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조하영은 김 선생님을 따라가고, 나는 권 선생님을 따라 맡게 될 반으로 이동했다. 내가 맡은 반은 권 선생님이 담임으로 계시는 3학년 1반이었다.
아침 조례 시간이라 당당히 들어가시는 권 쌤을 따라 씩씩하게 반으로 들어갔다. 권 쌤이 교탁 앞에 설 때까지 부산스럽던 반이, 내가 들어가자 무슨 침묵 스킬이라도 쓴 것마냥 조용해졌다.
분위기 왜 이래? 어색한 마음에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권 쌤의 옆에 섰다. 1반 학생들이 나를 보고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더니, 이내 서로 속닥거리며 힐끔힐끔 시선을 던졌다.
부담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뭔가 분위기가 싸했다.
권 쌤도 그걸 느꼈는지 교탁을 탁탁 두드리며 내 소개를 했다. 친절해 보이도록 웃으며 이름을 말하고, 인사를 했지만 아이들은 반응이 미지근했다.
음, 원래 교생 쌤이 오면 반응이 이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쯤, 옆 반인지 어디인지 복도 쪽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귀를 기울이니 책상을 두구두구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조하영의 낭랑한 소개말이 들렸다.
“음, 음….”
권 쌤이 내 눈치를 한번 보고 학생들을 눈치를 한 번 더 봤다. 완전 다른 반응에 권 쌤도 당황한 눈치였다. 이거 원, 각성자라 그런가…. 내가 좀 무섭게 생겼나?
그러나 아이들 눈빛은 무서운 것을 보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각성자를 보는 신기한 눈빛도 아니었다. 어딘지 미묘한… 불편한?
그렇게 생각할 때쯤이었다. 가운데 앉아 있던 한 남학생이 일어났다.
“애들아, 교생 쌤 당황하시잖아.”
우영이란 학생은 부드러운 인상에, 언뜻 봐도 체격도 좋아 보였다. 어깨가 떡 벌어졌다, 아주.
“큼, 큼… 고맙다, 우영아. 그래, 애들아 우리 환영의 의미로 박수라도 칠까?”
권 쌤의 말에 우영이라 불린 학생이 먼저 박수를 치자 그제야 아이들이 따라서 박수를 쳐 줬다.
이런 반응은… 좀 당황스러운데.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훑자 시스템창이 눈앞에 연달아 떠올랐다.
[이름: 지우영
칭호: (비어 있음)
클래스: 비각성자]
박수를 치는 지우영과 시선이 마주쳤다. 지우영은 가만히 나를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눈웃음을 쳤다.
그리고, 천새벽은 가장 창가 쪽 맨 뒤에 앉아 있는 학생이었다. 이제 여름을 앞두고 살랑이는 바람이 부는 창가는 얇은 시폰으로 된 커튼이 날리고, 창밖을 보고 있던 천새벽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바람에 흩날리는 갈색 머리카락. 눈물점이 박혀 있어 묘한 느낌을 풍기는 눈매가 도드라진다.
[이름: 천새벽
칭호: (비어 있음)
클래스: 비각성자]
시나리오에서 나왔던 이름이었다. 순간 몸이 움찔했다. 나는 얼어붙은 사람처럼 굳어서 천새벽을 바라봤다. 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이 눈앞에 등장했다. 마치 눈앞에 시나리오가 보이는 것처럼, 머릿속에 자동으로 천새벽이 나오는 장면이 재생되었다.
[천새벽이 바닥을 양손으로 짚는다. 그 순간, 오색 빛을 머금은 투명한 결계가 화아악- 소리를 내며 천새벽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줌 아웃) 그 뒤로 쓰러져 있는 학생들. 반장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외친다.
반장: 왜, 네가…!]
“그래, 우영이가 반장이니까….”
나는 퍼뜩 놀라 다시 지우영을 바라봤다. 반장이… 저 애였어?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천새벽과 눈이 마주치자 시간이 멎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가 손을 내렸다.
넋을 빼놓고 있는 나를 깨운 것은 작은 목소리였다.
“아, 하필 제일 중요할 때 무슨 교생이야.”
앞자리에 앉은 친구였다. 중얼거림이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름: 노태연
칭호: (비어 있음)
클래스: 비각성자]
나는 굳이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노태연이라는 아이는 그런 나를 힐끔 보고 신경질적으로 책상 위에 놓인 문제집을 보기 시작했다.
권 쌤이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질문 타임을 가지기로 했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지우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쌤, 저희 다음 교시에 쪽지 시험이 있어서요, 종 칠 때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조금 일찍 끝내 주시면 안 될까요?”
“아, 그러니? 그래, 그럼. 하하, 애들아, 오늘도 파이팅 하자!”
권 쌤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애써 웃었다. 짧은 실습이지만 그래도 몇 개월 동안 함께하는 건데 반 애들은 반응도 안 좋고, 하필 내가 맡은 반에 시나리오에 나오는 등장인물도 있다니.
