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나는 웃으면서 놈을 맞이했다. 각성자인 걸 어떻게든 숨기려 하는 것 같지만 기운과 내 감을 피할 수는 없지.
나는 속으로 시스템을 불렀다. 상태창 나와라, 얍.
[이름: 진마하
칭호:
클래스: ]
“…어?”
나는 눈을 부릅뜨고 상태창을 살폈다. 비각성자도 비각성자라 클래스에 표시되거나 비어 있다고 나와야 하는데, 진마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순간 목 뒤를 치고 올라오는 소름이 있었다. 가슴이 선득해졌다.
뭐지? 오류인가?
시스템이 오류가 날 수 있나?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진마하를 쳐다봤다.
내 시선에 휴대폰으로 일정을 확인하던 놈이 고개를 들어서 나와 눈을 맞추고는 웃었다.
“왜?”
“아니, 나는… 차해준이야.”
수상하다. 너무 수상하다. 나는 등이 뻣뻣하게 굳는 걸 느꼈다.
살기도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데 불안해졌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말했다.
참- 통성명하면 서로 각인되려나…? 이게 어떤 개념으로 각인이 먹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진마하를 쳐다봤다. 진마하가 씩 웃었다.
“아, 그러고 보니 소개도 안 했네. 나는 진마하라고 해.”
“…….”
시스템창이 뜨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랑 각인이 되는 건 역시, 아니었다.
메인 캐릭터와, 혹은 시나리오와 연관이 있어야 뜨는 것 같았다.
진마하 이놈은 너무 수상하게 다가왔는데, 내가 너무 과민 반응 하는 건가. 머리가 맹렬히 돌아간다.
나는 눈을 깜박이다가 한 박자 늦게 웃었다.
“그래, 이왕 과제 하는 거 잘해 보자.”
진마하는 나를 보고 고개를 기웃하다가, 내 말에 이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혼란에 휩싸였다. 시스템창에 호칭과 클래스가 보이지 않는다니…. 그럼, 초월자의 눈을 사용해서 보면 다를까.
“우리 둘이서 할까? 아니면 같이할 만한 사람이 더 있으려나….”
처음 겪는 상황에, 그리고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다는 충격에 초월자의 눈을 켜려 했다가, 나는 정신 차리고 시스템창을 없앴다.
이것도 상태 이상 확률이 거의 100%다. 괜히 했다가 몸 상태가 나빠지는 게 더 안 좋다.
“어 혹시, 팀에 자리 남아?”
그때 때마침 다가온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긴 머리의 여학생이 조금 들뜬 얼굴로 진마하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끼워 줄래? 혼자 할까 생각해 봤는데 힘들 거 같아서.”
진마하가 나를 쳐다봤다. 왜 날 봐.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과 단둘이 아닌 게 났다. 여학생의 이름은 김수민이었다.
나와 진마하를 한 번씩 쳐다보며 이런저런 계획을 나누는데, 김수민의 귓불이 계속 붉었다. 흠, 어디 아픈가….
김수민은 비각성자였다. 김수민이 내 앞자리에 앉았다.
“세 명 정도면 충분할 거 같은데-.”
“나도 껴 주라. 늦게 와서 애들 사이에 못 낌.”
이번엔 추리닝을 입은 단발머리 여학생이 끼어들어 김수민의 옆에 털썩 앉았다.
자다가 지각했는지 잠기운이 얼굴에 가득하다.
“하영아, 너 이거 들었어?”
“어잉, 너 보여서 여기로 왔지롱.”
김수민과 아는 사이인지 하영이라 불린 여학생이 킬킬 웃었다. 이름은 조하영. 역시 비각성자다.
진마하가 나를 보고 어떻게 할 거냐는 눈짓을 보냈다. 나는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몹시 수상한 놈과 붙어 있을 바에야 한 명이라도 인원이 더 많은 게 좋을 것 같다.
“그럼 우리 장소는 어디로 정할래?”
“게이트 졸라 많이 열려서 솔직히 학교 뒷산에 가도 찾을 수 있긴 한데…. 거긴 다른 애들도 다 알겠지?”
“음, 그러게. 겹치지 않게 하라고 하셨으니까.”
순서대로 진마하, 조하영, 김수민이 말했다. 다들 고민에 빠진 가운데 나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단 진마하가 수상하지만 붙어 있으면서 더 조사해 보기로 했고, 다른 생각도 들었다.
아싸에서 탈출해서 나도 발랄한 학교생활 좀 해 보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몇몇 팀이 꾸려진 학생들이 강의실을 나갔다. 어느새 비어 가기 시작한 강의실을 보던 김수민이 말했다.
“다들 그냥 가네. 우리도 일단 나갈까? 친해질 겸 내가 커피 쏠게.”
