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우반희가 떫은 얼굴로 말했다.

“협력하는 목적으로 이 자리에 모인 걸로 아는데. 모르젠트 길드장?”

“게이트 안에서 나오지 못한다는데, 굳이 들어가야 할까요?”

백루찬은 우반희를 무시하고 아서를 돌아보았다.

아서는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백루찬의 시선이… 여기서 봐도 살기가 돋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기분도 저조한데 자꾸 주변에서 쿡쿡 건드리니까 얘가 또 예민해졌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들이 지금은 어떤 이유로 게이트를 빠져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닫히지 않는 게이트는 전 세계 곳곳에서 다발적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만약 게이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게이트 안의 악마가 넘어오게 된다면 얼마나 큰 피해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해결은 해야 한다. 시스템이 마계라고 했다. 혹시나… 데빌루데스 같은 놈이 넘어온다면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악몽의 참견 게이트에서도 강림한 놈의 기운을 나는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 괴물은 이 세상에 튀어나오면 안 된다. 내가 묵묵히 듣고 있자, 백루찬은 답답하다는 얼굴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송류진.”

그때 조용히 있던 송류진이 대뜸 말했다. 우반희가 무슨 소리 하냐는 얼굴로 쳐다봤지만 송류진은 담담하게 아서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위험한 일이라면 되도록 들어가는 인원이 많은 게 좋겠죠. 그것도 S급이라면. 각본에서도 길드만 몰아붙일 생각은 아닙니다. 저희도 나설 예정입니다.”

아니, 아직 나 마음의 결심을… 하. 결심이고 뭐고 들어가는 거 확정이긴 한데. 그때 조용히 있던 천새벽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저도, 가고 싶습니다.”

“뭐라는 거야! 절대 안 돼!”

깜짝 놀라서 내가 버럭 소리치자, 천새벽은 내 눈치를 보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언제까지, 뒤에 있고 싶지 않아요. 저도 S급이고, 그리고, 결계사라는 특수 능력이 있으니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가고 싶습니다.”

“야, 야…. 새벽아, 잠깐-”

얘가 지금. 그 게이트가 어떤 데인지 설명을 듣고도 이러는 거야? 앞길 창창한 놈이 제 발로 위험에 들어가겠다니 나는 결사반대다. 천새벽을 설득하기 위해 어깨를 붙잡았을 때, 홍희가 입을 열었다.

“맞는 말이야.”

“뭐? 야, 넌 말리지는 못할망정-.”

“언제까지 어린애인 채로 살 수는 없잖아? 사람은 자란다고. 가둬 둔다고 성장기 소년의 팔다리가 멈추진 않지. 꺾여서 제멋대로 자라는 거 보고 싶어?”

“무슨 말이 그래. 지금 가는 게이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너도 알잖아!”

“그게 터지면 더 위험해진다는 건 잘 알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면 돼.”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면 된다. 데빌루데스 그 새끼의 힘이 좀 쫄릴 정도로 강한 건 사실이지만, 나도 지지 않는다 이거야. 내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홍희가 씨익 웃었다.

“그럼 됐네.”

“뭐가 돼.”

“우리 차해준 씨가 그렇게 만들 테니~ 새벽이가 따라가도 문제없잖아. S급 결계사면 얼마나 도움 될지 이미 한번 겪어 봤으면서?”

하…. 홍희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신음을 삼켰다. 내 자신감이랑 애가 위험한 게 같냐고…. 옆에서 지켜보던 새벽이가 내 팔을 톡톡 건드리다가 슬며시 손을 잡아 왔다. 고개를 돌리자 시선을 맞춰 온다. 천새벽은 열망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저 할 수 있어요.”

“…새벽아.”

“요즘 훈련도 따로 받고 있고… 당하기만 하던 무력한 어린애 이제 아니에요. 쌤이… 믿을 수 있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며 기어들어 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새벽이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말릴 수가 없잖냐.

“아아, 우리 길드원들은 길드장을 대체 뭐로 보고 있는 건지….”

백루찬이 삐딱하게 고개를 꺾었다. 그는 이 상황이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그때 홍희가 백루찬의 귀를 잡고 무어라 속닥거렸다. 그는 잠시 눈썹을 꿈틀하더니 이내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카리나가 말했다.

“이거, 들어 보니 그 집단이 왜 생겼는지도 알 것 같네.”

턱을 괴고 하는 말에, 백루찬이 움찔했고, 더불어 나도 움찔했다. 카리나는 지금 ‘검은해’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상향의 세계로 가기 위해 게이트로 뛰어드는 사이비 놈들. 카리나 말대로, 지금 열린 ‘마계’ 게이트가 상위 차원이라 했으니 어쩌면 그들의 목표는 허상이 아닌 실체가 있는 무언가였다. 물론, 넘어가면 다 죽는다는 게 그들의 꿈과는 많이 달랐지만.

“그래요. 뭐….”

백루찬은 슬슬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왕 들어가는 거, 다 같이 가죠.”

그리고 폭탄선언 했다.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옆에서 홍희도 휘둥그런 눈으로 백루찬을 쳐다봤다. 백루찬은 책상을 툭툭 두드리면서, 정확히 나를 보고는 눈꼬리를 잔뜩 휘며 웃었다.

“각본도 가고, 바탈도 가고, 모르젠트도 가고. 다해 길드는 어떻게-.”

“당근 가야지! 내가 안 가면 누가 가!”

“언니!”

