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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88화 (88/201)

88화

송류진은 입가를 매만지더니, 눈썹을 축 늘어트리며 나를 쳐다봤다. 여전히 한쪽 눈이 파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뭐 때문에 그러는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야를 놈에게 겨눴다. 검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내게도 보였다. 송류진은 짐짓 슬픈 얼굴이었으나, 입가를 가린 손을 내리자, 웃고 있었다.

“왜 나에게 검을 겨누는 거야? 해준아, 나는… 알잖아.”

송류진이 한 발짝 다가왔다. 백루찬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가 할게요.”

“너는 적당히 못 해.”

죽일 것처럼 몰아붙이겠지. S급끼리 전투라면 이 일대가 초토화되는 게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래도 나라면, 송류진이 여태껏 보여 왔던 행동이라면 무자비하게 공격하지 못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솔직히 확신은 들지 않았다. 포르페늄. 각성자 억제제까지 조절 없이 먹여 왔는데, 정말 과연? 속으로 피어오르는 걱정이 있었으나 그래도 내가 나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때였다. 쉬이익- 소리와 함께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나무줄기가 백루찬을 꿰뚫을 것처럼 날아왔다. 그러나 그에게 닿기도 전에 콰직- 소리와 함께 끄트머리부터 지져지는 것처럼 검게 변하더니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백루찬은 그것을 보고 내 귓가에 고개를 가까이 가져다 대곤 말했다.

“이것 봐요. 쟤도 적당히 할 생각이 없다니까?”

“…….”

송류진의 발치에 있던 풀들이 급속도로 자라며 넝쿨을 만들어 냈다. 송류진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뻗었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해준아, 이리로 와 줘. 내 옆에.”

부르는 목소리는 애절했다. 정말 간절히 원한다는 듯한 눈빛.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몸 상태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까. 마력이 제대로 돌지 않아서 효율을 장담할 수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맺힌다. 그래도 이를 악물었다. 그 개 같은 시스템의 상태 이상도 이겨 냈던 난데 이까짓 약물 때문에 쓰러질 수는 없지.

얼어붙은 칼날을 시전했다. 한야의 칼날이 쩌저적- 소리를 내며 얼어붙었다. 발밑에 하얗게 서리가 생기며 얼음이 얼어붙었다. 선빵 필승이다.

송류진의 뒤로 넝쿨이 더욱 자라나기 전에, 나는 얼음 나무 숲을 전개했다.

송류진이 있던 자리에 두꺼운 얼음 칼날들이 튀어 올랐다. 그것은 마치 가운데 있던 송류진을 가두려는 것처럼 둥글게 말렸다. 하지만 그는 담벼락 위로 훌쩍 뛰어올라 피했다.

“너를 아프게 하고 싶진 않은데….”

송류진이 이윽고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와 동시에 넝쿨들이 채찍처럼 쏘아졌다. 여러 개가 쒜엑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것이 위협적이었다. 나는 몸을 띄우려 했으나, 백루찬이 내 어깨를 꾹 잡고 눌렀다.

“가만있어요.”

송류진이 벌레를 쫓듯 팔을 휘두르자, 날아오는 넝쿨들에 스파크가 튀며 불꽃이 튀었다. 하나씩 팡!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개중 하나가 그 사이를 뚫고 팔목을 휘감았으나 한야로 잘라 버리자, 금세 말라비틀어졌다. 송류진은 막힐 줄 알았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마당에 심긴 나무들이 몸을 비틀며 크기를 키웠다. 땅이 흔들리고, 송류진은 다시 훌쩍 뛰었다. 백루찬이 말했다.

“땅에 닿으면 안 돼요.”

그 말에 바로 얼음 나무 숲 스킬을 전개했다. 송류진이 디디려는 발밑에 얼음 송곳들이 우드득 솟아났다. 으윽, 마력이 빨려들어 가는 느낌 때문에 토할 거 같았다. 빌어먹을, 어디까지 나빠진 거냐. 대체…. 이거 회복은 되는 거겠지?

송류진은 넝쿨을 이용하여 다시 몸을 띄웠다. 다시 사아악 소리를 내며 덤벼드는 넝쿨. 무시무시한 속도로 백루찬을 향해 공격해 왔다. 웃긴 게, 나한테는 정작 팔다리를 붙잡기 위한 것들이 온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배려랍시고 이런 짓을 하냐….

백루찬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다가오는 것들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러다가 송류진이 몸을 날렸다. 한야를 앞세워 송류진을 막아섰다. 쾅- 소리와 함께 다리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으려는 공격이 막혔다. 송류진은 다시 몸을 뒤로 돌리며 바닥에 착지했다. 발밑에 얼음이 깔려 있었다. 그것을 힐끔 보고, 송류진은 나를 보며 웃었다.

“해준아, 정말… 너무해. 너와 내가 속삭였던 것들은 다 뭐였어? 우리 함께하기로 했잖아. 나를 네 옆에 두기로 했잖아. 그런데… 큭-!”

송류진이 말하다 말고 이마를 부여잡았다. 괴로운 듯 신음성을 내며 주저앉는다. 순간 언뜻 보였던 파란 눈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 벗어난 건가? 진짜 송류진인가?

“허억…!”

“송류진!”

깜짝 놀라서 다가가려 하자, 백루찬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송류진은 창백하게 변한 안색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삼켰다.

“놔 봐!”

“지금 내 손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누굴 챙긴다고 그래요.”

