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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94화 (94/201)

94화

퇴근 시간을 넘긴 도로는 한산했다. 창밖으로 빠르게 바뀌는 풍경이 보였다. 나와 백루찬은 모르젠트 길드의 차를 타고 우반희의 뒤를 쫓아 이동하는 중이었다.

스킬을 써서 날아가면 빠르긴 하겠지만, 지금 가는 곳이 각본이 숨겨 둔 수감소라 차로 이동해야 한단다. 거리도 멀어서 스킬로 마력 낭비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수감소 상황이 어떨지 모르고, 물론 지금 내 몸 상태로 날아갈 수도 없겠지만….

나는 옆자리를 힐끔 쳐다봤다. 백루찬은 여전히 어딘지 신경질적인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불만 있다고 대놓고 티를 내고 있다.

“루찬아, 형이 너보다 강해.”

내가 자꾸 쓰러지고 그래도 말이야, 어? 그거 다 퀘스트 깨고 게이트 닫느라고 그런 거라고. 이번에 터진 1급도 내가 닫았단 말이다. 나 혼자.

백루찬이 나를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웃는 얼굴이 ‘아, 그러세요?’ 하는 거 같아서 겸연쩍게 웃었다.

“내가 어떻게 두고만 보냐. 알잖아. 류진이가 나랑 몇 년 친구인데.”

“형은 납치해서 약 먹이고 감금시켜도 친구라고 부르나 봐요.”

“그건….”

그건 송류진이 잘못… 아니, 그건 말이다. 그 안에 많은 일이 있다고! 진마하가 원인이란 말이다. 그리고 진마하 그놈은 너도….

나는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백루찬은 진마하를 인지도 못했다. S+급 각성자인 녀석이 말이다. 말해 봤자 믿기는 할까. 메인 캐릭터들을 노리고 있는 놈이 있고 너도 메인 캐릭터라는…. 정신 나갔다고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을까.

송류진은, 어떻게 된 것일까. 걱정과 고민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지니까 머리가 아팠다. 그렇게 생각할 때 눈앞에 띠링 하며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긴급 퀘스트!

메인 캐릭터 송류진을 구하라!

-Unknown이 일으킨 오류로 인해 S급 각성자의 폭주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메인 캐릭터! 그리고 클리어런스의 유일한 친구!

절대 잃으면 안 되는 소중한 세계의 기둥을 지켜 주세요!

난이도: ??

보상: 메인 캐릭터 ‘송류진’ 생존, ???]

[송류진의 오류를 제거해 주세요.

송류진의 오류를 일으키는 기억을 수정해야 합니다.

- 기억 대상 : 차해준]

[퀘스트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클리어런스에게 특별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아이템: 알약 ‘내 머릿속 지우개’ 획득]

눈앞이 번쩍이며 손안에 무언가 만져졌다. 하… 빌어먹을 약은 이제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린다. 나는 약을 주머니에 챙기며 눈을 가늘게 뜨고 시스템을 훑어봤다. 오류로 인한, 이라는 말이 눈에 유독 들어온다.

Unknown이 일으킨 오류.

이제 시스템은 확실하게 진마하가 오류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천새벽을 구하면서 초월된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이번 사건은 메인 캐릭터인 송류진이 연관되어 있지만 시나리오엔 나와 있지 않은 일들이었다. 지난번 이후로 시나리오를 한 번도 확인 못 했는데, 그 뒤의 내용은 혹시 송류진의 폭주에 얽힌 내용이 나왔으려나. 하, 일단 이건 나중에 확인을 해 보기로 하고….

기억 수정이라니, 이 약을 먹이기만 하면 송류진을 구할 수 있는 건가? 폭주 상태는 진짜 위험하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면서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턱이 잡혀 고개가 돌아갔다. 멍청하게 눈을 깜박였다. 백루찬이 내 얼굴을 붙잡고 미묘하게 찡그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백루찬은 다른 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투명한 알약이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구겨졌다. 야, 너도 약이냐?

“뭐야.”

“컨디션 보조제예요. 형 지금 상태 완전 별로니까 이거라도 먹어야지. 각성자들용이라 효과 좋아.”

…그동안 약을 그렇게 먹고서 몸 상태가 나락 갔는데 또 약을 먹으라고…. 지금 몸 상태면 먹는 게 나았다. 송류진의 폭주도 막고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힘을 써야 할 수 있으니까. 이걸 머리로는 아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몸을 뒤로 빼며 고개를 돌리기 위해 애썼다.

“안 먹고 싶다.”

“먹어야 돼요. 같이 갈 거면 먹어요. 이대로 가면 가다가 쓰러져도 할 말 없는 상태야.”

“…아까보단 나아졌어.”

“거짓말하지 말고.”

“진짜라니까 왜 못 믿지?”

“형 같으면 믿겠어요? 왜 떼를 쓰고 있어. 같이 가자며. 이거라도 먹어요, 얼른. 입 벌려.”

“아, 내가 애냐. 알아서 할게.”

“하….”

백루찬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나는 움찔했다. 이 자식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 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단단히 붙잡은 손을 떼어 내려 했다. 먹고 싶지 않다. 삼킬 수는 있을까? 아니, 솔직히 속도 안 좋은데…. 애절한 눈을 하고 바라보는데, 백루찬이 환하게 웃었다.

“하여간, 말을 더럽게 안 들어.”

백루찬은 그렇게 말하고는 컨디션 보조제를 입을 벌려 혀 위에 올렸다. 얼굴이 가까이 붙어 있어서, 붉은 혀가 알약을 감싸는 것을 자세히도 보고 말았다. 혀끝을 보자니 기분이 좀 이상해지잖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백루찬을 불렀다.