카리나가 씩 웃으며 대답했고, 유하늘이 질색하며 카리나를 말렸다. 아서는 땀을 닦으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 여기 계신 S급들 모두 가요?”

…다 들어가면 한국은 누가 지켜, 이놈아….

***

결국 신당 5동 닫히지 않는 게이트, ‘악몽의 참견’에는 나, 천새벽, 백루찬, 송류진, 바탈이 들어가기로 합의 보았다. 카리나가 들어가고 싶다고 열렬히 의견을 피력했지만, 현재 조사하고 있는 사이비 집단 ‘검은해’에 대해 할 일이 많아서 홍희가 어렵게 설득했다.

우반희는 게이트 밖에서 혹시 모를 이상 상황에 대비해 각본과 함께 지원 준비를 하겠다고 했고, 아서는 협회를 통해 들어갈 보조 인력을 보내 주겠다고 말을 했지만, 백루찬이 거절했다.

들어가는 인원은 전원 S급. 이 정도면 만약 클리어를 못 해도 정탐까지는 하고 올 수 있다고 판단했고, S급 밑 인원은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엔 나도 동의했다. 솔직히… 지키는 게 더 힘들다.

메인 캐릭터가 셋이나 함께 위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부터 나에겐 부담인데, 다른 인원까지 있으면 어후. 더 힘들다.

차라리 혼자 들어가는 게 마음이 편할 거 같은데, 이놈들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겠지….

오류로 인해서 생긴 상위 차원의 간섭. 결국은 내가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었다. 생각만 해도 두통이 일고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부담스러운데, 어쩔 수 없다. 모두를 구하려면.

무엇보다 오류 때문이라고 했으니… 이 게이트가 열린 것도 진마하와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검은해 조직도 말이다.

진마하는 대체 뭐 하는 놈인가. 그 새끼는 어떻게 시스템도 알고, 세계를 위협에 빠트릴 만큼의 오류까지 일으킬 수 있게 된 걸까.

여러 의문이 들어서 시스템에게도 말을 걸어 봤지만, 아까까지 잘만 떠들던 시스템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놈 가만히 보면 진마하에 대해 물어보기만 하면 대답을 안 하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럼 이틀 후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회의는 파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모두의 호출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감지되지 않은 1급 게이트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였다.

***

성북동에 열린 게이트는 빌라들이 밀집해 있는 주거 지역 한복판에 열렸다. 문제는 그 위로 고등학교가 하나 있고, 좌우 옆으로 아파트 단지와 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 지역은 다인 방어 실드가 깔린 지역이었고, 그것 때문에 집값이 배로 높은 곳이었다.

“물론 방어 기계가 무조건 게이트 생성을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시장이 기자들 틈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아서처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말이다.

“미친놈들, 진짜 무섭지도 않나….”

검은 제복에 흉장을 단 요원 한 명이 그 모습을 보고 중얼거리면서, 서둘러 내 앞을 지나갔다.

나도 심히 동의한다. 게이트가 정말 무섭지도 않은지 기자들은 잔뜩 몰려와 있었다.

일대에는 거대한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각성자 각본 요원들로 구성된 인간 바리케이드였다.

그 한가운데, 불법 주차된 자동차들 사이로 보이는 게이트는 등급에 맞게 크기가 컸다. 마력 파장이 지나치게 활발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괴물의 입 같았다. 쩍 벌어진 게이트를 보며 나는 신음을 삼켰다.

게이트 시스템으로 감지한 등급은 1급이다. 그 앞에는 각본 공략팀과 다해 길드 공략팀이 진입 대기 중이었다.

혹시 몰라서 터질 위험에 대비해 나와 있긴 했지만….

“문제 일으킬 생각 하지 말고 처박혀 있어.”

우반희의 싸늘한 시선과…

“나서지 마요. 모르젠트는 이번 게이트 진입 못 해요. 각본이 다해 길드에게 협력 요청했거든. 우린 가만히 있어야 돼.”

옆에서 느긋한 태도로 일관하지만 나를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는 백루찬 덕에 나는 구경꾼이 되어 버렸다.

아니 뭐 나도 나만 각성자도 아니고 굳이 나설 생각은 없었다고. 왜 나를 문제아처럼 보고 난리야, 하. 되게 못마땅해서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게이트 열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다.

걱정되는 건 따로 있었다. 저 앞에서 카리나와 유하늘, 홍희가 게이트 주변 상태를 보며 무어라 얘기하고 있었다. 다들 표정이 무척이나 심각했다. 그리고 얘기를 끝낸 홍희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홍희는 백루찬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흔적이 있어.”

그렇다. 이게 걱정된다는 거였다. 나는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꽉 붙잡았다.

게이트 앞 현장에는 불미스러운 흔적들이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경찰차 한 대. 바닥에 쓸려서 게이트 앞까지 길게 늘어진 핏자국. 몬스터의 사체. 그리고 결정적으로 게이트 인근 빌라 4층에서 촬영된 영상.

집 안에서 찍었고, 긴장해서 잔뜩 흔들리고 겁에 질려 거친 숨소리가 함께 찍힌 영상에는 창문 밖의 상황을 아주 잘 보여 주고 있었다.

검은 로브 같은 것을 눌러쓴 두 사람. 그 앞에 열리는 게이트. 그리고 처참하게 당해 끌려가는 경찰. 그의 목 뒤를 잡고 끌고 가는, 익숙한 얼굴.

남자가 잠깐 하늘을 올려다볼 때, 얼굴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오류로 인한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시스템이 띠링띠링 울었다. 그리고 나는 남자가 누군지 알았다.

진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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