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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12화 (12/201)

12화

[☆당신을 위한 깜짝 퀘스트!☆

-게이트를 해치우고 등장인물을 구출하세요!

난이도: 2-

달성 시 보상: 생존]

[게이트, ‘악몽의 참견’이 문을 열었습니다.]

[데빌루데스의 애완견, 지옥의 번견들이 출몰합니다.]

난데없이 출현한 시스템창이 새로운 퀘스트를 알렸다. 난이도가 2-라는 건 2급보다 조금 낮다는 얘기인가.

그나저나, 보상 한번 존나 후하네. 고작 그게 다냐?

욕하고 싶다. 시스템 시발럼아.

난 어금니를 꽉 악물고 손에 쥔 한야를 크게 휘둘렀다.

붕- 소리가 나며 가로로 길게 그어진 검에 의해 입구의 유리문이 갈라지고, 그 유리를 뚫고 튀어나온 검은 번견들이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으아악!”

피시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이제야 기겁하며 소리를 지르고 저마다 입구와 먼 구석으로 피했다.

나는 검을 살짝 틀어 물방울처럼 검신을 타고 떨어지는 핏물을 흘려 냈다. 검이 새파랗게 빛을 토해 낸다.

나와 잡은 손에 이끌려 눈을 꼭 감은 한솔이와 민형이가 휘청였다.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검을 내 앞에 세웠다.

“크르…!”

날쌘 속도로 몸을 날린 번견 한 마리가 내가 든 검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일반 하운드 품종의 개처럼 보이는 것들이었다. 눈이 새빨갛게 빛나고 이빨이 너무 크다는 것만 빼면.

LED 등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깜박거리고, 건물 전체가 요동쳤다.

게이트가 어디에 열린 걸까. 옥상? 아니면 건물 중간의 어느 상점? 위층엔 음식점이 있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무사한가?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에 흐트러지는 도중에도 나는 몇 번이고 빠르게 검을 휘둘러 덤벼드는 번견들을 베어 냈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한솔이가 덜덜 떨기 시작했다.

“흐윽… 윽….”

작은 흐느낌에 아이들을 돌아보다가, 다시 입구를 바라봤다.

깨진 유리문 너머로 붉은 눈을 빛내는 번견 무리가 침을 흘리며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릉대는 소리, 코밑을 스치는 비린내. 육식 동물의 냄새가 풍긴다.

살점이 어그러져 입가에 더덕더덕 붙은 놈들도 보였다.

나는 내 스킬을 살폈다. 쓸 만한 게 뭐가 있더라. 써 본 건 이형 환위, 그림자 밟기….

다시 번견 세 마리가 동시에 짓쳐들어온다.

손목을 돌려 검을 아까와는 반대로 휘둘렀다. 깨갱거리며 동강 나 옆으로 뿌려진 몸뚱이가 카운터 근처로 날아갔다.

밑에 숨어 있던 알바생이 기겁하며 바닥을 긴다.

눈을 굴려 앞을 확인했다. 계단을 통해 내려온 번견들이 으르렁대며 어떻게 나를 통과할지 각을 재고 있다.

다행히 통로가 좁아서 나 혼자 입구를 막아서니 어느 정도 방어가 되었지만, 숫자가 더 늘면 큰일 난다.

그때 뒤에서 비명이 들렸다.

“아, 안 돼!”

“으아악!”

낭패다. 나는 인상을 구기고 뒤를 확인했다.

입구와 반대쪽에 있던 비상구를 발견한 사람이 문을 연 모양이었다.

거기서도 번견이 튀어나왔다. 맨 처음 문을 연 사람은 금방 희생자가 되어 목을 물어뜯겼다.

-크릉! 컹- 컹!

혼비백산해서 물러나는 사람들에게 열린 비상구 문에서 번견들이 숫자를 더해 가며 튀어나오고, 늘어선 책상 사이로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덤벼들었다.

내 시선이 분산되자 입구 쪽 번견들도 내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내 옆에 있는 아이들을 목표로 뛰어드는 한 마리를 베어 내고 뒷걸음질 쳤다.

몇 사람이 뒤에 번견을 달고 내 쪽으로 뛰어온다. 나는 꾹 잡고 있던 한솔이의 손을 놓았다.

[그림자 밟기(Lv.99) 발동]

이런 건 일일이 안 알려 줘도 안다, 개 같은 시스템아.