“어우, 자갸~ 통 너무 크다~.”
조하영이 싱글싱글 웃으며 김수민에게 착 달라붙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김수민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고 학교 인근 카페로 나왔다.
“다들 뭐 마실래?”
“나는 스무디 먹을래!”
조하영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김수민이 눈을 흘겼다.
“사 준다고 하면 꼭 비싼 거 먹지? 근데 뭐 괜찮아. 어제 알바비 받아서 내 통장 넉넉하거든.”
김수민이 개멋있게 어깨를 으쓱했다. 조하영이 오오-! 소리치며 열심히 환호해 준다.
메뉴판을 유심히 보던 진마하가 조금 부끄럽다는 듯, 볼을 붉히며 말했다.
“나는… 바닐라 라테에 휘핑크림 많이.”
음, 지같이 생긴 걸 먹네. 나도 덧붙여 말했다.
“난 아아.”
김수민이 결제하고, 우리는 음료를 하나씩 받았다.
조하영이 나랑 진마하에게 음료를 건네주며 우리를 번갈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진짜 얼굴만큼 취향도 정반대네.”
중얼거리듯 말한 조하영은 음료를 건네주고 앞서 나가는 김수민의 옆에 붙었다.
안 들릴 줄 알았겠지만… 들어 버렸다, 친구야.
바닐라 라테에 휘핑 많이는… 나는 진마하를 쳐다봤다.
나도 똑같이 생각했으니까 알겠는데, 아아같이 생긴 얼굴은 뭐냐, 차갑다? 어둡다? 그런 거니?
하, 역시 아싸는 안 되나.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뚱하게 바라보다가 조하영의 뒤를 쫓았다.
밝은 척하자 밝은 척. 나도 바닐라 라테처럼 달콤해 보이게.
날씨가 좋아 밖의 벤치에서 마저 장소를 정하기로 했다. 다들 각자 의견을 꺼낸다.
“한강에 열린 3급… 뭐였더라. 그거 유명 영화의 모티브 됐던 게이트. 거긴 어때?”
“너무 뻔하지 않아? 거기 하는 애들 분명 있을 듯. 신안 사거리는 어때?”
“거기 뭐였지. 니드호그의 악마였나…. 근데 거기 흔적이 남아 있나? 사거리라서.”
김수민과 조하영이 열정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멀뚱히 두 사람을 쳐다봤다. 나는 이 세계 사람이 아니었고, 비록 차해준의 기억이 있긴 하지만 차해준도 어디 골방에 틀어박혀 있다 나왔는지 세상 물정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 제 손으로 처치한 게이트는 알고 있는데, 과제로 그걸 꺼내 들기엔 좀 민망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아아를 쭉 빨고 테이블에 팔을 올려 턱을 괬다. 그때, 가만히 있던 진마하가 말했다.
“악마의 눈동자는… 어때?”
내 눈이 움찔했다. 나는 간신히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진마하를 쳐다봤다.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힌 진마하가 수줍게 웃었다. 김수민이 흠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악마의 눈동자? 하긴 몇 년 사이 제일 큰 게이트였긴 하지. 거기 근데 추모비도 많지 않나.”
“많지. 아직도 포스트잇 같은 거 잔뜩 붙어 있을걸.”
“너무 자극적이진 않을까? 좀 큰 게이트였기도 했고….”
조하영과 김수민의 반응이 좋지 않자 진마하가 반박하듯 말했다.
“그래서 더 쉽지 않을까? 주목도도 확 오르고. 워낙 컸던 일이라 흔적도 많이 남아 있잖아.”
“그렇긴 하지….”
“해, 해준이는 어떻게 생각해?”
가만히 있던 나를 진마하가 불렀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너희에게 맞출게.”
그러니까 악마의 눈동자는 피하자…. 나는 싫어요…. 거긴 차해준이 나탈리스를 처치했던 곳이잖아. 가뜩이나 여기저기서 한야로 지목받고 있는 상황에 찝찝해서 가기 싫다고…!
***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고, 오늘 대충 둘러보기만 하자.”
“그래. 어차피 나 알바 하는 곳도 그 근처야.”
“좋아.”
다들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막으로 나를 본다.
나는 애써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숨기며 대답했다.
“나도 시간 괜찮아.”
결국 악마의 눈동자로 정해졌다. 씨불…….
***
나는 애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악마의 눈동자가 나왔던 장소로 이동했다.
이 년 전 지반이 좀 무너지는 바람에 근처 지하철 노선이 바뀌어서 택시 타는 게 더 빠르다고 김수민이 알려 줬다. 사실 궁금하지 않았어….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교양 수업은 네 시간짜리 수업이었는데,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고 한 시간도 안 되어 나가시고, 학생들끼리 조별로 짜다가 시간이 남으니 다들 좀 들떠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고….
