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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37화 (37/201)

37화

“야, 정신 차려- 윽!”

날아오는 주먹을 팔을 틀어 막았다. 빠른 공방이 오가며 바짝 붙어 육탄전이 이어졌다.

몸을 붙여 오는 송류진은 스킬 같은 건 사용하지 못하는 듯했다. 마력은 도는지 눈 밑에 푸른 안광이 돋았다. 내뻗는 공격을 받아칠 때마다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아오, 나는 마력도 잘 사용할 수 없단 말이다!

“컥-.”

복부에 꽂히는 주먹에 몸이 뒤로 물러났다. 계속 막기만 하니까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야를 휘두르는 건 안 된다. 검을 쥔 손에서 힘을 풀자 한야가 바닥에 떨어지며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뒤로 점점 밀리는 나를 쫓아온 송류진이 몸을 빠르게 돌리며 연속으로 공격을 가했다. 몸을 낮춰 피했지만, 순식간에 자세를 바꾼 송류진이 다리를 뻗어 바닥을 쓸었다.

나는 놈의 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우당탕 넘어지는 나를 송류진이 멱살을 잡아채 바닥에 내리꽂았다.

“큭--!”

목을 압박하며 내 위로 올라탄 송류진이 금방이라도 안면에 주먹을 내리칠 것처럼 모션을 취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때, 한 번의 깜박임도 없던 송류진의 눈이 깜박였다. 내리치려는 주먹이 멈추더니, 그 손은 천천히 내 뺨을 쓸어내렸다.

송류진이 눈가를 파르르 떨며 인상을 구겼다. 한껏 뒤로 뺀 어깨에서 힘이 풀리면서, 송류진은 주먹을 쥔 손을 내렸다. 멱살을 쥔 손에서도 힘이 풀렸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송류진을 불렀다.

“류진아….”

멍한 얼굴을 한 송류진이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내 얼굴을 더듬거리며 매만졌다. 이제 좀 정신이 드는 건가?

눈치를 살피며 송류진을 밀치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상체를 반쯤 들었을 때쯤, 송류진이 내 어깨를 붙잡고 나를 다시 바닥에 밀쳤다. 쿵- 부딪치는 충격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류, 류진아.”

코앞에 송류진의 얼굴이 있었다. 새파란 안광이 넘실대는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거 뭐야, 정신이 든 거야, 아닌 거야?

도무지 분간을 못 하겠다. 이를 악물며 어깨를 붙잡은 송류진을 밀쳐 보았지만,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 진짜 왜 이러냐. 정신 좀 차려!”

애달프게 애원하며 놈을 불렀지만, 송류진은 이상한 반응을 내보였다. 대뜸 내 목덜미에 고개를 묻더니,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이놈아! 네가 개새끼냐!

송류진의 머리칼을 부여잡고 잡아당기며 몸을 비틀었다.

“야, 송류진!”

아오, 제발 좀! 정신 차려라악!

팔을 움직이려 했더니 손목을 움켜쥔 놈이 나를 꼼짝도 못 하게 압박했다.

목덜미에 스치는 숨결이 느껴진다. 바짝 돋는 소름에 나는 몸을 버둥거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악-!”

코를 부비던 송류진이 이를 드러내며 목덜미를 까득 깨물었다. 이 새끼가 뭐 하는 거야!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가 나는 것 같았다. 놈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마치 맛을 보는 것처럼 목덜미를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으흣…! 이놈아, 좀…! 정신, 차리라고!”

송류진은 내 말엔 반응 하나 없이 몸을 바짝 붙여 왔다. 놈에게 깔려 숨이 막혔다. 네가 흡혈귀냐고! 왜 갑자기 이러는 건데!

그때 케이든의 변태 같은 신음이 들렸다.

“하아… 번식 행위를 하고 싶나 봐.”

케이든은 킥킥대며 웃었다.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면서 나와 송류진의 작태를 빤히 감상했다.

“내가 하는 세뇌는 원하는 것을 보여 주거든. 내재된 음습한 욕망을 속에서 끄집어내고 말지.”

“흣…!”

“원했던 거야.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 왔으니까. 자기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깨달은 거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해준아? 우리 S-23은 지금 오래도록 참은 욕망을 표출하는 거라고.”

미친, 뭔 개소리야!

