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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18화 (18/201)

18화

“와- 정말 대단해.”

카리나가 이죽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 죽어 가는 사람한테 하는 짓 보소. 이러고도 각본이 국가의 기둥~ 이 지랄 하지.”

낫을 위협적으로 한번 휘두른 카리나는 그 끝을 우반희를 향해 겨눴다.

“넌 상황 판단도 안 되냐? 딱 봐도 각성자 혼자 싸우다 민간인 구출까지 한 건데? 뭐? 사살 가능? 이 새끼 진짜 지이랄 한다.”

우반희는 그녀를 보고 잔뜩 짜증 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길드랑 각본 상호 불가침. 몰라? 싸우자는 건가?”

“싸우면 이길 수는 있고? 네가 지금 수준 이하로 날뛰고 있는 건 모르겠나 보지? 상호 불가침 같은 소리 하네.”

카리나는 차가운 눈으로 우반희를 노려봤다.

거대한 낫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위협적으로 빛났다.

“잘못 없는 각성자 건드려 대니까 길드가 있는 거다, 이 짭새 찌끄래미 새끼야. 데려갈 거면 나부터 지나고 가라?”

“…다해 길드장은 또 왜 끼어들고 난리지? 일 크게 벌이고 싶지 않으면 빠져.”

“불의를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미등록 각성자는 1급 범죄자로 간주.

그건 등급에 따라 나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다.

우연찮게 게이트를 접한 일반인이 각성했을 수도 있기 때문인데, 보통 각성자들은 이런 경우가 더 많았다.

그렇기에 지금 우반희가 꺼낸 말은 강제적이고 강압적이었다.

영장 발부도 정확한 조사 이후에나 가능했다.

가운데 차해준을 두고 우반희와 카리나가 대치했다.

카리나는 S급 헌터로 이미 유명한 몸이었고, 우반희도 각본에서 이름난 S급 각성자였다.

하지만 우반희는 전투에 특화된 클래스가 아니기 때문에 카리나와 붙으면 필패였다.

그렇다고 해도 S급은 S급.

주변 마력이 요란하게 요동친다. 주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카리나의 낫이 붉게 물들었다.

우반희가 목을 우두둑 꺾으며 입매를 비틀었다.

“준법 시민으로서 법을 어기고 다니는 놈들을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단 말이지.”

“지이랄….”

카라나가 코웃음 치며 비웃었다.

우반희의 뒤로 관리팀 각성자들이 붙었다.

A급 각성자들은 다들 얼굴빛이 핼쑥해져 있었다. 카리나는 감히 이길 수 없는 상대니까.

“잡아들여.”

헌터들이 우반희의 명령에 움직이려 하는 그때, 송류진이 나섰다.

송류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차해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 마. 지금 다쳤어.”

“감싸는 거냐? 아는 사이라도 되나?”

얼굴도 마주쳤으면서 우반희는 차해준을 모르는 척했다. 완전 범죄자 취급이었다.

“형! 그 문제는 일단 나중에!”

“송류진, 정신 차려. 네 뒤에 있는 놈. 미등록 각성자야. 어디서 어떻게 숨겼는지 모르겠지만 무려 2급 게이트가 터졌는데, 거기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 나온 놈이라고.”

“형이야말로 뭐 하는 짓이야. 각성자가 처음부터 범죄자는 아니잖아. 상황 판단 제대로 해야지. 게이트가 터지면 각성 요건 충분해. 안에서 각성했을 수도 있다고.”

“하- 넌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이제 막 각성한 각성자가, 2급 게이트를 닫았다고?”

송류진은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려 차해준에게 다가갔다. 부축하려는 손길에 한솔이가 격하게 반응했지만, 송류진은 소년에겐 신경도 쓰지 않고 차해준을 일으키려 했다.

팔을 잡자 신음이 터지고 차해준은 고통스러워하며 다시 주저앉았다.

송류진의 표정이 살벌하게 굳었다.

핏물에 푹 전 청바지. 찢어진 사이로 깊게 파인 상처가 보인다.

상처를 하나씩 확인할 때마다,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너, 너 진짜….”

차해준은 고통으로 숨을 몰아쉬다가 송류진을 바라봤다.

창백한 얼굴. 송류진은 저를 보는 해준을 부축하며 이를 악물고는, 작게 속삭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나는 그걸 잘해. 송류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법령에 관해서 잘 안다고는 못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대강 어떤 상황인지 알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우반희가 저렇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게 이해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게이트를 닫은 각성자이지 않은가.

그 각성자가 제가 가장 오랫동안 알아 왔던 차해준이라는 게 송류진을 기함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무엇보다 2급 게이트를 깨고 전멸할 거라 예상했던 사람들을 구출해 냈다.

