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2. 함께해요
대용용
[써니 아직도 속초?]
써니
[어 ㅎㅎ]
대용용
[뭐야 서울 언제 오는데?]
[9월에 간 애가 왜 10월이 되도록 안 와?]
써니
[나를 너무 그리워하시넹]
[내일 간다구요 내일ㅋㅋ]
대용용
[뭐하느라 이렇게 오래있어? 네가 왜 거깄어 도대체]
써니
[할아버지 재산 처리하고 주변 정리하느라 내 남친이 넘 바쁘당^^]
대용은 떨떠름한 표정의 이모티콘을 연달아 보냈다.
써니
[이제 다 정리되긴 했어]
[내일이면 서울로 이사 ㄱㄱ]
[서울 몇 번 들르긴 했는데 참]
[신혼집 보러 가느라공]
대용용
[?????]
[근데 집만 보고 쏙 내려갔다고??]
[나한텐 연락도 없이??]
[이 연애에 미친놈아??????]
써니
[바빳어 자기야]
[이사가 보통 일이 아니드라]
대용용
[써니 진짜 이렇게 될줄은 몰랏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써니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좀해바바]
대용용
[ㅊㅋ]
써니
[진심으로]
대용용
[암튼 서울와서 봐]
[니 앤 데리고 나와]
[나노단위로 평가해주마]
[속]
[속]
[들]
[이]
써니
[안돼]
[내 애인 물지마]
[알고보면 여린 사람이라궁]
대용용
[속]
[속]
[들]
[이]
써니
[끼잉...]
* * *
명선과 재강은 마침내 서울로 왔다.
오전 늦게 새집에 도착해 오후 내내 이삿짐을 나르고 집을 정리한 후, 명선은 부모와 사는 집으로 향했다.
부모가 퇴근하길 기다리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명선은 현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엄마, 나 독립하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벗던 양자가 동작을 멈추고 눈을 크게 뜬 채 명선을 쳐다봤다.
곧 현관문이 열리며 정식이 뒤이어 들어왔다.
“명선이 왔구나. 잘 놀고 왔어?”
정식과 양자는 명선이 속초에 있는 친구 집에서 늦은 여름휴가를 보내다 온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독립을 어디서 해?”
양자가 뒤늦게 답하며 집 안으로 들어오고 정식도 그 뒤를 따랐다.
“독립?”
정식이 양자와 명선을 번갈아 바라봤다.
“어. 재강 형이랑 같이 살 거야.”
“재강? 그 재강? 김재강 씨?”
“어. 숯불 알바 형.”
양자와 정식이 멍하니 명선을 쳐다봤다.
정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재강 씨랑 같이 산다고? 명선이 독립한다고?”
“그 형 서울로 이사 왔거든. 근데 방이 두 개길래 나 하나 달라고 졸랐어.”
여전히 멍한 얼굴인 양자와 정식은 서로를 봤다가 다시 명선을 봤다.
“……아니…… 무슨 소리야, 싸우고 사이 나빠진 거 아니었어?”
양자가 물으며 소파로 가 앉았다.
명선이 그 옆에 가 앉고 정식도 머뭇대다 명선의 곁에 와 앉았다.
“싸우긴. 그냥 서로 사느라 바빠서 잠깐 떨어져 있었던 거지. 우리 계속 친해. 완전 베프야.”
“근데 네가 왜 재강 씨랑 같이 살아, 멀쩡한 집 놔두고?”
“집이 멀쩡하면 뭐 하냐구요, 나는 외로운데.”
명선은 부모의 얼굴에 상처받은 표정이 스쳐 가는 모습을 보고 아차 싶었다.
“아니, 외롭다기보다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고. 일단 그 형이랑 같이 있으면 좋으니까. 그리고 마침 기회도 되니까 기회를 잡아서 같이 살아 본다는 거지. 전에 같이 지낼 때도 좋았거든. 서로 진짜 잘 맞고. 그 형도 흔쾌히 좋다고 했어. 나도 흔쾌히 좋고. 다 흔쾌 흔쾌. 완전 흔쾌한 상황이야.”
“…….”
명선의 양옆에 앉은 양자와 정식은 말없이 서로를 보고 명선을 봤다.
“지금 나같이 철없는 놈이 무슨 독립을 하나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근데 내가 그 형이랑 있으면서 철이 조금씩 드는 것 같아. 진짜 내가 느끼겠더라니까? 엄마랑 아빠도 알잖아. 그 형이 어린 나이에도 얼마나 의젓하고 성실한지. 그걸 보고 배우게 되는 거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돼 있더라고. 내가 드디어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명선은 잠시 말을 멈추고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철이 든 건 모르겠지만 일단 바텀으로서의 기쁨을 많이 배우긴 했지.