이거 사건이 여기서 터진다고 아예 광고를 하지 그러니. 굳이 따로 시간 들여 찾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부담감이 더 생겨 버렸다. 살갑지 않은 반응들도 좀 당황스럽고.
교실을 나오자, 권 쌤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애들이 고3이라… 응, 그래. 이해해 줘.”
“당연하죠, 이해하고 말고 가 어디 있나요. 하하….”
미묘하게 썰렁한 반응에 괜찮다고 말하자 권 쌤은 한숨을 쉬며 앞서 걸어갔다.
나는 잠시 멈춰서 교실을 돌아봤다.
…각성자라서, 그래서 그런가. 하긴 각성자가 교생으로 학교에 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거의 전무하다 싶을 정도니까. 그래도 보통은 신기해하거나 하지 않나.
나는 권 쌤의 뒤를 쫓으며 혀를 찼다.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고 뭐…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지금 시나리오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거였다. 등장인물 중에 메인 캐릭터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지켜야 할 절대적인 인물.
그렇다고 또 저 애들이 위험에 빠지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천새벽….
시나리오의 뒤 장면이 떠올랐다. 폐아파트 장면과 이상한 사이비들이 나오는 장면과 섞여 있었지만 나는 똑똑히 읽었다.
결계를 만들어 아이들을 모두 구하고, 혼자 피를 토하며 죽어 가던 천새벽을.
지금은 비각성자로 뜨지만, 시나리오에서 분명 능력을 썼으니 한솔이처럼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각성을 하는 것 같았다.
…그냥, 나 혼자 괜히 더 마음이 쓰였다.
***
정신없는 첫 실습을 마친 나는 집이 아닌 길드로 가야 했다. 한 것도 없이 권 쌤을 졸졸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몸이 아닌 정신이 피로했다. 이 짓을 2개월은 해야 한다 이거지… 하하. 넋이 나갈 거 같다.
“짜잔!”
“…이게 뭐냐?”
길드에 오자마자, 홍희가 나를 붙잡고 마네킹 앞에 세웠다. 백루찬 사무실 한가운데 떡하니 있던 마네킹은 전투복을 입고 있었는데, 테크 웨어 형식으로 된 전투복은 전술 조끼에 권총 홀스터까지 달려 있었다. 아니, 나는 검사인데 무슨 홀스터야?
“우리 긍기사 맞춤 코스튬! 우리 길드 넘버원 제작자가 직접 한 땀 한 땀 피 흘려 만든 거야! 내가 조르고 졸라서 힘들게 만든 거라고!”
“…네 잔소리에 귀에서 피 난 건 아니고?”
“에헤이, 잔말 말고 입어 봐. 입어 봐!”
홍희가 마네킹에 걸린 옷을 순식간에 휘리릭 벗겨 내더니 내 품에 던져 주고 등을 떠밀었다. 하, 루찬아. 얘 좀 말려 봐….
그러나 소파에 늘어져 가만히 지켜보던 백루찬은 한술 더 떴다.
“여기서 갈아입어요. 안 볼게.”
“미쳤냐?!”
손으로 눈을 가리는데 손가락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다. 하여간 이놈이…!
기겁하며 옷으로 몸을 가렸다. 백루찬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생글생글 웃었다. 그 얼굴을 마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그래, 모든 건… 오염된 지하 도시에서 기절한 내 탓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백루찬이 저렇게 반응해도 당당하게 맞설 텐데, 사례가 하나 있다 보니 자꾸 의욕이 꺾였다.
결국 홍희의 뜻대로 옷을 갈아입고 왔다. 홀스터가 허벅지에 있는 전투복은 움직이는 게 편했다. 상급 제작자가 만들었다더니 재질도 좋아 보인다. 조끼까지 입자 바로 게이트로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홍희는 만족한 얼굴로 뿌듯해하며 계속 사진을 찍었다.
“이건 공유해야 돼…!”
“대체 누구랑?”
“있어.”
음흉하게 웃으면서도 바닥에 드러눕다시피 해서 사진을 찍는 홍희를 보며 나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정희수냐. 어?
매번 검 하나만 달랑 들고 싸웠다 보니, 이런 차림새가 어색했다. 뭐 딱히 엄청나게 효율적인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제작자가 만들었다니 비싼 거겠지?
백루찬은 느긋하게 나를 훑어보고는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다 벗기고 싶네. 차근차근.”
“…….”
미친놈아. 못 들은 걸로 하겠다.
한참 홍희의 사진 모델이 되어 주고 나서야 겨우 소파에 앉을 수 있었다.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오기로 했었나 싶어 백루찬을 쳐다봤더니 백루찬은 한껏 귀찮다는 얼굴로 손짓했다.
“들어와.”
한마디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나와 비슷한 전투복을 입은 네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중엔 강영원도 껴 있었다. 강영원이 나를 발견하고 탐탁지 않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백루찬을 보고 다시 활짝 웃었다. 다들 동경의 눈빛으로 홍희와 백루찬을 힐끔거리며 각을 잡고 섰다.