“일단, 치료부터 받자.”

“안 돼.”

“반희 형-!”

“그놈이 몇 급 각성자인지, 언제부터 각성했고, 2급 게이트는 어떻게 뚫었는지 알기 전엔 한 걸음도 못 벗어난다. 2급 게이트를 혼자 닫을 정도면 재해 수준이야. 도시 하나는 그냥 전멸시킨다고. 이런데도 법이 문제라는 소리가 나오냐?”

지켜보던 카리나가 이죽대며 말한다.

“제 몸 굴려 가며 게이트 닫고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게 이런 식인 거지? 각본이 하는 행태 아주 잘 봤고요. 어디 한번 막아 봐. 재해급 각성자. 여기도 있거든.”

우반희 뒤에 있던 A급 각성자들이 주춤했다.

송류진이 함께 카리나를 막는다면 양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송류진은 우반희의 뜻에 동조하지 않고 있었다.

카리나는 매서운 눈빛으로 우반희를 노려봤다.

금방이라도 대치가 이루어질 것처럼, 불꽃이 사방에 튄다. 카리나의 능력이었다.

금방이라도 전투를 시작할 것처럼 준비 자세를 한 카리나가 낫을 휘두르려는 그때, 갑자기 하늘이 번쩍했다.

우르릉 몰려드는 구름을 보며 카리나는 몸에서 힘을 빼고 혀를 찼다.

“피카츄 납셨네.”

카리나는 김샜다는 표정으로 들고 있던 낫을 손에서 놨다.

툭 떨어지던 낫이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진짜 삭막하기 짝이 없네요. 각본과 길드 사이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리며, 백루찬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아한 몸짓으로 느릿느릿 걸어온 백루찬이 우산을 지팡이처럼 쓰면서 옅게 웃었다.

하얀 머리칼이 하늘거리며 바람에 날린다.

“이렇게 사이가 안 좋아서야 원, 나라는 지킬 수 있겠어요?”

“길드만 잘 협조해 주면, 시민들의 안전은 무사하죠.”

우반희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백루찬은 희미하게 웃었다.

주변을 살피던 그의 시선이 송류진이 부축한 차해준에게 닿았다.

옅은 눈동자가 가늘어지며 차해준을 훑고는 또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반희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다해에 모르젠트까지, 여기서 각본 몰래 길드 정기 회의라도 합니까?”

“저는 내 길드원 데리러 왔어요.”

“아, 예. 길드원 데리러- …뭐라고요?”

“길드원 데리러 왔다고요.”

백루찬의 말에 주변이 웅성거렸다. 온통 다해 길드와 각본 요원들밖에 없는 곳에서 갑분 모르젠트 길드원?

황당한 시선이 오고 갔다. 백루찬은 빙긋 웃으며 송류진이 부축하고 있는 차해준을 가리켰다.

“내 길드원, 데리러 왔다고요. 좀 놔주시겠어요? 불쾌하니까.”

살얼음판이었던 분위기가 쩌억 갈라지는 환상이 보이는 듯했다.

***

몸을 엄습하는 고통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송류진이 입술을 깨물고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하, 씨 좆 됐다. 각성자인 걸 하필 이놈에게 들키다니. 나는 머뭇거리면서도 송류진이 부축해 준 대로 일어났다. 고작 일어나는 것뿐인데 너덜너덜해진 온몸에 고통이 몰려와 신음을 삼켰다.

진짜 뒤질 것 같네. 주변을 힐끗대니 레이싱 슈트를 입고 저승사자처럼 큰 낫을 든 여자와 우반희가 대치했다.

게이트 법 시발…. 환자 앞에 두고 그러고 싶냐. 존나 정 없는 새끼.

한야라는 게 들통나면 차해준의 시크릿 아이덴티티가 깨지니까, 사실 속으론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한야라는 게 들통나지 않아도, 이미 미등록 각성자라는 사실이 들통난 시점부터 좆 된 거긴 한데…. 하. 절로 한숨이 나온다.

자신이 개코라고 그렇게 강조해 댔던 우반희니까 지금 이곳의 마력 냄새도 맡을 수 있겠지.

눈치를 보니 무언가를 눈치챈 거 같다.

근데 시발, 내가 한야면 뭐 어쩔 건데! 어? 사살? 사사… 살…. 존나 무서운 소리 하네.

2급 게이트도 박살 내고, 데빌루데스 놈도 피해 왔더니만 산 넘어 산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피하지?

송류진이 나를 부축하면서 작게 속삭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보는 눈초리가 심상치가 않다. 단단하게 굳어서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앞으로도 제발 묻지 마…. 대답해 주고 싶지 않으니까.

차해준의 매력은 힘숨찐에서 나온다고….

