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다들 동작 그만.”
번쩍- 하며 오토바이 헤드라이트가 동시에 게이트 앞을 비췄다.
송류진은 갑작스러운 눈부심에 눈살을 구겼다.
부릉거리는 엔진음과 고무 타이어가 마찰하는 소리가 연신 이어졌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오토바이 부대가 불꽃 모양 엠블럼이 새겨진 헬멧을 쓰고 게이트 일대를 둥글게 포위했다. 불꽃 무늬 엠블럼을 알아본 어떤 사람이 소리쳤다.
“다해 길드다!”
그리고 곧이어, 어둠을 꿰뚫는 창처럼 늘어진 헤드라이트 불빛 사이로 한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
강렬한 무늬의 레이싱 슈트를 입고, 긴 검은 생머리를 한 여자가 주변을 오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카오루 누나아아악!”
아직 게이트 인근에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있었는지, 누군가 구석에서 소리쳤다. 송류진은 그쪽을 힐끔 보고 다시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예카테리나….”
공략 3팀 팀장이 침음을 흘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한 예카테리나. 주로 카리나, 혹은 카오루라고 불리는 여자.
그녀는 한국 5대 길드 중 ‘다해’의 수장이자 유명한 고위 랭킹 헌터였다. 알려진 등급은 S급.
다해(多諧). 원래 카리나가 의도한 건 ㅅㅂ걍 다 해! 라는 의미였지만 헬 조선 간지로 다해(多諧)라 불리게 된 길드였다.
랭커인 예카테리나를 필두로 주로 용병 헌터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었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숭상했다.
기업과 유착되어 있는 다른 길드들과는 달리 오로지 헌터들을 중심으로 한 길드라 어떤 헌터들에겐 꿈의 길드이기도 하지만, 워낙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여 이게 적인지 아군인지 그냥 또라이인지 구분 안 가는 놈들이기도 했다.
지금의 등장만 봐도 그랬다. 게이트가 민간인 거주 지역에 터져 사람들을 삼키기까지 했는데, 요란히 등장해 주목받는 것을 봐라.
상대하면 골 아픈 놈들이다. 강한석은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송류진의 팔뚝을 쿡쿡 찔렀다. 네가 나서서 어떻게 좀 해 보라는 의미였다.
기자들이 잔뜩 신이 나서 바쁘게 셔터를 눌러 대기 시작했다.
플래시로 게이트 일대가 번쩍였다.
오토바이 헤드라이트에, 플래시까지. 누가 보면 여기가 가요 대상 본무대인 줄 알겠다. 송류진은 짜증을 숨기고 웃었다.
“예카테리나! 여기 좀 봐 줘요!”
“헌앤인 주간지 기잡니다! 잠깐, 잠깐 대화 좀!”
“카리나아악!”
“카, 카오루 쨔아앙!”
…마지막에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는데.
송류진은 애써 주위를 카리나에게 집중하며 입을 열었다.
“위급 상황입니다. 적절치 않은 등장이네요, 카리나.”
송류진이 한발 나서자, 카리나는 싱긋 웃었다.
“나도 알아, 꼬맹아.”
“전혀 모르시는 거 같은데, 뒤에 있는 게이트 2급입니다.”
“안다니까. 그것 때문에 여기로 달려왔는데, 모르겠어?”
“…다해 길드에 협력 요청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요청을 하긴 했어? 매번 길드 따돌리고 각본이 다 해 먹으려고 일부러 연락 안 한 건 아니고?”
“어디서 또 무슨 찌라시를 보고 왔길래 시비예요?”
“시비라니. 사실 적시.”
카리나가 으음- 하며 손가락을 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각본과 길드는 국제법상 상호 협력 관계로 위급 상황엔 무조건 돕고, 서로 나서야 하는 관계다.
하지만 각성자들끼리 모인 길드의 힘을 가장 견제하는 것은 각본이었다.
‘각성자 관리 본부. 이름도 참 웃기지. 누가 누굴 관리해.’
카리나는 실소하며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헌터들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가 게이트 앞을 가로막고 서서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뒤로 다시 한차례 불꽃이 일어났다.
“미안하지만, 여기 모두 이 게이트엔 못 들어가.”
“다해 길드장, 지금 무슨-.”
“귀가 먹었나. 우리가 접수한다고, 여기.”
송류진은 얼굴을 구겼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태평하게 뭐 하는 짓인지. 지금이 네 거 내 거 따지면서 접수 타령이나 할 때인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애초에 그쪽 길드 부르지도 않았고, 게이트 넘긴 적도 없습니다!”
강한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카리나는 꿈쩍도 하지 않고 강한석을 힐끔 보곤 픽 웃었다.
“각본 허락 맡으려고 온 거 아니야. 좋게 말할 때 꺼져.”
카리나가 표정을 굳히며 서늘한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오토바이 무리가 빵빵대며 카리나의 말에 동조했다. 요란한 주변에 잔뜩 인상을 찌푸린 송류진은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이유가 뭡니까.”