맞다. 이젠 나도 송류진처럼 숨이 넘어갈 것같이 헐떡대고 있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면서 온몸에 추가 달린 듯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백루찬의 손에서 내 손을 억지로 빼냈다. 백루찬이 한숨을 쉬며 손을 놓았다.

한야를 집어넣고, 고통스러워하는 송류진을 살피며 천천히 다가갔다.

“류진아, 괜찮아?”

“큽… 윽… 하지… 하지 마.”

“어? 뭐라고?”

송류진은 바닥을 짚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신음을 억지로 삼키려 하는 게 보였다. 눈꺼풀이 깜박일 때마다 땀이 뚝뚝 떨어졌다. 진짜… 송류진인가. 케이든의 세뇌처럼 정신만 가지고 논 건가? 진마하. 그놈 예전에 상태창을 확인했을 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었다. 그것과도 연관이 있는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송류진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그때, 송류진이 고개를 들었다.

“해준….”

그리고 그때였다. 어느새, 송류진의 뒤에 와 서 있던 우반희가 송류진의 목 뒤를 퍽 내려쳤다. 송류진이 풀썩 쓰러졌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우반희를 쳐다보자, 우반희가 쯧 혀를 찼다.

“약해 빠져서는.”

…이게 진짜.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게. 약 때문이 아니었으면 내가 손쉽게 제압했을 거라고…. 나는 입을 열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멀쩡하기만 했어도 송류진을 다치게 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다. 우반희는 지난했던 대치와는 다르게 순식간에 녀석을 처리했다.

기절했는데도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흰 얼굴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냐. 진마하 그 새끼는 진짜 뭐지. 아니 내가 생각한 게 맞나? 정신 계열 스킬을 쓸 줄 아는 놈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몸까지 조종할 수 있는 건가? 온통 의문투성이다. 진마하. 그놈 더 자세히 조사했어야 했는데. 무언가 잔뜩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우반희가 쓰러진 송류진을 부축해 안아 올렸다. 그리고 때마침 대문이 열리고 각본 흉장을 단 요원들이 잔뜩 들어왔다. 인상을 팍 찡그린 우반희는 짐짝 넘기듯 들고 있던 송류진을 그중 한 명에게 넘겼다. 요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송류진 씨가 왜 쓰러져 계십니까?”

“게이트 열렸습니까? 연락 온 건 없는데…. 여긴 왜 엉망이….”

“아니, 데리고 가.”

“예. 본집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거기 말고.”

“네?”

우반희는 주머니를 뒤지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안색이 어딘지 모르게 퀭해진 것 같다.

“각본 각성자 구치소. 상급 각성자 수감실에 넣어 놔.”

“네에?”

놀라서 되묻는 말에, 우반희는 수군대는 각본 요원들을 힐끔 쳐다봤다.

“포르페늄 불법 사용. 이유 충분하지? 그리고 그거 이놈에게 내준 놈도 같이 가둬.”

“네, 넵!”

각본 요원들은 우반희가 말이 마치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였다. 얼떨떨한 얼굴로 기절한 송류진에게 구속구를 채웠다. 저건 나도 경험해 본 것이었다. 우반희가 나를 한야로 의심했을 때 내 손목에 채웠던 거. S급에겐 그다지 큰 효용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보다 같이 일해 왔던 동료에게 너무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가, 내가 송류진에 대해 생각할 때 어딘지 무르게 생각하는 부분이 생겨났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근데 메인 캐릭터인데……. 라는 생각했다가 정신 차렸다.

포르페늄 영향인가 세뇌 스킬의 영향인가. 마음 약해지고 난리야. 우반희가 했던 말이 뭔지 이해 간다. 저 새끼 약해 빠졌다고 한 게 실력이 아닌 마음 얘기였던 거 아니야? 이런 생각 하는 나를 한눈에 알아보고? 무서운 자식.

“송류진은 각본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돌아가. 이 저택도 조사 대상이야.”

우반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 진짜 좀 쉬어야겠다. 나는 기절해서 들춰 업혀 가는 송류진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무리한 게 딱 티가 났다. 백루찬이 나를 보며 삐딱하게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저 표정 뭐냐. 그 생각을 하는데, 순간 우반희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우반희는 어딘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너.”

“뭐?”

“…괜찮, 아니다. 멀쩡해 보인다. 가라.”

우반희는 혼자 그런 소리를 내뱉고는 내 팔을 놓았다. 뭐야, 싱겁게 굴기는.

“하여간. 붙어 있질 않으면 여기저기서 꼬이는 게 많아.”

백루찬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다가와서 중얼거렸다. 얘는 또 뭔 소리야.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는데. 나는 백루찬에게 고개를 까닥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집에 가자.”

“우리 집에 안 간다면서요?”

“내가 언제?”

“꺼지라면서. 형 때문에 루찬이 마상 입었어.”

질색한 얼굴로 놈을 돌아봤다. 이놈이 되도 않는 애교를 부리고 있어?

내 표정에 백루찬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뭐야. 마음에 안 들어요?”

“…….”

존나 어울려서 문제였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백루찬은 싱긋 웃으면서 내 팔에 팔짱을 꼈다. 나보다 몸집도 큰 놈이 뭐 하는 짓이냐….

“알았어. 나도 알아.”

뭘 알아… 이 녀석아. 백루찬은 혼자 뭐가 좋은지 실실 웃으며 나를 끌고 저택을 나섰다. 말릴 힘도 없다…. 나는 놈이 이끄는 대로 휘청대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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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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