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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63화 (63/201)

63화

송류진은 이상했다. 어딘지 멍한 눈빛도, 식은땀을 흘리며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그리고 그런 얼굴로 눈물을 떨구며 입을 맞추는 것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네가 이러는 건 다 각인 때문이라고? 각인 때문에,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 너무 커져서 네가 지금 헷갈려 하는 거라고? 네 감정이 잘못되었다고?

그 각인이 네가 메인 캐릭터라서, 세계의 중추가 되는 인물이라서 받게 되는 거라고, 너는 그래서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네가 사랑하는 진짜 차해준이 아니라는 것도. 너의 감정은 시스템의 농간이라는 것도.

무엇보다 우는 얼굴로, 울면서 애타는 표정으로 말하면 어떻게 피할 수 있겠냐고.

“으흣….”

끈적하게 이어진 키스가 드디어 끝났다. 송류진은 그러면서도 타액에 젖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다시 겹쳐 물고는 한참 후에야 다시 입술을 뗐다.

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그제야 떴다. 눈앞에 송류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눈꼬리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도르륵 흐른다.

밀어내지 않기 위해 꽉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각인으로 생성된 저 감정을 내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지?

솔직히 시스템 이 새끼가 다 잘못한 짓인데, 피해는 왜 내가 받고 해결은 또 왜 내가 해야 하냐고….

어떻게든 시선을 맞추고, 나를 껴안으려 하는 송류진을 밀어냈다. 부끄러움도 뭣도 아니고, 껄끄러움이 먼저 생겼다.

너는 나에게 이러는 게 진심 때문이 아니야. 너는….

나는 손등으로 입술을 문지르며, 송류진에게서 등을 돌렸다. 송류진이 따라와서 내 팔을 잡는다. 나도 모르게 힘이 잔뜩 들어가서 송류진의 손을 세게 쳐 내고 말았다.

“…아니. 류진아.”

젖은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서 나를 본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아냐. 피하려는 거 아니고,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자. 연락할게.”

송류진은 대답이 없었지만, 지금 나는 놈의 표정이나 대답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기분이다. 성큼성큼 걸어 송류진이 있는 곳을 벗어났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고작 친구라는 말 하나 때문에.

차해준에게 송류진은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 놈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친구라면 피하지 말아 달라는데, 내가 아닌, 진짜 차해준이었어도, 송류진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송류진이 이렇게 나오는 건 다 빌어먹을 각인 때문이었다. 그래, 그런 거다. 나는 애써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호텔 화장실로 들어와 세면대에서 세수를 했다. 기껏 백루찬이 준비해 준 비싼 옷이 엉망으로 젖어 버렸다.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회장에 들어가기도 뭣하다. 표정 관리도 안 될 것 같고. 눈치 빠른 홍희나 백루찬이 보면 분명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볼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거울 속의 나를 살펴봤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피로감이 가득 차 보이는 어두운 눈매. 그에 반해 붉게 부어오른 입술. 지쳐 버린 듯한 표정.

그래. 메인 캐릭터들 뒷바라지라고 생각하자. 첫 만남에서 그렇게 서늘한 얼굴이던 백루찬도 들러붙는데, 송류진이라고 다를 게 뭔가. 밀어내지 못하는 입장에선 둘 다 끌어안는 게 맞다.

각인을 하면 각인 상대에게 무언가를 다르게 느낀다. 말로는 감정의 극대화가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몸으로 체감하니 이제야 알 것 같다. 한솔이도 유독 나에게 치대니까…. 물론 다 큰 놈들과 어린아이에겐 순수한 마음이란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놈들 다 죽지 않게, 살려야 한다. 그리고 난 놈들보다 더 큰 목표가 있었다.

시나리오를 끝까지 보고, 세계를 구하는 것.

다시 마음을 다잡고 크게 심호흡했다.

이상한 생각은 그만하자! 모르겠다! 몰라! 속으로 열 번 괜찮다 외치고 화장실을 나왔다.

이대로 그냥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필 화장실 입구를 나올 때,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반희를 마주해 버렸다.

