걸 어떡하라고요.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죽겠는데.

재강은 씻고 나와 다시 옷을 입고 머리를 말렸다. 그러고는 명선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배낭을 메며 현관으로 갔다.

“숯불.”

참다못한 명선이 그 뒤를 따랐다.

재강은 명선을 등지고 고개를 숙인 채 신발을 신었다.

“요새 잠은, 잘 자냐?”

“…….”

재강은 그대로 서서 신발코를 바닥에 대고 몇 번 쳤다.

“아니 뭐, 이준원 옆에 있으면 잘 잔댔으니까 잘 자기는 하겠다만.”

“……네 알 바는 아니지.”

“앞으로 이준원이랑 하고 나랑도 할 거면 내 알 바인 건 맞지. 잘 자고 잘 먹으면서 체력 관리도 해야 되지 않겠어?”

재강은 짧게 한숨을 쉬는 듯하더니 문을 열었다.

야, 가지 마. 나랑 여기서 자고 가.

명선이 얼른 재강의 손을 잡았다.

나가려던 재강이 우뚝 멈췄다가 손을 내려다봤다.

명선은 우물쭈물하다 재강의 손에 난 잇자국을 살짝 만지작거렸다.

“……많이 아팠지?”

“그냥.”

“미안해.”

“…….”

잠시 가만히 서 있던 재강은 곧 문을 더 활짝 열며 밖으로 나갔다. 명선의 손에서 재강의 손이 스륵 빠져나갔다.

명선은 두 팔을 늘어뜨리고 선 채 눈앞에서 닫히는 문을 바라봤다.

그냥…… 어떤 감정인지 사실대로 다 얘기하고 주접떨면서 매달릴까?

네 몸이랑 섹스만이 아니라 너라는 사람 자체가 너무 좋은 거라고, 나랑 제대로 사귀어 보자고 고백하면.

……더 역효과 나려나? 지금보다 더 싫어하면서 피하려나?

갑자기 자극받아서 이준원이랑 연애라도 하려나?

씨발!

아, 어쩌란 말이야!

명선은 뱃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참 동안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 했다.

* * *

다음 날 명선은 결국 가든에 다시 일하러 가기로 했다.

출근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 같기도, 천국으로 가는 길 같기도 했다. 재강을 볼 수 있는 건 좋았지만, 마냥 좋기만 할 리는 없었으니.

그래도 어쨌든 재강을 보기는 해야겠기에, 명선은 시간 맞춰 꾸역꾸역 가든으로 나왔다.

주차장에 재강의 자전거가 보이지 않자 명선은 시간을 확인하고 뒤뜰로 먼저 가봤다.

숯불 방엔 아무도 없었다.

“나보다 늦게 나와?”

명선은 찌푸리고 중얼거리며 홀 건물로 갔다.

처음 보는 남자가 빗자루를 든 양자와 대화 하고 있었다.

“명선이 왔구나.”

“어, 엄마. 근데 누구……?”

명선이 둘 곁으로 다가갔다. 남자가 명선과 눈을 맞추며 슬쩍 인사했다.

“누구긴, 영찬 씨…… 아, 둘이 모르는구나, 참. 여태 한 번도 안 마주쳤네.”

“아아.”

말로만 듣던 영찬. 오전 타임과 토요일에 숯불 장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었다.

명선도 영찬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여기는 우리 막내. 저녁때 카운터 봐요. 일요일이랑.”

“아, 네.”

영찬이 명선에게 다시 눈인사를 건네고는 밖으로 나갔다.

“오늘 재강 씨 대신 영찬 씨가 할 거야. 영찬 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뭐니.”

카운터 책상 앞으로 가 그 위를 정리하던 명선이 고개를 들었다.

“응?”

“일단 오늘이랑 내일은 영찬 씨가 메꾼댔고, 인력 사무소에 전화는 해놨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

“엄마, 뭔 소리야?”

바닥을 쓸던 양자가 허리를 펴고 명선을 바라봤다.

“재강 씨 속초 내려갔잖아.”

“…….”

순식간에 명선의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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