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반희는 흡연 구역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흩어지는 연기를 손으로 내저으며 뻑뻑 빨아들이자 연초 끝이 빠르게 타들어 갔다.
‘할 말이 뭔데?’
저를 향해 의문을 표하자 우반희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말하고 싶은 건 많았다. 명동 사건에 대한 진실이 무엇이냐, 그 전에 한라동에선… 나는 너를 보았었다.
그때 넌 다 죽어 가는 눈을 하고 있었고, 처음 만났을 때도 그 트라우마에 짓눌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이제 와서 괜찮아는 무슨….”
우반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답지 않은 말이었다. 송류진이 폭주했을 때도 그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입을 닫았다. 그놈에게도 그것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였다. 세상엔, 아니 무엇보다도 각본에는 송류진이 필요하니까. 흔들리지 않는 가르덴의 송곳을 든 강한 S급 헌터 송류진이.
그래서 차해준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차해준도 그런 자신의 행동에 동조해 줬다.
이제 와서 괜찮냐고 묻기엔 조금 멀리 왔다. 그동안… 차해준이 모든 것을 견디도록 내버려 둔 건 자신이었으니까. 송류진이 처음 이상한 행동을 보였을 때도, 그가 차해준을 납치하고 강제했을 때도. 폭주할 때까지도.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교차했다. 우반희는 씁쓸한 얼굴로 담뱃재를 털어 냈다.
“…됐다.”
그렇다면 자신도 묻어야겠지. 차해준도 많은 것을 묻어 줬으니, 한라동 사건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때 불안했던 그 소년이 지금은 조금이나마 밝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아 있는 문제들은 산더미 같았고, 해결해야 할 중심에 한야인 차해준이 있다. 그러니….
“괜찮겠지.”
우반희는 덮기로 했다. 한야에 대한 의혹도, 차해준의 한라동 폭발 사건에 대한 것도 모두 다.
“내가 널 생각하는 만큼 너도 그 반만큼이라도 날 생각해 줘야 할 텐데.”
그럴 것 같지가 않다는 씁쓸함에 우반희는 담배를 뻑뻑 피웠다.
❖ ❖ ❖
국제 이상 게이트 감지 관리부 아서 페리웰과 바탈까지 오고 나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다해 길드에선 카리나만 참석했다. 유하늘은 충격이 커서 몸져누웠단다. 카리나는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꼬고 발끝을 까닥이며 말했다.
“결론은 아직 남았다는 거지.”
검은해. 교주는 한 명. 진마하다. 진마하는 오류를 일으켜 세계가 자신을 기억하도록 새겨 왔다. 덕분에 신도들은 그를 신으로 추앙하고 있었다.
“제대로 소탕된 게 아니야. 그놈들, 최근까지도 포교 활동이 이어졌어.”
카리나는 넓은 원형 탁자에 실 팔찌 하나를 꺼내 올려놓았다. 저것이 무엇인지 적어도 모르젠트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홍희가 눈에 띄게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탁자 밑으로 옆자리를 더듬대다가 찾은 백루찬의 손을 꽉 잡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리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 네가 흔들리지 않으면 됐다.
“중요한 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게이트가 아니라 사이비 교단이야. 그놈들부터 처리해야 돼.”
“하지만 지속되어 오던 집회는 사라졌고, 가약동 게이트가 닫힌 이후 검은해 교단 수뇌부들이 대거 이탈했습니다. 그들 중 소수의 인원 또한 각본 손에 들어왔고요.”
송류진이 말했다. 카리나의 의견은 닫히지 않는 게이트보다 가약동 게이트 사태를 불러일으킨 검은해 교단을 먼저 처리하자는 얘기였다.
카리나는 심도 있게 검은해를 의심하고 있었다. 명동 악마의 눈동자도 그렇고, 가약동 게이트도 검은해가 등장하며 열렸다. 게이트를 그놈들이 연 것이 아니라도 놈들이 무언가 게이트 열리는 곳을 찾을 수 있는 물건, 혹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게 카리나의 생각이었다.
나는 침음을 삼키며 턱을 쓸었다. 카리나의 예상이… 어느 정도 맞긴 하다. 검은해는 게이트가 어디에 열릴지를 안다. 교주인 진마하가 연 게이트니까.
“수뇌부 중 몇은 각본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했습니다. 현재도 진행 중이고요. 그들은 하나같이… 마치 세뇌당한 것처럼 움직였다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놈들부터 파 봐야 된다는 거 아냐. 이 이상 희생이 나오면 어떡할 건데?”
“세뇌를 당했는데, 그들은 검은해를 빠져나왔습니다. 가약동 게이트 이후부터 신도 이탈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고요. 각본 입장에서 검은해는 망해 가는 교단입니다. 힘을 잃었어요. 놈들은 교주가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남아 있는 건 교주 밑에 있던 몇 대원법사들이라 불리는 놈들뿐입니다.”