“그 형한테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아. 같이 있으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그게 너무 좋고.”
이건 완전히 100퍼센트 진심.
“그래서 그런 사람이랑 같이 지내면 정말 좋을 것 같아.”
명선은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보다가 양옆의 부모 얼굴을 차례차례 바라봤다.
“……명선이가.”
정식은 살짝 목이 멘 듯했다.
“철이 좀 들긴 들었구나.”
정식이 명선의 등을 쓰다듬었다.
명선이 따사롭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철이 들어. 독립도 돈이 있어야 독립이지.”
양자가 떫은 표정인 채 중얼거렸다.
후후, 이 말이 나오길 기다렸지.
명선이 얼른 양자를 쳐다봤다.
“내 앞으로 적금 든 거 있지 않아?”
“그거 네 결혼 자금이야.”
엄마, 나 숯불이랑 결혼하는 거나 다름없어.
“근데 엄마, 내가 결혼을 할 땐 당당한 성인이 된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려면 결혼 자금 같은 것도 내 힘으로 모아 놓은 상태여야 한다는 거지. 부모님이 모아 준 결혼 자금으로 결혼하는 사람이 대체 무슨 큰일을 할 수 있겠어? 그건 결혼 상대한테도 진짜 부끄러운 일이지 않아?”
양자가 조금 놀란 얼굴로 명선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진짜 결혼 자금은 지금부터 내가 열심히 일해서 모을게. 적금은 독립 자금으로 생각하고 나한테 줘.”
“우리 명선이가…….”
정식은 조금 더 목 멘 소리를 내며 연신 명선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나 양자의 얼굴엔 살짝 미심쩍은 표정이 스쳐 갔다.
“결혼할 땐 당당한 성인이어야 되고, 독립할 땐 당당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결혼 자금으론 안 되고 독립 자금으론 된다고?”
엄마, 예리하게 굴지 마.
“어차피 나한테 주려고 모아둔 돈이잖아. 그건 이제 나한테 넘겨주고, 진정한 성인이 될 아들의 앞날을 축하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이거지. 정 찜찜하면 내가 결혼해서 나가는 셈 쳐. 결혼해서 독립하는 거나 그냥 독립하는 거나 어쨌든 집 나가는 건 똑같잖아.”
“…….”
“그 돈을 밑천으로 해서 진짜 잘살아 볼게, 엄마. 나 계획도 쫙 세워뒀어. 재강 형 집에 월세 내고 살면서 취직할 거야. 그래서 착실하게 저축도 하고. 앞으로 엄마 아빠한테 손 벌리는 일도 없을 거야.”
핵심은 이거지.
명선은 나불대면서 양자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양자와 정식이 늘 가든의 관리자 자리에 명선을 앉히는 걸 꿈꾸고 있긴 했지만, 그건 그저 아무 꿈도 직업도 없는 명선이 그나마 밥 벌어 먹고살 길이 그것뿐이어서란 걸 명선도 알고는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명선이 제 앞길을 스스로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양자의 얼굴에 어느 정도 혹한 기운이 올라오는 듯했다.
“……취직한다고?”
“취직해야지. 그래야 월세도 내고 내 생활비도 벌고 저축도 할 수 있잖아.”
“어디에 취직하게?”
“일단 알바부터 할 거야. 그러면서 공부해서…….”
명선이 눈만 굴려 얼른 거실을 훑어봤다. 소파 앞 탁자엔 집에 오는 길에 테이크아웃 해온 커피 컵이 놓여 있었다.
“바리스타 자격증 따려고.”
“바리스타?”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지만 명선은 계속 나불댔다.
“어. 커피 만드는 사람 있잖아. 진짜 전문적으로 진지하게 만드는 사람. 최종 계획은 내 이름을 당당히 붙인 커피콩을 파는 거야. 국제 대회도 나가고. 진짜 상 많이 탄 분이 하는 로스터리 있는데 나 그분이랑 대화도 많이 해봤어. 전망도 좋아. 해외에서도 일할 수 있고.”
뭔 커피콩…… 마셔 봤자 맨날 아이스 아메리카논데.
그래도 이런 전략이 안 먹힐 수가 없지.
바리스타, 로스터리 같은 용어 나오고 국제 대회 들먹이고 그러면 진지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고. 특히 엄마 아빠 나이대 사람들한텐.
양자의 얼굴에서 혹한 기운을 넘어선 긍정의 기운이 스멀스멀 떠오르자 명선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건…… 언제부터 계획을 잡아 놓고 있었다니?”
“재강 형같이 성실한 사람이랑 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
명선은 신뢰감을 줄 만한 표정을 얼굴 가득 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자꾸 좋은 영향을 받게 된다고. ‘아,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니까.”