“루찬, 읍-.”

그러나 말은 완성이 되기도 전에, 먹혔다.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말랑하고 축축한, 백루찬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뭐 하는 짓인지 제대로 인지할 틈도 없이 입술을 겹쳐 문 백루찬이 이로 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

움찔하며 벌어진 틈 사이로 말캉한 혀가 침범해 들어왔다. 백루찬이 내 쪽으로 몸을 깊숙이 숙였다. 나는 뒤로 밀리며 놈의 어깨를 짚었다. 이게 뭐… 무슨….

“아… 으!”

백루찬은 멈추지 않고 나를 몰아붙였다. 혓바닥을 간지럽히며 입 안을 헤집는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뭐 하는 짓이냐, 이게…! 간지럽히는 감각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읏, 야… 그만!”

계속 몰아붙이는 탓에 어깨를 퍽퍽 쳤다. 백루찬은 움찔하면서 잠깐 입술을 뗐다가, 다시 접붙였다. 혀가 다시 얽혀 들었다. 목구멍으로 무언가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야이씨 이 자식….

백루찬의 눈꺼풀이 느리게 말려 올라갔다. 옅게 웃으며 입술을 떼는 놈을, 나는 뭐라 말도 못 하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주는 건 괜찮죠?”

“…너….”

으윽, 웃는 얼굴이 치명적이었다. 나는 입만 벙긋대다가 녀석을 밀쳤다. 이제야 훅 떠밀린 백루찬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고, 나는 바로 앉을 수 있었다. 아으… 얼굴에 열이 올라서 불타는 것 같다. 미친 진짜…. 너 약을 먹일 거면 좀 평범하게 먹이라고!

“형.”

“닥치고 가라.”

나는 분명 붉어졌을 얼굴을 숨기기 위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씨… 정신은 번쩍 든다, 자식아.

***

각성자 수감소는 경기도 외곽에 있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어느 야산 밑에 위치한 곳이었다. 철제 펜스가 두껍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곳은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보였다.

“오셨습니까.”

입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원 한 명이 우반희를 보고 반색하며 다가왔다. 그 뒤로 흰 의사 가운을 입은 연구원 두 명이 저들끼리 대화하다가 이쪽을 돌아봤다. 그들은 나와 백루찬을 보고 흠칫하더니, 또다시 저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상황은?”

“아까와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만….”

우반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어둡게 잠긴 펜스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는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어 댔다. 나는 안력을 높여 우반희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응시했다.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공터에는 반쯤 무너진 건물이 흙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지반이 올라온 듯한 흙더미는 마치 야트막한 구릉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잔뜩 엉킨 덤불숲이 그곳을 덮고 있었다.

그 풍경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이 굳어졌다. 저런 건… 송류진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모습이었다. 우드득 소리가 나며 기괴하게 꺾인 나무들이 급속도로 성장해 그 위를 계속해서 덮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태워 버리면 쉬울 것 같은데.”

백루찬이 중얼거렸다. 우반희는 백루찬을 힐끔 보며 말했다.

“뒤집어 엎어서 되는 거였으면 알아서 했겠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우반희는 설명을 이어 했다.

“상부가 알면 안 돼. 언론이 알아서도 안 돼. 폭주하는 S급 각성자라니 말만 들어도 위협적이야. 분명 없애려 하겠지. 더군다나 다른 소속도 아니고 각본 소속이니 처리는 더 쉽게 생각할 거고.”

“눈에 띄면 안 된다는 소리네.”

“지금은 대충 범죄자들이 난동 피워서 그랬다고 둘러댈 수라도 있어. 여기서 더 심각해지면 안 돼.”

우반희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상황은 심각했다. 각성자 폭주는 일대를 마비시킬 만큼 위험하다. 더군다나 S급의 폭주라면 더욱더…. 송류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안에 있는 송류진이 무사할 거란 보장은 있어요?”

“몰라.”

“꺼내 오면 멀쩡하게 돌아올 가능성은?”

“…….”

우반희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 얼굴을 보고 백루찬이 실소했다.

“확률도 없는 일에 나서라는 건 좀 양심 없다.”

백루찬이 이죽거렸지만, 우반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가만히 송류진이 있는 건물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도 파스슥 소리를 내며 우거지는 잎사귀들이 보인다.

시스템은 퀘스트를 내줬다. 송류진을 구하라고. 그렇다는 건 아직 구할 수 있는 상태라는 거다. 아직은.

[송류진의 폭주 진행률: 63%]

[제한 시간: 40:00]

[제한 시간 안에 구출하지 못할 시, 메인 캐릭터 송류진 사망

메인 캐릭터 송류진의 ‘사망’ 시, 메인 퀘스트 진행 불가]

눈앞에 뜬 시스템창이 경고하듯 붉은색으로 번쩍거렸다. 사망 시, 메인 퀘스트 진행 불가면, 망하는 거다. 그동안의 개고생도, 이 세계도, 그리고 나도.

나는 제한 시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면 돼.”

그래, 하면 된다. 그리고 해야 한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나는 먼저 펜스 앞으로 움직였다. 한동안 빌빌대며 기어 다녀서 뻐근한 목을 옆으로 꺾어 풀었다. 손목도 풀어 주고. 백루찬이 챙겨… 줬다고 치자. 아무튼 그 컨디션 보조제가 꽤 효과가 좋은 거 같았다. 몸 상태가 아까보다 나아진 것을 보니 말이다.

함께 있던 요원이 당황해서 내 앞을 가로막으며 우반희의 눈치를 봤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 두 녀석을 돌아봤다.

“뭐 하냐. 따라와.”

해 보자고.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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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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