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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33화 (33/201)

33화

[게이트, ‘오염된 지하 도시’에 진입했습니다.]

[긴급! 퀘스트! ヽ〳 ՞ ᗜ ՞ 〵ง

-오염된 실험체 A-000을 처리하세요!

(A-000/A-0327)

난이도: 2급

보상: 생존, ????]

[긴그읍! 퀘스트!(수정)

-클리어런스(clearance)가 시나리오의 첫 오류를 발견했습니다!

원활한 수정을 위해 게이트 붕괴를 일시 정지합니다!

-오염된 지하 도시의 미치광이 박사 ‘케이든’을 처치하세요!

난이도: 2+?

보상: 생존, ???, ???]

[케이든 박사의 ‘오염 물질’이 게이트 내부에 퍼져 있습니다! 빠르게 정화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상태 이상’에 빠지게 됩니다.

오염된 정화석을 찾아 파괴하세요.

파괴된 오염된 정화석 :0/3

현재 오염도 : 9%]

거대하게 뚫린 지하 수로 앞에서,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에 요란하게 번쩍이는 시스템창의 글자를 다 읽기도 전에 휑한 바람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

지하 수로 안에서 몰아쳐 오는 바람이었다.

입구 주변엔 카리나의 불꽃에 타서 눌어 버린 폐기물들의 흔적과 무너진 폐허의 잔해가 있다. 게이트 안의 공기는 악몽의 참견 때처럼 탁했다.

신경 줄을 건드리며 얕게 퍼지는 거북한 기운.

…이게 그건가. 오염 물질?

…어휴 하여간 쉬운 것이 없어요, 쉬운 것이!

오류는 또 뭐고, 케이든이란 놈은 또 뭔데! 왜 부가 설명이 없냐고!

퀘스트 내용이 아주 불친절하기 그지없었다.

빡침을 담아 시스템창을 눌러 보았지만 시스템창은 퀘스트 내용을 빼곤 더 보여 주지 않았다.

[(ʃƪ ˘ ³˘)♥(˘ ε˘ʃƪ)]

…꺼져, 새끼야!

놀리는 것처럼 뜬 이모티콘에 빡이 쳐 눈앞을 막 휘저었다.

시스템창이 아주 천천히 흐려진다. 그리고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

반응하니까 더 놀리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기분 탓이겠지?

개빡친 얼굴로 노려봤지만 시스템창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거대한 지하 수로를 노려봤다. 입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다.

분위기가 꼭 뭐 하나 튀어나올 것처럼 생겨서 영 찝찝했다. 저길 들어가야 한다고? 솔직히 다른 선택지는 없지만, 그래도.

“차해준! 이게 무슨 짓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도중, 갑자기 손목이 잡혀 몸이 휙 돌려졌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송류진이었다.

“너, 왜 들어왔어?”

뭐야, 게이트 지켜야 할 놈이 여길 왜 들어와?

나의 당황 섞인 외침에 송류진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실소했다.

“네가 들어가니까! 아무리 A급이래도 각성한 지 얼마나 됐다고…!”

송류진이 흥분에 차 버럭 소리쳤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송류진이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본다. 분노라기보단 걱정에 찬 것 같았다.

송류진은 씩씩대며 말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더니 나를 노려봤다. 눈시울이 좀 벌게진 것도 같은데…?

내가 말없이 자신을 빤히 보며 살피자 송류진은 깊게 숨을 들이켜고 내 팔을 잡아당겼다.

“나가자. 뭐가 튀어나올 줄 알고 겁도 없이 들어와!”

“아니, 잠깐, 야.”

무작정 나를 끌고 나가려는 몸짓이 조급해 보였다.

겁도 없긴 인마. 내가 이래 봬도 랭킹 1위라고!

잡힌 손목에 악력이 더해지며 꽉 조여 왔다.

송류진이 힘을 준 탓이다. 솔직히 쉽게 내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송류진의 표정이 너무 간절해 보여 그럴 수가 없었다.

이놈이 날 걱정하는 게 이해는 간다. 나 같아도 친한 친구 놈이 막 각성했는데 게이트 들어오겠다고 했으면 억지로라도 말렸을 테니까.

나는 송류진에게 질질 끌려가며 어떻게든 설명해 주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아 이걸,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고. 내가 여기 게이트 터질까 봐 들어왔다? 안 들어왔으면 터졌을 거다? 이렇게 말하면 이놈이 이해하겠냐고….

그때였다. 게이트로 불쑥 튀어나온 백루찬이 순식간에 다가와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송류진의 팔을 붙잡았다.

“각본의 태자마마는 존중이라는 단어를 아예 모르시나 봐.”

“…뭡니까. 당신은 또 왜-.”