떠오르는 대로 말해 놓고 명선은 가만히 자기 무릎을 내려다봤다.
이것도…… 100퍼센트 진심이네.
빨리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기보단, 같이 있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숯불이 나랑 같이 있을 때 행복하고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어.
그러기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와, 숯불. 진짜 놀랍지 않냐?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리다니.
명선이 그러는 동안 정식과 양자도 함께 말이 없었다.
정식은 명선의 등을 계속 쓰다듬었고 양자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 채였다.
* * *
엎드려 누운 명선의 위에서 재강은 빠르게 몸을 부딪쳐댔다.
명선은 시트에 얼굴을 묻은 채 억눌린 신음을 뱉어냈다. 재강의 거센 움직임에 맞춰 명선의 얼굴이 시트를 긁어댔다.
곧 재강이 밀치는 속도를 조금씩 늦췄다. 재강이 낮게 씨근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재강은 그렇게 숨을 몰아쉬면서 성기를 거의 끝까지 빼냈다가 천천히 밀어 넣기를 반복했다.
명선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시트에 뺨을 댔다. 벌어진 입으로 헐떡이는 숨이 새어 나왔다.
재강의 것이 쑤욱 밀려들어 올 때마다 명선의 몸이 움찔 떨렸다.
명선은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몸 안을 느린 속도로 드나드는 재강의 성기를 세세히 느꼈다.
탱탱하고 뜨거운 성기. 그것이 몸속을 계속 자극하고 있었다.
재강이 양손으로 명선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단단하고 힘센 손가락들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기라도 할 것처럼 엉덩이를 압박했다.
“아, 씨, 너무 좋아…….”
명선이 찡그린 채 한숨 쉬듯 길게 소리를 뱉어냈다.
재강은 꽉 쥔 엉덩이를 양옆으로 벌리고서 성기를 천천히 넣었다가 뺐다. 박자에 맞춰 명선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재강이 움직이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자 명선의 발끝이 그에 맞춰 점점 오그라들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종아리와 발목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흑…….”
명선은 거의 울상이 된 채로, 재강에게 밀려 덜컹덜컹 흔들렸다. 둘의 아래에서 시트가 어지럽게 구겨지고 밀렸다.
재강이 명선의 가슴 아래로 손을 넣어 끌어안으며 엎드리자 명선은 얼른 재강의 팔과 머리를 꽉 붙잡았다.
재강의 몸은 땀에 젖어 뜨겁고 축축했다. 명선은 재강의 피부를 정신없이 쥐었다 놓고 어루만지며 그 근육의 힘과 열기를 만끽했다.
“너도 좋지, 너도…… 응? 말해 줘, 너도…….”
헐떡대는 숨 사이사이로 명선이 거칠게 속삭였다.
재강이 명선의 목과 귓가에 입을 맞췄다. 재강의 숨소리에 섞여 낮은 신음이 작게 들려왔다.
재강이 명선의 목을 감싸 쥐자 명선은 고개를 한껏 젖혀 재강의 어깨에 기댔다.
“말해, 줘. 말해 봐, 너도.”
“좋아, 나도…….”
재강이 명선의 목에 입술을 문대며 속삭였다.
명선은 구겨진 시트를 양손으로 그러쥐었다.
아래에서 바짝 힘이 들어간 둘의 다리가 이리저리 뒤엉키고 서로를 문질러댔다.
“나도 너무 좋아.”
재강이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하며 명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재강의 몸에 완전히 덮이고, 깔리고, 삽입 당한 채, 그리고 재강의 품 안에 가득 안긴 채 그런 말까지 들으니 명선은 기절할 것만 같았다.
행복해서 기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지금 이 순간의 나일 거야.
명선은 재강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마음껏 행복의 비명을 질러댔다.
* * *
사정 후에도 둘은 한참 동안 안고 누워 키스했다.
재강의 몸 위에 엎드려 누운 명선이 곧 입술을 떼고 재강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재강도 스르르 눈을 떴다.
눈이 마주치자 명선은 한껏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새집에서의 첫 섹스네.”
그 얼굴을 바라보던 재강이 피식 웃으며 명선의 뺨을 어루만졌다.
재강이 엄지손가락 끝으로 명선의 보조개를 가볍게 누르자 명선은 그쪽에 힘을 줘서 더 쏙 들어가게 했다.
재강의 얼굴에 즐거운 미소가 떠올랐다.
“좋냐? 보조개 변태.”
명선의 말에 재강이 손을 치웠다.
“왜 변태야.”
“집착하잖아.”
“…….”
“내 엉덩이에도 집착하고.”
