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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가득 찼어요 (28/28)

6부. 가득 찼어요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던 명선은 현관에서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벌떡 일어났다가 곧장 도로 털썩 누웠다.

그러다 재강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다시 스르르 일어나 앉았다.

자연스럽게 보여야 돼. 안달한 티를 내면 안 돼.

눈이 마주치자 명선은 재강의 표정을 살피며 짧게 손을 흔들었다. 재강이 살짝 웃었다.

“먼저 와 있었네.”

“어, 뭐…… 너는 좀, 늦은 듯?”

명선이 다시 핸드폰 화면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유난히 차분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눈은 화면을 보고 있으나 명선의 머릿속은 딴생각뿐이었다.

재강이 명선의 곁에 와 앉았다.

재강이 둘 사이에 뭔가 내려놓는 바람에 그제야 명선은 그가 뭘 들고 있었단 걸 알았다.

명선이 상자를 들여다봤다.

“뭐야? 케이크?”

“어.”

“웬 케이크?”

설마 송별식이라도 준비한다는 건 아니겠지.

명선이 상자를 들어 이리저리 들여다봤다.

“어, 씨. 여기 맛있는데. 뭐 샀어?”

명선은 물으면서 상자를 열려다 멈칫했다.

“혹시 이준원이 준 건…….”

“내가 오는 길에 산 거야.”

휴.

“근데 이 시간까지 열려 있었단 말이야?”

“정리 중이었는데 진열장에 하나 있는 게 예쁘길래.”

명선이 상자를 마저 열어 케이크를 꺼냈다.

“우오, 대박.”

명선은 새하얀 생크림을 살짝 찍어 쪽 빨았다가 재강을 힐끔 봤다.

“근데…… 케이크는 왜?”

“예뻐서 샀다니까. 그리고 너 이런 거 좋아하잖아. 애들 입맛이라.”

명선이 코웃음을 쳤다.

“헤어지자고 사 온 거면 죽여 버린다.”

아무런 필터도 거치지 않고, 명선의 입에서 불쑥 말이 나왔다.

사실 정말 하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지만 명선은 딱히 놀라지도 않았다.

“무슨 소리야.”

재강이 엄지로 명선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훔쳤다가 그 손가락을 들여다보고 가볍게 빨았다.

“이준원이 미국 같이 가자고 했지?”

재강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알았어?”

“뻔하지, 그 비열한 새끼.”

“…….”

“문자 내용도 왠지 여우굴 앞에서 사냥꾼이 뭐 이것저것 맛있는 냄새를 피우고 앉아 기다리는 꼬라지 같았어. 마지막 인사를 하자고 한 다음에 막상 만나서는 둘 사이의 아름다웠던…… 뭐 지 혼자만 아름다웠겠지만, 암튼 그런 추억을 막 나불대다가, 결론은 미국에도 함께 가서 시다바리 노릇을 해달라, 이거 아니었겠냐고. 그래서 너의 대답은 뭐였는데? 이 케이크는 무슨 의미지?”

재강은 빠르게 말하는 명선을 조금 멍한 얼굴로 바라봤다.

얼마간 그렇게 바라보던 재강이 문득 케이크의 크림을 손가락 끝에 찍더니 명선에게 내밀었다.

명선은 입술 앞까지 다가온 재강의 손가락을 내려다보다 물고 쪽 빨았다.

손가락을 빼낸 재강은 그 손으로 명선의 턱을 잡고 끌어당겨 키스했다.

둘의 입술과 혀 사이에서 부드러운 크림이 질척이다 녹아 사라졌다.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얘기했어.”

재강이 명선의 입술 가까이에서 속삭였다.

“너랑 같이 있는 게 얼마나 좋은지.”

“…….”

“이제 원이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거야.”

명선은 재강의 입술을 내려다보다 이마를 마주 댔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도 얘기했고?”

“음…… 그건 모르겠다.”

“인중 때려 주는 건?”

“그건 안 했어.”

“제일 중요한 걸 안 했네.”

재강이 낮게 웃었다.

“내가 이준원 얼굴을 아니까, 혹시라도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대신 쳐 줄게.”

“됐어.”

“또 걔 편드냐?”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헹.”

