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형, 진짜 같이 가고 싶은데… 홍희 님이 아주 많이 귀찮아진다고 참으라고 해서….
정희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각성자 등록 센터에 한솔이가 가면 S급으로 난리가 나니까, 매스컴의 눈을 피하라고 정희수에게 오지 말라고 한 것 같았다.
“괜찮아. 한솔이 어차피 내가 챙기려고 했어.”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진짜.
연신 사과하는 정희수에게 괜찮다고 말하곤 통화를 종료했다. 어차피 잘된 일이었다. 각인 상태라 한솔이는 정희수보다 나를 더 잘 따랐다. 매일 찾아오고 화장실 빼고 다 졸졸 따라다닐 만큼 붙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떨어져 있으면 섭섭할 지경이다.
“한- 아니, 차해준 길드원?”
길드 사무실에서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며 한솔이랑 놀고 있던 나를 홍희가 불렀다. 홍희는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각성자 등록 센터에 가는 건 일단 정한솔군의 등급을 측정하려는 것도 있지만, 우리 차해준 길드원을 등록시켜서 모르젠트 이름에 복속…이 아니라, 지켜 주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제 본심을 숨기려고 일부러 어른스럽게 말하는 것 같은데, 하나도 안 숨겨진다, 이놈아…. 나는 한숨을 쉬고 물었다.
“그럼 등급은 어떻게 속이는데?”
“마력으로.”
그 말을 하고, 홍희가 어딘지 교활한 표정으로 썩소를 날렸다. 너 그렇게 데X노트 라이X 같이 웃지 마라….
“S급에겐 껌이지! 음후후후!”
그럼 S++급에겐 더 껌이겠구나. 나도 슬금슬금 입꼬리를 올려 홍희랑 같이 웃었다.
***
마력으로 측정한다면 당연히 조절할 수 있다.
보통 측정 기계가 마력을 최대치로 빨아먹고 등급을 산정한다고 하는데…. 안 뺏기면 되는 거 아냐 이거.
내 목표는 B급으로 측정되는 거였다.
알리바이를 위해서 미등록 각성자에서 등록된 각성자가 되려고 한 거니까, 이대로 계속 숨기고만 다닐 수도 없고, 그럴 바엔 솔직히 등급이 낮아야 움직이기 편할 거 같기도 하고. 홍희는 A급을 말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송류진과 우반희를 잘 넘기려면 B급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았다.
그때 상황은 S급인 한솔이가 대부분 처리했다고 하면 되니까. 나는 적당히 뒤로 빠질 생각이었다.
나는 모르젠트에서 빌려준 차를 타고 한솔이와 함께 각성자 등록 센터로 향했다.
각본이 걸어 놓은 엠바고가 풀렸고, 각종 언론에서 새로운 S급의 등장이라며 난리가 난 상태였다.
모르젠트 쪽에서도 대대적으로 어린 S급이 나왔다고 언론에 싹 뿌려 놨던 터라 등록 센터 앞에는 기자들로 득실거렸다.
한솔이가 꼼지락거리며 내 손을 잡는다.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마스크도 끼고 싶은데 그러면 오히려 더 눈에 띌까 봐 참았다.
“먼저 나가죠.”
홍희와 백루찬이 먼저 나가 시선을 모으고 시간을 끌어 주기로 했다.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모르젠트 입장에선 한솔이가 안전하게 S급으로 증명받고 모르젠트 소속이 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지금 모습을 드러내는 걸 원하지 않았다.
모르젠트 소속임을 땅땅 확정 짓고 나서 드러내고 싶겠지. 길드 입장도 이해가 간다.
백루찬과 홍희가 먼저 내리고 나와 한솔이는 뒷문으로 가기로 했다.
“백루찬이다!”
“지금 몇 년 만에 새로운 S급이 나왔는데요! 모르젠트 소속이 되는 겁니까!”
“한마디 해 주시죠!”
“S급 학생은 어디 있나요!”
“여기 좀 봐 주세요!”
“국산 피카츄우-!”
“희야 님!”
아우,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까지 빠르게 인산인해를 이룬다.
나는 플래시가 번쩍거리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웃는 홍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백루찬은 조금 짜증 난 기색이 역력했다.
한솔이가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그래, 우리도 이제 가자.”
백루찬과 홍희를 기자들 앞에 던져 주고, 나는 한솔이와 함께 차의 반대편에서 내려 각성자 등록 센터를 빙 둘러 뒷문으로 들어갔다.
사람들로 붐비는 로비와 달리 대기실은 한적했다. 등급을 측정하기 위해 온 몇 사람이 힐끔대며 우리를 쳐다봤지만 금방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극성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식들을 데리고 다시 검사해 달라고 직원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안 된다니까요! 분명 백루찬처럼 전류를 만들어 냈다니까!”
“정전기를 착각하신 거 같아요.”
센터 직원이 피곤한 얼굴로 못을 박는다. 정장을 입은 오륙십 대로 보이는 남자가 씩씩대며 소리 질렀다.
“내가 여기 센터장이랑 중학교 동창이야! 제대로 검사 안 해!?”
“제대로 했습니다. 등급 측정기는 거짓말 못 해요. 사장님 아드님은 마력이 없습니다.”