입구 옆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우반희가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왜 안 오나 했는데… 몰골은 또 이게 뭐지?”

“…신경 끄고 갈 길이나 가라.”

나는 놈을 무시하고 가려고 했다. 가뜩이나 짜증이 난 상태인데 우반희와 신경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우반희의 생각은 달랐는지, 또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얼굴을 들이미는 놈 때문에 나는 신경질이 나 놈의 어깨를 밀쳤다.

우반희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빤히 들여다보는 눈이 부담스러웠다. 입가에 서늘한 조소가 걸렸다. 우반희는 고개를 옆으로 느리게 기울였다.

“너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이 뭐.”

“송류진이랑 싸웠냐? 나이를 그렇게 처먹고도 친구랑 싸워서 기분이 나빠요?”

해부할 것처럼 샅샅이 훑어보는 시선과는 다르게 애를 어르는 듯한 말투였다. 더 기분이 상해 버렸다.

“신경 끄라고.”

놈을 노려보다가 그대로 지나치려 했는데, 우반희가 또 내 팔을 덥석 붙잡아 당겼다. 순간 확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그대로 내 팔을 잡은 놈의 팔을 꺾어 벽으로 밀쳤다. 등이 부딪쳐 쾅- 소리가 났는데도 우반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 하, 새끼 진짜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

형편없이 구겨진 얼굴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조용히 읊조렸다.

“신경 좀 그만 긁어 대.”

“오늘따라 예민하게 구네. 호구답지 않아.”

“호구 씨발… 네 눈에는 내가 등신으로 보이냐?”

그때 우반희의 눈이 한순간 붉게 빛을 내며, 그의 눈앞에 모노클이 덧씌워졌다. 이 새끼 왜 여기서 스킬을 쓰고 난리야.

우반희는 개코에 마력으로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놈이다. 각성자들이 은연중에 흘린 마력을 읽을 수도 있다. 나는 흠칫 굳었다. 이놈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어서. 일이 일어났던 장소도 아닌데 뭔가를 볼 수 있나? 내 눈을 스캔하려는 적외선 같은 붉은빛을 피하기 위해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우반희가 내 턱을 붙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나는 그 손목을 감싸 쥐고 비틀어 떼어 내고는 던지듯 놈의 어깨를 밀며 몸을 뒤로 물렸다.

우반희는 멈추지 않고 물러서는 나를 따라 앞으로 성큼 다가와 반대편 벽 쪽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코앞까지 다가와 쳐다보는 얼굴에 죽빵을 날려 줄까 고민하다가 이 모든 몸싸움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관뒀다. 오늘 일진 왜 이렇게 사납냐.

“그거 집어넣어라.”

“네가 제대로 협조한다면.”

미친놈이… 덤벼도 잽도 안 되는 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반희는 그제야 눈앞에 떠 있는 모노클을 소환 해제했다.

“왜 싸웠어?”

“안 싸웠다고.”

“싸운 게 아니면, 다른 은밀한 짓이라도 했나? 둘이 붙어서?”

“…개소리 작작 해라, 진짜.”

놈의 가슴팍을 툭 쳤다. 이제 좀 떨어지라는 뜻이었는데 우반희는 인상을 쓰고 아예 내 귀 옆에 벽을 짚고 나를 압박하듯 쳐다봤다.

“우리 류진이는 각본에선 아주 귀한 몸이라, 나는 그놈이 뭘 했는지 알아야겠거든. 송류진을 챙기는 모든 귀찮은 의무가 내게 있단 말이야.”

“그럼 가서 송류진이나 찾아보는 게 어때. 그게 더 생산적이겠는데.”

“뭘 숨기는지….”

우반희의 시선이 얼굴을 훑고 떨어진다. 나는 인상을 썼다. 재수 없고, 무언가 눈치챈 기색이 불편했다.

“송류진, 최근에 좀 이상해진 거 느꼈어?”

“뭐?”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아주 이상해. 넋 빠진 놈처럼. 눈이 팅팅 부을 정도로 울기나 하고… 감정 기복이 널뛰고. 유독 너에게 애걸복걸, 안절부절못해.”