“사람 몸에 대고 몇 퍼센트 어쩌고 떠들던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누가 나 변태 아니래? 난 변태야. 인정.”
재강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명선을 바라보다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예쁘니까 그렇지.”
“뭐가?”
“보조개가.”
“보조개만?”
“……엉덩이도.”
“보조개랑 엉덩이만?”
“너 이제 내려가.”
재강이 명선의 몸을 짐짝 내리듯 치웠다.
명선은 재강 곁에 누웠다가 다시 재강의 몸을 안으며 달라붙었다.
“다른 덴 안 예뻐?”
명선은 등을 보이며 돌아누우려는 재강을 악착같이 잡아끌어 똑바로 눕도록 만들었다.
재강은 결국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명선은 재강의 가슴에 한 팔을 올리고 어깨에 찰싹 붙었다.
“응? 다른 덴 안 예뻐? 난 너의 모든 것이 예뻐 보이는데.”
“…….”
“몸 구석구석이 다 예뻐. 목소리랑 하품하는 소리랑 재채기 소리까지.”
“너 진짜 변태야.”
“나도 안다니까. 그래서, 또 어디가 예뻐? 내 보조개랑 엉덩이랑, 또?”
“아니, 넌 왜 이렇게 확인을 받고 싶어 해?”
“넌 마음껏 해도 될 말을 왜 이렇게 안 하려고 하는데?”
“아, 정말…….”
다시 재강은 돌아누우려 하고 명선은 그것을 막느라 작은 소동이 일었다.
재강이 체념하며 도로 눕자 명선은 아까와 같은 자세로 재강에게 달라붙었다.
“애인한테는 애정을 마음껏 표현해야지.”
“하잖아.”
“난 더 원해. 행동은 충분하니까 말도 해줘.”
“무슨 말?”
“그냥 속에 있는 말을 해주면 되잖아. 사랑스러울 땐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너무 좋을 땐 좋아한다고 말하고, 예뻐 죽겠을 땐 어디가 예쁘다고 말하고. 그게 뭐가 어려워?”
“안 하던 걸 갑자기 하니까 어렵지. 너는 그만 좀 보채. 그렇게 따지면 안 보채는 건 뭐가 어려운데?”
명선이 눈을 깜박이며 재강의 배를 만지작거렸다.
“너 은근히 논리적인 거 알지?”
“나를 얼마나 무식하게 봤으면 이런 거로 논리적이란 말이 나와.”
“자,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보채는 걸 자제할 테니까 너는 애정 섞인 말을 좀 더 자유롭게 하기로.”
“…….”
“싫어? 왜? 어느 부분이? 나 진짜 자제할 건데.”
“지금도 보채고 있잖아.”
“은근히 예리하기도 하네, 숯불.”
명선이 킥킥 웃으며 재강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
“……너도 다 예뻐.”
재강의 목소리는 작았다.
“뭐라고? 못 들었어.”
“들었잖아.”
“못 들었어. 내가 내는 쪽쪽 소리 때문에. 뽀뽀를 너무 열정적으로 하다 보니.”
“너도 다 예쁘다고.”
“좀 더 구체적이면 좋겠다.”
재강이 욕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돌아누웠다.
“아잉, 숯불.”
명선이 그 등에 달라붙자 재강은 잠시 후 다시 이쪽으로 돌아누워 명선을 품에 안았다.
둘은 서로의 몸에 다리를 걸치며 바싹 붙었다.
“나도 네 목소리 좋아해.”
재강이 낮게 말했다.
“하품하는 소리랑 재채기 소리도.”
“섹스할 때 내는 소리도 좋지?”
“……응.”
“전화 목소리는? 그건 어때?”
“그것도 예뻐.”
“노래할 땐? 씻을 땐? 똥 쌀 땐?”
“안 보챈다며, 이 새끼야.”
명선이 재강의 품 안에서 키득거렸다.
“내가 워낙에 관종이라 어쩔 수 없어.”
“다 예쁘고 좋으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 안 할 테니까 가급적이면 떠오를 때마다 말로 해줘. 네 목소리랑 말투로 직접 듣고 싶단 말이야.”
“알았어.”
재강이 명선의 등을 쓰다듬다가 머리에 입을 맞췄다.
“숯불, 암튼 행동은 많이 다정해졌다.”
“야, 가끔은 그냥 좀 넘겨. 자꾸 지적하면 신경 쓰여서 못 한다고.”
“내 목소리랑 말투로 직접 들려주고 싶어서 그래. 너한테 본보기를 보이는 거지.”
“으휴.”
재강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명선을 더 바짝 안고 엉덩이를 토닥였다.
명선은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난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여덟 살처럼 말하지 좀 마.”