“길드 공략팀으로 게이트에 들어온 건데 뭐가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공략팀이면 혼자 하십시오. 멋대로 끌어들이지 말고.”

“누가 끌어들여요? 당신이 잡고 있는 차해준 헌터 우리 길드원인데요.”

“뭐요?”

“우리, 모르젠트 길드원.”

백루찬이 기어코 송류진의 손을 떼며 내 어깨를 붙잡아 당겼다.

“같은 공략팀이란 소리죠. 모르젠트 일은 모르젠트가 알아서 할 테니까, 송류진 헌터나 나가면 되겠습니다.”

환하고 예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입가가 휘어졌는데도 눈빛이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니었다.

송류진은 말문이 막혔는지 입술을 꾹 깨물고 백루찬을 노려보았다.

서로를 노려보는 둘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 환상이 이는 것 같았다. 중간에 낀 나는….

“둘 다 헛소리하지 말고 나가라. 알아서 할 테니까.”

나는 짜증스럽게 놈들을 뿌리치고 어깨를 밀쳐 다시 지하 수로 앞으로 나아갔다.

또, 또 이런다. 저번에도 그렇고 왜 자꾸 너희 기 싸움에 나를 못 끼워서 난리야. 싸우려면 둘이 싸워라. 엉아는 바빠요.

게이트 붕괴는 잠깐 멈췄지만 어디까지나 ‘일시 정지’다. 시스템창이 내놓은 퀘스트를 빨리 깨야 멈추든 없애든 할 수 있다고!

이대로 속 편하게 저놈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을 순 없었다.

나는 지하 수로로 향해 가다가 다시 뒤를 돌아봤다.

백루찬과 송류진은 내 행동에 당황했는지 눈을 끔벅이며 멍청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가. 둘 다.”

저번 데빌루데스 게이트 때가 떠올랐다. 분명 보스인 케르베로스까지 죽였는데도, 몬스터는 키메라처럼 되살아났다.

그렇게 되살아날 때마다 본래보다 훨씬 강해졌다. S++급인 내가 그렇게 다치고 당했는데, 이놈들은 나보다 약하다.

“다친다.”

겨우 스급인 놈들은 빠지자. 형아 바빠요.

지금은 지켜보는 마계 놈이 없지만, 이번 게이트도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시스템창도 ‘오류’라고 말했고. 그럼 분명 이상 반응이 생긴다는 거다.

나는 저놈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한솔이 한 명도 힘들어서 그렇게 다쳤는데 무슨.

내 띠꺼운 표정에 감명받았는지 백루찬이 입을 꾹 다물고 입가를 씰룩거렸다.

웃음 참는 거 같은데 저거. 내가 노려보자 슬쩍 시선을 피하는 게 느껴졌다.

새끼가, 내가 한야라는 걸 알면 알아서 좀 기어라.

반면 송류진은 딱딱하게 굳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송류진을 힐끔 보고 등을 돌렸다.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인 건 알겠고, 송류진의 입장도 알겠지만, 나로선 각본 소속 헌터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좀 더 자유롭게 몸을 쓸 수 있다.

아까도 내가 적당히 살살, 대충 잡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음, 좀 신나게 잡긴 했고… 약간 양심에 찔리지만 넘어가자.

내가 지하 수로를 향해 걸음을 옮길 때였다. 마력 파장 너머로 또 다른 인물이 불쑥 튀어나왔다. 인기척에 멈칫했다. 잘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문제를 일으키는 놈들은 자기가 문제아인 걸 몰라요.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지를 않아.”

“…….”

“이 개아가들아, 게이트 법령이라는 게 왜 만들어졌게? 너희같이 귓등으로도 안 들어 처먹는 놈들 정신 챙기라고 생긴 거야.”

나는 똥 밟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잔뜩 짜증 나고 피곤함이 쌓인 얼굴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손가락질했다.

“특히, 너. 꼼짝 말고 서라. 진짜 잡아 처넣기 전에.”

우반희였다. 우반희는 송류진의 목덜미부터 휙 잡더니 다른 손으론 백루찬의 코트 자락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나를 보곤 고개를 까닥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따라 나와.”

노려보는 기세가 아주 대단했다. 이놈도 나름 S급이라고 티를 마구마구 낸다. 나는 떫은 표정으로 놈을 쳐다봤다.

뒷덜미를 잡힌 새끼 맹수 같은 꼴이 되었는데도 송류진은 의식도 하지 않고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굳어 있는 표정이 묘하게 시무룩하다. 백루찬은 웃는 얼굴로 우반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 주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뭐 하는 꼴이야, 저게. 왜 둘 다 반항을 안 해? 물론 알아서 나가 주는 건 고마운데.

