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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45)화 (144/201)

“죽어!” 

광기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법사 중 한 놈이 손톱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검게 물든 손톱에선 독이 뿜어져 나왔다.

[스킬 ‘독안개’가 무력화되었습니다.]

뿌연 초록 가루가 뿌옇게 눈앞을 가로막았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놈을 저지했다. 그 뒤로도 상처 입고 쓰러진 놈들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달려들었다. 아오, 뭔 좀비도 아니고…! 계단 쪽에 서 있는 리더의 눈이 번뜩이자 교법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는 게 보였다. 역시 저놈이 조종하는 거 맞구나.

목숨도 등한시한 채 두려움 없이 덤비는 놈들을 멈추려면, 저놈부터 잡아야 한다. 나는 좁은 복도 위로 뛰어올랐다.

내가 있던 곳으로 아귀 떼처럼 덤벼든 놈들이 겹쳐서 아우성을 쳤다. 나는 내 밑으로 모여든 교법사들을 밟고 리더 놈에게 달려들었다.

움찔한 놈이 눈을 빛낸다. 눈이 마주치며 시스템 알림이 떴다.

[상태창

이름: 강상혁 

호칭: 교원법사

클래스: 간섭자]

[기억 간섭으로 조종 중입니다.]

[디버프 무력화]

[디버프 무력화]

[스킬 ‘정신 간섭’이 무력화되었습니다.]

하여간 그 보스에 그 부하 아니랄까 봐. 스킬도 참 X같은 걸 들고 있다. 놈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교법사들이 강상혁을 둥글게 감쌌다.

손끝에서 마력이 검을 타고 올라왔다. 시퍼런 검기가 한야를 감싸고, 나는 그것을 빠르게 휘둘렀다.

콰앙!

날아간 검기에 폭발하듯 터져 비산하는 교법사 놈들 사이로, 강상혁의 평정심이 깨진 게 보였다. 놈은 잔뜩 당황한 얼굴이었다. 날아가듯 몸을 날려 흔들리는 눈을 마주 보며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한야가 가슴팍을 관통했다.

“커억…! 어… 어떻게….”

여태껏 실패한 적 없었나 보네. 등급 높은 각성자였나? 초월자의 눈을 통해 한번 제대로 상태창을 보고 싶었지만, 상태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고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강상혁이 쓰러지자 좀비같이 몰려 덤비던 교법사들이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듯 화들짝 놀라며 주춤거렸다. 그리고 뒤늦게 고통을 느끼듯 비명을 지르고, 쓰러졌다. 나는 피 묻은 검을 손목을 돌려 털어 내곤 활짝 열린 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백루찬은 김세영을 찾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더 이상 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굳어 버렸다.

“…아아….”

“이…르시되….”

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서 있었다. 멍하니 하늘거리는 사람들은 해파리같이 뼈가 없는 동물 같았다. 아니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기도 했다. 그들은 넋을 빼놓은 얼굴로 양팔을 늘어트리고 서서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밖에서 큰 소리가 들리고, 전투가 벌어졌음에도, 갑자기 뛰어 들어온 내가 자신들의 사이를 지나칠 때에도.

그들은 아주 멀리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돌아간 눈으로 허공만을 응시했다.

“이… 이게.”

김세영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검은해 집회에 이미 자주 나간 상태였다. 그러나 정신은 말짱해 보였다.

그런데 여기 있는 신도들은 하나같이 얼굴도 핼쑥하고, 김세영과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일까. 진마하가 게이트를 여는 능력이 있다지만, 지금 이것은 단순한 정신 세뇌로 이렇게 만든 게 맞는 건지 의심이 들게 할 만한 광경이었다.

김세영도 설마 이렇게 변했을까. 나는 사람들의 팔목을 살펴보았다. 홍희가 보여 줬던 실 팔찌를 그들 모두가 차고 있었다.

나는 당혹스러워하며, 그들 사이를 헤치고 백루찬을 찾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백루찬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 살려 줘…!”

그때였다. 앞에서 두려움에 질린 고함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목소리가 들렸던 단상 앞으로 달렸다. 백루찬도 몸을 돌려 단상 쪽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도착한 단상 앞에서, 나는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밧줄로 꽁꽁 묶인 남자가 피를 잔뜩 흘린 채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남자가 꿈틀거리며 간신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외쳤다.

“살려, 살려 주세요! 살려 줘!”

빠르게 다가가 일단 묶인 밧줄을 풀어냈다. 남자는 입가부터 턱 주변까지 피범벅이 되어 있고, 옷들도 마찬가지였다.

“으헉… 어으….”

“괜찮으세요? 왜, 왜 이렇게 된 겁니까?”

다리를 묶은 밧줄을 검으로 끊어 내고, 두려움에 발작하려는 것처럼 눈이 돌아간 남자를 붙잡아 앉혔다. 남자가 더듬대며 팔을 뻗어 내 팔을 꽉 붙잡았다. 악력이… 일반인이 아니다. 각성자다. 남자는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로 소리쳤다.

“살려 줘. 살려 줘. 나는…! 도망, 도망가야만….”

“저기요.”

“저놈들이, 저 미친 새끼들이 날 납치했어요! 마력을 사, 사용할 수 없게 만들고 나를, 나를!”