“정말이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좋아.”
“…….”
“넌 어때?”
“보채지 말랬지.”
명선이 꾸물꾸물 고개를 들어 재강과 눈을 맞췄다.
재강은 시선을 피했다가 다시 눈을 돌려 명선을 마주 봤다. 둘은 얼마간 말없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나도…….”
재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제일 좋아.”
“…….”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명선은 재강의 두 눈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 얼굴을 들이밀었다.
둘은 눈을 꼭 감고서 부드럽게 서로의 입술을 빨았다.
얼마 후 입술을 떼고 명선이 먼저 눈을 떴다. 명선은 재강의 눈꺼풀이 스르르 열리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응시했다.
“나 엄마 아빠한테 바리스타 되겠다고 하고 나왔어.”
“……바리스타?”
“어.”
명선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럼…… 뭐 해야 되는데? 학원 같은 데 가야 하는 거야?”
“몰라. 그냥 나온 말이야. 내가 바리스타는 무슨.”
“…….”
“독립적인 인상 정도는 심어 줘야 할 것 같아서 아무거나 둘러댄 거야. 카페에 자주 가긴 해도 바리스타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
“가든 카운터 다시 보란 얘긴 안 하셔?”
“내가 워낙에 바리스타의 꿈을 구체적이고 건설적으로 설명해 놔서 그런지 그런 말은 없네. 아빠는 감동해서 울기까지 했다니까.”
재강은 실실대는 명선의 얼굴을 바라보다 그 머리를 끌어안았다.
“너 진짜 무서운 놈이야.”
“너한텐 안 그럴 거니까 걱정 마.”
“…….”
“근데 너 정말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쉬는 거 맞지?”
“응.”
“하긴, 돈도 있고 집도 있고 매력 터지는 애인도 있는데.”
“꼭 그것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제 진지하게 정착할 만한 일을 찾아봐도 될 것 같아서.”
“빈말 못 하는 건 여전하구만.”
둘은 낮게 킥킥 웃고는 얼마간 서로를 안은 채 몸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야, 우리 동업해 보는 건 어때?”
명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동업. 너랑 나랑 둘이. 아니, 창업.”
“무슨 창업?”
“음, 뭐…… 글쎄? 마음먹고 찾아보면 뭔가는 있지 않겠냐? 내 말빨이랑 네 성실함이 합쳐지면 뭐든 못 할라고.”
“…….”
“너 일산에서 하던 잡일 대행 같은 걸 본격적으로 판 벌여 봐도 될 것이고. 내가 홍보와 마케팅을 맡고 현장 출동은 같이하는 거야. 아, 잠깐만. 헐? 괜찮은 것 같은데? 야, 대박이지 않냐!”
명선은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맨날 붙어 다닐 수 있겠네. 생각 좀 해봐. 야, 한번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좀 그려봐 봐. 그려져? 각이 좀 나와?”
“진정 좀 해.”
“그럼 우리 둘 다 사장 되는 거야. 넌 김 사장, 나는 권 사장. 나도 사장 소리 좀 들어 보자. 우리 엄마랑 아빠가 대용이 부사장 소리 듣는 걸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와, 씨. 이거네. 이런 방법이 있었네. 그냥 내가 사업을 하면 내가 사장이 되는 거였는데!”
“진정 좀 하라고.”
재강이 쿡쿡 웃으며 명선을 더 꽉 안고 등을 토닥였다.
“아니, 헛소리로 넘기지 말고 너도 생각 좀 해봐. 나 진지해.”
“알았어.”
“진짜로.”
“알았다고.”
명선은 재강의 허리를 만지작대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아, 대용이가 너 보고 싶다고 했는데.”
“……대용이?”
“내 친구. 너 게이인지 아닌지 감별하러 왔던.”
“아…… 날 왜?”
“베프 애인이니까 친해지고 싶어 하는 거지.”
“…….”
“같이 가볍게 한잔하자. 재밌는 애야.”
재강은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넌 친구 없으니까 이 기회에 내 친구를 네 친구로 만들어도 되고.”
재강이 눈을 들어 명선을 마주 봤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나?”
“뭐가?”
“너희 부모님 식당에서…… 일하던 사람이랑 사귀는 거.”
“그게 뭐 어때서?”
“너 전에 친구들 앞에서 나 계속 갈군 적도 있었잖아. 무슨 노예 대하듯이.”
명선이 멈칫했다가 스르르 시선을 돌렸다.
“아아…….”
“그때 진짜 재수 없는 재벌 2세 새끼 같았거든.”
“흐음…….”
“그런 친구들한테 나를 애인이라고 소개할 수 있어? 그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아니, 그땐…… 너한테 심술이 좀 나 있던 상황이라. 너도 알잖아, 나 가끔 좆같이 구는 거.”