아주 난리가 났다. 나는 한솔이를 데리고 그쪽을 힐끔힐끔 보며 순번표를 뽑았다.
보니까 자식이 게이트 근처라곤 가 본 적도 없는 평범한 학생 같은데….
게이트가 아무리 예고 없이 터지고 그런다지만, 보통 어렸을 때부터 각성한 차해준이나 송류진 같은 경우가 드물다.
한솔이처럼 드물게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일도 드물고 말이다.
평일 오전이라 측정하러 온 사람은 많지 않아서, 다행히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형 금방 다녀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한솔이가 순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서는 내가 먼저였다.
한솔이 혼자 두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직원들이 착해 보이니까… 믿고 맡기곤 일단 나부터 들어갔다.
방 두 개를 이어다 붙인 커다란 공간에 검사하는 기계가 있었다.
투명한 판 사이로 들어가라고 하길래, 나는 냉큼 기계 가운데로 들어왔다.
“켜지는 데 1분 정도 걸립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기계를 구경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에,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은 살기 힘든 나라였다 보니 게이트가 터진 이후에도 대부분의 각성자들도 웬만해선 등록을 했다.
미등록 각성자들은 대부분 불법적인 일에 연관되어 있어서 각본이 더 눈에 불을 켜고 잡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데, 시간이 다 되었는지 파란 불빛을 내뿜는 기계가 투명한 패널에 내 신상 정보를 띄웠다.
오, 미래 세계 기술 같다. 미래 세계 맞지만….
그리고 내 앞에 바닥이 열리고 길쭉한 원통형 기계가 올라왔다.
직원이 손을 올리라고 말해서, 나는 살짝 긴장하며 손을 올렸다.
“몸에서 힘을 풀고 저항하지 마세요.”
몇 초 지났을까,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마력이 쭉 빨리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약하다가 점점 강도가 세어진다. 자연스럽게 눈살이 구겨졌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적당히 마력을 조절하려고 애를 썼다 B급이어야 한다… 적당히 가자, 적당히.
어느 정도 빨렸다 싶었을 때, 나는 호흡을 참으면서 내 마력을 붙잡았다. 더는 안 돼!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진공 흡입기처럼 마력을 빨아내던 기계가 멈췄다. 투명한 패널에 등급이 나온다.
등급 A.
나온 등급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구겨졌다. 이런 젠장. 예상보다 높게 나왔잖아. 자제한다고 자제한 건데.
“오-! 축하드려요!”
같이 검사실 안에 있던 직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A급이라니, 세상에! 요즘 각성자들이 아무리 많다지만 정말 드문 경우예요!”
“아… 하하, 감사합니다.”
“길드에 가입하는 것도 수월하고 각본도 환영할 거예요! 좋으시겠다!”
직원이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 주면서 기계 사이를 빠져나왔다.
“이거 혹시… 밖에서도 알아요? 뭐 스크린에 정보가 뜬다든가….”
“등급 나온 거요? 아니요. 개인 정보 보호법에 따라 고객님이 요청하신 거 아니면 따로 알 수는 없어요. 각성자 등록증이 나와서 각본에 내용은 전달되겠지만-.”
직원은 상냥하게도 길게 설명해 주었다.
줄이면 주민등록증처럼 증명증이 나오고 각본과 정부만 각성자 등급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A급… 괜찮으려나.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검사실을 나왔다.
한솔이가 대기실 의자에 앉아 얌전히 기다리다가 나를 보고 일어나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잘 기다리고 있었어?”
고작해야 십 분 정도였지만, 그냥 인사를 하며 한솔이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줬다.
같이 죽을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보니 나도 애착심이 생긴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번엔 한솔이를 검사실로 보냈다.
마력이 없는 일반인 일행이 아닌 이상 검사실엔 동행할 수 없었다. 같이 마력이 빨릴 수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한솔이를 보내고, 나는 잠시 대기실을 벗어났다.
백루찬과 홍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질문 세례랑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으려나. 짜증 내지 말고 얌전하게 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검사실이 있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려고 복도를 지나 코너를 돌았다. 그때였다. 순간 무언가가 빠르게 시야를 가리며 다가왔다. 검은 옷차림을 한 남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를 덮쳤다.
재빠른 몸짓은 각성자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순간적으로 동공이 확장되고, 나는 그 움직임을 똑똑히 봤다.
그리고.
“-윽!”
막지 않았다.
“뻔뻔하게 돌아다니네.”
목 뒤를 꽉 움켜쥐고 벽에 누른 남자가 내 팔을 뒤로 꺾었다.
몸으로 버둥대는 내 몸을 꽉 압박한 남자는 그대로 내 손목에 수갑을 철컹 채웠다.
몸에 흐르던 마력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씹, 이거 혹시 각성자 전용 수갑이냐.
“응? 차해준.”
귓가로 짜증 어린 목소리와 함께 숨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힘을 줘 나를 압박했다. 나는 뺨을 벽에 댄 채, 앓는 신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팔목을 쥐고 꺾어 대는데 너무 아팠다. 눈만 굴려 남자를 쳐다보자, 남자가 미간을 좁혔다.
“…뭐 하는….”
“뭐 하긴.”
귓가로 나른하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소름이 돋아서 자연스럽게 목이 움츠러들었다.
“한야를 잡으러 왔지.”
우반희가 씩 웃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23)============================================================
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