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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86화 (86/201)

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86화

[경고!]

[위기! 클리어런스는--------]

[위기! 저ᅟᅥᆼ시ㅣ방ㅇ어ㅑㅑᄅᆞㅏ가ᄀᆞᆩㄱㅆ]

눈앞에 붉은색이 번쩍거리며 읽을 수 없는 텍스트가 나열되었다. 나는 두통에 이마를 붙잡고 끙끙대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눈앞에 뜬 게 뭔지 알고 있었다. 시스템창. 내 눈에만 보이는 것들. 환각처럼 보이는 것들은 나에게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줬다.

그런데 이게 언제부터 보였더라? 순간 이명이 삐- 하고 울린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여전히 시야엔 붉은색이 어지럽게 번쩍거렸다.

그런데 내가 왜 이걸 읽을 수 없지?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한동안 눈에 보이지도… 정말 보이지 않았었나?

나는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시야가 어지럽고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젠장, 이게 다 송류진이 준 약을 먹고 나서부터 이랬다.

그 약 정말 의사가 준 게 맞을까? 그런데 류진이가 나한테 이상한 걸 먹일 이유가 뭐가 있지?

무엇보다 각성자에겐 약 같은 것은 제대로 통하지도 않는다.

머릿속이 다시 어지러워졌다. 관자놀이가 깨질 듯이 아프면서 다시 생각이 돌아갔다.

아니야. 그렇게 챙겨 주는 송류진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누가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 이상하게 불안정하던 마음이 잔잔히 가라앉았다.

맞아, 류진이가 나에게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류진이는 유일하게 나를 챙겨 주는 사람이고, 각인 때문에 좀 이상해지긴 했지만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 준다. 모두가 외면한 나를….

“각인?”

나는 맥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각인이 뭐지? 머리를 쿵쿵 두드리는 느낌이 나는데,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기억이 나질 않았다.

빌어먹을, 뭔가 중요한 걸 잊은 거 같은데, 뭐지?

그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송류진이 내가 일어났는지 보다가,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깼어? 오늘은 꿈 안 꾸고 잘 잤어?”

“꿈? 아, 응.”

꿈 얘기를 했었나? 그건 비밀인데, 내가 차해준은 맞는데 사실은 그가 아니고, 그저 차해준의 과거를…. 이게 또 무슨 소리야. 정리가 안 되는 생각에 나는 고개를 젓고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송류진은 나를 깨지는 유리 공예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매번 이렇게 뭐든 챙기려고 아등바등하지.

송류진이 침대맡으로 와 걸터앉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엉망으로 뻗친 내 머리를 정리해 준다. 손길이 다정했다.

“오늘 식재료가 다 떨어져서 잠깐 요 앞에 마트 좀 다녀올게.”

“그래? 같이 가자. 산책도 할 겸. 구경도 할 겸.”

내 말에 송류진이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여유로운 얼굴로 돌아와 대답했다.

“아니야. 나 혼자 다녀올게. 너 몸 상태도 안 좋고, 날도 더우니까 그냥 집에서 쉬고 있어.”

어딘지 경계하는 말투였다. 내가 마치 이 집 울타리를 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이상함을 감지하자마자 또 두통이 일어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송류진이 눈썹을 축 늘어트리며 말했다.

“이거 봐. 지금도 아파하면서.”

“아니, 두통이 자꾸…. 요즘 계속 신세만 지네. 미안해.”

“뭐가 미안해. 나는 네가 받아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우리가… 그런 것에 미안해할 사이가 아니잖아.”

그럼 우리는 무슨 사이지? 지끈거리는 머리에도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자꾸 이상한 기시감이 나를 덮친다. 티 내면 송류진이 걱정할 테니까. 나는 누워 있으라는 송류진의 만류에도 침대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면서도 정원까지 따라 나왔다. 송류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으나 제 옆에 붙어 있는 내가 만족스러운지 별말 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을게. 잘 다녀와.”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송류진은 쑥스러운 얼굴로 수줍게 웃었다. 류진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얼굴에서 다 티가 나서 웃음이 나왔다.

“다녀올게.”

굳게 닫힌 대문을 열고 나가는 녀석을 배웅하는데 이상하게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송류진과 떨어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또 혼자가 되면 어떡하지. 나를 챙겨 주는 건 류진이밖에 없는데.

다시 안 오면 어떡하지.

나는 원래 혼자서도 뭐든 잘 해냈는데… 왜 이런 생각이 들지. 자꾸 커 가는 불안감에 숨이 막혔다.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정원 한곳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았다. 송류진은 밖이 덥다고 했는데, 나는 햇빛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하, 진짜 몸 상태 저세상 갔나 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동안 무리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런 꼴이 되어 버리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당황스러웠다. 물론 송류진이 건네준 약을 먹고부터…….

아, 진짜. 그 생각을 하자마자 머리가 아프다. 이마를 움켜쥐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다가, 나른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등받이에 푹 기댔다.

따듯하고, 사방이 고요하니 자연스럽게 졸음이 몰려왔다. 그렇게 잤는데 또….

바람이 살랑살랑 불며 머리카락을 간질였다. 선잠이 들며 꿈을 꾸었다.