“가끔?”
“음…… 종종?”
재강이 피식 웃었다. 명선이 재강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안해! 사과가 너무 늦긴 했는데…… 암튼, 그때 내 친구들한테도 욕 많이 먹었어. 그리고 그날 너 모텔에서 복수하긴 했잖아.”
“복수?”
“내가 박아달라고 징징댔을 때 진짜 감정 없는 인간처럼 박고 가버리…….”
명선이 고개를 들고 재강을 쳐다봤다.
“근데 너 그때 뭐야? 나 좋아하고 있던 때 맞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도 너한테 빡친 상태였어.”
“네가 왜?”
“내가 왜? 친구들 데려와서 그 앞에서 똥개 훈련을 시키질 않나, 원이 얘기 들먹이면서 협박을 하지 않나, 손을 갑자기 물지 않나…… 내가 왜 빡쳤냐고?”
“아, 물기도 했구나, 참.”
명선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너는 끝까지 내 감정 같은 건 아무 관심도 없고 내 몸만 필요한 것처럼 굴었으니까. 그런 너를 계속 좋아하는 나한테도 화가 났고.”
“…….”
“솔직히 바로 알바 그만두고 싶었는데 못 했어. 네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
“그러다 그날 할아버지 때문에 속초에 가게 되는 바람에……. 그걸 계기로 어느 정도는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다.”
“어흑, 숯불.”
명선이 다시 재강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되새길수록 정말 우리 삽질 쩔었다.”
재강이 명선을 안고 작게 웃었다.
“내 입이 문제야. 내 잘못이 커. 몸 얘기 같은 거 집어치우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진짜 멍청했어. 왜 그랬지?”
“너도 겁먹었던 거잖아.”
명선의 머리를 쓰다듬는 재강의 손길은 다정했다.
“우리 둘 다, 겁이 너무 많았어.”
“…….”
숯불 이놈은…… 가끔 내 인생 완전히 다 맡기고 무작정 기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니까.
내가 정말 여덟 살짜리 애 같은 건가, 아니면 얘가 노인네 같은 건가.
이준원도 이런 걸 감지하고 그렇게 옆에 두려고 했던 건가.
사람을 그런 식으로 이용해 먹고 말이야.
난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아. 이준원. 오늘도 잊지 않고 주문을 걸어 주마. 대머리가 되어라.
“그럼 이젠, 겁이 좀 없어졌으니까 대용이랑 같이 한잔하는 거지?”
“…….”
“나랑 비슷한 애야. 그냥 나 대하듯이 하면 돼. 재밌을 거야.”
“…….”
“내 베프인데 첫 애인이랑 정식으로 인사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내 처음이자 마지막 애인이잖아. 원 앤 온니.”
“……알았어.”
신난 명선이 몸을 들썩였다.
“네 친구한테도…… 아, 너 친구 없지, 참.”
“그 얘기 좀 그만해.”
“나중에라도 친구 생기면 소개해 줘.”
“알았어.”
* * *
“아, 저기 있네.”
주점에 가까워지자 창을 통해 안쪽에 혼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대용이 보였다.
“늦은 건 아니니까 걱정 마. 쟤가 일찍 온 거야.”
명선은 말이 없는 재강을 이끌고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둘이 가까워지자 대용이 고개를 들었다가 활짝 웃으며 일어섰다.
“써니, 얼마 만이야.”
대용과 명선은 한쪽 팔로 서로의 어깨를 가볍게 안으며 인사했다.
몸을 떼는 대용의 시선이 곧장 뒤에 선 재강에게 가 꽂혔다.
“안녕하세요.”
대용이 손을 내밀자 재강이 그 손을 잡고 악수하며 고개를 까딱했다.
“말씀 정말 많이 들었어요. 어떻게, 오시느라 힘들진 않으셨고요? 날씨가 한창 가을이라 청량하고 걷기도 좋고, 그죠?”
“……어, 네.”
재강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명선을 바라봤다.
명선이 의자에 앉으며 재강을 끌어당겨 곁에 앉도록 했다.
“앉아, 앉아.”
대용도 도로 자리에 앉았다. 시선은 여전히 재강을 향한 채였고 눈이 반짝거렸다.
“저희 구면인데 첫 번째 뵀을 땐 상황이 많이 달라서 제대로 인사를 나눌 수도 없었네요. 그때 무슨 일이었는지 얘기는 들으셨죠?”
“네.”
“이렇게라도 정식으로 인사하니까 좋네요. 진짜 뵙고 싶었거든요.”
“야, 뭘 이렇게 압박을 해? 왜 이래? 뚫어지면 안 되니까 그만 쳐다봐.”