나는 허공에 1초 정도 솟구쳤다가, 어둠을 통해 이동하며 번견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순간순간 곳곳에서 시퍼렇게 빛나는 칼날만이 내 위치를 말해 줬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여기저기서 갑자기 번갯불이 튄 것같이 보이지 않을까.

그림자 밟기를 통해 나는 양쪽으로 밀려든 번견들을 순식간에 도살했다.

30초는 걸렸을까 싶은 짧은 시간이었다. 체감은 빌어먹게도 하나하나 베어 내느라 오래 느껴졌지만.

핏방울이 맺힌 검을 털어 내고 다시 한솔이의 옆으로 와 주먹을 꽉 쥔 손을 붙잡았다.

손을 놓았던 시간 동안 숨을 참았던 듯 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 뜨지 말라니까.”

입술을 꽉 문 한솔이가 붉어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눈을 가리라 했던 민형이는 이제 대놓고 사방을 두리번대고 있었다. 흉측한 사체들을 보면 아이들 정신 건강에 안 좋은데.

“…개, 개쩐다….”

사방으로 흩어진 핏물이 무섭지도 않은지 민형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솔이는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다. 혀를 한번 차고 한솔이의 등을 몇 번 토닥여 주곤 민형이에게 말했다.

“한솔이 챙겨서, 책상 밑에 숨어 있어.”

“형 각성자예요? 스킬 뭐예요? 대박…!”

흥분에 찬 목소리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렇게 말해도 내심 떨리는 동공을 숨기지 못해서, 나는 그냥 웃어 줬다.

“왜? 이제 좆밥 아닌 거 같냐?”

“그거랑 이건 좀 다르져!”

맹랑한 목소리에 나는 큼-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치, 형이 좆밥이긴 한데…. 나는 피시방을 두리번거리며 사체가 없는 곳을 찾아서 아이들을 책상 밑에 들어가게 했다. 몇 사람이 내 주위로 다가왔다.

“다들 일단 여기 계세요. 게이트가 어디에 열렸는지도 모르고.”

그들을 지나쳐 열린 비상구 문을 단단히 잠갔다.

앞에 물어뜯긴 시체가 있어서 그것을 안 보이게 옆으로 치워 두었다.

시체를 봐도 이상하게 아무렇지가 않았다. …차해준의 기억 때문이겠지.

그러고는 혹시 몰라 책상 두 개를 쌓아서 비상구 앞을 막았다. 길게 늘어진 전선들을 한야로 대충 잘라 준 뒤 말을 이었다.

“일단 올라가서 상황 좀 보고 올게요.”

휴대폰을 생명 줄처럼 꽉 쥔 알바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리 잘되는 피시방은 아니었고, 시간대도 3시쯤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남아 있는 인원은 번견에게 물려서 뜯긴 팔뚝을 부여잡은 사람과 파리한 안색을 한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그리고 충격받은 얼굴로 덜덜 떠는 여자 한 명.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각본, 각본 왜 안 와….”

“재난 문자도 없었는데 갑자기 게이트가 열리다니-.”

알바생과 여자가 저들끼리 중얼거렸다.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시나리오에서도 이 게이트는 예고 없이 생겼다. 위치가 어딘지 나와 있지 않아 나도 어디에 열린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휴대폰도 먹통이고 컴퓨터들도 전원이 다 나갔다. 게이트가 뿜어내는 마력 때문에 전파가 터지지 않아서다.

시나리오에서 피시방 안의 상황은 제대로 보여 주지 않는다. 당연히 등장인물을 제외한 곳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여기에 조금만 늦게 왔어도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을 거란 거.

어떻게 보면 그저 소설 속 인물들에 불과할 수 있지만,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그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벼운 심정으로 왔는데,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쪼그려 앉아 그들과 눈을 맞췄다.

한솔이는 눈에 보일 정도로 떨고 있었다. 민형이가 한솔이의 손을 꽉 붙잡았다. 듬직하게 친구를 지켜 주는 모습에 나는 웃었다.

“긴장하지 마. 괜찮아. 형이 좀 성능 좋은 딜러거든? 보스 잡고 금방 올게.”

애들만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나는 한솔이와 민형이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곤 일어났다.