백루찬은 나를 보고 소개한다는 듯 팔을 벌려 그들을 가리켰다.
“모르젠트 공략 1팀. M9A팀이에요. 형이랑 함께할.”
백루찬이 눈을 빛냈다.
“다 형 보조라고 보면 돼. 음 보조보단… 따까리?”
일렬로 선 네 명의 안색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너 그런 말도 쓸 줄 아냐. 안 어울리게-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리 내 따까리를 시키려 해도 그걸 면전에 대고 얘기하면 어떡하냐. 얘넨 내가 S급이 아닌 A급으로 알고 있을 텐데.
“공략 1팀이라고?”
“네. 형이 활약할.”
백루찬이 환하게 웃었다. 옆에서 홍희도 아주 환하게 웃는다.
…너희 진짜로 부려 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솔직히 반갑진 않았다. 한야인 내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려면 혼자가 훨씬 나았으니까. 그래야 내 멋대로 스킬 쓰고 힘쓰고 그럴 거 아냐. 내 표정을 본 백루찬이 다 안다는 얼굴로 속닥거렸다.
“형이 그 짓 못 하게 하려고.”
…그 짓이 뭔데 이놈아. 내가 뭐 나쁜 짓 하냐?!
“…공략 1팀 강영원입니다.”
눈 밑을 씰룩거린 강영원이 먼저 웃으며 자기소개를 해 왔다. 그러자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배서윤, 김한울, 이유성. 모두 A급 헌터였다.
다들 말쑥하니 잘생기기도 했다. 참나, 헌터를 얼굴 보고 뽑나. 물론 제일 보기 좋게 생긴 놈은 내 옆에 앉아 있는 백루찬이었지만.
“차해준입니다. 아까 루찬, 아니 길드장 말은 무시하고… 잘 부탁합니다.”
공손하게 인사했지만 네 명 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여기서도 이렇게 사이가 안 좋냐고…. 학교에서도 애들이 나 싫어했는데 여기서도….
약간 현타가 오긴 했지만 금방 정신 차렸다.
“와, 해준 형이랑 한 팀이라니. 너무 기대돼요.”
강영원이 대뜸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정말 진심이 1도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다.
“정식 활동 시작은 내일부터긴 하지만 오늘 저희 팀 모두 훈련실에서 가볍게 몸 풀려고 하는데요. 해준 형? 어때요? 같이 대련하면서 몸 푸는 건?”
“아… 저는 좀 피곤해서.”
강영원의 말에 나는 머쓱하게 대답했다. 몸은 괜찮은데 정신적 피로도가 너무 쌓였다. 그러자 강영원이 아쉽다는 얼굴로 어쩔 수 없네요- 라고 중얼거렸다. 일면에 보이는 의도가 뻔히 읽히는 놈이었다. 그래, 아쉽긴 하겠다. 한번 쥐어 패 보고 싶은데 피하니까.
“그럼 다음에 꼭! 같이 몸 풀어요!”
강영원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물어볼 기세라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온 팀원들도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역력히 내고 있었다. 불만이면 말을 해 짜식들아…. 하지만 불만인 티를 팍팍 내면서도,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길드장실을 나갔다.
“해준 형! 내일 봐요!”
나가기 전에 강영원이 갑자기 내 팔을 당겨 가볍게 포옹했다. 스치듯 껴안으며 귓가에 작게 중얼거린다.
“겁쟁이.”
강영원은 그러고서 백루찬과 홍희에게 밝게 인사하고 사라졌다. 나는 느린 손짓으로 강영원이 속닥거렸던 귓가를 쓸어내렸다.
방 안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를 놓칠 S급은 없었다. 백루찬이 다분히 흥미롭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기어오르면 눌러 줘야지, 뭐 해요.”
“누르긴 뭘 눌러.”
그냥 그런 갑다 하는 거지 뭐.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백루찬이 미묘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시선이 영 담백하지가 않았다. 노골적인 시선에 한숨을 내쉬었다.
“왜.”
“…형은 그런 점이 참, 매력적이야.”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어.”
“그렇게, 한없이 관대한 거 말이에요.”
백루찬은 스르륵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와 섰다.
고개를 좀 기울이자 머리카락이 이마에 닿는다. 음, 나 그렇게 관대하진 않은데. 시비 걸면 봐주진 않는다고.
내가 상체를 뒤로 빼며 피하자 백루찬이 내 목덜미를 감싸며 안겨 왔다. 홍희가 어맛- 외치며 손으로 눈을 가린다. 야, 너도 손가락 틈새가 너무 넓은 거 아니냐?!
백루찬이 귓가에 속살거리듯 말했다.
“그래서… 더 괴롭히고 싶어.”
“뭐라는 거야.”
그래서, 까지 들리고 뒷말은 묵음처럼 들리지 않았다. 내가 다시 되물었지만 백루찬은 목으로 웃으며 나를 놓아줬다. 하여간… 의뭉스러운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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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