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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108화 (108/201)

108화

“으학! 으하하학!”

홍희가 소파를 부서져라 내려치며 뒤집어지게 웃어 댔다. 얀마 진짜 소파 삐거덕거려…. 부서지겠어, 그만 쳐라. 백루찬도 연신 피식피식 웃고 우반희는 아주 띠꺼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송류진은…. 얘는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한 얼굴이다. 나는 머쓱하게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개처발린. 오우, 나 오늘 새로운 단어 배웠어. 개처발린. 근데 개는 도그(dog)잖아? 처발린은 강아지를 뜻하는 거야?”

바탈이 태연한 얼굴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며 헤실헤실 웃었다. 뭔데 이렇게 해맑아! 그런 뜻도 아니라고!

나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백루찬은 이제야 짜증이 좀 가라앉았는지 아까보단 풀어진 얼굴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앉아 봐요. 할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으음 나도? 각본에 정체는 이제 알지만 여긴 왜 왔는지 모를 바탈을 끼고 무슨 얘기를 하려고. 슬쩍 나갈까 고민했는데 다들 둘러앉아서 빤히 나를 보고 있으니 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웃다가 헐떡이며 눈물을 닦는 홍희 옆에 앉았다.

나를 힐끔 보던 송류진이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분은-.”

“어, 아냐. 괜찮아. 긍휼의 기사 알잖아. 저… 남자야.”

“아….”

우반희가 송류진의 말을 가로막고선 떫은 표정으로 나를 가리켰다. 송류진은 그제야 길드장실에 있는 나를 이해한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백루찬이 그 모습을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눈치 빠른 놈이라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것 같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표정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내가 백루찬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백루찬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송류진을 빤히 바라봤다.

“야, 루찬아.”

“아아- 우리 길드원이에요. 모르셨나?”

백루찬의 말에 송류진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떠보려는 것 같은 질문이었다. 나는 송류진을 보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아 미친, 개어색해.

“…모를 리가 없죠.”

송류진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하하… 모르면서. 괜히 멋쩍어지면서 울적해지는 기분에 고개를 돌렸다. 눈 마주치면 더 불편할 것 같다.

“모르면 안 되지. …우리 형이 그 사람이거든.”

백루찬은 의미심장한 어조로 눈꼬리를 잔뜩 휘면서, 옆에 앉은 내 어깨에 팔을 둘러 껴안았다. 그러자 바탈이 벌떡 일어났다.

“오우! 난 이거 반대! 내 허니에게서 손 떼!”

바탈이 소란스럽게 다가와 백루찬의 팔을 떼어 내려고 하고, 송류진은 모호한 표정으로 백루찬을 쳐다봤다. 백루찬 이 자식, 송류진의 상태를 제대로 몰라서 떠보나 본데 하등 쓸데없는 짓이다. 기억도 못 하는 녀석에게 뭔…. 그사이 홍희와 내 사이를 파고들어 앉은 바탈이 백루찬의 손을 떼어 내고 내 팔을 꽉 붙잡았다.

“허니, 허니의 개처발린, 여기 있어.”

…진짜 애칭인 줄 아나 본데. 백루찬이 또 짜증스러운 얼굴로 바탈을 노려보았다. 본인 딴에는 표정 관리를 하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다 보인다고. 바탈도 지지 않고 실실 웃으면서 백루찬을 보고. 둘이 뭐 하냐, 가운데 나 두고.

“예, 개처발린 바탈 씨. 여기 계시네요. 한국엔 어쩐 일로 오신 거래요?”

나도 짜증 나서 대충 대답해 주며 두 놈의 손들을 쳐 내고 일어나 우반희 옆에 앉았다. 우반희가 너 뭐 하냐는 얼굴로 쳐다봤지만 무시했다. 누구는 더워 죽겠는데 들러붙는 게 좋겠냐고. 지켜보던 홍희가 아주 재밌어 죽으려 했다.

“나는 우리 허니 보러 왔지~”

“일하러 온 거예요.”

백루찬이 바탈의 말을 싹둑 잘라 버렸다. 우반희도 정말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위에서 들은 게 하나도 없어서 말이야. 개처발린 바탈 씨? 설명 좀 해 줘야겠네. 아니면 백루찬 길드장이 설명을 해 주시든가.”

그래. 길드장실에 없었던 게 혹시 바탈 데리러 갔던 거였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백루찬이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각본에서 귀찮은 일 떠넘기고 설명까지 하라는 건 양심 없어 보이잖아요.”

“모르는 걸 어떡하라고. 그럼 내가 가서 상부에 물어보고 다시 올까? 그럴까? 귀찮게 왔다 갔다 다시 해 봐?”

“…두 분 다 진정하세요.”