나는 아직도 거리 군데군데가 부서진 곳을 유심히 살펴보며 앞서가는 그들을 따라 걸었다.
다들 조잘조잘 얘기를 잘도 한다.
나만 또 이러지…. 에휴.
악마의 눈동자만 아니었으면 그래도 붙어서 뭐라고 말을 해 볼 텐데 괜히 기분이 이상해서 말이야.
주변엔 한 블록 넘어갈 때마다 공사장이 하나씩은 있었다.
큰 패널로 가려 놓은 곳들은 땅을 파는 소리, 건물을 쌓아 올리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어떤 곳은 부서진 그대로 유지되는 곳도 있었다. 나는 반파된 빌딩들이 제 모습을 다시 수복해 가는 것들을 보며 상념에 빠졌다.
꿈에서, 차해준은 저런 빌딩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
빌딩 몇 채를 합친 것만큼 커다란 나탈리스를 없애기 위해서.
그때 차해준이 어떤 눈을 했었는지, 보았던 나는 ‘차해준’이 실제로 싸웠던 장소를 직접 보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이 울렁인다고 해야 하나.
원래 유동 인구가 많았을 구역은 지금은 꽤 한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명찰을 단 직장인들이 몇몇 보이기도 했지만 서울치고는 적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나를 데리고 로터리로 된 도로 중앙으로 향했다. 거기엔 삼 층 높이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었다.
자잘하게 새겨진 이름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목제 펜스엔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고, 주위는 온통 꽃다발로 가득했다.
악마의 눈동자가, 왜 악마의 눈동자로 불리었는지, 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희생자가 너무 많았다. 절로 숙연해지는 기분이다. 추모비를 보며 떠드는 아이들을 보다가, 포스트잇 중 눈에 띄는 것을 발견했다.
허리를 살짝 숙여 쓰여 있는 글자를 읽었다.
-…게이트를 닫아 주신 그분에게.
당신 덕분에 살아서 숨을 쉽니다.
어디에 있든 감사를 표합니다. 건강하시길.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씨, 뭐야…. 울컥하잖아.
무언가 복받쳐 오르는 기분이다. ‘차해준’이, 구해 낸 사람….
나는 그것을 계속해서 보다가, 아이들이 안 보는 사이 주머니에 몰래 챙겼다.
힘들 때 봐야겠다. 차해준이 안타까울 때도 보고.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흔적이 추모비라고 하긴 너무 안 맞지 않아?”
“게이트 생성이 최초에 여기서 된 거잖아. 각성자들은 아직도 흐르는 잔존 마력을 느낀대.”
“에이, 설마. 이 년이나 지났는데?”
“진짜래. 내가 봤어. 여기 좀 기운도 장난 아니라는데. 무당들도 여기 지날 일 있음 피해서 간다잖아. 귀신 대박 많대.”
…교양 과제인데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냐.
그보다 코리안 오컬트 쩐다. 그런 얘기가 돌다니.
나는 고개를 기웃하며 진짜 잔존 마력이 있는지 느껴 보려 했지만 느껴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무당 얘기는 또 뭐냐…. 귀신은… 있긴 하겠지만.
김수민과 조하영이 떠들면서 추모비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런 둘을 보다가 괜히 주변을 둘러봤다. 거리가 묘하게 싸하게 느껴지는 게 있긴 하다…. 설마 이거 혹시?
“신기하지 않아?”
그리고 좀 깜짝 놀랐다. 진마하가 대뜸 말을 건 것이다.
얀마, 기척 좀 내라! 미친, 어떻게 S++급을 놀라게 할 수 있냐!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되물었다.
“뭐가?”
진마하는 추모비를 올려다보다가, 나를 쳐다봤다.
“여기서 열린 게이트 말이야. 그때 악마의 눈동자에 홀려서 게이트로 일부러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대.”
“사이비는… 원래 세기말에 판을 치긴 하지.”
진마하가 옅게 웃었다. 그러곤 다시 추모비를 바라보며 목재 펜스를 아련하게 쓸어내렸다.
“그 사람들은 다 죽었겠지.”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랬겠지. 튀어나온 몬스터들이 일대를 뒤덮었었으니까.
“아쉬워…. 구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진마하가 덧붙이는 뒷말이 어째 이상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진마하를 돌아봤다. 진마하가 눈을 휘며 웃었다.
“비밀인데, 하나 말해 줄까?”
…어째 분위기가 묘하게 바뀐 거 같은데. 뭐지.
아까 상태창을 확인했을 때처럼, 가슴이 선득하다. 뭔가, 있는 거 같은데.
진마하는 수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정말 비밀을 털어놓으려는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사실….”
“…….”
“내가 ‘한야’야.”
…뭐,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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