“윽…!”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이번엔 반대쪽을 씹는다. 뜨거운 입김과 피부 결을 핥는 혀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리를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애를 쓰자 송류진은 내 허벅지를 압박하며 내리눌렀다. 나는 기함했다. 놈이 턱 선을 타고 점점 올라오며 촙촙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소름이 바짝 돋는다. 그동안 송류진이 이딴 행위를 원했다고? 번식…. 제기랄 애초에 나도 이놈도 남자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세뇌 때문이 아니면 이유가 없다. 그렇게 친했던 놈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 들러붙고 싶어 할 이유가 없잖아…!

약한 끈으로 묶였던 환자복 상의가 송류진에 의해 점점 풀리고 있었다. 놈은 이제 빗장뼈를 훑고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이로 묶인 끈을 풀어 내리는 게 자연스럽다. 너 인마, 이런 짓 많이 해 본 거냐…. 뜬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부스러질 것 같은 머리카락이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에 비벼진다. 나는 한껏 인상을 쓰며 송류진을 불렀다.

“류진아.”

한 번도 내 목소리를 인식한 적 없던 송류진이, 처음으로 멈칫했다. 나는 몸에 마력을 돌렸다. 혈관을 타고 퍼져 나간다고 생각하면서 손끝까지 마력을 전달했다. 그제야 잡힌 손목을 간신히 빼낼 수 있었다.

내 어깨를 움켜쥔 송류진의 다른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피부를 파고들 것처럼 세게 붙잡는다.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는, 송류진의 얼굴을 붙잡아 나를 보게 했다.

이지 없는 눈. 텅 빈 동공과 눈을 맞췄다.

나는 쓰게 웃었다. 인마, 지금 너랑 나 이게 무슨 꼴이냐. 너는 그냥 내가 걱정돼서 나를 따라 들어왔을 뿐인데.

그러니까 내가 들어오지 말랬잖아. 왜 말을 안 들어서 이 모양 이 꼴로 저 개자식에게 휘둘리고 있냐고.

차갑게 얼어붙은 피부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미안하고.

“송류진.”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말하듯이, 나는 간절히 놈을 불렀다.

송류진의 눈이 느리게 깜박였다. 나는 송류진의 뺨을 느리게 쓸어내리다가, 꿈속에서 우반희가 잡혀갔을 때처럼, 그때 당황한 나를 진정시키려 했던 송류진의 모습을 따라 했다.

그게 꿈속의 일이었는지 정말 환각뿐이었는지 사실 구분을 못 하겠다. 그 순간도 나에겐 현실처럼 느껴졌으니까.

우반희가 물살에 휩쓸리던 순간도, 송류진이 괴물에게 잡혀가던 순간도, 백루찬이 사라진 그 순간도.

나에겐 현실이었다. 끔찍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래도 살아 있었어. 이놈들을 다시 찾았어.

나는 엄지로 송류진의 눈 위를 느리게 쓸며 눈가를 더듬었다. 그리고 다시, 속삭이듯 송류진을 불렀다. 송류진이 멈칫하며 고개를 약하게 흔들었다. 나는 다시 놈의 얼굴을 붙잡고,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나 차해준이야.”

“…으….”

“너는, 누구야.”

“…으윽….”

“뭐 하는 거지? 왜 행위를 멈추는 거야?”

케이든이 당황하며 송류진을 불렀다. 케이든은 송류진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엎어진 나와 송류진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난 차해준. 넌?”

“해준….”

“어. 너는?”

“…소….”

“흐음,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가장 원하는 순간에 도달했건만 왜 먹지를 못하니, 우리 귀염둥이는.”

케이든이 지척에 도착했다. 나는 송류진을 재촉하듯 쳐다봤다. 송류진이 옅게 숨을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송류진.”

송류진이 힘겹게 자신의 이름을 내뱉는 순간이었다.

띠링!

[…메인 캐릭터, ‘송류진’과 각인되었습니다.]

[※각인 주의: 대상의 각인 상대에게 가지는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컨트롤 비정상 확률: 50%]

시스템창이 울리며 각인이 된 것을 알렸다.

순간이었다. 흐리던 송류진의 눈이 번쩍인 것은.

지척에 다가온 케이든이 송류진의 어깨를 붙잡고 돌린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S-23. 번식 행위는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케이든이 음습한 말을 중얼거리며 송류진을 이리저리 살폈다. 나는 조용히 그림자 속에 사라진 한야를 다시 꺼내서 잡았다.