으르렁대며 금방이라도 싸울 것 같던 두 사람을 송류진이 말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탈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겠다….

바탈은 해맑은 얼굴로 각본과 모르젠트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간간이 나를 보며 윙크해 왔는데, 나는 입술 끝을 약하게 끌어 올리며 대강 응수해 줬다. 어우, 어메리칸 스타일 진짜 느끼해서 속이 울렁거린다. 나한테 왜 이렇게 찝쩍대는지 모르겠고…. 혹시 변태인가. 처맞고 나니 다르게 보이는 뭐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건가. 물론 내가 어떻게 때렸는지는 상세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만….

“놀러 왔어요, 우리 허니 보러.”

바탈이 내게 손 키스를 날리며 윙크했다. 순간 속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아니 잘생긴 얼굴로 저런 짓 하는 거, 솔직히 매우 어울린다만 나한테 하는 게 적응이 안 된다. 대체 왜 저러는 거냐.

“똑바로 말하세요. 미국 땅에 도로 처박아 버리기 전에.”

살벌한 백루찬의 말에 바탈이 흐음- 하며 턱을 매만지더니 씨익 웃었다.

“우리 솔직해지기로 해? 나는 해준을 보러 왔지만, 들은 얘기가 있어. 협회에서.”

협회라…. 미국은 협회로 돌아가나. 각성자 국제기구는 따로 없지만 미국 각성자 협회 기준이 대부분 통용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사실 아시아만큼 각성자 관리 본부가 세워져서 제대로 관리되는 나라가 많지 않았다. 한국도 좀 특별한 케이스라 협회와 전략적으로 교류를 많이 한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얘기가 머릿속에서 스쳐 갔다.

“우리, 협업해야 돼. 싸우면 안 돼. 질투? 안 돼~”

“…돌리지 말고 똑바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참다못한 송류진이 한마디 던졌다. 바탈은 능글맞게 웃다가 입가를 쓸더니 폭탄 같은 말을 던졌다.

“여기, 코리아에 닫히지 않는 ‘게이트’가 있다고 해서 찾아온 거야. 닫히지 않는 게이트를 모르젠트 길드원이 들어갔었다면서? 그래서 찾아온 거야. ”

닫히지… 않는 게이트? 그런 게이트가 있을 리가…. 아. 나는 뒤늦게 떠올렸다. 신당 5동에서 열렸던 게이트. 정한솔을 각성시켰던 ‘악몽의 참견’.

우반희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신당 5동 게이트에 대해서 마무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제대로 들려온 얘기가 없었다. 나도 그동안 바빠서 찾아보지 못했고. 거기 설마 아직도 안 닫힌 거야?

델루델루인지 데루스인지 하는 악마 새끼가 떠올라 순간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 마족 놈이 직접 강림했을 때, 몸을 내리눌렀던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아직도 잊히지 않을 만큼.

[데빌루데스입니닷! ><]

…이럴 때만 나서지 마라…. 거기가 아직도 안 닫혀 있다니, 어떻게 된 거지?

“뉴욕에도 생겼다. 닫히지 않는 게이트. 그걸 조사하기 위해 온 거야. 코리아는 지금 그 게이트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다시 attack을 하고 있지 않은지 말이야.”

“오….”

우반희가 의외라는 얼굴로 말했다.

“생각보다 제대로 된 내용을 가지고 왔잖아? 그러면서 왜 그렇게 요란하게 입국한 거지?”

“입국? airport? 맞아. 물론 나는 허니를 찾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지. My capable and strong….”

부담스러운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마이… 뭐라고 하는 거야. 백루찬이 딱 입천장을 튕기더니 싱긋 웃었다.

“그거라면 우리가 확실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네요. 형이 걸레짝이 돼서 나온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고.”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백루찬이 나를 보며 가늘게 눈웃음치는데 뭔가 꺼림칙했다. 저거… 뭔 생각 하고 있는 거야?

그때, 우반희가 끼어들었다.

“그곳- 이라면, 각본이 빠질 수가 없겠네. 어쩌나.”

“하아, 우 팀장님은 정말 낄 데 안 낄 데 구분을 못 하신다니까? 모르젠트와 바탈만 있어도 조사는 충분한데요.”

“집중 관리 구역이라, 게이트까지 가는 데 각본 허락이 필요하거든. 지금 완전히 통제되고 있는 곳이고. 들었다시피 ‘닫히지’ 않아서. 그런데 이상하게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있지 않단 말이지.”

우반희는 잠시 생각하는 듯 입을 다물었다. 송류진이 백루찬을 보며 말했다.

“같이 하는 게 맞습니다. 협회와의 협력이 보통 개인 길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국가 대 국가로 이루어지는 사안이기 때문에 모르젠트만으로는 부족하죠.”