그래, 일단 나가는 척 따라 주고 마지막에 안으로 토끼자.

설명할 수 없는 것 때문에 골머리 썩지 말고. 스킬 사용하면 못 따라잡겠지.

게이트 앞으로 백루찬과 송류진을 끌고 온 우반희가 한 놈씩 게이트 밖으로 집어 던지려는데, 순간 셋이 동시에 마력 파장을 쳐다봤다.

“…뭐야, 이거.”

다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놈들에게 다가갔다. 왜 안 나가고 저러고 있어?

[미치광이 박사 ‘케이든’이 이물질을 인식합니다. ‘케이든’이 새로운 실험체가 등장함에 기뻐합니다.]

[‘일시 정지’ 상태에서 게이트에 입장하면 퇴장할 수 없으니 주의하세요!><]

갑작스레 뜬 시스템창이 눈앞에서 퍼런빛으로 번쩍였다.

…이 개씨발 시스템이….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 진즉에 말해야 할 거 아냐!

***

“…간혹 이런 경우가 있긴 했죠. 게이트가 사람 삼키고 작동을 멈추는 경우가.”

“간혹이 아니라 여태껏 딱 한 번밖에 없는 사건이었어.”

“가평에서 있었던 사건 말이죠. ‘낙안의 협곡’ 그 게이트.”

“그러게 왜 멋대로 나서서 문제를 일으키냐고. 너 약간 그런 식으로 관심받고 싶어 하는 편?”

우반희가 나를 보며 이죽거렸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저게 진짜 신경 줄을 팍팍 긁어 대네.

나 포함 네 사람의 발소리가 지하 수로를 울린다. 백루찬이 제작 스킬을 가진 각성자가 던전 부산물로 만든 ‘모르젠트 전용 비상 가방’에서 나온 손전등을 들고 앞을 비췄다.

말이 가방이지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은 ‘주머니’였다. 던전 부산물로 만들어서 인벤토리처럼 이용할 수 있다나 뭐라나.

우반희에게 랜턴을 건네준 놈은 야영이라도 나온 사람마냥 주변을 휘휘 비추며 앞질러 나갔다.

스급이라 어둠 속에서도 앞이 훤히 잘 보일 새끼들이 손전등이 뭐냐 손전등이….

나의 짜게 식은 표정에도 백루찬은 우아하게 걸어갈 뿐이었다.

그렇다. 게이트를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되고, 퀘스트 알림창이 뜨자 세 사람은 미리 짠 것처럼 연합을 결성했다.

이름하여, 오염된 지하 도시 보스 넌 내 거야…!

…는 아니고, 그냥저냥 보스 잡고 나가자는 연합이었다. 비록 한 명은 공격력 없는 보조 계열이지만 셋 다 S급이기 때문에 나온 태평한 생각이었다.

나갈 수 없으니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 건 좋다 쳐.

그래도 너희들 너무 태평한 거 아니냐. 지금 걱정 가득한 사람은 송류진밖에 없다.

내 옆에 딱 달라붙은 송류진은 주변에서 뭐가 튀어나오기라도 할까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살피기에 바빴다.

변변찮은 공격 스킬도 없어 보이는 우반희는 담배 말린다는 표정일 뿐 휘적휘적 앞서 걸어간다.

각본 일 하면서 이런 적이 많아서 그런가.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는 생각에 짜증은 나지만 크게 걱정하는 모습은 아니다.

…저게 문제다. 왜 이것들이 걱정을 안 해? 아까는 그렇게 난리를 피웠으면서?

백루찬이 태평한 건 이해가 간다. 겉은 A급이지만 속은 S++급인 내가 같이 있으니 뭔 일이 일어나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거 같은데, 물론, 괜찮기는 하겠다만 나는 걱정이 됐다. 나 말고 이놈들이.

이것들… 데리고 오류인지 뭐시긴지 해결할 수 있을까.

한숨이 푹 나온다.

얘기 들어 보면 전에도 이런 식으로 게이트가 닫혔던 거 같은데. 첫 경우가 있었으니 우반희도 짜증만 낼 뿐 더 말을 안 하고 보스 깨러 가는 것 같고.

근데 말이다….

나는 슬쩍 내 눈앞에 뜬 시스템창을 바라봤다.

[케이든 박사의 ‘오염 물질’이 게이트 내부에 퍼져 있습니다! 빠르게 정화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상태 이상’에 빠지게 됩니다.

오염된 정화석을 찾아 파괴하세요.

파괴한 오염된 정화석: 0/3

현재 오염도: 15%]

오염도 수치가 올라가 있다. 이놈들도 혹시 이 내용을 알고 있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놈들을 살펴봤다. 다들 아무리 봐도 오염 물질이 퍼져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다.