“네가 더 많이 움직여야 차해준의 몸으로 실험을 더 할 수 있게 된단다. 너는 네 새끼를-.”

그때였다. 멍한 얼굴을 한 송류진이 자신을 살피는 케이든의 목을 콱 붙잡았다.

케이든이 당황해 몸을 뒤로 뺀다. 그냥 보낼 거 같냐. 나는 손에 쥔 한야를 송류진의 허리춤 사이로 찔러 넣었다.

정확히는 늘어진 펜던트 형태의 정화석을 노리면서.

“커억-.”

푹- 꽂히며 놈의 몸에 박히는 한야를, 더욱 꾹 누르면서,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제 목을 움켜쥔 송류진과 가슴팍에 꽂힌 검을 보는 케이든의 표정이 경악과 혼란으로 물들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하긴, 새꺄.

[각인 효과로 인해 케이든의 ‘판도라의 세뇌’가 깨졌습니다!]

[첫 번째 오염된 정화석 탈취!

미치광이 박사 케이든이 가지고 있던 오염된 게이트석이 깨지면서 마력 게이트가 활성화됩니다!

파괴된 오염된 정화석: 1/3]

[게이트 내부에 깔려 있던 오염 물질이 빠르게 희석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두 개를 찾아 파괴하세요.]

메인 캐릭터 빨이다, 이 자식아!

***

“큭, 큭큭-.”

케이든이 미친놈처럼 비틀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눈을 빛낸 송류진이 나와 눈을 맞췄다. 동시에 케이든의 팔이 검게 물들더니, 놈이 괴성을 내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송류진이 나를 붙잡고 뒤로 훌쩍 몸을 뺐다.

“괜찮아?”

몸을 붙이며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송류진이 잔뜩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직도 얼굴에 검은 혈관이 비쳤다. 이놈아, 너는 괜찮은 거냐.

“너는?”

“나는 괜찮- 윽.”

머리를 움켜잡은 송류진이 비틀거렸다. 이번엔 내가 송류진을 부축하며 케이든을 살폈다.

쓰러질 것처럼 휘청거리던 케이든이 가슴에 꽂힌 한야를 빼내 집어 던졌다. 한야는 곧바로 그림자에 녹아 사라졌다.

의사 가운이 소매부터 검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놈의 손가락이 기괴하게 꺾이며 늘어났다. 몸을 움츠리고 있던 케이든이 허리를 뒤로 젖혔다. 놈의 몸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으큭, 윽-.”

케이든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더니, 뒤로 꺾어진 허리를 바로 하며 고개를 들었다. 번들거리는 검은 눈이 붉게 변해 있었다.

과하게 부풀어 오른 흉통에 셔츠가 찢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와씨 저걸 버티네.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단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손을 옆으로 뻗었다. 한야가 내 손에 잡혔다.

긴장되니까, 긴장감을 낮추려고 자꾸 생각이 돌아간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송류진을 바라봤다.

“정신 차렸으면, 저놈들 좀 챙겨.”

“…너는.”

“내가 맡을게. 보스 몹.”

걱정스러운 기색이 다분한 송류진의 얼굴을 보고 나는 씩 웃어 주었다.

케이든이 목에 걸고 있던 정화석이 가장 중요한 거였는지, 미약하던 마력이 댐 터진 둑처럼 몸 안에서 돌고 있었다. 나는 송류진을 밀어내고 얼어붙은 칼날을 시전했다.

한야의 검신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이제 스킬도 사용할 수 있고.

고개를 흉측하게 꺾던 케이든이 비릿하게 웃었다.

-이 폐기물 새끼들이. 주인을 몰라보고.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같이 탁하게 변한 목소리가 뇌에 울린다.

[게이트, ‘오염된 지하 도시’의 보스 몬스터, 미치광이 키메라 케이든과 조우했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려 오류를 바로잡으세요!

난이도: 1-

달성 시 보상: 생존, ?????]

[케이든이 광폭화를 사용했습니다! 게이트 내부가 비정상적인 오류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정화석을 부수고 게이트를 탈출하세요!]

[제한 시간: 15:00]

익숙한 제한 시간이 눈앞에 떴다.

나는 씩 웃었다.

오냐. 시간 안에 조져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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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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