이런 생각 하면 너무 과몰입 같나. 근데 차해준이 나고, 내가 차해준이 되어 버렸는데 어떡하라고.

내가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일으키자, 한솔이가 송류진을 경계하며 내 옆에 붙었다. 상처 난 옆구리에 손을 올렸다가, 피가 축축하게 새어 나오자 이내 울상을 짓는다.

정희수는 동생만 보고 있었다. 한솔이를 데리고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우반희가 뭐 때문인지 나한테만 정신 팔려서 한솔이를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럴 때 빠져나가는 게 좋을 거 같긴 하다.

정희수가 구급대원이 건네준 담요를 한솔이에게 둘러 준다. 나는 한솔이에게 손짓했다.

“한솔아, 네 형이랑 가. 가서 치료받아야지.”

한솔이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내젓고는 다시 내 옆에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딱 달라붙었다.

구급차로 보이는 곳에 내가 구한 생존자들이 하나둘 올라타는 것이 보였다.

그중에는 기절한 건지 민형이가 다리에 부목을 대고 구급대원에게 업혀 있었다.

나온 사람들은 다 무사한 것 같네. 그럼 됐다. 한숨을 쉬었다.

이제 내 상황만 정리하면 될 것 같은데.

힐끔대며 싸늘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우반희를 보다가, 다시 송류진을 봤다.

그리고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에 마른침을 삼켰다. 주변에 요란하게 불꽃이 튄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여자를 다시 보고 싶었다. 아, 상태창 확인해 보고 싶다. 이거 혹시 기온이냐? 아님 불이냐. 미친 무슨 특수 각성자가 왜 이렇게 많아….

그때, 하늘이 우르릉 울리며, 하얀 코트를 입은 백루찬이 나타났다. 나는 멍청하게 눈을 깜박였다.

쟤는 또 여기 왜 나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우반희와 대치한 백루찬이 나를 가리키며 웃는다.

“내 길드원, 데리러 왔다고요. 손 좀 놔주시겠어요? 불쾌하니까.”

송류진이 나를 부축하는 팔에 힘을 주었다.

상처가 닿아 좀 아파서 신음이 나오자 그제야 깜짝 놀라며 팔을 잡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나는 정말 간신히 서 있었다. 서서히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한다. 눈을 힘겹게 깜박이며 백루찬을 보니, 백루찬은 묘하게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 새끼… 아픈 와중에 보는데도 드럽게 잘생겼는데 욕하고 싶네. 뭘 보냐 새꺄.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지금 모르젠트가 미등록 각성자를 숨겨 왔다고 판단해야 하는 건가?”

“길드가 뭘 하든 각본이 무슨 상관이에요. 마음대로 만든 규칙에 군말 없이 어울려 주면 그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공동 발의한 게이트 법을 어기겠다고? 모르젠트도 나서겠다는 겁니까?”

“모르젠트 길드원이고, 범죄자 아니고, 그저 이제 갓 각성한 각성자죠. 모르젠트가 보증합니다. 각성자 차해준.”

백루찬이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본다.

놈의 입꼬리가 슬슬 말려 올라간다. 뭐야 저 표정. 불안한데. 설마, 내가 한야라고 소리치진 않겠지.

스킬을 쓴 것도 아니고 검은 게이트 통과하면서 진즉에 집어넣어 놨다.

각성자인 건 들통이 나겠지만, 그래도 한야인 것은 모를 테다.

사실 나왔을 때 고통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한야를 손에서 놨는데, 생각해 보니 다행이었다.

백루찬이 나에게 다가왔다. 송류진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이리, 주세요.”

“……물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상처도 입었고, 응급 구조팀이 각본에 있으니 여기서 치료부터 받게 하시죠.”

송류진이 나를 감쌌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일단 살고 보자. 등이 쓰라려 미치겠다.

우반희가 이를 까득 물며 말했다.

“치료받는 도중 도주 위험이 있다. 구속 후에 진행할 거야. 각본이 알아서 할 테니 모두 빠져.”

“형!”

우반희의 말에 송류진이 이를 악물었다.

와, 진짜 너무하네. 그래도 사람들을 구했는데 우수 모범 시민상은 바라지도 않았다만 진짜 범죄자 취급은 너무하다고.

머릿속에 우반희에게 끌려가서 구속구까지 채워져서 아픈 몸을 참고 신문당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졸라리 끔찍했다.

송류진이 반박하려 했지만, 그때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모르젠트가 보증한다는데도 우기는 건 싸우자는 거지?”