거기까지 말한 남자가 순간 흠칫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곤, 뒤의 단상 위를 보곤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집어졌다. 나는 남자를 붙잡았다.

“왜 그래요? 이제 괜찮습니다. 정신 차려요!”

“아니… 아, 나… 나는….”

“일단 나갑시다.”

정신이 붕괴된 게 눈에 보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때 백루찬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고개를 들자, 턱짓으로 위를 가리켰다. 단상 위.

무섭게 굳어 있는 백루찬의 얼굴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단상 위에는 검은 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쪽만 푸른빛을 내는 요사한 눈을 가진 남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누군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진마하!”

미동도 없던 남자가 눈을 한번 깜박이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발 느리게 반응한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바로 스킬을 사용해 몸을 날렸다. 이형환위로 순식간에 뛰어올라 남자의 멱살을 움켜잡고 검을 들이댔다.

목덜미를 누르는 시퍼런 검날의 압박에도 진마하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나를 보고 웃었다.

“뭐지. 왜 두 명이 있을까?”

❖ ❖ ❖

진마하다. 이놈은 진마하가 맞았다. 비록 다른 외형일지라도, 오드 아이로 빛나는 눈과 비틀어진 웃음이 그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정신 조종을 하고 있는 거다. 송류진 때와 같이. 눈앞에 있는 남자는 꼭두각시다. 손에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려 왔다.

“진짜 넌 어딨냐.”

“여기 있잖아. 네 앞에. 근데 너, 나를 알아보네?”

“꼭두각시 말고, 네놈 실체.”

“아하하하.”

진마하는 나를 비웃었다. 한쪽 눈을 찡그리며 웃는 남자의 얼굴은 전혀 다른 생김새임에도 진마하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희생했다니.

숨이 턱 막힌다. 빌어먹을 새끼, 대체 몇 명이나 죽음으로 몰아넣은 거야! 의도도, 무엇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게 없었다. 아는 것이라곤, 놈이 주절주절 떠들었을 때 들었던, 나와 같이 유일한 동족이라던 말. 세계의 선택을 받았다는 말.

“둘이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고? 이것 참, 너무 궁금해지네?”

“목적이… 이러는 이유가 뭐야.”

“지금의 너는 몰라. 아니, ‘너’라면… 알 수 있으려나?”

이 빌어먹을 새끼가…! 제대로 대답하는 게 없다. 유들거리는 놈의 목덜미를 더욱 꽉 붙잡았다. 분노와 흥분에 몸이 덜덜 떨린다. 그럼에도 나는 함부로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눈앞의 남자는 정신을 잠식당한 존재일 뿐 진짜 진마하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떤 남자가 눈을 깜박거렸다. 한쪽만 푸른 눈이 검은색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진마하가 조소했다.

“그야… ‘멸망’이지.”

그렇게 말을 내뱉은 순간, 진마하가 조종하고 있던 남자가 쿨럭이며 붉은 피를 한 움큼 쏟아 냈다.

“아, 이 몸도 진짜 쓰레기야. 고작 한 시간도 버티질 못하네.”

피를 잔뜩 토해 냈지만, 남자는 시큰둥한 얼굴로 짜증을 냈다. 나는 앞서 부축했던 남자도 진마하의 정신 조종에 당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피를 토했던 거다.

“너….”

“오느라 수고했어. 이왕 온 김에 뒤처리도 좀 부탁해.”

“이 새끼가…!”

“그리고, 나중에 또 보자고, 우리. 할 말이 아주 많은 것 같으니, 기다릴게?”

“진마하!”

실실 웃던 남자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순식간에 축 늘어졌다. 진마하가 정신 조종을 끊은 거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백루찬이 나를 불렀다.

“아는 놈이야?”

“……몰라.”

나는 쥐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앞에 있는 남자는… 모르는 사람이다. 진마하를 알 뿐이다. 기절한 남자의 상태를 살피니, 숨은 쉬고 있었다. 멸망. 멸망. 빌어먹을 새끼.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김세영 씨는.”

“여기 없어. 안 보여.”

백루찬은 모여 있는 신도들을 보면서 허탈하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는 입술을 꾹 악물었다. 젠장…. 미리 막으려고 했지만, 역시 막을 수 없는 일인가. 심상 세계에서도, 그 일은 반복되는 건가.

허탈해진 나는 한숨을 삼켰다. 진마하는 너무 허무하게 놓치고 말았고, 정작 찾으려 했던 김세영은 찾지도 못했다.

“…차해준.”

“어.”

“앞에 봐봐.”

생각이 온통 어지러운 탓에 정신을 빼놓고 있다가, 백루찬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넋 놓고 허공을 응시하던 신도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

수백 명이, 가만히 서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한 번에 모인 시선에 소름 돋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점점 모여드는 그들을 보고 백루찬이 조용히 속삭였다.

“다들 이상해졌지?”

나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스릴러 공포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모두가 미쳐 버린 공간에서 도망쳐야 하는 그런 주인공이 된…. X발. 나는 백루찬의 팔을 붙잡고 날듯이 뛰어올랐다.

“도망쳐!”

“하- 씨….”

세뇌당한 신도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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