명선이 재강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재강이 명선의 등을 쓰다듬었다.

“야, 난 솔직히…… 가라고 떠밀어 놓고 좀 걱정하긴 했다. 이준원이 다시 꼬리칠 건 뻔했고, 노예 같던 네가 거기 다시 안 넘어갈 거란 확신이 안 들기도 해서.”

“노예……?”

“걔가 아직도, 네 마음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재강은 얼마간 말없이 명선의 등을 느릿느릿 문지르기만 했다.

“이상하게…….”

재강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혹하는 것조차도 없었어.”

“…….”

“준원이가 하는 말들이 얼마나 공허한지, 이제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 같고.”

“아이고, 이제서야. 이 답 없는 팔불출아.”

“이젠 팔불출 아니잖아.”

“아니지. 이젠 나의 팔불출이 돼야지.”

“알았어.”

“우리 귀여운 재강이.”

명선은 흐흥흥 웃으며 재강의 가슴에 얼굴을 비벼댔다.

“근데 케이크는 왜 사 온 거야? 혹시 오늘 너 생일이냐? 전에 장부에서 봤을 땐 봄이었던 것 같은데.”

“말했잖아. 그냥 예뻐 보이기도 하고, 너 좋아하는 거라 샀다고.”

명선이 고개를 들고 재강과 눈을 맞췄다.

“케이크 한가운데에 내가 좆을 푹 꽂았다 빼면 네가 그 좆을 구석구석 빠는 걸 상상했구나.”

재강이 살짝 찡그린 채 눈을 깜박였다.

“아니……?”

“아니면, 내 온몸에 크림을 처바른 다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쪽쪽 빨아 주는 거?”

“…….”

“아니면 그 반대? 내가 너한테 해주는 거로?”

“그냥 너 먹으라고 사 왔다고, 이 새끼야. 음식 갖고 장난질하는 걸 왜 이리 좋아해?”

“그래서…….”

명선이 재강의 허벅지 위로 옮겨가 앉았다.

“해보기도 싫다 이거야?”

“…….”

명선이 키스하자 재강은 바로 명선의 허리를 꼭 안았다.

곧 재강의 손이 아래로 쓸어 내려가 명선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명선은 계속 재강의 입술을 빨며 성기를 맞대고 느릿느릿 문지르다 손을 뻗어 케이크의 크림을 푹 찍었다.

입술을 뗀 명선이 재강의 인중에 크림을 스윽 펴 발랐다.

재강은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명선을 쳐다봤다.

명선은 계속 키득대며 재강의 턱에도 크림을 치덕치덕 처발랐다.

“야, 웃어 봐. 배 내밀고 ‘호우호우호우’ 하면서 인자하게 웃어 봐.”

재강이 한숨을 쉬었다.

“유치한 새끼.”

“이거 봐. 수염 만드니까 이제야 제 나이로 보이네, 꼰대 새끼.”

“네가 나를 꼰대로 만든다고, 네가.”

“아니야, 재강아. 나는 너를 사랑꾼으로 만들어.”

명선이 재강의 머리통을 붙잡고는 크림이 묻은 부분을 핥기 시작했다.

“너는, 나의, 사랑꾼, 팔불출, 숯불, 100퍼센트…….”

명선이 할짝대는 사이사이 속삭였다.

재강은 눈을 감고 명선의 허리를 안은 채 가만히 얼굴을 대고 있었다.

크림을 모두 핥아 먹은 명선은 마지막으로 재강의 입술을 깊숙하게 빨았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감돌았다.

쪽 소리를 내며 명선이 얼굴을 떼자 재강이 눈을 뜨고 명선을 올려다봤다.

“사랑해, 김재강.”

“……나도 사랑해. 권명선.”

얼마간 재강과 마주 보던 명선이 재강의 바지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이제 좆을 케이크에 꽂았다 빼. 싹싹 빨아 줄 테니까.”

재강이 웃음을 터뜨리며 명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명선도 웃으며 재강의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친숙하고 따스한 재강의 체온이 명선의 팔 안을 가득 채웠다.

물론 100퍼센트의 그 근육도 함께.

『숯불 좀 넣어 주세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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