칼 단발의 소녀, 홍희였다. 홍희가 사람들을 헤치고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키가 한참 작은 홍희는 장신의 각성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취급이 너무하네? 우반희 팀장님, 상부에도 이런 식으로 보고하려고? 법에 저촉되어 길드랑 싸웠습니다. 미등록 각성자 한 명 때문에요. 근데 그 사람이 2급 게이트를 닫았거든요. 각성자가 심하게 다치고 사람도 구하긴 했는데 미등록 각성자라 일단 신문 중입니다. 이렇게? 저어기 기자들 있으니까 한번 잘 나불대 볼까? 여론이 어떻게 될지?”

맞는 말이다! 나는 맞장구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홍희는 정말 전에도 생각했지만 상당히 입을 잘 턴다. 얄밉게. 나는 동조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며 눈앞이 아찔해진 탓이었다.

쓰러질 듯 상체를 숙이자 송류진이 나를 들쳐 업을 것처럼 몸을 붙였다.

그때,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손이 내 허리를 감싸고 옆으로 당겼다. 나는 휘청거리며 당기는 대로 끌려갔다.

고개를 드니 언제 다가온 건지 백루찬이 송류진의 품에서 나를 빼앗았다. 빼앗았다는 말은… 조금 어감이 이상하네. 아무튼.

나는 움찔 떨었다. 흰 코트에 피라도 묻을까 봐 조금 걱정이 됐지만, 지가 잡아당겼으니 할 말 없겠지.

송류진이 달려들 것처럼 움찔거렸지만, 내 상태를 보고서 멈췄다. 까득 이를 악무는 게 눈에 보였다.

난 힘에 겨워 한숨을 쉬며 몸에서 힘을 뺐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거야.

둘 중에 누구라도 기댈 수 있으면 상관없었다. 백루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숨을 몰아쉬자, 백루찬이 눈을 내려 나를 살핀다.

왜 인마, 뭐.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눈을 감자, 백루찬은 나를 들쳐 메듯 들어 올렸다. 아 미친, 상처 눌려서 아파….

“옆에 계신 태자마마께서도 잘 아는 사이일 텐데, 정말 냉정하게 구시네요. 그래서 더 짜증 나긴 하지만 좀 참아 보죠.”

백루찬의 말에 홍희가 거들었다.

“일부러 ‘미등록’한 각성자가 아니라, 이제 막 각성한 각성자라는 내용과 함께 모르젠트에서 그의 신원을 보증한다는 내용을 정리해서 각본에 보고해 드릴게. 이 정도로 타협하지? 이 이상은 진짜 못 참아.”

홍희의 눈빛이 순간 매서워졌다. 싸늘한 시선에도 우반희는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눈에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저 새끼 안 그래 보여도 열정이 존나 넘치는 놈이네.

미등록 각성자가 아무리 위험하다고 하지만 집착적으로 보이는 행동이다. 왜 저렇게 화가 났냐.

내가 처음에 각성자인 걸 숨겨서? 그래서 화가 더 난 건가?

“어쩜 이렇게 보기 싫은 놈들만 모아 놨나. 짜증 나니까 난 이만 꺼진다. 게이트도 닫혔고.”

레이싱 슈트를 입은 여자가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하 씨, 가지 마요…. 상태창 한 번만 보자. 혹시 메인 캐릭터일지도 모르니까. 나중에 언제 또 볼지도 모르는데. 나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봤다.

정말 아파 뒤지겠지만, 봐야겠다. 나는 초월자의 눈을 발동시켰다.

[상태창

이름: 한 예카테리나

칭호: 불의 여왕

클래스: 이그릴리오사(Igreligiosa)

등급: S+

스킬: 참수(Lv.99), 불꽃의 고리(Lv.99), 화염의 낙인(Lv.99)….]

“쿨럭-.”

핏물 섞인 기침이 목구멍을 따갑게 하며 올라왔다.

아파 뒤지겠는 와중에, 나는 예카테리나의 스킬창과 등급을 보며 감탄했다. 개멋있잖아…. 등급이 백루찬과 똑같다. 이 정도면 메인급 아닌가? 하지만 그 외에 별다른 시스템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긴 시스템창만 봤다고 메인 캐릭터인 걸 알아봤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을… 후.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이명이 삑삑 울린다. 죽을 것 같다, 정말로. 나도 모르게 백루찬의 코트를 꽉 움켜잡았다. 벌벌 떠는 몸이 느껴진다.

“야… 빨리….”

“…형?”

“빨리 좀….”

살려 줘, 개새끼야…. 눈물이 나올 것 같다. 하다못해 포션이라도 뿌려 줄 수 있잖아, 이 개새끼들아…. 엉엉 울 것 같아 나는 백루찬 품에 고개를 묻었다.

백루찬은 활짝 웃었다.

“좋아요, 형.”

내가 살려 줄게.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가증스러워서 짜증이 났지만, 반박할 힘도 없었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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