명선이 재강의 어깨에 붙어 앉으며 대용의 얼굴 앞으로 손을 내저었다.
재강이 슬그머니 일어섰다.
“잠깐 화장실 좀…….”
대용의 시선은 일어서는 재강을 따라 올라갔다가 저쪽 구석으로 멀어지는 그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만 좀 쳐다보라니까?”
명선이 대용의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대용이 키득거렸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네? 우리 써니의 첫사랑이자 첫애인 이라는 걸 떠올릴수록 신기방기해서.”
“너 때문에 긴장했잖아. 가뜩이나 이런 자리 자체도 처음인 인간이라 얼었는데.”
“얼긴 뭘 얼어. 그냥 사람 만나서 술 마시는 자린데.”
“여기까지 오면서도 생수 500짜리 두 통을 비웠어.”
대용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왜?”
“아, 이런 자리 자체가 처음인 인간이라니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치면 너도 이런 건 처음 아니야? 애인 생긴 것도 처음, 나한테 보여 주는 것도 처음.”
“그렇긴 해도 너는 어쨌든 내 친구잖아. 그러니까 사람 좀 편하게 해주지 않으련?”
“알았어, 알았어. 나도 아까는 좀 흥분했다.”
대용은 웃음을 머금은 채 턱을 괴고 있다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재강을 힐끔댔다.
재강이 가까워질 무렵, 명선은 시선이 마주친 대용을 향해 눈을 부라려 보였다.
대용이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명선이 곁에 앉는 재강의 허리에 팔을 두르자 재강이 흠칫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괜찮아. 여기 게이들 많이 와.”
명선이 재강에게 더 바싹 몸을 붙였다.
재강은 명선을 한 번 쳐다보고는 물에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주문하시죠?”
대용이 재강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명선도 재강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혹시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있어?”
“너 먹고 싶은 거로 해. 친…… 구분이랑.”
“울 애인이 이렇게나 나를 먼저 생각하고 그런다.”
명선이 파하하 웃었다.
재강은 어색한 표정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고 대용은 명선을 보며 혀를 찼다.
* * *
“말씀은 지이이인짜 많이 들었어요. 명선이가 입만 열면 숯불 얘기를 해대서요. 진짜 그 숯불 말고, 뭔 말인지 아시죠?”
잔을 재강과 명선의 잔에 차례로 부딪친 대용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네.”
재강은 소주잔 가장자리를 입에 대고 잠시 있다가 한 번에 쭉 들이켰다.
“좋다는 얘기만 잔뜩 했어, 숯불.”
명선이 재강의 어깨에 기대 뺨을 비벼댔다.
“참, 근데 너보다 나이 많은 거 아니야?”
“많아. 되게 꼰대 같고.”
“얼마나?”
“세 살 많은데, 하는 거 보면 한 서른 살은 더 산 사람 같지.”
“네가 너무 애 같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 아닐까?”
음식을 씹느라 볼이 부풀어 있던 재강이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대용을 가리켰다가 명선을 보고 다시 자기를 가리켰다.
‘내 말이 맞잖아!’ 하는 표정이었다.
“아니래. 자기가 꼰대처럼 구는 거 맞대.”
명선이 큼지막한 오징어를 집어 재강의 입에 쑤셔 넣었다.
재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명선을 바라보며 꾸역꾸역 음식을 씹어 삼켰다.
“고생이 많으시죠?”
대용이 말하며 재강을 향해 잔을 내밀자 재강이 자신의 잔을 들고 짧게 맞부딪쳤다.
명선이 얼른 자기 잔을 들어서 둘의 잔에 부딪히며 쨍쨍 소리를 냈다.
“고생은 무슨, 복 터진 거지. 어리고 쌔끈한 애인 생긴 건데.”
“써니, 그런 말은 네 입 말고 다른 사람 입에서 나와야 설득력이 생기는 거 알지?”
“근데, 고생까진 아니에요.”
재강의 말에 명선과 대용의 시선이 재강을 향했다.
“복 터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한텐 많이 과분한…….”
재강이 명선을 슬쩍 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야, 입 찢어진다.”
대용이 함박웃음 가득한 명선을 보며 혀를 찼다.
“말을 끝까지 해, 숯불. 왜 하다 말아.”
“됐어.”
“하긴, 끝까지 안 들어도 뭔 말인지 나는 다 알지.”
명선이 키득대며 재강의 팔을 안고 얼굴을 문질러댔다.
“둘만의 세상이네, 둘만의 세상이야.”
대용이 소주를 홀짝이고 중얼거렸다.
“숯불, 그래도 내가 너한테 과분한 건 아니야. 우린 그냥 천생연분인 거라구.”