“와, 조금 기분 나쁘다. 이 나라가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우리 길드가 있을 텐데.”

“‘하나’ 중엔 있겠죠. 전부는 아니고.”

백루찬과 송류진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일었다. 둘 다 묘하게 적대감을 뿜어내면서 웃는 낯으로 서로 한 대씩 후려치는데… 나는 한숨이 나왔다. 이것들아, 지금 자존심 싸움할 때가 아니잖아….

우반희가 박수를 짝 치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그 부분에 관해 개처발린 바탈께서 혼자 온 이유를 협회에 상세히 따져 물어보기로 하고. 이 일은 추후에 다시 논하기로 하지.”

“저 ‘개처발린’ 놈은 데리고 가시죠.”

“오우, 개처발리는 허니 옆에 있을 거야!”

백루찬의 말에 바탈이 찡찡대며 소리쳤다. 얼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해 댄다. 우반희는 피식 웃었다.

“우리 국외 손님께서 모르젠트 소속 ‘허니’를 원하시는데, 강제로 데려갈 수가 없어서. 모르젠트에서 숙소 좀 내주시죠, 길드장님. 아니면 허니를 따로 빌려주시든가.”

백루찬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쯧 찼다. 아니 이것들이 내 의사는 존중도 안 하고 저들 멋대로 거래하고 난리야…. 물론 까라면 까야하는 하찮은 길드원에 불과한 나지만…. 아니 그래도.

떨떠름하게 쳐다보자 우반희는 나를 쓰윽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야 저 표정? 감당 불가한 문제아를 보는 듯한 저 표정 뭐야?

“가자. 보고서 쓰러.”

우반희가 송류진을 부르며 문고리를 잡았다. 송류진은 어딘지 복잡한 얼굴로 우반희의 뒤를 따라 나가다가, 잠깐 나를 돌아봤다. 흔들리는 동공에서 송류진이 느끼고 있는 혼란이 느껴졌다. 혼란스럽겠지. 신당 5동 사건 때도 내가 껴 있었는데, 나만 기억나지 않을 테니.

송류진까지 나가고, 백루찬과 바탈, 그리고 홍희와 나만 남은 길드장실엔 잠깐 적막이 흘렀다.

백루찬은 등을 깊숙이 물리고 앉아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무언가 깊게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바탈은 백루찬을 보며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씩 웃었다.

“그럼 모르젠트가, 책임져 주는 건가?”

“……조용히 지내세요.”

백루찬이 떫은 얼굴로 한마디 했고, 바탈은 예스를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싱글벙글한 얼굴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신당 5동 악몽의 참견 게이트. 분명 내가 들어갔다 나온 곳이지만 이곳에 내가 껴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 시나리오도 보고 할 일 많은데.

슬그머니 일어나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조용히 패드로 이것저것 확인하던 홍희가 내 팔을 덥석 잡아챘다.

“어디 가, 한야?”

“…집에 가려고. 내 학점이 위험하다.”

“학점?”

콧방귀를 뀐 홍희는 얄짤 없었다. 옆자리를 팡팡 치며 앉으라 해서 결국 다시 앉았다. 그런 내 옆엔 바탈이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았다. 바로 옆에서, 얼굴이 뚫어질 것처럼 쳐다보는데… 너무 부담스럽다.

“나도 껴야 되냐?”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백루찬에게 물었다. 그의 고개가 삐딱하게 꺾였다.

“바탈의 ‘허니’가 가긴 어딜 가요.”

“…….”

말투가 뾰족뾰족한 것이, 또 어디서 삔또가 상했나 본데…. 왜 또 뭐가 문제냐….

“허니는 같이 있어요. 이 사건, 허니가 빠지면 안 돼.”

“허니라고 하지 마라….”

“왜요, 저 사람은 되고 난 안 돼?”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얘도 안 돼.”

“허니! 왜! 허니 난 허니, 러브해. 허니 보러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바탈이 우는 소리를 해 댔지만 무시했다. 홍희가 한숨을 쉬곤 말했다.

“한야가 한야인 거, 들통난 결정적 이유, 바탈 때문이야.”

“응?”

“바탈이 입국할 때 허니… 아니 준 씨를 보러 왔다고 대놓고 말해 버렸지 뭐야.”

“…….”

“역시 지존 최강에겐 쩌리들이 다 들러붙는군….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 주겠어. 아니, 우리가 지켜 주겠어!”

홍희는 결심했다는 듯 주먹을 꽉 쥐고 결연하게 외쳤다. 그러면서 백루찬의 손을 끌고 억지로 주먹을 맞대며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그런 다짐 하지 마, 제발….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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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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