송류진의 질문에 카리나가 그를 바라봤다. 점잖지 못한 행동과 다르게 마주한 눈빛은 침착하고 차가웠다.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경우 없이 행동하고 있는 거다. 게이트를 차지해야 할 이유… 뭘까.
송류진을 보던 카리나가 한순간에 표정을 풀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꼬맹이. 조막만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대?”
“…어렸을 때도 당신보다 컸어요.”
“부끄러워하기는.”
“부…끄러워 한 적 없고요. 이유가 뭐냐고요.”
말을 돌리려다 실패한 카리나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재 보듯 송류진을 본 그녀가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다물었다.
“알려 주기 싫은데.”
“그럼 비켜요.”
송류진이 가르덴의 송곳을 들어 올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진입해야 혹시 있을지 모를 생존자를 살릴 수 있었다.
카리나와 무의미한 시간 끌기를 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게이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이상 봐줄 이유가 없었다. 송류진의 단호한 말에 카리나의 눈에 형형한 빛이 어렸다.
카리나가 손바닥을 활짝 폈다가 천천히 주먹을 쥐자, 화르륵 하며 불꽃이 손을 감싸고 사라졌다.
예카테리나의 능력은 불. 송류진과 상극이다.
싸우면 승률이 그다지 좋진 않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이어폰을 통해 관리팀 목소리가 들렸다.
- 잡아 놓기만 해. 진입은 나머지가 한다.
낮은 목소리가 명령했다. 송류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 꼬맹아.”
카리나가 송류진을 불렀다. 새파란 날것의 웃음이 입가에 어린다.
카리나는 공간을 찢고 거대한 낫을 꺼내 들었다. 그녀만큼 화려한 장식이 달린 큰 낫에 시퍼렇게 마력이 맺혔다.
“쨉도 안 되는 게, 나대지 말자.”
낫을 휘두르자 그 밑으로 불꽃이 튀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태웠다.
일렁이는 불빛에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마력을 무기에 두른 건 송류진도 마찬가지였다. 스킬을 써 제대로 붙는다면 몇 년 만에 이루어지는 S급끼리의 전투였다.
기자들이 특종이라 하며 아득바득 사진을 찍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일대를 지키던 각본 요원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가로막았다.
“선 넘으면 게이트 법에 따라 처리합니다.”
-30초만 끌어 봐.
이어폰으로 공략 3팀 팀장이 말했다. 송류진은 뒤로 한 바퀴 돌며 물러나 가르덴의 송곳을 옆구리에 끼웠다.
카리나는 낫을 빙그르 돌려 목에 걸치고 사납게 입꼬리를 올렸다.
“꼬맹이가 황태자 소리 좀 들으니까 막 뭐라도 된 것 같고 미치겠지?”
“사람 목숨이 걸려 있는 일에 저울질하는 꼴 역겨우니까 말 걸지 마세요.”
“저울질? 제 얼굴에 침 뱉기 하냐? 각본 주제에 말이야. 누가 더 추잡한지 내기할래?”
“시끄러워요.”
송류진은 그대로 무릎을 살짝 굽혔다. 어차피 막힐 테지만 짜증 나니 한 방 좀 세게 날려 줄 생각이었다.
가르덴의 송곳에 진한 색의 마력이 맺히고 송류진은 발돋움을 해 허공에 몸을 띄웠다. 그리고 가르덴의 송곳을 과녁에 꽂아 넣듯 카리나에게 던지려 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게이트의 마력 파장에 전깃불이 튀는 것처럼 마력이 튀었다.
“…!”
송류진은 다급하게 스킬을 해제하고 바닥에 착지했다. 카리나가 눈을 부릅뜨고 송류진을 마주하는 대신 뒤로 돌아 게이트를 향해 낫을 겨눴다.
“당장 피해요! 빨리!”
전깃불이 튀듯 마력 파장이 요동하는 것은 게이트가 터지려는 전조 조짐이었다.
게이트가 터지면 그 안에 있던 괴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핼쑥해진 공략 3팀 팀장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민간인 피신부터 시켜! 공략팀 전체 대열 갖춰 대기!”
일대에 긴장감이 흐르고, 누군가 침을 꿀꺽 삼켰다.
게이트가 요동쳤다. 블랙홀의 입구와도 같이 보이는 입구를 모든 사람들이 뚫어지게 쳐다봤다.
송류진은 자세를 낮췄다. 2급이면 그래도 각본 선에서 끝낼 수 있다. 여차하면 다해 길드도 있으니까.
나오자마자 도륙한다면 피해도 최소화가 가능하다. 가르덴의 송곳에 다시 마력이 모였다. 송류진은 호흡을 줄였다.
그리고 튀어나올 몬스터를 기다리는데, 게이트에서 불쑥 사람이 튀어나왔다.
“으허엉-! 엄마아!”
낫을 휘두르려던 카리나가 움찔했다. 카리나는 이상한 표정으로 얼굴을 구겼다.
