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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79화 (79/201)

79화

“그래, 해! 누가 잘못했는지, 저 각성자가 뒤에 숨어서 뭘 했는지! 다 샅샅이 밝히자고!”

“어… 엄마….”

지우영이 핼쑥한 낯으로 나경옥을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현길용이 질린 낯빛으로 주춤대며 도망가려고 몸을 뺐다. 그때, 송류진이 놈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상주 헌터가, 지금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나, 나는…!”

그들을 흘겨보며, 우반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게이트가 열리면 몬스터가 나오고, 그럼 사람들은 죽습니다. 지금은 비록 누군가의 활약으로 아슬아슬하게 닫혔지만…. 다인 방어 시스템을 고의적으로 해제시켰다니… 정말 큰 문제지 말입니다. 죄가 절대로 가볍지 않고요. 말씀하신 대로 제가 샅샅이 살펴보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현길용이든 지우영이든 빽이 얼마나 있든지 빠져나갈 수 없을 거다. 제발 한 짓대로 벌을 받기를 바란다. 나경옥은 씩씩대며 나를 노려봤다.

“어디 두고 봐! 사실대로 밝혀지면 당신부터 내가 고소할 거야! 교생?! 저런 인간이 무슨 선생을 한다고! 당신 내가 교편은 잡지도 못하게 만들어 줄 줄 알아! 각성자 주제에 뭔…!”

나경옥의 말에 나는 실소했다. 어차피 교편 잡을 생각도 없었지만, 사실이 드러나면 가장 곤란해지는 건 당신일 텐데. 그렇게 생각할 때 지켜보고 있던 백루찬이 싱긋 웃으며 나섰다.

“각성자 주제에 끼어들어서 죄송한데요. 덕분에 목숨도 구한 것치곤 보이시는 태도가 대단해서 참을 수가 없네요.”

교장이 백루찬을 알아보고 움찔하며 나경옥을 말렸다.

“사, 사모님. 진정, 진정-.”

“모르젠트는 소속 길드원을 보호하기 위해 나섭니다. 우리 차 선생님, 저희 길드 소속이세요. 고소하고 싶으시면 모르젠트로 연락 주세요.”

정말 문제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삐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말하는 백루찬을 보며 나경옥은 헛웃음을 쳤다.

“내가 뭐 각성자 나부랭이 길드를 무서워할 것 같아!?”

“예, 예. 알겠습니다~”

정말 대단한 자의식…. 그녀는 아직도 제 아들이 전혀 잘못 없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뭐든 드러나면 알겠지.

우반희가 나선 이상 빼도 박도 못 할 테니까.

아직도 가슴에 울분이 맺힌 것처럼 분노가 차올랐지만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뒤처리는 각본에게 맡기는 수밖에. 하, 너무 피곤하다. 혼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몬스터들과 싸우느라 쌓인 피로도 있고, 마력도 쭉 빨리기도 했고, 무엇보다 상태 이상이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다. 이거 진짜… 시스템 개새끼. 욕해도 짜증 나네.

나는 삐 울리는 이명에 잠깐 비틀거렸다가, 몸을 바로 했다. 아직 쓰러지기엔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다친 사람투성이인데 고작 상태 이상 가지고 쓰러지기엔 자존심 문제도 있고 응응… 좀 그렇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새벽이에게 다가갔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되고, 무엇보다 아직 미성년이기에 보호자가 필요했다. 다른 아이들은 가족들이 찾아와서 살피는데 새벽이의 부모님은 아직 안 오신 거 같았다. 아니… 어머니만 계신다고 했었나. 지우영이 그렇게 말했던 거 같은데.

어머니는 따로 모시는 게 나을 것 같다. 지금 새벽이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각성을 했으니 각본에서 조사를 할 텐데….

“괜찮아?”

그때 언제 온 건지 홍희가 내 팔을 붙잡고 나를 유심히 살펴봤다. 전투가 있었던 건지 평소 잘 정돈하던 옷맵시와 머리가 엉망이었다. 홍희가 내 시선에 머뭇대며 변명했다.