“알았으니까 좀…….”
재강이 팔에 은근히 힘을 줘서 명선을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수줍어가지고.”
명선은 킬킬 웃으며 순순이 떨어졌다.
“그럼 명선이가 첫 애인이신 거예요? 연애 자체가 처음?”
“네.”
“어때요?”
“뭐가요?”
“전에 상상했던 연애 같은 거 없었어요? 그거랑 실제랑 비교해 보니까 어떻게 다르다든지.”
재강이 술잔을 내려다보며 잠시 눈만 깜박였다.
“특별히 상상해 본 건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좋아요.”
“뭐가 제일 좋아요?”
“같이 있는 거요.”
명선은 턱을 괸 채 재강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혼자 오래 외로웠을 재강의 과거를 떠올리자 문득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헐, 써니.”
대용의 말에 재강이 명선을 쳐다봤다.
명선의 눈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툭 떨어지자 재강이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왜?”
재강이 얼떨떨한 표정인 채 얼른 손바닥으로 명선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명선이 그 손을 잡고 자기 가슴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써니, 왜 울어?”
“아니…… 우리가 쓸데없이 삽질을 했단 말이지. 그리고 얘가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했고…….”
명선은 피식대는 동시에 코를 훌쩍이며 울먹울먹 말했다.
“벌써 취한 거야, 뭐야?”
대용이 식탁에 놓인 술병과 잔을 들여다봤다.
“야, 내가 진짜 잘할게. 내가 너 정말, 오지게 사랑하는 거 알지?”
명선이 재강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재강은 여전히 좀 당황한 얼굴이면서도, 말없이 명선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나 취한 거 아니야. 완전 말짱한 정신으로 하는 말이라구.”
재강의 품에서 명선이 웅얼거렸다.
“알았어.”
재강이 피식 웃었다.
상황이 좀 진정된 듯하자 대용이 재강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였다.
“우리 써니의 화려한 과거 얘기 좀 들어보시겠어요?”
* * *
“아직도 나 사랑한다고 말해 줘.”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명선이 재강의 목을 끌어안으며 낮게 말했다.
재강은 명선의 허리를 안은 채 눈을 마주 보다가 짧게 입을 맞췄다.
“사랑해.”
“정말?”
뒤섞이는 둘의 숨에서 독한 술 냄새가 훅훅 풍겼다.
“응.”
“아직도?”
“왜 ‘아직도’야?”
“내가 얼마나 난잡하고 지저분하게 놀았는지 다 들었는데도?”
대용이 얘기할 땐 명선도 곁에서 별생각 없이 낄낄대며 맞장구를 치고 보태기도 했으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걱정이 든 참이었다.
혹시라도 재강에게 그런 것들이 나쁘게 들리진 않았을지.
재강은 눈을 살짝 내리깐 채 깜박이다 다시 명선과 시선을 맞췄다.
“그게 난잡하고 지저분한 거야?”
“……아닌가?”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음…….”
“어차피 네가 이상하고 역겨운 놈이란 건 전에도 알고 있었고.”
“…….”
둘은 얼마간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다 동시에 풉 하고 웃었다.
그대로 이마를 맞대고 웃다 서로에게 입을 맞추기도 했다.
“하긴, 걱정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네.”
“사랑해.”
재강이 속삭였다.
명선은 재강의 입술과 눈을 번갈아 가며 들여다봤다.
“누구를?”
“……너를.”
“나를 어쩐다고?”
“너를 사랑해.”
명선이 빙그레 웃었다. 재강이 명선의 얼굴을 감싸 쥐고 입가 양옆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사랑해. 아직도, 사랑해.”
“…….”
“지금도, 앞으로도, 매일매일, 계속.”
“너 취하니까 말을 꽤 하는구나.”
재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선도 재강의 얼굴을 양손으로 가만히 감싸 쥐었다.
진짜 100퍼센트 얼굴이야.
언제부터 이 얼굴이 이렇게나 좋아졌지? 왜 처음엔 이렇게 완벽한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지?
구석구석 다, 그냥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좋은데.
명선은 문득 첫 섹스 상대인 원조 100퍼센트 남자를 떠올렸다.
갑자기 그에게 한없이 고마웠다. 자신에게 그런 몸을 선보여 집착하게 만들고, 결국엔 재강의 몸에도 집착해 껄떡대도록 이끈 그 남자.
그러다 이런 결론까지 나게 됐으니, 따지고 보면 그가 바로 최고의 조력자인 셈이었다.
“나도 사랑해, 숯불.”
명선은 곧장 재강에게 키스했다.
둘은 그렇게 키스하고 서로를 꼭 안은 채 한참 동안 현관에 그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