“뭐야?”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껏 꼬질꼬질해진 채 게이트를 빠져나와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다.
“살았어…! 살았다고! 흐어엉!”
다들 벙쪄 남자를 보고 있는 와중, 또 게이트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이번엔 의사 가운을 입은 노인과 젊은 여자였다.
그 뒤로 몇 사람이 더 따라 나왔다. 게이트를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 복받친 얼굴로 울음을 터트리며 주저앉았다.
“새… 생존자?”
보스 몬스터가 뜨면 마력 파장이 일그러지며 불안정해진다. 이런 경우 게이트 안에서 각성자를 제외한 생존자를 기대하는 건 확률 0에 가까웠다. 그런데 생존자라니?
강한석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만 보고 있자, 어느새 가르덴의 송곳을 원래 모양으로 되돌려 놓은 송류진이 관리팀에게 말했다.
“생존자 맞습니다. 응급 구조팀! 게이트 앞으로 바로 와 주세요!”
카리나가 으르렁거렸다.
“너희 공략팀 먼저 들여보냈냐?”
“누가 막아서 못 들어갔는데요.”
송류진도 짜증을 담아 대꾸해 줬다.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진 채였다.
무려 2급 게이트가 건물을 통째로 삼켰다. 정말 우연히 운 좋게도 각성자가 그곳에 함께했다고 치자. 그 각성자가 혼자 보스 몹을 잡았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게이트는 들어가는 건 누구나 들어가도 나오는 건 쉽지 않았다.
보스 몹이 뜬 게이트에서 안에 있던 사람이 나오려면 보스 몹이 클리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 신당 5동에 뜬 게이트는 2급이다. 안에 득실대는 몬스터 숫자도 3급이랑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 각성자의 등급이 S급이 아니라면 한두 명으로 클리어는 어림도 없다.
더군다나 보스 몹까지 등장한 상황이라면, 예시는 더욱 심각해진다.
각성자가 혼자 2급 보스 몹을 잡았다는 말이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아니면 부대로 있었던 건가? 이 건물에서 모종의 모임을 했나?
각성자 부대가 평일 오후 이 시간에 하필, 이 자리에 있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우연이다. 그럴 리가 없었다.
다들 아연실색해 생존자들을 바라보는데, 피가 튄 쇠 파이프를 목숨 줄처럼 꽉 잡은 여자가 울면서 욕을 내뱉었다.
“씨발…! 씨바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씨부랄… 흐엉…!”
“잠깐만요, 비켜 주세요!”
헌터들 사이로 담요와 간이침대를 든 응급 구조팀이 들어와 생존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송류진은 다시 게이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게이트의 마력 파장은 계속 요동치고 있었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상을 찌푸리는데.
그 순간, 게이트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하얀 손이 있었다.
블랙홀을 뚫고 튀어나온 손이 허우적대는 듯하다가, 다시 안으로 사라졌다.
원 모양 마력 파장이 전류가 끊기는 것처럼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닫히려는 전조였다. 그리고 곧이어, 검은 형체가 아이를 안고 몸을 내던지듯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아스팔트 도로를 몇 번이고 구른 몸이 간신히 멈춰 섰다. 검은 형체는 사람이었다. 캔버스화를 신은 남자.
아이를 끌어안은 남자의 몸이 간헐적으로 움찔거렸다. 호흡하는 흉통이 움직였고, 그것이 그가 살아 있음을 알려 줬다.
품 안에 있던 아이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짓무른 얼굴로 울면서 쓰러진 남자를 끌어안았다.
“흐으….”
아이가 울어서, 송류진은 그들에게 한 발 다가갔다. 걸음이 순간 멈칫했다.
검은 옷으로 보였던 옷이, 사실 피로 얼룩져 검게 보였음을 알게 되어서였다.
“…허억. 존나… 하-.”
그때, 서울역에서 출발했던 우반희가 뒤늦게 도착했다. 우반희는 헉헉대면서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 우반희를 송류진이 먼저 발견했다.
“반희 형!”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 하지만 우반희는 송류진에게 대답해 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버려진 인형처럼 쓰러진 남자를 바라봤다.
품 안에서 울던 아이가 꿈쩍도 하지 않는 몸을 껴안고 흐느낀다. 누가 도와 달라는 듯 주변을 살피는 얼굴은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어른의 양 주먹을 합친 크기의 날개를 가진 나비 몇 마리가, 이를 드러내며 그들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지켜보던 다른 헌터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저거 몬스터야?”
“으어… 어….”
무어라 말하려 입을 달싹이던 아이는 이내 다시 남자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오열하는 등이 바들바들 떨린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 사이로 꾹 감긴 눈이 보였다. 아이의 품에서 하얀 손이 툭 떨어졌다.
우반희는 뛰어오느라 흘린 땀을 닦으며 실소했다.
주변에 마력 냄새가 진동했다.
나탈리스가 쓰러졌던 이 년 전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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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