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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헌터는 당신을 공략 중 (155)화 (154/201)

“너는 왜 이제 왔어. 아까 통화할 땐 바빠 보이더니.” 

“나 기다렸어요?”

씩 웃으며 꺼내는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기다리긴 누가 기다려…. 라고 튕기고 싶었지만 기다린 게 맞아서 할 말이 없다. 입을 다물고 주방으로 가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들었다.

등 뒤로 백루찬의 시선이 따라붙는 게 느껴졌다. 왜 자꾸 쳐다보냐… 긴장되게.

“어디 다녀왔어요?”

“학교. 교수님이 얼굴 좀 보자고 하셔서.”

“아아….”

나는 물을 꿀꺽꿀꺽 마시며 녀석을 힐끔 쳐다보곤 또 물을 마셨다. 이상하게 목이 타는 기분이다. 백루찬은 옅게 웃으면서 나를 불렀다.

“형.”

“엉.”

“이리 와 봐요.”

“…왜? 물 좀 마시고.”

“다 마셨잖아. 빨리.”

“왜 그렇게 불러? 불안하게.”

백루찬이 느릿하게 손짓하는 것을 빤히 보다가 슬금슬금 다가갔다. 녀석은 여전히 내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고 뭔가… 이상하게 가슴이 간질거리는데. 병이 있나. 왜 이러지.

나는 우물쭈물하며 백루찬을 보다가, 물이라도 달라는 건가 싶어 내가 먹던 물병을 내밀었다.

“너도 마실래?”

“형.”

“왜. 그만 불러 대.”

앞에 서서 내려다보자 백루찬은 장난기 어린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확 허리를 껴안아 당겼다. 순간 화들짝 놀라서 밀어내지 못하고 나는 녀석에게 끌려가 안겼다.

백루찬 위에 엎어질 뻔한 걸 소파 등받이를 붙잡고 버텼더니 돌연 백루찬이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뺨을 비벼 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짝 긴장한 채 굳어 있어야 했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눈만 끔벅거리다가 간신히 더듬더듬 말했다.

“강아지야, 뭐야. 왜 이래.”

“형이 너무 보고 싶었어. 그런데 형은 찾아오지도 않고…. 좀 서운해요.”

“바빴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내가 가면 괜히 일하는 데 더 방해될 수도 있고.”

“변명이야.”

“아이씨, 연락도 안 한 건 너도 마찬가지거든?”

“나는 빨리 정리 끝내고 이러고 싶어서 참은 건데.”

“윽….”

“이런 말에 항상 민망해하더라, 형은. 더 하고 싶게.”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하며 백루찬을 밀어냈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백루찬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야, 야. 물.”

내가 한 소리 하자 백루찬이 내 손에서 물병을 빼앗아 탁자에 올려놓고는 나를 제 옆에 앉혔다. 바짝 붙어서 목덜미에 고개를 묻는데, 호흡에 숨결이 그대로 느껴져서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거 같았다. 너무… 너무 들러붙는 거 아니냐. 부끄러운데도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냥… 나도 붙어 있는 게 좀 좋다고 느껴서 가만히 있었다. 이제 진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곤 숨을 깊게 들이켰다. 녀석의 체향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다. 백루찬도 그럴까.

나는 내게 기댄 백루찬의 등을 살살 토닥여 주었다. 백루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더니 피식 웃었다.

“형.”

“…어.”

“날 더 사랑해 줘요.”

“아이고….”

“더 많이 사랑해 줘. 나에게만 관심 가져 줘. 나를 더 봐 줘.”

“…욕심 많네.”

“욕심이에요? 그래도 더 많이 사랑해 줘요. 안 그러면 따먹고 버렸다고 소문낼 거야.”

“이 자식이. 협박 좀 하지 마.”

“왜. 형이 해 주겠다며. 같이- 읍.”

“입 좀 닫아. 부끄러우니까.”

나는 계속 떠드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면역 없는 거 알면서도 저런 낯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녀석 때문에. 얼굴이 벌게질 것 같았다.

입을 틀어막고 있는데 순간 손에 물컹한 게 닿아서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백루찬이 얄밉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곤 혀를 날름거렸다. 아 진짜!

“짜다.”

“누가 핥으래!”

“뭐 어때요.”

아무렇지 않게 목덜미를 껴안고 기대는 녀석은 덩치 큰 강아지 같았다. 이런 맹수 자식에게 강아지를 붙이는 건 실례 같단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아, 내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씐 건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백루찬에게 팔을 두르고 바짝 껴안았다.

백루찬은 전보다 더 나에게 기대고 있었다. 김세영에게 맹목을 바라던 녀석은 이제 나에게 그것을 바라며, 되레 맹목적인 시선으로 나를 본다. 그 시선에 깔려 있는 감정의 깊이는 내가 재단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순간 송류진이 잠깐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참 동안 안겨 있던 백루찬이 작게 중얼거렸다. 녀석의 흰머리가 눈앞에서 나풀댔다.

“아무에게나 잘해 주지 마요. 다들 착각하니까.”

“나 그렇게 친절한 사람 아닌데.”

“…아니긴.”

“그리고 무슨 착각이야. 세상 사람이 다 너 같지 않아, 루찬아.”

“형. 예의상 보이는 호의를 관심으로 착각해서 들러붙는 인간들 많이 겪지 않았어요? 아직도 위기감이 없어서 어떡해.”

“아, 바탈?”

“그놈만 있진 않지.”

“또 누가 있어.”

“…있어요. 말하기 싫어.”

백루찬 폭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턱 부근을 간질였다. 녀석의 머리카락을 조심히 쓰다듬어 주면서 난 일에 관해 물었다.