내 눈앞에 뜨는 시스템창과 동일한 내용이 뜨는 게 아니라는 거겠지?

나한테도 불친절한 시스템이 원래 이 세계 사람들에게는 친절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는 혼자 고민하다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공기가 좀, 탁하지 않아?”

내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내뱉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우반희가 입에 물고 아그작 씹던 담배를 퉤 뱉어 냈다.

“불도 안 붙였는데.”

“그거 말고.”

짜게 식은 표정으로 일갈하자, 우반희가 고개를 돌렸다. 백루찬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들이 바로 튀어나오지 않는 건 좀 이상하네요. 뭐, 게이트 종류야 여러 개니까.”

“아니 그거 말고.”

“불안해서 그래?”

송류진이 옆으로 붙어 오면서 물었다. 한숨이 나온다. 그게 아니라 이놈들아….

“걱정하지 마. 네가 나설 일은 없어. 그래서도 안 되고.”

송류진이 단호한 표정으로 못을 박았다. 내 팔을 꽉 붙잡는 게 넌 절대 못 나서게 내가 막을 거야…! 하는 의지가 느껴진다. 아니, A급 정도면 2+급 게이트에 비벼 볼 만한데 왜 이렇게 걱정이야.

너나 걱정해라, 이놈아. 엉?

내가 괜찮다며 놈의 팔을 떼어 내자 송류진이 멈칫했다가, 다시 내 옆에 붙었다.

아까 입구를 막고 있던 폐기물들을 끌어낸다고 점액 덩어리들에 덤벼들었더니 입고 있던 후드 티가 더러웠다.

묵직한 게 젖은 거 같기도 하고. 나는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내 옷을 내려다보다가 입고 있던 후드 티를 훌렁 벗었다.

갑자기 혼자 걸음을 멈추고 옷을 벗자, 다들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뭐 해요, 형?”

백루찬이 내게 손전등을 비추며 물었다. 불빛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고 점액질이 잔뜩 묻은 후드 티를 집어 던졌다. 봄용 후드티라 안에 받쳐 입은 티셔츠까지 축축했다. 흰 반팔 티가 젖어서 몸에 들러붙었다.

“찝찝해서, 더럽고.”

“…아.”

드러난 팔뚝에 들러붙는 공기가 느껴진다. 티셔츠 냄새를 맡아 보니 점액질 냄새가 꽤 강했다. 아 이거 너무 찝찝한데. 백루찬의 만능 주머니에 여분 옷이 없나. 모르젠트 비상 주머니니까 가능성이 없진 않다.

“주머니 좀 뒤져 봐. 여분 옷 같은 거 있을 거 아냐.”

“그냥 다 벗어요. 보기 좋네.”

“…미쳤습니까?”

백루찬의 말에 나보다 송류진이 더 격하게 반응했다.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남자 놈들인데 뭐 어떠랴 생각하는데,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우반희가 입고 있던 정장 재킷을 벗어서 나에게 던졌다.

“이거라도 입어.”

오, 웬 친절. 나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반팔 티셔츠를 벗고 재킷을 걸쳤다. 재킷의 단추를 잠그고 고개를 드는데, 아직도 놈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왜.

“왜, 냄새나?”

내가 킁킁대며 팔 부분에 냄새를 맡았지만 우반희 옷이라서 우반희가 뿌린 향수 냄새만 날 뿐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보는 표정들이 어째 미묘하다.

백루찬이 가만히 지켜보다가 싱긋 웃었다.

“취향이니까 백 점 드릴게요.”

“10점 만점에 8점. 너무 말랐어.”

“…위급 상황에 남의 몸 가지고 품평하지 마요.”

송류진이 한숨 쉬며 덧붙였다.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지금 내 몸 얘기였냐.

내가 떫은 표정으로 가슴팍을 가렸다. 뭔 쓸데없는 얘기야. 그리고 10점 만점에 10점 받아도 부족한 완벽한 잔 근육 몸매다! 내가 째려보자 백루찬이 재밌다는 얼굴로 킥킥 웃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손전등을 다시 모르젠트 비상용 가방에 집어넣었다.

나는 혀를 차며 그림자 속에서 한야를 끄집어냈다.

송류진이 그런 내 앞을 막아서면서, 가르덴의 송곳을 빼 들었다.

지하 수로 앞, 어둠 속에서 꾸물거리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무섭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무언가. 쿵쿵 소리가 점점 커진다.

보조 스킬만 있는 우반희는 뒤로 빠졌다.

끼릭. 끼릭.

벽을 손톱으로 긁어내리는 끔찍한 소리가 이어졌다.

백루찬이 어둠 속을 노려보면서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게이트 속 몬스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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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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