일단 1층으로 올라가서 지하 피시방으로 향하는 입구를 막아야겠다. 혹시 또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깐.

개를 닮은 놈들이라 몸집이 그리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는 입구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머릿속에선 읽었던 시나리오가 돌아갔다.

피시방에 동생을 찾으러 온 한 남자, 건물 지하에 위치한 피시방에 들어가려 했지만 건물을 집어삼키고 열린 게이트를 마주친다.

남자는 망설임 없이 동생을 찾으려 게이트에 뛰어든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뛰어든 그는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그 아수라장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지만, 결국 죽은 동생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 안에 클리어 되지 못해 몬스터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이트 앞에서, 각성한다.

남자는 각성과 동시에 폭주해서 동생을 죽인 몬스터들을 없애고 게이트를 닫지만, 자신도 죽을 위기에 처한다.

내가 본 시나리오의 내용을 대강 요약하자면 이 정도였다.

나는 여기서 각성 예정인, 아마도 메인 캐릭터일 그 남자를 구하기 위해 여기로 온 것이었다.

당황스럽게도 남자보다 게이트와 먼저 얽혔지만 말이다.

10페이지 정도 되었던 내용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남자의 이름은 기억이 났다.

정희수.

남자는 폭주 끝에 폐허가 된 건물을 등지고 눈물을 삼킨다.

‘…왜, 왜 대체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해….’

…정희수의 마지막 대사가 좀 안타깝다고 생각했지. 나도 가족을 잃어 봐서 그 마음을 아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1층에 올라온 순간, 나는 멍청하게 입을 벌리며 놀라고 말았다.

1층 입구는 불길해 보이는 검은 혈관 같은 것들이 얽히고설킨, 무언가의 목구멍 안 같은 통로와 이어져 있었다.

“…….”

반대편 입구도 살펴봤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혈관이 마치 심장에 연결된 것처럼 박동했다. 졸라, 졸라 징그러웠다.

……이거 혹시 게이트가 건물을 통째로 삼킨 건가?

***

-긴급! 신당 5동 2급 게이트 발생!

일대 주민들은 바로 대피 바랍니다!

“이번 게이트 위치가 미쳤는데…?”

“왜요?”

송류진의 물음에 옆에 있던 헌터 한 명이 송류진에게 호출기 화면을 띄워 보여 줬다.

상가 건물이 붙어 있는 좁은 골목, 게이트가 건물 사이에 자리 잡고 마력 파장을 원 모양으로 그리고 있었다.

추측 등급은 2급.

송류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 원래 건물이 있었던 겁니까?”

“예.”

원래 있어야 할 건물이 포토샵으로 지운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달리는 차 안, 운전하던 헌터가 차를 멈춰 세웠다.

“길 꽉 막혔어요. 뛰어가야 할 것 같아요.”

밖은 혼비백산이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차를 버리고 피신하고 있었다.

분주한 사람들을 보던 송류진은 묵묵한 표정으로 차 문을 열었다.

2급이면 이럴 만도 했다. 게이트에서 괴수들을 내뱉기 시작하면 이 일대는 반파될 수도 있었다. 반파도 좋게 봐줘서지….

차에서 내린 송류진은 같이 온 헌터에게 물었다.

“반희 형은요?”

“서울역 쪽이래요. 좀 걸린답니다.”

“실무팀 우리 말고 몇이나 붙습니까?”

“일단 A급 헌터들은 대부분 붙는다고 보시면 돼요. 2급 터진 거 오랜만 아닙니까. 그것도 파악도 안 되게 갑자기 터져서, 지금 관리팀 난리 났다는데요.”

헌터의 말에 송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고도 없이 나타난 2급 게이트라니, 송류진도 몇 번 겪어 보지 못했던 위급 상황이었다. 서서히 긴장감이 밀려오고 심장 박동이 조금씩 빨라졌다.

송류진은 어느새 텅 비어 가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불안감이 긴장감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온다. 후, 작게 숨을 뱉어 냈다.

“먼저 갑니다.”

“금방 따라가겠습니다.”

각성자의 신체는 일반인과 다르다. 일단 각성하기만 해도 육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뛰어넘을 수 없는 건물을 뛰어넘고, 파괴할 수 없는 것을 파괴한다.

송류진은 망설임 없이 발을 굴렀다. 지반이 마치 송류진을 밀어 주는 것처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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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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