“아니, 늦으려고 늦은 게 아니라아….”

“알아. 고생했어.”

나는 홍희를 내 앞으로 끌고 오며, 새벽이를 홍희에게 소개했다.

“각성자야.”

“아 혹시…! 그 결계 이 친구가 한 거야?”

“응, 아직 미성년자고, 각본도 지켜보고 있고…. 홍희 네가 잘 좀 해결해 줘.”

“나만 믿으라고! 내가 누구야! 몰젠 부길마 아냐!”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만만한 홍희를 보며 씩 웃고 새벽이에게 웃어 줬다. 천새벽은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제부턴 조금 복잡한 일들이 있을 텐데 이친구가 그런 것들 잘 도와줄 거야.”

“…선생님은요?”

“응?”

“…선생님은 도와주지 않으실 건가요?”

얼굴을 붉히며 꺼내는 말에 나는 잠깐 소리 내어 웃었다. 귀여운 소리를 하네.

“내가 널 왜 안 도와줘. 내가 네 옆에 있어 줄게.”

그래. 메인 캐릭터에다가 각인까지 했는데, 넌 내 시야에 있어야 한단다. 장난스럽게 말하자 새벽이는 수줍게 웃었다. 이제야 좀 밝게 웃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종전의 기록을 열람합니다!]

뭐야? 갑자기?

“준 씨? 준 씨, 왜 그래?”

순식간에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머릿속에 시나리오가 잔뜩 섞여 밀려들어 온다. 아니 이게….

“우욱-.”

미친, 순간 너무 어지러워 구역질이 올라왔다.

까맣게 물든 시야에 시스템창이 빨간색으로 번쩍이며 떠올랐다.

[시나리오 초월! 메인 캐릭터 천새벽의 죽음을 막아 냈습니다!]

무슨 소리야? 시나리오 초월이라니?

[종전의 기록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퀘스트: 초전박살의 메인 캐릭터들을 구하라!

다섯 명의 메인 캐릭터! ‘신’인 작가가 만들어낸 이 캐릭터들은 세계를 구축하는 기둥이다. 이들이 죽으면 초전박살 게이트! 세계는 부서지고 마는데-!

: 원래 시나리오를 통해 캐릭터들의 주요 에피소드를 보고 그들의 죽음을 막으십시오.

메인 캐릭터 –백루찬, 송류진, 천새벽, ■■■….

보상: 세계평화, 귀환

실패 시: 세계멸망, 죽음]

[천새벽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습니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고? 메인 캐릭터 중 천새벽의 위험이 한일고 게이트였던 거야? 그런 거야? 시스템아 말 좀 풀어서 제대로 설명을-

그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퓨즈가 끊겨 버렸다.

***

차해준의 몸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앞에 있던 홍희와 천새벽이 깜짝 놀라 쓰러지는 해준을 받아 들었다.

“선생님!”

“아니 뭐야! 준 씨! 정신 차려 봐!”

천새벽은 당황했다. 웃는 얼굴이 힘겨워 보이긴 했으나 설마 쓰러질 줄은 예상도 못 했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쿵쿵댄다. 쓰러지는 몸을 받쳐 들자 온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오른 게 느껴졌다. 세상에, 이 몸으로…! 천새벽은 이를 악물었다.

다급하게 구급대원을 부르려 하려는데, 갑자기 끼어드는 손이 있었다. 천새벽은 흠칫 놀라 해준을 붙잡았지만, 그 손은 너무도 가뿐하게 천새벽의 손에서 해준을 빼앗아 갔다. 힘없이 늘어진 해준의 고개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한 송류진이 더없이 사늘한 눈으로 천새벽을 바라봤다.

“아….”

천새벽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고 순간 당황해 눈을 깜박였다. 뭐지, 저 사람…. 아니, 얼굴을 안다. 각본의 황태자라 불리는 사람. 송류진.