송류진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교주가 사라졌다라…. 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스템도 진마하가 현재 무리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시나리오를 통해서도 보았다. 에러를 일으키는 진마하 주변을. 무리한 힘을 쓴 탓인지 그 속에서 진마하는 망가지고 있었다. 시스템 권한도 점점 축소되고 있고 말이다.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지 않고 그냥 순서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어차피 인원을 나누기로 했잖습니까. 닫히지 않는 게이트와 검은해를 맡은 인원이.”
“우리 인원 준 거 알면서 그따위로 말하지?”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각본이 있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다해 길드가 움직이는데 각본 뒤나 쫓아다니면서 움직이라고?”
“하… 카리나 씨. 일단 진정하시고요.”
카리나는 검은해를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고, 송류진은 나눠서 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의견 차가 좁혀 들지 않고 있다. 사실 모르젠트는 이전 회동 때 결정한 대로 움직이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나는 울분에 차 있는 카리나를 힐끔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말을 하는 게 나을까. 그런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진마하 그놈이 교주고, 그놈 잡으려면 결국 닫히지 않는 게이트에 들어가야 한다 해야 하나? 내게 예지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종전의 기록이라는 게 미래를 엿보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해도 좀 그렇긴 한데….
“거참, 흥분 좀 하지 마요. S급이 흥분하면 호텔 날아가. 다해가 물어낼 거야?”
우반희가 짜증스럽게 카리나를 막아섰다. 카리나가 뺨을 씰룩이다가 책상을 쾅 치며 벌떡 일어났다.
“이 새끼야. 검은 해 신고했을 때 네가 처듣지도 않았잖아. 내가 말했지. 분명 지원 필요하다고. 미리 나왔으면-.”
“그때 이미 제로급 게이트 여파로 소형 던전이 여러 곳에서 만들어졌다니까요. 우린 뭐 손 놓고 있었나?”
“야, 너 나와.”
“나오라면 못 나갈 줄 알아?”
우반희와 카리나가 서로 보며 으르렁거리듯 싸워 댔다. 와, 보고 있자니 골이 다 아프다.
“어휴, 둘 다 앉아요. 싸우려고 온 거 아니잖아!”
보다 못한 홍희가 일어나 둘을 말렸다. 국제기구 소속들도 지켜보고 있는데 여기서 싸우는 건 좀 볼품없긴 하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재난이기도 했고.
그리고… 나는 잠시 씩씩대는 둘을 보다 생각했다. 혼자서 하기엔 진마하를 상대하는 일은 너무 버겁다. 거기다 마지막 남은 메인 캐릭터도 찾아야 한다.
그동안 나 혼자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명동 게이트도, 그 외 수많은 게이트도… 진마하가 처음 나왔을 때도 말이다. 하지만 겪어 본 결과 모르젠트의 도움을 받으면서 게이트를 해결했을 때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혼자서 하기 벅차고, 생각할 일이 많다면….
그리고 결국 닫히지 않는 게이트와 진마하로 목표가 귀결된다면 말해서 의견을 모으는 게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심히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저기….”
“우반희 개새끼야!”
“아 씨, 이 폭력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아줌마가-.”
“아니 저기, 저 말 좀.”
내가 한숨을 쉬며 끼어들자 열심히 말로 싸우던 우반희와 카리나가 나를 쳐다봤다. 조용히 있던 이들도 주목해 왔다. 매번 혼자 움직이고 혼자 처리해 와서 이런 상황 좀 익숙하지 않지만…. 나는 큼-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제가 압니다. 거기 교주.”
“…….”
“아는 사이는 아니고… 그놈이 일방적으로. 아, 왜 그렇게 보지?”
미심쩍은 시선, 이제 와서 저게 뭔 소리냐는 시선이 나에게 꽂혀 들었다. 나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대답했다.
“뭐… 그렇게 된 일이 있었거든요.”
나는 내가 겪은 일을 조금 각색해서 설명했다. 진마하가 랭킹 1위, 한야… 하 이걸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한데, 아무튼 내가 한야라는 것을 알고 진마하라는 놈이 찾아와 협박했다. 같이 일하자고. 한일고 사태가 터지면서 나는 당연히 거절했고, 그러다가 놈이 게이트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
모르쇠로 일관했다.
“진마하가 어떻게 게이트를 여는지, 몰라요. 하지만 확실한 건, 닫히지 않는 게이트도 놈이 만들었다는 겁니다. 진마하는 모두가 다 죽는, 세계의 멸망을 꿈꾸고 있는 범죄자입니다. 아마, 그, 맞아. 스킬이 있는 거겠죠? 그런 스킬…. 그러니까….”
“…정리해서 좀 말해 봐.”
“그러니까, 계획한 대로 움직이자고요. 진마하, 닫히지 않는 게이트에 나타날 겁니다. 그놈도 잡고, 게이트도 닫아 버려요, 그때.”
말처럼 쉬운 게 아닐 테지만, 나는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태평하게 웃었다.
“다 같이 하면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회귀를 몇 번씩 반복할 필요는 없을 거 아냐.