“…원래 그랬어.”

“원래라니. 각본의 황태자란 말이 괜히 붙은 줄 알아?”

“하-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묻는데.”

우반희는 망설이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때부터 이상했어. 오염된 지하 도시. 거기서 나와 백루찬이 정신을 잃었을 때, 백루찬 그놈과 나를 구하기 전 분명 텀이 있었단 말이지?”

…예리한 새끼. 그건 또 어떻게 알아챈 거야. 그런 정신없는 상황에서.

“분명 무슨 일이 더 있었을 텐데…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송류진은 입도 벙긋하지 않더라고. 그럼 물어볼 덴 너뿐이잖아.”

“…….”

“나와 백루찬이 정신 차리기 전에, 너와 송류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맞지?”

그때의 상황이 어땠는지는… 차마 말하기 어렵다. 송류진도 제 입으로 어떻게 몬스터에게 세뇌돼서 조종당했다고 말하겠어. 나도 말 못 한다.

그리고 송류진.

거기서 나온 뒤부터 집에 칩거했고 상태가 좋지 않았다. 케이든의 세뇌가 깨질 때 무언가 문제가 있었던 건가.

각인으로 깨졌으니 나는 오히려 더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역시 약물이 문제였던가? 그때 송류진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다. 몸도… 검은 혈관이 도드라졌던 몸이 떠올랐다. 씨발 내가 뭐 놓치고 있는 게 있나.

나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송류진, 세뇌당했었어. 보스 몹에게. 그래서 나를 공격했어. 케이든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고.”

그때, 송류진이 세뇌당해 나를 덮치려 했다는 건 대충 에둘러 빼놓고 상황을 설명했다.

우반희는 내 말을 듣자 심각해진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다가, 나를 살폈다.

“그래서 너에게 발정이 난 건가?”

“발… 씨발?”

“널 보는 눈빛이 영 심상치가 않은데, 눈치 못 채면 말이 안 되지.”

“개새끼야… 말 좀 가려서 할래?”

“팩트를 말하는데 뭘 가려? 상태 보면 이 말이 딱 맞는데.”

귀가 뜨거워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아니 얼굴이 불타는 것 같다. 나는 우반희를 퍽 밀쳤다. 우반희가 내 힘에 뒤로 밀려 비틀거렸다.

나는 놈을 내버려 두고 몸을 돌렸다. 씨발, 왜 내가 부끄러워야 하냐….

내 생각을 꿰뚫어 본 듯 우반희가 소리쳤다.

“왜 네가 과민 반응이야?”

“좀 닥쳐….”

“아까 나가서 진짜로 뭐가 있었나 보네? 근데, 너 어디 가?”

“집에 간다, 왜.”

“모임 참석은 하고 가셔야지. 누구 덕에 이 회동이 열린 건데.”

으으, 더 화가 난다. 이것들이 안 그래도 바빠 뒤지겠는데 왜 자꾸 질척이고 별 개지랄을 다 떠는 걸까. 그 모임에 내가 정말 필요한 거 맞냐? 그냥 네 사리사욕 채우려는 건 아니고?

우반희가 뻔뻔하게 소리쳤다.

“그냥 가면 너 따로 소환이야. 그냥 가게?”

“하든 말든 씨발 마음대로 처해라.”

나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대답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다. 송류진 때문에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가 더 복잡해져 버렸다.

호텔을 나서면서 호출기가 계속 울려 대는 것을 확인했다. 홍희에게서 온 연락을 대충 종료하고, 문자를 하나 보냈다.

- 먼저 갈게. 일이 있어서. 미안.

한순간 좀 뒷일이 걱정되긴 했지만… 내 멘탈도 중요했다. 계속 질질 끌려 다니는 것만 같았다. 근데 어떻게 하냐고. 송류진이고 백루찬이고 놈들은 다 내가 구해야 하는 놈들이다. 피할 수 없어 부딪쳐 왔지만 오늘은 왠지 더 지쳤다. 내일 한일고에 또 출근해야 하는데….

호텔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뒷좌석에 푹 늘어져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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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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