.

.

‘거지새끼.’

‘또 어디서 싸움질 하고 온 거야?’

어렸을 때 학교에서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나왔다. 얼굴이 뭉개져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욕을 했다. 거지새끼. 달동네 사는 새끼. 친구한테 붙어먹는 새끼.

선생님은 매번 아버지에게 맞아 얼굴이 엉망이 된 나를 보고 어디서 싸움질을 처하고 다니냐며 혀를 찼다.

그 시선. 틀어막히는 시선. 불량한 양아치를 보는 시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숨이 턱 막혔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두려웠다. 아버지가 목을 졸랐다. 다 타 버린. 육체조차 남지 않은 그 육신이.

그때, 눈앞에 하얀 머리의 남자가 나타났다. 백루찬은 서늘한 얼굴로 나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독하게 무심한 얼굴. 그 뒤로 나타나는 다른 사람들.

덧씌워진 기억 속에서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조각조각 기워진 헝겊 인형처럼 묶여 있다가 터져 나갔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그림자가 져 있었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나풀거리는 하얀 머리가 보였다. 하얀 얼굴, 길게 늘어진 속눈썹. 휘어진 눈꼬리.

백루찬이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순간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듦과 동시에 침울해졌다. 연락도 없었으면서.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난 거지?

“형, 보고 싶었잖아요. 왜 전화도 다 씹고, 문자는 답도 안 해요? 한솔이가 엄청 화냈어. 형 연락 안 받는다고.”

백루찬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찾기는 무슨, 나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를 찾는 사람은.

“읏-.”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왜 그동안 나를 좋아했던 척해 왔던 거지?

모두가 다. 거짓으로 나에게 다가왔으면서.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하는 것 같았다.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받은 진심은, 내가 구한 사람들은-

“류진, 류진아.”

송류진을 찾았다. 물어봐야 했다. 너 대체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기시감과 함께 속이 미친 듯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아니야. 류진이가 그럴 리 없다. 송류진은 나를 생각해 주는 유일한… 뭐야. 진짜…! 소름이 돋았다. 생각의 방향이 자꾸 내 의식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결론을 틀어 버렸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으나 비틀거렸다. 넘어지려는 나를 백루찬이 잡아 줬다. 불안한데 벗어날 수가 없었다. 진짜 미치겠다. 이명이 삐- 소리를 내며 귓가에 울렸다. 움찔 떨며 귀를 움켜잡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게 대체.

“형, 나 봐요.”

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백루찬이 내 몸을 돌려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놈의 회색 눈이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백루찬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백루찬 뒤에 따라온 우반희가 보였다.

가까이 붙어 있던 백루찬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내 얼굴을 붙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백루찬과 우반희를 마주하자, 머릿속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깜박이다가 어이가 없어 실소했다.

눈앞에 시스템창이 떴다.

[경고! 클리어런스의 정신 방어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즉시 스킬 시전자와 떨어지십시오!]

[위기!]

[위기!]

[정신계 특수 스킬 ‘숨어 있는 인도자’를 해제할 수 없습니다.]

[정신계 특수 스킬 ‘잠식’을 해제할 수 없습니다.]

[저주 ‘거짓된 자기 암시’에 걸렸습니다.]

눈앞을 번쩍이며 뜬 것을, 나는 이제야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그때였다. 백루찬이 내 얼굴을 잡아당겼다. 윽, 코끝이 닿을 것 같다.

“뭐 하냐.”

놈을 밀어내려고 가슴께를 밀었으나, 여전히 몸엔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백루찬이 밀리지 않았다. 하, 진짜 어이가 없네.

백루찬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보며 눈가를 찡그리더니 말했다.

“뭐지?”

“뭐긴 뭐야.”

차해준이지.

눈앞에 시스템창이 깜박인다.

[클리어런스의 ‘인식’이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저주 ‘거짓된 자기 암시’가 무력화되었습니다!]

[정신계 특수 스킬 ‘숨어 있는 인도자’가 해제되었습니다!]

[정신계 특수 스킬 ‘잠식’이 해제되었습니다!]

[( ˃̣̣̥᷄⌓˂̣̣̥᷅ )( ˃̣̣̥᷄⌓˂̣̣̥᷅ )( ˃̣̣̥᷄⌓˂̣̣̥᷅ )]

시스템이 걱정했다는 듯 연신 이모티콘을 날려 댔다.

눈앞이 개안한 것처럼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에 씌었다가 정신 차린 기분이었다. 동시에 계속 흐물거리기만 했던 전신에 조금이나마 힘이 돌아왔다.

와 지금 나, 스킬에 걸렸던 거야? 디버프 무력화도 먹히지 않는 특수 스킬?

기가 막혔다. S++급에게도 이런 게 먹히는 거야? 그럴 수 있는 건가? 당황스럽고, 기시감이 들었던 모든 상황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나를 빤히 살피던 백루찬이 고개를 옆으로 갸웃했다. 아 씨, 너 그렇게 예쁜 척하지 말랬지. 장성한 사내자식이 말이야. 물론 존나게 어울리는데.

“형?”

“왜, 인마.”

내 대답에, 백루찬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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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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