송류진은 해준을 들어 안았다. 맥없이 떨어지는 팔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그 모습을 보며 천새벽은 무어라 말을 꺼내려 했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따갑게 느껴지는 견제의 시선. 무겁게 내리누르는 압박감. 이게… S급 헌터들이 내뿜는 위압감인가.

천새벽이 바짝 굳어 있는 사이 구급대원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상태를 살피겠습니다. 이쪽으로-.”

“만지지 마세요.”

송류진이 꺼낸 날 선 말에, 구급대원이 흠칫 놀라서 해준을 부축하려던 손을 거뒀다.

“제가 살필 테니, 다른 환자를 보시면 되겠습니다.”

정중한 듯 강압적으로 들리는 말이었다. 송류진은 잔뜩 굳은 얼굴로 천새벽을 힐끔 보았다가, 다시 구급대원을 보고 미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안심하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구급대원이 조금 이상함을 느꼈지만 S급 각성자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내려놓지? 우리 길드원이야.”

해맑던 아까와는 달리 기분 나쁜 티를 숨기지 않은 홍희가 송류진에게 일갈했지만 송류진은 무시하고 해준을 데리고 등을 돌렸다. 그러나 가려던 걸음은 금방 막혔다. 백루찬이 송류진 앞을 막아선 탓이다.

“우리 길드원이라는 말, 못 들으셨나?”

가느다랗게 미소가 걸린 얼굴이었지만, 백루찬 또한 어딘지 짜증 어린 느낌이었다. 송류진은 경계 어린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해준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건들지 마세요. 이번엔 진짜로 화낼 거니까.”

“와-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송류진을 빤히 보던 백루찬이 피식 웃었다. 그때, 각본과 함께 주변에서 대기하던 모르젠트 길드원들이 그 둘의 주위를 감싸고 섰다. 대놓고 위협하는 행동이었다.

“진짜 싸우자는 걸까….”

고민하는 어조로 눈을 가만히 내리깐 백루찬의 손에서 치직거리며 스파크가 튀었다. 그때 우반희가 신경질적으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쌍으로 지랄 하고들 있네. 작작 해라, 진짜.”

우반희의 중재에 백루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송류진은 여전히 경계가 가득한 얼굴로 백루찬을 노려봤다. 해준을 끌어안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게 보인다. 백루찬은 피실피실 코웃음 치다가, 양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요, 뭐 하는 거야. 유치하게.”

“…당신.”

“데려가서 치료해 줘요.”

백루찬은 산뜻하게 웃었다. 송류진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모르젠트에만 힐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치료를 받을 수 있지.”

“…….”

“뭐… 어차피, 깨어나면 돌아올 텐데.”

그의 말에 송류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백루찬은 환하게 웃으며 송류진의 속을 뒤집었다.

“제대로 붙잡지도 못할 거면서.”

낮게 중얼거린 백루찬이 등을 돌렸다. 홍희가 쫓아와 저대로 보낼 거냐고 소리쳤지만 그는 괜찮다는 듯 홍희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송류진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붙잡지도 못한다니, 누가?

“형, 해준이 데리고 먼저 가 볼게요.”

“…너.”

우반희가 인상을 찡그렸지만, 차마 그를 말리지 못했다. 떫은 표정으로 기절한 차해준을 살펴본 우반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나경옥이 어딜 보내냐고 외쳤지만 모두가 한뜻으로 무시했다.

주변의 시선이 꽂혔지만, 송류진은 모든 것을 무시한 채 해준을 데리고 학교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보던 천새벽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옆에 있고 싶었는데.

저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해준을 살필 수도 없었다.

끼어들 수조차 없었다. 기묘하게 주변을 내리누르는 압박감. 차원이 달랐던 위압감.

그것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세상을 엿본 거 같은 기분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그런 세계를.

천새벽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욕심이 났다. 불쑥 치켜드는 욕망이 심장께를 옥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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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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