“정리는 잘 됐어? 카리나 씨는 좀 괜찮고?”

“똑같아요. 조금 다운되긴 했지만, 헌터를 직업으로 가진 각성자들은 다 목숨 걸 각오로 하는 거니까…. 그 부분에서 가장 쿨한 사람들이 다해 길드예요. 알아서 추스르고 나올 테니 걱정하지 마요.”

“그래. 그… 검은해는?”

주저하다 물은 대답에 백루찬이 잠깐 멈칫했다가 나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목 부근을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휴, 덩치도 더 큰 놈이 매달리듯 안겨 있으니 무겁다. 그래도… 밀쳐 내진 않았다.

백루찬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찾고 있어요. 이제 거의… 다 되어 가니까. 기다려요. 그리고 그 새끼는… 내가 반드시 죽일 거야. 혼자 절대 나서지 마세요.”

따로 지칭하지 않아도 누구에 대해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진마하.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쩌냐, 나는 너랑 생각이 반대인데.

백루찬과 진마하가 절대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다. 그놈은 내 선에서 끝내야 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그놈이 떠들었던 말들도 제대로 알아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자신과 내가 선택받았다는 그 말. 그리고… 놈은 내가 회귀를 반복했던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고 했다.

솔직히 회귀가 이제 끝난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진마하를 끝내지 못하면 나는 다시 회귀하는 걸까. 또 그 악몽 같은 풍경을 보고 버텨야 하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백루찬이 내 턱을 잡아당겨 자신을 보게 했다. 코앞에 있는 얼굴을 눈을 깜박이며 바라보자 백루찬이 씩 웃었다.

“내 앞에서 다른 놈 생각하는 얼굴이네.”

“뭐래….”

그러곤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입술이 내 입술과 살짝 맞부딪쳤다. 내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백루찬이 입술을 혀로 핥으며 중얼거렸다.

“질투 나니까. 나중엔 더 큰 걸로 받을게요.”

“무… 변태 자식.”

슬쩍 떼어 내려고 고개를 돌리며 녀석의 뺨을 밀어내자, 백루찬이 다시 내 팔을 붙잡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등받이에 가로막힌 몸은 짓눌리듯 안겨서 키스를 받아 내야 했다. 입술에 들러붙은 온기가 뜨거웠다. 

“이제 안 피하네. 그래요. 앞으로도 피하지 마. 익숙해집시다.”

“조용히 해, 인마….”

킥킥대며 웃는 녀석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쑥스러워서 백루찬의 머리만 가열차게 쓰다듬었다. 

❖ ❖ ❖

백루찬이 잠깐 쉬고 또다시 집을 나섰다. 아직 뒷정리가 남아 있어서 잠깐 올라온 거라고 말했다. 나는 녀석을 배웅하고 소파에 앉아 눈앞에 뜬 시스템을 바라보았다.

계속 시야 한구석을 방해하고 있던 것은 게이트를 해치우고 나서 뜬 것이었다.

[보상이 있습니다.]

[‘초전 박살 게이트’ 세계의 비밀. 열람하시겠습니까?]

보상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제야 이걸 알려 줄 마음이 든 건가. 솔직히 좀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려줄 거면 진즉에 알려줬어야지, 위험한 거 다 겪고 이제야 이런 걸 주냐….

[≡≡≡=(ノTдT)ノ]

우는 척하지 마라….

한숨이 나왔지만 해야 할 일이긴 했다. 

나는 이제 안다. 이곳이 나의 원래 세계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은 아니었다. 어째서 회귀를 반복한 건지, 진마하는 어떤 선택을 받았고 지금은… 왜 그렇게 된 건지, 알 필요가 있었다. 세계의 시스템은 책으로 내 꿈에 나타나 나를 다시 ‘원래’ 세계로 이끌었으니까 제대로 설명해 줘야 한다. 

계속해서 게이트를 만들어 내는 진마하를 나는 막아야 하니까. 

중요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사태를 맞이하고 나서 종전의 기록에도 변화가 생겼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도 떠올랐다.

항상 메인 캐릭터에 대해 공략이 되면 시나리오 내용에 변동이 생겼었기에, 백루찬을 구하고 나서도 똑같이 변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 변한 것이 아니었고, 놀라운 사실이 한 가지 드러났다. 바로….

[시나리오가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시나리오 초월! 메인 캐릭터 ‘백루찬’의 죽음을 막아 냈습니다!]

[종전의 기록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시나리오 초월! 메인 캐릭터 ‘차해준’의 죽음을 막아 냈습니다!]

[종전의 기록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메인 캐릭터 ‘백루찬’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습니다!

세계의 오류가 25.8888% 바로잡혔습니다.]

[메인 캐릭터 ‘차해준’의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사를 완성하고 오류를 바로잡으세요!]

그렇다. 남아 있던 두 메인 캐릭터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종전의 기록 페이지는 잔뜩 넘어갔지만, 아직 저주도 그대로고, 수명은 계속 단축되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할 일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메인 캐릭터를 찾아내어 죽음을 막고. 그리고 메인 캐릭터 차해준, 즉 나에 대한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이 시한부 삶도 벗을 수 있다.

이 완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내가 종전의 기록을 직접 보는 자이고, 메인 캐릭터의 위험을 해결하고 시나리오를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그리고 오류를 해결할 수 있는 클리어런스라서 완성하라고 뜬 것 같았다.

나는 움직여야 하는 인물이니까. 메인 캐릭터를 모두 찾고, 세계의 기둥인 그들을 구해야 하는 사람이니. 

[보상을 수령하세요!(งᐛ)ว (งᐖ )ว]

시스템이 재촉해왔다. 그래, 봐야지. 확인해야 진마하를 잡을 수 있겠지.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YES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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